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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이 책은
이 책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은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심리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책이다.
저자는 이창일,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철학박사를, 서울불교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자연학과 인간학의 미래적 비전을 제시하는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저자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수치’라는 감정을 파고 들어, 여러 갈래의 분석 도구를 활용하여 수치라는 감정을 그야말로 샅샅이 파헤쳐 놓았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분석 도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심리학, 각종 종교의 경전, 뇌과학, 신화, 언어학, 어원학, 동양 경전, 각종 문학작품, 등 그야말로 인문학의 성찬이 벌어지고 있다.
해서 이 책은 먼저, 수치를 분석하려는 저자의 노력 덕분에 수치라는 말이 여러 방면으로 역사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수치와 관련된 인간의 각종 감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으니,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감과 공감의 차이는
이런 분석을 위시로 하여 저자는 우리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감정의 교류를 분석해 놓고 있다.
수치와 부끄러움
이 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수치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알게 된다. 지식적 차원에서 수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수치라는 감정을 샅샅이 훑어나간 저자 덕분이다,
다음으로는 이 책을 정신 수양을 위한 교재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실천적 차원에서 읽어보는 것이다. 수치에 관한 각종 명언들, 격언들, 잠언들을 읽어가면서 내 마음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신화 시대의 수치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보았다.
그 다음,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대목이니 인용해 본다.
맹자, 유자입정(儒子入井)의 논증
맹자는 이런 상황을 예로 들면서, 수오지심을 논한다. 그런 수오지심은 결국 정의와 연결이 되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맹자의 생각은 계속된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오는 말이다.
또 이 말도 기억해두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맹자는 말하는데, 그 중 두 번째 즐거움 기억해 두자.
다시, 이 책은
해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쓴 목적도, 이 시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기에, 그들에 부끄러움을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부끄러움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해서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의 몫일뿐이다.
아, 이런 때에는 플라톤이 말한 제우스의 법이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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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이창일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사전적 의미로 '수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말한다.
나의 약점이나 잘못이 드러나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표면적으로 잘 드러낼 수 있는 마음 상태는 아니기에 수면 아래 숨어 있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책 속에서 그 민낯을 여실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보았다.
넓은 스텍트럼을 가진 수치는 서로의 색이 다르고 그 깊이 또한 다르다.
좋은 감정보다도 사실 나쁜 감정으로 치부하기 쉬워서 수치스럽다는 건 자기 혐오를 느끼게도 하기에 양날의 칼을 쥐고 있는 이 감정을 잘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내면과 사회 안에서 분리될 수 없는 이 감정에 대해 아는 것 이상으로 자기 각정으로의 올바른 방향성을 찾는데 좋은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을 얻어 보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수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길은 이전처럼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엄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수치의 감정은 완전함에서 타락한 감정이지만, 타락의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신호를 가리키기도 한다. p125
성경에서도 에덴 동산에서 알몸의 인간이 열매를 맛본 뒤, 육체적 결핍을 느끼고, 파생되는 부정적인 감정의 표상을 느끼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불완전한 이 모습이 인간이 되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 수치라는 것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은총 대신 엄격한 실존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인간은 죄와 벌을 받게 되며 수치스러운 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걸 출산의 고통과 일하며 땅을 갈아 먹고 살아가게 되는 삶으로 표면화된다.
악이 극점이 수치로 보여지니 선의 극점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죄를 짓고 생겨난 감정이지만 인간 심리에 중요한 문제와 갈등을 포함하는 감정의 우두머리라는 걸 분명히 알게 한다.
내면의 소란도 여기서 싹이 트는 것이라면 분명 잘 알고 있어야 할 감정임에 틀림없다란 생각이 든다.
맹자에게 부끄러우은 인간이 되는 길을 가리키는 고마운 신호이자, 삶의 즐거움을 성취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더 나아가 부끄러움을 채찍삼아 '크고 굳건한 기운'을 축적하며 살다 보면 의를 따르든가 치욕스러운 삶을 살든가 결단해야 하는 순간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p250
하늘이 준 사명처럼 비장하면서도 숭고한 감정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면 비단 수치란 감정이 다르게 해석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유교에서 다루는 해석은 인간관계를 맺고 좀 더 평화적인 공존을 이야기 하려 하는 듯 보인다.
혐오와 사랑은 본능이라고 말한 맹자는 '수치'를 수오의 마음으로 의로움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차마 남의 불행을 참지 못하는 마음.
본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 가운데 단순히 부끄러움과 미워함으로만 생각지 않고 의로움과 연결 짓는 해석에 주목할만하다.
생리적 수줍음에서 출발하는 감정이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으로 수치를 말하는 건 의로움의 단서가 됨을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다.
부끄러움에 대한 기본 철학과 태도가 자기 내면화의 길이라고 했듯이 역사서에서의 의인들이 해석한 부끄러움의 두 얼굴이 가진 철학적 해석을 내면의 성숙으로 바라보면 생각이 갈라진다.
수치의 정의를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중요한 건 부끄러운 감정을 인정하되 사회적 구조 안에서 신뢰와 존중이 이뤄지기 위해 개인의 성숙함이 분명 있어야 함을 더 표면적으로 느끼게 한다.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거듭날 수 있는 안전한 장치로서의 경계를 늦출 수 없듯이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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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정 학연을 따지는 것이라 조금 불편한 감이 있으나 영향이 없진 않은 듯 해서 몇 자 적어본다. '고려대 심리학과' 내가 아는 저자 중엔 김태형 선생이 저기서 공부했다. 주류 심리학을 떠났다가 다시 심리학으로 돌아와서 역사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심리학을 펼친다. 대표적인 게 <트라우마 한국사회>인데, 우리나라 역사와 사회 현실을 파악하고 한국인의 심리를 밝힌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렇게 접근하는 심리학자는 매우 드물다.
이창일, 이 저자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약력을 보며 상당한 내공을 지녔음을 느꼈다. 주역, 성리학 등 동양학을 바탕으로 하고, 사상의학과 황제내경 등을 쓰고 번역했다. 철학과 몸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심리학자다.
나는 이러한 심리학자들이 좋다. 굳이 심리학자라고 불리지 않아도 좋다. 사회학을 아우른다. 그래야 진짜 마음을 더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 철학도, 역사도 인간의 마음들이 있기 마련이다. 더 넓게 이해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깊이도 물론이다. (아마 그 학교의 어떤 선생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은사가 같을 수 있겠지? 아니면 말고)
이 책은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며, 수치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사전적 정리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윤동주와 노무현 이야기도 나오고, 노무현 대통령 관한 부분을 보면 저자의 정치사회 인식이 어떠한지 대략 느낄 수 있다. 충분히 만족스럽고, 이전 저작들과 다음 저작들도 기대된다.
수치스러움, 부끄러움을 인식하기보다는 피하고 싶고, 그걸 무의식으로 밀어내려 한다. 그게 인간의 삶이다. 수치의 다양한 모습을 풍성하게 모아줘서 고맙다. 일부는 가볍게 설렁설렁 읽기도 했다. 꼼꼼하게 다 읽진 않아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힐 수 있는 책이다. 저자처럼 나 역시 수치스러움을 건강하게 작동시키는 사회, 독자들이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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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수치란 단어가 멀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 책은 부끄러움과 같은 뜻을 가진 수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수치는 조금 특별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수치에도 깊이가 있으며 아래쪽 얼굴과 위쪽 얼굴, 각각에 위치한 수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흥미롭다. - 우리 주변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이라고 부끄러움의 상황을 모르겠는가? 알지만 그것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 그것은 당신이 온전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사이코패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p 46
부끄러움은 혐오와 수줍음이라는 일차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근본 감정으로 유전자에 각인되어 본능의 형식으로 정착되어 있다. 감정은 뇌의 언어로 변연계에서 일으킨다. 어찌 보면 참 과학적이란 느낌인데 일상에서 내가 흔히 접하는 감정을 이토록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 수치는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수치는 불편하고 자신이 위축되거나 못 견딜 정도로 참기 어려운 감정이 내면에서 피어날 때 느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부끄러움은 불편하고 위축될 수는 있지만, 아닐 때도 있고, 못 견딜 정도로 참기 어려운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둘의 쓰임이 두부 자르듯이 깔끔하게 나뉘지 않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여전히 수치 쪽에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p 3 - 혐오는 한글로 보면 '싫어함'과 '역겨움'이다. 싫증이나 염증, 혐오감, 거부감 등을 포함하는데, 불쾌함을 나타내며 징그러움의 의미도 담고 있는 감정이다. 혐오는 증오와 약간 결이 다르다. 증오는 미움과 연결되는 반면, 혐오가 반드시 미움은 아니다. 그것은 꺼리고 물리치는 감정이다. p 52
내가 혐오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쉬이 이해되는 감정이다. 혐오감을 없애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음에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수치를 모르는 것처럼 뻔뻔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수치가 지닌 감정의 특성과 문화를 통해 그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설프게만 인식하고 있던 비슷한 느낌의 단어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부끄러움의 한자 표현들은 유익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문학적 은유도 흥미로웠다. - 신화라서 사실이 아닌 허구이며, 사실성이 없어서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화는 과학의 사실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실성을 가진 설명 방식이며 통찰의 체계다. 신화에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과학이 접근하기 어려워서 괄호 속에 넣어 놓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있다. 신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까닭은 이러한 설명과 해답에 인간의 자기이해 방식이 배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과녁을 돌려 인간에 대한 진실한 내용을 좀 더 원초적인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원초적이기 때문에 더 간단하고 쉬우며, 인간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라서 그 은유적인 설명 방식이 재미나다. 그러니 신화적인 설명을 포기할 수 없다. p112
신화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요소인 수치라는 감정을 설명한다. 신화를 좋아하고 성경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그에 대한 이해와 학식이 부족했는데 많이 채워 넣을 수 있었다. - 결핍이 없었다면 채워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결핍은 욕망을 부른다. p 118 - 수치는 완전할 수 없다는 근원적 상태에서 파생되는 온갖 부정적 감정의 표상이 되었다. 따라서 수치는 죄의식, 패배감, 열등감을 동반하고 자기분열, 고독감, 자기기만, 집착과 편집 등을 일으켰다. p 124 - ... 역설적으로 인간이 되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 바로 수치다. p 125 - 의인은 의로운 자이며, 성서의 문화에서 의로움은 계약에 비견된다. 계약을 잘 이행한 자가 의로운 자이며, 계약을 어긴 자는 불의한자다. ... 죄의식의 바탕을 이루는 감정은 수치이므로, 불의한 자들은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자들이다. 그들의 삶은 스스로 욕된 삶이다. p 130
생각보다 수치를 둘러싼 요소들은 복잡하면서도 다양했다. 수치를 모르는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수치와 감정의 문화를 과학과 언어학 및 신화와 종교적인 관념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수치의 병리와 유교 사상, 문화에 미치는 영향, 문화 유전자의 계승까지 두루 살핀다. 인간이라면 응당 지녀야 되는 감정인 수치. 이러한 감정이 없는 인간들이 많은 사회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필수인 수치에 대해 폭넓은 시각과 학문을 통해 살펴보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추한다. - 부끄러움은 개가 뒤로 걸을 리가 없는 것처럼 인간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분비되는 사회적 감정이지만, 이러한 분비가 안 되는 부류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들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제대로 분비하는 인간들의 삶이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부끄러운 일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지 못하도록,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각인시켜서 행동을 교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p 364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시려면 ISO 국제인증전문기관 : 네이버카페(naver.com)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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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박사이자 상담심리학 박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수치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나갑니다. 1부에서는 수치라는 감정을 과학의 언어로 탐색하고, 언어학의 관점에서 수치와 관련된 단어들을 설명합니다. 특히 ‘부끄럽다’의 어원인 ‘ㅂㆍㄺ’이 ‘붉다’와 관련 있을 뿐 아니라 나체를 뜻하는 ‘벌거숭이’와 관련이 있다는 설명(pp. 70~71)이 흥미롭습니다. 나는 이 설명을 읽으면서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성서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부끄러움과 관련된 한자 표현을 설명하면서 소개한 <시경> 한 구절도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대가 홀로 방에 있을 때에 방안 귀퉁이에도 부끄럽지 않게 할지니,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보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p. 79). 그렇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인간 윤리의 근간을 이룹니다. 시인 윤동주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마침, 이 책 5부에서도 윤동주를 소개하고 있군요(pp. 306~310). 우리 말을 쓰면 불이익을 당하는 일제시대에 시인은 부끄러움이 없는 삶에 대한 탐색을 우리말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시에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줄 몰랐습니다.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코스모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길>),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참회록>), “인생을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씌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씌여진 시>).
이 책은 수치와 부끄러움의 두 얼굴을 깊고 예리하게 탐색합니다. 수치 혹은 부끄러움은 아래로 향하는 얼굴과 위로 향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로 향하는 얼굴은 성서 이야기를 통해, 위로 향하는 얼굴은 유교의 가르침을 통해 풀어냅니다. 故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고백과 참회록의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pp. 315~323). 지금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후안무치’란 ‘뻔뻔스러워서 부끄러워해야 할 때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점에서 ‘후안무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치’는 아래로 향하는 얼굴로 인간성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감정이고, ‘부끄러움’은 위로 향하는 얼굴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완성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입니다. 저자가 제안한 정당하게 ‘수치 주기’는 인간답게 만들기 프로젝트(?)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시대는 부끄러워할 것이 너무 많게 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양심이 사라지면, 인간은 짐승으로 전락해 더욱 포악해지고, 세상은 더욱 삭막해질 것입니다.
이 책은 과학, 언어학, 신화학, 심리학, 철학으로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장 방대하고 깊이 있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몰라 부끄러운 일이 많은’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과 윤리에 관해 많은 통찰력을 얻을 것입니다. 강추 또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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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이창일지음 #추수밭 수치란 무엇인가? 수치와 부끄러움은 비슷하나 수치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은 강하다. 우리의 낯붉힘을 일으키는 감정이며 넓고 깊이가 있는 감정이다. 수치라는 감정을 포괄적으로 탐구해보고 수치의 스펙트럼에서 파생된 다양한 언어표현을 살펴본다. 제일 끌렸고 관심갔던 부분이라고 한다면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이야기가 제일 관심을 끌었다. 수치가 생겨난 최초의 탄생말이다. 수치가 부정적으로 생겨난 이유, 본질적인 이야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고 알몸으로 지내다가 뱀의 유혹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사과를 먹고나서 무화가 잎을 엮어 중요한 부위를 가린다. 이런 상태가 수치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수치가 생겨남으로써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고, 이 길이 거저주는것이 아니며 암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과를 먹은이후에 서로를 탓하며 뱀은 기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과 남자는 죽도록 일하며 땅을 일구며 산다. 수치는 인간의 본성을 넘어 경계에 있는 감정이다. P.132 수치는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무질서한 힘이 드러났을 때 느끼게 된 감정이다. 수치는 인간의 본성과 그것을 넘어서는 경계에 있는 함정이다. 수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며 참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며 그것을 수정함으로써 삶의 방향을 수정하기도 한다. 부끄럽다는 감정은 공감감정으로 사회적 감정인데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 대해도 흥미로웠다. 그런 감정에 대한것을 느끼지못하고 부끄러움을 비롯해서 정의감도 의로움도 없고 사회적인 것에는 결여되어 있다. 수치의 두얼굴도 볼수있었으며 수치가 무너지면 인간과 문명이 파괴된다. 수치는 특별한 감정으로써 인간의 안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기도 한다. 인간이 살아감으로써 수치를 다수가 가지고, 알고 있어야 사회정의가 세워지고 그 사회가 지켜지는 이유이다.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자만이 정의사회를 만들고자 하며 민주주의로 이끄는 정신을 가꾸도록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러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한자표현이나, 은유하는 신체적 표현도 흥미로웠다. 참 다양하게 통용되고 소설이나 글에도 쓰여지구나 생각했다. 수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양심적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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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그게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맹자도 수오지심을 4단(p260) 중 하나로 꼽았으며, 칸트 역시 구부러진 재목(=타락한 인간성)으로부터 올곧은 제품(=덕행)이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를 보면 사람이 아닌 동물, 예를 들어 반려견 등도 부끄러운 감정(아무리 원시적인 것이라지만)을 표현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은 특별히 어떤 게 다른지, 또 수치심이 결여된 "괴물의 마음"이란 또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네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 텐데... 책에서는 일단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을 부끄러운 존재가 되게 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 증거로 시도때도 없이 무엇인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증오하는 행태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말하네요(p60. 이 서두는 책 저 뒤 p355에서 발전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어서 저자는 "수줍음은 일차적 감정"이며, 이 수줍음에서 발전한 게 부끄러움이란 감정이라고 합니다(p61). p63에는 "부끄러움은 보다 복잡하고 고등한 감정"이라 말하며 다시 "수줍음"과 구별 짓습니다. 이들 감정은 우리 인간성의 기본 바탕이 되는 동물성에도 기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이것 관련해서는 이 책 4부에 자세히 나옵니다).
수줍음의 기본적인 신체 표현은 "얼굴 붉힘"입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귀 이(耳)와 마음 심(心)이 합해진 글자가 부끄러울 치(恥)라고 합니다. 또 우리말의 "부끄러움"도 그 어원이 "붉어지다"에 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저자는 다윈의 견해를 원용하며,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공통점이 있긴 하나 상당히 다른 감정이고, 그 증거로 수줍음에는 방어 자세가 수반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p79에는 다시 맹자의 말이 나오는데 그 유명한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입니다. 저희가 고교생일 때에는 (ㄷ, ㅈ 앞에 오는 不은 "부"라 읽고, 그 외에도 부실기업 등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불"의 독음을 저리 배웠는데 책에서는 부불작어인이라고 여튼 나옵니다. 고교생일 때 저 말을 배운 이유가 물론 한문 시간을 통해서이기도 했지만, 이 책에도 나오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연관이 바로 지어지는 명구라는 점을 국어 시간에 배웠기 때문이었죠(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 저 뒤 p304 이하 참조). 이어서 책에는 부끄럽다는 愧(괴)라는 글자가 기원이 매우 오랜 <시경>에 이미 등장하며, 그 외에도 <강희자전>의 용례를 파고듭니다. 부끄러움의 먼 연원이 이토록 깊은 것임을 비로소 알았으며, 인문서를 읽는 보람이 바로 이런 데에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에서 나오듯 일본어 "가오" 역시 부끄러움과 연관되며 "顔"을 읽는 일본식 독음에서 연유했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는 우리말 속어 "쪽팔리다"에 대한 분석도 있습니다. 얼굴이 팔려나간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확실히 부끄러움의 원초적 표현인 건 분명해 보이네요.
"쑥스럽다"는 이 책 p88에 "숙맥불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숙스럽다, 즉 숙(=쑥)과 비슷하다, 이 정도로 어원이 설명되는 셈이겠네요. 바로 뒤에는 "면구스럽다"의 어원이 나오는데 이것도 요즘은 매우 드물게 쓰일 뿐이죠. 제가 어떤 분께 이 말을, 제 나름 예의를 갖추느라 썼는데 그분은 "나이가 몇인데..."라며 의아해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ㅎㅎ 이렇게 역효과가 난다면 제가 말을 잘못 쓴 셈이라 당시의 저의 실수가 참 면구스럽네요. 여튼 이 책에서는 좀처럼 학자들이 시도하지 않는 "면구스럽다"의 어원까지 설명해 주는데, 그 기원을 "면괴"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선비를 대접하지 않으면 사회적 기강이 확립되지 않아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뜻이 <조선왕조실록(중 태종실록)>에도 나오는데 이것을 예의염치, 즉 사유(四維)라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본디 염치는 "청렴함과 부끄러움을 모두 일컬었던 말"이라 다시 자세히 설명합니다(p83). 그러니 이 단어에는 그저 원초적인 부끄러움이 아니라, 물욕을 절제하고 그를 통해 행동거지를 바로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선비의 복합적인 행동 규범(과 그를 뒷받침하는 심성) 규정이 다 담겼다고 하겠습니다.
2부부터는 "수치의 아래쪽 감정, 즉 부정적 측면"을 고찰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토픽이 아담과 그 처의 이야기입니다. 본디 부끄러움 같은 걸 모르고 낙원에서 교합을 이루며 잘 살았으나 악마의 꾐에 빠져 갑자기 수치를 알게 되었으며, 신의 명령에 불복종함을 이유로 낙원에서 축출당했다... 이는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완전함을 갈망하여 뱀의 유혹에 따라 선악과를 먹었으나, 돌아온 결과는 여전히 불완전한 자신들에 대한 각성. 또 그로 인한 부끄러움"이라고 합니다. "수치의 감정은 완전함에서 타락한 감정이지만, 타락의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신호를 가리키기도 한다(p125)." 즉 수치심을 못 느끼는 사람은 계속 그런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이런 우화, 신화로 표현했다고 봐야죠. 혹은, 그런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수치심도 알고 다른 것도 알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인간의 실존(p128)입니다.
기독교의 신약성서에서 바울도 로마서 등에서 "의인"을 강조(p129)하는데 특히 프로테스탄트에서 이신칭의 등을 중요 교리로 삼는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겠습니다. 또 문학 작품 <실락원> 등에서 그 작가 밀턴은 "아담에게 수치가 없었던 게 아니라, 정욕을 인내하고 통제했기 때문에 수치가 발현되지 않았다(p137)"고 저자는 해석합니다.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이런 관능적 쾌락을 탐하는 성관계를 나눠 본 적이 없었고...(p143)" 확실히 생식과 개체 복제가 아니라 순전히 쾌락을 위해 성교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수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내면의 소란도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p147).
프로이트가 말한 리비도는 본디 "자신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합니다(p167). "리비도의 본능 충동이 개인의 문화적 이상(이에 대한 논의는 이 책 1부에 자세히 나왔습니다)와 충돌할 때 그 리비도적 충동이 병을 유발시키는 성질을 가진 병발성 억압으로 바뀐다(프로이트 <나르시시즘 서론>을 이 책 p169에서 재인용)"는 구절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승화가 리비도의 질적인 변형이라고 한다면, 이상화는 리비도를 제어하고 조절하는 것(p172)"이라며 승화와 이상화를 구별하며 특히 후자는 간접적 성격이라 합니다.
"건전한 나르시시즘은 인간에게 품위와 지위를 요구한다(p210)." 책에서는 가상의 인물 혜수 씨를 설정하여, 잘나가는 직장에 다니며 화려한 의상을 걸쳤지만 남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핏이 잘 사는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며,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놓친 채 돈과 성공만 좇은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지기도 한다며 그녀의 이런 감정의 정체를 분석합니다. "자존감을 붇돋는 것은 타이밍과 강도만 맞으면 수치를 이기는 좋은 처방"이라고 합니다(p213). 이는, 말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으나 책을 읽어 보면 혜수 씨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특히 여성)에게 실용적인 충고가 될 듯하네요.
"과도한 수치심은 자기 파괴적 성격을 넘어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공격적 태도와 철면피로 확장된다(p216)." 이는 에릭 에릭슨의 8단계 이론과 관련하여 책에서 인용됩니다. 회피, 부정, 통제는 이런 수치심에 기반한 방어 기제들인데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하는지와 연결시키면 재미있는 분석, 혹은 자기 성찰이 가능할 것 같아요.
반면 브래드쇼 같은 이는 수치심이 악성 나르시시즘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는 경계선 성격 장애, 열등감, 완벽주의 등을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는군요(p220). 그에게는 이것("수치심이란 곧 악마")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p221)고까지 저자는 단언합니다. "수치스러운 자신을 혐오해 진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한다(p223)"라고도 하는데, 이런 예도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에게 부여된 특별한 명분이나 정의를 자신이 대변하는 양 큰 착각에 빠져 폭주하죠. 옳고 그르고를 참 쉽고 간단하게도 척척 가르고 다니는데 가관도 아닙니다. 저 뒤 p330 이하에 브래드쇼의 개념이 다시 자세히 분석됩니다.
4부에서 "수치의 위쪽 얼굴"이 자세히 분석됩니다. 여기서는 다시 맹자의 유명한 언설들이 인용되며, 본래 동물성에 대한 혐오(즉 아래쪽 얼굴)에서 기인한 게, 이것이 변형되면서 인간성, 인간다움에 대한 강력한 옹호로 기능한다고도 합니다(p239). "호연지기는 집의(集義)의 기운이며, 마음에 흐뭇해야 위축되지 않는다." 여기서 "흐뭇하다"의 원 글자가 "겸(謙)"인데, 이 설명은 책 저 앞 p86에 자세히 이미 나왔더랬습니다. 이처럼 책이 동서양의 다양한 출전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지식의 바다를 누비는 것도 좋지만, 책의 모든 파트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고 깊이를 더하는 체제도 좋았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의 감정을 모르는 부류를 저자는 "미꾸라지"라 부르는데, 저자는 다시 세 종류로 나눕니다.
1) 의심스러운 개혁, 혁명론자
하긴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그 부족한 머리로 어설프게 이해한 걸 절대진리나 되는 양 폭주하는 인간이, 그 어러석음을 지적한 사람더러 사이코패스니 뭐니 떠드는 코미디가 다 있으니, 이런 상시적 정신착란에 빠진 인간에게는 미꾸라지라는 규정도 과합니다. 이런 부적응자들은 몸에 맞지 않는 외투의 어색함, 다듬어지지 않은 과격함을 "선비다움"으로 단단히 착각하는데, 지식의 구비가 물론 선비 처신의 본체는 아니겠으나 기초 인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자가 무슨 선비를 참칭하겠습니까.
<논어> 양화편에는 "향원"이라는 무리가 단죄되는데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서에서 바리새인, 율법학자를 호되게 나무란 것이나 비슷합니다. 공자는 이런 위선자들과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을 권했고, 이것이 바로 수오의 양가성을 일찍부터 규정한 유가의 가르침 그 심오한 경지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입니다.
p288에는 그 유명한 "신기독야"가 나오는데 여기서 신(愼)은 물론 삼갈 신입니다. 저자는 재미있게도 "신(神)이 항상 있는데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외면의 신이 문제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내면의 신이 문제라는 건데, 마치 후한의 양진이 말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당신이 안다는 사지(四知)의 고사와도 통합니다.
책에서는 조리돌림, 신상털기(이른바 "독싱")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히 분석합니다. 결국 이런 행동은 대상 하나를 잡아 톡톡히 망신을 주기 위한 방법인데, 저자는 "사이코패스 되기를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체체의 모순에서 이런 행태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사회는 수치를 아는 인간들이 일궈 나가야 발전이라는 게 가능합니다. 수치가 아래로만 향하면 부정적 효과에 그치지만, 다행히도 이 수치는 위로 향한 얼굴도 동시에 가집니다. 신의 의도된 계획인지, 진화의 산물로 우리 인간이 영리하게 발전시킨 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이 수치 덕분에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든지 살 만한 곳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광신도들이나 짐승들이 폭주하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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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사람을 완성시키는 최소한의 마음 부끄러움과 수치에 대한 개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헛갈린다. 사전에서는 같은 뜻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뒷 표지에서 적시해 둔 것처럼 의미가 약간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낯붉힘의 감정에서 부정적인 스펙트럼인 경우 '수치'로,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 맥락에서는 '부끄러움'으로 분명히 나눈다. 수치의 양면성은 아래 위로 향하고 있다. 인간 안에서 동물을 느끼는 치욕적인 면인 아래쪽 얼굴과 동물과 자연에 친화적인 면인 위쪽 얼굴이다. 이는 인간 존재의 성장을 위해 펼요한 감정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건강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사회적 감정이다. 부끄러움과 수치에 대한 개념, 과학, 언어적, 신화, 불교사상, 철학의 고랑을 넘나드는 분석들이 흥미진진하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감정과 문화에 대한 고찰과 아래쪽 얼굴인 기독교의 에덴 신화에서 유래된 타락 감정의 의미를 알아보고, 신학, 문학과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살펴본다. 그리고 수치의 병리에 대해 알아보고, 윗쪽 얼굴인 동양의 유교사상에서의 수치 위치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문화유전자로 계승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대안의 길을 모색한다. 쉽게 느끼고 많이 접할 수 있는 수치와 가까운 감정인 혐오에 대해서 싫어함, 역겨움, 추악함과 연결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진화론적 의미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언급하는 심리와 연계시키는 저자의 폭넓은 분야에서의 접근과 해석 시도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감정과 심리는 파고 들기 쉬운 주제가 아니다. 얽히고 설킨 심리 내면을 이 책은 과학적으로 미시적 분석부터 점증적으로 거시적인 접근과 함께 언어는 물론, 문학, 철학적인 의미로 폭넓게 찾아간다. 이런 많은 분야에서 융합적 시도는 우리에게 멋진 기회가 되었지만 기존의 세분, 전문화된 세계에서는 애로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수치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감정과 심리에 대한 포괄적인 탐구가 필요하면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톱픽으로 꼽은 글이다. 현대사회에 대해 수치 감정의 적용을 빼놓지 않고 있다.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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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가 천인공노할 사건을 접하게 되면 흔히들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에서는 짐승과 인간의 차이를 ‘수치심’에 두었다.
수치심(羞恥心)이란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끼는 마음을 말한다.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수치에는 두 얼굴이 있는데 이것이 이 글의 모티프가 된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단순히 앞면과 뒷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치의 두 얼굴은 왼쪽과 오른쪽의 수평으로 놓이지 않고 위아래의 수직으로 향해 있다. 좌우처럼 단순한 위치가 아니라 상승과 하강, 숭고함과 비천함 등의 가치 평가가 담겨 있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고, 우리를 상승시키는 감정이면서 추락시키는 감정이며, 높이 고양시키는 감정이면서 깔보고 욕보이는 감정처럼 상반된 것들이 하나로 묶여 있기에 수치는 특별한 감정이다.
저자는 수치를 모르는 파렴치한들이 많아질수록 수치의 위쪽 얼굴이 드러난다고 했다. 파렴치한의 내면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에서 부끄러움이 나타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양심’이 있고, 그 때문에 고귀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고귀한 사람들이 사라지는 시대가 온다면 세상은 무도(無道) 하게 된다. 그러면 아무도 수치를 느끼지 않고,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무도(無道) 한 세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귀해졌으면 좋겠다. 고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수치라는 감정을 더 잘 이해해야만 한다. 수치는 우리 자신과 사회 전체를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두 얼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각 얼굴을 명확하고 섬세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1부인 ‘수치, 감정과 문화’에서는 과학과 언어학의 도움을 빌고 있다. 특히 수치라는 감정을 지금 시대의 대표적인 언어인 과학의 언어로 탐색하고 있어서 수치를 더 다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수치의 두 얼굴은 결국 한 머리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둘의 공통된 부분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진화론과 신경생리학이 말하는 수치는 인간이 적응을 통해 진화하면서 신체 즉 뇌 속에 장착된 ‘이차 감정’이며, ‘공감 감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수치가 장착되면서 인간에게 사회적 존재라는 성격이 더욱 짙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과 사회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듯이 수치와 사회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책은 수치의 두 얼굴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괴물이 아닌 수치를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