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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수많은 고전들이 소개되고 있고, 이러한 고전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찾는 과정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왜 하필 많은 분야들 중에서 고전(古典)이 언급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라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전은 삶의 물음에 관한 보편적인 탐구와 그 검증된 결과물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 검증과 어느 사회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유효성이 이미 확보된 것이므로 저자 역시 15권의 동서양 고전을 통하여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거기에서 답을 찾음으로써 삶의 의미와 가치를 떠올릴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동서양 전통의 관계 중심의 사고가 21세기 초반에 등장한 서구 근대사상의 영향을 받은 개인화로 인하여 빛을 읽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저자의 의도가 오롯이 담겨있는 이 책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전통적 가치는 급속도로 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현재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이 대부분 서구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동양의 철학이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불편한 상황에 대하여 저자는 뜻밖에도 오히려 그것을 해결 또는 개선을 하기 위하여 유리한 입장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전을 통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고전은 물론이고, 급속도로 서구화되는 현재의 상황은 바꾸어 말하면 서양의 철학과 고전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기에 서구에 비하여 우리는 오히려 동서양의 고전을 활용하기에 좀더 유리한 상황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15가지의 고전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차용되고 있기에 더욱 균형있는 삶의 의미와 지혜를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저자는 [1.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3.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맺기]라는 3가지의 관점을 통하여 그에 걸맞는 동서양 고전의 내용들을 이끌어내어 설명하고 있다. 이들 세가지 부분에 '관계 맺기'라는 용어가 공통적으로 포함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저자가 집필을 하는 나름의 기준이며 동시에 독자가 이 책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책을 읽으면서 미리 생각해본다면 일방적인 읽기가 아닌 창조적인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인화'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관계 맺기'의 강조와 연결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 근대사상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 개인화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를 인식하고 지켜가는 과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각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볼 뿐만 아니라 고립되고 분리된 존재로 보는 이기성과 고립성의 부각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인화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에 대한 올바른 '관계 맺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에서는 '금강경', '수심결(修心訣)', '격몽요결', '논어'라는 고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가치관 정립과 관련된 내용들이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금강경'의 내용 중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는 사람을 의미하는 '수다원(須陀洹)'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최고의 목표로 생각하는 바와 통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바로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러한 '수다원(須陀洹)'은 수행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기에 현실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여전히 갈길이 먼 곳임을 보여준다. 이는 그 목표 자체가 높은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세워 달성하고자 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통하는 것이고, 오늘날 무조건 최고를 지향하는 상황에 대한 또 다른 관점으로 다가오게 된다. 더욱이 세상이나 자신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지식은 모두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고 말한 니체의 관점주의는 불교의 화쟁 사상, 즉, 각자의 주장이 지니는 일리(一理)를 인정하는 쟁(諍)을 통한 화(和)의 논리와 통하고 있기에 오늘날 자신의 관점 또는 지식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세태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개인의 가치 정립과 수행이 과연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바로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의 필요성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사회구조와 문화가 지니는 도덕적 문제가 그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도덕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개인의 저변에 깔려 있기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저자는 지눌의 '깨침'과 '닦음'을 언급한다. 깨침을 통하여 스승과의 관계 맺기를, 닦음을 통하여 도반(道伴 : 함께 도를 닦는 벗)과의 관계 맺기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음을 말하면서 사회가 그러한 관계맺음을 넘어서는 곳이 아니며 또한 이러한 실천이 모여서 문화의 흐름과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빛을 발하기 위하여 '격몽요결'과 같은 고전을 통하여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일상생활 속에서 행동할 때 바람직한 도리를 생각하면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학문이며, 오늘날 많은 곳에서 등장하는 통섭은 학문의 역할에 대한 요청이자 학문과 공부의 필요성에 대한 새삼스런 관심의 결과이기에 학문은 앞서 언급한 자신과의 관계 맺기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사유가 인간이 동물적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의미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는 순간 등장한 철학의 모습만 보아도 사유와 지식이 어떻게 학문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꾸란'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는 [2.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는 개인과 사회라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더욱 현실적인 부분을 떠올리면서 읽기에 충분한 대목이라 보여진다. 오늘날 종교 갈등은 물론 '핵 위기'와 '촛불 혁명'과 같이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회적인 이슈가 고전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었기 대문이다. 사실 '꾸란'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우리나라에서도 낯선 타자로 상징되곤 한다. 불교는 물론 천주교, 기독교와 같은 종교들이 이미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지만, 이슬람교는 외부의 종교로 거리감이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특정 종교에 대한 무지 내지는 배척은 '관용'이 점점 상실되어가는 오늘날의 상황을 빗대어 설명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꾸란'의 해석을 통하여 그 뿌리가 기독교와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고, '관용'의 대명사로 대표되는 불교는 그러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관점의 제시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교 역시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것이기에 이들 종교인에 대한 저자의 쓴소리 역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관용을 앞장서서 베풀어야 하는 그들이 점점 현실적인 이익에 발을 담그는 모습은 종교의 전통에 가려진 극복해야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종교에 이어지는 윤리에 대한 내용 역시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이 홀로 존재한다면 윤리란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윤리에 대하여 저자는 서양의 고전과 철학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윤리에 대한 개인의 인식 및 흔들리는 윤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심해야 할 부분이고, 현재 우리의 사회가 서구 근대사상 및 자본주의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와 관련된 부분을 서양의 고전과 철학을 통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에 대한 관점과 윤리를 시작으로 하여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까지 서양 철학의 흐름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들이 등장한다.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본성을 온전히 실현한 완전함이 다이모니아(daimonia)이며, 바로 그런 완전함에 대한 열망의 추구 자체가 행복이라는 정의와 인간관계는 정의를 바탕으로 삼는 우정의 관계여야 한다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이번 장의 주제에 대한 접근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이후로 서양에서도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계에 대한 수많은 의견과 고전이 등장하였고, 칸트는 아예 강렬한 본능적 욕구와 희박한 선의지가 인간이 본성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경험적 근거들에 의거하고 있는 실천 규칙을 보편적 윤리 법칙이라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절대적 기준으로서의 보편적 윤리를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보편적 윤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자 역시 분명 어려움이 뒤따르지만, 우리가 그때마다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그것들이 서로 갈등을 야기하여 오날늘 사회적 문제점으로 등장하고 있기에 칸트의 보편적 윤리는 분명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저자 역시 구체적인 행동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것이 삶의 신조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윤리적인 기준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음은 칸트가 경멸한 경험적 근거의 한계를 다시금 보여주는 것이기에 보편적 윤리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정의(正義)에 대한 내용은 현재 고위층에게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도덕적인 문제점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피부에 직접 와닿게 된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갖게 된 습관을 아비투스라고 하는데, 서로 다른 아비투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폭압은 소위 일류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도덕적 몰락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시민사회의 정의라 할 수 있는 시민윤리의 핵심은 평등한 시민의식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정의(正義)에 한 발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핵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과 촛불 혁명을 통하여 대통령을 탄핵한 것과 관련하여 각각 밀의 공리주의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언급한 부분도 현실과 맞물려 있기에 공감할만한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목민심서(牧民心書)'가 그동안 관리들이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한 책으로 알려져 있는 것에 더하여 당시 지배와 순종이 덕목이었던 신민(臣民)의식을 시민의식으로 변경하여 받아들일 때, 오늘날의 진정한 목민(牧民)이 될 수 있음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3.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맺기]는 그동안 개인 또는 개인과 사회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이외의 대상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고전과 철학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 즉, '동물해방'과 같이 동물과의 관계에 대하여 심도있는 논의가 된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동물은 물론 신, 진리처럼 개인에 초점을 맞추던 영역을 더욱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약성서', '도덕경', '노자'와 같은 고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부분들에 대한 이해는 바로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선행되어야 가능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고전 역시 바로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개인의 존재 영역 이외이 것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15권의 인류 고전을 통하여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 타인, 인간 이외의 영역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전의 내용에 더하여 다양한 철학적인 사유가 더해져서 책의 제목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하여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유용해 보인다. 나아가서는 스스로 이 책에 언급된 고전 이외의 다른 고전을 통하여 생각해볼 수 있기에 확장의 가능성 역시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저자 역시 오늘날 종교와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개인적인 주관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이 책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자기 자신은 물론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냉철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고전을 통한 이러한 접근이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 책의 저자가 보여준 확고한 신념과 생각은 분명 우리가 뜻깊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소소한 오,탈자] p. 142. 주어여 -> 주어져 p. 175. 수준을 -> 수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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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랑에서 2018년에 펴낸 책 절망의 시대에 초월의 의미를 다시 묻다 - 다종교 문화 속에서 신약성서 읽기 173쪽 ~ 182쪽 절망이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라 라는 자본주의의 명령이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 긴 노년을 견뎌야 하는 노년층의 절망을 부추기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173쪽 서로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79쪽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윤리적 전환점을 믿음과 소망을 토대로 마련하면서, 자신의 삶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부정의에 함몰되지 않는 사랑의 실천을 이어가는 예수정신을 구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182쪽 삶의 목표 상실 또는 갖지못한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 에 대해 생각하다가 독서천재 홍팀장과 박병기 저자의 책을 펼치게 되었다. 3년 또는 10년의 시간을 투자하면 삶이 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새로운 삶, 생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익숙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래도 남은 삶이 길어 새로운 행동, 생활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현명하고 지독하게 행동했으면 싶다. 그런 실행을 하는 부자의우주가 되도록 응원하고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 2023년 주요 목표가 되겠습니다. 와이프가 힘내라고 채찍질을 했습니다. 그녀의 말씀은 꼭 제대로 이행하고 싶습니다. 너무 고생만 시켰는데 인생2막 뭐 이래? ㅎㅎㅎ 일단 제대로 마주서기부터, 마주 바라보기부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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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박병기 인간사랑/2018.2.20. sanbaram 요즘 우리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외적 풍요와 내적 빈곤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런 시대 상황은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기존의 유교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 확립이 안 된 상태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고등학생을 위한 고전 안내서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하고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이며,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과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고등학교 ‘고전과 윤리’ 과목에서 소개하고 있는 15권의 동서양 고전을 윤리와 어떻게 연계하여 지도하고 공부해야 하는가를 안내하고 있다. 종교와 철학, 윤리의 영역을 중심으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고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일정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 <불교포커스>에 ‘법연한담’으로 최근 2년여 동안 연재된 것을 모아 엮은 것으로,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윤리를 관계 맺기로 설명하고 있다. 나를 시작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 나아가 우리 주변의 동식물까지 함께 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윤리 질서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불교와 유교의 전통과 과학기술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적 사고가 겹치며 움직이고 있다. “한국불교 전통 속에는 특히 <금강경>과 <수심결>이 있고, 유교 전통 속에는 <논어>와 <격몽요결>이 있다. 이들은 각각 동아시아와 한국의 전통이 겹치는 지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와의 관계 맺기에는 정의와 우정을 강조한 <국가>와 <니코마스 윤리학>, <정의론>, <공리주의> 같은 서양 고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테러가 난무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경전인 <성경>과 <꾸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경쟁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노자>와 <장자>의 저자들을 불러내는 선물을 줄 수도 있다. (p.26)” 이처럼 전통은 보편적인 진리의 흐름인 道에 관한 믿음을 중심으로 관계성을 추구하는 지점에 숨은 흔적을 남기고 있고, 서구적 사고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사회구조적 차원을 만들어내는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바쁜 일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혹시 이익이나 자리만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되돌아보는 일이 윤리철학의 시작이다.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로 바꿔버리는 자본주의적 일상은 빈부격차의 고착화와 세습화 등으로 이러지면서, 이 땅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절망을 심어주고 있는 중이다.(p.182)” 아무리 고전이고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내 삶과 연결 지을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학에서 말하는 권위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일 수 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물음이 문득 스며드는 순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할 때, 우리는 철학적 사고 과정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철학은 동서양의 철학사에 축적된 철학적 지식과 무관하게 시작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동물적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의미에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철학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맹자의 정의에 기반한 왕도정치에 대응하는 패도정치가 그렇고,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강자의 이익’이라고 답하는 트라시마코스의 생각이 그렇다. 지금 우리들은 그것을 자신들도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라고 억지 부리는 전두환, 이순자 부부의 후안무치함과 그에 동조하는 일정한 세력을 통해 충분한 정도 이상으로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의 질긴 명줄은 아직 어린 국정농단 주범의 딸이 ‘부모의 돈과 권력도 정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게 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p.126)”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법을 본래 목적에 맞게 간단하게 정비하면서 불필요하거나 충돌하는 법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그런 후에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제도와 문화가 사회 구석구석 자리 잡아야 한다. 모든 방향은 당연히 정의와 평화의 원칙에 맞춰져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확실히 해내야 하는 과제는 윤리를 중심에 두고 살고자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윤리문화의 시급한 정착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고전은 이해를 전제로 하는 분석과 해석의 대상인 텍스트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고전의 저자 또는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한계를 충분히 고찰하면서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p.208)”고 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의 인권은 인정하지 않았고, 조선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다산 정약용도 신분 사이의 구분과 차별은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들이 그들 자신의 한계라기보다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한계로 인정하면서 고전을 현재적 재해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고전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여 우리의 삶과 연결 지어 삶에 활용하려 노력하는 독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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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박병기 인간사랑/2018.2.20.
요즘 우리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외적 풍요와 내적 빈곤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런 시대 상황은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기존의 유교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 확립이 안 된 상태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고등학생을 위한 고전 안내서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하고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이며,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과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고등학교 ‘고전과 윤리’ 과목에서 소개하고 있는 15권의 동서양 고전을 윤리와 어떻게 연계하여 지도하고 공부해야 하는가를 안내하고 있다. 종교와 철학, 윤리의 영역을 중심으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고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일정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 <불교포커스>에 ‘법연한담’으로 최근 2년여 동안 연재된 것을 모아 엮은 것으로,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윤리를 관계 맺기로 설명하고 있다. 나를 시작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 나아가 우리 주변의 동식물까지 함께 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윤리 질서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불교와 유교의 전통과 과학기술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적 사고가 겹치며 움직이고 있다. “한국불교 전통 속에는 특히 <금강경>과 <수심결>이 있고, 유교 전통 속에는 <논어>와 <격몽요결>이 있다. 이들은 각각 동아시아와 한국의 전통이 겹치는 지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와의 관계 맺기에는 정의와 우정을 강조한 <국가>와 <니코마스 윤리학>, <정의론>, <공리주의> 같은 서양 고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테러가 난무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경전인 <성경>과 <꾸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경쟁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노자>와 <장자>의 저자들을 불러내는 선물을 줄 수도 있다. (p.26)” 이처럼 전통은 보편적인 진리의 흐름인 道에 관한 믿음을 중심으로 관계성을 추구하는 지점에 숨은 흔적을 남기고 있고, 서구적 사고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사회구조적 차원을 만들어내는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바쁜 일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혹시 이익이나 자리만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되돌아보는 일이 윤리철학의 시작이다.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로 바꿔버리는 자본주의적 일상은 빈부격차의 고착화와 세습화 등으로 이러지면서, 이 땅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절망을 심어주고 있는 중이다.(p.182)” 아무리 고전이고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내 삶과 연결 지을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학에서 말하는 권위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일 수 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물음이 문득 스며드는 순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할 때, 우리는 철학적 사고 과정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철학은 동서양의 철학사에 축적된 철학적 지식과 무관하게 시작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동물적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의미에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철학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맹자의 정의에 기반한 왕도정치에 대응하는 패도정치가 그렇고,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강자의 이익’이라고 답하는 트라시마코스의 생각이 그렇다. 지금 우리들은 그것을 자신들도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라고 억지 부리는 전두환, 이순자 부부의 후안무치함과 그에 동조하는 일정한 세력을 통해 충분한 정도 이상으로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의 질긴 명줄은 아직 어린 국정농단 주범의 딸이 ‘부모의 돈과 권력도 정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게 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p.126)”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법을 본래 목적에 맞게 간단하게 정비하면서 불필요하거나 충돌하는 법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그런 후에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제도와 문화가 사회 구석구석 자리 잡아야 한다. 모든 방향은 당연히 정의와 평화의 원칙에 맞춰져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확실히 해내야 하는 과제는 윤리를 중심에 두고 살고자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윤리문화의 시급한 정착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고전은 이해를 전제로 하는 분석과 해석의 대상인 텍스트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고전의 저자 또는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한계를 충분히 고찰하면서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p.208)”고 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의 인권은 인정하지 않았고, 조선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다산 정약용도 신분 사이의 구분과 차별은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들이 그들 자신의 한계라기보다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한계로 인정하면서 고전을 현재적 재해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고전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여 우리의 삶과 연결 지어 삶에 활용하려 노력하는 독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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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내 삶이라는 것이 수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사실은 좀 더 복잡해졌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이 선택으로 인해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따라오지 않을 수가 없다. 중2딸을 둔 친구가 하소연을 해왔다. 아이가 그냥 학교만 오가고, 밥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같은 단순한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하고 싶어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이 살고 있는것같아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시대 삶의 양상 중에서 더 심각한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은 삶의 의미 물음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이다.-p 12
아이든 어른이든 삶의 의미에 대해서, 삶을 살아가는 기준에 대해서든 적절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저자는 고전이 그러한 삶의 의미 물음에 관한 보편적인 탐구와 검증된 결과물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했고, 고전과 만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고전과 만나는 일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고, 다음으로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철학적 물음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들 수 있다고 한다. 그 물음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상황과 맞는 고전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기를 권했다. 뭐랄까? 고전을 왜 읽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난 명쾌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읽어나가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현재적 재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옛날의 고루한 이야기로밖에 읽혀지지 않을 것이고, 그닥 시간을 할애할 이유를 찾지 못할테니 반드시 그러한 관점을 가져야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2018년도부터 고등학교 진로선택 과목으로 '고전과 윤리'라는 과목이 포함되었다는데, 이 책은 그 과목에서 소개하고 있는 15권의 동서양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 관점으로 고전을 읽어낼 수 있겠지만 저자는 관계 맺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제에 맞는 고전을 선정하고, 고전이 전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보살의 길을 가려면 어떤 수행을 하면서 살고, 또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지를 묻는 수보리의 간절한 물음에 응답한 과정을 담고 있는 부처의 대화편인 [금강경]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이라는 수다원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바라보고자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얻는 것만으로도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눌은 [수심결]에서 자신의 마음을 찾는 일은 깨침과 지속적인 닦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문득 깨우침과 지속적인 닦음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깨침이 늦게 오는 것을 걱정하면, 혹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 생각을 알아차리면 곧 사라진다'고 하였다. (수심결) -p 47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자리를 높이는 것에만 연연하지 않는 삶,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율곡의 격몽요결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물음에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을 때,우린 [논어]에서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꾸란]을 통해서 낯섦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일러주고자 했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잘 살아가는데는 우정과 정의가 꼭 필요함을 강조했다. 현대사회에서 관계 맺기의 중요성과 인간다운 삶을 좌우하는 핵심 역할로서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 플라톤의 [국가], 롤즈의 [정의론], 밀의 [공리주의], 다산의 [목민심서] 를 다루고 있었다.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
원전의 딜레마와 탈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어지러운 일상을 잘 살아내는 대안으로 인간세상의 질서를 억지로 세우려하지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삶을 이상적인 대안으로 강조하고 있는 [도덕경]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현재의 심각한 문제점을 고전으로 접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커다란 즐거움을 느꼈다.
" 모장과 서희를 두고 사람들은 천하의 미인이라고 부르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물고기가 그들을 보면 깊은 물속으로 숨어버리고, 새는 높이 날아가 버리며 사슴과 고라니는 놀라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달아나 버린다. 이들 중에서 누가 천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장자,제물론] -p 194
[장자]의 사람과 짐승의 미의 기준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지를 물었다고 했는데, 저자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또한 동학혁명, 광주민주화 운동, 촛불혁명을 언급하면서 신념의 중요성과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축학살 시대에 싱어의 [동물해방]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지닌 다는 것에 대해서 , 다종교 문화 속에서 [신약성서]를 통해서는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의 정서 중에 '정'이라는 것이 있지만, 요즘은 그런 부분들이 많이 퇴색되어있지 않나싶다. 타인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보다는 혼자서 지내는 삶이 자연스러워지고 있고, 개인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지와 더불어 타인과의 관계, 다른 공동체,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등 여러 각도에서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접근하고 있었다. 평소 나도 느끼고 있던 문제들이라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엄선한 고전을 통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해답도 구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책장을 덮고나니 더욱 더 강해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현재에도 살아 숨쉬고 있고, 언제든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낼 수 있는 보물이이라는 것. 그냥 돌로 묵혀둘 것인지, 보물로 그 가치를 발하게 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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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으로, 글의 초고는 저자가 인터넷 신문 《불교포커스》에 ‘법연한담(法淵閑談)이라는 꼭지로 최근 2년여 동안 연재한 것들이다. 좋은 글이 많아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천천히 읽었다. 다른 책에 비해서 머리말과 서론의 내용이 긴 것이 눈에 띈다. 고전읽기의 필요성을 전하는 저자의 마음이 그만큼 큰 것이리라.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사고의 폭과 깊이에 변화를 주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에 미소를 짓게 된다. 제대로 알기 위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며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소개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뗄 수 없는 의존성 또는 연기성(緣起性)을 이야기하며 『동물해방』을 소개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해본다.
이웃나라 일본의 원자력 핵 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선 노출과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 미국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전통적인 강대국의 부도덕한 리더십 등이 국내 정치의 무력함과 겹친다. 우리들의 삶 또한 지속적인 위험과 불안감으로 휩싸이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각자가 중심을 잡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종교나 철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삶의 의미 물음은 인간을 다른 존재자들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고전은 삶의 의미 물음에 관한 보편적인 탐구와 그 검증된 결과물을 담고 있는 책이다. 시간적 검증과 어느 사회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유효성을 확보한 것이 고전이다.
2018년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2015 도덕과 교육과정’에는 고등학교 진로선택 과목으로 ‘고전과 윤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고등학교 ‘고전과 윤리’ 과목에서 소개하고 있는 15권의 동서양 고전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제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수보리 장로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것인가
아닙니다. 부처님! 수다원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수다원이라는 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참된 수다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금강경』 「일상무상분」
수다원에서 출발하는 수행과 깨달음의 경지는 다시 사다함(한 번만 더 이 세상으로 돌아오면 성불할 사람), 아나함(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로 성불할 사람), 아라한(깨달음을 얻어 이 세상에서 참으로 평화롭게 사는 사람) 등의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우리는 이 경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네 단계의 수행과정과 이상적인 수행자의 모습을 다르게 읽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네 단계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 내 마음 속에서 어느 순간 문득 이루어질 수 있는 단박깨침, 즉 돈오(頓悟)의 가능성을 엿봄으로써 구체화된다. 이 텍스트 속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어떤 목표를 세워 달성하고자 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는 않는 상(相)의 미학을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보살의 길을 가려면 어떤 수행을 하면서 살고 또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묻는 수보리의 간절한 물음에 응답한 과정을 담고 있는 부처의 대화편이 곧 『금강경』이다.
모든 소유와 관련된 상(相)은 허망하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상들이 실상은 고정된 것들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다. - 『금강경』 「여리견실분」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창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그 장점과 한계를 바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수행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반복해가면서 우리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보다 나은 깨달음의 경지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세상의 흐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냐이다.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바라보고자 노력하면서 그 노력을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친절한 미소와 실천으로 연결시켜갈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제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이슬람은 우리에게 낯섦의 대상이고, 그 낯섦의 배후에는 두려움과 적대감이 숨겨져 있다. 이슬람 경전 ‘꾸란(영어식 발음은 ‘코란’)’은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의 말씀을 기록한 ‘성스러운 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은 그가 지향하는 목적이 있으니, 선을 행하는 것을 갖고 서로 경쟁하라. - 『한글 꾸란』 2장. ‘바까라’ 148절
부모를 위해서, 친척과 고아, 구걸하는 자와 여행자를 위해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그 모든 자선의 행위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 2장 215절
선행이거나 정의의 일이거나, 사람 사이에 화해시키는 일이 아닌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변명하지 말라. - 2장 224절
한 사람의 윤리체계를 기본적으로 개인의 행복과 사회정의, 세계평화라는 세 가지 화두가 일관성 있게 통합되어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슬람 윤리는 그 기본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실제로 우리 삶은 주로 익숙함을 기반으로 전개되지만, 어느 순간 두려움을 떨치고 낯섦과 마주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질적 비약의 가능성이 열리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낯선 것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두려움을 딛고 희미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삼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우리 삶의 질적 도약을 위한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낯섦을 환대하면 상대방 또한 나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해 올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이슬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하고 싶다.
천하에 가장 천해서 의지할 데가 없는 것도 백성이요, 천하에 가장 높아서 산과 같은 것도 백성이다. 요순시대 이래로 성현들이 모두 강조한 것이 백성을 보호하는 일이어서, 모든 책에 실려 있고 사람들 또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수령이 백성을 머리에 이고 싸우면 대부분 굴복할 것이다. …… 의주 출신인 안명학은 강진현감이 되어 백성을 머리에 이고 싸워서 감사를 굴복시키고, 그것 때문에 명성이 퍼져 벼슬이 높아졌다. 본래 백성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수령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 다산 정약용, 『정선 목민심서』
‘백성을 머리에 이고 싸운다’는 다산의 말은, 공무원이 시민들에게 부여받은 역할과 임무를 중심에 두고 정치인이나 자신보다 높은 관리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런 공무원이 감당해야 하는 불이익이 없게 하는 것은 시민인 우리들의 역할이고, 제도적으로 그런 장치들을 마련해 주면서 공무원 사회 내부의 부정의에 눈감지 않는 당당한 시민이자 공무원을 기대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선출하는 정치인들이 그런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일상적인 감시와 부당한 청탁이 용납되지 않는 시민문화를 정착해가는 일 또한 촛불 이후의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다. 그런 이상적인 정치는 바로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서두르지 않으면서 포기하지도 않는 지속적인 실천에 기반을 두고서만 구현될 수 있다.
<제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
(동물) 해방 운동은 도덕적 지평의 확장을 요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전까지는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관행들이 정당화될 수 없는 편견의 결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 누가 자신의 모든 태도와 관행이 정당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 우리는 우리의 태도로 인해, 그리고 그런 태도를 따르는 관행으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자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태도를 성찰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 피터 싱어, 『동물해방』
싱어는 현대 시민윤리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이익에 대한 동등한 고려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그 적용 대상을 동물에게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윤리적 대우를 받아야 하는 근거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가’에 두면서, 영국 공리주의 윤리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 것을 동물에까지 확장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대등한 관계를 맺는 동물과 자신이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동물을 엄격히 분리시키는 ‘동일시와 배제’, ‘차별’이라는 비윤리적인 태도에서 생긴다. 식용 개고기를 먹는 것은 그토록 야만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이 즐기는 만찬에 올라오는 스테이크와 거위를 학대해야 만들 수 있는 푸아그라는 전혀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일부 프랑스인들의 행동이 그런 전형적인 비윤리적 행태에 속한다. 윤리의 핵심은 적용의 일관성이고, 그런 점에서 그들은 입으로는 윤리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제 동물과의 관계 맺기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과 지속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 과정은 먼저 이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과 내 일상 속에서 한 가지씩이라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의 병행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는 한편으로 살아있음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뗄 수 없는 의존성 또는 연기성(緣起性)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과의 관계맺기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로, 더 나아가 주변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맺기로 확장되어가는 윤리적 인식과 실천만이 우리에게 남은 희망인지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는 오리의 다리가 짧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늘여주면 고통을 더해줄 뿐이다. 마찬가지로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주어도 아픔만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할 까닭이 없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仁義)가 사람들의 본래 특성일 수 있을까? 오히려 저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불필요한 괴로움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 『장자』 「변무」
자신의 유전자와 성장 배경, 교육 등을 통해 형성된 도덕에 대해서 어느 시점에서는 한 발 물러서서 성찰할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다. 진리를 향하는 우리의 항심(恒心)은 늘 간직하면서도 자신이 포착할 수 있는 진리가 지닐 수밖에 없는 절대적 한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유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고전(古典)은 이해를 전제로 하는 분석과 해석의 대상인 텍스트(text)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고전의 저자 또는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한계를 충분히 고찰하면서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깊이 들어온다. ‘자신만의 철학함 공간을 마련하고, 사유와 대화의 시간’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오래 전에 선물받은 후 2년 전에 읽었다. 그리고 팡차오후이의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우연히 접하고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을 한 권씩 만나고 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듯 하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면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에 ‘고전’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이 리뷰는 인간사랑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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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진다. 잘 살고 있는지를.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물음을 꺼내든다.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던 우리의 모습을 조금은 거리를 두게 만든다. 멀리 바라보게 되면서 보이는 삶의 의미, 인생관들을 통해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글자 속에 감추어진 의미와 더불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고전은 우리에게 준다. 우리 조상의 과거의 삶이 지혜가 되고 고전이 되어 우리에게 삶의 지혜로 녹아들었다. 너무 가깝게도 너무 멀지도 않은 위치에서 우리들 공간에 존재한다. 우리 자신과의 관계속으로, 다른이들의 마음 속으로,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그리스 사상과 그리스도교라는 두 사상적 배경에 뿌리를 둔 서구와는 달리 우리는 주로 불교와 유교라는 사상적 배경을 토대로 전통사회를 구성했고, 다시 19세기의 수동적인 개방과 20세기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서구적 근대성을 받아들였다.(p10) 이런 현실의 흐름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변하는 것도 있다. 그런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 질문에 싯다르타는 자신의 삶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기도 했다. 삶은 고통이고, 그 고통은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는 그 가르침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한 설득력과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p64) 행복과 의미 상실의 시대에서도 피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불교는 대표적인 관용의 종교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유일신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에 대해 환대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 또한 충분하게 지니고 있다.(p85) 낯섦을 받아들이것.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성경, 꾸란을 읽을 수 있고, 이해를 할 때 서로의 관계 맺기는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프랑스 사회학 교수)는 시골출신이 성공하기 위해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비투스’와 ‘상징폭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가면서 분석했다. '아비투스'는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갖게 된 몸의 습관 같은 것들을 의미(p114) 한다. 이것을 마음의 습관이다. 상징폭력은 그런 아비투스와 힘의 차이에 기반을 두고 다른 아비투스와 힘의 차이에 기반을 두고 다른 아비투스를 지닌 힘없는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언어폭력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p114) 이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은 무신경적이나 당하는 사람들은 상처가 깊도 오래 간다는 점이다. 어쩌면 가해자의 의식구조에는 선민의식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는 한편으로 살아있음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뗄 수 없는 의존성 또는 연기성(緣起性)에서 비롯된 것이다.(p171)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런 속에서 다양한 고전을 읽고 그 고전속의 진리를 더듬으면서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현명해질 것이다. 마음이 혼란할 때마다 고전을 들쳐볼 때 보이지 않던 지혜가 튀어나올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전이 어느 새 생활의 지혜가 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어떤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일이지만, 그 삶을 선택할 때의 고뇌속에 같이 갈 동반자로서의 고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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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의 제목이 제법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에서 국가나 개인이 하루하루 살아가며 견디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부도덕한 권력자들이 혼란을 야기하는 정치적 무력함을 겪어야 했고, 이웃나라 일본의 원자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선 노출과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 등 대내외적인 여건에서도 위험과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제각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치며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게 세상사 아니던가.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차 등 비교심리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은 피로사회로 만든다. 이럴 때 잠깐 쉬어가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거리 두기’를 전제로 오래된 고전에서 사유와 성찰을 하며 삶의 의미 찾기를 위한 필수 요건이 되고 전통적인 유효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올해부터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고전과 윤리’라는 진로선택과목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금강경』,『논어』같은 동양 고전과『국가』,『니코마코스윤리학』등 서양 대표 고전을 다루고 있다. 특히『신약성서』,『꾸란』을 포함시켜 종교 간의 만남과 대화를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는 ‘고전과 윤리’ 교과서 대표저자로서 이 과목에 들어있는 15권의 고전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를 안내하는 내용과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목의 도입으로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으로 시험공부에만 몰두했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다. 그동안 제도 교육은 국영수 과목에 치우쳐서 예체능 과목은 등한시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도덕과 윤리는 하루아침에 싹트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중단되었던 윤리에 대한 과목을 학습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이다.
이 책의 구성은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나’를 정립하고 나아가 타인 등 공동체와 그리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와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한 지향점을 두고 있어 성장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보는 듯하다. 우리 시대의 삶의 양상은 어떤 모습일까. 성공은 차치하고 일단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도 벅차다. 요즘처럼 언론이 부도덕한 정치인들이나 많이 알려진 유명 인사들의 사건들로 시끌벅적한 때는 사람이란 과연 왜,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한 세상 길어야 백 년인데, 남의 것을 탐하고 피해를 주며 그렇게 살고 싶을까 싶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로지 성공을 향하여 앞만 보고 달린 결과가 아닌가 한다.
‘관계 맺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혼밥’, ‘혼술’ 등 뭐든지 혼자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저자는 『금강경』을 소개한다. “수보리 장로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須陀洹)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것인가?” “아닙니다. 부처님! 수다원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수다원이라는 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참된 수다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P31)
‘사다함’이나 ‘수다원’은 불교 수행자의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데,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지 중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수다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니, 과연 보통사람인 우리는 이 수다원의 경지를 삶의 목표로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뜻이 너무 크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작게라도 노력할 수 있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실천하는 것으로 수다원에서 아라한(깨달음을 얻어 이 세상에서 참으로 평화롭게 사는 사람)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니.
2부에서 다루는 『꾸란』은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낯섦의 대상인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대목이다.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꽁꽁 동여맨 복장의 사람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 영어식 발음으로 배웠던 ‘코란’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며, ‘성스러운 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한다.
“꾸란을 믿는 자들이나 구약을 믿는 자들이나, 그리스도인과 천사를 믿는 시바인들이나, 하나님과 내세를 믿고 선행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P81) “부모를 위해서, 친척과 고아, 구걸하는 자와 여행자를 위해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그 모든 자선의 행위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2장 215절 “선행이거나 정의의 일이거나, 사람 사이에 화해시키는 일이 아닌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변명하지 말라.” 2장 224절(P83)
위의 인용을 통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차별하지 않는 이슬람의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고, 개인의 마음의 평화는 물론 인간관계, 사회 정의, 세계 평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종교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낯섦을 금세 떨쳐버릴 수는 없다. 원치 않더라도 언제 어느 때든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듯이 다른 사람 다른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다가 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의미 있으리라 생각된다.
3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지난 해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대한 것이다. 일상에 파고든 문명의 이기는 편안함에 젖어서 좀처럼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 같은 엄청난 재앙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이 과제를 각자의 삶과 사회 전반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철학으로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소개한다.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그 도는 자연(自然)을 본받는다.(P186)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기꺼이 머물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P187) 『도덕경』 예부터 극심한 자연재해를 만나면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거나 기도하면서 하늘의 명령이 우리의 본성을 이룬다는 생각을 체계화한 것이 유교철학으로 완성되었다. 하늘의 뿌리를 자연으로 본 것이 도가이며 그 기록이 곧 도덕경이다. 어지러운 일상을 잘 살아내는 대안은 경직된 윤리(倫理)가 아닌 자연의 흐름을 읽고 물처럼 살아가는 무위(無爲)를 강조하며 물 흐르듯이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삶을 강조한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또 교양을 위한다거나 특권층인 것처럼 과시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대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는 금물이다. 그 고전의 저자나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한계는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현재 실정에 맞는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전을 읽더라도 삶과 연결할 수 없다면 별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는 무모한 도전보다는 마음에 끌리는 부분이라도 조금씩 접하다 보면 고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학부모는 물론 고전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독자가 읽는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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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출판되는 도서는 과연 몇 권일까? 서점의 신간도서 소개 코너에는 항상 새로운 책들이 빼곡히 놓여져 있고 가끔은 이 많은 책들이 과연 모두 읽힐 수는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 와중에도 꿋꿋이 시대를 지나오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이 새롭게 다가왔다. 과연 고전의 힘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고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고전은 삶의 의미 물음을 중심으로 보편성과 감동을 숨기고 있는 검증된 문헌이고,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이미 뛰어넘은 것이기도 하다. p.14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와 속도의 위협 속에서 자신을 지켜가며 삶의 의미 물음을 간직하고, 더 나아가 그 삶의 본질을 이루어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 되는 관계 맺기라는 실존적 과업을 제대로 감당해 내기 위한 ‘텍스트로서의 고전 읽기와 주체적 재해석’이 꼭 필요한 때이다. p.26 저자는 우리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근간으로 ‘관계’를 언급하며, 고전을 통해 삶에 있어서의 관계맺기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논의되는 '관계'는 단순히 타자와의 관계만이 아닌 나 자신과 그리고 일상을 넘어선 존재와의 관계까지를 포괄한다. 솔직히 일상을 넘어선 존재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하기는 했는데, 이 장에서는 인간이 아닌 생물, 사회의 성장, 진리와 같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관계는 기본적으로 가치관계이다.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고, 그 관계를 통해서 물질적 가치는 물론 정신적 가치를 주고받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p.23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는 한편으로 살아있음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뗄 수 없는 의존성 또는 연기성(緣氣性)에서 비롯된 것이다. p.171 이러한 주제들을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열다섯 권의 고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의 소제목과 이에 언급된 고전이 무엇들인지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지금 여기서 『금강경』 읽기 내 마음 속 부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 테러 시대에 지눌의 『수심결(修心訣)』 읽기 우리 시대에 공부란 무엇일까? - 공부가 고통인 시절에 율곡의 『격몽요결』 읽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행복과 의미 상실 시대에 『논어』 읽기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낯섦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다종교 시대에 『꾸란』 읽기 윤리 귀환 시대에 시민으로 살아가기 -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 읽기 우리 시대에도 보편윤리가 가능할까? -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 읽기 이 땅에 정의(正義)가 살아 있을까? - 상징폭력의 시대에 플라톤의 『국가』 다시 읽기 정의(正義)를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을까? - 촛불혁명의 완수를 위한 롤즈의 『정의론』 읽기 동정심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 핵 위기 시대에 밀의 『공리주의』 읽기 우리는 어떤 정치를 꿈꿀 수 있을까 - ‘촛불혁명’의 눈으로 다산의 『목민심서』 읽기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맺기 이 소리 없는 학살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 가축 학살 시대에 싱어의 『동물해방』 읽기 절망의 시대에 초월의 의미를 다시 묻다 - 다종교 문화 속에서 『신약성서』 읽기 성장 신화의 미망(迷妄)에서 깨어나기 - 탈원전 선언과 함께 『도덕경』 읽기 어떤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 진리 상대주의 시대에 『장자』 읽기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주제는 ‘자신과 올바른 관계맺기’ 였다. 자신과의 관계라니,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내 속에 다른 내가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어찌보면 모순되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살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보면 모든 관계의 근간이 되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신과의 관계가 아닐까 저자는 정말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고, 또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명제가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지눌의 ‘수심결(修心訣)’을 논하며 이런 답을 내놓고 있다. 그렇게 보면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만 달린 것은 아니지만, 마음먹기가 그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귀결점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49 그리고 또 한가지 자신과의 관계맺기에서 눈에 들어왔던 내용은 저자가 언급한 ‘세상을 바라보는 창’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창을 필요로 한다. 그 창이 있어야만 세상을 바라봄과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p.35 나는 과연 어떤 창으로 나의 내면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것은 내가 자라온 환경일수도 신념일수도 아니면 또 다른 나만의 기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창은 나의 학습(단순한 공부만이 아닌)과 성장 또는 주변환경에 따라 변화해 갈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창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그 장점과 한계를 바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수행의 과정(p.36)’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책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삶’에 대한 접근을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언급이 많았고, 기대보다는 고전의 내용에 대한 소개가 많지 않았다. 또한 전반적으로 불교에 대한 언급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저자의 소개 중 불교철학과 윤리를 공부했다는 글을 읽으니 이러한 분위기가 다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고전'의 내용 자체에 기대가 많았던 내게는 다소 아쉬웠지만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지눌의 ‘수심결’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과 같은 것은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열다섯 권의 책을 짧게나마 만나볼 수 있었으며,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는 했으나 다시 한번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에게 적용하기 홀수달에는 고전 한 권 읽고 리뷰 남기기(적용기한 : 지속) *매월 읽으려다 보니, 왠지 '고전'은 읽는 속도도 조금 느릴 듯하고 또 찬찬히 읽어야 할 듯해서^^ *기억에 남는 문장 일상생활 속에서 행동할 때 바람직한 도리를 생각하면서 꾸준히 실천에 옮기는 것이 학문인데,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학문을 너무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내 삶과는 관계없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면서 멀리하고 있다. '서문' p.54 말을 많이 하면서 생각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가장 해로운 일이다. 꼭 해야 하는 말만 하고, 할 때는 최대한 간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진리(道)와 가까워진다. p.58 “자공이 묻기를 ‘평생 동안 행할 수 있는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그것은 서(恕)일 뿐이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위령공' p.68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이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먼저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원칙으로 확장할 수 있다. p.69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걱정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한 일을 하도록 노력하라.” '이인' p.71 모든 낯섦은 그 대상이 내게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낯섦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가능성이라는 설렘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삶은 주로 익숙함을 기반으로 전개되지만, 어느 순간 두려움을 떨치고 낯섦과 마주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질적 비약의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p.85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기꺼이 머물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 ‘도덕경’ p.187 사실 우리 모두는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것들마저도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는 순간 강점으로 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런 구분들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191 (이 리뷰는 '인간사랑'으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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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맺기란 같이 술 마실 친구, 밥 먹을 친구를 사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관계는 기본적으로 가치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고, 그 관계를 통해서 물질적 가치는 물론 정신적 가치를 주고받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우리가 맺고 사는 관계는 자신과의 관계와 타자와의 관계로 나뉘고, 후자는 다시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 및 공동체와의 관계, 자연 및 초월과의 관계로 나뉜다.” [p. 23] 그런 의미에서 관계 맺기란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으로는 자신의 삶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무엇이든 너무 가까이 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삶과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저자는 고전읽기를 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그 거리두기의 방법 중에서 전통적인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읽기” [p. 14]라는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이 어떻게 삶과 거리를 두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15개의 고전을 자신과의 관계를 다루는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와 타인과의 관계를 다루는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및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로 분류하여 고전의 재해석 사례를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해석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도 고전읽기, 즉 고전의 재해석만으로 손쉽게 삶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체득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소한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까를 결정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저자도 머리말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그 흐름을 직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 인간은 모두 구체적인 존재자로서만 살아 갈 수 있고, 그 존재자로서의 기본 요건은 시간과 공간” [pp. 8~9]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삶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전제로 하는 사유와 성찰의 시(時). 공간(空間)으로서의 고전 읽기가 지니는 고유한 위상” [p. 14]을 재확인해주는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바다를 떠돌다가 자신이 원하는 항구로 향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나서 흐름을 거스르거나 따르면서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이 책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그 항해에서 어떤 나침반을 선택하면 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인간사랑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