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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작가의 <백 오피스>를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어 구입했다. <백 오피스>가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책도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내용이겠구나 하는 짐작은 했는데, <백 오피스>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만족도도 훨씬 더 컸다. 최유안 작가의 책이 현재 소설집 1권, 장편소설 1권이 나와 있는데(앤솔로지는 세 권 정도 더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 첫 번째는 여성들의 일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난민 구호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도 하고, 경찰 임용 시험해 합격해 지방에 있는 파출소로 발령받기도 하고, 기업 컨설팅을 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
두 번째는 일하는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단순히 업무에 관한 것이나 인사고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회사 여직원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 몇 년 만에 어렵게 임신이 되었는데 회사에 알려지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온 팀장과 내 부하 직원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있는 듯할 때에는...?
위에 언급한 사례들 말고도 훨씬 더 인상적인 이야기도 있는데,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가 그렇다. 난민 구호 활동에 관한 논문을 쓰는 '나'는 조사를 위해 레스보스 섬에 갔다가 우연히 한 남매와 알고 지내게 된다. '나'는 활동가이자 연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남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얼마 후 선배 활동가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연구자로서 이들의 사례를 자신의 논문을 완성하는 데 이용한다.
좁게는 난민 구호 활동 같은 선행이 일이나 연구의 대상이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넓게는 어떤 사람이 일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의무, 달성해야 하는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돌이켜보면 <백 오피스>도 일하는 여성들이 공적인 역할과 사적인 자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에 실린 <집 짓는 사람>도 훌륭하다. |
![]() ![]() ![]() ![]() 얼마 전 학교를 졸업했다는 새로운 후배는 열의에 넘쳤다. 가끔 퇴근을 할 때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하거나, 회사 앞에서 맥주를 한잔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대부분 거절했다. 회사 안에서도 업무 얘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와 말을 거의 섞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라는 말도, 지키지 말란 말도 하지 않았다. 지각을 해도, 일찍 와도, 늦게 가도,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더 무기력해졌고, 가끔 실없이 웃었다. (최유안, 「보통맛」中에서, 『보통맛』) 최유안의 단편소설 「보통맛」의 나온 저 문단을 읽고 정확히 마지막 문장을 읽고 '웃었다.' 웃으라고 쓴 문장이 아님에도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웃었다.' 요즘엔 그렇다. 그냥 웃는다. 웃음 기계가 된 것처럼.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실수를 하거나 어이가 없거나, 그런 상황에 웃는다. 죄송하고 민망한데도 웃는다. 상대는 나의 웃음으로 열받을 수도 있지만 웃는다. 웃음으로 때운다. 하하하, 크크크. 또는 크하하하. 「보통맛」을 두 번 읽었다.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집중력 부족과 도파민 중독 시대에 한 소설을 두 번이나 읽는 일이 흔할까. 한 번은 일하러 가기 전에 조금씩. 다른 한 번은 일 마치고 한 번에. 읽을 때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과몰입하는 나를 발견한다. 고은양이 아닌 「보통맛」의 '나'에게 애틋하고 서글픈 감정을 느끼는 나는 나이를 꽤나 먹어 버렸다. 그러니까 꼰대가 되어 버린 것이었던 것이다. 말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말하지 않는 쪽으로. 알려줄까 말까 할 때는 알려주지 않는 쪽으로. 지적해야 될까 말까 할 때는 지적하지 않는 쪽으로. 결국은 꾹 참고 있는 것으로 나를 지켜내야 한다. 차분하고 단아한 사극에 나오는 강단 있는 여인상의 모습으로 말이다. 꿀팁 하나 공유 하자면 심호흡을 하고 집에 가서 먹을 간식을 떠올려 보시라. 「보통맛」이 실린 소설집 『보통맛』에서 최유안은 타인을 향한 미안한 마음들을 풀어 놓는다. 곤경에 처한 그 사람에게 내가 좀 더 다가갔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소설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일어날 일은 결국에 일어난다. 삶은 잘 짜인 구성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소설, 영화, 드라마처럼 납득할 만한 인과 관계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자책하겠지만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월요일 오전에 회사에서 예능 클립 영상을 보는 후배와 일을 하는 것도 난민 수용소에서 만난 소녀를 데려오지 못한 것도 불법 영상에 나온 인턴을 도와주지 못한 것도 나의 잘못이라고 탓을 해야 안심이 되겠지만 『보통맛』의 세계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어깨를 다독인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이 세계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보통맛』의 세계로 가볼 것을 추천한다. 안전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안심이 된다. 치사하게 생각하는 내가 정의롭지 못한 내가 『보통맛』에서라면 밉지 않을 수 있다. 현실에서 나는 내가 미운데 『보통맛』에서 나는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보통맛」을 두 번 읽었다. 실패와 좌절의 정서가 난무하는 『보통맛』인데 변태인 건지 나는 용기를 받았다. 넌 너를 믿고 내일이 아닌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해. 하는. 가끔 실없이 웃게 되어도 앞 집 여자의 오지랖에 진절머리가 나도 내가 나이게 살아야 한다. 인사 잘하고 상냥하게 말하고 글로 배워서 익힌 사회성을 발휘하고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매운맛, 쓴맛의 꾸지람을 들어도 보통맛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는 그날까지 당신과 나의 근로 생활을 응원한다. 언제 어디서든 냥냥 펀치를 꺼낼 수 있는 우리들이다, 조심해. 맞으면 멍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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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부하직원이 있는 중간관리자라 현주에게 더 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성공한, 원칙에 강한 그런 선배가 되고자 했다 실망을 겪은 현주가 지금까지 해 온 노력들을 극단적으로 버리고 무기력해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지만 현주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