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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섯의 타이밍'(이선주, 주니어김영사)을 읽다.
"'열어섯의 타이밍'(이선주, 주니어김영사)을 읽다." 내용보기
선화는 남주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창가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누그려지고 어둠이 살짝 내려왔다. 공허함이 친구처럼 찾아왔다. 선화는 엘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선화는 아이가 지나갈 자리를 만들어 줬다. 아이 엄마가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선화도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내
"'열어섯의 타이밍'(이선주, 주니어김영사)을 읽다." 내용보기

 

선화는 남주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창가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누그려지고 어둠이 살짝 내려왔다. 공허함이 친구처럼 찾아왔다. 선화는 엘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선화는 아이가 지나갈 자리를 만들어 줬다. 아이 엄마가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선화도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 p125

 

그러자 다시 시를 쓰고 읽고 싶어졌다. 시는 명령하지 않는다. 시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시는 묻는다. 시는 자신의 안부를 묻고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정윤은 친구들에게 시를 주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시를 쓰자고, 우리 모두 시인이 되자고 말하고 싶었다.

- p162

 

지금 우리나라에 시급한 건 아이들 교육이 아니라 어른 교육이다. 꼰대짓 안 하기, 어른 대우 바라지 않기, 요즘 애들이라는 말 쓰지 않기, 사회 구조의 문제는 외면한 채 '노오력'만 강조하지 않기, 착취하지 않기, 사회는 점점 나빠지는데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방치하지 않기 등등 일일이 말하기도 숨차다.

문제는 이걸 해결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럴 이유도, 의지도 없다는 거다.

- p182

 

"제가 가장 싫은 건요, 다들 똑같아야 한다는 거예요. 학교는 획일화를 강요해요. 그래야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학교는 전체주의에 자본주의 사회예요. 돈이 많으면 학교 다니기도 편해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좋은 학교에 진학할 가능성도 높아요.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니 학교 밖도, 학교도 자본주의라는 거예요. 근데 사회보다 학교가 더 억압적이죠.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선택권을 주지 않아요. 다 똑같은 교복을 입어야 하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고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처럼 반항도 귀엽게 해야 해요. 성적 1등은 인정해 주지만 튀는 애 한 명은 인정해 주지 않아요."

- p185

 

지아, 경희, 선화, 정윤 그리고 남주까지 앞으로 인생에서 많은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낙제란 없을 것이다. 인생은 시험이 아닌데 어떻게 낙제할 수 있을까?

결코 낙제는 없을 것이다.

- p195

 

 

 

열어섯살의 남주, 지아, 정윤, 선화, 경희가 들려주는 이야기 '열여섯의 타이밍'은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선주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각각의 아이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그리고 각자 담고 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내 열여섯살 때를 회상해봤다. 나는 열여섯살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까.

 

남주, 지아, 정윤, 선화, 경희는 발표수업에 내야 할 과제를 준비하는 조원들이다. 모두 카톡으로 과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기로 했는데 남주는 카톡을 사용하지 않으니 직접 만나서 회의를 하자고 말한다.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너 하나만 카톡을 깔면 되는 건데 왜 그걸 못하겠다고 하는 거야? 카톡을 깔지 않는 아이, 남주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엄마, 아빠가 개량한복을 입고 다닌다더라, 물질문명을 싫어하는 집이다더라 등의 근거 없는 소문으로 퍼진다. 결국 과제는 남주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만 참여한다. 그리고 전체 조원이 참여하지 않는 과제인 탓에 남주, 지아, 정윤, 선화, 경희의 과제 점수는 깎인다.

 

사실 한 아이만 유별난 게 아니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다 누구나 유별나다.

 

지아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 절대 안 된다는 엄마의 인생 기준에 맞춰 자라온 터라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조별 과제 준비할 때 카톡을 깔지 않겠다는 남주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지아에게 힘든 일이 닥치는데, 체육대회 단체 줄넘기 경기에 참여하는 일이다. 아무리 해도 지아 차례가 되면 줄넘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지아 발에 계속 걸리는 줄 때문이다. 자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피해보는 건 정말 싫은 지아여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남주와 정윤이가 도와주겠다고 한다. 도와주는 것조차 피해를 주는 것 같아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남이 힘들어하거나 곤경에 처하거나 어려워하면 그걸 피하지 못하는 남주가 옆에서 지아가 부담을 갖지 않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나도 어릴 적에는 친구들의 눈치를 참 많이 봤던 아이였다. 정작 옆의 친구들은 별 말이 없는데 괜시리 친구들 표정을 살피게 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곱씹고. 지금 생각하면 별 게 아닌데 왜 그 때는 학교와 반 친구들이 커보였는지.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경희는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걸 친구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한다. 집에서 엄마와 이야기할 때는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는 걸 아는데 바깥에서 엄마를 만나는 건 어렵다. 친구들이 불쑥 말하는 다문화 가정, 외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말할 때면 경희는 너무 힘들다. 학부모 상담 후 학교 정문에서 엄마가 경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남주가 이야기하자, 경희는 숨긴 걸 들킨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다 알아버린 것 같아 경희는 남주에게 소리를 지른다. 학원 친구인 지아가 며칠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도 엄마가 외국인이라 그런 것 같다.

 

지아는 경희 집 앞에 와 이야기한다. 경희 앞에서 다문화 이주 여성, 외국인에 대해 안 좋게 말했던 때를 생각하며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고민하나 말을 못 걸었다고. 열어섯의 아이들은 본질적인 문제에 거침없이 다가가지만, 문제 해결도 거침없다. 어른보다 낫다.

 

시를 좋아하는 정윤은 아이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걱정한다. 혼자서 시를 쓰고 시집을 읽는 시간이 좋다. 어느 날 정윤의 시 노트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고 칠판에 정윤의 자작시가 쓰여 있게 된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정윤은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 같아 속상하다. 더울 땐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땐 추운 데서 일하기 싫으면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경비 일을 하는 아빠가 생각나게 한다. 왜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까봐 전전긍긍해야하지? 사람은 모두 사랑 받는 존재인데 말이야. 정윤은 칠판 위에 시를 쓴다. 곧 시 쓴 자리 위에 영어단어들이 빼곡해지지만.

 

선화는 전 남자친구였던 엘의 협박을 받고 있다. 사람을 좋아했던 게 죄였나보다. 엘을 따라갔던 DVD방에서 선화의 몸이 촬영된 동영상을 엘이 갖고 있다. 엘은 그 동영상을 미끼로 선화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다. 우울증으로 아픈 엄마와 회사 일에 열심인 아빠에게는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전학 오기 전 같은 학교에 다녔던 남주는 내가 왜 여기로 전학 오게 됐는지 알고 있을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 선화에게 남주는 정윤, 지아와 함께 작전을 펼치자고 이야기한다. 이윽고 선화는 엘의 휴대폰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부모님께 이 사건을 털어놓고 경찰에 신고한다.

 

열여섯살의 패기는 끝이 없다. 남주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담임 선생님조차 남주를 설득시키지 못한다. 남주만의 강력한 삶에 대한 생각이 남주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열여섯살의 아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간다. 친구들 덕분에 오랫동안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바뀌기도 하고 부모님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일을 '아이들답게' 해결하기도 하고 진심이 담긴 응원을 건네기도 한다. 그러면서 열여섯살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한다. 열여섯살이 마주하는 서로의 타이밍은 성장동력이다.

 

s*****5 2021.06.2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