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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신이 된 고대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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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00 페이지가 되는 이 책을 내가 덥석, 그것도 전혀 읽지도 않았던 일본 관련된 책을, 집은 까닭은 신화 때문이었다. 바로 고대 한국과 관련된 신화.      우선 이 글을 쓰신 글쓴이는 이 분야만 얼마나 열심히 파고 드셨나 그 노고와 열정이 너무나 감동이었다. 학생때 일본어를 잠시 배운 적이 있지만 영어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모두 배운 것을 잃어버
"일본에서 신이 된 고대 한국인" 내용보기

거의 400 페이지가 되는 이 책을 내가 덥석, 그것도 전혀 읽지도 않았던 일본 관련된 책을, 집은 까닭은 신화 때문이었다. 바로 고대 한국과 관련된 신화.

     우선 이 글을 쓰신 글쓴이는 이 분야만 얼마나 열심히 파고 드셨나 그 노고와 열정이 너무나 감동이었다. 학생때 일본어를 잠시 배운 적이 있지만 영어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모두 배운 것을 잃어버렸다. 전혀 관련된 사항을 공부한 적도 없고 책도 읽어보지 않아서 생소하기에 여기 적힌 단어가 한국어임에도 일본어를 한글로 적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지명관련하여- 그렇게 깊게 들어오지는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읽으면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자료들을 집요하게 조사하고 답사하여 이 분야만 깊게 파고들은 글쓴이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고대일본인에게 고대한국인은 신화적인 면에서 보자면 일본인 존재의 근원이고 그 이상의 존재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의 존재가 엄청나게 많은 일본 신사에 모셔진 신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일본이 한국넘어 세상에 더 많은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한국 대신 중국으로 아니면 일본 자체의 신으로 대체하는 변화를 가져온 것은 맞지만 그 근원과 뿌리는 엄연히 고대 한국인, 한국국가에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 따르면 대 가야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일본신들의 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 가야가 망하면서 아마도 그 무리들은 일본에 정착한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일본인이 되어갔던 것은 아닐까 한다. 흔히 아는 바로는 백제가 크게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고구려나 신라도 깊이 관여했다는 것이 일본 도처에 발견이 되었다는 사실은 인상 깊었다. 

     독특한 것은 우리는 물론 무속 신앙이 있지만, 어떤 큰 종교적이나 철학적 이념이 국가 전체를 덮어왔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못한채 굉장히 다양한 무속신과 신앙이 존재해 왔고 지금 21세기에  우리가 아직도 일본 신사들를 보고 있다. 만화를 보아도 보면 여러 종류의 귀신과 신과, 요과가 엄청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런 면 때문인 거 갗은데 이것이 민족성 때문인가 생각해 본다. 얼마 남지 않은 일본의 자료속에 비쳐져 일본의 신들에 영향을 미친 한국의 신들은 조선의 단군, 고구려의 용신, 신라의 역신 등등이다. 나머지는 백제나 신라의 왕자나 고귀한 신분의 여인들인데 일본신앙의 특징은 쓸모있으면 바로 수용하고 쓸모없으면 가차없이 버려 새로운 것을 계속 영입하여 변화한다는 것이다. 

     경불 고령이 일본신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놀라웠다. 지금도 어느 시기에 일본사람들과 우리가 신천제까지 올리는 곳인데 이곳이 임나일본부의 근원이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물론 해방후 바로 우리학자들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였고 원래 의미를 바로 잡아 그래서 모두 모여 신천제를 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이름 속에 묻혀 약간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의 어떤 것을 엄청나게 동경해 왔고 재확인 받아서 스스로의 지위를 높이려 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역사적으로 백제의 임성태자가 일본의 왕족이 되었는데 그 임성태자 라는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조선에 문의를 했지만 모순되게도 우리나라 역사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답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문헌에는 고대 한국인들에 대해 전쟁이나 이동에 대해서 많이 설명해 확인을 받고 싶어서 역사적으로 문의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문헌에는 그런 사건들이 전혀 없거나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들의 기호에 맞게 자신의 맘대로 뭔가를 해석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왔던 것 아닐까? 즉 우리 문헌에는 없는 부분이 그들에게는 존재하는 그것이 그런 생각들이, 우리문헌과 세계 문헌속에 독도가 우리나라 영초로 존재하는 데 자신의 문헌속에 자신의 나라의 일부로 독도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를 가지는 것 말이다. 

     우리는 1900년대 초에 너무나 우리의 것이 많이 파괴된 거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의 것을 남들, 중국이나 일본이 자신들의 시각에 쓴 것을 보고 우리의 자아개념과 역사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국립중앙박물과 고대 한국사 실에 걸린 설명판에 왜 '중국'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있는지 좀 어색했다. 쓰기 쉬워서 그런 것일까? '지금의 중국' 이나 그 당시 중국지역에 있는나라의 이름을 적어 넣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이웃나라들은 그들의 시각에서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적었고 스스로 자기 나라 자아 개념을 찾으려 했다. 우리는 더이상 남의 나라가 쓴 것에서 우리의 자아개념을 찾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역사적으로 고무적인 조사나 확인작업을 해온 거 같다. 즉 우리나라 자체의 문헌에서 재확인을 받아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확립하려고 노력해 온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세상에 눈을 더 빨리 뜨고 영국과 프랑스 같은 식민지를 많이 거느린 나라들의 제국주의를 철저히 배워서 우리에게 적용했다. 우리가 지금 우리역사를 보고 있는 시각. 아마도 일본이 만들어 놓은 어떤 틀에서 보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잊지 말자..반만년의 역사도 아니고 이미 8000년전에 이 한반도에 이주해서 문명을 이루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것이 50여년간의 식민지나 3년간의 전쟁, 그 이전 병자호란으로 치욕을 거친 그 기간들이 그 긴시간동안 쌓아온 우리의 영혼, 문화,역사, 지식들을 모두 파괴하지는 못할것이라는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e******e 2023.01.1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