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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속의 여백에 내 마음을 담는다.
"유행가속의 여백에 내 마음을 담는다." 내용보기
요즘 트로트가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아니 과히 열풍이라고 할만하다.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화제가 트로트이다. 하긴 지금의 노래는 우리에게 잘 맞지 않는다. 가사도 알아듣기 힘들고 도무지 소음처럼 들리기만 하는지라 관심을 끊고 있다가 아는 노래들이 나오니 반가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딱히 트로트만이 유행가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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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로트가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아니 과히 열풍이라고 할만하다.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화제가 트로트이다. 하긴 지금의 노래는 우리에게 잘 맞지 않는다. 가사도 알아듣기 힘들고 도무지 소음처럼 들리기만 하는지라 관심을 끊고 있다가 아는 노래들이 나오니 반가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딱히 트로트만이 유행가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는 본래 유행가와 함께 자랐다. 노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노래는 줄곧 우리 곁을 맴돌았다. 나 역시도 의식하든 안하든 간에 유행가를 들으며 살아왔고, 유행가를 부르며 한 시절을 보냈다. 물론 지금도 유행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흘러간 노래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지 싶다. 이 책 [유행가들]은 시대별로 유행했던 노래들을 살펴보고, 왜 그 노래가 유행했는지를 당시의 생활정서 및 사회상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처음 이 땅에 유행가라는 것이 들어온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시대별로 유행가들에 얽힌 이야기를 에피소드를 곁들여 이야기한다. 2000년대가 시작된 지도 20년이 흘렀는데 1990년대까지를 이야기한 것은 최근가요에 이를수록 능력이 닿지 않아 20세기를 경계로 싹둑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2000년 이후의 노래에 대해서는 아는 노래가 거의 없다.

 

‘유행가는 본래 근대의 산물이고, 우리는 이 근대라는 괴물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입혀온 역사의 상처와 함께 자랐다. 한국에서의 근대가 얼마나 잔인한 폭동의 길손이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35쪽) 레코드는 그런 상처 속에서 들어왔고 유행가도 그곳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유행가의 출발점 언저리는 안개 속처럼 희미하다고 한다. 그것은 많은 노래가 훗날 월북 혹은 납북자의 것이라 하여 개사되고 둔갑되고 소실되어갔기 때문이다. 1920년대 후반 일제의 압제에 노래마저 제대로 부를 수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모든 명랑성과 유쾌성을 잠재우는 침통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대리물을 찾았다. 그 때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윤심덕의 마음이 담긴 황량한 노래를 가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라를 잃은데 대한 국민적 조곡으로 대용했다. 이처럼 우리 유행가의 시작이 <희망가>나 <사의 찬미>처럼 허무, 영탄, 비극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가요와 차이가 있으나 부분적으로 민족의 정서인 한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 유행가의 주류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시작된 유행가는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타향살이>, <나그네 설움>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쏟아졌고, 이런 노래들이 1960년대 시골장터를 주름잡던 약장수들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아직도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는 트로트의 힘은 장르에 내재한 음악적 힘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추정한다. 당시의 트로트는 근대가 시작되고 일제침략이 노골화되면서, 민족의 근거지가 훼손되고 박탈당하던 무렵의 원체험이 안고 있는 슬픔을 담는 그릇이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대중을 피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상식에 기대어 산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해방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때 순종과 굴욕을 강요받았던 유행가가 서서히 남과 북의 이념대립에 물들면서 갈수록 새로운 형태의 권력에게 길들여지기 시작’(86쪽)했다. 전쟁이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유행가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소재들이 모던화 되며 음색과 형식 또한 일본풍에서 미국풍으로 급격히 선회하였다. 1950년대 쏟아진 <무너진 사랑탑>, <마도로스 박>, <남성 넘버원>, <아빠의 청춘>과 같은 노래에는 당대의 구조가 고스란히 담기며 그에 따라 유행가는 서민의 삶을 가르치는 교과서화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노래들이 사나이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계몽의 기능을 담당했고, 이는 전쟁으로 심하게 상처 입은 허기진 영혼들에게 전후복구를 짐 지우고 황폐한 연대를 지탱케 하는 주술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1960년대는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한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시골장터를 떠도는 뽕짝노래들은 파괴된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허무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명숙, 최희준, 현미, 문주란, 신중현, 배호…. 슬픈 실존주의가 끝나고 다시 맞은 유행가의 전성시대, 그 선두에 이미자가 있었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한국의 유행가에 삶의 외곽에 방치되어 있던 여성들의 짓눌린 감정들이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민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에는 민중의 한이 들어설 여백이 있었다. 그래서 부르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기에 크게 사랑을 받게 되지만, 군사정권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동백아가씨>를 필두로 수많은 금지곡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세상은 온통 관제가요로 덮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당시 때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울려 퍼지던 <나의 조국>과 <새마을노래>는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중후반에 이르자 외래가요와 함께 청년문화가 등장했다.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는 청년들의 반항적 낭만주의가 한국의 거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뽕짝이 시골정서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포크송은 대도시의 정서와 관계를 맺었고, 그에 더해 포크송은 1970년대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이라는 선택받은 소수 엘리트 계층의 장르였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포크송은 가사를 중시했기에 더욱 도드라지는 표현들은 시골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자들의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그림자로 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군사정권과 대립을 이어가던 청년문화는 양희은이 김민기의 노래들을 부르면서 파국을 맞기 시작했다. <아침이슬>을 비롯하여 <고래사냥>, <왜불러>, <그건 너>, <불꺼진 창> 등 수많은 금지곡들이 남발되기 시작했고, 군사독재와 벌인 청년세대의 문화전쟁은 대마초사건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1980년대는 현대판 구전가요들과 민중가요들의 전성시대였다. 현실의 밑바닥에는 아직 조직화되지 못한 민중의 저항적 정서가 숨 쉬면서 구전가요들이, 그리고 광주의 그 날 이후에는 민중가요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며 불렸다. 이를 두고 저자는 ‘노래의 생명력은 노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던 노래들을 읽어가면서 그 때의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저자는 이어서 한국 유행가의 스펙트럼이 한없이 넓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1990년대적인 것들과 불화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사랑은 글 곳곳에 배어있다.

 

언젠가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를 읽으면서 공감했던 문장이 있다. ‘195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사는 10년 단위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10년 단위로 그 첫 해에 일어난 사건이 그 뒤의 10년을 규정해왔고, 이것은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1950년 6월의 한국전쟁, 1960년 4.19혁명과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70년 11월의 전태일 분신사건,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90년 1월의 기만적인 3당 합당이 바로 그 시대를 규정한 사건들이라고 했다. 그의 구분에 따라 생각해보면 정치, 사회뿐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역시 그러했고 우리들은 그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유행가들의 변천을 따라 가다보니 유행가들 역시 그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우리가 듣는 유행가들이 자꾸 마음속에 와 닿는 것은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여백에 나의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수 있어서 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한 동료가 조용필의 <꿈>을 불렀다.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그 노래를 듣는 순간 꼭 내 얘기처럼 들렸다. 그 후 수많은 시간을 두고 <꿈>이 내 18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삶의 한 때 귀에 와 닿았던 노래는 반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하나의 명곡은 우리 인생의 찰나에만 동참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찰나 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큰 영원 속의 찰나들과 함께하는지 모른다.’(225쪽)라는 저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k*****1 2021.01.15. 신고 공감 32 댓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