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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시인에게는 기억하는 시간이 많다. 그는 이 많은 시간을 요리한다. 과거를 더듬고 현재를 다듬어 버무린 다음 예감이라는 모양으로 미래의 접시에 요리를 담는다.
이 시인을 발견한 계기가 있다. 나는 신형철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두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 절묘한 수에 오금이 저릴 정도다. 그래서 그는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에 그의 시화집 [인생의 역사]를 읽었다. 부록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에 대한 발문을 발견했다. 유독 눈길이 갔다. 바로 돌 하나 던져 새 세 마리를 잡았다. 그의 시집과 수필집을 찾고, 구매하고, 읽었다.
시집은 어렵다. 특히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하는 시집들은 더 어렵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뿌연 안개 속 틈 하나를 발견해서 얻는 깨달음의 무게는 묵직하다. 그 깨달음은 항상 내 앞에 놓은 밥상을 엎어버린다. 그리고 새로 놓인 밥상에는 처음 먹어본 듯한 새로운 요리가 하나씩 있다. 요리의 맛은 가관이다. 절묘하다는 말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다. 우리나라 시 백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심미적 유전 형질 같은 것이 박준의 시에는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시에는 미덕이 있다고도 한다. 내가 본 그의 미덕들을 정리해본다. 그에게는 그리움이 있다. 그에게는 심미안이 있다. 그에게는 무심함이 있다. 그의 시는 뒷모습이 보인다. 그의 시에는 유별난 ‘나’가 있다. 그 ‘나’는 작은 것에 반응하고, 그 차이를 요리하고, 만든 차이를 음미하다 못해 애인으로 삼는다.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그의 시에는 시간들이 있고 그는 시간을 항상 돌아본다. 돌아본 시간들은 미숙했지만 서로에게 공평했고, 나른한 일상이 있고, 작은 욕심도 보이고, 낙관의 기운도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들이 가는 마지막 목적지는 평화다. 박준에게는 준비성이 많다. 그는 현재를 불러서 다독이며 미래를 지시한다. 신형철은 그런 박준의 마음을 ‘현재를 미래에 선물로 주려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누구에게? 바로 자신에게. 박준은 두 삶을 산다. 신형철의 말을 빌리면 아픈 일들을 잊지 않으려는 삶과 우리가 함께 있을 시간들에 대한 예감으로 버텨내는 삶이라고 고백한다. 이런 두 삶을 살려면 두 배 이상의 사랑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박준은 삶이 두 개 듯 사랑도 두 개다. ‘아픈데 가렵다’고 하는 배려의 사랑과 ‘가렵고 아프겠다’는 공감의 사랑이다. 박준은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기다렸던 사람을 보살피기 위해 회상과 예감을 오간다.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고, 그를 아프게 할 말과 행동을 걸러내며 준비한다.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그런 돌봄이 그에게는 있다. 박준은 요리사다. 박준에게 요리는 ‘당신이 먹으면 좋을 것을 좀 만들어 두는 일’이라고 신형철은 말한다. 요리 역시 미래에 혼자 미리 갔다 오는 일이고, 당신을 데리고 한 번 더 그곳에 가는 일이니 박준에게 요리는 돌봄과 같다. 그에게는 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세상에 흔한 작은 것들이다. 그 작은 것들은 나름대로 다름이 있다. 다름은 누군가를 반대편에 두는 일지만 틀림처럼 벽이 없다. 반대편은 내가 서있는 곳과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알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일들이 이 시집에서 벌어진다. 신형철의 평론가의 말처럼 그는 아마도 ‘작은 차이들의 연인’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람 같다.
이런 박준이 가진 마음씀들이 결국 사랑이 아닐까? 그가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이 시집이 내게 준 보살핌은 내가 겪었던 어느 누구의 돌봄보다 따스했다. 박준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닮은 고마움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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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잠 ]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 그해 봄에 ]
얼마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의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 손과 밤의 끝에서는 ]
까닭 없이 손끝이 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미인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에 비집고 들어가 쪽잠에 들기도 했다
[ 생활과 예보 ]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 마음, 고개 ]
당신 아버지의 젊은 날 모습이 지금의 나와 꼭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잔돌을 발로 차거나 비자나무 열매를 주워 들며 답을 미루어도 숲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먼 이야기 이를테면 수년에 한 번씩 미라가 되어가는 이의 시체를 관에서 꺼내 새 옷을 갈아입힌다는 어느 해안가 마을 사람들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서늘한 바람이 무안해진 우리 곁으로 들었다 돌아 나갔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옷을 툭툭 털어 입으며 당신을 보았고 그제야 당신도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으로 맞이하지 않아도 좋았을 날들이 어어지고 있었다
[ 호수 민박 ]
민박에서는 며칠째 탕과 조림과 찜으로 민물고기를 내어놓았습니다
주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제 점심부터는 밥상을 물렸고요
밥을 먹는 대신 호숫가로 나갔습니다
물에서든 뭍에서든 마음을 웅크리고 있어야 좋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동네의 개들이 어제처럼 긴 울음을 내고
안개 걷힌 하늘에 별들이 비늘 같은 빛을 남기고
역으로 가는 첫차를 잡아타면 돼지볶음 같은 것을 맵게 내오는 식당도 있을 것입니다
이승이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이곳은 공간보다는 시간 같은 것이었고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 장마 ]
그곳의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 잠의 살은 차갑다 ]
깊은 잠에 빠진 살은 차다
간장에 양지를 졸이는 꿈을 며칠 이어 꾼 것을 두고 나는 마음으로 즐거워했다
으레 그럴 때면 외투를 한 겹 더 입었다
겨울옷들의 소매는 언제나 길고 나는 삐져나온 손끝을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욕실의 치약과 굳은 치약을 힘주어 짜냈을 안간힘에 대해 생각했다
물건을 새로 뜯지 못하는 나의 버릇을 병이라기 보다는 몸가짐이라 부르고 싶었다
이 겨울과 밤과 잠과 아직 이른 순 洵과 윗바람 같은 것들은
출현보다 의무에 가까웠으로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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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의 시는 항상 온기와 함께 물기를 머금고 있다. 곳곳에 한숨과 눈물, 그리고 밥 냄새, 사람 향기가 배어있다. 그의 시를 읽고 들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의 따뜻함은 태생적인 것일까? 환경적인 영향일까?
그가 조곤 조곤 말하는 단비, 영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인다. 한없이 어리고 젊은 시절의 추억을 부르는 그의 시는 여전히 강하다. 어려운 상징과 은유를 쓴다고 시가 좋을쏘냐 소월의 것인 듯 윤동주의 것인 듯한 이런 시가 더 지내다보면 기형도가 될 지도 모르는 그의 시가 무릎꿇게 하고 오래 울게 할 지도 모른다. 무릎끓은 사람의 어깨를 안게 할 지도 모른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고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거듭 거듭 세상에 말을 건넨다
-단비-
올해 두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좋은 세상- ___영아
눈은 다시 내리고 나는 쌀을 씻으려 며칠 만에 집의 불을 켭니다
섣달이면 기흥에서 영아가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얻은 휴가를 서울에서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난달에는 잔업이 많았고 지지난달에는 함께 일하다 죽은 이의 장례를 치르느라 서울 구경도 오랜만일 것입니다
쌀은 평소보다 조금만 씻습니다
묵은해의 끝, 지금 내리는 이 눈도 머지않아 낡음을 내보이겠지만
영아가 오면 뜨꺼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
언 손이 녹기도 전에 문득 서럽거나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 세상모르고 먹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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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저자 박준 님은 83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그리고 태어난 곳을 보니 '서울'이다. 나도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이런 '동질감'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낳았다. 과연,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저자는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살고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와는 참 많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냥 저만치 떨어져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분명히 '동질감'이 존재했다. 아!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라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제목을 보고 저자가 여자일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몇 장을 읽으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지만, 어떻게 남자에게서 이런 감성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편견'적 시선으로 바로보았다. 물론 곧 그 편견이 정말 편견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자의 살아온 인생을 '그냥'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코 끝 시린 겨울,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추위를 견디며 걷다. 눈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들어가자마자 느끼는 눈물날 것 같은 따스함에 어쩌면 진짜로 울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느끼는 책 인 것 같다.
저자와 나의 삶이 가장 많이 다르다고 느낀 건. 그가 늘 여행 중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라는 시스템 속에 갇혀 살아온 나로써는 그렇게 자주 타지역에서 긴 시간을 있기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의 자유로움이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다. 그가 책속에 그려 놓은 그해 인천, 경주, 여수, 협재, 화암, 묵호, 혜화동, 행신, 삼척, 연화리 등은 내가 가본 곳도 있지만 내가 전혀 가보지 못한 곳도 있다. 그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지역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지역마다 특색이 느껴진다. 일상도 '시'가 될 수 있음을 배운다. ![]() 수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나에게,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긴 돌아보니 나에게 '죽음'은 여전히 멀리 있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돌아가신 분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말고는 아직 가까운 분들중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아직은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장례식장'과 가까운 삶을 살아서 인지 그 마지막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책 속에는 "장례식장'이 참 많이 나온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P19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中] 사람의 마지막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밥 한번 먹자"로 헤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해주는 '고독과 외로움'의 이야기도 참 맘에 와닿았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P50 [고독과 외로움 中]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는 '외로움'인줄 알았는데 그건 실상 '고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쇼미더머니9'을 즐겨보는데 '머쉬베놈'이 늘 이야기하는 '고독하구먼'이 새롭게 다가온다. '머쉬베놈'은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갔던 부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힘들게 했을 때 가지는 그 감정. 그 감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해서 진짜 놀랐다.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P57 [내가 좋아지는 시간 中] 같은 나이, 같은 장소, 같은 시대를 살아간 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때로는 공감되고 때로는 이질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책 속에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냥 아무생각 없이 울어도 괜찮치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처럼 나도 살아온 날들을 더 많이 후회하면서 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맘 것 울어도 되! 그동안 잘 살아왔자나! 라고 내 삶에 말해주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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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박준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엽서를 모으던 때가 있었다 한 장에 백 원 천 원을 들고 열 장을 사서 돌아나오는 길에는 세상의 모든 그리움의 말을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펜을 들고 이름을 쓰려다 망설이다 엽서를 책 속에 끼어 놓았다 아무말이나 적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때 적지 못한 말은 지금의 슬픔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다짐은 우리는 혼자일 것이라는 예언이다
낮과 밤 -박준 강변의 새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떠나는 일이었다 낮에 궁금해한 일들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답으로 돌아왔다 동네 공터에도 늦은 눈이 내린다 한숨 자야 하루를 보냈다는 실감인 날이었다 오전에 일을 잊기위해서라도 낮에서 밤으로 바뀐 걸 보고야 잠이 드는 시간 흐린 하늘을 날아 새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눈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새들이 날아간 그곳에는 낮과 밤이 존재할까 모든 의문을 묻은 채 잠이 든다
입춘 일기 -박준 비가 더 쏟기 전에 약국에 다녀왔습니다 큰 길에는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제 시내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凄然이 가까워졌다면 기억은 멀어졌다"라는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비를 맞듯, 달갑거나 반가울 것 하나 없이 새달을 맞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불빛보다 사람보다 문 닫은 상점이 더 많았습니다 임대와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1월을 걸어 2월 지나 3월에는 봄을 만날 것이라 예감합니다 봄이 먼저 와 있을 것이라는 편지가 도착하기 전까지 달려가겠습니다 아득한 오늘에서 선명한 내일의 일로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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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던 날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 노트 한 귀퉁이에 짧은 시를 적었을 것이다. 얼마 후 그녀가 떠나 갔을 때 시인은 노트의 몇 페이지를 찢어 날리며 속으로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시인은 더이상 그녀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를 잊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싶다면 결국 그녀가 머릿속에서 걸어 나와 글자로 드러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p.70)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울음 같은 이야기들이 모인 에세이집이다. 큰 강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들이 결국 큰 바다로 모여들듯이, 이 책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각자의 경로를 거친 후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시인은 그녀와 섬으로 떠난 적이 있다. 4일의 시간 동안 일출과 일몰은 잦은 일이었지만 내일이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한 번도 해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 날 짙은 안개와 강한 비가 계속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 어떤 행복도 인간만큼 게으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행복을 유예했다는 벌로 행복을 유폐하여야 하는 고통을 선물 받게 되었다. 한참 후에 시인은 다시 그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있었지만, 그의 곁에 그녀가 없었으므로 그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후회는 항상 더디 오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랑했던 시간보다 결코 짧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을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한 때 감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내가 주는만큼은 돌려 받을 수 없었으며 상대가 준 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었다.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러한 '감정의 불균형'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약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사랑뿐이었다. 어떤 자본주의적 계산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공평한 스토리들. 시인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자꾸 사랑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었다. 시간은 풍화처럼 과거를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문처럼 나를 객관화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주었던 사랑 혹은 받았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나의 한 부분이 되어 나에게 남겨져 있었고 아주 오랜 후에 그것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그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모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에세이다. 삶이 빈한하다고 생각될 때는 가지고 있는 것들의 수를 세는 것보다 하나씩 버리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소하게 느껴졌던 것들이지만 머릿속에서 삭제되는 상상을 하는 순간 참을 수 없게 공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 하는' 일들을 빼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삶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지 알게 된다. 시인은 시를 쓸 수 있으므로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잡아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시를 만들었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모든 걸 쏟아 낼 수 있어서 부럽다. 그래서 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은 안다. 그것이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지기 전까지 어떤 아픔도 내 속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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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시인의 산문집을 다시 꾸며 내놓은 것이라 합니다. 책을 고른 이유 두 가지 중 하나는 여행길에 가볍게 읽기 좋은 산문집이라는 점과 ‘운다는 것’었습니다. 책은 아부다비공항에서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두어 시간 남짓 되는 사이에 모두 읽어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시인이 살아낸 나날들이 울음으로 점철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울음을 주제로 쓴 글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낚였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책읽기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 별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열심히 읽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의미는 시를 쓰거나 산문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길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바나 책을 읽다 만나는 귀중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블로그에 보관해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야 될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글머리는 일상에서나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책읽기에서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그해’라는 제목에 장소만 인천, 경주, 여수, 협재, 화암, 묵호, 혜화동, 행신, 삼척 등의 지명을 붙인 아홉 꼭지의 글은 짧아 두 줄 길어 여섯 줄을 넘지 앓습니다. 글이 짧으며 짧을수록 생각을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시인은 글다듬기를 반복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뜸합니다만 예전에는 저도 가끔 글을 청탁받기도 했습니다. 청탁받은 글을 쓰려면 나름 준비를 꽤나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자료조사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저자의 경우는 취재도 열심히 다니는 모양입니다. 사실 글쓰기는 자료와의 절충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조사한 자료를 어느 수준으로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술적인 글 같으면 근거가 있는 글이라면 모두 담아내야 하겠습니다만 일반인이 읽는 책을 그렇게 썼다간 전문가 만들 일 있느냐고 퉁을 먹을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글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환절기’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아마도 독감이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흔히 감기는 약을 먹으면 7일 그냥 두면 1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감기를 약을 먹어 고통을 경감하려 했던 스스로가 못마땅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생긴 대로 아프다보면 뭔가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또한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다’라는 구절은 아부다비의 사막에서 숨 막히도록 예쁜 해넘이를 보고는 새겨볼 요량으로 여행기에도 적어두었습니다. 어떻게 변주를 할 것인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살았던 화전의 폐가에서의 꿈 경험을 읽으면서도 젊었을 적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과의 추억도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하여는 아직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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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일찍 사두었는데 바로 만나지 못하고 이제야 봤습니다. 박준 첫번째 시집은 2012년에 나왔는데 두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군요. 그동안 박준이 시를 안 쓴 건 아니겠지만, 첫번째 시집은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알았는데 두번째 시집은 나오는 거 바로 알았습니다. 저는 시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알았지만, 나오기 전부터 나온다는 걸 안 사람도 있었겠습니다. 박준 시집이 나오길 기다린 사람이 그랬겠습니다. 저는 나오면 볼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온도가 그리 높지 않은 마음이군요. 많은 것에 그런 반응입니다. 어쩌다 한번 조금 들뜨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 덜 기대하기. 이런 말하는 것 자체가 아직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제가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괜찮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한번 한 말인데 제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시도 가끔 봤어요. 알고 본 건 아니고 그냥, 잘 몰라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시를 만나지 않은 시간도 있었어요. 그런 시간 없이 줄곧 봤다면 나았을지. 그건 모르겠군요. 예전보다 지금 제가 책을, 시를 잘 읽는다고 말하기 어려우니(이 말도 여러 번 했군요). 전 시는 언제 누가 보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나이 성별을 떠나서. 제가 살았을 때 어느 정도나 시를 만나고 책을 볼 수 있을지. 여전히 많이 보고 싶은 마음과 천천히 깊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잘 모르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잊는다 해도 책 보는 게 낫겠지요. 그 안에 시가 있다면 더 괜찮을 듯합니다.
한국말로 시를 쓴 지 일백년쯤이 되었군요. 이런 건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는 늘 있었다 생각한 건 아닌지. 조선시대에는 한시를 썼겠습니다. 한글은 진작부터 있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선시대에도 한글로 쓴 시 있지 않았을까요. 황진이 생각나는군요. 조선시대에 한글로 쓴 소설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지금도 시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70, 80년대에 더 많이 좋아했다는 말도 있지만, 70, 80년대는 시대가 그랬으니. 일제강점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할 때 시인은 한글로 시를 썼습니다. 그때 시는 공부 시간에 배워서 어렵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제 상징 은유, 이밖에 어떤 말이 있던가요. 다 잊어버렸네요. 학교 다닐 때라고 그런 걸 잘 알았던 건 아니군요. 시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시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이 이론대로 시를 쓰지도 않겠지요. 그저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보여주고 싶은 걸 쓸 거예요.
올해 두 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단비>, 36쪽~37쪽
앞에 옮겨 쓴 시에서 단비는 개겠지요. 개라고 자식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과 살아서 개는 일찍부터 새끼와 떨어지는군요. 어미와 떨어진 새끼는 다른 집에 가서 밤새워 울 듯합니다. 그래도 동물은 어릴 때 어미와 떨어져도 씩씩하게 삽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도 언제까지나 자식을 걱정하지요. 그런 마음 애틋하게 보면 좀 낫겠습니다.
그곳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48쪽~49쪽
이 시집 제목이 담긴 시예요. 누군가한테는 아픈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다른 해와 다르지 않게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고 장마를 맞겠지 했는데 그러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과 갑작스러운 일. 2019년이 저만 슬픈 해는 아니었겠군요. 해마다 다른 곳에서 아프고 슬픈 일을 만나는 사람 많을 듯합니다.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슬픈데. 더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거 더 슬픕니다. 별 말 하지 않는다 해도. 나이를 먹는 건 슬픔을 안고 그것과 함께 사는 거군요. 어릴 때는 막연히 생각했던 건데. 박준은 저보다 더 일찍 그런 일을 겪었군요. 이 시집에도 그런 마음을 나타낸 시가 보입니다. 그것이 맞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흐르는 건 막을 수 없겠습니다. 거기에 휩쓸려 다 흘려보내지 않아야 할 텐데.
게들은 내장부터 차가워진다
마을에서는 잡은 게를 바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 가둬 먹이를 주어가며 닷새며 열흘을 더 길러 살을 불린다
아이는 심부름길에 몰래 게를 꺼내 강물에 풀어준다
찬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는 한밤에도
낮에 마주친 게들이 떠올라 한두 마리 더 집어들고 강으로 간다
-<천변 아이>, 73쪽
배가 고파도 아이는 게를 불쌍하게 여겼군요. 어릴 때는 그러지요. 그런 마음이 자라서도 사라지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모든 먹을거리한테 고맙다고 해야겠습니다. 식물, 동물 다. 욕심내지 않고 딱 자신한테 있어야 하는 만큼만.
저도 몰랐는데 박준을 문학계 아이돌이라고도 하더군요. 재미있는 말입니다. 시인에도 그런 사람 있어도 괜찮겠지요. 예전에도 그런 시인 소설가가 없지 않았겠습니다. 여기에는 한철만 담기지 않았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말합니다. 지금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건 신형철이 쓴 해설을 보고 그렇구나 했습니다. 지나간 날이라 해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 찾아오기도 한다는. 예전에는 몰랐던 걸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기도 하잖아요. 지금 일은 언젠가 나중에 다가오기도 하겠습니다. 기억과도 같군요. 어떤 시간은 그곳에 남아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흐르는 건 멈출 수 없다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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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오래 전이었어. 마냥 순진한 아이가 있었어. 그애는 세상에 "나쁜"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몰랐지. 그리고, 세상이 자기를 싫어할 줄도 몰랐어.
그해 우리는 /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 같은 음식을 먹고 /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 "선잠" 일부
그래, 오늘은 그 아이에 대해 얘기해 볼 거야! 남들이 하는 일들은 그 아이도 다 해보겠다는 다짐을 했지. 그 전에,
내 소개를 하지! 안녕 나 "다이어리"야. 2018년도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니, 거의 1년만이지! 그 동안 뭐하고 살았느냐고?
온몸으로 온몸으로 /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 "84P"일부
그래, 긴긴 시간이 있었지. 여름을 견디고, 가을을 지나고, 겨울을 온몸으로 견디는 중이야. 나의 시간도 이렇게 가고 있지. 그 아이처럼 말이야.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고 걸음이 질척이다 멎고 마른 것들이 다시 젖을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와 침과 욕과 돈을 길바닥으로 내던질 때의 일입니다 와중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니 갈 곳 없는 이들만 떠나가고 머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 "여름의 일" 일부
그때 그 아이는 누군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상처받곤 했지. 비가 쏟고 걸음도 지척이는데, 그 울음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 아이는 몰랐어. 서럽고 서러워서 그냥 울기만 하던 때.
가장 오래 // 기억하게 되는 꿈은 //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 누군가가 대신 꾸어준 // 태몽일 거라며 당신이 웃었습니다 - P.44
그 아이에게 웃어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몰라. 그러나 그 아이는 분명 기억하지. 그 사람의 웃음이 자신에게는 한줄기 빛이었음을. 누군가가 대신 꾸어준 태몽처럼, 그 사람은 그 아이 대신 아파했고, 그 아이 대신 기도했어.
외롭지? 그런데 그건 외로운 게 아니야 가만 보면 너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도 외로운 거야 혼자가 둘이지 그러면 외로운 게 아니다. - P.58
아이는 그 사람이 대신 아파해주고, 또 그 자신을 보고 웃어주기 시작하자,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지. 아이는 점점 더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세상이 자기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지.
아픈 와중에도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웃고 웃다 보면 새벽이 가고 오한이 가고 흘린 땀도 날아갔던 것인데 영은 목이 점점 더 잠기는 것 같다고 하고 아아 목소리를 내어 보고 이번에는 왼쪽 가슴께까지 따끔거린다 하고 언제 한번 경주에 다시 가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 "나란히"일부
비로소 아이는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어.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으므로 나쁜 사람도 있다는 걸.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마냥 좋은 사람만 있지는 않다는 것도 깨닫기 시작했지. 아이는 점점 더 자라, 정치를 이해했고, 경제를 이해했고, 국제정세를 이해하기 시작했지.
점점 귀가 어두워지는 것 같을까 // 좋은 일들을 나쁜 일들로 잊을까 // 빛도 얼룩 같을까 //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 버릴까 // 그래서 나도 버릴까 - "안과 밖" 일부
아이는 세상을 점점 더 이해할수록 자신의 귀가 어두워지는 걸 느꼈어.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살인까지 하는 사람을 보았으며, 나라의 살림을 맡은 사람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보았어.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고, 점점 더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
이 겨울과 밤과 잠과 / 아직 이른 순과 윗바람 같은 것들은 // 출현보다 의무에 가까웠으므로 /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 P.87
싸우는 사람들,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불안 같은 것은 없어 보였지. 그런데 아이가 점점 세상을 알아갈수록 아이는 한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어. 불안해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사실은 내면 속에 저마다의 불안을 한아름 안고 있다는 것. 결국,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는 것을.
달갑거나 반가울 것 하나 없이 새달을 맞고 있었습니다 - "입춘 일기"일부
아이는 그제서야 깨달었어. 자신도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안은 죽는 날까지 계속 가져가야 할 슬픔인 것을. 그 불안을 기도의 힘으로 간신히 간신히 극복해 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불안을 열정으로 잊어보려는 사람도 있고, 그 불안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소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늘어난 옷섶을 만지는 것으로 생각의 끝을 가두어도 좋았다 눈이 바람 위로 내리고 다시 그 눈 위로 옥양목 같은 빛이 기우는 연인의 광경을 보다 보면 인연보다는 우연으로 소란했던 당신과의 하늘을 그려보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 "세상 끝 등대 3" 일부
아이는 이제 세상을 너무 잘 알아. 그래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경 쓰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쏟게 되었지. 아이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 애쓰지도 않지. 누구에게나 불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아무리 나쁜 사람도 마음 속에 존재한 불안은 어찌하지 못하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의 불안은 존재한다는 걸 아이는 이제 알지.
아이의 에너지가 나 "다이어리"에게 전해져와서,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해봤어. 그럼, 나 "다이어리"에게도 어느 정도의 불안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어. 그 불안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무언가를 이룩하려고 더 노력하게 되니까. 지금 나의 불안이 나의 미래를 더 크게 만들거라고 난 믿어. 그럼, 오늘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마음에 드는 시집이 또 나타나면 다시 돌아온다!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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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집과 산문을 읽어보자며 구입만 해놓았다가 이번에 꺼내 읽게 되었다. 시집 같은 산문. 산문 같은 시라고 해야 하나. 짧은 에세이임에도 느끼는 바는 달랐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 시인이 바라보는 시각.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느꼈달까. 마치 한 편의 긴 시집 같은 산문이었다.
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펴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14페이지)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18페이지)
천천히 읽자고 했다가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다 읽어버려서 안타까운 글들 이랄까. 시 같은 산문을 읽다보니 그의 시가 못내 읽고 싶어졌다.
가끔씩 에세이를 멀리하지만, 이처럼 시인의 산문은 시 같아서 좋다. 예고도 없이 불쑥 마음을 훔친달까. 산문도 이럴진대 시는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52페이지)
그를 가리켜 '시인 아이돌'이라고 한다지. 그의 시집이 궁금할 정도로 좋은 산문이었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문장들의 조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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