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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황량한 들판에 몸을 틀고 앉아 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집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은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와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며 그에게 영감을 선사했던 실존 인물을 그린 것이다. 작가인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보고, 크리스티나 올슨의 집에 가보며 그녀와 앤드루 와이어스의 후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리하여 실존 인물의 삶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소설을 구상해나갔다.
극중에서 이 그림은 '뒤틀린 다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손가락으로 흙을 움켜쥐고 들판을 기어가고 있지 않은가. 개밀과 큰조아재비가 자라나 있는 건조하고 황량한 벌판. 감추어져 있지 않으려는 비밀처럼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저 무너져가는 집...'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잿빛 하늘 아래 어딘가 불편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인의 표정은 우리가 볼 수 없지만, 그 몸짓에서 결연한 의지와 갈망이 느껴진다. 이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 사람의 뒷모습이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지, 얼굴에 스치는 표정들은 때때로 바뀌게 마련이지만, 무방비한 뒷모습이 그려내는 것은 더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그것은 외로움일수도, 쓸쓸함 일수도 있겠고, 삶 전체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과거를 거쳐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로 향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저자인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은 이 여인의 뒷모습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어 냈을까. 어떤 영감을 얻어 소설로 만들어지게 됐을까. 책을 읽기도 전에, 첫 장에 수록된 그림 한 장이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건조하고 황량한 벌판,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무너져가는 집,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아득한 창문, 구정물 색 하늘.. 하지만 이 그림은 들판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다. 화가는 그 그림을 집안의 방에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창조해냈다. 그건 그가 그림 속 여인의 삶에 대해서 공감했거나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인 크리스티나와 화가인 앤드루 와이어스 사이에는 묘한 연관성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병약한 아이였고, 고집이 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 열병을 앓고 난 후 거동이 불편해졌고, 답답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척추측만증으로 열두 살 때 수술을 받고 긴 여름 내내 석고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반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그는 아버지로부터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고, 그녀는 집안을 건사하는 법을 배웠다.
이야기는 그녀가 세 살 때인 1896년에 시작하는 과거와 그와 처음 만난 1939년부터 이어지는 현재가 교차 진행되고 있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녀에게는 세상의 전부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작은 조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고 미미한 존재이고,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세상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깨져버린 꿈과 약속을 딛고 지금까지 살아온, 캔버스 가장 자리까지 펼쳐진 세상의 중심에서 살고 있는 이 여인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가끔 가장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진실일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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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거의 끝나간다. 이 소설을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난 이유 덕분에 나는 주저없이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읽은 소설 중 단연 최고라고.' 뜨거운 여름이 아니라 추운 겨울날 만난 것 또한 행운인 것 같다. 겨울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참 좋았다.
이 작품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그림을 소재로 쓰여졌다.
바로 위의 그림이다.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집을 바라보며 주저앉은 이 여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누구나 궁금할 듯 하다. 저자 또한 그들 중 하나였으리라. 다른 점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이기에 이 여인을 소재로 이야기를 직접 써내려갔다는 점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크리스티나는 단 한 번도 결혼해 본 적이 없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평생 집안일에만 희생되어 온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병명을 알 수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병은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급기야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기구한 운명인건지 환경과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건지, 어쩌면 둘 다 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평생을 남들과 다르게 가족들의 수발을 들면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같은 운명은 아니지만 남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또 그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한없이 서글퍼지는 그 마음에 오롯이 감정 이입이 된 것이다. 나와 다르지만 어떤 점에서는 너무나도 비슷하기에.
위의 그림은 그런 그녀에게 매일 그녀의 집에 와서 그림을 그리던 앤드루 와이어스가 선사해 준 선물이다. 소설속에서는 그림 속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실제보다 훨씬 젊게 표현해준 것으로 나와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크리스티나가 어떤 모습이던 독자는 그저 그녀의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내면에 빠져들 것이다.
이 그림 하나로 한 여인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던 아름답고도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어떠한 교훈과 깨달음도 필요없다. 그저 인생이란 정답이 없고, 그 어떤 인생이던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는걸.. 그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결국 그걸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보답할 것이라고 믿는다. 바로 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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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넘기면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가 실려있다. 바람 부는 넓은 들판에 홀로 앉아 저 멀리에 있는 집을 향한 한 여인의 뒷모습.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 그림은 화가에게 영감을 준 실존 인물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아름다운 여성의 삶을 그녀의 시선으로 그려나간다. 이야기는 주인공 크리스티나의 과거와 앤드루와 만나게 된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어린 시절 열병으로 다리가 불편한 크리스티나는 그녀와 비슷한 아픔이 있는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를 만나게 된다. 닮은 점이 많은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을 알아본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독립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면서도 고독을 즐겼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저 세상이 자신을 남들과 같이 알아봐 주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평생을 보낸 언덕 위에 있는 집과 들판, 그 위를 덮고 있는 하늘과 지평선은 세상의 작은 조각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앤드루는 그런 그녀의 세상을 화폭에 담아낸다. 크리스티나가 앤드루의 그림을 봤을 때 그림 속 아가씨는 다른 사람 같았다. 젊어 보이면서도 늙어 보이는 여인. 그 여인의 모습에서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지나간 삶을 떠올린다. 신체적 아픔 때문에 사랑, 꿈 등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했지만 동정 어린 세상의 시선에 당당하게 맞서며 결코 지지 않으려 하는 그녀의 인생에서 연민과 강인함을 동시에 느낀다. 포기해야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들, 희망과 체념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삶. 그리고 그녀의 삶을 온전히 그리고 담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화가. 앤드루는 크리스티나가 오랫동안 세상에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 준다. 그녀 역시 남들과 같다고... 한 여인의 고단한 삶과 지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에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평생토록 자유를 그리워하던 그녀에게 그림으로 그려 줌으로써 세상의 중심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준 예술가의 마음에 감동받았다. 따스한 우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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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소재로 앤드루 와이어스와 작품의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 『세상의 한 조각』은 세상에는 저마다 감당해야 하는 짐이 있음을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어린 시절 몸이 약해 홈스쿨링을 했는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천재적인 감수성으로 영혼을 울리는 작품을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의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소아마비를 앓는 여성이다. 풀밭에서 단정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언덕 위의 집을 향해 기어갈 듯 앉아있는 모습은 비정상적으로 가냘픈 팔과 마비되어 뒤틀린 다리로 평범한 일상을 동경하는 절망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보인다. 아마도 작가는 평소 친분이 있던 작품 속 크리스티나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타인이 그녀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아픔 너머에 내재되어 있는 그녀의 감정을 끌어내 작품에 그려낸 것 같다. 배경 설명이 없어도 한 번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작품인 <크리스티나의 세계>지만, 베스트셀러 『고아 열차』의 작가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손으로 재해석한 명작의 비하인드스토리는 작품 이상으로 아름답고 섬세하다. 소설『세상의 한 조각』에서 크리스티나는 앤디가 그린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보고 '이건 세상에 띄우는 나의 편지, 세상은 내게 절대 답장을 보낸 적 없지만.'이라 생각하며 앤디에게 "다른 사람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걸 표현했네."라고 말한다. 그림 속의 들판과 하늘은 세상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크리스티나에게는 세상의 전부다. 마비된 몸과 나이 들면서 기력이 약해지면서도 가끔 젊은 아가씨로 느끼는 그녀의 바람, 태어난 집에서 탈출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녀의 세상은 제한적이지만 한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알아봐 주는 것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총명했지만 소아마비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었던 그녀의 삶, 동정 어린 시선으로부터 자신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고 외롭게 살면서도 동생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어진 그녀 때문에 동생의 인생마저 고립시켰다고 자책하는 크리스티나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 그녀가 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남들과 같다. 알아봐 주는 것. 그런데 보라. 알아봐 주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한 조각』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작품 속 주인공의 이야기이고, 크리스티나와 앤드루 와이어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었는데, 한 여인의 삶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긴 감동적인 스토리를 문학작품으로 읽고 나니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을 두 눈으로 감상하며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싶어진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뉴욕 MOMA 미술관에 가서 여운을 느껴보고 싶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매력적으로 느낄 테지만,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동적인 이야기에 매료될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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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 조각>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장편소설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내가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 곳, 단 하나인데 그 세상의 한 조각이라고 하면 어떤 부분을 나타내는 것일까?
? 어쩌면 수많은 '나'들의 '각자'라는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앤드루 와이어스의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처음 보았을 때, 제목 속 그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했다. 여인이 있는 이 황량한 벌판인가, 바퀴 자국이 나 있는 큰 집으로 통하는 길인가, 아니면 그 옆에 있는 작은 단층짜리 집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얇게 나와있는 저 뿌연 하늘인 것일까.
? 한 가지 더, 뒷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여인이 크리스티나가 맞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여인은 어떤 세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크리스티나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여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왜 이런 모습으로 이곳에 앉아 있는가, 절망의 뒷 모습인가, 욕망의 뒷 모습인가, 보이지 않는 그녀의 표정은 어떨까, 모든 것들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은 너무나도 가늘었고 심지어 땅의 흙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 그래서 <세상의 한 조각>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오! 역시 이 모든 궁금증은 나한테만 일어난게 아니었구나!'싶어서 반갑기도 했고, 작가의 이름이 크리스티나여서 혹시, 이 크리스티나가 저 크리스티나인가 의아해하며 작품의 년도를 찾아보기도 했다.
? <세상의 한 조각>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서 대부분의 실존 인물과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올슨의 자서전이 아닌 허구의 소설. 나의 궁금증은 작가에 의해서 풀렸다. 작가의 허구에 의해서 대부분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 이다.
?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티나 올슨의 삶을 통해서 내가 지금 존재하는 세상과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생각도 곰곰이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진실이란다, 크리스티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 너희 아빠가 무슨 이유에서 이 집을 찾아왔는지 몰라도 이제는 여기가 그의 삶의 터전이지." _p.55_
"성격이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 때문에 이런 생활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어쩌면 이 둘은 한데 뒤엉킨 바위 위의 해초처럼 뿌리부터 하나로 연결된 거라 서로 분리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_p.298_
? 작가 노트에는 와이어스가 삼십 년 가까이 자신의 뮤즈이자 영감이었던 크리스티나에 대해서 한 말들이 나온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부분은 그녀가 엉뚱한 곳, 엉뚱한 시점에 등장한다는 거였어요. (...) 크리스티나와 함께 있으면 많은 일이 벌어졌어요. (...) 그 인물의 외로움이 느껴졌어요.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일지 모르죠. 그건 그녀의 경험인 만큼 나의 경험이기도 했어요." _p.371-372_
? 와이어스는 크리스티나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를 표현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굴복하기를 거부하면 몸이 거기에 맞춰 적응하잖아요. ... 아주머니는 저랑 비슷하세요. 적응하며 지내고 계세요. 그래서 존경스러워요." _p.73-74_
?? <세상의 한 조각>은 이제는 거동을 거의 할 수 없는 46세 크리스티나 올슨의 집에 17살이 된 벳시가 22살의 와이어스를 대려와서 이들이 처음 만나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어린시절부터 차근히 지금의 이야기와 번갈아 가면서 서술된다. 그녀의 삶은 평범하며 단조로운 것 같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고, 와이어스의 표현대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형으로 서술된다. 이것이 특이하게 느껴졌고 원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도 현재도 다 지금처럼, 지금의 미래형처럼 이야기가 되어서 더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크리스티나, 그녀는 상당히 인간적이다. 그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가 짜증나리만치 단순하게 느껴진다. 내가 평소에는 감탄했던 부분들이 지금은 못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의 충실함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다름 아니고, 예의가 바른 건 그냥 순진한 거고, 도덕관념은 고지식한 잣대질인 것이다. (관점만 살짝 비틀면 사람들의 장점이 얼마나 금세 단점으로 전락하는지!)" _p.193_
"하지만 한 꺼플만 들춰보면 내 심장이 다 벗겨져 건드리면 아플 것처럼 느껴진다.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지만, 속으로는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유령처럼 하루하루를 표류한다." _p.256_
"나는 그런 그가 안쓰럽지만 이해한다. 한때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을 향해 계속 희망을 품는 건 괴로운 일이다. 잊어버릴 방법을 찾아야한다." _p.274_ ??
?? 자신과 이름이 같은 미술 작품 속 여성의 삶에 호기심을 느껴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작가를 통해서 이렇게 '크리스티나의 세계'가 <세상의 한 조각>으로 태어났다. <세상의 한 조각>의 표지 속 여인은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확대 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지만, 바로 앞에 살짝 보여지는 하얗고 노란 꽃에서 느껴지듯이 따뜻하고 보다 더 희망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이 책 표지의 그 느낌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크리스티나의 삶이었던 이 곳이 세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는 전부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내 머릿속 저 깊은 곳에서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제유법. 전체를 상징하는 일부. 크리스티나의 세계. 사실 이곳은, 이 집과 이 들판과 이 하늘은 세상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벳시의 말이 옳다. 이것은 내게 세상의 전부다." _p.362_
?? 크리스티나, 당신의 삶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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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엔 표지를 넘기면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그림이 담겨있다. 크리스티나 올슨은 실존 인물이다.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의 모델로 황량한 들판에 뒷모습만 보이는 여인이 저 언덕 위에 놓인 집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의 그림은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고, 애틋한 갈망을 표현한 거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 알게 된다. 저 그림 속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어쩌면 그냥 그림만을 보고 상상하는 것이 더 좋았지 않았나 싶은 마음 하나와 저 그림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마음 하나가 자꾸 부딪힌다.
"크리스티나, 인간은 끈기 빼면 시체야."
크리스티나에게서 배움과 다른 세계로의 길을 빼앗은 아버지의 결정이 있었다고 해도 그녀의 피에는 할머니 마메이의 모험심과 호기심 그리고 여행가의 기질이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면서 숨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다.
크리스티나에게 마메이가 계셔서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게 고맙다. 열병을 앓은 뒤 몸이 불편해진 크리스티나에게 세상이 열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코앞에서 그녀는 도망쳤다. 그때 그녀가 두려움을 떨치고 병원에 갔더라면 훗날 만났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나 마메이가 함께 갔더라면 크리스티나를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에 내내 떠다녔다.
학교 선생이 될 수 있었던 크리스티나를 농장에 발 묶어 놓은 아버지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면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나는 여기에 있고 그는 거기에 있지만, 우리는 하늘로 연결되어 있다.
월턴과의 한때는 크리스티나의 세상이 넓어지는 한때였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통로이자 새로운 꿈이었을 월턴.
남동생 앨버로와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집에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온다. 벳시의 남자친구 앤드루. 그는 거침없이 집으로 들어와 2층을 작업실로 삼았다. 크리스티나의 인생에 그녀를 조금이라도 진정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등장이다.
크리스티나의 지난 이야기와 현재의 앤드루 와이어스와의 이야기가 오고, 가며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불굴의 의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게 된다. 와이어스도 다리를 절었고 살피듯 크리스티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달리 와이어스는 처음부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대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아주머니는.... 시선 받는 법을 알아요. 아주머니는 남들 눈에 보이되.... 보이지는 않는 데 익숙해요.
앤드루가 정의한 크리스티나. 화가의 눈으로 본 크리스티나. 그리고 같은 불편을 가진 사람이 보는 크리스티나. 보이되, 보이지는 않는 사람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의 세계. 사실 이곳은, 이 집과 이 들판과 이 하늘은 세상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뱃시의 말이 옳다. 이것은 내게 세상의 전부다.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재현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모든 것은 왜곡될 수 있고, 미화될 수 있고, 온전히 전달될 수 없기에. 세상의 한 조각도 그렇다. 크리스티나 올슨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읽히지만 그녀의 실제 삶은 아름답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일거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기에 앨버로가 그녀를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아서 그 모든 것들을 지켜냈을 테니.
많은 행간을 이해해야 하는 이야기였지만 한 장의 그림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떠올린 작가의 집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인생에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다. 크리스티나에게 앤드루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앤드루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티나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크리스티나에 의해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새롭게 탄생되었다. 이렇게 연결되고 어이지는 사람의 인연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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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가 남긴 걸작 <크리스티나의 세계>에는 한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은 이 여성,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크리스티나는 몸이 불편하다. 의사들도 원인을 모른다. 고칠 수 없는 병이다. 그녀는 똑똑했으나 집안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고 아버지는 그녀를 집안 구석에 눌러앉힌다. 그녀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녀는 몸이 불편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휠체어는 타지 않았으며 말년에는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화가 앤드루가 그녀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들은 서로에게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남자친구는 그녀와 결혼할 것처럼 굴더니 결국 집안 좋은 여자와 약혼을 해버려 그녀는 동네에서 몸도 성치 않은데 남자에게 버림받았다고 불쌍한 여자가 돼버렸다. 홍어, 마녀 같은 단어들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는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알고 그런 연민이 너무 싫지만 또 한편으론 사람들의 관심과 이야기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걸 은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낡아빠진 집을 누군가 비싸게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호손집안을 지켜야 한다고 집을 못 팔게 했고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는 사기당해서 모은 돈을 다 날렸다. 어리석은 부모 때문에 자식 전부다 고통이다. 어릴 적엔 모르고 살았다지만 결국 하나 둘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집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했다. 크리스티나는 한 평생 집안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옷을 만들고 청소를 했다.
그녀는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앤드루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녀의 삶을 면밀히 조사했고 픽션을 가미해 소설이 탄생했다. 읽는 내내 마치 살아숨쉬는 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는데 실존 인물의 삶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 그런 것 같다.
몸이 불편하지만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독립적인 모습은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잘 나타낸다. 평생 미혼으로 살았고 낡고 문명을 비켜간 그 집에 마치 선사시대로 돌아간 듯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그곳이 세상의 한 조각이었으리라. 참 뭐랄까 자식들의 희생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서 안타까운 감정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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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 조각
미국의 명화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한 색다르면서도 신비로운 감상에 젖는 소설이다. 기존의 여러 그림과 관련된 영화가 연상되기도 했고 특히 작년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만큼이나 이 소설에 심취했다.
책을 펼치면 먼저 그림 한장이 접혀있다. 앤드루 와이어스의 걸작 <크리스티나의 세계>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명화를 먼저 감상하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멋진 경험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이 그림은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가 남긴 걸작이라고 한다. 황량한 들판에 혼자 남겨진 채 언덕 위에 자리한 집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팔은 앙상하고 다리는 뒤틀려 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 뒤틀린 다리는 장애였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 역시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소설을 읽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점이 바닥에 손을 그냥 얹고 있는게 아니라 풀을 움켜쥐고 뭔가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올슨으로 미국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다빈치와 모나리자의 관계는 여러 학설들이 있지만 이 그림의 크리스티나 올슨는 앤드루 와이어스와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며 그에게 영감을 선사하고 이 그림의 모델이 되어준 것으로 추저오디고 있다. 그런 실마리로 시작해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작가의 상상으로 풀어낸 픽션이었다.
“나중에 그가 말하길 내게 그림을 보여주기가 겁이 났다고 했다. 내가 그런 식으로 묘사되어 있는 나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뒤틀린 다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손가락으로 흙을 움켜쥐고 들판을 기어가고 있지 않은가. 개밀과 큰조아재비가 자라나 있는 건조하고 황량한 벌판. 감추어져 있지 않으려는 비밀처럼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저 무너져가는 집.”
픽션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왠지 실제라고 믿으며 읽고 싶었다. 그래서 더 몰입하고 즐겁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 세상의 한조각은 아마도 장애로 인해 그 좁은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만 살게 된 주인공을 의미하는 듯 하다.
메인주 쿠싱이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크리스티나 올슨은 어린 시절 열병을 앓은 후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활발하고 활기가 넘쳤으며, 삶에 대한 의욕과 동정받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가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를 처음 만난 건 벳시라는 아이를 통해서였다. 여름마다 쿠싱으로 휴가를 와 스스럼없이 크리스티나에게 다가온 소녀 벳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훗날 결혼하게 될 화가 앤드루를 크리스티나의 집으로 데려온다. 처음에는 크리스티나의 집을 그리고 싶어하던 앤드루는 어느덧 집안에 자리를 잡고 매일 작업을 하고 크리스티나와 남동생 앨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사이사이 대화체로 진행되는 대목들에서 한참을 머물게 하는 작가의 메세지가 인상적이었다.
“우린 저마다 감당해야 하는 짐이 있단다. 너는 이제 네 짐이 뭔지 알게 된 거야. 잘된 일이지 뭐냐. 앞으로 그것 때문에 놀랄 일이 없을 테니.”
“사람들은 저더러 사실주의 작가라고 하지만 솔직히 제 그림은 절대…… 사실적이지 않아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제거하고 그 자리에 저를 집어넣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냐, 너를 집어넣다니?” “그게 저만의 비밀이에요, 아주머니.” 그가 말한다. “저는 항상 저를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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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2014), <오블리비언>(2013), <타이드랜드>(2005)에 공통점이 있었다. 세 영화는 하나의 그림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 갸날픈 여성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다. <인터스텔라>와 <타이드랜드>는 거친 들판에 솟아 오른 낡은 저택의 이미지를 차용했고, <오블리비언>에서는 그림이 주인공들의 의지를 다지는 상징물로 등장한다.
화가의 이름이나 그림을 이전에 알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앤드루 와이어스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다. 추상화가 대세이던 시기에 끈질기게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구상화를 그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실존 인물인 크리스티나 올슨을 모델로 했다. 그녀는 샤르코 마리 투스 병으로 추정되는 신경계 질환을 앓아 움직임이 힘들어지고 중년에 이르러서는 기어서 이동해야 했다.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는 이웃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 덕에 유명세를 탔지만 크리스티나는 끝까지 외딴 시골에서 사는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지켰다.
작가는 거친 풀밭을 가녀린 팔로 디딘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무뚝뚝한 개인주의와 내면의 힘, 장애를 불사하는 도전 정신, 불굴의 의지"와 같은 "미국인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림의 모델 크리스티나의 삶을 소설로 살려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과 실제 인물 크리스티나를 구별짓고자 한다. 비록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소설을 썼다해도 소설로 표현된 인물의 내면이 실제 인물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을 읽은 독자 입장선 두 인물이 하나로 여겨진다. 꼼꼼한 사료조사로 구성한 소설적 현실이 실존 인물 크리스티나 올슨의 일대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외딴 시골집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여성, 불편한 몸에도 무엇엔가 기대려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기를 고집한 그녀가 작가의 문장으로 생생히 그려졌다.
소설은 1939년 크리스티나와 앤드루 와이어스를 만나는 시기와 그녀의 과거를 교차로 그려낸다. 크리스티나의 조상들이 어떻게 메인주 쿠싱에 정착하게 됐는지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병이 시작된 서너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을 돌봐야 했던 청소년 시절, 사랑하고 배신당한 후 동생 앨과 외딴 집에 칩거하게 되기까지를 들려준다.
몸이 불편했지만 자존심과 자립심이 강했던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녀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동정받기를 원치않았고 도움 또한 거절했다. 고생스럽지만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려하고 학교도 어떻게든 계속 다니고 싶어 한다. 그녀는 문학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아이였다. 학교에 계속 남아 선생님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기뻐한 것도 잠시 그녀의 부모는 크리스티나의 학업 중단을 결정한다. 가사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다. 자기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대가족의 집안일을 온전히 떠맡아야 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상처와 부상이 따라 다녔다. 마을 사람 일부는 친절을 가장한 동정과 감사함을 전제로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리곤 왜 자신들의 도움을 고마워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크리스티나는 그들을 인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들에게 장애인을 돕는 것은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므로. 크리스티나는 친절을 가장한 위선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앤드루 와이어스(이하 앤디)는 크리스티나를 대하는 태도가 스스럼없었다. 그 자신이 다리를 약간 저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앤디를 크리스티나에게 소개한 그의 부인 뱃시도 어린 시절 척추층만증 교정을 받았었다. 몸의 불편함과 그에 따르는 사람들의 시선, 태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세 사람은 금새 친밀함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앤디가 크리스티나의 집에 작업실을 차린 후 그녀는 "그의 눈을 통해" "집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모두 새롭게 인지"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판단했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앤디는 황량한 그 집을 "백 년 동안 그려도 절대 싫증날 일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티나 곁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동생 앨이다. 사랑을 만나 떠날 수 있었던 기회도 누나를 위해 포기한다. 엘이 포기한 삶은 그에게 상처가 됐다. 누나 옆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그의 나머지 인생 일부를 갉아먹었다. 크리스티나는 대가족의 가사를 돌보기 위해 미래를 희생했었다. 앨은 누나의 희생에 값하기 위해 사랑을 잃었다. 가족이 무엇일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인가. 다행인건 둘이 서로를 여전히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거다. 앨은 누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동생에게 미안해한다. 크리스티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앤디가 완성한 그림에는 "다른 사람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 표현돼 있다. "세상의 작은 일부분"이자 크리스티나에게 "세상의 전부"인 "집과 들판" 그리고 젊은 아기씨의 마음을 가진 그녀의 "바람과 망설임". 크리스티나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진처럼 선명하고 동화처럼 신비로운"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화가와 모델 사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읽는 일은 흥미롭다. 그림을 잘 읽는 또 다른 방법이다.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의 『세상의 한 조각』 은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해설하는 동시에 크리스티나 올슨이라는 장애인의 삶을 보여준다. 불편한 몸을 가진 그녀의 생각들을 기술한 대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희망과 절망, 낙관과 불안, 좌절과 체념 그 사이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행복들. 현실의 크리스티나도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있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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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열차>로 만났던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의 신작 <세상의 한 조각>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평소 친구와 이웃들을 모델로 그리는 앤드루가 실제 이웃인 크리스티나 올슨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벌판에 뒤틀린 몸과 앙상한 팔을 가진 한 여인의 뒷모습이 담겨있다.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았던 크리스티나 올슨은 자신의 장애를 휠체어에 의지하는 대신 하체를 끌어 기어다녔다고 한다. <세상의 한 조각>은 시대적으로 여성으로서 불리했고 장애로 불편한 몸으로도 자신의 삶을 강한 의지로 살아냈던 실제 주인공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된다.
작품은 1896년 어린시절의 크리스타나의 이야기와 1939년 현재를 살고있는 크리스티나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에서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가족들 사이에서 학업에 뜻이 깊었지만 여자는 배울 필요없다며 농가의 일손을 도우라는 아버지의 뜻에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크리스티나는 그저 할머니의 위로에 마음을 다독인다. 마을로 휴가를 온 하버드생 월턴과 사랑에 빠져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지만 끝내 극복되지 못한 격차는 상처로 돌아오고 주위의 호기심과 동정심이 그녀 주변을 둘러싸도 그저 자신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간다.
무엇이든 잘 해내는 여인 크리스티나는 남동생 엘과 대대로 살아온 그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점점 몸이 나빠지면서 거동이 힘들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 두신 휠체어에 앉는 대신 낭떠러지에 던져버린다. 마을에 방문하면서 친분을 쌓았던 어린 벳시가 어느 새 젊은 청년 앤드루와 결혼한다며 소개시켜주고 그렇게 크리스티나는 앤드루와 만난다. 마을의 풍경을 화폭에 담던 앤드루는 어느 날 크리스티나를 모델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고 완성된 작품은 <크리스티나의 세계>라 이름 붙인다.
크리스티나의 꿈, 사랑, 건강,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원하는대로 풀려가지 못했다. 절망하는 대신 수긍하며 받아들였고 견디기 힘든 시련과 시선에 무너지는 대신 당당하게 일어섰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던 크리스티나의 일생은 안쓰러웠지만 강한 의지가 돋보였다. 책을 읽기 전 먼저 그림을 봤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흥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본 그림의 풍경 하나하나, 크리스티나의 뒷 모습에서 깊은 사연과 함께 진하게 전해진다. 마치 소설을 통해 미술관에 걸려있는 한 편의 명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받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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