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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키워드의 대명사인 코로나19 덕분에 독서를 하더라도 바이러스와 연관된 주제를 다루는 서적을 많이 접하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문제와 앞으로의 정세, 정치, 과학 그리고 그것을 예견하는 소설을 읽어왔고 인문에도 어김없이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바이러스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꺼낸 책은 본 적이 없었다. 긍정적인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심지어 우리가 바이러스와 같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일이 살짝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사람들과 말을 하면서 겉으로나 속으로 바이러스 때문에~' 하고 분노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숙주에게 침투하여 그 세포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에게 전이되는 공포의 상징인 바이러스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준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생물은 박테리아가 살아온 화학적 변화의 과정이다. 저자는 원시 박테리아 중에서 특히 스피로헤타의 삶을 주목하고 있다. 스피로헤타는 자신보다 큰 진핵세포에 붙어 운동할 수 있는 편모나 섬모로 변형되어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유사분열의 시스템이 되었다. 진핵세포는 스피로헤타의 운동습성에서 비롯한 세포분열을 통해 상호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최초의 원생생물체를 등장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스피로헤타의 죽음이 머물러 있었기에 다시 태어나는 삶의 여정을 반복할 수 있었고, 다양한 기억의 전이적 구조물로 남겨질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대뇌피질에서 나오는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물질에도 스피로헤타의 습성이 남아있다. 뇌세포 속의 신경소관과 신호를 받는 수상돌기, 축삭돌기는 키네토솜의 미세소관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를 수용하는 단백질이 스피로헤타의 튜불린 단백질의 속성과 면역학적으로 유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곧 미세소관이 세포분열을 통해 사고하는 기능을 남기면서 사라지고 이는 우리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원초적 힘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숙주인 박테리아는 자신의 질서 속에 화학적 현상과 물리적 반응을 그대로 보관할 수 있는 DNA를 만들어준 바이러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옆의 미토콘드리아 역시 숙주세포에게 유익한 자기유지와 자기대사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게 도와주어 고마움을 표현한다. RNA나 DNA역시 바이러스가 모든 생명의 형태가 되는 단백질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 고마움을 표현한다. 바이러스는 곧 생명사를 이루어 낸 길이며, 뇌 회로에서 새로운 사유를 지닌 자아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자아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스스로의 자아는 바이러스의 속성과 정말로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아니 자아가 인류의 생성 이전부터 형성된 바이러스의 속성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아에 대해 인지하기 전부터 태초의 인류는 완전한자 뒤에 숨어 기생하면서 절대적인 힘을 숭배하였으며, 정복과 지배의 불안을 복사했다. 혼란의 자아는 종교의 거룩함 뒤에 숨어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사유를 복사하기도 했다. 때로 자아는 이성의 판단으로 승화된 도덕감옥에 기생하면서 도덕적인 타락을 선택하기도 했다. 지금의 자아는 절대적 사유를 복사하면서, 문명에 기생하고 현존재의 자아를 망각하며 허위성에 감염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결국 자아는 선택한 말과 행동을 가지고 세포 속에서 대사되고 기록되며, 이렇게 유전된 정보를 통해 자기유지를 하고 사라지는 감정의 연속성을 지닌 상징적 대체물의 바이러스로 보게 된 것이다.
자아는 무의식과 의식의 충돌 속에서 감정을 복사하여, 비물질적인 상징의 말로 대사하면서 세포 속에 기록되어 유전정보를 남기고 있다. 언어는 지식이 되어 인류를 여기까지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생명을 정의하는 자아의 언어는 탈종교적 세계관과 과학,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종교적 희망이 혼란하여 자신을 잃어버린 듯 하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세포속에 유전자를 단백질로 해석하는 생명의 언어보다 정교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살아왔던 흔적의 기록물이 DNA에 보관되고, RNA는 자기유지와 지기대사를 하는 과정 속에 새로운 아미노산의 리보솜에 다가가 새로운 유전물질을 번역한다. 이토록 진실한 생명의 순환은 미토콘드리아가 연소시킨 흔적을 비롯한 수많은 죽음의 기록이며, 진실만을 기록할 수 있는 생명의 언어로 탄생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통 시선이 집중된 지금, 바이러스가 제공해왔던 생명의 질서를 다시한번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호모사피엔스에서 시작된 인류의 짧은 역사는 바이러스가 가진 속성으로 자연에서 고립을 자초하면서 이제는 기계와 문명을 접하는 파괴적인 자아로 변해갔다. 새로운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자아는 모든 것이 자신의 사고의 결과물인 척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이 통계적이고 통제가능하다고 믿으면서 인류의 모든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떠들며 도전과 극복을 주장한다. 작가는 생명의 파괴를 불러온 자아의 선택으로 변한 지금의 인류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를 넘어 호모라피엔스로 바뀌지 않았는가 염려한다. 자아의 선택이 지혜롭다면 우리는 어째서 침략과 파괴를 자초하는 문명을 지니게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자아는 산업화, 문명화로 인한 오류로 가득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에관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에서 사고와 논리체계를 삽입한다. 아무리 논리적인 사유를 가지고 자아를 형성하여도 생명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으며 언어의 담술행위 주체는 말해질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한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종이라는 인간중심적 사유를 포기해야 한다. 자아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추상물임을 인정하고 자아를 통한 절대적 이성과 선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일을 멈추어야만 한다. 자아도, 바이러스도 있지만, 없어지는, 집에서 살지않고 기생하면서 사라지는 우주의 프랙탈 구조의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그리하여 우리는 없다가 등장하는 새로운 사유체계의 자아를 이해하면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역전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인간이 만들어낸 의미적 해석의 추상물이며 허구의 상징물이라는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자아는 몸으로부터 기생하여 몸이 없으면 정말 사라지는 존재가 될까. 환경을 생각하고 인간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도 파괴적이고 고립되는 자아 바이러스를 대입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잊은 채 문명에 빠져 스스로 고립되어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는 사람간의 만남을 억제하면서 우리의 자아는 더욱 방어적이고 나약한 삶으로 바뀐 듯 하다. 바이러스를 마냥 피해야하고 백신을 개발해서 없애야 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바이러스를 생명의 역동성을 지닌 촉매제로 이해하고, 생명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사유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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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 저의 『자아는 바이러스다』 를 읽고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벌써 2년째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전 세계가 백신주사를 통해 마지막 마무리를 향한 적극적인 대책과 추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본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기술과 현대 의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바이러스 출몰에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바이러스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나 우리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도 곤욕을 치루는 것을 보면 더욱 더 궁금증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 바이러스가 무엇이며, 왜 우리 인간과의 얽혀진 관계에 대해서 여러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알아 볼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아마 나 자신의 문제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 자신을 지배하는 중심 생각에 의해 나를 ‘자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정점으로 모든 것을 생활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팍팍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지금까지 주어진 책임아래 큰 대과 없이 마무리를 해냈다. 이제는 인생 후반부 시점에서 자아 성찰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상황에 대한 대비를 위한 차원에서 자아와 바이러스에 관한 정신분석 상담가인 작가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게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 유익하였다.
먼저 저자는 제 1부를 통해 위대한 사유를 가지고 나타난 문명의 인간이 지닌 자아를 들여다보고 새로운 삶의 사유를 위한 저자의 고민을 펼친다.
자아는 무의식과 의식의 충돌 속에서 감정을 복사하여 비물질적인 상징의 말로 표현하는 것을 정신적인 대사의 영역으로 해석하면서 세포 속에 숙주의 유전정보임을 [윤정]의 신경정신분석학적인 사유를 통해 밝히고 있다. 제 2부에서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다양한 생명체가 출현하기까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삶의 여정을 통해 생명질서 근원에 천착하며, 세포와 유전의 다양한 방식을 전개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유전자를 복사하여 새로운 생태계의 질서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숙주가 면역체계를 지닐 수 있도록 바라는 유전학을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자아’라는 특별함이 일개 코로나19 바이러스 하나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듯이 앞으로 바이러스의 삶처럼 살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은 멸종의 길을 선택 당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바이러스는 50만 년 전 인류가 태어나기 30억 년 전부터 활발하게 자유롭게 활동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사태가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 인류가 삼림의 파괴 및 오존층 저하와 환경보존에 힘을 쓰고, 침략적이고 약탈적이고 욕심 많은 생명의 파괴를 불러온 것은 인간 자아가 선택한 결과의 문제였다.
그 선택의 중심에 늘 정복과 지배를 선택한 인본주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점은 ‘질병의 자아’에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고, 사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여정에 동참한 결과물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경정신분석학이 가지는 질병의 임상적 결과를, 감정을 억압시키는 자아의 강박으로 분류, 분석한 자료들을 남기고 있다.
신경정신분석학은 질병과 몸의 질병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자아의 선택적 상황을 말로 글로 표현하며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경정신분석학은 ‘말하기 치료’의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자신의 질병과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바른 언어를 쓰고, 바른 말을 하면서, 언어와 말이 스스로 ‘백신’이 되는 언어를 선택하길 바라고 있다.
자아는 정신적으로 대사하는 형이상학적 비물질이다.
자아의 선택과 반응의 말은 텍스트에 불과하지만, 종교적, 의학적 생리학적인 해석과 거리가 멀다.”(서문에서) “자아는 언어의 기표와 기의에 매달려 있다가, 없다가 반복하면서 말로 표현하면서 사라지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바이러스인 것 같다.”(115p)
“자아방어에 따른 억압된 감정고착 속에 나타난 질병은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133p)
“병든 자아는 사랑의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고백인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욕망한다.”(145p)
저자만의 오랜 연구의 ‘신경정신분석학’새로운 중요성과 함께 바이러스의 삶을 통한 인간 자아의 새로운 통찰과 함께 자세를 가질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울러 함께 가는 세상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앞서가는 혜안으로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신 저자님께 깊은 감사말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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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자아가 바이러스라고 말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법도 하다. 이 책 "자아는 바이러스다" 는 정신분석가 윤정 저자의 자아탐구와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한 인간 삶에의 적응방식의 동일함을 소개하며 인간의 자아 역시 바이러스를 닮아 투사된 기제로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말한다. 자아는 자기 방어기제와 감정고착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현실적 투사를 이뤄내는데 자기유지의 유무에 따른 성공과 실패로 질병을 갖게된다고 한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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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바이러스다>, 쌩뚱맞는 제목이란 느낌이다. 저자의 의향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 책은 1,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자아의 변천사가 정리되어 있는데, 3000년의 인류문명사 속에 숨어 있는 자아를 찾아보는 흥미로운 고찰이다. 더불어 철학사의 궤도를 지나온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살펴보면서 자아의 형성 과정과 변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생각하는 자아와 라캉의 말하는 자아를 '윤정'의 현상적인 자아로 전이시킨 이론으로 관념적인 무의식을 현상에 접목시켜 발전시켰다. 그리고 현상적 자아를 세포핵 DNA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역동성에서 찾아내어, 세포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자기유지한다는 현상적인 정신분석이론을 제시한다. 책 제목에서 자아는 "숙주에 기생하여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의 연속성을 지닌 자아의 흔적을 세포의 생명질서에 복사하여 사라져 버리는 상징적인 대체물의 바이러스"(p128)라고 설명하고 있다.
2부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입장에서 세상 이야기를 한다. 빅뱅부터 하이퍼사이클, 원시세포 및 박테리아의 출현의 박테리아 관점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인간의 몸속에 박테리아의 흔적이 있슴을 알려준다. 이렇게 바이러스가 온 생명체의 구성에 메신저 혹은 부품 역할을 담당하면서 발달시켜왔슴을 상기시켜준다.
아래 문구는 바이러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변한다.
톱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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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통상담가이자 시인, 정신분석가 윤정 저자의 신간 <자아는 바이러스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바이러스의 속성을 인문학적 성찰로 연결한 윤정 저자의 관점이 흥미롭게 전개되는 책입니다.
영혼으로, 이성적 판단의 주체로 불리는 자아에서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속성을 발견한 <자아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불편한 감정이 들어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바이러스가 가진 유전자 놀이와 닮았음을 발견합니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갈등을 질서 있게 잡아가려는 욕망적인 자아. 1부 '자아 바이러스가 고백하다' 편에서는 자아를 바이러스의 생태적 습성과 연관시켜 분석합니다.
외부의 자극적인 환경을 분석하여 반응하는 과정을 거치는 자아.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로 자아를 편집하고 다른 이에게 투사하며 존재의 이유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자아의 선택이 이성적 판단에 의존한 절대적 질서이고 싶어합니다.
말과 행동, 미생물, 뇌로 연결되는 커넥션에서 생성되는 자아의 속성을 들여다볼수록, 자아라는 표현이 생긴 역사를 들여다보며 시대마다 그 기표가 달랐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아 바이러스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늘 대기의 화학적 변화에 민감하게 작용해 빛과 물을 가지고 아미노산을 새롭게 배열하며 유전물질을 나누어 주는 촉매제입니다. 결국 박테리아와 박테리아 사이에 유전물질을 나누어 주는 생명의 질서도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겁니다.
불안한 자아는 종교의 거룩함 뒤에 숨기도, 예술 뒤로 숨기도, 이성의 판단으로 승화된 도덕감옥에 기생하기도 하면서 자아의 의미가 편집됩니다. 그 과정에서 종교, 예술, 철학, 과학 등 문명의 흐름에 따라 자아는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며 감염됩니다.
존재적 의미를 묻는 유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이기에 인간의 자아를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며 죽음마저 생명임을 아는 현존재의 존재자임을 바란 하이데거의 자아론이 있었던가 하면, 효용과 이익이라는 실용성의 가치를 자아의 성취로 해석하는 현대인의 자아처럼 자아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문명 속에 억압당한 자아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습니다. 언어를 통한 인간 욕망을 분석한 라캉에 관해서는 윤정 저자의 다른 책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에서 더 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생각하는 자아, 라캉의 말하는 자아 등 다양한 사유로 전개된 자아의 속성은 윤정 저자의 '현상적 자아'에 이릅니다. 순간순간 말로 표현되는 삶의 궤적에서 자아가 선택한 감정 억압의 크기에 따라 몸과 정신의 건강 상태가 달라집니다. 백신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말. 윤정의 현상적 자아는 모든 생명의 여정을 고민합니다.
자아는 인간의 몸에 기생하여 무의식과 의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복사하기에 자아를 상징적 대체물의 바이러스로 마주한 <자아는 바이러스다>. 병든 자아는 두려움과 다양한 통증의 과정을 드러내는 아픈 현상이라고 합니다.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감정고착의 원인으로 발생한 질병은 새롭게 선택한 자아에 의해 질병의 자아를 완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게 윤정의 신경정신분석학입니다.
"병든 자아는 사랑의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고백인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욕망한다"- 책 속에서
바이러스 관점에서 인문학적 상상을 넓혀 생명의 현상을 표현한 '생명 바이러스가 고백하다' 편에서는 우리의 자아가 바이러스의 삶을 통해 인문학적으로 더 나은 생명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윤정 저자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바이러스의 시점에서 바이러스 탄생을 들려주는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살아온 대로 기록된 물질인 생명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여정으로 생명 질서를 해석합니다. 숙주를 향해 끊임없이 사랑으로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수많은 물질들을 알게 될수록 가장 우월한 종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만을 꼬집게 됩니다.
생태계의 변화에 따른 대기권 속에서 화학변화에 작용하여 새로운 아미노산을 만들어 온 바이러스. 바이러스 하나가 인류 문명을 흔들고 있기에 움직이는 화학물 구조물인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죽음의 상징이자 퇴치해야 할 산물로 여겨져왔습니다.
하지만 <자아는 바이러스다>에서 살펴본 자아와 바이러스의 닮은 꼴은 새로운 인본주의를 고민하게 합니다. 인간이 선택한 자아의 사고방식의 한계는 인간중심적 사유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과 바이러스 간의 대충돌 속에서 인간의 자아는 또 한 번 새로운 사유를 해야 할 기로에 섰음을 짚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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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계속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윤정 작가님은 왜 자아가 바이러스라는 걸까? 자아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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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제목인 『자아는 바이러스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흔하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이 ‘자아’라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창에 ‘자아’를 입력하게 엔터키를 친다. 당장 떠오르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 결국 자아란 그 기원이 내부이든 외부이든 상관없이 반응을 필요로 하는 껍질을 가진 내부가 필요하고 그 껍질을 건드리거나 파괴하려는 외부의 작용이 필수적이라는 걸 생각해볼 수 있었다. 즉 외부 작용과 내부 반응의 발현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아’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보고 있자니,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의 개념이 생각났다. 인간은 단지 유전자가 대를 이어 생존하기 위한 이동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자아는 그것을 포괄하거나 초월하는 개념처럼 읽힌다. 처음 자아가 발현되는 순간부터 인류의 발전 양상에 따라 새로운 속성들이 더해지거나 새로운 속성으로 변해가는 자아의 초상을 저자가 여러 장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처음 인류가 다른 생명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조금 숨돌릴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자아라는 것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불을 발견하고, 추상적인 가치를 생각해내게 되고, 종교란 것이 생겨난다. 특정 인물을 신격화한다거나 영웅화하는 것, 신화는 자아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오랜 시간 자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후의 과정이 이 책에서 흥미롭게 소개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지는 기독교 중심의 자아 정체성은 그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되고 마는데, 이때 구원자처럼 등장하는 인문주의의 영웅들, 데카르트, 흄,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등으로부터 나온 철학은 자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다.
홉스와 칸트, 루소,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의 무의식,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지성사가 ‘자아’를 재정의하거나 발전시키는 과정을 묘사하는 이 책의 흐름은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의 낯설음을 잊게 만들며, 좀 더 지적인 몰입감을 갖게 해준다.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의 정신과 이성 중심의 사고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자아가 경험과 측정, 검증이라는 과학적 사고방식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의미를 드러내는 서술 과정도 이 책을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저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변화된 세상의 양상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은데, 나는 좀 의견이 다르다. 사실 과학과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좀 더 상황을 잘 파악하게 되어서 그런 것이지, 과거에 존재의 근거 자체에 의심과 불신, 체념을 가지게 한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은가. 유별나게 코로나에 그렇게 의미를 둘 필요가 있을까? 우리 시대의 사건이기에 더 크게 와닿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무슨 종말론이나,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거나 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 혹은 인식은 동시대에 대한 과한 의미 부여, 혹은 과잉된 시대 의식이거나 일종의 교만일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자아는바이러스다, #윤정, #북보자기, #리앤프리책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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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주는 느낌이 철학적이며 관련 주제 또한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의 변화상이나 개인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요인, 일상과 비일상의 구분이나 회복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고 더욱 빠르게 급변하는 사회의 모습에서 어떤 미래를 준비하거나 대응해야 하는지, 쉽게 정의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가볍게 보기에는 또 다른 위험이나 변수가 있을 것 같아 불안한 심리가 작용해서 그럴 것이다. 책의 저자도 자아와 사유, 바이러스는 형태로 이를 일반적인 접근이나 상식적인 의미로 풀이하기보단 더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자아라는 의미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정의는 단순하다. 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굳이 사유의 개념을 적용해서 바이러스나 생명의 구조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명 중심의 사고나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및 기준, 각자 다른 사람들과 마주할 때, 어쩌면 삶의 자세나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역사를 경험했고 이런 경험적 과정을 통해 오늘 날과 같은 결과적 형태, 나름의 사회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존재와 등장으로 인해 우리가 만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았고 결국에는 새로운 형태의 변화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또 다른 경각심과 위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특정 한 분야의 독점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연결성, 확장성을 바탕으로 해당 문제나 사건에 대해 접근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하는 것이다. 물론 책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며 철학적인 느낌이 강해 쉽게 읽으며 이해하기에는 한계점도 분명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이에 대해선 나름의 정의나 평가를 통해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생명 중심의 사고, 존중의 법칙, 하지만 바이러스가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입장을 통해 어떤 관점에서 다르게 해석하거나 생각해 봐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사회문제를 대하는 사회학적인 관점, 그 밑바탕에는 인간학에 대한 고찰과 사유의 정신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결과에 주목하고 있고 이를 활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일정한 메시지와 논리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흔한 바이러스 관련 도서도 아니며 그렇다고 무겁기만한 주제의 나열과 반복을 강조하는 책도 아니다. <자아는 바이러스다> 읽으면서 어떤 형태로 바라보며 생각해야 하는지 가볍게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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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생각보다 장기화되면서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백신이라도 빨리 나와야 된다고 이야기들을 하곤 했었는데 막상 백신이 생산되니 사람들은 또 도대체 언제 그 백신을 맞을 수 있냐고 합니다. 이제는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시기가 차츰 다가오니 또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꼭 백신을 맞아야 하냐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을 꼽지요. 저 역시도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일 것 같고요.
어쩜 자아를 바이러스라고 규정할 생각을 했을까요.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싶을 정도로 제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헷갈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아라는 개념에서 사유가 많이 필요한 것처럼 철학과 연관된 부분들이 많아서 나를 제대로 탐색한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말과 행동, 미생물, 뇌로 연결되는 커넥션에서 자아 바이러스가 생긴다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시각처럼 보이고 색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그 개념들도 쉽지만은 않았고요. 자아를 인류가 언제부터 인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정확한 자아의 개념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요.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철학과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 철학에 대한 호기심도 한층 더 생기더라고요. 학창 시절 배웠던 수많은 철학자들과 자아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다시금 정리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소크라테스부터 칸트까지 그리고 오랫만에 다시 들어보는 데이비드 흄까지 그들의 사상이 다시 기억이 나더라고요.
이제 다시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질병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질병이란 자아의 물리적 반응과 화학적 발생의 표현이라고 하니 질병이 무엇인지 그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암을 비롯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질병들이 자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아니 이러한 질병들도 그 원인을 알고 들여다볼 수 있겠더라고요.
코로나 시대와 바이러스 그리고 자아. 굉장히 색다른 시각으로 자아 바이러스를 살펴볼 수 있어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