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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 있습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다산책방에서도 <오늘의 젊은 문학>이란 이름으로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론칭했다. 어쨌든 국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읽을 거리가 풍부해져서 기쁜 일이다.
그 역사적인 첫번째 작품은 나푸름 작가의 소설집이다. 2014년 등단작인 <로드킬>부터 2020년 발표한 단편까지 총 아홉개의 작품이 엮여 있고 이름 만큼이나 신선하고 멋진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SF도 아닌 것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재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이런 스타일은 유지되지만 이야기의 소재는 다채로워서 즐겁게 읽었던 소설집이었다.
표제작이면서 제일 앞부분에 배치된 <아직 살아 있습니다>는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같은 사무실 직장동료끼리 얼굴을 안보고 지내다 한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직원도 있다는 설정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알고보니 근미래에 아바타 같은 실리콘 더미가 사무실에 있다는 의미였다.
이 소설이 기괴했던건 주말에 장례를 치룬 동료 박 대리가 시스템 오류로 실리콘 더미에서 로그아웃되지 못한 채 월요일에 출근해 있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더미는 계속 업무를 하고 있고 퇴사처리가 안된다는 전개였다. SF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살짝 꼬아서 풍자하는 듯했던 점이 신선한 매력이었다.
아홉가지 이야기 모두 어느 하나 빠질게 없었는데 그 중 나푸름 작가의 등단작인 <로드킬>도 인상 깊었다. 살인과 외도까지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이면서도 아내의 비밀을 수십 년 동안 부정하고 끝내 기억에서 지워냄으로써 매일 아내에게 밥상을 받는 남편의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전개가 일품이었다.
그외에도 사고로 잘린 손이 돌아와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는 설정의 <윌슨과 그의 떠다니는 손>, 어금니가 흔들리면서 시작된 부부의 다툼이 대화를 겉돌며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틈>, 중국인 부부, 목요일 사교클럽, 책무덤, 한남동에는 점집이 많다 등의 작품들을 재밌게 읽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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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쓴 9편의 작품들이 담겨있는 소설집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삶이 행복이 아니라 그저 살아내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루틴은 지겹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가도 어떠한 보이지 않는 외부의 방해가 오면 지키고 싶어한다. 매일 반복되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 하는 삶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이 절망적이어서 때로는 깨고 부수고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또다른 낯선 진실을 만나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다수에서 소외된 환경에서 다시 다수에 속하기 위해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결국 삶은 살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묻는다. "그저 '있는 것'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9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이기적인 마음을 마주한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의미를 내세우고 있을까? 무엇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일까? 생각보다 우리는 삶을 삐걱거리고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많은 요인들과 함께 힘겹게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단단한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 이 글은 @dasanbooks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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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언젠가 과거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면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인간보다 더 지능화된 로봇들이 전쟁을 하는 모습이라거나 나를 닮은 더미가 나를 대신해서 직장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들.
박대리가 죽었다. 분명히. 그래서 상가집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직장에 있던 그의 더미는 여전히 살아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열심히 일만한다. 하긴 어떤 더미들은 오류가 발생하여 쓰러지기도 하고 인지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박대리의 오류를 고쳐 그가 떠나도록 해야하는데 정말 이러다가 언젠가 더미들이 산사람대신 삶을 이어가는 날들도 오지 않을까.
잘린 왼손이 살아있다고 믿는 윌슨. 실제 손이 잘렸어도 어떤 사람들은 가렵고 아픈 증상을 느낀다지 않은가. 윌슨의 왼손은 살아남아서 온갖 짓들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이제 윌슨은 이미 잘린 왼손을 죽이기 위해 고심한다.
'목요일 사교클럽의 여자'는 늙어가는 일을 몹시 두려워한다. 과거 결혼생활을 했을 때에는 출산후 몸매가 망가지는게 싫어서 낙태를 하기도 했다. 새로 만난 남자 장과 기분좋은 데이트를 즐기고 침대까지 갔건만 여자는 충격을 받는다. 왜? 장이 너무 일찍 불을 껐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각한다. 아 내몸이 너무 늙어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정말 그랬을까.
문득 이 글을 쓰는 서재방의 책들을 둘러본다. 왜 남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화려한 서재에 꽂힌 책을 아들이 읽지 못하도록 했을까. 책을 읽지 않고 전시만 했던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지혜로워질 아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알 수 없다.
다소 난해한 단편들을 보면서 미래의 어느 시대를 갔다온 것도 같고 잠깐 꿈을 꾼 것도 같은 경험을 했다. 어쨌든 2022년 첫 달,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아직 살아있음이 증명이 된 셈이다. 내일은 알 수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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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지역 사교 클럽에 나가는 여자가 있다. 한 번의 이혼경력이 있지만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 쉰을 앞둔 또래의 여자들과 차별성을 보이는 여자. 그녀는 그곳에서 40대 중반의 오와 또래의 교와 친하게 지낸다. 회사나 집안에서 멈춘 인간관계를 좀 더 다양하게 확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고 시창작 수업이나 와인 클래스 수업을 받기도 한다. 모임의 주최자는 자신의 외삼촌인 장을 그녀에게 소개해 준다. 오랜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온 장과 집을 함께 보러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한다. 둘 사이의 관계가 모임에서 알려지자 오와 교는 마음에 없는 조언을 해준다. 이를 테면 "그런 남자라면 좀 더 젊은 여자를 만나지 않나요?"라는 말. 여자의 조언 아래 장의 집이 완성되고 새 집에 초대를 받은 여자는 어떤 선물을 사갈지 고민한다. 그들의 저녁은 이전의 데이트보다 완벽했다. 밤이 깊어지자 여자는 목욕을 하고 장의 침대로 갔다. 그런데 장은 너무도 예의 바르게 의무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제 불을 꺼도 될까요."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그냥 불을 근 것뿐이잖아요."같은 말 그녀는 장과 보낸 하룻밤을 떠올렸다. 식사 때 나눴 던 대화만큼의 온도도 가지지 못했다. 여자는 어쩌면 장이 너무 일찍 불을 끈 것이 문제의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울은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을 비췄다. 그들은 모두 약점을 감춰주는 옷들로 몸을 싸매고 있었다. 살이 파이고 늘어나, 함께 늙어가는 남편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면해 버릴 그런 모들.p.218 모든 것들은 어떠 연관 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여자는 그것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얼굴이, 몸이, 결국에는 주름질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평생을 걸쳐 그 모든 것에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여자는 실패했고 이제는 자신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온 생을 걸쳐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p.223 나푸름의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틈'이다.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까지 지운 여자는 어느날 자신을 침범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불을 너무 일찍 꺼버린 남자의 태도에 그녀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침입한 작은 틈이 인간을 어떻게 침몰시키는지리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는 언제까지라도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처럼 자신의 죽음에서 소외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p.27 생활도, 미래도 없는 이곳에서 그저 '있는 것'을 과연 사는 것이라 할 수는 있는 건지, 그가 아닌 나는 도무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p.30 거대한 연극 안에서 너는 주인공이었으니까. 네가 배우에 불과했다는건 이제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해. p.166 남자는 자신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간 그날을 후회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혹시 자신이 오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어하기도 했다. p.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