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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입기(肉入期)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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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한국인의 육류 1인당 섭취량은 53.7kg이다. 같은 때 쌀 소비량이 57.7kg 임을 감안한다면 이제 한국인은 쌀만큼 고기를 먹는 셈이다. 그러나 불과 저 통계에서 50년 전만 해도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3kg에 불과했다. 50년 사이 10배가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1인당 쌀 소비량이 136.4에서 57.7로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급격한 육류 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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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한국인의 육류 1인당 섭취량은 53.7kg이다. 같은 때 쌀 소비량이 57.7kg 임을 감안한다면 이제 한국인은 쌀만큼 고기를 먹는 셈이다. 그러나 불과 저 통계에서 50년 전만 해도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3kg에 불과했다. 50년 사이 10배가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1인당 쌀 소비량이 136.4에서 57.7로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급격한 육류 섭취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어떻게 고기에 적응했을까? 이 책이 주목한 존재는 바로 '불고기'이다.

이 책의 구성을 보자면 전반부와 후반부,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에서는 불고기의 유래와 불고기의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 후반부에서는 불고기의 변천과 우리나라 육식 문화의 변화를 연동해서 서술하고 있다.

작가가 이런 한국의 육식 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불고기를 꼽은 이유는 불고기라는 음식이 다른 음식과 비교했을 때 용어가 가리키는 개념이 유연하다는 데 있다. 불고기라는 이름부터가 불에 구운 다양한 고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또한 불고기라는 음식이 태동할 때부터 야키니쿠라든지 소육(燒肉), 군고기 등으로 혼용되었던 점도 있다. 다른 고기 음식들이 가진 용어가 명확했던 것에 비해, 불고기가 가진 의미의 불명확함은 오히려 확장성으로 작용해 다른 규정되지 않은 음식들을 포괄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특히 너비아니의 의미를 포섭하는 과정이 흥미로운데, 다른 개념과 달리 너비아니는 용어의 의미와 범주가 명확하고, 국어사전에 등장하여 기록을 통해 용어가 포섭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의 국어사전에 따르면 너비아니는 사전마다 등재되어 있는 데다 의미도 '쇠고기를 얇게 저미어 저붓한 양념을 부어 구워 먹는 음식'으로 유사한 반면, 불고기는 국어사전에 '(숯불에) 구워서 먹는 짐승의 고기'라고 용어에서 설명되는 조리 방법이나 재료의 모습도 불명확하고, 수록되는 빈도도 간간이 보일 뿐이다. 이는 1958년 편찬된 방신영의 《고등요리실습》 너비아니 편에서 짧게 언급되는 것처럼, 당시 인식에서 불고기는 너비아니의 '속칭'이자 '상스러운 부름'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 - 80년대 중반까지의 국어사전에서는 너비아니의 등재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고 불고기를 설명하는 데 대표적인 고기로 '소고기'를 드는가 하면, 아예 소고기를 저며 구운 고기라는 설명이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사전에서는 너비아니와 불고기가 복수 등재되기 시작했고, 2010년에 편찬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너비아니와 불고기의 설명에도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불고기의 설명에서 '얄팍하게'라는 수식어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국물 불고기의 등장으로 인해 너비아니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고기의 확장된 의미를 뒤늦게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사전 안에서의 변화는 너비아니의 상스러운 호칭으로 불리던 불고기가 너비아니의 뜻을 흡수해 너비아니를 옛말로 밀어낸 것을 거쳐, 너비아니를 불고기의 특정한 형태를 지칭하는 하위 문서로 포섭했다고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 같은 변화를 더 선명히 보여주는 것은 조리서 내에서의 너비아니와 불고기의 언급과 조리 방법에 대한 변천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조리서에서는 불고기에 대한 언급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무렵 조리서에는 모두 '너비아니'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 1950년대에서야 너비아니의 부록으로 등장하던 불고기는 1970년대 이후의 요리책에서 독립적인 명칭으로 등장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너비아니의 기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온 것은 사전과는 다른 대목이긴 하지만, 1960~70년대 이후로 사람들 사이에서 너비아니의 의미를 불고기로 바꾼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한식의 고기 문화를 주로 다루면서 전반부에 언급한 불고기의 의미 확장을 연동 지어 설명한다. 불고기의 등장과 육식의 도입을 밀접한 관계로 본 것이다. 그전의 한식에서 고기를 활용하는 방법은 탕(湯), 국(羹)에 가까운 형태였다. 이 과정에서 현대의 생고기 구이를 거쳐 스테이크까지 소비하는 문화가 오는 것은 분명한 변화 없이는 이뤄지지 않을 일이겠지만 그 변화가 일어나는 분기점을 명확히 구분 짓고 그에 따라 시기를 정의(定義)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분기점은 불고기가 태동할 때 주요 무대였던 요릿집의 탄생과 광복 이후 전골냄비를 뒤집은 모양을 본떠 나온 국물 불고기의 출현, 서울 올림픽 이후 양념구이 대신 생등심-생갈비 등 소고기 구이의 부상, 마지막으로 IMF 이후로 고기 문화의 패권을 거머쥔 삼겹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불고기의 전성기는 이런 고기 문화의 성쇠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불고기가 전성기일 때 한식의 고기 문화는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었고, 한식에서 고기 문화가 한창 꽃피울 때 불고기는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불고기가 더 많은 육식을 원하던 한국인들에게 마중물로써 작용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이 점에서 봤을 때, 한국 육식 문화와 불고기의 역사를 단번에 관통하는 분기점은 광복 이후 '국물 불고기'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지금까지도 불고기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서울식 국물 불고기의 등장은 알고 보면 1700년대의 전철(煎鐵, 고기를 볶거나 전을 부칠 때 쓰는 무쇠 그릇)을 원류로 하는 19세기의 전골 요리와 그전까지 석쇠나 직화를 주로 이용하던 불고기 요리의 접목이었다. 이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고기 등의 식자재난으로 인해 불고기를 만드는 데 이전처럼 양질의 고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석쇠 불고기의 경우에는 고기 외 부재료 없이 고기의 맛으로만 승부를 보아야 하기에 소고기 등심과 안심 등 최고급 재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1950년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물 불고기는 채소 등 부재료의 사용이라는 부분과 석쇠에 비해 낮은 가격, 그리고 밥과 더 어울리는 등의 장점으로 불고기의 인기가 폭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 점은 1960년대 이후로 불고기 판, 육절기, 석유풍로 등 다양한 도구를 촉발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중산층에서는 한 달에 1-2회 정도 먹는 것이 권장될 정도의 범용성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간장에 잰 채 구워내는 요리에 '불고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열풍이 불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가지를 간장에 재어 구운 요리에도 가지 불고기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라고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렇게 낮은 진입장벽이 육류 소비가 절정에 달하는 1980년대 이후로 불고기의 퇴조를 불러왔다. 국민 경제수준의 증가와 수입산 소고기의 많은 유입은 과거 비용 탓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등심이나 안심, 갈비 등의 부위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따라 구이용 생고기 소비가 증가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무렵 석쇠 불고기 대신 국물 불고기로의 전환이 완료되었던 불고기에 사용되던 부위는 석쇠 때 사용되던 등심이나 안심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지고 양이 많은 목심이나 앞다리, 설도, 우둔살 등으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불고기 맛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라 이 이후 불고기버거 등 2차 요리의 재료로 활용된 것은 사실이나, 이 이후로는 불고기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내내 경제성장과 더불어 내내 상승 일변도이던 한국의 육류 소비는 21세기를 겪으며 정체기에 빠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점을 관통하던 IMF 후폭풍과 광우병 논란, 그리고 조류독감 등의 문제들은 1970년대 이후로 알음알음 퍼지던 삼겹살의 인기를 확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2001년 당시 육류 소비의 패턴에서 쇠고기 소비가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는 갤럽의 통계다. 이런 소고기 소비의 침체는 불고기의 퇴조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 광양식이나 언양식을 포함한 석쇠형 불고기의 재등장으로 불고기의 반등을 도모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공적일지는 미지수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불고기만을 덜 소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대를 전후로 식품 업계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바로 '비건'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권에 대한 보호라든가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에 대한 반감, 성인병 예방 목적 등등 다양한 사유로 인해 20대를 기준으로 번지고 있는 비건 열풍은 더 이상 육류 소비가 상승세를 이어나가는 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이다. 이는 20세기 내내 화두였던 육식의 대중화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자, 과도하게 부각되던 식탁 위의 육식에 대해서도 재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육식이 단순히 맛만으로 식탁에서 주도권을 잡지는 못할 것이다. 육식은 이제 건강과 환경 부분에서도 자신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어쩌면 '어향'이 그러하듯, '불고기 맛'과 '갈비 맛'이 불고기나 갈비라는 음식 자체보다 더 많이 활용될지도 모른다. 이미 불고기 맛 콩고기는 상용화된 지 오래지 않은가. 불고기를 비롯한 한식의 육식은 이제 변화의 길 앞에 서 있다.

r*******6 2023.01.1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