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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를 읽자는 주제로 내 책 원고에 한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시 읽기 실천으로 시집을 들춰보던 중 이벤트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블로그 이웃님이신 iseeman님의 신간이다. 작년 가을쯤 책을 내셨던 것 같은데 몇 달 만에 다시 신간이라니 놀라웠다. 나의 20대 시절엔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끼고 살았고, 오랫동안 시와 멀어졌다가 다시 함민복, 장석남, 문태준, 김선우, 허수경 시인 등 바쇼의 하이쿠, 작년 11월에는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만났다. 시에서 완전히 멀어지진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띄엄띄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어보라고 권해 준 덕분에 시를 즐겼던 예전의 추억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를 많이 들려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적어도 한 계절에 1권의 시집을 읽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인용되는 시들은 모두 30편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의 시는 20여 전 전에 한차례 선보였던 원고이며 여기에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서 썼다고 한다. ≪다시, 시로 읽는 세상≫이라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다시(多時), ‘많은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고 시인의 삶까지 엿볼 수 있는 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인과 시들이 나와서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 에 대한 가이드가 나와 있다. 전에 어떤 글에서 시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을 본 적 있다. 저자도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으며 무수히 많은 ‘모범 답안’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산문과 시의 비교를 말하는 문장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산문 쓰기는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것에 비유되고, 시 쓰기는 발효시켜 술을 빚는 것에 비유된다.”(P14)
중국 청나라의 시인인 오교(吳喬)의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산문은 밥이고 시는 술이 되는 셈이다. 같은 재료인 쌀이 발효되어 술이 된 것이 함축의 미를 지닌 시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시의 특성을 알게 되면 산문과 달리 음미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 보자. 1편의 시에는 저자의 에피소드와 함께 시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 맨 처음에 나오는 시는 김소월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이다. 소개된 시들 중에는 가요로 불린 시들도 꽤 있어서 정겹다. 시는 노래고 노래는 시도 되니까. 국어시간에 배웠던 김소월의 시는 특히 전통적 민요조라거나 정한(情恨)을 노래했다는 특징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이 시에 반영된 것이기에 무조건 민족의 정서를 한(恨)으로 특징 지우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매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리뷰로 소개할 시는 그동안 알고 있던 친숙한 시 외에 예전에도 아주 난해하게 생각되었던 시인의 시와 이번에 알게 된 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고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엇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거울>
고교시절 국어책에 나왔던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 띄어쓰기 무시는 물론 비슷한 말을 반복해 놓은 듯한 시를 보며 어안이 벙벙하던 기억이다. 이렇게 글쓰기의 규칙에서 벗어난 시를 읽어내려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하는 것이 일차적인 독법이라고 한다. 기존의 문법 규칙을 벗어나는 새로운 형식은 ‘절망’을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문학적 ‘기교’라고 했다. 과연 해설을 따라 시를 반복해서 읽어보니 난해하게 보였던 시가 환해진다. 거울을 매개로 한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심상을 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난해한 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왠지 매력적인 시로 다가와 <오감도>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시인의 이 시는 제목은 알고 있었는데 처음 접했다. 제목 느낌으로는 서정시인가 했었다. 어떤 이는 이 시를 접하고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인이 된 이도 있었다.(어떤 리뷰에서 접했다) 영화 상영 전에 어김없이 볼 수 있었던 애국가를 들으면서도 이런 시가 나오는구나, 감탄했다. 일렬, 이열, 삼렬 하는 군대용어를 등장시켜 독재 정권의 억압을 드러내어 후련하고도 씁쓸한 웃음을 웃게 한다. 시인의 관찰력과 통찰이란 참 대단하다. 시의 매력이란 그런 것 같다. 처음 접할 때 아주 난해한 시도 있지만 한두 번 읽다 보면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가 있다. 문학 중에 가장 효율적인 장르가 시가 아닐까. 아주 짧은 문장 속에 핵심을 숨겨놓는다. 독자는 시와 행간에서 그것을 읽어내며 의미가 환해지면서 희열을 느낀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도 좋았다. 인간의 감정을 소재로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처음엔 어려운 듯 느껴졌는데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니 그림이 그려진다. 시장에서 귤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귤을 사면서 싸게 샀다고 기뻐하는 사람, 누군가 얼어 죽었는데 무관심했던 사람들. 어느 한쪽이 기뻐하면 다른 한쪽은 슬플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시라고 할까. 한마디로 더불어 살자는 호소가 짙게 느껴지는 시였다. 그리고 나도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서 야채를 사면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 보았다.
오랜만에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듯 시를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난 국어를 좋아했다) 김용찬 저자는 현재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가사, 조선의 마음을 담은 노래≫, ≪18세기의 시조문학과 예술사적 위상≫, ≪교주 병와가곡집≫,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등 다수 있다. 저자는 시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시 해설서를 읽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시는 왠지 어렵다는 생각에 멀어졌던 독자들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어떻게 시를 읽을 것인가, 한 편의 시에 삶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배경을 잘 풀이해주고 있어서 산문에서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시와 친해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시 독법 가이드가 되리라 믿는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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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5월의 어느 주말. 작년 가을에 이어 딸아이와 반 친구들의 인천대공원 나들이에 운전사 겸 보호자 자격으로 집을 나서며 책 한 권을 들고 갔다. 아이들이 대공원에서 놀고 있을 때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읽은 책은 김용찬 교수의 <다시, 시로 읽는 세상>이다.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고 틈틈이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편중해서 읽는 편인데, 특히 시 분야는 거의 읽지 않는 내가 서른 편의 시를 담은 <다시, 시로 읽는 세상>을 회사에서 도서 대출(도서 구매 신청도 했다)까지 하며 읽은 이유는 현재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는 저자 김용찬 교수님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고전문학 작품을 쉽게 풀어쓴 저자의 저서 몇 권을 유익하고 재미있게 읽고난 후 새 저서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이유다. 내가 시를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언급했지만 학창시절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단으로 시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시를 찬찬히 음미하기 보다는 시의 구조나 배경 등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을 암기하듯 공부를 했으니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시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시로 읽는 세상>에는 총 서른 편의 시를 담고 있는데 학창시절 시 해설처럼 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독자들이 시와 좀 더 가깝게 다갈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서른 편의 시 중 학창시절에 배운 시도 있고 이번 독서를 통해 처음 만난 시도 있는데 인상 깊은 몇 개의 시를 리뷰에 담고자 한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내 님의 무덤의 풀이라도 태웠으면! - 김소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책의 첫 장에 나오는 시로 김소월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이다. 지금은 헤어진 옛 님을 그리워하며 가슴 절절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작품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 님과 이별을 했으나 님은 죽어서 무덤 속에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탄식하는 내용이다. 당시 일제강점기였기에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시를 해석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과 거리를 두고 읽어내며 일반 독자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시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문득 첫사랑이 떠올랐다(이 리뷰는 아내가 모르는거로...). 대학시절부터 사회 초년생까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지만 서로 감정을 표현하는 타이밍이 엇갈려서 첫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각자 삶의 터전에서 예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 만약 그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조금은(아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왜 저자가 1장의 소제목을 "추억으로의 여행"으로 정한 지 알 것 같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時)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
서정주의 대표 시인 <자화상>이다.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시를 제대로 음미한 것은 이번 독서를 통해서 처음인데 천한 종의 신분이었던 아버지와 집안 내력을 숨김없이 표현하며(애비는 종이었다) 시작하는 시는, 곤궁한 삶에 대한 시적 표현(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과 자신을 비유하는 대담함(병든 수캐마냥)만 봐도 시인의 탁월한 시적 언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시였다. 학창시절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외우고 다닐 정도로 서정주 시인의 시를 좋아했다. 국화꽃이 피는 과정(힘든 과정을 거치지만)을 그렇게 아름답게 표할 수 있을까? 세월이 많이 흘러 시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아직도 시의 첫 구절인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는 여전히 입에서 맴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서정주 시인의 친일 행위와 독재정권을 찬양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과거의 행적은 이육사나 윤동주, 조지훈 등 문학인으로서 의무를 다한 시인들의 삶과 대조를 보인다 하겠다. 그렇기에 다른 장에 담고 있는 <새벽 두시>의 김지하 시인(1970년대 대표적 반체제 저항시인이었지만 독재자를 찬양하는 등 변절한다)과 함께 그들의 삶과 작품을 분리해서 평가해서는 안 되겠다.
시인은 자신의 세계관을 속에서 작품을 창작하기에, 삶과 작품을 결코 분리해 논의해서는 안 된다. 그의 시적 재능이 찬란하게 빛나는 <자화상>이나 <국화 옆에서>와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을 일제의 전쟁터로 내몰았던 <마쓰이 오장 송가>나 독재자 전두환의 생일에 비친 <처음으로>와 같은 시들도 서정주의 작품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 p.88
오늘 아침에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천상병, <나의 가난은>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은 주당이자 기인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읽은 <나의 가난은>에서도 시인의 천진난만하고도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시다. 천상병 시인은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한 후 부산직할시장의 공보실장으로 재직하고(자유로운 성향 탓에 2년 만에 관두지만) 시 문학 뿐만 아니라 평론에서도 두각을 나타날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이었으나 동백림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6개월동안 옥고를 치루고 선고유예로 석방이 된 이후 30여년 간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기인적 행동들은 전기고문 등 모진 고문의 후유증이 원인이라 하겠다. 아무튼 <나의 가난은>은 시인의 안빈낙도의 삶을 잘 표현하는 시라 하겠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불안해 할 잔돈을 갖고 있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마음(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과 아무 조건 없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자연물인 햇빛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에서 그의 낙관적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은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며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시의 매력을 마음껏 느끼며 아이들과의 대공원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로 읽는 세상>를 읽으며 리뷰에 언급한 시 외에도 김영란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조지훈의 <낙화>,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등 차근차근 다시 음미하고 싶은 시들이 많았다. 책의 제목인 '다시( 多時)'는 20여 년 전에 한 차례 세상에 선보였던 원고를 다시 펴낸 의미도 있겠지만 책에 수록된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다양한(많은) 시를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의 이런 바람은 학창시절 이후 시집은 고사하고 시 한 편도 제대로 읽지 않는 내가 이 책을 읽은 계기로 책 속에 담은 시 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시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을 미루어 볼 때 어느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시와 친해지고 싶은 독자라면 시중에 나온 시집이나 시 해설서보다는 이 책을 먼저 읽기를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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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읽는 세상> 김용찬 저 휴머니스트/ 2021년 5월 24일 "서른 편의 시와 함께 하는 문학 여행"
1. 들어가며
‘시’는 어떤 의미일까? 학창 시절에 나는 시를 읽으면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시는 그저 나에게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억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암호’같은 글이었다. 그래서 시를 공부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고, 시를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처럼 시는 나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이를 먹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느 순간 시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시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시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 학창 시절 끔찍이 싫어했던 시들은 과연 나에게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전히 그 시들은 암호같이 어렵고 아무런 감동도 없는 글일까? 그래서 이 책 『다시, 시로 쓰는 세상』 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다. 이 책 속에 담긴 서른 편의 시들 중 대부분의 시들이 내가 학창 시절에 공부했던 시였고,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시인들이었다. 그 당시 그 시들과 시인들은 나와 관련 없으며, 오직 나의 수능성적 향상을 위해서 알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당시 아직 어렸고 인생 경험이 없어서 그 시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입시라는 압박으로 인해 그 시들을 음미하고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책 속의 서른 편의 시들을 정말 꼼꼼하게 읽고 충분히 시를 감상하면서 읽었다. 정말 다시 시들을 공부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김용찬 교수님의 쉽고 상세한 시에 대한 분석과 설명으로 인해 나 또한 그 시들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그 당시 이 책과 같이 자세하고 쉬운 설명들을 곁들인 책이 있었다면, 그렇게 힘들게 시들을 공부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까지 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다시,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쓰고 마음에 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저자이신 김용찬 교수님의 집필 노력과 시에 대한 애정에 감사드린다. 그러면 ‘서른 편의 시들과 함께 하는 삶과 문학’ 속으로 들어가보자. 2. 시 속으로
우리는 시를 왜 읽을까? 학창 시절, 시를 공부하면서 내가 항상 하던 질문이었다. 왜 이렇게 이해하기도 어렵고 암호 같은 글을 읽어야만 할까? 시를 읽어도 도대체 아무런 감흥도 못 느끼는데 말이다. 저자의 경우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은 학창 시절의 연애편지를 쓰던 경험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직접 말로 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는데, 시가 바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어느 날 나태주 시인의 시집에서 시 한구절을 읽었는데, 그 시구절이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그 시구절에 내 마음이 모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 한 구절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이렇듯 이제는 시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 시 한 구절이 어떻게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속의 시들을 통해서도 그런 시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상 깊었고, 힘이 되었던 몇 편의 시들을 소개해본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의 풀이라도 태웠으면!
김소월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시인 김소월 시인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이다. 김소월 시인하면 <진달래꽃> 만 알고 있었는데, 이 시를 읽는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 <진달래꽃>에도 님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데 이 시 또한 그렇다. 이 시 마지막 시 구절인 ‘무덤의 풀이라도 태웠으면’에서 님에 대한 사랑으로 님의 무덤을 덮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사랑하는 님과 이별했을지 모른다. 정말 ‘세상 모르고’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사랑하는 님은 어느덧 죽어서 무덤에 묻히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사랑했던 님의 무덤에 가서 화자는 지난 세월을 반성하고 되돌아본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뒤, 먼 훗날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떠올려 이 시를 읽는다면 이 시가 더욱더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그리고 송골매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 작품을 음미하면 김소월이 느꼈던 그 마음의 상처와 후회를 더욱더 잘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송골매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노래를 올려본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각자의 사랑의 추억 여행으로 떠나는 것은 어떨까. <유튜브 동영상: 송골매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b8DYvf-o0s
자식이 부모 먼저 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라고 하는데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은 어떨까. 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부모의 아픈 마음을 느껴보도록 하자.
이 시의 화자는 20대 후반의 젊은 아버지이다. 어린 아들이 아마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나보다. 지금은 의술이 발달이 되어서 폐결핵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폐결핵으로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 아마도 화자의 아들도 폐결핵에 걸려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나보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시의 화자는 잠을 못 이루고 유리창을 바라보면서 어린 아들을 생각한다. 경계로서의 유리창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과 화자의 위치를 구별 지으면서 유리창 밖에 존재하는 그 아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말로 할 수 없을텐데도 이 시속의 화자는 그 슬픔과 비통한 심경을 시적 언어로 절제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런 절제 속에서 더욱 큰 슬픔과 절망, 비통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시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역사적 현실과 상황을 반영할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문학으로서 그들의 저항을 보여준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 시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의 시들은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는 것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다. 그들은 문학인으로서 그들의 일본에 대한 저항과 독립 의지를 시를 통해서 나타내었다. 이육사의 <절정>, 한용운 <복종>, 윤동주 < 서시>,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이 시들을 읽으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조선 민중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독립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강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 독립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이육사 <절정>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로 시인 이육사는 중국 북경의 감옥에서 해방을 앞둔 1944년, 모진 고문을 받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시인 이육사야말로 '자신의 삶과 시대 의식을 일치시킨'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천상병 시인하면 <귀천>이라는 시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귀천>은 특별하게 기억된다. 학창 시절, 시를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할 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만큼은 어린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항상 시는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그 시만큼은 쉽게 이해가 되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슴 속에 느껴졌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리고 이 시<나의 가난은> 또한 <귀천>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상을 넉넉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낙천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찌 세상이 이렇게 좋게만 보일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낙관적인 자세로 인해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고 하나 나는 천상병 시인의 이런 낙관적인 인식과 태도를 배우고 싶다. 시를 쓰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실제 그의 삶 속에서 실천하다가 정말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을 이 시를 읽으면서 다시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3. 나가며
내가 읽어서 재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작품이 되는 것이다. (p.12) 좋은 시란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언어로 기록되어야 한다. 또한 윤동주의 경우에서 보듯, 머리로만 장작하는 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체화되어 녹아 있을 때 그 감동의 폭은 더욱 커진다. (p.19)
이 책을 통해서 정말 시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었다. 저자 김용찬 교수님 말씀처럼 '내가 읽어서 재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라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이제까지 나는 시를 제대로 느끼고 공감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한 시에 대한 비평과 분석에만 의존해서 그 다른 사람들아 본 시선으로 시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 시들은 나에게 죽어있는 시였다. 그래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시선으로, 나의 느낌으로, 나의 가슴으로 시를 보려고 한다. 내가 이 시를 읽고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그 시를 천천히 음미하고 그 시를 느껴보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 스스로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시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기 보다 내가 시를 재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가 될 수 있도록 관련된 내용으로 먼저 생각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 시 구절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설명해서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이 책 속에 담긴 30편의 시들을 천천히, 꼼꼼히, 하나하나 읽어본다면 시가 우리에게 주는 힘과 그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학창시절 시를 억지로 공부해야했던 사람들에게, 시를 읽어도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서른 편의 시와 함께 하는 삶과 문학 이야기를 통해 진정으로 시를 즐기고 아울러 자신의 삶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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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_050
지은이: 김용찬(예스블로그 아이디 iseeman 님) 출판사: 휴머니스트
들어가며~~
이런 마음으로 신청을 했더랍니다. 정말 시를 읽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건지 작가의 의로를 알기 어렵고 단어들 또한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들도 있으니 시는 정말... 재미없는는 문학이었습니다. 제게는요.
그런 제가 시필사를 하면서 조금씩 시와 가까워지고 소박하지만 생각할거리를 많이 준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시가 어려운것만은 아니구나를 최근에 알게 되었지요. 이 모든것도 다 예스블로그, 리뷰어클럽 활동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합니다. 꾸벅~~
시를 해석하고 분해해서 낱낱이 파헤치는 접근이 아닌 시를 마음으로 읽고 느끼고 이해하도록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 편안하게 읽을수 있었습니다.
옛 학생 시절에 읽으면서 배웠던 시들도 있고(물론~~ 국어, 문학시간에 배웠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요 ㅠ.ㅠ), 처음 만나는 시들도 많았습니다.
한편 한편 소중하게 읽었습니다. 다만, 아직 마음의 눈이 떠진것은 아닌지라 시로 읽는 세상의 충분한 맛을 다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30편의 시 중에서 맘에 닿았던 몇편을 손글씨로 써보고 부족하지만 나름... 그림도 그려봤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말랑거림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나 봅니다. 역시 글로 표현하기는 제가 너무 부족한지라...
책속으로~~ 30편의 시가 어떤것이 있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목차
아.. 맞습니다. 딱 제가 저런 마음이었죠. 시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요. 밑줄 쫙~~~!!! 동그라미 땡~~~!!! 이라는 유행어가 생각나네요.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너무나도 친절하셔서 중요한 내용에는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칠하고 때론 볼펜 색깔도 정해주셨죠. 그렇게 색깔별로 칠해가며 읽었던 시 중에서 사실.. 기억에 남는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이 구절이 딱 떠오르는데.. 사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검색했네요. 조지훈의 시 <승무> 입니다. 아.. 부끄러워라.
저에게 시는 밑줄 그어 가며, 색색의 형광색 펜칠을 해야 했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서 시 읽기의 '맛'과 '멋'을 다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말하고는 싶습니다. 그러면 된거 아닐까요? 아.. 작가님이 아쉬워하실려나?
아직 시도 읽기 전인데 이렇게 프롤로그 부터 맘을 건드리는 문장이 마구 쏟아집니다. 내가 읽어서 재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으면 그것이 나에게 의미있는 작품이 되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고 좋은 작품이겠죠. 그래서 책에 대한 평가도 독자들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일수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누구는 엄청 감동받았다고 하나 나에게는 감동보다는 식상한 내용도 있고 남들은 별로인 책이 내겐 인생책으로 다가올때도 있고요.
아 여기서 작가님의 필력이 느껴졌습니다. 예스블로그에 올려주시는 리뷰를 읽을때마다 느꼈던 느낌이랄까요? 저는 문장이 길지 않으면서(간결하지만)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전달되어지는 이 느낌이 참 부럽고 놀랍습니다. 저처럼 문장을 길게 주저리 쓰는 사람은 따라가기 어려운 정말 본받고 싶은 능력입니다.
대학원때 논문 쓰면서 한 문장이 2-3줄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작가 김용찬 교수님의 문장이 읽기가 참 편안하게 씌여졌다고 느껴졌습니다. 역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시라 다르군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는 머리로 읽어내는게 아닌, 가슴으로 읽어보고 느껴보려고 했다.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지만 분명 읽으면서 머리를 끄덕임과 함께 내 마음을 움직이는 시들이 있었다.
물론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시가 예뻐써, 옛 추억이 떠올라서, 짧아서 좋았던 몇 개를 손글씨로 써봤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리고 김용찬 교수님의 설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나의 시골집 앞마당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적 시골 마당에 펼쳐놓은 참깨 털이를 할머니의 일손을 돕는게 아니라 호기심에 나도 하고 싶다고 졸라서 내 키보다 몇배나 긴~~~ 참깨 털이 채(긴 막대기 끝에 여러 가닥의 줄이 달려있던 걸로 기억된다)에 질질 끌려가듯 참깨를 털었던 나의 모습,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 시골집이 떠올라서 시를 읽으며, 그리고 시를 읽어주는 글을 읽어가며 웃음이 지어졌다.
할머니의 일이 더 많아져서 혼자하는 편이 나을진데, 어린 손녀딸이 참깨를 털어보겠다고 찡얼거리니 어쩔수 없이 시켜주는 것이지요. 당신이 혼자 하는게 훨씬 수월하고 빠르죠. 일도 못하는 손녀가 하겠다고 하면 그래 하라고 하시지만 뒤치닥거리 할게 더 많은것을.. 그때는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냥 참깨터는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제 어릴적 모습이 떠오르면서 할머니도 내가 흐트러 놓았던 그 수많은 참깨 주머니(모가지)를 손을 하나씩 털어내셨을 그 수고로움과 사랑의 마음을 오늘에서야 깨닫습니다.
이 시을 읽으면서는 첫 1연의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라는 부문만 감동이었다. 그리고는 사실 다른 연의 내용은 크게 다가 오지 않았는데 역시나 시를 읽고 알기위해서는 설명을 읽는 것도(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자가 날을 꼬박 새웠다는 것을 시를 읽으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날을 꼬박 새워 가며 바라보는 떨어지는 꽃,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 슬픔을 마지막 연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에 담고 있다는 것을,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난 뒤에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시를 읽고 필사를 하면서 흩날리는 꽃을 보면서, 소멸하는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을 나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웃기지만, 그리고 그림 같지 않지만 나의 추상화(?)가 탄생했다. 잉크가 번진것은 결코아니다. 나름 바람의 결을 따라 떨어진 꽃잎과 나뭇잎을 손가락을 직접 그려본것이다.
소멸의 슬픔과 아픔 뒤에는 새롭게 찾아올 생명(열매)을 기대하지만 그럼에도 떠나보내야 하는 그 마음, 아쉬운 마음이 시를 통해 전달된다.
많이도 읽어 봤던 <모란이 피기까지는> 저자인 김용찬 교수님의 설명을 옮기고 싶었으나 어찌 풀어가셨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라 추천하면서 저는 모란을 그리다 그리다 망쳐 내는 좌절을 맛보며 결국 그려내지 못한 모란위에 살포시 장미꽃 스티커를 붙여가며 모란을 담고 싶어했던 마음만 남겨봅니다.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다리겠노라 할하며 기다림과 좌절 그리고 다시 기다림의 반복의 감정을 담아낸 시인처럼 저도 '모란이 그려지기까지' 좌절의 마음을 딛고 일어서보렵니다.
나가며~
시를 읽는 마음, 시를 대하는 태도, 시를 바라보는 눈을 조금 열어준 책입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니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완전히 다 이해하면서 작품을 읽어내려갈 수 없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시인은 이 구절을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간걸까? 하고 한번쯤 질문해 보며 읽고 내안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을듯 합니다.
공부하는 시도 어려웠지만 또 다시 마음을 열고 만나는 시도 쉽지는 않을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 시를 좀 만나봐야겠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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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읽는 세상 _ 김용찬 이 책에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국어 교과서 속의 시인들과 시들이 수록되어있다. 나는 시를 초등학교 때 부터 좋아했고 시집을 사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가장 시와 멀었던 시기가 있다면 바로 고등학교 때다. 그 때는 시를 즐길 수 없었고 그저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시어에 함축된 의미를 밑줄 치고 필기하고 외우기 바빴다. 선생님께서도 분명 수업중에 시대배경과 관련해 설명을 해주셨겠지만 재미도 없었고 시험을 위해 머리에 욱여넣기 바빠서 스스로 궁금증을 가지고 하나하나 찾아보는 능동적인 공부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 그 시절 시를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무척 궁금해졌고, 꼭 읽어보고 싶었다.
다시 읽어보길 잘했다.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그 시절 시는 너무 좋았다. 진짜 너무 멋있었다. 나는 문학은, 특히 시는 읽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든 자유로워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같은 시어도 다르게 와닿는 게 당연하다. 같은시도 내 마음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딱 하나의 답을 외우라고 해서 싫었다. 물론 시험을 치려니 답이 있어야겠다만... 이 책에 나오는 시들을 하나하나 감탄하면서 읽었던 건 숨겨진 의미를 떠나 그냥 글자 그대로만 읽어도 아름답고 멋있는 시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저자가 조곤조곤 시인에 대해 얘기해준다. 시인의 성장배경이나, 그 당시의 사회배경들(전쟁, 일제치하), 그런것들을 이야기하듯이 설명해주어 자연스럽게 시에 녹아 있는 의미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저자가 이 시, 이 시인이 왜 좋았으며 또는 왜 실망하게 되었는지 같은 것들도 이야기해줘서 훨씬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그저 교과서에서 달달 외웠던 것들만 생각하고서 그 시절 시들을 너무 싫어했던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잠깐 실망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던 나는 정말 칭찬해야지. 어렵지 않게 다시 공부한 것 같아서 기분도 좋고 뿌듯하다.
나는 특히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서정주<자화상>,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정희성<저문 강에 삽을 씻고>, 곽재구<사평역에서>, 정호승<슬픔이 기쁨에게> 가 특히 좋았다. 서정주 같은 친일활동을 하고도 부끄러움이나 반성이 전혀 없었던 몇몇 문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시적 재능만큼은 놀라워서 다소 아쉽기도 했다.
/ 아마도 많은 사람이 문학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나 혹은 '경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단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단으로 배웠던 탓이 크다. 시험 대상으로서의 문학 작품은 정담을 찾기 위한 분석의 대상일 뿐이다.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단지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배우는 묺가 작품이 학생들에게 무슨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 (p.12)
/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이 우리의 고유한 정서라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의 문학사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작품들의 다양한 정서를 애써 무시하고, 일부 작가와 작품만을 근거로 한국인의 정서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할 것이다. (p.25 김소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시인도 사람이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지고, 감정적으로도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보니 같은 시어일지라도, 작품에 따라서 전혀 상반된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p.57 정지용, 유리창1)
/ 이용악은 왜 이처럼 어려운 독해가 필요한 방법으로 시를 지은 것일까? 이 당시는 일제의 수탈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고, 민족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의 발표도 엄격하게 제한되던 때이다. 따라서 주인이면서도 일제로부터 주권을 강탈당하고, 오랑캐이지 않으나 오랑캐와 같은 처지로 전락한 당시 조선 민중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p.95 이용악, 오랑캐꽃)
/ 당시에 활동했던 문인 대다수가 일제의 탄압으로 자연이나 생명과 같은 추상적인 주제의 작품을 창작하고 있을 때, 이용악은 상징적인 수법으로라도 민족의 현실을 고발하고자 했다. (p.95 이용악, 오랑캐꽃)
/ <서시(序詩)>를 비롯한 윤동주의 시들에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그려본다면 '부끄러움'이라는 표현은 외려 윤동주가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반성하며 살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p.110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 청록파 시인들의 작품은 치열한 현실사회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런 평화로운 모습을 통해서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잘 보여준다. (...) 하짐나 이들 작품을 두고 당대의 엄혹한 현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단지 자연으로 도피했다는 냉정한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가 일제의 가혹한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조지훈을 비롯한 청록파 시인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이처럼 우리말의 사용은 물론 문학적 표현을 하는 것에서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p.114 조지훈, 낙화)
/ 이제는 우리 문학사에서 뚜렷한 성과로 자리 잡은 '노동 문학'은 박노해라는 한 노동자 시인의 지속적인 시작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한때 '얼굴 없는 시인'으로, 또 '노동 해방의 전사'로 기억되던 그는 오랜 기간의 도피와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독자들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필명인 '노해'가 '노동 해방'의 준말이라는 것도 이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p.207 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