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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만 유명한 시인이었습니다. 내게는 어떤 공유도 없는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그의 시집<너의 하늘을 보아>를 읽으며 그를 조금 내 안에 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서평으로 읽었어요. 나를 붙잡던 ‘소멸하는 독서’라는 한 문장으로 인해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는 것이 좋겠다 싶어 독서 모임 첫 책으로 추천도 했지요. 푸른색 표지의 두꺼운 책을 보고 역시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말하는 소멸하는 독서는 어떤 것일까요?
시인이며, 사직작가, 혁명가라고 저자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죠.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 받고 환히 웃도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어요.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 침묵 정진 속에 광활한 사유와 독서, 집필을 이어가며 새로운 혁명의 길 찾기를 멈추지 않았고,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습니다. 그 후 20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 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어요. 고난의 인생길에서 자신을 키우고 지키고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고 말합니다. 책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짧지만 여운을 깊이 남기는 문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어요.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시인의 따뜻한 마음과 평화에 대한 마음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900페이지에 가까운 두께지만 글이 많지는 않아 읽기에 부담은 없어요. 하지만 짧은 글이 쉽게 읽히지 않는 깊이와 사유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길이 잃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걸어라고 당부하는 첫 페이지를 읽으며 쉽게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어요. 저도 제 마음에 당부를 합니다. ‘마음아, 천천히 걸어라. 책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p12) 온전한 문단들이 이루어진 것은 서문밖에 없습니다. 이 서문을 통해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들과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서문이 너무 좋아서 서문을 따로 필사해야겠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라고 해요. 아무리 많이 읽고 알아도 삶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독서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 독서를 이용하는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 스스로 소멸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끄러웠지요. 늘 제가 하던 것이 책으로의 도피였으며 순간적인 마취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합리화하며 위로하죠. ‘책이라도 읽잖아.’라고. 그 책이 지금 저의 삶에서 어떤 흔적들을 남겼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요. 그냥 도피나 마취의 목적이던 적이 많았으니까요.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는 말을 읽으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두렵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들이 이어질지 상상조차 안되니까요.
내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내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다. (p33) 이 말을 읽는 순간 그동안의 상처들이 한순간에 이해되었어요. 다정한 남편, 배려심 많고, 말이 잘 통하는 남의 남편들을 보고는 늘 상처받았거든요. 왜 인지도 모르고, 그냥 잘해주는 남의 남편들 이야기에 부럽기도 했지만, 늘 상처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 글을 읽자 번개처럼 깨달아졌어요. ‘그랬구나! 가장 욕망하는 것이 남편의 사랑? 존중이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또한 남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지적 성취를 볼 때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죠. 어떤 모임에서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고요. 그것은 내 안의 욕망들 때문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과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었죠. 그 욕망들이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늘 상처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상하려고 할 때 나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떤 욕망으로 인해 상처받는지를요. 어쩌면 아주 조금이지만 이것이 삶으로 살아내는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온몸으로 살아낸 하루는 삶의 이야기를 남긴다.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하루는 살아도 산 날이 아니다. (p151) 살아도 산 날이 아닌 날들을 무수히 흘려보냈어요.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를 반복해서 보내면서 나만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운동하고, 책 보고, 자고의 연속이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아주 큰 벼슬처럼 여기며 살아도 산 날이 아닌 날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 의지도 의욕도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견디고 버텨야 했지요. 누군가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책임지고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나를 빼고 상대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내 속에서 내가 없어지는 아우성과 몸부림을 모른척하면서요. 그러다 깨닫습니다. 무언가를 남기는 하루, 무언가를 하는 하루가 아니라 나로 온전히 존재하며 비슷한 일상을 살아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의미 있는 하루라고요. 의미를 찾는 것, 어떤 일들에 의미를 두는 것, 모두가 내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비슷한 하루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들을 길어 올리는 중입니다. 더 오래 더 잘하기 위해 오늘은 쉬어가는 길이라고 천천히 마음을 타이르면서요.
참된 독서란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자기 소멸의 독서다. (p411) 자기 강화의 독서만을 해 온 사람에게 이 말은 혜성 같은 말입니다. 찬란한 꼬리를 태우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혜성 같은 충격으로 내 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자기 강화의 독서만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저에게 소멸이라는 단어는 충격이에요. 어떻게 읽은 것으로 자신을 소멸할 수 있을까요? 소멸의 의미를 다시 찾아봅니다. ‘사라져 없어짐’이라는 뜻을 어떻게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까지 실천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독서, 참된 독서를 하게 되면 내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상대만 남는 상태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연만 남고 내가 사라져 없어질 수 있을까요? 왠지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나니 저자의 독서는 자기 소멸의 독서인 것 같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이던지 그가 보이는 것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사물들이, 자연들이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상황들이, 자연들이 오롯이 저자를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자기 소멸의 독서인가 어름 포시 헤아려 보지만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등산에서 정상을 알고 내 위치를 아는 것처럼 최고 수준의 독서를 알고 지금 저를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선택합니다. 언젠가, 아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소멸의 독서를 흉내 내면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9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서평을 쓰려는 것은 무모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른 봄을 알리는 눈 속의 꽃이 핀 사진과 함께 실린 사진에도 글에도 오래 머물다 다음 장을 넘깁니다. 내가 욕망했던 것과 욕망하고 있는 것들 사이를 어지럽게 휘청이면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차곡차곡 밟아 온 길입니다. 책을 읽고 2달을 정리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 책을 둡니다. 읽어야 할 책들 위에 항상 두면서 약간의 부채감도 느꼈지요.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또한 번 느낍니다. 특히 좋은 책을 만났을 때 더 한 느낌을 받아요. 책이 너무 좋고 훌륭한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져서입니다. 푸른 책의 언저리를 두 달 가까이 맴돌다 용기를 내어 글을 씁니다. 지금 상태에서 느끼는 것들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써놓습니다. 한참 부족하고 부끄러움이 몰려오지만, 용기를 냅니다. 용기를 내서 소멸의 독서로 가기 위해, 책으로 삶을 드러내기 위해 조금 몸부림친 흔적 정도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풋내기 독서가의 귀여운 투정으로 읽어주셔도 좋고요. 책을 읽으면서 전에 없던 행복을 느낍니다.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커지고 있어서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박노해라는 멋진 사람을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꽤나 쏠쏠합니다. 그것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지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게 나인 것을요. 좋은 사람을‘ 삶이 독서고 소멸하는 독서를 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기쁨을 함께 누려보시길 권합니다. 그가 던지는 말들이 주는 깊이와 사랑을 체험하기를요.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도요. 천천히 오래 읽으며 영혼의 길을 잃지 않을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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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_099
지은이 : 박노해 출판사 : 느린걸음
온몸으로 살고 사랑하고 저항해온 삶의 정수가 담긴 사상과 문장, 세계의 숨은 빛을 담은 사진이 어우러진 작품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쌓는 독서가 아닌 책을 통해 얻은 진리안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살라내는 독서를 하라는 말. 어렵긴 하지만 무얼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듯하다.
그런면에서 이 <걷는 독서>란 책은 '자기 소멸'을 위한 독서의 시작점이 될수 있는, 연습교본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아주 짧은 문장과 사진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 마음과 그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그 생각들 안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걷는 독서의 핵심인듯 하다.
무엇하나 허투루 읽고 넘길 것 없다. 잠시라도 문장들 안에 머물러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것이다. 800페이지가 넘으니 대략 400개 정도의 사진과 글을 읽을 수 있다. 매일 매일 수련의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다면 내 영혼도 맑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자기소멸로의 독서를 지향하며...
궁금하신분들은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와 함께 자기 소멸의 길을 걸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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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은 또박또박 한 걸음씩 걸어야 한다. 삶이 아무리 바빠도 둘세걸음을 한걸음으로 갈 수 없다. 삶이 아무리 바빠도 빨리 가고 싶어도 저마다의 걸음으로 가야 한다. 걷는 독서는 책 제목 처럼 또박또박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새기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내용이 바로서 마음으로 읽혀진다. 박노해 시인은 걸음의 의미를 알 고 있을 것이다. 아니 모른다면 구도자의 심정으로 여행자의 마음으로 찾고 있는 것일까. 나도 나의 걸음걸이를 알고 싶다. 시인과 같이 여행자가 되고 싶다. 삶 을 알 고 싶 다. 사진이 조금 크면 좋았을 걸. 작아서 스치듯 보고 걸어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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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에 대해서)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 영혼을 즐길 뿐 더 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 페르난도 페소아, <사실 없는 자서전> P14에서
삶을 체험으로서 살아낸 생의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토록 그리운 적이 없다. 진정 떨어보고 피 흘려 본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자기 강화와 같은 텅 빈 오만함이 아닌 자기 소멸을 거듭하며 그 빈자리를 끊임없이 채워 넣을 수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 말이다. 박노해 시인의 이 침묵의 언어로 한없이 간결하게 최소화된 언어의 음성들은 그래서 살아내야 할 삶을 살지 못해 사무침에 겨워하는 내겐 시인의 말처럼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하나의 성소(聖所)”가 되어주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항상 내 곁에서 세상의 소란함을 잠시 벗어나 고독을 향유 할 때 함께하는 스승 같고 때론 벗처럼 도란도란 그 마음을 나누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내겐 그런 책이 되었다. 나는 시인이 홀로 산책길을 걸으며 수없이 떠올리고 다져왔을 그 내면의 이야기들에 감응하기 위해 하나의 문장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자기 소멸의 독서를 말하는 시인의 안에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살라지고 비워져 저 영원의 빛에 감광된 그 순간”을 어렴풋이나마 안다.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 갈 수 없도록 내려치는, 그래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하는 그 감응의 찰나를 알기에 그렇게 아주 천천히 읽었다. 아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읽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잠언(箴言)이자 시(詩)로 엮인 일종의 아포리즘(Aphorism) 430여 구절이 사진화보와 어울려 구성된 작고 두툼한 책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공연의 막간에 잠깐 진행되는 그 무엇이고, 가끔 문을 통해 기껏해야 무대배경에 불과한 것을 훔쳐보는 것” 아니던가. 그래서 시인의 문장들을 읽을 때 나는 페소아처럼 ‘고통 받지만 말하지 않는 이들 속에서 성스러운 길손이 되려했고, 목적 없는 세상에 이유 없이 묵상하는 순례자’가 되려했다. 그럼에도 ‘나의 키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이지 내 키의 크기가 아니라’는 한계를 알기에 불가피하게 내 마음이 감응하는 소수의 음성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어느 날 또 다른 문장에 내 정신이 번쩍 뜨일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나는 시인의 말처럼 이제까지의 나를 버리고 책의 문장들 앞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아니 읽어버리려고 애썼다. 온 삶으로 읽어내기 위해, 삶이라는 한 권의 책을 살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내 무딘 감수성이 호응한 몇 문장들을 이렇게 옮겨 적는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 속도로, 깊이깊이.”, 그런데 자기 삶의 제 속도를 잃기 일쑤다. 그리고는 살아야 할 삶을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몸을 떨곤 한다. 제아무리 그 아쉬움이 무용함을 알지만 진정 살아야 할 삶을 살지 못해 사무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하아~ 돌아보지 말아야 할 지난 삶이건만 그 질긴 회한을 떨어내는 것은 왜 이다지도 힘겨운 것인지. 삶의 미련이 너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산다는 것을 진정 알지 못하는 자의 헛된 욕망인 것 같아 자괴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그래 가을 볕 드는 어느 날 나도 가만히 나를 말려야겠다.
산다는 것에 그 무어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그럼에도 실재하는 이 몸을 체감하는 동안만큼은 여느 사람도 겪는 그 모든 희로애락을 겪어 볼 일이다. 그리고 가끔은 가슴 벅차고 뿌듯한 충만감을 느끼는 날도 있지 않았나. 그렇게 또한 모든 길흉화복이 크거나 작게 반복되지 않았나. 그런게 산다는 것이지 더 무어가 있겠는가. 잊지 말자. “막막한 날도 있어야 하리, 떨리는 날도 있어야 하리, 그래, 꽃피는 날이 오리니.”
문득문득 내 옹졸한 욕망이 경험(지식)을 쌓아가려 할 때가 있었음에 쓰디쓴 웃음을 웃을 때가 있다. 체험 속에서 나를 소멸해가는 것이어야 그 빈 곳에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자리 잡을 수 있을 터인데, 그만 욕심이 망각을 일으켜 그 무엇도 들어 올 수 없이 꽉 차 편벽해지고 만다. “경험은 소유하고 쌓아가는 것이 아니다, 체험 속에 나를 소멸해가는 것이다.” 이 진리를 왜 빈번히 잊게 되는 지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 사회에서 나와 더없이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 나만의 이야기를 마음껏 만들 수 있음에도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하루가 반복되는 날이 더해지기만 한다. 아마 온몸으로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말은 그 말을 하는 순간 사건이 된다. 힘 들어야 힘이 들어온다.
이 다층적 의미를 지닌 아포리즘은 인공지능에 의존해 힘 들이지 않는, 사고하지 않는 지금의 사회에 대한 경계의 음성으로도 들린다. 자기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 사유의 힘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기계에 대한 영원한 종속, 자본에 대한 노예의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을 위한 나일 때 나는 한없이 작게 축소된다. 그 축소된 나 들로 군집을 이룬 집단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
악은 갈수록 새로워지고 다양해지고, 평범해지고 다수결 속에 강력해진다. 나는 악의 신비를 지켜보고 있다.
악의 신비를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은 변화무쌍한 악의 양태를 꿰뚫어본다. 어쩌면 그것은 “자유로운 탐욕, 정의로운 교만, 지혜로운 위선.(Free greed, Just Pride, Wise hypocrisy.)”으로 이름붙일 오늘날의 대죄가 아닐까. ”나에게만 다르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내 목소리다.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착각이다.“ 내 목소리에 대한 착각, 이 본질적 자기 성찰의 한계는 항상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여기고 있다. 가장 소홀하기 쉬워,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일 테다.
말의 뿌리에 흙이 묻어있지 않은 말 말의 잎새에 눈물이 맺혀 있지 않은 말 말의 꽃잎에 피가 배어있지 않은 말을 나는 신뢰할 수 없으니.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배어 있지 않은, 육화된 즉 숙성된 인식 속에서 다져지지 못한 말 아닌 것들이 난무하고 있다. 절제되어야 할 것들이 기만적이게도 활개를 친다. 정말 조심스러워 해야 할 것이 인간의 말이거늘. 우리는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다. 어찌 자신도 알지 못하는 데 타인을 알겠는가. 그러하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말을 듣기 위해 온몸을 기울여 느끼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일 게다. 달콤하거나 때론 편협과 헛된 위선의 말을 뿌리치기 위해. 그리고 진실의 언어에 공감하기 위해.
“내가 가장 상처 받는 지점이 내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그 욕망이라는 심연을 외면하고 다른 곳을 향해 저주를 내뱉는 것이 인간인 모양이다. 그래서 “실패 앞에 정직하게 성찰하게 하소서, 지금의 실패가 오히려 나의 길을 찾아가는 하나의 이정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목소리를 비로소 낼 수 있는 것일 게다.
머리 굴리지 말고 욕심 세우지 말고 겉멋 부리지 말고 단순하게 그냥 가기, 본질로만 승부하기.
이 단순한 자세를 잊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가끔 고독한 사유의 자리를 찾아내는 여유를 가져야만 하지 않겠는가.
이 소란한 세계의 한 구석에 내 영혼이 오롯이 앉을 수 있는 오래되고 아늑한 의자 하나, 잠깐, 생각에 잠기는 그 순간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자리
자기만의 의미가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자리를 찾아 여행이라도 떠나봐야 할 것 같다. 반드시 홀로 떠나는 여행으로, 그래서 그 여행의 낯선 길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 둘이서 손잡고 돌아오기 위한 여행길을 향해서 말이다. 세상이 너무 재밌어졌다. 화려한 빛과 소음이 마치 활력처럼 느껴지는 세상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그리움도, 벗도 이웃도, 내 안의 창조성도 사라지고 만다. 조금 심심해 질 필요가 있는 세상이다. 그래야 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이 깨어날 테다.
시인의 생의 체험에서 응결된 이들 시와 잠언들을 읽다보면 책을 읽는다는 것, 무언가와 만난다는 것, 산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어떤 진리의 광채에 자신을 잃고 잠시 정지하는 그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읽지 말고, 읽어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독서가 된다면 어쩌면 자신을 잃은 것보다 훨씬 커다란 진리를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인이 독자들을 위해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하고 삭막한 이 시대에, 부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사라지지 말자고” 하는 품속의 다정한 말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 바로 지금 진실 되게 와 닿음을 체감 하는 독서가 될 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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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너무 많이 받아서 구매하게 되었다. 처음에 책을 받고 깜짝 놀랐다. 책이 아니라 무슨 벽돌인 줄 알았다. 책의 두께가 무려 6cm이다. 일반 소설책이 약1.5cm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4배의 두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Don't be sad, don;t give up 이런 식으로 한글과 영어가 함께 쓰여진 책인데, 왜 주변에서 그토록 추천을 했는지는 이 책을 사고 읽은 후에 알게 되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혹은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거나 힘들 때 읽으면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 준다. 또한 나는 소울메시지 책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무언가 고민이 있거나 해답이 필요할 때, 마음 속으로 질문을 하며 아무 페이지나 펼치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 책 안에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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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으려고 샀는데 너무 좋아서 지인한테 선물하려구요^^ 가볍게 읽기 좋은것 같습니다 가볍지만 묵직한 울림이 있어요 :) 개인적으로 여러 울림을 느끼고, 주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말선물로 주려고 다시 재구매 할 예정입니다 양장본이라 선물하기 넘 좋은 것 같아요 주위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말선물로 추천드려요^^ 오랫만에 인생책 만났습니닷 그럼 즐거운 연말, 행복한 연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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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작가의 사진전에 갔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두께가 엄청나지만 한 페이지에 사진 하나와 글귀 한 줄이 있을 뿐이라 담백하며, 사이즈는 아담해 머리맡에 두기 좋은 책이다. 어머님이 하루 한두장 읽으시면서 글과 그림을 감상하시고 싶어해 주문했다. 사진전에 걸려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 책에 담겨 있다. 하루 한 장 그림과 함께 짤막한 글귀를 읽는 것이 어머님의 일과가 되었다. 박노해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 만큼이나 글귀가 주는 울림이 있고, 그가 담아낸 사진에도 그런 시선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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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1개 뺍니다.
선물용으로 책을 4권을 주문할 정도로, 그런데, 편집이 다소 짜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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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치고는 많이 두꺼워 택배를 열고 놀랐다. 처음 두께에 놀랐으나 안에내용만큼은 더 큰 느낌을 받았다. 시집이기에 완독까지는 이틀밖에 걸리지않았다. 1/2씩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술술읽히고 기억에 남는 구절과 문구가 많아 클리핑을 많이 해두었다. 왼쪽에는 그림 오른쪽에는 시가 나와있는 구성이 되어있어 읽는데 편리한 구성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구성에서 가장 감동받은건 시 아래 영어문구가 같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시집이라하며 어쩌면 명언집이라 해도 될 것 같은 마음속에 남는 구절이 참 많다. 1회독으론 아쉬운 책이다. 2회독 이상을 하며 필사를 할 예정이다. 요새 책을 많이 가까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한권 한권 더 읽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나의 상태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과시'. 어쩌면 나는 독서를 통해 내면을 쌓아가려는 것이 아닌 과시를 하려하고있던 것 같았다. 그 지식이 나의 생을 약탈한다는 책 초반에 나와있는 작가의 견해가 참 와닿았던 것 같다. 인생책이 되었고 소중한 사람에게 꼭 선물하고싶은 책 |
시인이 20여 년간 지구 곳곳을 걸으며 기록해온 세계의 풍경 사진과 423편의 짧고 강렬한 문장들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배어 있는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은,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나를 되돌아보는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선물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