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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심의 중세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
"서양 중심의 중세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 내용보기
'인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부제를 단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동서양의 중세에 대한 의미와 평가를 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흔히 '암흑의 시대'라 평가되고 있는 서양의 중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가치가 절대적 권력으로 작동하던 서양의 중세는 일반적으로 상식보다 권위가 앞서던 '암흑의 시대'라 지칭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암흑을 뚫고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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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부제를 단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동서양의 중세에 대한 의미와 평가를 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흔히 '암흑의 시대'라 평가되고 있는 서양의 중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가치가 절대적 권력으로 작동하던 서양의 중세는 일반적으로 상식보다 권위가 앞서던 '암흑의 시대'라 지칭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암흑을 뚫고 시작된 이른바 근대 이후는 그 시절과 어떻게 다른가? 절대적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저술한 저자의 관점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맞춰져 있다고 이해된다. 

   

한 마디로 서양의 관점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중세’에 대한 의미와 평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특히 서양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서 중세와 근대를 비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는가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서양의 중세만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반도로 대표되는 동양, 그리고 이슬람 문화까지 아우른 종합적인 고찰과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서구 중심의 역사와 과학에 대한 판단, 여전히 그것을 절대적 가치로 작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고 하겠다. 

   

‘중세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조명’,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반적으로 서양의 중세만 다루어져온 것과 달리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인문을 서양 중세 인문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즉 '서양 근대 중심 세계관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면서,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1장은 '중세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움베르토 에코에 의해서 새롭게 조명된 서양의 중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종교였던 기독교의 성격을 서술하고, 서양의 중세를 '폐쇄와 불관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저자는 가장 먼저 '인도의 중세'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종교 분쟁이 진행되고 엄격한 신분 구분을 당연시하는 카스트제도가 지배하는 21세기의 '인도는 지금도 중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밖에도 전체 4개의 장에 걸쳐서, 인도의 사상(3장)과 문학(4장) 그리고 예술(5장)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가 현장을 찾아 직접 목격한 인도는 '다양성의 나라'라는 일반적인 관점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이 어우러져 인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친일파'였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인도에서는 '간디'가 경멸시되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중세라는 기간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서양 중심에서 벗어나, 인도를 대상으로 시작한 중세에 대한 진단은 이슬람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자행된 초등학교 교사의 '참수사건'으로 인해 언론에서는 이슬람의 폭력성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서는 이를 이슬람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고 있지만, 저자의 진단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코란>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일부 신자들의 '맹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종교의 경전을 자의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 신도들에게 이를 절대적 신앙으로 주입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뿌리가 같은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하면서, 서로 적대적인 감정으로까지 발전한 종교 전쟁의 성격도 배제할 수가 없다. 저자는 인도의 근대와 함께, 과연 이슬람의 근대도 얼마나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이 '이슬람 중세 이야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모두 고유한 저마다의 문명이지, 어떤 문명이 다른 문명을 대체하는 우월성을 가진 것일 수가 없다.' '물질주의에 사로 잡힌 인문이 아닌 진짜 인문 이야기'를 표방하며, 저자가 그동안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양 중심의 문화사를 지양하며, 이슬람과 인도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중세에 대해 조명한 내용인 것이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계상은 그저 단순하기 짝이 없으며, 암묵적으로 우리 역시 그러한 시각에 물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편향된 시각을 조정 혹은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을 강조하며, 각 문화의 고유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슬람을 호전적인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는 서구 언론의 시각이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구호는 중세의 신학자인 코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을 폄훼하기 위해 퍼뜨린 과장된 선전'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종교적 권위에 눌렸던 서양의 중세에 비해, 이슬람의 중세는 사상과 문학 그리고 예술적으로 더 다채로웠음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중세의 전부인 것처럼 그려졌던 서양 중세의 경우 '제국주의'와 십자군으로 대표되는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설명한다.

   

중세 당시 서양의 사상과 문학 그리고 예술조차도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조명하고 있다.서양의 중세를 ‘제국주의’라는 제목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위진 남북조’로 구분되던 시기를 중국의 중세로 설정하고,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중세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족보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조상의 위세를 앞세워 사회적 명망을 획득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나 역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하게 내세울 수는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에는 저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강해서 의견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으나, 기존의 보편적 견해와는 다른 시각에서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20.10.22. 신고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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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과연 암흑의 시대였는가?
"중세는 과연 암흑의 시대였는가?" 내용보기
흔히 기독교가 주도한 유럽의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럽의 중세를 다시 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의 박승찬교수님이 쓴 <중세의 재발견; http://blog.yes24.com/document/10907159>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중세가 암흑의 시대가 맞고, 동양의 각 지역은 개명시대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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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독교가 주도한 유럽의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럽의 중세를 다시 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의 박승찬교수님이 쓴 <중세의 재발견; http://blog.yes24.com/document/10907159>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중세가 암흑의 시대가 맞고, 동양의 각 지역은 개명시대였다고 주장하는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 째 이야기>을 읽게 되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박홍규교수가 쓴 이 책은 고대 인문학을 재평가한 <인문학의 거짓말>의 후속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기왕의 중세사가 ‘일반적으로 서양의 중세만 다루어져온 것과 달리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인문을 서양 중세 인문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고 했습니다. 서양의 중세도 다루기는 했지만, 분량으로 보아 동양 문명들과 비슷한 정도로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한다’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논리의 전개에 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큰 틀에서는 중세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중세는 게르만민족의 대이동(4-6세기)이 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14-16세기)와 더불어 근세(1500-1800년)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라고 규정합니다. 특히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라고도 합니다. 한국사에서는 고려시대(918년 1392년)에 해당한다고도 했습니다.

 

저자는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보는 것은 근세에 들어와 힘을 얻은 유럽이 유럽 이외의 세계를 침략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서양의 중세가 기독교의 지배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서양 중세를 이야기하면서 기독교가 시작된 예수의 시대까지 거슬러 오를 뿐 아니라 중세와 근세의 경계를 모호하게 잡고 있기도 합니다. 무릇 이론을 세우려면 논리의 대상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변화가 거의 없는 암흑의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중세가 무려 1천년이나 되는 장대한 세월이고, 논의의 대상인 인문학 역시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아우르는 영역이라고 보면 주로 유라시아의 중세를 한권에 몰아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하물며 논의의 대상이 인문학에서 예술과 건축에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다보니 논점이 흐려지고,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이론에 대한 지나친 저항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중세라는 특정한 시기를 개괄한 뒤에 인도, 이슬람, 서양, 중국, 한반도 등 5개 지역으로 나누어, 해당 지역의 중세를 간략하게 살핀 뒤에 사상, 문학, 예술로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합니다. 일종의 비교문화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중세라는 시기의 특성을 이야기하다보니 논점이 섞이는데다가 저자의 주장을 앞세우는 관계로 개별 지역의 중세적 특성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사에서의 중세를 삼국시대에서 고려까지로 본 저자는 조선이 오히려 중세보다 암흑기였다고 주장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중세사를 논함에 있어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끌어다 비유하는 것도 적절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2019년에 시작한 코로나 대유행이 1980년대 이후 생긴 지구화 정책이 초래한 미증유의 대유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16세기에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라는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오독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우한폐렴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여 중국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었지만, 코로나 대유행의 흐름은 분명 중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y*****2 2021.03.07. 신고 공감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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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모두 돌려까기를 할 수 있는 용기에 반했다
"Think 1. 모두 돌려까기를 할 수 있는 용기에 반했다" 내용보기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다. 박홍규의 '또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섭렵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돌려까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의 인문학적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정면으로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예리하게 벼리고선 말이다.  각설하고, 1권에 해당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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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다. 박홍규의 '또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섭렵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돌려까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의 인문학적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정면으로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예리하게 벼리고선 말이다.


  각설하고, 1권에 해당하는 <인문학의 거짓말>이 '고대 인문학'을 돌려깠다면, 이 책은 '중세 인문학'에 관해서 사정없이 돌려까고 있다. 일단 '중세'라고 하면 으레 '서양'만을 떠올리기 일쑤인데, 이 책에서는 서양뿐만 아니라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 등의 중세 인문을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한참 낯설 판인데, 아예 '서양의 중세'는 이 책의 일부일 뿐이고, '비서양의 중세'를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충 짐작이 가시는가.


  하지만 '중세'라고 해서 모두 곳에서 '서양의 중세다운 것'은 절대 아니다. 시기적으로 비슷하더라도 다른점투성이고, 역사적으로 유사한 점이 엿보이더라도 그 원인과 결과마저 유사하지 않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 겨우 박홍규의 비평의 칼날에 정면으로 얻어맞는 충격을 받지 않고 읽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이 책의 내용이 매우 궁금하실 테지만, 마땅히 소개할 내용을 고를 수가 없다. 고를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책, 자체'가 전부 생소한 내용으로 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충격적인 흥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 내용들이 나름 '전문가'들이요, '대학 교수'이신 분들인 탓에 실명을 거론하면 실례가 될 정도로 돌려까고 돌까대고 있다. 하긴 저자가 '대학 교수'이니 그 친구나 지인들이 전부 '대학 교수'가 아니겠나.


  진보적인 견해를 전혀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진보적'으로 '기존의 학설'을 탄탄한 논리로 까대는 통에 읽어가는 내내 숨가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볍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묵직한 한 방으로 '지인들 또는 친구들'일지도 모를 '그 분들'을 하나하나 근거를 대며 잘근잘근 밟아주고 있다. 개중에는 내게도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내용도 사정없이 두들겨 부수는 통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조곤조곤 까대는 '박홍규의 썰'을 읽고 있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마력을 뿜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비평의 근거가 '나의 상식'과 죽이 맞을 경우에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지만, 반대로 '나의 상식'과는 정면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간만에 승부욕이 돋는 책을 만나 즐겁기 그지 없다. 전적으로 '저자의 편'에 설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 당당함에 박수를 보내면서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의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20.12.21.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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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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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이 책은    이 책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굵직한 물음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박홍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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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이 책은 

 

이 책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굵직한 물음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박홍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이 책은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서

 

이 책은 『인문학의 거짓말』의 후속편으로, 첫 번째 책에서는 고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세를 다루고 있다.

 

다른 인문학 책들이 다루고 있는 지역이 대개는 유럽 쪽인데 비하여 이 책에서는 서양도 다루고 있지만 그 비중은 적은 편이다. 대신 인도, 이슬람 지역, 그리고 동양에서 중국과 한반도를 다루고 있다.

 

지금껏 인문학이란 타이틀로는 가보지 못한 시대와 지역이다.

해서 일단 서구 쪽으로만 향하던 인문학에서 벗어나 그 인식의 지역이 넓어지니 자연히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중세 하면 보통 암흑기로 알고 있는데, 해서 서양이 그러니 다른 지역들도 모두 전세계적으로 암흑시대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못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암흑기였지만, 인도, 이슬람, 그리고 동양은 문화가 발전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세의 인문학을 얘기하면서, 서양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인도 등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 한 마디로 

 

저자가 『인문학의 거짓말』이란 제목을 붙인 것이 저자의 주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타이틀 하에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들 - 책, 주장, 사상 -을 거침없이 검토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올려 놓는다.

 

그래서 『인문학의 거짓말』이란 제목의 의미는, 인문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거짓말의 주체가 인문학이 아니고, 그 대신 거짓말을 하는 주체는 인문학을 거짓으로 사용하는 자 ? 그게 사람이든, 시대든, 또는 경향이든 ? 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러한 거짓을 하는 사람들, 그런 경향을 비판하고, 인문학을 제대로 살려보자고 하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몰랐던 것, 잘 못 알고 있던 것들 - 바로잡게 된다.

 

타고르는 그 유명한 시를 왜 썼을까?

 

우리나라를 동방의 어쩌고 하면서 찬양했다고 타고르를 유별나게 치켜세우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타고르가 스스로 쓴 시가 아니라 한국인이 부탁해 억지로 내갈긴 메모 한 귀퉁이를 해방 후에 교과서에 실었던 이유는 그것이 소위 저명한 외국인 작가가 한국에 대해 쓴 유일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일분자’인데도 2011년 서울에 그의 흉상까지 세운 것이리라. (60쪽)

 

당시 타고르는 일본에서 유명했고 특히 그 어떤 외국인보다 일본 문화에 탐닉했기 떄문에 환영받았다. (59쪽)

 

타고르에게 한국을 위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한 사람 이름을 저자는 밝히지 않고 있어 아쉽다.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이슬람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오로지 무력으로만 전파되었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게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중세 기독교를 대표하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십자군 전쟁에서 싸운 적인 이슬람을 폄훼하기 위하여 퍼뜨린 과장된 말이다. (110쪽)

 

『아리비아 나이트』가 호색문학?

 

『아라비안 나이트』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다. (……) 호색문학이나 성애문학 측면이 강조된 것은 아랍세계를 음란한 비도덕적 사회로 오해하도록 해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26쪽)

 

이슬람 세계에서 인간이나 동물을 형상화 하지 않는 이유는?

 

생명체를 표현하는 것이 이슬람 미술에서 처음부터 금지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코란>은 <성경>처럼 이야기가 아니어서 형상화할 사건이 없다. 즉 형상화가 불가능하기에 없을 뿐이다. (146쪽)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 관능적인 것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은 종교적이라고까지는 하지 못해도 정적의 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클림프의 그림이 곧잘 관능적인 것으로 오해되어 유감이다. (214쪽)

 

밑줄 긋고 새겨야 할 말들

 

언제 어디서나 외부의 적을 만드는 비열한 가짜 보수의 방식이 정치판과 똑같이 득세한다.(106쪽)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가? 도리어 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제대로 따르는 참된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야 하지 않는가?( 113쪽)

 

종교가 재앙으로 변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화될 때라기보다는 권력화될 때라고 보는 것이 옳다. (120쪽)

 

이런 글은 어떤지? - 그 내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바울은 할례와 식사 규정을 없애는 동시에 처녀 출산이나 3일만의 부활 등 사람들을 매혹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많이 첨가했다. (17쪽)

 

바울이 <(마리아의) 처녀 출산이나 3일만의 부활>을 첨가했던가 

 

불교는 서서히 몰락하다가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

물론 이슬람 세력은 불교와 힌두교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승려들을 학살했다. 특히 나란다 불교대학을 비롯해 수많은 불교 사원을 파괴해 승려 대부분이 네팔과 티베트, 남인도로 떠났다. 티베트에서는 그곳의 고유 종교와 융합해 라마불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슬람은 전래 이후 불교나 힌두교와 공존을 모색했다. (39쪽)

 

‘그러나’ 이후의 발언은 앞의 말과 배치된다.

 

게다가 봉제사(奉祭祀)와 대가족제도를 대단한 이상사회로 미화하는 소위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아연하다. (47쪽)

 

페미니스트는 봉제사 등 대가족제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저자가 <월간 인물과 사상>에 2018년 2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이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주류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쏟은 땀이 제대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책이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간 읽었던 인문학 책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s***h 2020.10.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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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 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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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거나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어떤 주제에 상관없이) 주로 서양이나 동아시아를 다룬 것들이다.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 위치하니, 동아시아에 관심이 쓰이는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고, 근현대사에서 세계를 재패한 것이 서양이니 서양의 역사와 문화가 큰 지배력을 가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인도나 이슬람은 우리에게 '낯선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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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거나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어떤 주제에 상관없이) 주로 서양이나 동아시아를 다룬 것들이다.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 위치하니, 동아시아에 관심이 쓰이는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고, 근현대사에서 세계를 재패한 것이 서양이니 서양의 역사와 문화가 큰 지배력을 가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인도나 이슬람은 우리에게 '낯선 어떤 곳'으로 인식되고 많은 역사서에 등장하는 이방인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의 거짓말>은 흔히 암흑시대로 일컬어지는 중세 시대가 실제로 인문학의 정체기 혹은 퇴행기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동시대에 서양, 인도, 이슬람, 중국, 그리고 한국의 문화(사상, 문화, 예술)를 고찰함으로써 서유럽 중심으로 짜여진 역사관에 회의감을 표현한다.


서양 근대사에 등장한 제국주의는 유럽을 벗어나 전세계를 향했다. 새로운 대륙과 국가의 발견은 정복전쟁과 식민지화를 초래했고 피정복자의 찬란한 문화와 유산은 파괴되고 폄하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도, 중국, 이슬람, 한국 모두 그런 피해를 입었다.


중세시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고 점점 더 다양해지는 듯하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서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서로마의 멸망부터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을 쫓아내고 대항해시대가 열리는 시점까지, 서로마의 멸망에서 교황권의 쇠퇴가 급격히 이뤄진 시기까지 등등 관점에 따라 중세 시대는 다양하게 구분된다. 학자에 따라 중세의 시작점으로 언급된 서로마 제국의 멸망 시점에 대한 이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중세시대의 정의와 의미를 재해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으며 문명의 암흑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문명의 여명기로 여겨지는 추세인 듯하다. 


<인문학의 거짓말>의 저자 박홍규는 중세시대가 암흑시대라는 관점은 서양사에 국한된 편협한 시각으로 행해진 단조로운 구분이며, '세계사라는 지구의 영역'에서 같은 시기의 다른 문명을 고찰한다면 중세시대가 암흑시대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또한 각 대륙이나 국가마다 중세라 칭할 수 있는 시기도 달라지게 된다. 


서양 제국주의가 세계를 정복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함으로써 잊혀져 간 문명들 또한 개성있는 훌륭한 문화를 이뤄냈고, 물질문명에 젖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등한시하는 현대사회를 정화하기 위해 이들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t******8 2020.10.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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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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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철학과는 다르게,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나름 인류사 모든것을 포괄한 것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 현실의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필요한 (어느) 실질적인 가르침을 얻기 수월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들여다보았을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모습은 앞서 기록한 것과는 반대로, 각각의 현실에 있어서 이용당한 인문학의 모습을 들추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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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철학과는 다르게,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나름 인류사 모든것을 포괄한 것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 현실의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필요한 (어느) 실질적인 가르침을 얻기 수월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들여다보았을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모습은 앞서 기록한 것과는 반대로, 각각의 현실에 있어서 이용당한 인문학의 모습을 들추고, 지적하고, 보다 올바른 모습의 인문학이 어떻게 정의되고 활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믿음이 굳게 자리잡은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이처럼 나 개인의 학습과 인식에 있어서도, 흔히 지성을 마주하려는 시도에 비추어 흔히 '대세'를 따르려고 했다. 그야말로 학교의 필독서로 그리스.로마신화가 추천되고, 정작 조국의 역사와 철학을 마주하기보다 서양의 고대철학을 접하려고 했으며, 더욱이 고대 이집트 등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서양세계의 정복과 전쟁과 같은 소위 영광의 시대라 포장되어 온 서양사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결국 이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리 될 수 없었던 다른 문화권(문명)에 대한 비판의 눈초리를 보내며, 이른바 '학문의 권장'에 고개를 끄덕이던 때가 젊은날의 나의 모습이였다. (아니,그것이 세상의 상식으로 통할 때가 있었다.)

물론 저자 등이 그 흐름을... 역사를 부정하라는 메시지를 위해서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오늘날 그리고 더 나아간 미래의 인류를 생각하며, 이른바 인문학은 보다 참된 인간의 가치를 빛낼 더 높은 인식을 주문하고, 실현시키려 노력해야 하는 학문이 되어야 마땅하다. 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감상이 든다.

서양 고대가 그리스.로마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의 역사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기보다는 위대한 역사로 숭상해왔다.

159쪽

때문에 점차 비평을 넘어서 드러나는 주장에 따르면, 저자 개인의 삶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의 주장에 이르는 많은 것이 매우 진보적인 것으로도 다가온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강대국의 논리와 승자의 논리가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 속에서 결국 인문학의 가치 또한 그에 따른 변명거리를 제공해 왔다. 예를 들어 '제국의 길'을 언급한 그리스의 페리클레스의 인식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애써 외면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게다가 흔한 역사가 아닌, 그 결과가 낳은 인식에 있어서도, 인문학은 계급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고, 문명간의 선진과 야만을 나누는데 쓰이며, 세상에 갈등과 차별을 낳았고 또 그것이 폭발한 전쟁을 정당화하는데도 쓰인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 저자는 이 모든것을 시대의 흐름 중에서 '최선'을 선택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닌, 오롯이 인문학의 거짓과 타락?이라 주장하는 것 같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가 느낀 진보의 메시지 또한 지금까지 의심치 않았던 많은 교훈과 가치에 대한 비평과 지양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였다. 그렇기에 이에 그 메시지를 마주하는 독자들 특히! 국가의 존재와 사회를 결집시키는데 있어서 활용된 (상식이라 생각되어진) 현실 속의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과연 이 책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나는 그 감상이 사뭇 궁금해졌다. "희망하는 모든 민족이 독립의 길을 걸어야 평화와 인권이 보장된다"는 말을 혹 중국 등에 넌지시 던져보면 어떠한 반응을 할까? 물론 개인적으로 그 주장이 오롯이 어리석다, 비난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은 힘의 논리 위에 드리워진 불평등, 번영을 위한 희생과 강요, 그리고 자칫 최악으로 흘러갈 상황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정의론의 하나로서, 이를 인문학이란 더 높은 것을 향하는 추진체가 아닌, 최악을 막는 브레이크로서 생각하는 '나'는 분명 저자와는 다른 생각과 정의를 가지고 있다. 새삼 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q*******a 2020.10.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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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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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번째 이야기를 읽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서양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었는데, 언급수준에서만 그치기에 개인적으로 궁금하던차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중세와 함께 떠올리는 이미지는 누가뭐래도 "암흑기"일 것이다. 최근 중세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의 일이기에 우리가 배웠던 중세는 그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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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번째 이야기를 읽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서양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었는데, 언급수준에서만 그치기에 개인적으로 궁금하던차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중세와 함께 떠올리는 이미지는 누가뭐래도 "암흑기"일 것이다. 최근 중세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의 일이기에 우리가 배웠던 중세는 그저 그러했다. 그러면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르네상스, 산업혁명, 제국주의의 시작이였다 정도?


그러던 차 이 책에서 서양의 중세는 암흑기 였지만, 비 서양 중세는 반대였다는 글을 보고 이슬람을 떠올렸다. 그럼 이슬람과 더불어 인도, 중국, 한반도까지 서양의 중세가 아닌 같은 시기 다른 지역들은 어떤 시대를 살고 있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인도의 중세예술중 음악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인도는 '전통'음악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과 구분되는 음악이 아닌것이다. 인도는 지금도 인도 음악이 아닌 타 음악이 발붙일 곳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이라는 개념이 없다. 춤도, 노래도, 집도, 그들의 문화는 중세부터 지금까지 별로 다른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놀랍기도했지만, 그만큼 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것인가? 또는 타 문화를 자신의 문화화 하는 힘이 강한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의 중세도 지금의 인도도 잘 알지를 못하니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도가 자신의 문화를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일부 전수자에 한해서가 아니라 시민 전체가 같은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오. 싶었던 부분이였다.


이슬람의 중세에 대한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내게는 단연코 "글자"였다. 이슬람 중세는 책의 시대 였다고 한다. 모든 도시에서 책을 팔고 많은 수의 도서관이 있었으며, 그 도서관에 대한 접근이 특정 계급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곳이 였다는 점. 그리고 그 책이 굉장히 화려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읽던 책 사서삼경, 오경.. 뭐 이런 책들을 생각해보면 말그대로 하얀곳은 여백이오, 까만것을 글자로다.하는 단조로움만 있었는데, 다양한 모양의 글자와 색체가 가득한 책이라니. 어떤 책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또한 이슬람의 중세와 맞물리는 십자군 전쟁. 서양 기독교에서 일으킨 전쟁으로 수백년간 서양도 이슬람 문화권도 모두가 고통받았던 시기이다.
결국 이 부분을 맞물려 종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가 종교로써의 행위를 하지 않고, 정치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최악의 결과를 중세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중심으로 쓰여진 책은 십자군 전쟁의 당위성 또는 십자군 전쟁의 배경등을 설명하고 있지, 그 이상을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당시 무슬림을 수없이 죽이고, 먹기까지했다니. 전쟁은 어떤 형태로도 미화될수 없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너무나 아쉬웠던 내용은 인도도 이슬람도 이토록 찬란한 중세를 보내고도 왜 지금에 이르렀는가이다. 인도는 어쩌면 더 철저한 계급사회가 되어버리고, 이슬람은 계속되는 내전으로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이부분을 저자는 이슬람에 대해서는 종교가 정치화 즉 정교일치 사회가 그 원인 중 하나라 이야기한다. 서양은 18세기 계몽주의를 지나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냈지만, 이슬람은 더 철저한 정교일치 사회로 회귀해버렸다는 것이다.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아니라, 민주주의를 토대로 종교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만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 그 자체가 문제라는것이다. 이부분은 인도도 비슷하다.


이밖에도 중국과 한반도의 중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했던 인도와 이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비서양 문화권에 대한 설명을 위해 굳이 서양 문명을 이리 깍아 내리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느낌조차 문화사대주의에 의한것때문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하나가 좋다는 표현을 위해 하나는 좋지 않다는 표현이 맞는 지는 글쎄. 각 문화마다 일장일단은 있을텐데 싶어서.


중세는 서양만 있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각각의 시대를 살았고, 그래서 지금이 있다. 내가 알던 중세에서 다른 시각을 가질수 있어서 Good!

YES마니아 : 플래티넘 t****s 2020.10.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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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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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홍규 교수님의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기존의 인문학 도서와 몇 가지 점에서 차별화된다.   많은 도서가 중세를 다룰 때 서양을 기준으로 중세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인문학의 거짓말>은 서양, 동양의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를 비슷한 비중을 두어 중세 인문학을 설명한다.   실상 서양 문명이 동양의 인도,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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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홍규 교수님의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기존의 인문학 도서와 몇 가지 점에서 차별화된다.

 

많은 도서가 중세를 다룰 때 서양을 기준으로 중세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인문학의 거짓말>은 서양, 동양의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를 비슷한 비중을 두어 중세 인문학을 설명한다.

 

실상 서양 문명이 동양의 인도, 이슬람, 중국 문명에 앞서기 시작한 시점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18세기부터인 점을 생각하면 중세의 기준은 동양문명인 점은 당연하다.

 

특히 이슬람 문명에 대한 설명에 있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정수일 교수님에 대한 도서에 대한 소개와 지금 읽고 있는 <유라시아 견문>의 이병한 교수님에 대한 다른 시각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 책은 중세를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면 중세는 언제부터인가 

 

통상적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1492년 스페인에서 무어인이 추방되기까지 1,016년간을 흔히 중세 1,000년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배운 기억에 중세는 암흑의 시대라고 배웠는데 암흑이라는 점은 서양 중심에서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수도원의 권한이 커짐에 따라 다른 문화, 예술 부문을 겁박한다는 점에서 ‘암흑의 시대’라 표현한 것 같다.

 

물론 이 시기에 다른 지역, 인도, 이슬람, 중국은 각각의 지역에서 문화, 사상, 예술 부문에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적 맹신을 비판했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슬람과 인도의 중세 이야기이다.

한반도와 중국에 관해서라면 역사 시간에 비중을 두고 배우지만, 이슬람의 중세 문명, 인도의 중세 문명은 교과서의 약간의 페이지만 할애하고 있어 저자가 들려주는 중세의 인문학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먼저 주목할 점은 십자군 전쟁에 관한 내용이다.

서양의 기독교 문명에서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일으킨 7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은 처음의 종교적인 신념에서 출발한 전쟁이 시간에 지남에 따라 차츰 변질하여간다.

 

급기야 십자군은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도시를 약탈하기에 이른다.

 

리틀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은 살라딘과 십자군 기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쪽에서는 성지탈환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침략자를 막아야 하는 전쟁인 것이다.

 

이슬람 문명에 관한 이븐 바투타와 이븐 할둔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14세기 이븐 바투타가 여행한 길은 지금 지도로 봐도 대단한 여정인데, 30년 동안 아프리카, 지중해, 유럽, 아라비아반도, 인도, 중국에 이르는 대장정은 당시 광범위하게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문명에 대해 알려준다.

 

거의 모든 면에서 마르코 폴로와 비교할만하고, 그가 남긴 여행기 또한 당시 그가 방문한 곳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이슬람 문명은 관용과 포용이 만연한 사회였다.

 

인도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위한 네루의 <인도의 발견>도 추천한다.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마지막에 갈 수 있는 나라는 인도가 될 듯하다.

인도에 대해 들려오는 최근의 소식들은 여성의 처지에서 보면 경악할 만하다.

 

힌두교도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인도 사회는 소수인 이슬람교도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다.

정치가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런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중세의 인도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타고르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칭했다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타코르는 인도의 다빈치와 같은 사람인데, 그는 일본을 찬양하는 인문이었다고 한다.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인도를 같은 동양권 국가인 일본이 해방해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인데, 일본은 실재 인도와 근접한 미얀마까지 점령했기에 타고르의 기대는 허황한 것만은 아니었다.

 

인도인의 인생 시기를 이야기하는 점과 죽음을 나타내는 ‘바라나시’와 우파니샤드, 인도의 음악, 미술에 관한 이야기는 기억할만하다.

 

개인적으로 저자와 공감하는 점이 많아 독서하는 시간이 상당히 즐거웠다.

 

<인문학의 거짓말>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지식을 바탕으로 중세의 여러 문명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를 알 수 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인문학의거짓말 #박홍규 #FFL #인물과사상사 #인문학 #책과콩나무


r*******n 2020.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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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인문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TV를 켜면 유명 강사들이 나와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대상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며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과 질문을 통해 우리의 지성을 발달시켜준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이나 북미, 한중일의 인문에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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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인문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TV를 켜면 유명 강사들이 나와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대상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며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과 질문을 통해 우리의 지성을 발달시켜준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이나 북미, 한중일의 인문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우린 흔히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고급스럽게 생각하고, 서양의 철학을 가치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할 때에도 그런 것들에만 관심을 가진다.


반대로 인도나 이슬람 등의 국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나 종교, 예술 모든 면에서 이들 국가는 철저히 제3세계로 치부되고, 논외가 되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흔히 중세라고 하는 6~16세기 서양은 다른 시대보다 낙후된 암흑시대였는데 우리는 그런 시대조차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개명의 시대로 그 어느 시대보다 앞섰던 비서양권 국가의 중세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슬람 문명이 탄생하고, 중국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찬란한 문명이 개화했던 서양권 이외의 역사는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고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암흑시대라고 해도 그 속에서 배우고 성찰할 것은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중세의 비서양국가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엄숙주의나 마녀사냥, 역병, 빈곤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말고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시기로 가는 발판이며 자연과학과 법학 등이 시작된 출발점이기도 했고 '중세'에는 '서양의 중세'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앞서 말한대로 비서양권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므로 중세는 암흑기라는 페러다임을 깨자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런 전챠로 이 책에선 서양권보다 중세의 인도와 이슬람의 사상, 문학, 예술을 먼저 이야기 한다.


우리가 비서양권 국가를 배제하고 서양권 국가의 역사, 문화, 예술,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근대가 되면서 서양권 국가들은 근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마침내 근대제국주의 시대가 전개되며 세계를 제패하며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기득권 세력을 숭배하는 사대주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서양권 국가들이 중세 때까지는 비서양권 국가들에게 철저하게 밀리며 암흑기를 보냈지만 (비록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를 암흑기로 보지 말자고 했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비서양 근대는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암흑시대로 전락되며 상황이 역전되버렸다. 중세의 비서양권 국가들은 개방과 관용의 문화를 꽃피웠는데 그 결과 근대가 되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도와 이슬람의 현재의 모습들도 이들에 대한 일종의 비호감을 자극하여 관심을 멀어지게 한 것도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도는 지금도 중세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것도 과거의 로맨틱한 공존의 중세가 아닌 야만적이고 배타적인 절망의 중세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스트라는 계급사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힌두교와 무슬림에게 적대적이며, 그야말로 돈과 쓰레기, 배타주의로 뒤덮혀있다고 한다. 이슬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은 총기만 현대적이고 그외의 것들은 전근대의 야만이라고 한다. 인도도 무슬림에게 적대적이지만 아랍권 국가 역시 불교를 적대시 하고 있다. 중세의 이슬람은 정의와 평등, 인간 존엄성과 법의 지배를 옹호하고, 문화·부족·인종의 차이를 넘어선 인류애를 보였지만 지금은 사상과 교육, 이성을 존중하던 이슬람의 전통은 파괴되고 말았다. 인도와 이슬람 모두 지금 현재 중세 서양권 국가의 암흑기와 같은 시기를 거치는 중인 것이다. 이러니 인도와 이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이들 국가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처럼 비서양국가를 서양인들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평가한다. 그런 과정에서 오인되고 왜곡된 정보들도 많이 있는데, 우리 역시 주관적으로 비서양권 국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권 (제국주의) 국가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평가한 내용들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특히 최근엔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혐오와 난민 혐오가 많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이를 외부의 적을 만드는 보수의 정치적 방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매우 동의하며 개인적으로는 그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무지가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중세의 인도와 이슬람이 지금과는 180도 다른 나라였다는 것도 몰랐었고, 다른 나라들보다 더 일찍 개명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이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서양권의 국가가 심어놓은 선입견에 전도되어 그들을 판단했기 때문에 혐오나 비하를 한 것 같다.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암흑기였던 서양의 중세만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비잔틴문명 등 외부 문명과의 맥락에서 중세를 바라보면 그동안 편협한 시각에서만 세계사를 공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문학의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우린 그동안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비서양권 국가를 적이나 개도해야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인문학의 거짓말을 바로잡고,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키워준다.

m*******a 2020.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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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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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두 번째 이야기박홍규 지음/ 인물과 사상사전작인 『인문학의 거짓말』 에서는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 이야기를 다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중세 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서양의 시각에서 본 중세와 사뭇 다른 동양사. 이슬람이 느끼는 중세와 십자군 원정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란! 전혀 생각못한 부분에 대한 자각이라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중세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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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박홍규 지음/ 인물과 사상사



전작인 『인문학의 거짓말』 에서는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 이야기를 다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중세 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서양의 시각에서 본 중세와 사뭇 다른 동양사. 이슬람이 느끼는 중세와 십자군 원정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란! 전혀 생각못한 부분에 대한 자각이라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중세 학자라 불리는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작품을 통해 중세적 맹신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무종교인으로서 종교전쟁에 관해 비판했다. 그건 종교를 믿는 내 입장에서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과 살살. 과연 어느 신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라고 가르쳤던가!




더군다나 중세는 암흑기라는 단어 자체가 일제 잔재의 역사교육이나 중세 문헌의 라틴어도 전혀 모르는 번역서에만 의존해서 그렇다. 저자가 인용한 《박승찬의 한겨레 연재》 칼럼을 읽어보고 싶다. 성경은 만민평등을 주장했기에 노예나 농민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가톨릭과 사이가 안 좋은 신교도 마찬가지다. 뭐 신교든 구교든 간에 제국주의 식민니 침략에는 책임이 있다. 반성은커녕 미화시키고 정당화하는 과정이 눈물겹다. 



우리나라의 중세는 어떤가? 조선시대보다 그 이전 중세에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그러니 마냥 중세를 암흑기라고 할 수 있겠나? 일본에서 역사를 배워온 학자들의 잘못된 역사관이 큰 몫을 한다. 오히려 조선시대가 더 암흑기로 느껴진다. 남녀 차별, 서열, 신분제 등 암담하다. 조선시대가 나쁘다 고려 시대가 좋다 이런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역사적 주관이 뚜렷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수용적인 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비유나 인용 중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것이 인문학 책인가 싶을 만치. 아! 나 역시 인문학은 어렵다. 지루하다. 딱딱하다 뭐 이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나 보다. 인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최근에는 경제발전이 빠르고 성장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 각광받는다. 그 이면에 스모그와 돈과 쓰레기, 배타주의와 다수의 신화로 뒤덮인 나라.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젠틀맨의 나라라고? 저자의 말처럼 '아베 신조는 나쁜 사람이지만 영국의 정치인들은 인도를 발전시켰다'라는 식의 사고를 지양하라! 처칠을 비롯한 정치인들에 대해 미화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도의 여성 노예화는 심각하다. 




저자는 인도의 단점과 한국의 그것이 닮았다는 다소 놀라운 발언을 한다. 유교의식에 입각한 제사에 대한 비판의식인데 실제 유교의 성인인 공자는 '영혼'을 부정했다. 유교가 국교인 조선에서도 제사의식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안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명절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음식을 하고 막상 제사에서는 남성 중심으로 의식이 진행된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뿌리박힌 남아선호 사상. 뭔가 의식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저자는 중세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다. 인도, 이슬람, 서양, 중국, 우리나라 이렇게 다섯 지역의 중세를 소개한다. 중세의 사상, 문학, 예술을 이야기로 소개하는데 정말 흥미롭고 인식을 새로 일깨워주었다.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이 든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서양 중심의 사고에 젖어 있었나 싶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요즘에서야 접할 수 있는 문화적 산물들. 이슬람 음악이라든가 인도의 문학 등의 소개도 인상적이었다. 반음에서 오는 구슬픔은 우리 음악과 통한다. 머치 판소리에서 '반음 꺾는 부분'과 비슷하다. 특히나 아랍 음악은 반음을 다시 1/4로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슬프게 들린다. 《슬레이브》라는 영화가 2018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다는데 전 세계에 최초로 데뷔한 아랍 영화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2018년 한국을 방문한 '테오도르 제닝스' 교수는 기독교가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 사랑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죽이고 권력 기구가 되면 결국 교회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권력 기구화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지만 기독교가 권력이 아닌적이 있었나? 저자는 기독교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한다.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반기를 들 수도 있으나 정말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생각해 볼 문제다.  p169에서 저자의 말처럼 모든 종교가 사라지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생각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책에 소개된 서양 제국주의의 역사나 서양사, 서양 미술이나 음악사는 책에서 만나보시길. 워낙 많이 접해온 분야라... 저자의 주장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를 한국이라 부르면 남한 만인지 아니면 남북 모두를 말함인지 모호하다는 주장이다. 동의한다. 중세란 서양의 시대가 아니라 인도와 아랍의 시대요 중국과 일본과 고려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서양이 근대화를 이름으로 침략을 시작하고 비서양은 몰락을 거듭했다. 문화 속에서 서양의 제국주의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고 본다. 비서양의 중세는 오히려 개명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을 중세를 새롭게 보는 관점의 변화를 주도한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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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7 2020.10.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