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_052
지은이: 정승연 출판사: 봄날의박씨
들어가며~
누가 나에게 공부하고 있냐고 물으면 난 공부하는거 안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 공부란 학생때의 공부 처럼 영어, 수학, 과학이나 대학에서의 전공 공부, 그리고 입시나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만을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학공부는 더더욱 아니기에 공부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내가 그들과 부딪히면서 하는 많은 대화들 속에서, 그리고 일처리 방식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에 나도 계속 '공부'하는 중인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책 읽는게 좋은 사람(어쩜 그저 책 사는게 좋은 사람일지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항상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것을 알게 되고, 배우고, 느끼고 하는 과정들도 내게는 공부였던 것임을....
책을 혼자 읽다 보면 내 편협한 사고와 내 경험의 틀 안에서만 책의 내용을 바라볼수 밖에 없는듯 했다. 사고의 확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읽고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예스 블로그를 하게 되었고, 많은 이웃님들과 책을 통해 소통하고(쌍방향의 소통은 아니지만) 다른 삶의 경험을 하고 있는 이웃들의 세계안으로 들어가서 다양한게 만나는 책 이야기가 참 좋았다.
그러면서도 뭔지 모를 목마름이 있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독서 모임과는 다른 형태의 독서모임을 늘 갈망해왔던거 같다. 아마 내가 그리던 모습이 바로 오늘의 이 책 [세미나책]에서 말하는 인문학 공부인 인문학 세미나의 형태를 상상해오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던 것이었다.
직접 세미나에 참석해보지 못했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 내가 배워보고 싶었던 형태의 또다른 독서모임인 <세미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책속으로~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가 한눈에 안들어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동안 봐온 형태의 간략한 목차 구성이 아니여서 그런것 같다. 장이 많은 것이 보기에 불편함을 주는데 한몫한것 같다. 이부분도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책을 다 읽고 목차를 보면 목차의 소제목을 통해서 내용이 다 요약되어 있음을 알수 있지만 처음에 정말 조잡하게 느껴졌다.)
1장 왜 '세미나' 인가? 2장 어떻게 '세미나'를 할까? 1 - 공부모임 시작하기, 만들기, 들어가기 3장 어떻게 '세미나'를 할까? 2 - 세미나의 다양한 형태들 4장 어떤 세미나를 할것인가? - 세미나 '주제'에 대하여 5장 세미나와 '읽기' 1 - 가장 능동적인 책읽기 6장 세미나와 '읽기' 2 - 인문 고전 읽기의 잔기술 7장 세미나와 '읽기' 3 - 인문 고전의 약간 큰 기술 8장 세미나와 '쓰기' 1 - '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9장 세미나와 '쓰기' 2 - 발제문 쓰기의 실제 10장 세미나와 말하기 1 - 결국엔 '말하기'로 모인다 11장 세미나와 말하기 2 - 말하면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 12장 세미나 이후 1 - '에세이'라는 작지만, 사실은 커다란 마침표 13장 세미나 이후 2 - '이해'보다는 중요한 '통과'에 대하여
프롤로그 함께 인문 고전 읽기, 창의적이고 지혜롭게 낙오하기
'세미나'의 의미는 '대학에서 교수의 지도 아래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학생들이 토론, 연구하게 하는 교육 방법'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세미나란' 특정 주제에 대하여 토론, 연구하여 배우는 방법인데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세미나에는 '교수님'이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수평적 공유'의 공부 방법이 세미나라고 말해주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세미나 형태의 독서 모임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프롤로그만 읽어도 확실 해졌다.
왜 '세미나'를 하려고 하는걸까? '세미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득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생겼다. 저자는 세미나를 하면 하루하루가 바뀐다고 말한다. 세미나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모임이 없는 날은 모임에서 할 말을 만들어 놓으려면 주중에는 책을 읽어 놓아야 하고 발제라도 맡았다면 발제문 쓸 준비도 하면서 텍스트도 읽어야 하기에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읽기'의 밀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텍스트와 더 강렬하게 감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읽게 된다고 하네요. 이렇게 읽는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답니다.
그리고 모든 텍스트를 높은 밀도로 읽어 갈 수는 없지만 세미나를 하면 나 혼자 읽기에 벅찰 정도로 어려운 텍스트라도 꾸역꾸역 읽어갈 수 있게 된답니다. 세미나 동료들과의 약속이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거겠죠?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아마도 이게 아닐까요?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기는 거죠. '친구'나 '연인', '직장동료'같은 관계들과도 다른 '세미나'를 통해 만나는 '친구'는 특별한 '함께 공부'하는 친구인거죠.
3장 세미나는 '독서모임'과 어떻게 다를까?
[세미나책]을 통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이 세미나, 또는 독서모임을 위한 발제문을 작성하는 것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책의 내용중에서 '발제'라는 글쓰기에 대한 것과 예시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나머지 궁금하신분은 책을 통해 읽고 배우시길 ~~
8장 세미나와 '쓰기' 1 - '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일반적인 세미나는 일정 분량을 미리 정해서 읽고, 발제자 한 사람이 발제문을 써 와서 토론을 진행하는 형태의 세미나이다. 그렇기에 '발제'를 맡은 사람이 '발제문'을 써와야 하는 중요한 원칙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 강조하고 있다. '발제문'은 쓰기로 했으면 무조건, 꼭, 절대 써와야 한다고 ....
'발제'란 무엇인가? '발제문'이란 '요약문'이 아니다. 세미나를 하는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발제'를 하는 이유는 '요점'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만한 '문제'를 찾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발제를 받은 사람은 세미나 팀원들이 세미나 시간에 고민할 문제를 만들어 오는 사람인 것이다. '발제문'은 무엇인가? 그 시간에 고민한 '문제'와 발제자가 그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한 글을 말한다.
9장 세미나와 '쓰기' 2 - 발제문쓰기의 실제
'질문'을 만드는 법 발제문 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질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읽기'와 긴밀하게 연결된 일이다. 즉 텍스트를 읽는 동안에 이미 머릿속으로는 발제문을 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발제문 쓰기의 부분은 철학 텍스트를 인용하고 질문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내가 가장 궁금하고 배우고픈 부분이었으나 철학 텍스트가 나오니 좀 많이 어려웠다.
이 예문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질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나와있는데 도저히 여기다 옮겨 적을 내 능력이 안된다. 요약 정리하기도 어렵다 내 한계다. 더 알고 싶은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라며...
그럼에도 발제문의 예시도 없이 끝낼 수는 없으니 저자의 세미나 스토리 발제문 예시를 읽어보시면 아 발제문이 이런것이구나 알수 있을 것이다.
발제문, 질문은 이런것이란 정도만 사진으로 공유해본다.
4페이지 정도의 발제문의 내용을 읽어도 뭔말인지 모르겠다. 철학사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
10장-11장 세미나와 말하기 - 결국엔 '말하기'로 모인다 - 말하면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
'공부를 한다'는 의미에서 '읽기'와 '쓰기'가 가장 중요한 활동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세미나에서 '말하기'가 중요한데 이 '말하기'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입 열기'라고 한다.
세미나에서 말하기, 듣기 중요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어떻게 받을것인가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말의 끝부분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받을 여지를 남겨두면서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미나'는 결국 '질문'에 '질문'을 덧붙여 나가는 공부 형식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12장 세미나 이후 - '에세이'라는 작지만, 사실은 커다란 마침표
세미나 후에 쓰는 정리문, 후기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것이다.
에세이를 쓸때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하지?'라고 묻는 것 보다, '어떤 개념을 가지고 쓸까?'라고 묻는게 훨씬 효율적이고 한발 앞으로 나간 질문이된다. 에세이 쓰기까지 오게 된 과정, 즉 지난 세미나 과정들을 찬찬히 생각해보면서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문장, 강한 의문을 가졌던 개념들, 다른 세미나원이 제기했던 문제 등등. 일련의 세미나 과정을 떠올리며 쓰게 되는 것이 에세이 라고 한다.
나가며~
아... [세미나책] 읽을 때는 술술 읽혔던 책이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 만큼이나 리뷰를 쓰면서 어려웠다. 책의 내용이 좋은데 정리가 어려웠고 리뷰는 남을 위해서도 쓰는것이지만 우선은 내가 필요한 부분을 적고 또 다시 보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좀 많은 내용을 옮기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지금 [세미나책]의 리뷰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아... 이런 내용들이 있구나 정도 보시고 더 알고 싶은 분들만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내가 늘 상상했던 독서모임이 <세미나>의 형태였으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낌은 아직은 이런 형태의 독서모임이나 인문학 세미나는 내게는 어려울수 있음을 깨닫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꼭 한번 기회가 된다면 고전인문학 세미나를 참석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담아 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세미나(seminar)는 토론식 수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승연의 ‘세미나책’은 세미나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 공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출판사 블로그 관리를 맡고 있고 인문학 세미나의 강의 수강도 하고 있는 분이다. 써야 할 글이 많은 분이다. 저자는 경쟁력 담론을 인문학과 무관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문학을 비판과 대안 창조의 학문으로 보는 나의 문제의식에 수렴하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관성적인 생각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관점에 균열을 내고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하리라. 저자는 답은 잠정적이기에 다시 갱신된다고 말한다. 이는 심지어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글쓰기는 연습(187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인문학 공부는 잠정적이라는 다른 말(22 페이지)과도 통한다. 저자는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지만 배움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저자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대상이라 말한다.(29 페이지) 세계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 아닌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현상이라는 말, 그리고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다는 말은 학문이란 현상을 넘어서는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관을 의식하며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원리주의와 회의주의라는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세계란 자기가 경험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질문은 결국 ‘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32 페이지) 공부란 ‘나’를 해석하는 문제라는 의미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어느 순간 공부를 왜 하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공부를 해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문을 두고 생각해본 결과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났다면 그때 공부를 중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읽기를 이어가면 서로 다른 구성원들 속에서 그 밀도가 높아짐을 느끼게 된다.(42 페이지)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또는 우리 모임의 바깥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 세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관건은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혼자서라도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의미 깊은 말을 한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74 페이지) 나는 평소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말을 하곤 한다. 공부할 것을 찾아내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글감을 찾는 노하우를 갖춰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어렵더라도 해설서에 의지하지 않고 원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저자가 말하는 원전이란 원서를 우리 말로 번역한, 그 철학자가 직접 쓴 1차 텍스트를 말한다.) 저자는 원전을 읽는 고생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 해설서를 읽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79 페이지) 그렇게 해설서를 경유해서 다시 원전으로 돌아오면 그제서야 조금씩 원전이 건네는 말이 들려온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글자도 이해되지 않던 문장이 단박에 이해될 때가 있다.(88 페이지) 고전이란 시간을 견디는 책이다. 매번 다시 태어나는 책이라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18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 신성한 자연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 중반에는 주체 중심의 근대철학을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고 오늘날에는 뇌과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것이다.(9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읽기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글을 읽는 동안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머릿속을 뒤적거려야 한다. 잘 읽히지 않는 대목을 만나면 샅샅이 훑어야 하고 이것도 맞춰 보고 저것도 맞춰 보며 텍스트를 의미화해야 한다.(102 페이지) 공부 하는 이유는 앎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104 페이지)
텍스트를 읽는 것은 작은 부분들을 그러모아 전체를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앎들을 텍스트의 내용과 합치고 뭉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앎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104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인간은 안식처가 있는 덕분에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이야기를 주고받는 능력 덕분에 적절한 안식의 공간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이야기의 끈’ 5 페이지)는 말을 생각한다.
내용상 똑같은 지식이어도 내가 내 삶으로 지속적으로 불러들이는 것들이 아닌 지식들, 무언가를 위해 공부한 지식들은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생명력을 급속도로 잃고 만다.(108 페이지) 인문 고전 읽기는 텍스트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특함과 차이를 수행하는 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116 페이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도 공부하는 삶은 가능하다. 자유로움이 그들의 생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지식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은 없다. 기존 지식들을 연결하거나 분해, 조립하면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그렇게 스스로 재구축한 것들이야말로 자기 인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지식을 만들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한다. 기존 지식들이다. 읽고 또 읽어야 한다.(126 페이지)
인문 고전 텍스트의 요점 같은 것은 세미나가 끝나고 난 후에 다 잊어버려도 상관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만들고 그에 답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발제란 세미나에서 회원들을 대신해 질문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140 페이지) 문제로 보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문제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140, 141 페이지) 세미나에서 발제문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읽는 것과 동시에 의문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라도 만들려고 마음을 먹고 읽어야 겨우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발제문을 쓸 수 있다.(185 페이지) 텍스트를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텍스트를 고스란히 옮길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는 그냥 텍스트를 보면 된다. 각각의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 아주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발제문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152 페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에세이는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공부는 지식이 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160 페이지) 자신의 지식을 말로 바꾸어 밖으로 내놓는 것은 중요하다.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다.(161 페이지) 세미나에서는 내가 읽어내지 못한 지식을 다른 사람은 읽어내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입을 거쳐 나온 그 지식이 내가 얻은 지식들을 활성화시킨다.(166 페이지)
이를 보며 우리 모임을 생각한다. 세미나 모임은 아니고 비영리 모임인데 공통 이슈 외에 구성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세미나는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공부방식이다.(176 페이지) 저자는 공부는 단지 아는 것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차라리 모르는 것을 늘려가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178 페이지) 글을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 써지지 않아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최소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면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184 페이지) 저자는 작가들이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잘 쓰는 이유가 써야만 하는 글, 쓰기로 약속한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8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글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성장했음을 증거한다고 말한다. 머리에서 나와 손을 타고 화면에 글자로 출력되기까지 엄청난 변환과 왜곡이 일어난다. 이 역시 많이 쓰는 것으로 점차 극복할 수 있다.
관건은 어려운 읽기, 쓰기, 말하기에 적응하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쓰기로 약속이 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을 쓰지 않고선 공부를 한 것 같지 않은 데까지 가게 된다.(197 페이지) 나는 서평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 같지 않다거 느낀다. 창의성이란 숙달과 관련된다.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이해하는 것에 매몰되면 정답이라는 가상을 추구하게 된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좁은 의미에서든 넓은 의미에서든 진리를 추구하는 학인이고 해석자다.(201 페이지) 우리는 애정을 가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최근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선물 받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다. 인문학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더 설득력을 가진 해석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틀릴 가능성이 없는 해석은 없다는 의미다.(202 페이지) |
|
《세미나책》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쉘 위 공부? - 인문학 공부를 위한 세미나 지침
‘필사’, ‘발제’란 표현을 알게 된지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독서모임이나 세미나 모임에 참여도 해보고 나서야 나는 이 용어를 접하게 된 셈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세미나책》을 읽기 직전까지도 ‘발제’의 개념을 제대로 몰랐다. 1년에 3-4권 정도 읽으면 이미 ‘포만감’을 느꼈을 정도로 책읽기를 힘들어 했던 내가 책 읽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공부를 위한 책읽기는 혼자 못할 이유도 없지만 세미나를 통한 공부는 네트워크가 함께하는 공부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는 ‘나’와 ‘외부’를 이어주어, 지금까지의 나를 벗어나게 해주는 ‘접속구’이기도 하다.
책 읽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방법론적인 책을 여러 권 본 기억이 있다. 원래 매뉴얼 같은 안내서를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1만권 읽기’와 같은 제목을 단 책들의 저자는 과연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었다. 속독과 다독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대부분의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읽기의 방법론은 인문학 공부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독서법이었다. 어느 자기계발서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 방법은 인문학 서적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 경우는 저자가 솔직한 경우였다. 내가 관심 있는 인문학 공부의 책읽기, 공부하기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책들을 몇 권 읽고 내린 결론은 ‘내 관심사를 파악해서 내 속도대로 읽어나가자’는 것이었다.
《세미나책》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크게 기대하고 읽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저자의 인문학 세미나 경험과 공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던져주어서 만족스러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처음 인문학 공부를 시도했다. 이 때 처음 경험해보았던 것이 세미나식 공부였다. 다만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소 기계적인 측면이 있는 내용 요약하기가 아니라 ‘발제문 만들기’였다.
내가 관심있게 읽은 부분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해보자. 저자에 따르면, 발제란 ‘질문을 던질만한 문제를 찾는 일’(140)이다. 따라서 발제자는 세미나에서 ‘고민할 문제를 만들어오되, 형식적으로는 이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141)한다. 이것이 발제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과연 ‘발제문’이 무엇인가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만들어간 ‘발제문’은 마감에 급급하여 끄적거린 요약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작 중요한 질문을 ‘곁가지’ 취급을 했고, 이 질문은 내용 이해를 위한 요약과도 따로 놀았던 셈이다. 물론 그런 점에서 과거에 우왕좌왕하며 고민하던 경험이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발제와 발제문 만들기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고, 나 스스로 발제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었다. 저자 역시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세미나 공부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정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이 책은 세미나 구성과 읽기, 발제문과 에세이 쓰기, 말하기와 같은 ‘공부’의 뼈대가 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되, 다른 방법론 책과 달리 ‘인문학 공부란 무언인가’라는 저자의 ‘공부론’을 접할 수 있어서, 이 부분이 좋았다. 이를테면 인문학 공부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의식적 차원의 공부’(6)이며,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공부란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161)이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발굴해 내는 작업’(202)이라는 견해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공부’는 어떠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학창시절 참여했던 ‘운동권 공부’가 ‘얻은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공부’였다면, 이 책의 (인문학) 공부는 ‘나를 바꾸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언급도 인상 깊다. 저자는 공부의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87)이라고 말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납득이 가지 않거나 생경하게 다가올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내가 품고 있던 문제, 내가 결핍감을 느끼는 지점,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일 테다. ‘나의 공부’ 역시 이 지점을 향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고미숙 작가의 어느 글에서 ‘공부’(工夫)는 중국 무술 ‘쿵후’(功夫)와 발음이 같다는 언급을 읽은 기억이 난다. ‘쿵후’는 공부의 ‘공’(工)에 힘쓰기(力)가 더 들어간 셈이니, 몸을 중심으로 익히는 ‘공부’라고 볼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선인들의 공부(工夫)는 단순히 지식을 머리에 넣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익히고 숙달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말하자면 몸과 머리에 ‘역사’를 담고 쌓아가는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들어온 지식이 내 안에서 겉돌지 않고, 나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야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부는 ‘인문학 열풍’의 정체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라고 진단한다. 이를 나의 말로 표현하자면,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지식이 ‘스펙 쌓기’처럼 물신화되어 버린데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경제력뿐만 아니라 지식을 가진 이가 경쟁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이것이 하나의 권력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工夫)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나의 공부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묻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점검해야할 물음이 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책》은 세미나를 통한 인문학 공부의 지침을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공부’란 무언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많은 책을 읽기 위한 테크닉’과 같은 일방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시각에 충분히 보완이 될 만한 견해와 시각을 담고 있다. 이제 내 삶을 들여다보고 나를 바꾸는 ‘공부’를 할 때다. 쉘 위 공부?
[책 속으로] [1] “(인문학 공부는) 좀 더 의식적인 차원의 공부입니다.” (6)
“인문학 공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른 관점’의 획득입니다. (...) 그것은 곧 ‘자기 갱신’이기도 합니다.” (20)
“(인문학 공부를 통해) 그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바뀌는 것은 나의 일상이고, 일상이 바뀌면 ‘욕망’, 그러니까 원하는 게 바뀝니다.” (23)
[2]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피해서는 안 되는 ‘공부’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 남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87)
[3] “발제문은 무엇일까요? 그 시간에 고민한 ‘문제’와 발제자가 그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한 글입니다.” (141)
“세미나에 있어서 발제문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 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도 납득 가능한 설명을 붙여 주어야 합니다.” (142)
[4]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내 말의 한계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한계를 봅니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내 존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환시킬 수도 있습니다.” (161)
[5] “텍스트에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는데, ‘읽기’란, ‘세미나’란, ‘공부’란 바로 그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발굴해 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202)
[6] “공부는 내 인생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 자신과 함께 공진화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새롭게 주사위를 던져 보는 것뿐입니다.” (205)
[7] “‘공부로 인생역전’ 한다는 건 공부를 발판 삼아 출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인생의 성질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어떻습니까? 공부, 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206)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내가 배운 인문학의 핵심은 해석의 다양성, 즉 정답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수평적으로 배움을 공유하는 세미나는 그런 인문학 공부에 있어서 최적의 공부법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 공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른 관점'의 획득입니다."
그래서 <세미나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배움을 공유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인문학 자체보다는 세미나라는 공부법을 주로 조명하고 있다. 내가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라는 점이 살짝 아쉬웠다. 인문학 책이라기 보다는 인문학 공부법을 알려주는 실천서 내지 지침서에 가까운 책인 것 같다.
책 중반부에 세미나 발제문 예시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예시가 좀 더 많이 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경험했던 인문학 발제문은 어떤 것들이 있었고, 거기서 어떤 배움을 얻었는지 등 콘텐츠 자체에 대한 내용도 비중 있게 다뤄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
세미나 진행에 있어서 그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실제 세미나 운영이나 참여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매우 좋은 지침서일 것 같다. 세미나의 형식, 주제, 책읽기, 발제문 쓰기 등 배움의 기술이 구체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어서 실제 인문학 세미나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참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