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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문의 100년 동안의 흥망성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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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의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이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의 밥이 될것이다.'라고 말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예언이 꼭들어 맞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하며 끝난다.  한 5대쯤 내려오는 100년이 넘는 한 가문의 역사와 삶속에서 많은 인물과 한나라의 정치가 올곧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아틀라스]라는 정말 길었던 작품이 생각났다. 약간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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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의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이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의 밥이 될것이다.'라고 말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예언이 꼭들어 맞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하며 끝난다. 

 한 5대쯤 내려오는 100년이 넘는 한 가문의 역사와 삶속에서 많은 인물과 한나라의 정치가 올곧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아틀라스]라는 정말 길었던 작품이 생각났다.
약간은 지루하면서도 끈기읽게 읽게 만들었던 책, 이런 책을 접할때 내가 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위에 표와 같은 인물간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책은 워낙 복잡다단한 계보임을 알고 있는지 친절하게도 뒷부분에 부록으로 명시되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러 수고해야할뻔했다.
 내가 주축을 삼고 읽었던 인물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다. 그사람을 기틀로 가족관계도도 그려보고 얘기의 흐름도 읽어내는 방법인데, 중간에 그가 사망하면 재미가 반감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방법이 좋은지는 잘모르겟다. 삼국지에서도 유비를 마음속의 주인공으로 선정해두고 읽으니 유비가 죽고나서 후의 조조나 제갈공명의 이야기에 흥미가 반감이 되는 경향이 있다. 아무트 나름 뼈대를 두고 읽는 방법이 장편을 읽어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이이야기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처 우르술라 그들은 친척관계였다. 결혼한후 동네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우발적 살인을 하게되고 그의 영혼이 자주 출몰하다 보니 그 유령이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마콘도라는 마을을 만들어 내고 그 지역 유지가 된다.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하게 마을을 만들어가고 사람이 모이고 도시를 계획하다가 어느날 집시들이 찾아온다. 날으는 양탄자나 자석, 확대경등 아직 문명이 전해지지 않은 마콘도 마을에 신기한 발명품들을 소개시켜 주면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변화 되기 시작하고 집시 할아버지 멜키아데스와의 관계도 친숙하게 맺어가기 시작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는 결혼초 근친상간의 결과 돼지 꼬리 자식을 낳게 되는 다른 가족을 보고 조심햇으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호세 아르카디오, 아마란타를 낳게 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장성해서 자유파에 가담해서 전쟁에 나아갈 무렵 마콘도 마을은 급변화해서 큰 성장을 맞이하고 대령은 전쟁중 17명의 아들을 낳게 된다. 그의 아들의 출생지를 추적하다 보면 그의 전쟁이동지를 알수 있을 정도였다. 이들의 가족들간에도 근친상간의 모습을 여러대에 걸쳐 볼수 있다. 이모와 조카간의 관계와 욕정 등 이해 안되는 부분들도 많고 똑같은 이름의 반복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다. 아마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남미아메리카쪽은 이런 전적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잘모르겟지만 이 두부분은 마치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듯 싶다. 그리고 또 주를 이루는 내용은 대를 거듭하는 습관들이다. 예를 들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물고기 금세공, 아마란타의 단추달기,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의 양피지, 우르술라의 추억담등과 마찬가지로 했던일을 다시 고쳐서 하는등의 고약한 습관이다. 그들은 이런 버릇들로 인해 고독을 달래고 인생의 흐름에 뭔가의 족적을 남기려고 햇던 듯 싶다.

마콘도는 시간이 흐름에 기차도 생기고 외국인 회사(바나나 공장)도 생기고 잊혀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가 결국엔 4년 동안의 긴장마와 10년 동안의 긴가뭄으로 황폐해지고 음산해지고 몰락해 간다. 100년동안 흥망성쇠햇던 저택은 개미떼와 전갈과 잡초들이 뒤덮여 가고 서서히 무너져 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멜키아데스 집시 할아버지의 양피지 예언에 적혀져 있는 그대로 이다로 주술적인 마무리를 맺는다. 리얼일까? 환상일까 싶은 긴 기억의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여러세대를 걸친 인물을 통해 왕 할머니 우르술라 만이 이집안의 제일 멀쩡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가족들을 위해 동물쿠키사업을 벌여 먹여살리고 늘집안을 밝게 꾸미고 자식들을 건사하고 많은 손님들을 대접하고 끊임없이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그 집안의 등불이 아니었나 싶다. 늙어서 노망이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놀이개 감이 되지만 끝까지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 진정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마지막 보루처럼 느껴진다. 세대를 걸쳐 변화하지 않는 주춧돌이 있으면 든든한 법이지 않겟는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s*****7 2011.08.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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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문학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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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8년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의 한 작은 마을인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1947년 보고타 대학 법대에 진학하였으나 소설 창작에 관심을 기울인다. 젊은 시절 동안은 거의 무명에 가까워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쓰기 전에 4권의 단편집 및 중편 소설들을 발표했지만 특별히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소설이 1967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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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8년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의 한 작은 마을인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1947년 보고타 대학 법대에 진학하였으나 소설 창작에 관심을 기울인다. 젊은 시절 동안은 거의 무명에 가까워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쓰기 전에 4권의 단편집 및 중편 소설들을 발표했지만 특별히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소설이 1967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판되자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려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이 일약 유명인사로 변했음은 물론이고, 중남미 문학사, 나아가 세계 문학사를 뒤흔든 뛰어난 책으로 평가받아 1982년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중남미 현실을 잘 파헤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1950년대 전후 콜롬비아의 ‘폭력고발문학’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갈등을 고발하고 있고, 넓은 맥락에서 보면 중남미 수탈의 역사와 사회적 모순들을 총체적으로 허구화한 소설이다. 소설은 마콘도라는 마을을 창건하고 백여년 뒤 이 마을과 함께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이고, 바로 중남미의 역사이기도 하다. 마콘도가 창건되었을 때 이곳은 사물들이 아직 이름조차 지니지 못한 신천지였으니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건설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 내포된 곳이다. 즉,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중남미 역사가 그랬듯이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은 마콘도에서의 이상향 건설을 불가능하게 한다. 제2세대인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보수주의자들과 맞서 32번의 전쟁을 일으키고 모두 패한다. 자유주의의 대의 명분에 맹목적이다시피 휩싸인 그이지만 철저히 반동적인 보수주의자들 모두 작가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내란으로 인한 혼란은 콜롬비아 역사의 아픔이기도 하고 19세기초 독립후 군벌들끼리의 오랜 전쟁을 경험했던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의 상황이었기도 하다. 제4세대의 호세 아르카디오 2세는 제국주의의 경제적 수탈의 증인이다. 미국회사 소속의 바나나 플렌테이션 노동자들의 시위가 무참한 학살로 진압되고 삼천이나 되는 시체가 한밤중에 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유일한 생존자인 호세 아르카디오 2세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키지만 모두들 마법에 걸린 듯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4년 11개월하고도 이틀동안 비가 내려 마콘도는 황폐해지고 부엔디아 가문도 종말적 징후를 보인다. 맨 마지막 후손인 또다른 아우렐리아노는 폐허가 된 집에서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고 근친상간이라는 반인륜적 죄까지도 범하게 된다. 그 결과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났으니 결국 부엔디아 집안은 신천지에서 이상향을 건설한 게 아니라 야만적 상태로 파행적 퇴행을 한 셈이다. 아우렐리아노는 부엔디아 집안의 창건자들과 친분을 맺었던 집시 멜키아테스가 100년 전에 산스크리트어로 쓴 양피지를 해독하는 일에 편집광적으로 매달린다. 놀랍게도 이 원고는 마콘도의 역사와 부엔디아 집안의 운명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었다. 아우렐리아노가 점점 원고에 열중해가는 동안 마콘도는 초자연적인 거센 바람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구절을 채 읽기도 전에 자신이 양피지를 읽던 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마콘도는 “바람에 휩쓸려 갈 것이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양피지의 해독을 막 끝내는 순간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고, […] 백년 동안의 고독을 언도받은 집안은 그대로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458면) 즉, 이 집안은 ‘고독’이라는 마법에 이미 100년 전부터 걸려 있었다. 여러 세대에 걸친 가문의 구성원들이 제각기의 삶을 살았지만 아무도 이 마법에서 풀려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마법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부엔디아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아우렐리아노 혹은 호세 아르카디오라고 불렸는데, 아우렐리아노들은 총명하지만 자폐적 성격을 지녔고 호세 아르카디오들은 광기에 가까운 충동적인 성격을 지녔다. 부엔디아가에서 유일하게 통찰력을 지닌 현자라고 할 수 있는 제1세대의 우르술라는 이런 성격들이 반복되는 것을 한탄한다. 어느 성격으로도 타인들과 진정한 의사소통을 하기에 알맞지 않고, 따라서 그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한편, 호세 아르카디오 2세가 고발하는 노동자 학살이 마콘도인들에게 쉽게 망각되었다는 점은 마콘도인으로 상징되는 모든 중남미인들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현실 때문에 혹은 인권 탄압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무도 신뢰하지 못한 절대 고독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결국, 부엔디아 집안 사람들도 마콘도인들도 마법의 영원한 포로로서 고독이라는 저주의 늪에서 운명적으로 허우적댄다.
s*****x 2000.04.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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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대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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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대부분의 저작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고독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 고독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추상적 의미만을 띤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중남미의 정치적 상황에만 치우친 나머지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라고 평했지만 그것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 해석일 뿐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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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대부분의 저작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고독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 고독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추상적 의미만을 띤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중남미의 정치적 상황에만 치우친 나머지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라고 평했지만 그것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 해석일 뿐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고독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중남미의 정치적 현실 같은 소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70~80년대 어두웠던 우리 나라의 상황과 맞물려 정치적 소설로써 이해된다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고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라는 문제를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자신 특유의 문체와 글쓰기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그 방식대로 말이다. 마르께스는 이 작품의 바탕에 근본적으로 고전적인 글쓰기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작품을 잘못 읽으면 이 작품이 단순히 말하기의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고 이해하기 쉬우나 자세히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온 고전적, 신화적인 글쓰기를 마르께스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러한 고전적 글쓰기의 탄탄한 바탕 위에 해학적이고 너무나도 독창적인 정말 사실같은 환상을 첨가 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재미를 느끼게 한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책을 다 읽는 순간에 밀려오는 공허함을 통해서 인간의 고독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감동은 여느 다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그 새로운 무기가 지닌 전술적 가능성이 무엇인가를 측정하면서 오랜 시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지낸 결과 마침내 어찌나 명쾌한지 가르치기에도 쉽고, 읽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수 있는 설명서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는 그 설명서를 자신의 실험에 관한 여러 증빙 자료들을 여러 장의 도해들과 함께 어느 심부름꾼에게 맡겨 당국으로 보냈는데, 그 심부름꾼은 우편물을 실어 날으는 노새들이 다니는 큰길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산을 넘고, 헤어나기 힘든 늪에서 길을 읽고, 거센 강을 건넜고, 맹수들의 발길질과 절망과 역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지경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 수도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군 당국자들앞에서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시범을 보이고, 태양 전쟁과 관련된 복잡한 기술들을 몸소 교육시킬 목적으로 정부에서 연락이 오자마자 곧장 수도로 가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j*****n 2001.04.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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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충격적이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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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 책을 골랐을때, 부끄럽게도 이 책이 노벨수상작인지 몰랐다..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든 다는 이유로 선택했던 책이었으니깐. 어떤면에서는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이었다면 나의 편견으로 따분할거라는 생각에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것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이라고 생각되지 않게 무척 흥미있고 재미있었다. 솔직히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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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 책을 골랐을때, 부끄럽게도 이 책이 노벨수상작인지 몰랐다..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든 다는 이유로 선택했던 책이었으니깐. 어떤면에서는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이었다면 나의 편견으로 따분할거라는 생각에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것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이라고 생각되지 않게 무척 흥미있고 재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선 내가 이책을 읽었을때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책 내용이 무척이나 적나라했던 기억에 당황했지만 좋았다..ㅠㅠ 후에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을때 백년 동안의 고독이 많이 생각났다. 대체로 두 소설이 한가문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고, 또 결말도 비극적이어서 그랬나보다. 단지 다른점이라면 '백년동안의 고독'은 좀더 몽환적이고 비 현실적인 반면에 '김약국의 딸들'은 현실에 가깝다는것이다. 암튼.. 지금 옆지기가 내 추천으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어 보고 있다. 다 읽고 나서 나도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 겠다.
b*****e 2005.1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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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암시의 미로 속에서 우리를 거울에 비쳐 보았을 때...
"환상과 암시의 미로 속에서 우리를 거울에 비쳐 보았을 때..." 내용보기
이 책을 산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가브리엘 마르께스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단지 그 당시 내가 몹시 우울했고, 불안정했으며, 자신이 고독하다고 느꼈다는 사실을 알뿐이다. 그래서 고독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책을 읽었다. 작품은 난해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공감이 가지 않는 행동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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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가브리엘 마르께스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단지 그 당시 내가 몹시 우울했고, 불안정했으며, 자신이 고독하다고 느꼈다는 사실을 알뿐이다. 그래서 고독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책을 읽었다. 작품은 난해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공감이 가지 않는 행동만을 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끝도 없는 환상과 암시의 미로를 헤매 다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그들이 말하는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업에 의한 것인가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치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에서처럼 가문의 몰락이 예언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고독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의 결핍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애정은 무엇인가. 애정은 고독을 치유하는 약인가. 하지만 백년동안의 고독했던 한 가문의 끝은 근친상간에서 온 파멸이었다. 99년을 내내 애정결핍으로 고독하던 가문이 마지막 1년을 진실한 사랑으로 채워가려는 순간 그것이 부도덕한 근친간의 애정이었다는 이유로 신기루처럼 사라져야만 했던 것이다. 허무한 일이다. 인간들 하나 하나의 죄가 쌓여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몰락과 멸망이라는 파멸의 길로 스스로를 몰아 넣는 것이 고독의 끝이었고 또한 치유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단지 남보다 약은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고, 남과 같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이다. 시대에서 밀려나 주변을 서성이는 고독. 부모로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어떻게 말 할 수 있는 가. 단지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죄라면, 그래서 벌을 받아야한다면, 지금도 존재하는 많은 고독들 또한 그러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 까.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냥 방치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 까. 우리가 그곳에 속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그렇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고독을 잉태하는 일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어느 한 가문의 슬픈 얘기만은 아니다.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얘기도 아니다.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고 크고, 작게 이어지는 일이고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전병처럼 은밀하게 지속되는 일이다. 막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막지 못 하는 일이기도 하며 치유되는 가운데 보균자는 항상 존재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우리가 속한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문명이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마지막 아이의 돼지꼬리를 그려본다. 그가 개미들에게 파묻힌 것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아우렐리아노를 기억한다. 예언에만 몰두하던... 그리고 멈추지 않고 우르술라의 내부에서 흘러내려 사랑만을 원하고 죽음으로밖에 막을 수 없었던 시뻘건 피의 외침을 상기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은 옳고 그름의 세속의 잣대로 판단될 수 없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을 한다.
d*****g 2000.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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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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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역사가 그 가정을 포함하는 사회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고, 한 사회의 역사가 그 사회를 포함하는 국가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으며, 한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를 포함하는 세계 혹은 인류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어떤 특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누군가 그랬다. "그대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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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역사가 그 가정을 포함하는 사회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고, 한 사회의 역사가 그 사회를 포함하는 국가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으며, 한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를 포함하는 세계 혹은 인류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어떤 특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누군가 그랬다. "그대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그대가 지나온 길 즉 과거를 보라!!" 불경에서도 '현재의 과(果)는 곧 과거의 인(因)에 의한 것이고 미래의 과는 곧 현재의 인에 의한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한 마디로, 모든 역사는 운명과 싸워 이기지 않는 한, 우주의 엄한 법칙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원리 속에서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이 책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으면서 떠올린 건 "인과응보" "순환의 역사" "반복" 등의 낱말이었다. 그만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헛된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인(因)으 로 되어 미래에, 그리고 현재에 나타나는 과(果)가 너무나도 정확했던 것이다. 또, 주인공 들의 행동들은 대부분 반복되거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그들 가문의 역사 또한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아우렐리아노대령이 황금물고기를 주조했다가 용해하는 행위, 그의 여동생이 수의를 짰다가 푸는 행위, 그 외 인물들의 똑같은 행위 등 모두 의미 없는 행동들을 반복한 다. 이것은 중남미인들의 행위의 무위성, 무의미성으로 해석하는 좋은 예가 되는데 이 속에 서 부엔디아 가문이 상징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숙명적인 고독을 발견할 수 있다. 또 고독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 또한 극단적인 형태인 근친상간으로 나타나 라틴아메리 카의 자폐된 세계를 상징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백년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승리와 좌절의 역사를 쓴 것이 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소설의 시간관은 시작은 종말에 내재되어 있고, 종말은 시작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종말론적 시간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백년 동 안의 고독』을 쓰는 데 있어 중요했었던 것은 이 소설을 어떻게 끝낼까가 아니라 어떤 식으 로 진행시킬까 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는 수많은 인물들(호세 아르 까디오나 아우렐리아노와 같은 동일한 이름을 가진 7대에 걸친 남성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사건들(대부분 동일한 사건의 반복) 또한 어지럽게 깔려 있지만 반복해서 읽다보면 거기에 는 지속적인 어떤 흐름이 있다. 즉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리듬이나, 공간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숙명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보면서 새삼 숙명의 무거움과 엄함을 절감할 수 있었고 숙명과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지만 결국엔 승리하지 못하 고 좌절해 버리는 인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숙명! 인류가 출현한 이래, 생과 사를 거듭하면서 생겨난 숙명! 숙명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뇌에 허덕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나선 수많은 종교들! 나는 어떤 길이 올바른지 분명히 알고 있고, 숙명을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l*****o 2002.07.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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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한 일족이 겪은 백년 동안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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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만 무지한 줄 알았는데 음악과 춤을 통해 매우 친숙했던 라틴 문화가 이리도 생경스런 소설 작품으로 다가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마야 문명을 그린 영화 '아포칼립토'도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에 버금가지 않았다.   소설을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선 가계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 권의 소설에 많은 가계의 인물이 등장하고 상호간의 관계가 복잡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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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만 무지한 줄 알았는데 음악과 춤을 통해 매우 친숙했던 라틴 문화가 이리도 생경스런 소설 작품으로 다가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마야 문명을 그린 영화 '아포칼립토'도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에 버금가지 않았다.

 

소설을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선 가계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 권의 소설에 많은 가계의 인물이 등장하고 상호간의 관계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이름이 계속 중복 및 반복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이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어느 한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여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르술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등장기간이 짧고, 성격은 매우 극단적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한사람의 인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엔디아 일족 전체를 하나의 인격체가 가진 여러 일면으로 받아들이며 소설을 읽어 갔다.

부엔디아 일족의 엽기적이고 파격적인 가족사가 얘기하는 바는 결국 제목과 같이 보편적인 모든 사람이 평생 동반해야할 고독이라는 존재이다. 사랑을 하거나, 홀로 지내거나, 혁명을 도모하거나, 돈에 집착하거나 소설속 대분분의 주인공들은 고독과 쉽게 화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평생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십다. 

k****9 2013.06.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의도된 이름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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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조금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엄청나게 헷갈리고 구별할 수 없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우선 남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서부터 부인 우르술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호세 아르카디오, 아마란타,그외 수많은 부엔디아와,아우렐리아노,아르카디오가 등장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 중 이름 헷갈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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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조금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엄청나게 헷갈리고 구별할 수 없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우선 남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서부터 부인 우르술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호세 아르카디오, 아마란타,그외 수많은 부엔디아와,아우렐리아노,아르카디오가 등장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 중 이름 헷갈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톨스토이” 와 “도스도에프스키” 의 책에도 없었던 가족 연보가 이름과 함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어느 정도인지 추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수많은 이름들에 힘들어하면서 50페이지쯤을 읽었을 때는 이 책을 과연 계속 읽어야 하는가? 이게 정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수 없이 첫 장의 가족 연보를 넘겨보면서 이 사람이 누군지를 파악해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100페이지 까지 읽고 나서는 일단 한번 읽기로 했으니 끝까지 읽자고 마음을 먹고 이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어차피 부엔디아, 아우렐리아노 아니면 아르카디오겠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랬더니 이게 왠 일? 그때까지 지루하기만 하던 책이 갑자기 흥미진진해져서 다음 장을 빨리 넘겨보고 싶은 마음에 휩싸였고 중반쯤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이름과 동일한 행동 회상 등으로 인해서 나는 많은 이름에 혼란이 야기시키는 일종의 환각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중후반을 넘기면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아내인 우르술라가 죽는 단락에 와서는 왜 이제껏 인물 파악을 남성을 기준으로 하려했는가 후회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를 인물 파악의 중심에 두고 그의 첫째 아들,둘째 아들,딸,둘째 아들의 부인 같은 식으로 파악하려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금방 책속에서 사라져갔으면 그 후에 중심점으로 잡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실상 인물간의 관계를 파악하기에는 그 누구보다도 우르술라가 가장 적당했다. 그녀는 책의 초반에서부터 등장할 뿐 아니라,후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할 뿐 아니라 모두가 그녀의 혈육이기 때문에 관계를 인지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한다고 자신하며 앞에서 처럼 의식적으로 여성을 먼저 서술하기도 하는 나였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보다고 생각했다. 각설하고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이 책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이구아랑의 부부로부터 출발하는 일족의 역사를 마콘도라는 신 대륙 위에 백년 이라는 시간 동안 펼쳐내고 있는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이구아랑과 결혼 후 같은 마을의 동지를 살해하고 그 망령에 쫓기듯이 신대륙을 찾는다면서 동료들을 이끌고 헤메이다가 원하던 곳을 찾지 못하고 마콘도에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동료들을 이끌며 마을에 개척을 위해 힘쓰던 그가 멜키아데스라는 짚시를 만나면서 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일족은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걷게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연금술에 심취하여 가족을 돌보지 않게되고 그의 아들들은 각자 보답받을수 없는 사랑과 그 무엇을 찾아 오랜 세월 헤메이게 되고 끝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에서 최초로 사랑에 의해 탄생한 아이는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이게 될 것이요, 최후의 인간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는 멜키아데스의 예언대로 아이는 죽고 결국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가족사는 끝을 맺는다.
YES마니아 : 로얄 z****r 2003.09.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