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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만나 더 뜨싯하게 아린 이야기,
몽실몽실 포근한 겨울이불 속에서
아직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감기님 덕에 봄날 다가오면 볼까 싶던 요 이쁜 책,
밀양 어느 댁 양념딸,
시골살이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너그럽고 넉넉하고 속 깊은 엄마,
* * *
사랑과 믿음과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엄마와 딸.
* * *
책장을 넘기며,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보통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는
* “너거들 잘 커서 넘한테 욕 안 듣고 살면 선미샘 어무이 말씀이 귓전에 계속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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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친하지 않다. 인류에 존재하는 어떤 인종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면 사이가 좋지 않다. 남성 인류가 그리 생겨먹었다. 그렇지만 엄마와 딸은 다르다. 엄마와 딸도 아옹다옹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끝내 엄마와 딸은 친구가 된다. 좋은 동무가 되어 서로를 이해한다. 세상이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억눌린 자의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보다 여성 고유의 공감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딸이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 엄마 깊숙이 들어간 딸이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엄마의 고생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여길수록, 아울러 딸이 뒤늦게 깨닫고 눈물 흘리는 경우가 잦을수록 감동은 크다.
엄마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다. 선생 하는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기를 펴지 못했다. 말도 많고 까탈스런 작은집 큰집 증조할매들, 한동네 모두 모여 살아 더욱 그랬다. 십 년이 넘게 아프셨던 할아버지 병 수발을 들었지만 정작 당신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누웠어도 맏딸인데도 마음 편히 집에 모시지 못했다. 사위 눈치 사돈 눈치에 당신의 어머니는 몇 달씩 큰딸 작은딸네 집을 오갔다. 할아버지에 이어 할머니도 중풍이 들어 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다섯 아들과 딸, 시누이를 데리고 살았다. 농사라고는 모르는 남편 대신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해내는 엄마를 보고 소같이 일만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에 말수 적고 입이 무거워 다른 아지매들처럼 재불재불 말 섞지 않는다고 진산 할매한테는 ‘도도한 참산 질부’ 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그래도 엄마는 묵묵히 남편과 자식들, 식구들을 지극하게 보살폈다. ‘선하기 살면 선하게 풀리고 악하기 살면 악하기 풀린다.’는 믿음으로 살아갔다. 우리의 주인공 ‘야야’는 엄마랑 티격태격하면서도 마침내 하나하나 엄마의 진짜 모습을 깨달아 간다. 봄 꽃맞이하듯.
매화는 벌써 지고 벚꽃도 피었다 지고 복사꽃도 다 지고 나무마다 새잎이 야들야들 반짝거린다. 동네를 환하게 밝혀 주던 살구꽃도 지고 자두꽃도 지고 나니 이제 탱자나무 울타리가 올망졸망 꽃망울을 틔우네. 고 여리고 작은 꽃눈이 어떻게 저 댕돌 같은 가시나무를 뚫고 나온는지. 마침내 꽃망울이 터지면 새하얀 꽃잎과 가운데 노란 꽃술이 골목골목을 환하게 밝혀 준다. 뒤따라 나온 연둣빛 새잎까지 어우러지면 정말 눈이 부신다. 금방 나온 잎은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나지 싶을 만큼 반짝거렸다. 탱자꽃은 안개꽃처럼 자잘하지도 않고 목련처럼 크지도 않지만 참 곱단했다. (35 - 36쪽)
“열댓이나 되는 식구 저 어깨에 지고 혼자 저토록 고달픈 너거 아버지, 나는 우짤 용기도 없고 힘도 없어 그 짐 나눠지지도 못하고. 내 할 일은 이거뿐이다.” 아버지 술 많이 마신 다음 날, 북어 토닥토닥 두드리며 쏟아내시던 그 말이 또 다시 저 구부린 등허리에서 들린다. 눈가에 핑 도는 눈물 재빨리 쓱 닦고 야야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명태가 하늘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우리가 다 먹어버렸네.” “내한테는 너거들이 하늘이나 똑같다. 너거 입에 들어 간 기 바로 하늘로 간 거다.” (78 - 79쪽)
엄마는 이리 힘들게 먼 길을 와서, 섬뜩한 산속에서 혼자 꿀밤을 주우면서, 이 꽁당보리밥에 된장 한 숟갈로 한 끼를 때웠단 말이지. 자꾸만 눈물이 어려서 밥도 고추장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슴하게 어둠살이 퍼질 때까지 일하고 들어와, 부뚜막에 걸터앉은 채로 푹 퍼진 국수에 간장 한 숟가락 떠 넣고 허기를 채우던 우리 엄마. 시큰하게 쉰 보리밥 버리지 못하고 우물물 퍼다 헹궈 내어 푹푹 떠먹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가 도시락 반찬 갖추갖추 챙겨서 꿀밤 주우러 올 거라고? 속없이 달떠서 따라 나선 이 못난이. 야야는 속에서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땀이 삐질거리고 정수리가 따가웠다. (144 - 14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