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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사상 선집을 연이어서 읽었다. 별자리가 되는 책이었고 기나긴 시간 동안 기억에 자리 잡을 책이기도 하다. 이 시간에 이 책들을 펼쳐볼 수 있었다는 건 크나큰 의미가 된다. 가지고 있었던 신념들이 보다 더 확고하게 선명하게 보이는 책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읽다가 몇 번을 책표지의 톨스토이를 여러 번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그의 얼굴을, 다음에는 그의 모든 모습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살피면서 관찰하면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이 책들을 읽었는지 모른다.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그의 목소리들이 선명해지고 분명해지는 글귀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책표지의 얼굴들과 모습들을 바라보았던 날들로 가득해진다. 문득 떠오르는 질문들과 답을 찾고자 헤매는 여정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게 한다. 이 책의 저자가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질문들과 이야기들도 그러하다.
톨스토이가 오십 후반에 집필한 <인생에 대하여>는 러시아의 종교회의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여 출판이 금지된 금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과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기 시작한다. 왜 금서가 되었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충분히 시대적 상황들과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톨스토이의 사유와 통찰에 놀라워하면서 읽게 된다. 일관되게 흐르는 맥락은 언제나 확고하고 분명하기만 하다.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시작으로 인생이 모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인생의 모순을 율법학자와 현학자들이 그것을 감추고 있다고 일침하는 내용도 전한다.
인생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지, 인생의 모순과 문제의식까지 첨예하게 책은 이야기한다. 관습과 예의, 풍습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합리적 근거도 없는 관습들에 길들여져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책은 전한다. 무의의 혼란함이 바로 인생이고 다른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면서 사는 우매한 군중들이라고 일침한다.
저자는 이성적 의식을 강조한다. 이성적 의식이 거짓된 가르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책은 전해준다. 개인적 행복과 이성적 행복을 비교하면서 행복이란 무엇인지도 재정비시켜준다. 헛되고 세속적인 고찰들이라고 비하나는 내용들도 마주하기도 한다. 인간의 진실한 생명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도 책은 분명하고 굵은 목소리를 내면서 전해준다. 동물과 이성적인 인간이 가지는 서로 다른 점도 설명한다.
이 책은 다른 책들의 내용들과 연결되는 별자리 같은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이 다수 떠오른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관점, 시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등 저마다 다른 점들이지만 그것들이 서로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놓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새 그 점들이 되는 책들은 별자리가 된다. 그리고 빛이 되어준다. 이 책은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보다 더 견고하게 다져지는 시간들로 채워진 책이다. 어느 것도 반박하지 않는 의심하지 않는 내용들로 채워지면서 책장을 넘겼던 책이다.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이 가지는 생명의 힘에 대해서도 책은 언급한다. 전보다 더욱 커지고 더 강하게 자신에게 작용하는 생명의 힘 말이다. 이성과 사랑의 크기에 따라 더 성장하고 더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도 책은 전한다.
사랑이 적은 사람과 사랑이 많은 사람을 비교하면서 고통의 괴로움을 비교하는 글도 담고 있는 책이다. 행복인 생명과 고통의 상관관계까지도 만나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성경이 가진 다면적인 의미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 된다. 심오하게 읽고 오랜 시간 사색하면서 깨달아하는 것임을 다시금 느끼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책이기도 하다. 비판과 비유들이 무수히 넘치는 책이기도 하다. 죽음을 바라보는 담대한 시선의 의미와 삶의 발자취를 남긴 많은 사람들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깨닫고 그들이 보여준 언행의 일치까지도 이 책의 목소리들과도 접목해보면서 책장을 덮게 해준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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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출판사에서 톨스토이의 사상 선집을 펴내고 있다. 첫 번째는 < 인생에 대하여> 작품이다. 일단 책의 판형이나 크기나 디자인이 세련되어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출판사 측에서도 충실한 번역과 꼼꼼한 편집으로 톨스토이 사상을 정수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엿보인다. 톨스토이의 인생관이 일목요연하게 집약되어 있는 이 작품은 나의 지적 수준이 미개하여 내용을 간파하기에 다소 많이 어려웠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에서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님의 여의고, 가장 좋아했던 형 니콜라이도 죽으며 가까이에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톨스토이가 58세 되던 해 마차에 치여 죽을뻔한 일이 벌어지고 그는 생애 전반에 거쳐 누구보다도 죽음과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성장하게 된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발돋움을 하였으나 아스타 포도석 폐렴으로 사망에 이른다. 톨스토이는 인생에 대하여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 했을까? 작품을 내용을 살펴보자.
책의 도입부에는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다룬다. 생명이라는 말은 아주 간명한 것으로 누구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이해되는 말의 의미로 사용해야 하는데, 현대 과학자 혹은 천문학이나 기계학 물리학 화학 그 밖의 모든 분야에서 제각각 개별적으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한 측면을 다루면서 생면 전체를 연구한다고 공언한다고 말하는 사태를 보며 톨스토이는 광신으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이 기괴한 학설이 놀라울 뿐이라 말한다. 고대로부터 여러 민족들 속에서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보다 확실한 정의를 통해 인적 내적 모순을 해명하고, 진실한 행복과 진실한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생에 대한 인류의 위대한 현자들의 정의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의 모순을 풀어줄 이런 정의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특별한 사회적 위치를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을 인류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이들도 존재하며 오로지 형식적인 의례의 수행만을 요구하는데 넓은 의미를 보면 율법학자들의 교리 해석과 닮아 있음을 지적한다. 인류가 이제까지 살아오며 배우고 또 배워왔던 위대한 현인들의의 인생에 대한 가르침들이 오늘날 현대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지식의 방향이 잘못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하나 하나의 예시로 종교의 종류를 다루며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율법 하자와 현학자들의 사이비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 못하고 인생의 지침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저 살아온 습성만이 그들에게 인생의 유일한 지침일 뿐이다. 그들은 그에 대해 어떤 이성적 설명도 하지 못한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생명은 이성적 의식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이성적 의식은 인간의 개체성 속에서 모르는 사이에 자라나는 개체로서의 생명이 불가능한 것이 될 정도도까지 생성된다. 그렇다면 이성적 의식은 무엇일까? <<성서>>의 <요한복음> 태초에 말씀, 즉 로고스 <로고스는 이성, 지혜, 말을 뜻한다)가 존재했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하고 거기서 모든 것이 나온다고 시작된다. 이 말에 따르면, 나머지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이면서 그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톨스토이는 선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개체성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면 그런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개체로서의 인간에게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개체적 존재의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톨스토이는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서로 개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투쟁이고, 둘째 생명의 낭비와 포만과 고뇌로 이끌어가는 쾌락이라는 기만이고, 셋째 죽음이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톨스토이는 생명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말한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이 닥칠 때 손쉬운 자살이 아닌 여전히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첫째 현재의 지상의 삶이, 쾌락으로는 결코 보상되지 아니라는 일련의 고통이라는 것은, 평범한 이성적 판단뿐만 아니라 철학적 고찰에서도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죽을 때까지 조금도 줄지 않고 강화되기만 하는 고통 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처지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신을 통해서, 그리고 주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행복을 향한 지향이고 지향하는 그것은 반드시 얻어질 것이다. 생명은 죽음이 될 수 없고 행복은 결코 악이 될 수 없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말하는 인생이었다. 나는 유난히 나의 주변부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 문제 즉 "나는 누구인가?","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등과 같은 자아에 관하여 혹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생산적인 사유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톨스토이의 말처럼 동물적 수준까지 내려갈 만큼의 고통에 자주 노출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고통이라는 것은 나를 성장시켜준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통해 생명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도록 수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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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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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카레니나 첫구절)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을 읽으며 그 중 현대문학작품 중 사회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안나카레니나> 방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과 결혼, 예술, 종교, 죽음 등 삶에 모든 것이 총 망라한 문학의 집대성인 톨스토이는 과연 누구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톨스토이 서거 110주년을 맞아 바다 출판사에서 출간된 톨스토이 사상 선집 중 <인생에 대하여>를 만난건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농민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빈민구제활동도 하면서 당대의 급진적인 지식인이나 상류층과의 교류를 불편히 했고 자신의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농민들에게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고 하니 인간미가 당대의 작가들의 평가와는 많이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라고 생각 됩니다.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작품은 많이 읽어서 알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거인의 삶 서거110주년을 맞아 원전의 뜻을 정확하게 살린 번역과 현대적 디자인으로 만나는 톨스토이 사상선집
인생에 대한 위대한 현자들의 정의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에는 훨씬 더 많은 대다수 사람들이 인생의 모순을 풀어줄 이런 정의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p39
인간은 언제나 모든 것을 신앙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인식한다. 인간이 이성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인식한다고 확신하면서 속일 수는 있지만 , 인간이 두 개의 신앙을 만나고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는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p254
<인생에 대하여>라고 생각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자칫 막연할 수 있는 심오한 세계에 빠질 수 있으나 60쪽에서도 언급했듯이 자기 개인을 위해 살 것인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속한 공통체, 아니면 조국과 인류를 위해 살것인가를 고민할 때 개인의 인생이 보잘것 없고 무의미한 것이라면 다른 모든 인간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무의미할 것이라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지향한 인생관과 세계관, 삶에 대한 탁월한 인식과 생명을 바라보는 확장된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악에 대한 비폭력 저항과 정권에 대한 솔직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고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삶이고 또한 죽음의 공포는 그릇된 관념에서 만들어진 한 측면이다라고 말하며 우리는 인간임을 항상 인식하고, 이성을 지닌 존재로써 스스로 존엄을 지키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행복은 오직‘세계와 타인에 대한 사랑에 근거’한다라는 명제를 진정한 인생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성을 포기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매스컴을 통해 바라보곤 합니다.‘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나쁘다!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가? 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가장 좋은 지침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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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하여 레프 톨스토이 (지음) | 이강은 (옮김) | 바다출판사 (펴냄) 러시아의 대문호로만 알아왔던 톨스토이에 대해서 감탄을 아낄 수 없는 독서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세계관'이라는 것이 있고, 그 세계관에 입각한 글쓰기 때문에 독자 또한 세계관이 비슷한 작가의 글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인생에 대하여>를 읽으며 톨스토이가 바라보는 인생관은 여느 철학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자신의 인생관이긴 하지만.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 진리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는 않는다. 간혹 지나친 희생과 이타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타인의 행복을 보며 자신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점에 대해서는 결국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과는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빼앗아 자신의 행복으로 갈취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 거짓 행복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하고 있다. 내가 남의 행복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은 타인도 나의 행복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존재에 의해 언제든 박탈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를 위한 삶은 현재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 모두가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할 것이므로 그 또한 무의미 해진다. 생명을 가진 모두는 자신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은 서로 의존해 있기 때문에 관계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명을 출생과 죽음 사이로만 인식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답이 없는 모순 속에서 답을 찾는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종교와 철학, 과학과 지식. 인생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무얼까? 단순한 생명 활동을 넘어선 이성적 판단.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가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이다. 동물적 개체성은 생명의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동물적 개체성은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지 그 자체를 포기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성적 의식으로 할 수 있는 감정적 활동은 사랑이 대표적이고, 사랑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위대함 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동물과 구별되어지는 이성과 사랑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통찰과 사랑이 전제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이룰 수 없는 동물적 개체의 행복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그래서 힘든 것이다. 동물적 개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동물적 행복을 위해 타인을 강제하고 착취하기에 위험해 질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톨스토이는 그러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두려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더 두려워하니 말이다. 동물적 죽음이 아닌 진짜 죽음은 진정한 생명의 행복이 더 이상 증대될 수 없을 때 뿐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생명, 사랑에 집중해 보고 있지만 이 둘 모두 '나와 다른 존재 간의 관계' 안에서 이성적 의식이 함께 일 때 더 빛난다. 행복에 이르기 위한 인생,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바다출판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