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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호기심을 북돋는 경이로운 사물들의 방이라 풀어 말할 수 있다.(12쪽)" 책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분더카머'라는 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낯선 외국말, 뭔가 있어 보이는 말, 그래도 쉽게 쓰게 되지는 않을 것 같은 말, 이렇게 낱말 하나로 이것과 이어진 세계까지 얻었다.
분더카머라는 말을 자꾸만 되뇌는 동안 떠오른 다른 말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 제목이었다. 분더카머가 어떤 사물을 모아 놓은 방이라는 쪽에 가까운 반면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정신의 영역으로 채워져 있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구분하기는 했는데 이는 내 방식일 뿐이다. 나의 분더카머? 나의 '자기만의 방'? 겹칠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작가들이 종종 서랍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았다. 기억 속 서랍 따위로. 기억 안에 서랍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어떤 걸 뽑아서 또는 몇몇을 엮어서 글을 쓴다는 식으로 하는 말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작가가 분더카머라는 말을 쓸 때마다 작가의 기억 속 서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럴 듯하군, 대상이 사물이든 기억이든 자신의 과거 어느 지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분더카머라고 하든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든. 분더카머는 이만큼이나 강하게 독서 중인 내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말이었던 셈이다. 도무지 떨칠 수 없었으니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낯선 말이 계속 나왔고, 그게 외국어였고, 작가가 외국에서의 경험담을 들려 주는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예술 용어와 수많은 작품까지 등장하면서 내 가엾은 배경지식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만연체로 이어지는 작가의 서술 방식도 쉽게 읽지 못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쉼표에서는 꼭 쉬었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달라는 듯. 그만큼의 호흡을 기대한다는 듯. 또 작가가 자신이 어렸을 때의 일화를 말해 주는 대목에서는 묘한 친숙함에 다소 가까이 다가간 듯 싶다가도 금방 예술 속 세계로 바꿔 놓은 표현들에 홀로 부딪히며 물러서고 말았다. 일화는 일화, 예술은 예술. 내 일상의 한계로 인한 구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섭섭하지는 않았다. 예술이 되지 못하는 일화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나마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예술 쪽으로의 한 발짝 정도?
책장은 넘겼으나, 읽기는 했으나, 다 읽은 듯 여겨지지 않는 이 난감한 기분이라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한 기분이라니. 내 의식의 분더카머 안에 '분더카머'라는 이 낱말만큼은 확실하게 담을 수 있었다는 이것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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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주 보이는 미색 종이가 아니라 깨끗한 백색 종이에 단어별로 묶여 다음 줄로 넘어가는 독특한 문단 형태. 이런 편집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품과 잘 어우러져서인 듯하다. 정말 천천히 이 책을 읽었다. 8월에 사서 12월까지. 계속 책상 위에 올려두고 어떤 날은 한장도 읽지 않고, 어떤 날은 두 세편의 글을 읽으며 행복했다. 나는 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은 그리 없지만, 모르는 단어나 이름이나 작품이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찾아보며 읽진 않았다. (그랬다가는 다 읽기 전에 포기할 것 같아서) 그냥 이 책에서 처음 만나고 처음 그것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으로 많은 낯선(작가에게는 익숙했을) 것들을 처음 접하게 되어 기쁘다. 나는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생기더라. 삭막한 하루가 좀 더 풍성해졌다. 작가가 작품에 넣은 작가가 어린시절에 쓴 '거울'이라는 글은 내가 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 학생이 쓴 글이라며 읽게 했던 적이 있다. 그 글을 쓴 학생이 이 책의 작가라니! 괜히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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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우리가 보았던 예술 작품이 ‘분더카머Wunderkammer’의 전통에 속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분더카머는 ‘기예의 산물을 집적한 공간이라는 뜻에서 쿤스트카머Kunstkammer’라 하기도 한다. 분더카머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전신’이지만 다르다. “분더카머를 재해석하는 현대의 몇몇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분더카머는 개별자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겪어온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진열실이자 마음의 시공간의 상징체다. 기억이란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훨씬 거대한 망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 지은 분더카머 안에는 결코 미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예술 작품의 원형이나 고도로 완성된 지적인 사유의 언어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언뜻 보면 무가치한, 부서진, 깨진, 닮은, 기원과 이름을 모를, 무수한 말과 이미지의 파편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공존한다...” (P.19) ‘기억’이 ‘망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는 논점에서 나의 마음이 열린다. 보다 편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글을 읽는 대신 망각하기 위하여 글을 읽는다. 어느 순간 망각하기 위하여 읽고 있다, 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다면 좋다. 내가 읽는 것이 이미지로 만들어지지 못하여도 골머리를 앓지 않기로 한다. 나는 잠시 애를 써보고 넘어간다. 길고 긴 회랑을 걷듯 읽는다. “그의 떠남. 이후. 엄습하는 잠. 무감각의 감각. 단속적으로 정신이 드는 순간마다 기어이, 며칠에 걸쳐, 겨우 쓴다. 어려운 책이 널린 서재를 벗어나 옛날의 다락방으로 간다. 혼자 울거나 잠들기에 더 적요로운 곳으로. 그곳에서 책 바퀴는 물레가 된다. 물레바퀴 위로 기억의 실타래가 돌아간다. 그것은 휘돌아 부풀며 이상하고도 낯익은 무늬를 자아낸다. 물레질을 할수록 사진처럼 점점 또렷해지는 그 이미지를 들여다본다...” (pp.40~41) 낯선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오래 되었다. 활자가 도드라지며 이미지를 포섭하는 동안 잠자코 기다리게 된 것은 최근이다. 때로는 이미지 대신 허공으로 가득 연기처럼 텍스트가 휘날린다. 나는 분별하거나 선별하는 대신 짐짓 모른 체 한다. 뒷짐을 지고 앞을 향해 걷는다. 제스처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한다. 뉘앙스가 내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오감을 칸막이로 나눠 따로 다독이려고 한다. “... 수수께끼는 기억술의 탁월한 언어적 형식이다. 모든 인간적 경험은 수수께끼로 압축 변형됨으로써 망각의 파괴적 영향력을 벗어난다. 예술이든 언어든 인간의 죽음을 넘어 살아남은 것은 수수께끼의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음에 예술가를 품은 사람아, 그러니 너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고 기이하게 이지러진 수수께끼의 세공인이 되기를,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보다 오래 생을 지속할 수수께끼를 건네주기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네 죽음을 견디며 그것을 무한히 풀 것이다.” (p.60) 묶여 었던 공간이거나 묻혀 있던 장소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내가 있다면, 나의 흔적이나 나의 궤적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 리얼리즘은 살아 있음의 확인이 아니라 죽어 있지 않음의 확신이다. 때때로 나는 나를 돌파하기 위하여 움직인다. 거리를 계산하고 속도를 입력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지의 공식을 사랑함으로써 출발은 시작된다. “묘지를 다니던 봄에 H의 다람쥐가 갑자기 죽었다. 혹시 내가 며칠 전에 보낸 외래종 먹이 때문인가 하여 너무나 미안하고 무서웠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오래도록 묻지를 못했다.” (p.262) 분더카머는 내가 본 것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의 구역에 가깝다. 호기심으로 채워진 캐비닛인데, 그 철제의 촉감으로 만족하고 돌아설 수도 있다. 망각하기 싫다면 기억하지 않음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상념은 잔망스러운 저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가능하다면, 꼬리에 꼬리가 물리지 않도록 한 뼘쯤 서두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 온통 말의 무덤과도 같은 말인데, 도무지 묻지를 못하겠다. 윤경희 / 분더카머 :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 문학과지성사 / 300쪽 /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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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출판사에서 출간한 윤경희 작가님의 분더카머 리뷰입니다 저는 전자책 ebook으로 구매했습니다 누가 추천해줘서 구매한건데 에세이를 좋아하는편이라 익숙하기도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구성이라 그런지 쉽지만은 않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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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 Wunderkammer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공간을 지칭한다. 호기심을 북돋는 경이로운 사물들의 방이라 풀어 말할 수 있다.'' 박물관의 전신으로도 볼 수 있는 '분더카머'는 나만의 보물창고처럼 취향을 드러내는 사적인 공간 느낌이다. 저자는 물질적 분더카머를 자신의 기억과 인상에 대한 사색의 분더카머로 책을 썼다. 분더카머가 누군가는 방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서랍일 수 있다면 저자는 이 책을 분더카머로 만들었다. 분더카머, 메르헨, 슈바르츠발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버지, 친구N, 횔덜린 등 저자의 마음과 생각이 드러나는 소재들을 저자 스타일의 글쓰기로 이야기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 소설이 있다면, 이 책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에세이 같았다.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다가 누군가에게 얘기하듯 하다가 생각나는데로 단어들을 나열하다가 하는 등 자유로운 글쓰기였다. 글이 전반적으로 엄청 현학적이고 그들만의 세상처럼 당신만의 세계, 당신만의 글 느낌이 강해서인지 공감했다 과했다를 왔다갔다 했다. 재밌었다가 멀어졌다가...ㅎㅎ 내가 많이 모자라서 저자의 폭넓은 식견엔 택도 없었지만 새로운 개념이나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들이 신선했으면서도 한편 올드한 느낌도 받았다. 옛날 작가들의 글 같은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