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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공감하는 것의 또 다른 면을 다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이 책 [르네상스 미술]의 부제 "그 찬란함과 이면"에 눈길이 머물게 된다. 14~16세기에 서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부흥의 흐름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유명 예술가들의 뛰어난 작품과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기에 '찬란함'이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에도 그와 함께 '이면'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관심을 끌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접했던 르네상스에 대한 내용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다고 기존의 관점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을 통하여 르네상스를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이 시기를 더욱 복합적으로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크게 5가지 주제를 제시하면서 르네상스의 또 다른 면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점이라는 사실에서 르네상스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첫번째로 등장하는 '사보나롤라'를 접한 순간부터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에 대한 내용은 피렌체를 당시 뛰어난 예술의 꽃을 피우며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도시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피렌체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 피렌체는 상공업의 발달을 주도하면서 메디치 가문이 장악한 곳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주변 이탈리아 도시와의 경쟁은 물론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곤 하였다. 이는 역사에서 짧막하게나마 언급이 되는데, 사보나롤라의 등장에 대해서는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제서야 어렸을 때 읽었던 미켈란젤로의 위인전에서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을 접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외세의 침략을 예언하면서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고 메디치 가문의 통치를 부정했던 지랄라모 사보나롤라는 신앙인이자 예언자로서 피렌체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이로 인하여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사보라롤라와 그 추종 세력이 잠시나마 피렌체를 장악하게 된다. 종교에 대한 원리주의 성향이 강했던 이들은 화려한 예술을 배격하였는데 당시 20대 전후였던 미켈란젤로는 그로부터 금욕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과거의 내가 접했던 내용들이었다. 이 책에서는 주로 보티첼리와 사보나롤라에 관한 관계를 통하여 당시 피렌체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보티첼리의 작품 [신비로운 탄생]은 기존에는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이 1500년에 그려졌다는 점은 요한 계시록의 1500년에 예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기에 1498년 사보나롤라가 화형에 처하여 죽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티첼리는 이 작품을 고통이 끝나고 새로이 영광된 신의 세계가 열릴 거라는 믿음의 측면에 의하여 그렸다는 해석도 타당해 보인다. 보티첼리가 그림을 그린 시점과 이러한 해석은 과연 보티첼리가 사보나롤라를 긍정 또는 부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각각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 책의 삽화 中에서 )
시뇨렐리의 [판의 향연]을 통하여 르네상스의 특징 중 하나를 '멜랑콜리아'로 정의하고 해석한 부분 역시 눈길을 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자연과 목축의 신인 '판'은 호색한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판이 등장하는 그림은 종래의 그러한 그리스 신화에서의 모스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왔다. 그런데, 시뇨렐리의 [판의 향연]에 대한 저자의 색다른 해석은 우선 우울증, 즉 '멜랑콜리아'에 대한 설명에서 먼저 비롯된다. 동양의 사상(四象)의학에 등장하는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과 같이 서양 역시 아리스토텔레사의 '사성론'을 바탕으로 '상귀니우스'(다혈질), '콜레리쿠스'(담즙질), '플레그마티쿠스'(점액질), '멜랑콜리쿠스'(우울질)라는 네 개의 기질로 인간은 물론 자연과 시간을 분류한다고 한다. '멜랑콜리쿠스'는 '차갑고 건조한'의 특질로서 보통 턱을 괸 우울질 특유의 포즈로 표현이 된다고 한다. 시뇨렐리의 [판의 향연]에서도 왼쪽 끝에 있는 인물이 턱을 괴고 있는 것도 '멜랑콜리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르네상스를 찬란함으로 찬미하고 있지만, 이 시기의 많은 예술 작품들이 턱을 괸 포즈, 즉 '멜랑콜리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의외의 사실이다. 뒤러는 아예 그의 동판화 작품에서 턱을 괸 천사의 모습을 등장시키면서 제목 자체를 [멜랑콜리아 I]으로 지을 정도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르네상스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시뇨렐리의 [판의 향연]의 해석은 단순히 그러한 턱을 괸 인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멜랑콜리아'의 기질을 통하여 중앙의 '판'과 그가 향한 시선, 그리고 그 시선 끝에 있는 인물들이 당시 메디치 가문과 그 주변의 인문주의자들, 특히 플라톤의 철학을 새롭게 해석한 신플라톤주의와 연관지어 작품을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시뇨렐리의 그리스 신화 속의 캐릭터를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피렌체의 면면을 담아내고 또 그것에 대한 해석의 열쇠를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우리가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을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것에 그치거나 공식적인 비평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책의 삽화 中에서 )
보티첼리의 명성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경로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익숙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아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보티첼리의 [봄(프리마베라)]은 중앙의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중심으로 '봄(프리마베라)'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왜 이 작품에서 '봄'을 느낄 수 있는지 이야기하라고 하면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는 것은 왜일까? 느낌을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삼미신(三美神)'이라 불리우는 '아름다움', '사랑', '쾌락'을 상징하는 세 여신에 대한 해석('삼미신(三美神)'은 라파엘로는 물론 루벤스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자주 묘사되는 존재이기도 하다.)을 시작으로 눈을 가린 큐피드와 눈을 가리지 않은 큐피드에 대한 분석, 그리고 서풍 제피로스가 대지의 님프인 클로리스를 붙잡는 장면에 대한 해석, 왼쪽 끝에 위치한 머큐리의 존재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보티첼리의 [봄(프리마베라)]에 깃든 다양한 의미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우측 부분을 보면 서풍의 제피로스가 클로리스를 잡고 있으며, 클로리스는 꽃의 여신인 플로라의 옷깃을 잡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또한 신화 속의 한 이야기로 비춰지지만, 저자는 서풍인 제피로스를 봄의 기운을 불어넣는 존재(다른 곳에서는 제피로스를 겨울로 해석하기도 한다.)로 묘사하면서 그 기운을 받아 대지의 여신인 클로리스가 플로라로 변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즉, 이 작품에서 플로리스와 클로라는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제피로스가 클롤스를 잡은 상황에서 클로리스의 입에서는 꽃이 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겨울이 봄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또한 클로리스의 손결이 닿은 플로라의 옷깃에 꽃무늬가 생겨나는 것은 클로리스가 플로라로 변모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포함하여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이 어떻게 봄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심혈을 기울인 분석 앞에 그저 느낌만으로 보티첼리의 작품이 봄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보티첼리의 입장에서는 서운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의 삽화 中에서 )
벨리니의 [신들의 축제] 또한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과 그 이면에 담긴 것에 대한 간극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등장한다. 벨리니의 [신들의 축제]는 제목 그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향연을 묘사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언뜻 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인물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실한 종교화가였던 벨리니의 입장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이교도의 신이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경건하거나 우아하게 그릴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지물을 통하여 그들이 그리스의 신들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 작품은 비록 벨리니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제자이자 또 다른 거장인 티치아노가 배경을 포함하여 마무리를 하였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 여기까지가 눈으로 보이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신들의 축제]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왜 평범한 인물들로 그리스 신들을 묘사하면서까지 굳이 벨리니가 이 작품을 그린 것일까라는 물음을 통하여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이끌어 낸다. 먼저 이 작품은 언뜻 그리스 신들을 소풍을 나온 평범한 모습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혼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임을 이끌어 낸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작품의 중앙에 있는 가이아와 넵튠에 대한 묘사에 그 답이 존재한다.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는 '마르멜로'라는 열매를 집어 드는데, 이 열매는 결혼의 상징이라고 한다. 또한 넵튠은 그런 가이아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있는데, 이는 유럽에서 두 남녀의 결혼을 상징하는 포즈라고 한다. 그러니 이 그림은 [신들의 축제]라는 제목과는 달리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벨리니가 이사벨라에게 의뢰를 받았는데, 중간에 의뢰자가 알폰소로 변경되었다. 실제 벨리니는 이 작품을 그리다가 작업을 중단하였는데, 이를 다시 설득한 인물이 알폰소였고 그는 아내인 루크레티아와의 결혼 기념을 위한 그림으로 작업을 재의뢰하였으니 그림 속의 가이아와 넵튠은 알폰소 부부를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을 X선으로 분석하면 그림과는 다른 배경과 인물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곧 벨리니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티치아노가 손을 봐서 완성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익숙한 것의 이면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미술 : 그 찬란함과 이면]은 부제에 걸맞게 작품에 깃든 함의와 당시 상황을 토대로 르네상스의 이면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말한 이면을 무조건 정설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관점과 해석을 함께 언급하며 자신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면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기존의 관점 역시 인정해야 가능한 것이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보티첼리나 벨리니를 비롯한 르네상스 예술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정하여 그것의 이면을 제시하기 위하여 다른 다양한 작품과 사상, 당시 분위기를 분석하는 과정은 꼭 르네상스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익숙한 것의 이면을 어떻게 살펴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여러모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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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중세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인간중심, 화려함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유로운 풍경등 긍정적인 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찬란한 르네상스를 담은 책은 많지만 찬란함과 함께 그 이면을 보여준다는 것이 관심을 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면이라는 말때문에 아주 부정적인 부분들을 만나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대적 분위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볼 수 있었다.
중세에는 현실 세계의 부정이 신의 나라에 이르는 길이었지만, 르네상스에는 현실 세계에 대한 긍정이 신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었다.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의 기이한 융합, 이교적인 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이런 신비로운 결합이야말로 르네상스 예술의, 나아가 르네상스 문화 전체의 기본적인 골조를 이루었다.(중략)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사고의 유희처럼 보이는 르네상스 특유의 이 사상을 체계화 한 것이 바로 15세기 후반의 신플라톤주의다.-p 7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또는 읽은 후 가장 많이 남아있는 단어가 신플라톤주의였다. 메디치 가문에서 플라톤주의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들은적은 있지만 이렇게 깊숙히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사회에 만연해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에 대해서도.
이탈리아에서 특히, 피렌체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 새로운 사상이 작품 제작의 바탕을 이루었음은 당연하다. 이제부터 펼쳐보일 것은 특히 1500년 전후, 이탈리아의 정신적 풍토가 예술과 어떻게 관련되었는 지를 되도록 명료하게 밝히려는 소박한 시론이다. -9
소박한 시론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저자의 깊이는 정말 놀라웠다. 휘몰아치듯 쏟아지는 미술적 지식의 강에서 허우적댄 기분이다.
1장 사보나롤라
'허영의 소각'이 마치 하늘로 쏘아올린 불꽃이 명멸하는 것처럼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간성의 발현과 현실세계의 긍정이라는 밝은 국면의 이면에 세계의 종말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강박, 혼란과 파괴를 위한 충동, 파멸을 위한 은밀한 동경, 비합리적인 환시로의 도취와 같은 것들이 있던 것이다.-p 28
1499년 오리베에토 성당에 시뇨렐리가 '세계의 종말'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그 중 <적그리스도>라는 작품에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이교적인 신전 앞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적그리스도'와 그에 관련된 몇몇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보나롤라를 나타낸 것이지만 그의 등장 이전부터 피렌체에는 종말관이 팽배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시뇨렐리의 상상력은 세기가 바뀔 무렵 온 유럽을 뒤덮었던 정신적 분위기에 의해 한층 고양되어 르네상스의 예술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후세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비너스의 탄생>, <봄> 과 같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그림을 그렸던 보티첼리가 <신비로운 탄생>이란 그림에서도 '세계의 종말'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바사리가 썼던 <예술가 열전>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책이라 미술책을 읽다보면 자주 만날 수 있다. (꼭 한번은 정독을 해보고 싶은 책이다.) 바사리에 의하면 보티첼리는 사보나롤라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보티첼리의 작품을 통해 사보나롤라와의 관계의 진위를 살펴나갔다.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허영의 소각'을 일으켰던 수도사 사보나롤라를 시작으로 당시 팽배했던 '세계의 종말론'에 대한 이야기는 평소 내가 알고 있던 르네상스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었다.
제 2부 멜랑콜리아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여명을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 르네상스 전성기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그 이유중 일정 부분을 '예술에 조예가 깊은 통치자',명망높은 '예술의 보호자'였던 로렌초 일 마니피코에게서 찾았다. 피렌체 예술의 높은 명성을 다른 나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던 '정치가'였다고. 그러고보니 전성기의 대표적인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는 피렌체를 떠나있었다. 하지만, 서정시를 남긴 시인이었고, 인문주의자의 집단을 만든 것이야말로 르네상스 역사에서 로렌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코시모는 플라톤에 관심을 가졌고, 주치의의 아들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의 저서를 번역하게 했고 카레지의 별장에 머무르게 했다. 이렇게 플라톤 아카데미는 시작되었고, 로렌초는 이 아카데미를 발전시켜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르네상스에 대해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신플라톤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못했는데, 이 책에서 얻은 큰 성과중에 하나가 아닐까싶다. 피치노는 15세기 당시에 자타가 공인하는 '제 2의 플라톤'이었고, <플라톤 신학>으로 대표되는 피치노의 신플라톤주의는 르네상스 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한다. 책에서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였다.
제 3부 사랑과 아름다움
이 장에서는 삼미신을 다루고 있었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세네카는 삼미신이 각각 '베풀기', '받기'. '보답하기'를 나타내며 서로 손을 잡고 있다고 한 반면, 4세기 로마의 문필가 세르비우스는 알몸이어야하고, 한명은 뒷모습이고 두 명이 앞쪽을 향해야한다고 했다. 하나의 은혜에 대해 배로 갚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보니 두가지 삼미신의 모습으로 확연하게 구분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세명이 있으면 그냥 삼미신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총 10개의 삼미신 그림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라토닉 러브'의 의미까지 삼미신의 의미로 풀어볼 수도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삼미신의 이야기는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 신플라톤주의가 세계를 파악하는 근본적인 원리는 이처럼 '유출'.'발현', '회귀',혹은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유출', '회전', '귀환'이라는 세개의 국면이다.-p 171
삼미신이 등장하는 그림 보티첼리의 <봄>이 이 장의 중심에 있었다. 큐피드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의 의미, 비너스 배후로만 반원형으로 뚫려 있는 것의 의미,서풍 제피로스의 등장 등으로 이 작품을 분석해나가면서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었는데, 저자는 말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죽음의 사자 머큐리가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죽음'의 의미도 생각해봐야한다고.
어느 쪽이든 부활의 축제는 봄의 축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그것들은 우선 '죽음'이 있고 뒤이어 소생이 있다는 점에서 같다. 그렇다면 보티첼리의 <봄>에서 중앙의 비너스를 중심으로 하는 화려한 그룹을 왼편 머큐리가 이끄는 것, 그리고 머큐리가 '죽음의 사자'로서 등장한다는 점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여기서 '봄'은 죽음에 뒤이은 소생의 '봄'인 것이다.-p 233
보티렐리 <봄> 피렌체,우피치 미술관
제 4부 두명의 비너스
비너스의 탄생에는 엄마없이 바다에서 태어난 우라노스의 딸,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르네상스 예술에서는 ' 두 명의 비너스'를 즐겨 다루었는데,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통해 두 명의 비너스가 가지는 의미를 알아볼 수 있다. 이 그림들에서 피치노는 신플라톤주의적인 미의 원리의 현현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비너스의 탄생>은 우라노스의 고환이 바다에 떨어져 태어날 수 있었기에 '죽음 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도 보았다. 두 작품 모두 구도가 반원형의 아치 밑에 주요인물을 배치하는 중세 이래의 정통적 수법을 계승했다고 보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세례'의 구성이라는 것을 만났다. 그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비너스가 지상에서 활동을 개시하는 장면이고, 그 활동이란 미와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가져온 것으로 <봄> 이 담고있는 이미지와도 연결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티치아노의 <성애와 속애>, <신중함의 알레고리>등과 같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신플라톤주의를 말하는데, 고대의 사상, 기독교의 교리를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신플라톤주의의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제5부 신들의 축제
벨리니의 <신들의 축제>라는 작품에서는 신들을 숭배 찬양하기보다는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상황들을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르네상스 문학과 미술에서는 종종 신들을 이런 식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장중한 문체로 신과 영웅을 희롱하는 희문 스타일에 빗대어 의사 영웅시 양식이라고 하는데,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복잡한 의미를 담은 만테냐의 <파르나소스>를 통해 서로 모순된 것을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운 조화가 탄생한다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게도 미쳤음을 알려주었다.
정말 많은 작품을 만났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깊이 있게 작품을 분석해 들어가는 열정을 만난 적은 없었던 것같다. 그런 열정으로 저자가 처음에 밝혔던 '1500년 전후, 이탈리아의 정신적 풍토가 예술과 어떻게 관련되었는 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평소 르네상스에 접근하던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화 되어 있었다. 소개하는 작품에서도 차별화되어 있었다. 보티첼리의 <봄>,<비너스의 탄생>과 같이 익숙한 그림도 물론 있었지만 르네상스의 단골손님격인 화가들의 작품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은 조연이었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를 이끌었던 인문학자들,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세상을 바라보았던 방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의 또 다른 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정말 의미깊은 시간이었다. 놀랍게도 이 책은 1971년에 세상에 나온 책이었다. 2018년도에 개정판이 나왔다. 1966년 1월 부터 1969년 7월까지 3년 반에 걸쳐 <산사이> 에 게재한 글을 보충하여 엮었다. 도쿄대학교와 파리 제 1대학에서 공부하고 도쿄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를 지낸 일본 미술사학계의 수장으로 100여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책을 읽기 전 너무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고개를 갸웃했는데,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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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작품을 통해 서기 1500년 전,후 이탈리아의 정신적 풍토가 예술과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명료하게 밝히려는 게 이 책의 요지이다. 인간성 회복과 현실 세계의 긍정이라는 밝은 면만 떠올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면에 감추어진 복잡다단한 문화를 폭넓게 조명한다. 첫째, 르네상스 시대에도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다.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는 종말관이 뿌리깊게 침투하고 있었다. 중세 때부터 이어진 이 공포감을 반영하는 대표작으로 시뇨렐리의 <세계의 종말>을 들 수 있다. 나체를 그린 작품은 모두 태워버린 '허영의 소각'을 통해 현실세계를 부정하는 사상을 전파했던 수도사 사보나롤라를 적그리스도로 강등시킨 작품이다. 고리대금업자에게서 재산을 빼앗는 것도, 신을 모독한 자를 참수하는 것도, 검은 옷을 입은 염탐꾼이 사람들을 적발하는 것도 모두 사보나롤라의 신정 정치를 패러디 했다는 것.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신이 보낸 사자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처지가 일변하여 가짜 예언자로 전락하여 처형된 일화를 보여준다.
둘째, 파괴와 전복에 대한 충동이 시작되었다. 당대를 주름잡는 정신적 수도사도 한방에 훅 갈수 있다는 죽음이라는 공포가 끝나면 천지개벽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믿음이 당연히 펴져나갔다. 전복을 이끈 것은 바로 란디노가 쓴 단테의 신곡 주해서이다. 이 주해서에는 고대 점성술을 바탕으로 목성과 토성이 만나 진실한 종교가 탄생하고, 창조의 시대가 펼쳐질거라고 적고 있다. 당대 인문주의자들에게는 필독서였던 이 주해서는 큰 영향을 끼쳐 훗날 르네상스 시대를 이끄는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의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세운다. 아카데미아 플로토니카는 인문주의자들의 모임으로 살롱과 같은 분위기였다.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는 플라톤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대 피렌체에서 사상계의 거물로 추앙받는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의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임무를 맡긴다. 병약했던 피치노는 중세 때부터 이어오던 부정적인 인간인 멜랑콜리아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고 우울한 인간이야말로 세계를 바꾸는 창조적인 인물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꾀하게 되고, 멜랑꼴리아를 찬양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또다른 신플라톤주의는 은혜의 순환을 의미하는 사랑의 삼미신 개념을 널리 알렸다. 베풀기, 받기, 보답하기로 순환되는 은혜는 미, 사랑, 쾌락 혹은 정절, 미, 사랑으로 변주되며 작품 속에 투영된다. 자매 세 명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형태이며,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은혜가 단절되지 않고 전달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셋째, 이교 신화와 기독교 신앙을 넘나드는 에술작품이 쏟아졌다. 이것은 신플라톤주의의 전형적인 사상을 투영한 것이다. 티치아노의 '성애와 속애', 라파엘로의 '기사의 꿈'이 대표작이다. 두 작품 모두 사랑의 두 가지 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고대, 중세의 사상과 이미지가 르네상스에 와서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새삼 깨닫는 점은 어느 시대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하며, 역사를 평가할 때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특정 시대를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가 비록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신의 세계로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 문화와 중세의 어두운 면까지도 포용하면서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것을 연관시켜 새로운 조화를 탄생시키는 플라톤적 사고 방식에서 옳고 그른 이분법을 탈피하는 지혜를 얻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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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미술들과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에 관심이 많아 받아 읽어본 책이었다. 그림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배우고, 당시 피렌체의 시대상을 더 상세히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르네상스 미술>은 부제의 '찬란함과 이면'중 '이면'에 더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한번도 들어본 없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했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15세기 말. 바꿔 말하면 1400년대 후반. 1500년을 앞둔 상황이었다. 5로 떨어지는 숫자, 특히 100단위에 우리는 왜 이렇게 민감한걸까. 르네상스 당시 피렌체는 인본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종교적 색채가 옅어지는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종말론에 대한 두려움이 판치던 시기였다. 사브나롤라는 그러한 두려움을 이용해 예술품들을 허영의 상징이라 지칭하고 불태우게 하였다. 사람들은 달변가인 그에게 열광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시기에 자신들의 그림을 실제로 불태우거나, 화풍을 종교적으로 바꾸었다. 이 책은 그 중 보티첼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다룬다. 보티첼리는 과연 사브나롤라의 추종가였을까 아니였을까. 두 주장 모두 근거가 팽팽하다.
책은 예술사를 다루고 있다보니 당연히 여러 회화나 조각 작품들을 바탕으로 당시 시대상을 역추적하고 있다. 중요한 부분들은 확대해서 사진을 삽입한점이 좋았고, 사진과 글이 적절히 배치되어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서 좋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딱히 어려운 말 없이, 집중해서 읽으면 르네상스 당시 피렌체의 시대분위기가 어땠는지 논증하는 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피렌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책. 피렌체, 유럽, 르네상스, 서양회화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이들의 찬란함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에서 소개하는 이면도 살펴보는게 좋은 경험이 될것이다.
https://blog.naver.com/0910156/222425327717 >> 책을 완독하고 리뷰했던게 아니라서 추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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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르네상스라는 유럽에서 그리고 인류에게 가장 빛났던 한 시절의 회화를 들여다보며,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에 팽창해 있던 시대적 관념과 종교, 사상 등을 미술 작품에서 들추어 봅니다. 책의 소개에 등장했던 미술 작품에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고 하는 것은 글쎄요,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서는 그런 표현도 가능하다고 보겠지만, 작가가 비밀을 캐내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이라기 보다 작가가 이 책을 적으실 무렵까지 이전 사학자들이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인지, 인류에게 비밀이었던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일어났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년 전의 일이며 500년 전에 만들어진 미술작품을 현대의 미술학자들이 그림에 대한 역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한곳에서 만들어진 미술 작품에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며 500년이 흘렀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여러 주인을 만나 떠돌았을 것이며, 유럽에서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이리저리 옮겨지거나 사료가 사라진 작품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추리니 탐정 이런 이야기는 하나의 광고일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두고 그 미술 작품이 누구의 진품이 맞는지, 누가 의뢰를 했는지, 누가 왜 덧칠을 했는지 하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순서대로 이야기를 하면 쉬웠을 이야기를 빙빙 돌리며 마치 그 안에 든 의문점을 예고해가면서 이야기를 하시는 바람에 자칫 이야기 굴레에 빠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카시나 슈지 선생의 글 자체가 신문에 연재가 된 글이라 일반 대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라 크게 어려운 글이 아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몇 군데 정도는 번역자분의 추가 해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미술과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상식을 위한 책으로 위대한 미술 작품 이름과 위대한 화가들의 이름만 기억하는 책이라면 모르겠지만, 수십 년에 걸친 한 미술사학자가 고치고 고쳐 쓴 르네상스와 관련된 역사적인 부분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덧붙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공부를 해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적극 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리고 책이 인기를 얻어서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책으로 출판이 되어서 나이 든 사람들도 삽화를 봄에 있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전문적인 책을 만들어주신 재승출판~ 감사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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