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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 독도.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옆 나라 일본빼고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그들만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고 부정한다. 일본인들이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얼토당토 않는 말들을 지어낸다고 하지만.. 문제는 잃을 것이 많은 자국민들이 그들의 헛소리에 선동당한다는 것이다. 그 꼴을 눈뜨고 볼 수가 없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도 무지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거짓 선동당한 사람들에게 독도가 대한민국에 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가르쳐주기위해 펼친 책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독도 이야기는 모두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문헌과 그 증거들이 뒷받침해주고 있기에 100퍼센트 신뢰하고 읽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록뿐만 아니라 주변국을 포함한 해외의 기록들이 대거 등장하니 든든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는 이런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나왔다. 독도가 일본땅이라 외치는 그들의 무지함과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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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사실에 대한 부정, 이는 한일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역사의식의 부재, 선진국이라고 주창하지만 여전히 탐욕적인 행보나 정치적 악용에만 혈안된 모습에서 과연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상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역사에 대한 진실규명, 일본의 사죄와 보상, 배상 등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도 이런 기본적인 취지를 바탕으로 독도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우리의 입장에서가 아닌, 세계적인 눈으로의 객관성이나 일본은 독도에 대해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집착하고 있는지, 이에 대해 냉정히 평가해 봐야 한다.
책에서는 독도문제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정학적 요인, 지리학적으로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지도를 바탕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지도가 존재하듯이 일본도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왜곡된 지도를 갖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제적 외교력이 중요한 세계지도나 역사교과서나 문서에 등장하는 독도에 대한 표기문제,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고 대응해야 한다. 국민들의 정서나 감정으로 보자면 독도는 분명히 우리의 영토이지만, 날이 갈수록 교활하게 대응하며 뻔뻔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의 속내를 알아야 국제법 상으로도 어떤 형태의 문제나 분쟁 지역화가 될 수 있는지, 이에 대해 판단해 봐야 한다.
또한 이 책이 갖는 특징적인 요소가 존재하는데, 바로 지도를 통해 접근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 측면이다. 독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지도를 통한 학습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일본의 논리나 관점에서 그들이 왜 독도를 문제삼으려고 하는지, 이를 알아야 우리도 국제법에 준하는 대응이나 냉정한 판단을 통해 우리의 해양영토인 독도를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오염 수준의 역사왜곡을 하며 정치적, 교육적인 악용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 하지만 역사는 진실을 말하고 있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셈이다. 그 근거가 바로 다양한 고지도와 세계지도에서 드러나고 있고 이에 대해 우리는 더 공유하며 사실적 정보를 세계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예전의 우리나라도 아니며, 일본의 사과와 인정이 없는 이상 그들을 상식적으로 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겉으로 보여지는 다양한 형태의 외교력도 중요하지만 민간 차원에서의 공감대 형성과 접근을 통한 문제의식과 해결, 일본이 잘하는 물밑 외교를 우리가 역으로 활용해서라도, 독도문제는 반드시 진단하고 넘어가야 한다.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너무 뻔한 주제로 볼 수 있지만, 자칫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역사적인 접근, 지도를 통해 널리 알리는 그런 행동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책을 통해 배우며 고지도가 갖는 역사적 사실과 상징성에 대해 공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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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 트레이드의 역사를 통해 보는 독도 발견사
북스타에서 출판한 이상균 박사님의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는 울릉도와 독도가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영역에 속한 사실을 맵 트레이드를 통해 살펴본다.
저자인 이상균 박사님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프랑스 껑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는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오늘 뉴스에 2021년 일본의 방위백서에 17년째 독도가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일본의 행위를 바라보는 마음은 개탄스럽기만 하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한일 간의 갈등 양상으로 몰고가서 국제사법재판소 등 제3의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저자는 누가 보더라도 과거 일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다거나, 일본이 이 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된다면, 지금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행태를 지속하지 못 할 거라 판단했다.
19세기 동안에 일본이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정황을 맵 트레이드의 역사를 통해 확인해보자.
맵 트레이드는 지도의 매매 거래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행위자들 간에 지도에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지리정보 수집, 교류, 전파에 이르는 수준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저자는 사용하고 있다.
19세기는 동서양의 만남과 교류가 극대화되던 시기로서 탐험과 항해를 통해 지도 제작이 완성되던 시기이다.
17세기까지 서양에서 제작된 동아시아에 관한 지도와 지리정보는 대단히 부족한 상태였는데, 1700년을 기점으로 현격한 변화를 보인다.
16세기 무렵부터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중심으로 모피 무역이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러한 상황은 서구인들의 탐험과 항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모피 무역이 급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소빙하기의 출현으로 지구의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추운 날씨가 많아지고, 빙하의 면적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소빙하기의 시기에 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대륙 및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국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점은 ‘태양 흑점’ 활동의 주기에 관한 것인데, 태양의 흑점 활동이 가장 저조했던 1450년에서 1534년 사이, 그리고 1645년에서 1715년 사이에 지구의 기온이 현저하게 하강했다는 것이다.
소빙하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일본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과 관련한다.
일본은 세계지도 제작 과정에서 영국 등 서구의 지도 제작 전통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영국의 상선 아르고노트호의 극동 항해 이후, 지도상에 잘못 표현되었던 의문의 섬 아르고노트를 일본에서 그대로 따라 그리는 과정에서 울릉도를 아르고노트 섬에 비정하고, 독도를 다즐레(울릉도)에 비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한마디로 일본에서는 19세기 동안 독도를 지도상에서 누락시켜왔고, 그러한 상태를 1904~1905년 무렵 러일전쟁 시기에 독도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두드러짐에 따라 일본은 독도에 관한 재설정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청나라와 러시아에서 체결한 네르친스크 조약(1689)으로 러시아의 국경이 확정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청나라의 국력이 쇠락해 1857년에 러시아가 아무르주와 연해주를 설치하는 등 영토 일부를 취한다.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할 청나라 강희제는 나라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도가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정확한 지도를 원했던 강희제는 1708년부터 전국을 실측하여 10년 후인 1717년에 중국 최초의 실측지도인 <황여전람도>를 완성한다.
지도 제작에 참여한 프랑스 선교사는 <황여전람도>를 프랑스의 거장 당빌에게 보내고, 당빌이 제작한 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표기되어 있다.
지도를 가지게 된 서구 열강은 한국의 동해상을 탐험하면서 울릉도를 목격하고 독도를 목격한다. 라페루즈는 울릉도를 발견해 프랑스 왕실에 전하고 영국의 제임스 콜넷은 모피 무역선 아르고노트호를 이끌고 한국 동해상에 새로운 섬을 목격했다고 한다.
독도가 재발견되는 과정에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의 크림 전쟁(1853~1856)이 관련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 함대가 동해상에서 독도를 발견해 독도의 존재는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를 살펴보면 한일간의 해상경계를 한국해협으로 선명한 붉은 선으로 표현했으며, 울릉도와 독도는 명확히 한국의 영역 안에 표현되어 있다.
1810년에 일본에서 제작된 <신정만국전도>에는 영국의 지도를 모사하여 영국의 지도에 포함되어 있던 울릉도와 부속 섬들이 일본에서 제작되는 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였으며, 일본은 독도를 그들의 시마네현으로 편입시킨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을 끊임없이 감행했다. 19세기에 일본에서 제작된 세계지도에는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함에도 오늘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 망령을 되살아나게 하는 형태다.
일본 정부는 방위백서를 포함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단념하고 한일 간 발전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선 과거 역사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9세기일본지도에독도는없다 #이상균 #지리 #지리학 #독도 #일본 #책과콩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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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방위백서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된 지도를 실어 일본 총괄공사가 조치되는 등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많은 사료를 증거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 단 한 번도 독도가 일본 영토였던 적은 없다. 일제강점기인 1905년 다케시마로 불법 편입한 뒤 100년이 지난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이라 정한 후로 계속 억지 주장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겨대면 남의 영토가 자신의 땅이라도 된다는 논리인지 이젠 분노를 넘어 가증스럽게 보인다.
당연히 독도는 우리 영토지만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동서양에 기록된 독도의 역사적 증거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관점이 아닌 중국, 서양, 일본의 시각에서 독도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씌었다. 풍부한 지도와 역사적 사료들은 하나같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여기고 있었다. 각 나라의 탐험가들이 탐사한 뒤 그린 지도를 보면 이는 명백한 증거다. 대부분 18~19세기 자료들로 매우 신빙성이 높다. 만약 일본 영토였다면 몇몇 지도에서 다케시마로 표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일본 측에서 그린 지도조차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논리적인 모순은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독도 명칭이 시기에 따라 다르게 불렸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이전엔 마쓰시마, 19세기는 랑코도, 1905년 이후엔 다케시마라 불렸다는 건 일본이 독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고유의 영토였다면 일관된 명칭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영국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Dokdo라 표기한 것만 봐도 얼마나 독도에 무지했는지 명백하다. 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가 없다는 건 그들이 직접 탐사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전히 일본은 영토 침탈 야욕을 숨기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도발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의 힘을 키우고 독도에 대한 사랑이 지속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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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본인들의 말도 안되는 주장을 맵 트레이드 (지리 정보 교류)를 통해 모순이며, 거짓이라고 자세히 알려주는 책이다 일본인의 주장 오늘날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장하는 것부터 일관되지 못하는데, 1. 고유 영토론 쉽게 말해 원래부터 자기(일본) 땅이었다 라는 주장이고, 2. 무주지 선점론 어떤 나라에도 독도의 소유권이 없던 시기, 다른 나라들 보다 먼저 일본이 선점했다는 주장이다 어떠한가? 이 두 주장이 모순적이다 라는 것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가? 일본 지도 1 8 1 0 년 일본에서 제작했던 「신정만국전도」 에는 한반도 동해상의 섬들이 전혀 표시되지 않았는데 1 9 세기 중반 무렵, 영국의 지도를 거의 그대로 따라 그리는 과정에서 영국의 지도에 포함되어 있는 울릉도와 부속섬들이 일본에서 제작되는 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_200쪽 고유 영토론 만약 원래부터 자기(일본) 땅이었다면 첫째, 고유 영토론에 의하면 1810년 「신정만국전도」 에서부터 울릉도, 독도가 일본 지도에 그려져 있어야 했다 무주지 선점론 둘째, 무주지 선점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1905년 이전에 독도가 그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명확해야 되는데 17세기 ~ 19세기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나 고문서를 보면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기록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 일본의 치명적인 실수 하지만 그 밖에도 일본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가 소개되는데 일본이 지도 제작 하는 과정에서 조선으로부터 입수한 지리정보인 지도를 참조하면서 조선에서 인식하고 있던 울릉도와 일본에서 알고 있던 다케시마 (울릉도)가 같은 섬이라는 것을 모르고 같은 지도상에 울릉도를 두 번 표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https://youtu.be/muB4_LNZ2Rk 왜 19세기를 꺼내며 책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 전 세계적으로 제작한 지도를 시기 별로, 나라별로 지도 자료를 소개하며 독도가 일본이 아닌 한국 땅임을 자세히 이야기 해준다 독도 영유권 분쟁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도움이 될 책이고, 끝까지 읽어보니 이런 허술하고 모순된 억지스러운 두 주장을 펼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들에게 독도를 절대 빼앗기면 안되겠다는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가 샘솟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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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웃한 나라 중에 사이가 좋은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한 나라가 팽창할때 가장 먼저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만큼 이웃 나라들끼리 전쟁이 끊이지 않네요. 특히 전쟁이 끝난 이후에 침략국의 사과나 반성이 없다면 국가 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감정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이와 동일한 상황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불매 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고 코로나19로 양국간 교류가 경색되면서 한일 관계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네요.
한일 관계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독도입니다. 독도는 엄연히 우리나라 영토이지만 일본은 1900년대 초반 불법으로 점거한 이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한 한일 관계의 회복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 는 사료를 통해 독도 문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역사에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독도는 울릉도 동쪽에 위치한 바위섬이라고 되어 있네요. 조선시대에 울릉도의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하도록 하면서 독도를 찾는게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사람이 살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고기잡이 배들이 머물렀고 안용복은 일본까지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인정하도록 하였네요.
과거에는 배를 타고 멀리 항해하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배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타고 항해하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수적인데 항해 횟수가 늘어날수록 지도는 더 정교해지고 곳곳에 빈 섬들이 나타났네요. 유럽 열강은 대항해 시대와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지구 곳곳을 탐험하였고, 우리나라의 동해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 열강이 항해하면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들이 만든 지도를 독도가 선명하게 나타나네요.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증거로 고지도를 제시하지만 일본에서 만든 지도들을 보면 일관적이지 않네요. 서구의 지도를 모사했다고 하는데 그대로 따라 그리다보니 어떤 지도를 참고했느냐에 따라 울릉도와 독도가 다르게 그려집니다. 어떤 지도에는 울릉도나 독도 자체가 없기도 하고, 어떤 지도에는 독도를 울릉도 가까이에 있는 큰 섬으로 보고 울릉도를 두 개로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배타적 경제수역의 등장으로 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본은 독도가 자신의 영토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 등 다른 나라와도 영토로 마찰을 빚고 있는 만큼 독도에서 밀리면 다른 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계속 분쟁을 만드는 것 같아요. 일본의 독도에 대한 주장을 역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자세히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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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
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독도는 작은 섬이고, 일본의 영토가 아닌 우리나라의 영토였더니, 일본지도에 있을 턱이 없었을 것이다. 독도는 울릉도와 가깝고,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그런데 독도가 일본의 영토고 자기네 땅이라니, 지금 독도는 대한민국의 독도 수비대가 지키고 있고,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독도가 일본 자국의 영토라면, 어째 한국이 독도를 소유하고 있는데도 말로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가? 무력도 한국보다 훨씬 강한 나라가 말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 마디로 거론조차 할 필요가 없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참 뻔뻔하다. 임진년과 경술년 두 번씩이나 우리나라의 전 국토와 수많은 백성들을 유린하고 무참해 살해해 놓고도 사죄는커녕, 여전히 얼토당토 않은 영토 분쟁을 벌이며 버젓이 대한민국의 섬이자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며 어거지를 쓰고 있으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일본의 작태와 만행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그들의 행태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라는 책은 19세기 동안에 일본이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정황을 맵 트리에드의 역사를 통해 파헤치고 있다.
1680년 독일에서 제작된 중국지도를 보면, 10년 전에 프랑스에서 제작된 지도에 비해 더 많은 지리 정보가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평안도, 경기도, 경상도 등의 도 명칭이 표기되어 있고, 제주도의 명칭도 표기되어 있다.(19면)
조선에서도 세계지도를 제작한 바 있는데, 이름도 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1402년에 제작된 이 지도는 현존하는 세계지도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세계지도라 할 수 있다. 나는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자가 중국에서 본 세계지도를 토대로 이렇게 제작한 것 아닌가 추정되는데, 천하도지도, 곤여만국전도와 같은 세계지도들이 조선시대 제작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26면)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로 러시아와 청나라 간의 군사적 충돌은 일단락되었지만, 우랄산맥 동쪽의 시베리아 일대를 차지한 러시아의 위력에 강희제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을 손에 넣고 티베트 원정까지 직접 진두지휘했던 강희제는 대국을 체계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도가 필요함을 절감하였다.(~69면)
지도를 보고 읽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고 재밌다. 지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십 수년 전 우연히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고 나서였던 것 같다. 조선시대 도대체 어떻게 지금의 모습과 흡사한 형태의 이런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참으로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놀랍고도 신기했다. 특히 지도를 보면서 국경을 경계로 나라와 나라가 서로 이어져 있고 세계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지도 안의 세상은 세계사에 대한 관심까지도 배가 시켜 주었던 것 같다.
서양의 여러 나라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캠브리아호는 독도를 스케치한 최초의 선박으로 기록된다. 1849년 4월 28일에 울릉도, 29일 일요일에 독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항해일지에는 해도에 없는 작은 섬을 보았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의 논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146면)
이 책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19세기 동아시아의 정세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서술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울릉도, 독도의 발견과 지도 제작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고, 제 3부에서는 일본의 지도 제작과 독도에 대한 무지, 일본의 독도 인식과 영유권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에 수록된 오래된 지도를 보면서 새삼 옛날에는 이 지도가 얼마나 중요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 분쟁,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두고 벌이는 영토 분쟁만 보더라도 향후 동아시아의 정세가 밝지 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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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를 향한 야욕이 나날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야욕에 찬물을 끼 얹는 사료의 발굴 등은 우리에겐 무척이나 소중하고 우리의 영토 주권을 강화하는데 있어 귀중한 증거자료가 된다. 이 책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는 19세기 Map Trade역사를 통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가당치도 않으며 그들의 일방적인 억지주장에 힘을 빼는 역활을 하는 확신을 담아 독자들에게 그 내용을 전하는 책이다. 19세기 내내 일본은 독도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독도를 부르고 있음을 보면 그들의 주장에 발끈할 것이 라니라 철저한 자료의 준비와 사실을 입증할 내용들을 통해 언제든 그들의 억지주장을 무력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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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갈등 양상으로 국한시켜 볼 것이 아니라, 세계 교류사, 항해사, 지도 제작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편적인 테마로서 다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 섬의 영유권에 관한 의문은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독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지리학(지도학), 역사학(사상사, 교류사, 해양사),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들한테도 영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나라의 영토 분쟁은 비단 우리나라와 일본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중동의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분쟁 지역 , 남중국해의 중국과 베트남 , 그리고 일본과 중국과의 열도 분쟁 또한 그러하다.
이책에서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예전 15-16세기 거슬러 올라가서 항해 지도가 제작 되었고 , 나라간 , 지도 교환이 이뤄지면서 좀더 많은 교역과 물자가 동 서향 교역로를 통하여 이동 했는지, 그리고 왜 이러한 항해가 인류에게 필요 했는지에 대한 근원 적인 물음과 일부 답을 구할 수가 있다.
그중 첫번쩨 근거로 삼는것 하나는 16-19세기 사이에 전지구적으로 발생된 소 빙하기 이다.
[ [ 16~19세기 소빙기가 발생한 이유 ? Sciencetimes 소빙기(little ice age)란 지구의 평균 온도가 정상보다 매우 낮았던 시기를 말한다. 특히 16세기 말부터 1560년, 1750년, 1850년께에는 기온이 급격히 저하했다는 기록이 세계 각지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 유럽과 북미지역의 겨울 평균 기온이 20세기 후반과 비교해 약 2℃ 낮았으며, 이로 인해 알래스카·아이슬란드·스칸디나비아반도·알프스 등에서 빙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 -----------------------------------------------------------------------------------------------------------------------
소 빙기 시대엔 평균 지구 기온이 약 2도 정도 떨어진 상태라 당연히 그해 농작물과 곡물 수확량이 줄어 들수 밖에 없었고 이는 식량을 확보 하려는 국각와 인접 국가 와의 반목을 일으키는 유인이 되기도 하였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15세기 전후 부터 , 이후 수세기간 유럽의 열강들은 앞 다투어 , 아시아및 미지의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관심이 많았았고, 향신료를 비롯한 면화 , 기타 재료들의 아시아에서부터 이전 교역 통로로 , 바닷길을 생각해낸 것은 무리도 아니다. 대량의 수송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당시의 기술로는 혹은 증기기관이 발명 되기 전까지도 이는 매우 유용한 수단 중 하나이었다.
영국의 경우, 이동의 동인도 제도와 중국의 교역에서 아편을 수단으로 하면서 두 나라사이의 분쟁의 골은 깊어 졌고, 급기야 , 1840년 6월 영국의 선전 포고로 전쟁이 시작 되었고 , 1842년 4월 영국과 청국간의 '난징 조약'이 체결된다. 이때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이기도 하지만 불평등 조약이어서 이후 미국 , 프랑스, 독일등 서구 열강등이 차례로 중국에 입성 하게 된다.
당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842.4 월 난징 조약 1.홍콩을 영국에 넘길것 2. 광동,하문,복주,영파, 상해등 5개 항구를 개항할것 3. 개항장에 영사를 주재 시킬것 4. 청국은 전쟁 배상금 1200만 달러, 아편 배상금 600만 달러를 3년안에 영국에 지불 할것 등이다.
아시아에서의 두번째 개항은 일본이다. 1853.6월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 일본 막부는 무너져 내렸고 ,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 하였다..이후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시작으로 일본은 본젹적으로 외부 세계에 문호를 개방 하게 되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 이후 일본과 조선과의 군사적 물리 충돌후 , 1876.2월 조일 수호조규 라고 하는 강화도 조약이 이뤄졌고 이후는 우리의 근현대사 이다.
1894- 1895 년 청일 전쟁 , 일본 승리 이후 북진을 원했던 일본에 의한 러일 전쟁이 발발 하는데 러시아 의 남하를 막아 보려는 미국측 의도로
1905.7월 미 대통령 특사인 월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사이의 은밀한 밀약이 바로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 점령을 용인해 주고 ,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점령 하는 것을 용인 해 준다는 내용 이다.
20세기로 넘어가면서 , 유럽에서 시작된 1,2차 세계 대전과 1940년대의 태양양 전쟁으로 전세계는 다시 한번 지도 상의 도해와 항해를 실전과 전쟁으로 점철 되며 이어져 온것이다.
다시 책 주제글로 돌아가면 , 한반도의 동해상의 2개 섬 , 울릉도와 독도의 발견은 서구에 의해서 먼저 인지 되었고, 처음에는 아르고노트호 하고 하는 1791년 도의 영국의 모피 무역선이 한반도 동해상으로 이동 하면서 발견 하였다라는 섬이기도 하다. 이전 프랑스의 라페루즈 의 울릉도 발견과 1717년도 중국에서 제작된 황여 전람도가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프랑스 왕실 지도학자인 왕빌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전세게 지도제작으로 거듭 나게 된다.
1840년대 이후 아편 전쟁으로 극동 아시아로의 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동북아 바다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높아졌고 , 1797년 부산의 초량에 식수보급으로 입항 하게 된 영국의 보로튼 선장이후의 지도에선 영국의 콜렛 선장이 발견한 아르고노트 섬과 프랑스의 라페루즈 가 별견한 다즐레 , 그리고 일본의 오키섬 등이 명확 하게 자리 한다..
일본의 서양 문물을 수용 하기 시작한것은 1464년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 임진왜란때의 조총은 포루 투갈 상인들의 수단 이었다 ,당시 일본 지도의 시초였던 1779년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 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외국 ( 조선령)으로 표현 되어 왔다. 이후 1785년도 [삼국접양지도] 가 제작 되었고 , 이 지도는 독일인 동양 학자인 클라프로트에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불어판으로 발간 되었고 버전에 따라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로 나와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이후 동서량의 교역과 지도제작의 기술교류에 따라 19세기 후반의 서구 세게 지도에서 보면 울릉도와 독도는 대부분 한국의 영토로 표현되었다.
1857년도 러시아와 일본과의 Map trade 에서도 독도의 명칭이 쓰여 지며, 17세기 -19세기 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에서 조차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로 무력으로 한반도를 점령하면서 부터 일본의 야심에 따라 독도는 현대판 자기네 거라는 억지 주장을 거의 100여년 동안 이어져 온 샘이다. 동해상에 당시 일본 지도에 남아 있엇던 " 아르고 노트섬" 의 허상은 두고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어 왔다.
현제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이러한 영토 분쟁의 근원에는 애초부터 그들의 것이라는 잘못된 주장도 있었고 힘의 논리도 있다. 현대판 제국주의는 현재 진행형 인것이다. Written by E 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