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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아시아 이웃 도시, 근대 문학 기행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시아의 변방이자 주변으로 인식되는 곳. 그곳에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고 중국이 공산국가가 되면서 고립을 겪는다. 멀리 있는 미국이 오히려 가까워지고 일본에 대한 증오는 여전하며 동남아시아는 더욱 멀어졌다. 내 입장에서도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으로의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일로만 여겼었다. 얼마 전 동생이 베트남에 다녀왔다 해도 하나도 부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김남일 소설가의 문학기행 읽고 나서는 그곳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우리와 과거에도 함께했고 현재를 함께할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책으로 읽은 도시, 즉 베트남, 중국, 일본의 도시를 찾아간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겪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 작품과 실재 사이에서 이모저모 살핀다. 그 중에서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보는 도시 세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이공
흔히 베트남의 역사를 일러 남진북거南進北拒라고 한다. 남쪽으로는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북쪽으로 중국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1,000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10세기 이후 남쪽으로 세력을 뻗쳐 나갔다. 북부는 유교가 지배하고 문자 기록의 전통이 강한 반면 남부는 뒤늦게 개척되면서 북부와는 다른 문화적 환경에 놓이게 된다. 북부에 비해 남부는 구비문학이 상대적으로 왕성했다. 당연히 북부 출신 작가들이 많다. 1887년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의 일원이 된다. 남부는 프랑스에 의해 ‘코친차이나’라 불리며 식민지가 된다.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 과정에서 1960년에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전쟁이 벌인다. 베트남전(1960~1975)이라고 한다. 베트남 공화국의 수도였던 사이공이 함락되기 전, 대부분의 잔여 미국인을 더불어서 수많은 베트남인들은 미군 헬기를 통해 대피하였다. 사이공이 최종 점령되면서 베트남 전쟁은 종료되었고, 남베트남 공화국 임시혁명정부가 사이공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6년에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남베트남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통일에 합의하였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결국 1975년 4월 30일 이후 모든 결정권은 사이공에서 하노이로 넘어간다. 베트남인들이 항미 전쟁이라고 부르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사이공은 공식적인 수명을 다한다. 이후 사이공의 명칭은 호찌민을 기념하기 위해 ‘호찌민 시’로 변경되었다. 천 년에 걸쳐 초강대국들을 차례로 물리친 민족이 마지막으로 미국까지 쫓아낸 도시에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호찌민이 일어섰다! 그가 어린아이를 안고 인자한 눈길을 보내던 좌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자세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양이나 경북 구미 시의 황금 동상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박한 크기였지만, 그래도 그건 이미 내가 알던 사이공이 아니었다. 동상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호찌민의 이름을 딴 도시는 아시아의 그 어떤 도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었던 최고의 매력 중 하나를 스스로 없애버린 셈이다. p.55~p.57
저자는 20년 전에 만났던 호찌민 좌상을 잊지 못한다. 도시 전체가 무척 가난했지만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던 호찌민의 자애로운 좌상을 가리키며 ‘박 호(호 아저씨)’라고 부르던 자부심이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아이들이 사랑했던 이웃집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왕이 되어 있었다. 또 역사의 격랑 속에서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사람들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부패한 권력에 대해 피로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얀 아오자이 여학생이 한 사람의 전사로 성장해 나가는 실록 소설 구엔반봉의 <사이공의 흰옷>을 잊지 못하는 작가는 호찌민 시에서 사람들의 변화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노이
작가는 하노이 여행 중 하노이 국가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을 만난다. 한 학생이 “남한군은 미군의 용병으로 우리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아무런 사죄나 반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진정한 사죄를 계속 요구하는 한국이 베트남에 대해서는 어째서 침묵을 지키는지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을 받는다. 이때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기울어진 시소’를 생각한다.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을 만난다. 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 한 번은 전쟁터에서, 다시 한 번은 기억 속에서. 이제는 어쩌면 '전쟁의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전쟁'을 고려해야 할 시점인지 몰랐다..... ‘전쟁의 기억’이 잊느냐, 마느냐 망각을 둘러싼 싸움이라면 ‘기억의 전쟁’은 그 기억들이 지니는 의미에 대한 싸움이다. 그때 승리와 영광은 덧없이 사라지고, 대신 덧없이 사라진 영혼들이 나타나 아직 살아 있는 젊은 병사의 잠과 꿈을 지배하게 된다..... 끼엔은 자기 안의 자아를 신뢰할 수 없었다. 밀림에 있던 6년 동안 유령들의 하소연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그러니 쓸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소설은 또 다른 전쟁이었을되, 국가가 관할하는 공식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이제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전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그는 "결국에는 크게 패하고 말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전쟁의 슬픔> 중에서. p.312, p.315, p.318 주인공 끼엔은 전쟁 중 밀림 속에서 하노이를 그리워한다. 그가 바란 것은 하노이로 다시 돌아가 누리는 지극히 소소한 일상이었다. 그에게 하노이가 없었다면 전쟁을 끝까지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노이의 근대는 프랑스의 식민지 침탈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1858년 다낭을 침공, 1902년 인도차이나 총독부를 하노이로 옮기고 1873년 하노이 성 침공 후 조계지 건설, 조계지에서 호안끼엠 호수까지의 거리 양쪽을 유럽풍으로 꾸미고 식민 지배를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에는 민중의식을 깨우고 식민지 해방을 위한 운동이 일어난다. 1946년 호찌민 주석은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2019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에서 있었다. 베트남은 지난 세기에만 큰 전쟁 세 개를 끝낸 자부심으로 이제 새롭게 21세기의 담대한 평화를 중재하려 한다. 그러기에 회담 장소로 하노이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외세의 침략을 무수히 견디고 싸워 끝내 평화를 이룬 하노이에서 저자는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한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은 결국 트럼프의 회담 결렬 선언으로 끝나버렸다. 상하이 상하이는 아편전쟁 후 난징조약(1842년)에 따라 개항지가 되었다. 황푸 강변의 작은 포구가 거대한 국제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영국은 이곳을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와이탄을 주목한다. 그곳에 1845년 최초의 조계를 설치한다. 그후 프랑스, 미국 등도 조계를 시작한다. 1870년 어느새 상하이는 바야흐로 국제도시가 되었다. 1919년 일본의 산둥성 할양 등 21개조 요구에 맞서 베이징 대학생들은 항의를 한다. 상하이에서는 쑨원이 민국 정부를, 1921년 마오쩌둥이 공산당 창립을 도모한다. 1925년 일본계 방적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나고 노동자 한 명이 숨을 거둔다. 시위는 상하이 전역으로 퍼져 중국 대륙 전체의 거대한 반제 운동으로 비화된다. 이를 요코미쓰 리이치 <상하이>에서 다룬다. 1927년 루쉰은 상하이로 들어가 중국인을 깨우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장제스는 국공합장을 스스로 파괴하며 좌파를 짓밟는다. 앙드레 말로는 <인간의 조건>으로 그 피의 현장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이고 무슨 의미인지, 그 조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상하이는 오래도록 마도魔都였다. 상하이의 '부'는 어딘가 수상한 색조와 냄새와 그늘을 감추고 있었다. 빛과 그늘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도시다. 유리창 아래로 내려다뵈는 상해의 밤-미칠 듯이 돌아가는 저 붉은 불 푸른 불, 개미 떼같이 몰려들었다가 흐트러지고 흐트러졌다가 몰려드는 저 사람의 물결을 헤치고 나는 또 오늘 밤의 고기 임자를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야계夜鷄, 김광주>, p.158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장제스의 중국군과 싸워 상하이를 봉쇄한다. 장아이링은 <봉쇄>에서 봉쇄된 상하이를 한바탕 몽롱한 꿈을 꾼 기억으로 대치시키려 한다. 1945년 일본의 투항으로 달라진 시대에 왕안이는 <푸핑>이란 소설에서 과거와는 다른 건강한 상하이를 그리려 한다. 이제 상하이 골목을 걸으면서 작가는 첨단 기술과 자본으로 그려진 중국몽을 도처에서 만나게 된다. 이미 상하이는 그리던 상하이가 아니다. 상하이는 이미 이 도시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한다. 그 외 다른 도시들 작가는 '교토'에서는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했다는 '철학의 길'을 걷는다. 교토제국대학(현교토대학)의 니시다의 제자들 즉 교토학파는 '동아시아는 지역의 운명 공동체로서 미국의 침략 야욕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는 '신동아질서'에 사상적 뒷받침을 한다. 또 '금각사' 앞에서는 미시마 유키오를 생각한다. <금각사>란 소설에서 '미에 대한 질투', '불완전한 인간 너머'를 지향한다는 그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 '절대무'의 천황제 국가를 재건하자고 외치며 할복자살을 한다. 또 윤동주와 송몽규가 거닐던 가모가와 강변에서 그들이 나누었을 '시와 사랑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곱씹어 본다. '도쿄'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이광수, 루쉰을 생각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1900년 영어 연구를 위해 2년간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 런던에서 그는 절망과 동시에 각성을 하게 된다.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기 본위의 사상(내가 주인)을 완성한다. 그리하여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가 된다. 또 열다섯 나이로 도쿄로 오게 된 이광수. 그는 1905년 도쿄 유학 중 홍명희를 만난다. 그 둘의 우정은 오래 유지된다. 홍명희의 책을 이광수도 함께 읽었다. 또 루쉰은 센다이에서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돌아와 문명개화운동에 뛰어든다. 문학이 중요한 의식 계발의 도구가 된다는 점을 확신하고 외국 소설들을 번역한다. 많은 명작을 생산해낸다. 한편 저자는 베를린에서 도쿄를 떠올렸다고 한다. 유학, 망명 등의 이유로 국경을 넘어온 작가들을 보면서 디아스포라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해 나간 작가들로 나쓰메 소세키와 루쉰을 떠올린 것이다. 그에 비해 이광수는...도쿄 대학의 '야스다 강당'은 일본 민주주의 절정을 상징한다. 1968년 학생들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농성한다. 이곳에서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한 실험을 선보였다. 또 전국학생공동투쟁위원회(이하 전공투)가 결성된다. 그해 5월 전공투 학생들이 천황제를 옹호하는 미시마 유키오를 초청하여 두 시간 반 정도의 토론을 벌인다. 그 이후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에 할복 자살한다. 1970년 일본을 방문한 롤랑 바르트는 도쿄의 '텅 빈 중심'이 있다고 말한다. 황궁과 천황제를 말한다. 일본 쇼와 천왕은 1946년 '인간 선언'으로 신성불가침의 현인신이 사라진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술에 불과하다. 인간이 된 상징 천황은 자신이 신이었을 때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스스로 면책을 해준 꼴이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천황을 따라 순사하는 선생님이 나온다. 이때의 선생님의 죽음은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 공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코제브가 말한 '일본적 속물'과 관련 있다. '현실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부정의 계기들을 형식화해 가상적으로 세계와 불화하는 자'를 말한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과 관련있다고 한다. 일본의 무사도나 할복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대만의 '타이베이'에서는 본성인과 외성인(중국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군), 원주민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오키나와'에서는 평화헌법, 미일안보조약으로 오키나와가 짊어져야 했던 부담과 모순을 전해주고 있다. ------------------------------------------------------------------------------------------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 보는 일이다. 여행이란 행위를 통해 나와 전혀 관계가 없던 공간이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가로서 동아시아 문학을 공부해 왔다. 저자가 소개하는 소설 속 도시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 시간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 책으로 인해 어쩌면 나도 조만간 이웃 나라로 여행가는 일에 도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