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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사람을 찾아서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맡으며
북경서역(北京西驛) 플랫폼으로 칭짱(靑藏)열차가 들어온다. 이 열차는 꼬박 이틀에 걸쳐 평균 고도 4,500m의 하늘을 달리는 철도 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도로 불리는 칭짱철도를 달려서 라싸(拉薩)역에 데려다 줄 것이다. 라싸는 오스트리아의 등산가 하인리히 하러가 쓴 책과 동명의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의 무대인 티베트의 수도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서로 오갔던 티베트 고원, 즉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세계의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사라진 친구 리우저안을 찾기 위해 무작정 티베트로 향한 저자가 여행길에서 마주했던 기이한 일들을 자신의 경험과 상상(혹은 동경)으로 버무려 만들어낸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는 책제목만큼이나 오묘한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마치 파엘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서 양치기 산티아고의 여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리우저안을 처음 만났던 티베트어 수업에서부터 기숙사, 학교 운동장, 리우저안의 집과 수영장 등 그와의 추억과 감정을 기억하며 그의 냄새를 추적한다. 특히 둘이 함께 먹었던 홍샤오니우로우탕미엔(紅燒牛肉湯麵), 라면, 부대찌게, 고량주, 쩐주나이차(珍珠?茶), 망고주스, 훠궈(火鍋) 등 음식 냄새는 그에 대한 기억을 강하게 떠올리게 한다.
-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1 : 바다를 듣다(청해聽海) -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2 : 잃어버리거나 혹은 엽기적이거나 -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3 : 소리보다 냄새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슬프고 가련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고립된 존재, 죽어가는 상태로 소리가 줄어들거나 없어지고, 자신만의 냄새가 사라지거나 고약해지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감정과 경험, 추억과 기억을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냄새나 소리로 저장하여 각자의 몸에 각인시키는 존재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냄새를 상상하는 시간들을 가져보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냄새에 관한 이야기는 훠궈 냄비 속 하얀 탕(백탕)과 붉은 탕(홍탕)을 오가며 펼쳐진다. 저자와 친구의 추억을 한 스푼 넣은 백탕에는 '우리들의 시간'으로, 저자의 경험 반 스푼과 상상 반 스푼을 섞어 만든 홍탕에는 '세상의 냄새를 상상하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리우저안이 홀연히 사라지기 전, 저자는 학교 앞 찻집에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생각한다는 그와 우롱차를 마신다. 티베트와 환생, 그리고 그곳에서 만날 '또 다른 나'에 관한 대화 중 일부를 옮겨본다.
라싸에 도착한 저자는 일주일에 한 번 초원으로 간다는 버스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린다. 아무런 방향도 보이지 않는 초원에 서 있던 그는 한 유목민 여인을 따라 초원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의 딸이자 가려워서 끊임없이 몸을 긁어대는 체링을 만나고 한동안 친구로 지내게 된다. 아이와 함께 서로의 그림자를 밟는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저자는 삶의 의미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별과 달을 섞어놓은 냄새, 기어가는 순례자의 발 냄새, 설산이 녹는 냄새, 아이를 찾아 헤매는 엄마의 겨드랑이 냄새 등을 처음 맡게 된다.
어느 날 체링과 함께 협곡 아래 작은 호수에서 각자의 소원을 빌던 중, 그곳을 지나가던 새를 통해 저 절벽 정상에 저자가 찾고 있는 사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 그는 친구 리우저안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 인간거미가 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절벽 위에 다다른다. 평지의 삶을 포기하고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하늘사원의 모습은 그에게 '또 다른 세상'과도 같다. 일상이 곧 수도(修道)인 삶을 사는 어린 라마승들에서부터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켄보' 할아버지, 사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게꾀', 독수리에게 밥을 주는 해부사, 매일 땅을 파고 들어가는 라마승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만나고 상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책의 으뜸가는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저 기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처음 하늘사원에서의 생활은 안락하거나 편안하지 않다는 어느 라마승의 경고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만다. 불시에 들이닥친 공안(중국 경찰)을 피해 달아나야할 순간이 저자에게 찾아온 것이다. 과연 그는 무사히 빠져나가 리우저안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결말이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보기 바란다.
책에 따르면 하늘 사원 아래의 세상은 '빛과 불의 세상'이며, 수직과 수평이 다르듯이 고원과 평지의 삶 역시 다르다. 물론 티베트를 찾아 떠난 리우저안이 추구하는 삶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평지에서의 삶, 즉 현실을 등짐으로써 행복과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내는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가 리우저안을 만나기 위해 떠난 티베트 여행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들의 시간'에서 둘은 따로 서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리우저안은 고원으로 떠나고, 평지로부터 그를 찾아나선 저자는 점점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또 공감하게 되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자기 자신도 한 뼘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리우저안이 우리 인생의 키워드라고 찾은 '**'이 무엇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는 일독을 통해, 이미 읽었음에도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한 나 같은 이는 다시 책을 집어들어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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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했다.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 A. S. 바워치의 《냄새》를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감각으로서의 ‘냄새’를 생각했던 셈이다.
하지만 내 인식의 지평은 그렇게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아왔다. 독서는 대체로 경험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는 것은 맞지만, 스스로 책을 고르는 것은 늘 내 인식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때로는 편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뜻하지 않게 접하는 책은 오히려 그런 독서의 편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그래서 인식의 폭을 넓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만난 책으로 또 한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를 깊게 파고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착각은 착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티베트학자다. 티베트학자는 이미 소리에 관해서 책을 낸 바가 있다. 그리고 여기선 냄새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냄새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대만 친구 리우저안에 대한 추억과, 그를 찾아 나선 티베트에서의 경험이 이 책의 줄거리다. 그렇지만 그 줄거리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지언정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저자는 상상을 하고 있으며, 그 상상에 기대어 동경하고 있다. 테베트의 수도(修道)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으며, 그곳과 대만, 그리고 이곳의 동물, 식물, 사물 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것은 원래 환상이지만, 결국은 저안의 마음이며, 또한 저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럼 냄새는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냄새는 기억을 근거로 한다. 기억은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한다. 추억은 과거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냄새는 과거에 대한 징표인 셈이며, 과거를 지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이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냄새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을 더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한다(불행하게도 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티베트의 고원지대로 숨어들었던 리우저안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17년 만에 우연하게 저자는 그를 만난다. 저안이는 신발을 벗고 맨발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뒤꿈치를 가리킨다. “깨달음은, 공부는, 수행은, 관계는 현실과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공부는 발을 하늘에서 대롱거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 딛고서 구질구질한 현실 속에서도 그것들을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결국은 이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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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가진 생명체들은 말이죠. 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구, 욕망, 욕심, 이런 것들이 있으니까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니 욕을 소유한 존재들은 자신만의 소리와 냄새가 있지요. 그건 생명을 유지하는 본질이기도 하고 살아 있다는 존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 티베트 사원에서 만난 라마승 할아버지가 들려준 말- ㆍ 눈을 감고 코로 숨을 들여마셔보면 주변 갖가지 냄새나 향기가 맡아진다. 코로 냄새를 맡는 이러한 행위는 우리가 살아있는 것 만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많은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안 살아있는 것. 우리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거다~라고 설명을 하지는 못하지만 냄새는 존재한다.
저자는 갑자기 사라진 대만 친구 - 리우 저안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리우 저안이 간 것으로 보이는 티베트로의 여행. 기차 안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특히 저자에게 합석을 권하는 한 여인. 그 여인과의 대화는 꽤 흥미진진하다.
그녀 : 냄새를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 : 상상이요ㆍㆍㆍ 그녀 : 장면이나 소리를 상상할 수는 있어도 냄새는 좀 힘들죠. 나 : 그럴 것 같아요. 그녀 : 아빠는 젊은 시절에 코가 예민했어요. 동네 의사였는데 환자를 진찰할 때 눈보다는 코에 의존했죠. 나 : 후각으로 진찰을 한다는 말인가요? 그녀 : 이를테면 소변 냄새를 맡고 환자가 대장에 농양이 있는지, 당뇨병인지를 알 수 있는 정도. 나 : 대단한걸요. 그녀: 하지만 아빠가 중년 이후에 축농증이 심해지면서 후각이 무뎌졌어요. 나 : 무뎌졌다니요? 그녀 :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는 후각으로 환자를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예 후각을 상실했죠. 가스, 연기, 오줌 냄새를 맡지 못했고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도 스스로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이 냄새를 맡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쉬운 것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살아야한다.
그녀 : 아, 오해는 마세요. 당신을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다만 냄새는 감정이고 기억이다. 오로지 냄새만이 감정과 추억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어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축복이다. 이런 거예요. 비록 냄새가 동의나 허락도 없이 쳐들어 올지라도 말이죠.
버스의 마지막 정거장인 초원에서 만난 꼬마 아가씨 체링과 그의 엄마. 그리고 '초원의 끝'이라는 여관의 여주인. 그 곳에서는 방세 대신 현재 입고 있는 옷을 받는다. 속옷까지. 옷을 벗어주지 않으면 당장 나가야한다는 여관의 규칙. 저자는 그 곳에서 권태로움을 느낀다.
저안 : 그곳에 가면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들어. 나 : 어디? 티베트? 저안 : 응, 그 곳에 가면 또 다른 내가 살고 있을 것 같아. 나보다 착한 또 다른 내가 있을 것 같아. 나: 지금 환생을 말하는 거니? 저안 : 다시 태어난다면 난 과일로 태어나고 싶어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 달을 관찰하고 새로운 행성을 먼저 발견하고 차지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또 디다른 자신들만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신들만 먼저 갈 수 있게 만드는 환경, 언제나 가진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 자신의 내면보다는 타인의 삶을 매일 들여다봐아만 잠을 잘 수 있는 이 기이한 관음증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저안은 왜 하필 과일일까? 환생을 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이 되기를 원하며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길 원하지 과일은 보기에도 없었다. 저안이 궁금하다. 저자는 거짓말과 과시를 못하고, 뻐기지도 않는다는데. 그는 무엇때문에 티베트로 향한 걸까.
체링과 이별하고 야크를 만난 저자. 그 야크를 타고 가다가 한 남자를 만난다. 체링의 아빠. 책 : 집중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지금 너를 괴롭히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자, 해봐. 잡념이 계속 떠오를 거야. 괜찮아. 눈 감으면 다 그런 거야. 그러다 잠들기도 하지. 나 : 그게 될까? 잡녕이 사라진다는 게 말이야. 책 : 훈련하면 되지. 정신의 지배를 받느냐 지배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야. 우리는 대부분 정신의 지배를 받지. 두려움, 불안, 초조, 욕망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잖아. 추위와 공포도 마찬가지야. 이 자세를 따라해봐. 책 :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마. 그건 도움이 안 돼. 과거를 생각하면 우울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져. 그 온전치 못한 생각은 한번 솟아나면 비슷한 친구를 계속 불러오지. 그게 잡념이고 망상이야. 지금만을 생각해. 나 : 잘 안 돼. 책 : 명상은 고도의 훈련이야. 의지력을 가지고 인내심 있게 밀어 붙이는 거야.
이 리뷰는 리뷰어 클럽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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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인용된 것을 읽고 읽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후각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오감을 통해서 얻은 느낌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오감 중에서 후각이 가장 기억을 잘 만들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는 바로 후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리를 주제로 한 전작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에 이어 냄새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쓰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티베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티베트 전문가라고 합니다. 대만에서 공부하였기에 화자가 대만에서 만난 친구 리우저안이 삶의 의미를 찾아 티베트로 구도의 길을 떠나고 친구의 부모로부터 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화자가 티베트로 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해보이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습니다. 오랜 옛날 하늘에서 악마를 땅에 내려 보냈습니다. 왜 악마를 내려 보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땅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알게 되면 다시 하늘로 올라올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악마를 사람들의 왕으로 삼았다고 하니 이상한 하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악마는 티베트에 내려 왔던 모양입니다. 조장을 치루는 것을 본 악마는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배고픈 새와 물고기에게 아낌없이 줍니다. 전 이걸 **이라고 합니다.”라고 하늘에 알렸고 무지개가 내려와 하늘로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 **이 무엇인지 책에서 답을 찾아보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이 화자의 설명 사이에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섞여 들면서 읽는 흐름이 끊어지는 듯하여 집중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화자와 저안이를 처음 만난 것은 티베트어 수업시간이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무작정 말을 붙인 것을 보면 화자는 꽤나 사교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떻거나 선.허.쪼우.라고 하는 화자는 리우.저안.과 말을 건넸고, 저안이 점심 같이 먹을래?하고 답하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좋은 부모가 있는 저안이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저안이 어느 날 새벽 화자를 찾아옵니다. 순치황제가 지었다는 출가시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안의 부모가 화자를 찾아오게 됩니다. 아들의 소식을 들은 것이 있느냐구요. 결국 화자는 저안을 찾아 나섰습니다. 새벽에 찾아왔던 저안이 화자의 냉장고에 붙여놓은 쪽지에 적힌 티베트어 단어가 사원의 이름 같다는 단서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결국 화자는 저안을 찾게 됩니다. 그의 냄새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냄새에는 그와의 시간, 추억, 경험, 감정, 기억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먼지와 때가 뒤덮여 있는데도 그의 냄새를 구별해낼 수 있었다고 하니 화자의 능력도 대단합니다. 저안은 티베트에 와서 스승을 만났는데 왜왔느냐면서 ‘불교의 목적이 무엇이냐’ 물었다고 합니다.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스승은 대중은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고통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불교에서는 지혜를 이용하여 벗어난다고 하면서 그 지혜는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고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명을 없애고 아기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교의 두 가지 목표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또한 ‘지금 그 생각을 멈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동굴에서 면벽수행을 3년 동안 하라했습니다. 면벽 수행을 시작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적어 스승께 보냈더니 1년 뒤에 찾아와는 세 차례 “폐!”라고 외치고는 돌아가서는 “너를 내 제자로 받아줄 수 없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폐!”라고 외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숙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행을 해온 셈입니다. 그럼에도 저안은 티베트에 남기로 합니다. 과연 앞서 나왔던 **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작가가 귀띔에 따라 나름대로는 답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