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Review MCMXI / 21세기북스 31번째 리뷰] 각설하고, '사는 게 고통의 연속이다. 오히려 죽는 게 축복이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말이 절로 공감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엄마와 대판 싸웠기 때문이다. 정말 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대화는 통하지 않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싸움의 원인은 별 것도 아니다. 발단은 '잔소리'였고, 절정은 '잔소리, 듣기 싫다'였다. 그리고 결말은 '냉전'이다. 이와 같은 별 것 아닌 싸움이 왜 지속되는가? 그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다르고, '서툰 표현'으로 서로의 감정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엄마는 바닷가가 고향이라 '생선요리'를 좋아한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돼지고기요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생선요리'가 싫다. 첫째 '비린내', '비린맛'이 나기 때문이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런 요리가 너무 싫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생선요리'면 다 좋아한다. 대신 '고기요리'는 소화가 안 된다며 싫어하신다. 심지어 '소시지, 햄요리'도 건강에 좋지 않다며 싫어한다. 그런데 난 좋아한다. 어릴 적에 넉넉히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햄반찬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런데 엄마는 일절 그런 음식을 해준 적이 없다. 이렇게 두 식구가 조촐하게 사는 집인데,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일조차 너무 다르다. 그러니 '반찬투정'조차 싸움의 원인이 된다. 다 늙어서 반찬투정을 하는 것도 그렇고, 식사를 간단하게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면, 집에서 밥을 먹고 다닌다고 '한 소리'를 하신다. 그래서 다음 날엔 집에서 식사를 하면, 내가 싫어하는 '생선요리'를 내놓는다. 싫다면서 '고기요리'를 해달라고 하면 엄마는 젓가락도 대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라고 하면 좋아서 만들어놓고, 정작 내가 먹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신다. 그래서 싫은 음식 좀 강요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부터 '잔소리' 시작이다. 평생을 이러고 산다. 오늘 아침도 이런 식으로 '했던 얘기' 또 하며 잔소리를 하다가 엄마가 자식한테 얘기하는 걸로 아들은 화만 낸다고 또 역정이다. 이렇게 또 당분간 '냉전'이다. 정말 사는 게 고통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다'라면서 엿 같은 세상을 살아주는 것도 황송할 따름인데, 고통을 주다가 권태(지겨움)까지 주니 더욱더 엿 같다고 말했다.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는 게 고통, 아니면 권태인 것인가? 그건 바로 인간이 지닌 '욕망'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통과 권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욕망이 발생하면,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해 고통이 생기고, 그 욕망을 충족시킨 순간의 잠시동안 '행복'했다가, 곧이어 지독한 '권태'를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새로운 욕망이 생기면 또다시 이루지 못해서 고통을 수반하고, 이루는 순간 잠시 잠깐의 행복을 누리다, 금세 영원할 것 같은 권태를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독한 가난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지만 일만 해서 부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할 뿐이다. 그래서 매주 '로또'를 산다. 그리고 1등 당첨을 바라고 또 바란다. 이렇게 이 남자는 일상이 고통이다. 가난하기에 하고 싶을 것 다 하지 못한다. 세상은 가난한 그에게 더욱더 큰 고통과 시련을 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게 만든다. 그러다 운 좋게 1등에 당첨이 되었다. 10억 원이란 큰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그 남자는 가난이 주는 고통에서 해방이 되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아끼고 아끼던 나날을 걷어치우고 푸짐한 한 상을 차려서 넉넉하고 배불리 먹게 되니 분명 쫄쫄 굶던 과거보다 지금이 행복해진 것이 틀림없는데 그런 나날이 계속되자 금세 그 행복은 느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사치'와 '과소비'를 해댄 것도 아니다. 알뜰살뜰하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에 흥청망청 돈을 쓰는 일도 없이 적당히 검소하게 살아갈 뿐이다. 통장잔고도 넉넉하기에 쪼들리게 살지는 않을 뿐이다. 그런데 새로운 욕망이 생겼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그 욕망은 다름 아닌 평소에 맘에 두고 있던 '예쁜 아가씨'다. 가난했던 과거에는 그 아가씨에게 말조차 건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 통장잔고가 두둑한 지금은 용기 백배해져서 커피를 사들고 우연을 가장해서 만남을 추진했다. 그리고 둘은 어느덧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남자는 행복했지만, 결혼을 승낙해줄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당장 10억이란 돈은 있지만, 그 돈으로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 시골에서 시작한다면 조금은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업 계획도 짰고, 전원주택도 마련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여자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시골은커녕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20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신혼'을 꾸리고 싶어한다. 그게 자신의 꿈이란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다. 분명 과거보다 훨씬 넉넉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는데도 다시 '20억 아파트'를 구하지 못해 무능력자로 전락할 판이다. 예쁜 아가씨를 사랑하지만, 그 아가씨의 욕망을 충족시킬 능력이 안 되어서 이 남자는 또다시 고통의 늪에 빠졌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욕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무욕'의 경지를 말하는 것과 같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가 없지 않느냔 말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여타의 서양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이성'을 중시하지 않았다. 냉철한 이성보다 '욕망'이 인간을 더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쇼펜하우어는 그 해결방법을 '이성'에서 찾고 있다. 왜냐면 욕망은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은 거의 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이성'밖에 없지 않느냐는 다른 철학자들의 충고를 쇼펜하우어도 어느 정도 수용한 셈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이성'에 충실하라고 권고할 수 없던 쇼펜하우어는 이성을 살짝 비틀어 '의지'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하려고자 하는 '의지'만이 끔찍한 고통과 지긋한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의지'는 오히려 욕망에 충실한 노예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살려는 '의지', 부자가 되려는 '의지', 결혼을 성공시키려는 '의지' 따위는 각각 '생존욕구', '안정욕구', '성욕구' 등등 탐욕적인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선한 의지'를 표방해야 한다. 탐욕과 같은 '나쁜 의지'는 벗어던지고 세상이 주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착한 의지'를 앞세우는 냉철한 이성을 갈구해야만 진정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와도 참 닮았다. 불교에서는 '해탈하려는 욕구'마저 해탈해야 진정한 해탈에 이룰 수 있다고 더욱 경건한 자세를 요구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선한 의지'로 고통과 권태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도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니, 쇼펜하우어는 '실행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나에게 쇼펜하우어의 지혜는 어떻게 완성해야 할 것인가? 내 고통의 원인은 '내가 싫은 것을 강요하는 엄마의 욕구'이고, 툭하면 나오는 '엄마의 잔소리'다. 정말 생각만해도 끔찍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쇼펜하우어적인 해법은 '내 욕망을 잠재우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생선요리를 군소리 없이 잡숴주는 것이고, 백만 번 했던 얘기라도 '백만 한 번'째를 더 들어주며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는 것이다. 그렇게 내 욕망을 '엄마와의 관계를 좋게 만들겠다'는 선한 의지로 나를 '착한 아들'로 만드는 순간, 나에게 수반된 고통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렇게 '억누른 욕망'이 언제고 또 다시 박차고 나올 때라는 사실이다. 싫은 요리를 계속 먹을 수는 없지 않느냔 말이다. 또 '백만 한 번째'는 참을 수 있어도 '백만 서른한 번째'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성질을 부릴 수 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참고 또 참는 일'을 무한히 반복해야만 한단 말인가? 이건 진정한 해결방법이 아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쇼펜하우어는 '타고난 성격'을 극복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욕망에 충실한 상태에서 벗어나, 과연 '내 욕망'은 바람직한 것인지 진지한 고찰에 들어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만 먹고 '엄마 잔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 엄마'가 없는 세상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도 먹을 수 있는 '생선요리'를 추천하고, '똑같은' 잔소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변화를 주던가? '똑같은' 잔소리를 들어도 안 들리는 척, 못 들은 척, 딴짓을 해서 엄마의 주의를 돌리는 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노력을 '나' 뿐만이 아닌 '상대(엄마)'도 함께 해주면 좋으련만, 고령의 엄마가 그런 방법을 스스로 찾도록 강요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테니, 내가 2배 이상으로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딴에는 거의 '성자'와 같은 성스런 삶처럼 경건한 '욕망 제어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을 찾아내 '고통'을 벗겨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시도해봄직하지 않은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고통보다 더한 시련이 주어졌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는 '서로의 욕망'을 이해해주고 '공통의 욕망'으로 함께 추구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만이 대한민국 사회에 닥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다면 이런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이런 고통을 참아내며 그저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엿 같은 세상'이지만 조금이라도 '나의 욕망'에 딱맞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서 '대타협의 장'으로 뛰어들 것인가? 그 타협을 하는 동안 진정으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과 상종을 할테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세상은 그런 악의 구렁텅이에 불과하다고 쇼펜하우어가 지적했는데 말이다. 그런 악의 구렁텅이속에서도 진정 '선한 의지'를 발현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 거듭나는 것,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우리가 마주한 고통과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다. |
|
서가명강 시리즈 중 하나이다. 사는 것이 딱히 고통스럽지까지는 않지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 무엇인지 좀 궁금하기는 하여 읽어보았다. 여러가지 뼈를 때리는 명언들이 많이 있었다. 선호도로는 니체의 철학이 더 마음에 들지만, 큰 울림을 주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삶이란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오로지 그 욕망을 채우기만을 갈망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채워지는 순간부터는 권태로움에 괴로워하는 모순적인 것이기도 하다. 가난한자들은 없음에 괴로워하고, 그것이 해소된 부자들은 분명 행복해야 하는데, 또 다른 자극이 없음에 무료해한다. 그래서 인생은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욕망의 충족 이후에 찾아오는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그토록 갈망하던 환희의 순간도 지나고 나면 덧없어지는 것. |
|
소설은 보다 철학? 에 대해 읽어보고 싶어서 처음 구입한 철학책 이책도 추천받아서 샀지만 철학책을 더 많이 사서 읽고 싶게 해준 내 철학 입문책이다. 어떻게 해석될지 도 너무 궁굼하기도 했고 그래서 구입하게 되었다. 인생의 욕망과 권태에 대해서도 잘 다룬책이고 쇼펜하우어는 왜 불행에 대해 강조 하고 싶은가? 하지만 그 세상 속에서 벗어나게 해줄수 있는 알려주는 책 책을 다읽고 나서 느낀점은 이분의 관점과 철학은 나와 차이가 있다는걸 느끼게 해주긴하지만 다른관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철학에 관심이 요새 가신다 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뻔한 책이다. |
|
21세기북스 출판사, 박찬국 저자의 사는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박찬국 저자의 교양적 지식에 대해 놀랐습니다. 저자의 다양한 생각과 철학을 이해해 볼 수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좋았습니다. 사는게 고통인 순간이 누구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저자로 하여금 엿볼 수 있는게 해당 도서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
|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한 문장으로 쇼펜하우어가 하고자 하는 말이 표현된다. p40 인간의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과 같다.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되어도, 만족을 얻지 못하는 욕망은 열가지나 된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우리는 항상 부족하며 결핍감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p45 영속적인 만족이나 행복은 있을 수 없으며,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은 긴 반면에 행복의 시간은 짧은 것이 보통이다. p49 그러나 욕망이 충족되자마자 만족감과 즐거움은 소멸하기 시작하며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에 빠지게 된다. 권태가 오래 지속되면 무기력과 허무감, 더 나아가 심각한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다. 장기간 지속되는 권태는 극심한 고통이기 때문에 교도소에서는 규율을 어긴 수감자들을 독방에 오랫동안 가두기도 한다.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책으로 확인하시길... 쇼펜하우어, 니체 모두 본문을 바로 진입하기엔 어려워서 박찬국 교수님 2차 저작으로 시작했다. 갓찬국 교수님 최고.. 쇼펜하우어 입문서로 완전 강추
|
|
박찬국 교수님의 사는게힘드냐고니체가물었다 를 읽고나서 니체의.책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사서 읽게되었다 말그대로탐독하였는데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그이후박찬국교수님의책은믿고보는데 쇼펜하우어의행복론과인생론을읽고나서 의지와표상으로서의세계를 시작하기에앞서 일종의 몸풀기?뇌풀기?겸 이책을 읽게되었다 읽고난감상을적을만큼의 능력이없기에 인상깊어 밑줄을 그어놓았던 부분을 되새겨보는 차원에서 리뷰를 대신하려한다 워낙 재미있게읽은책이라 온통밑줄이지만 다적기는귀찮으니 몇가지만! 1.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사람과 다툴때 상대방을 논리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상대방의 이성이 아니라 이익이나 욕망에 호소해야 한다 이런식으로 타협하면 당신도.이익을 볼 수 있다 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이 욕망에 대해서 독립적인.것이 아니라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기.때문이다 2. 전쟁을 일으키는 심리 이면에도 권태가 존재할수있다 3. 우리가 사상의 세계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것은 일단 현실에서 절망과 고통을 맛본후의 일인것이다 4. 역사의 장들은 사실상 명칭과 날짜만 다를뿐이다 본질적인내용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
|
이전부터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책으로 읽기는 처음이었다. 일부러피한 것도 있었고, 괜히 그런 철학주의를 읽었다가 매몰될까봐였기 두려웠다. 내 우려와는 달리 이 책은 객관적이고 간단하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려준다.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은 대중에게 어렵게 다가오지만 글 자체는 꽤 쉽다. 어떤 사례를 들어 우리의 삶에서 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을 짚어주어서 의미있는 글이다. |
|
니체 철학의 중립적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박찬국 교수의 책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쉽게 정리해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냥 읽기엔 쉬워보여도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읽으면 쉽게 읽기가 진척이 되지 않아서 곤혹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쉽게 정리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삶이 왜 고통인지, 그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그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쇼펜하우어를 통해 니체로 넘어가는 고비를 쉽게 넘게 될 수 있다. |
|
사는 게 힘들 때 오히려 읽어볼만한 책이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대신해서 위안을 준다. 고통이란 생로병사의 삶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 불교의 사상처럼 어떻게 이를 수용하느냐, 또한 니체의 철학처럼 이를 극복해 나가느냐, 저자 박찬국 교수님은 이책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책을 읽고 나는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을 수긍하는 긍정 철학자라고 생각된다. |
| 당신의 인생이 결국은 절망적 허무와 권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끝내 고통으로 귀결될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쇼펜하우어 선생이 실제로는 유머러스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 철학이 입맛에 따라 마구잡이로 개조당하는 안타까운 요즘에 권하는 명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