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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미로』를 읽고 나서, <책소개> 자료를 보니 “동화이자 우화이다”라는 문장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 문장은 “동화 같은 소설”이라는 문장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동화’라면 어른들이 읽는 동화라면 맞을 것 같지만, 우화는 아닌 것 같다. 우화라고 하면 <이솝우화>가 먼저 떠오르는데, 그런 우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은 전혀 아니다. 미로와 구루 이야기꾼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소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지혜를 강요하는 우화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도 아름다웠지만, 문장이 참 아름다웠다. 격한 언어도, 거친 언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작품을 작가가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시인이었다. 아, 그래서 문장이 다른 소설가들에게서 느낀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기억은 가볍거든. 잔에 담기면 잔 모양이 되고, 책에 담기면 책 모양이 되고, 꽃에 담기면 꽃향기를 품게 되고, 음식에 담기면 음식맛을 갖게 되지. 기억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썩기도 하지. 온전한 기억은 어느 하나 발견하기 어렵지. 사람들은 그래서 기억을 자꾸 버리게 돼. 온전한 기억만 갖고 싶어하고, 아름답고 향기 나는 기억만 갖고 싶어하지. 그러면 기억은 자꾸 사라지게 돼. 하지만 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기억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인용한 문장을 읽고, 현대인들의 기억과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다. 점점 더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집에서 살고, 비슷한 옷을 입는다.
이러다보면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싶다. 『이야기꾼 미로』는 점점 더 상품 같은 기억과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야기의 가치에 대해서 동화 같은 이야기로 묻고 있는 것 같다. 눈물을 한 번 나게 만든 이야기인데,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뭔가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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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내 안에 담긴 이야기에 귀기울여본다.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미로의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미로는 호수마을에 사는 이야기꾼이다. 집에서 가출을 한 나는 - 가출이라기보다는 외삼촌 집으로 가는 것이지만 -안개가 자욱한 날 길을 잃은 미로를 만나게 되고 미로가 사는 호수마을이 이 세상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는 문자의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로 마을의 모든 것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외삼촌은 그렇게 사람의 말을 통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엄마를 잃은 미로는 호수마을의 이야기꾼 구루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만나게 된 이야기들을 외삼촌에게 들려주고 다시 호수마을로 돌아간 듯 갑자기 사라지는데, 외삼촌은 미로가 남겨 준 이야기를 글로 기록을 하고 역시 어디론가 떠나고 ... 어쩔 수 없이 외삼촌이 남긴 미로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그렇게 이야기꾼 미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미로의 여행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그 여행 이야기에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지만 내게는 정치풍자나 삶의 우화처럼 읽히기도 했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시기와 질투가 담겨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풍자 이야기처럼 읽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지고지순한, 순수하기만 한 마음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읽게 되기도 하니까.
어쩌다보니 너무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나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도 미미한 것인지 부끄럽고 아쉬운 마음뿐이다. 이 동화처럼 읽히는 미로의 이야기를 누구와 읽는지, 누구에게 읽어주는지, 아니면 내 개인의 체험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글을 읽는 느낌이 다 다르지 않을까? 사실 나는 처음 읽었을 때 마음에 남았던 이야기와 또다시 슬쩍 들춰봤을 때 남는 이야기가 또 달랐다. 담고 있는 이야기는 똑같은데 읽을때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는 것은 어린왕자 이야기를 읽은 느낌과 닮았다. 내 느낌으로는 그렇다. 어딜가나 이기적이고 잘난척하는 사람이 있고 그로인해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은 똑같지만.
며칠전 들었던 기억과 추억은 다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한 기억은 기록과도 다르다. 다른 호수마을로 이야기 여행을 떠난 미로의 이야기에서도 개인의 추억이 다르고 각자의 이야기가 다른 것처럼. 우리가 그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진심과 진실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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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 시나 우화, 단편소설과 다른 점은 살아있는 주인공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야기꾼 미로』를 읽고 미하엘 엔데의 아이인 모모, 에밀 아자르의 아이 모모, 루이스 캐럴의 아이 앨리스, 루시 몽고메리의 아이 앤이 떠올랐다. 어쩌면 미래에 사람들은 천세진 작가의 아이 ‘미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가가 만든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 문자가 없는 호수세계에서, 미로는 이야기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야기꾼이 되면, 호수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호수세계의 모든 호수를 여행할 수 있는 남다른 생을 살 수 있지만, 그 길이 행운의 길은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끌어안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고, 더 뛰어난 사리분별력을 가져야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내보내는 길도 잘 만들어야 해. 사람들은 그 길을 잘 구별하지 못해. 사람들이 모두 선한 길과 악한 길을 잘 구별할 수 있다면,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사라지겠지만, 그건 쉽지 않아.” (161∼162쪽)
‘미로’는 이야기꾼으로 잘 성장해 갈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아픔을 가진 이들이 상처가 가득하면서도 짱짱하게 자라 그늘을 넓게 드리우는 나무들처럼 주변을 보듬는 사람들이 많다. 미로는 그렇게 자랄 것 같다. 아주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하나 알게 되었다. 3장에서부터 18장까지의, 미로가 전해준 이야기는 마치 동화 같다. 19장에서는 미로가 사는 호수세계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진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이야기를 전한 화자가 왜 아래와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를 매력적인 문장으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다는 아니다. 독자에게 상상해보라고 넌지시 권하고 있다.
“자기는 스무 곳 정도의 큰 호수마을도 아직 다 가보지 못했는데, 65만 명이나 되는 큰 마을은 평생을 살아도 그곳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미로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크기를 이야기의 크기로 생각하는 것에 크게 놀랐다. 한 번도 도시의 크기를 이야기의 크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문장들이 시적이고 아름답다. 책 곳곳에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시인이기 때문일까. ‘미로’가 아름다운 아이이기 때문일지도, 호수세계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키려는 때문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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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숲에서 만났던 소년이 천세진의 장편소설 [이야기꾼 미로]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진짜 '이야기꾼 미로'였을까? 꿈인 줄 알았는데 평생동안 기억하는 꿈이라니 그건 꿈이라기엔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 이야기꾼 미로가 사는 호수마을엔 자동차도 없고 전자기기는 물론 문명의 혜택이라고 할 수 있는 글자와 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호수들 근처에 모여 살며 '이야기꾼'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개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승합니다. 다른 호수마을의 소식은 '이야기꾼'들이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마을에 돌아와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큰 호수마을에는 여러명의 '이야기꾼들'이 존재하고 후계자들도 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로가 사는 작은호수마을은 나이가 들어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꾼 할아버지 구루가 오래전 후계자가 되려다 포기한 애린이 떠난 이후로 마을의 이야기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할까 싶어 걱정을 하는 중입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미로가 서럽게 우는 동안 눈물호수에 맑은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넘쳐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만 들었던 마을 사람들은 실제로 미로의 눈물호수로 인해 마을 골목이 채워지고 그대로 두면 마을 전체가 잠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에 접하자 당황한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 이야기꾼을 불러와 미로가 눈물을 그치게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작은호수마을의 유일한 이야기꾼인 구루 할아버지는 천천히 미로에게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 지나치면 그리움거울 호수가 나타날꺼라고, 그 길을 걷다보면 보고 싶어했던 걸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눈물을 멈춘 미로가 이야기꾼 구루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데에는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숨안개 너머의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꿈이. 하지만 미로는 여행 도중 길을 잃고 안개 자욱한 곳에서 희한한 옷과 이상한 물건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엄마와 다투고 외삼촌이 있는 전라북도 송학마을로 가출을 한 고등학교 2학년의 나와 UFO 덕후인 외삼촌이 바로 미로가 만난 당사자들입니다. 안개와 함께 홀연히 나타나 일주일을 머물다 다시 안개처럼 사라진 미로, 이후로 혹시 미로를 다시 만날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긴 나와 미로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사라진 외삼촌까지 이야기는 돌고돌아 '이야기꾼 미로'가 들려주는 긴 호수세계 여행이야기들로 남았습니다. 글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지혜와 살아가면서 만나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는 수많은 지식들을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야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화 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허황된 꿈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도 했지만 농축된 삶의 지혜는 계승되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는 문명의 발달로 기록물들이 넘쳐나지만 평행이론에 의한 다른 차원의 세계에는 아직도 호수들 마다 마을이 있고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꾼을 통해서 지혜를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래 동화 같고, 판타지 소설 같고, 또 어딘가 SF소설 같은 [이야기꾼 미로]를 통해 본 적도 없는 차원 너머의 세상을 여행하고 온 기분입니다. 지치고 힘들어 꿈처럼 먼 옛날이 그리울 때, 그때 다시 한번 미로의 여행에 동행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사는 곳이 다 같아서 질투도 하고 싸움도 있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호수세계의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천세진 작가님, 다른 작품들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야기가 꼭 시 같습니다. #이야기꾼미로 #천세진 #장편소설 #교유서가 #책추천 #책스타그램 #시인의첫소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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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미로 #천세진장편소설 #교유서가 이야기꾼이라..옛날에는 설화나 옛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할때에 옛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거나 전달해주는 전달자가 있으니 정말 오래된 옛이야기도 각색이되고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잔잔한 호수에 담겨있는 이야기같다. 그 이야기속에 무수한 호수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품고있고, 그 마을마다의 규칙과 생명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속에 교훈이 있고, 사랑이 담겨져 있다. 이야기꾼 구루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아픔에 아파하는 미로와 함께 호수마을을 여행한다. 저마다의 마을에 스토리가 있고, 각자마을의 이야기꾼에게 듣는 마을에 대해서도 듣게된다. 구루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살아 온 날을 뒤돌아보게 되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픔과 기쁨을 받아들일 때는 어떠한가? 우리가 지나온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미로는 여행하며 엄마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며 추억에 잠긴다. 미로가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싶을 때에 호수마을에서는 미로의 슬픔과 눈물이 깊어질수록 눈물호수는 맑은 물이 차올라 범람하였다. 그렇게 되면 호수마을의 사람들은 물의 공포에 사로잡혀 이야기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이야기꾼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고 헤아려주었다. 너무 멋진 표현이 있다. 이야기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니, 가고 싶지만 갈수없는 미지의 호수세계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신비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시인이 쓴 소설이라 그런지 잔잔하고 은은한 향수같은 소설이다. 구루할아버지와 여러마을을 여행하며 꽃과 나무와 길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함께 호수로 떠나는 신비로운 여행은 행복했다. 나는 거의 어린왕자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신비로운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미로의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어보기 위한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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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야기를 갖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물, 사람 등에 생명을 부여하는 건 이야기이며, 무엇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이야기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이상, 누가 감히 그것이 죽었다고 말할 수 없겠죠.
마을마다 전문적으로(?) 이야기만 전해주거나 읽어내는 사람이 있고 이를 "이야기꾼"이라 부릅니다. 이야기꾼도 생업에 종사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하며,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후계자를 양성하기도 합니다. 이야기꾼은 자신이 (스승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전달할 수 있습니다. 공력이 높으면 말 없는 사물이나 심지어 오래 전에 죽은 이들로부터도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삼촌이 미로와 함께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 버렸기에, 또 아직 저쪽 편 세상에 대해 외삼촌 자신도(또 미로 역시) 모든 걸 알지 못하기에, 이어지는 사연은 말로 전하지 못하고 글로 전달됩니다. 하지만 외삼촌 역시 지금 우리 세상에 대해 꽤나 회의적이고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므로, 그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그가 전하는 진실은 말 그대로 정직한 진실입니다(혹은, 그렇게 믿고 싶네요).
얼마 전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을 읽었을 때, 북반구 추운 지방에 사는 원주민분들은 그 부모가 갑자기 죽거나 한 고아의 삶에 대해 그리 넉넉한 배려를 베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게 사실 우리 세계의 냉혹한 현실이죠. 그런데 저기 미로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직 아빠가 살아계시긴 하지만) 미로가 흘린 눈물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고민도 하는 등 고아(아직은 아니지만)에 대해 조금은 더 배려가 이뤄지지 안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강을 이뤄 흘러넘치는 눈물 때문에 입을 현실적 피해"가 걱정이 되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 남의 슬픔에 대해 냉정하고 잔인하게 구는 편인 우리네 세상에서 고작 누구(그것도 어린애)의 눈물 정도로 집단 피해가 안 일어나는 건, 이게 둘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반대로 저쪽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라서 그렇게 홍수가 나기도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큰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면, 세상을 널리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미로네 세상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고, 또 스승인 이야기꾼에게 이야기를 전수 받고, 이 과정을 통해서 상처가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건, 우리 역시 사정이 그럴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받아들여. 어차피 누구나 겪는 일이야."라고 위로하지만 우리나 미로나 그런 말로는 힐링이 안 됩니다.
스승인 이야기꾼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p80에 처음 이름이 나오죠. "이름"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이름이 없어도, 혹은 잘못되거나 우스운 이름이 붙어도 그리 신경 쓸 게 없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구루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그저 이야기꾼으로만 불릴 뿐입니다.
이 소설,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로서 제가 인상 깊었던 건, 마을의 크기나 부유함 같은 것에 무관하게,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빈곤하면 사람들이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걸로 봐서, 아마도 우리네 세상의 소설가, 시인, 혹은 널리 문화 컨텐츠 크리에이터에 이 이야기꾼이라는 분들이 해당하는 것 같고 또 그에 대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삼촌과 1인칭 주인공인 "나" 등이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처럼 저들은 이야기꾼 포함 문자를 쓰지 않는다는 게 꽤 특이합니다.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전승지식, 노하우 등을 문자로 적어 두면 정말 편할 텐데도 구태여 그리 하지 않는 건(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동화 "구연"이라든가 판사 앞에서 이뤄지는 법정의 생생한 직접 증언 등에 특별한 가치를 두는 건,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통해 이뤄지는 진술 속에 더 강한 진실이 담겨 있고, 단순 정보 이상의 더 인간적인 감정, 진실이 소통된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들"이 사는 우주의 이야기, 이야기꾼이 특별히 존중 받는 이유도 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의식적으로, 허위와 왜곡이 이뤄지기 쉬운 문자 체계 채용을 배척한 것이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네 사는 세상에서 이야기가 중요한 다른 이유는, 우리들 하나하나가 마치 미로네 엄마처럼 언젠가는 유한한 생을 마치고 모두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로장생할 수만 있다면 표정과 더 간단한 말로 그때그때 소통하면 충분합니다. 남겨진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걸 남겨 주고 싶다면, 이야기는 더 진실해야 하며 그런 진실된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은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어갈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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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미로 천세진 교유서가 . . 호수처럼 깊은 눈을 가진 이야기꾼 미로에 대한 소설이다. 우연히 미로를 만난 외삼촌과 나의 이야기에 미로가 해준 이야기가 담겨있는 액자식 구성의 서사다. 돈도, 글도, 책도 없는 호수세계에서 왔다는 미로는 호수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세상의 이야기들을 구루할아버지로부터 듣는다. 독특한 설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미로와 같은 마음으로 이입하여 귀기울이게 된다. 호수세계라는 가상의 공간은 호기심에서 시작해 읽어갈수록 마음의 평화를 일으킨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곳이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미로는 기대와 걱정 속에서 이야기꾼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 자욱한 안개를 뒤로하고. 이야기꾼 할아버지의 말은 여행에서 마음에 품은 나침반처럼 이야기꾼으로서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 .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갖고 있지. 세상에 죽은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50~51쪽) . . 구루라고 불리는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호수마을을 돌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미로의 여정은 꿈처럼 아득하다. 호숫가의 안개 사이로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들의 이아기가 여러 결을 담고 있어서 서사 이상의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마치 나도 그들과 여행하는 기분으로 환상동화를 읽는 마음이었다. 호수들의 이름도 참 아름답다. 바오밥호수마을, 두얼굴 호수마을, 소리 호수마을 등 하지만 가장 오래 시선과 마음이 머무른 곳은 그리움거울호수였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어쩌면 이야기를 하는 마음에는 그리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운 마음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 . 작가의 말은 소설에서 지나오는 느낌보다는 여전히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야기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고 그런 마음이 아름답고 투명한 문장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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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젊은이들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만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의 붕어 두마리 서로 싸워 한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만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뜬금없이 웬 노래?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처럼 이야기같은 노래가 있는가 하면 노래같은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평온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다! 맑은 이야기는 아이들만의 전용물이 아니다.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탁한 세상을 맑게 할 그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세진은 시인이다. 그의 시를 읽어본 기억은 없지만 그가 무엇을 그리고 싶어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해 보게 된다. 참 맑고 아름다운 생각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책의 부분부분이 모두 그림처럼 변하는 마법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니 마법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어느 날 아침 짙은 안개속에서 마주치게 된 소년 '미로'. 문자도 모르고 스마트폰도 모르고 이 세상의 것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소년은 호수마을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들려준다. 호수마을에 대해. 그 호수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야기꾼에 대해. 미로가 들려주는 호수마을들은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단순히 환상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 마을들이 품고 있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마을의 이름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가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무엇이든지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하고 끊임없이 논쟁을 하는 두 얼굴 호수 마을 이야기나 화려한 것에 이끌려 따먹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버섯숲 이야기등... 금성의 또다른 이름이 개밥바라기별이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엄마를 잃은 슬픔에 소년이 흘린 눈물로 호수가 넘칠 지경에 이르게 되자 마을의 이야기꾼 할아버지가 찾아와 '꽃들의 숨안개'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 '꽃들의 숨안개'를 거쳐 '그리움거울 호수'에 갈 수 있다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엄마를 만나고 싶은 소년은 이야기꾼이 되기로 하고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소년과 할아버지가 보여줄 호수마을들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사람들은 늘 종류를 나눠.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나면, 그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누려고 하지. 사람만 나누는 게 아니야. 생각도 나누고, 느낌도 나누지. 그렇게 끝없이 나누고 나누어서 같은 모습의 사람들을 찾으려고 그러는 건지, 그냥 사람들을 계속해서 나누고 나누어서 혼자가 되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야."(-77쪽) 가기 힘든 세계는 아무 이유없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에베레스트산을 그냥 오를 수 없는 것은 가지 말라는 것이고, 알래스카의 설원도 마찬가지다. 죽어도 가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 가기 힘든 세계는 지켜져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몰라서다.... 어쩌면 그 세계들도 얼마 전에 읽어서 알게 된 좀머씨처럼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소리치고 있을지 모른다. (-232쪽) 이 책이 누구를 위해 쓰여진 책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으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천천히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조금만 더 느끼고 싶다고. 좋아하는 작가 故정채봉을 기억속에서 소환하고야 말았다. 여전히 아끼는 책의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故정채봉의 책들...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들이 많은... 어쩌면 그동안 너무도 그리워했던 장르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천세진의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찾아서 한번 더 읽어볼까 한다. 詩集을 읽어본지가 언제인지... 노래를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이란 제목으로 오래전에 양희은이 불렀었다. ...꽃잎끝에 달려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만이 남겠네... 이 책은 노래같은 혹은 그림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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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꾼 미로]를 몇 장 읽기도 전에 난 책에 빠져들었다. '김애란 작가를 잇는 좋은 이야기 꾼인가 하고 잔뜩 기대 했다. 그런데 내가 많이 성급했다. 1부의 이야기까지만 그랬다. 2부에서는 완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미로의 호수 세계다. 1부의 이야기가 발랄한 청소년 소설의 전반 부 같았다면, 2부는 성인을 위한 동화 같았다. 좋은 말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지만 다소 지루했다. 안개가 자욱이 끼인 호수 세계는 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뭔가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 평화롭고 아름답고 조금 아련할 뿐, 대부분 지루했다.
그냥 60대 할아버지와 열 한 살 짜리 소년이 함께 떠난 도보 여행기 같았달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호수세계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과 다른 차원의 세계다. 작가는 ufo나 평행 우주, 4차원이니 하는 물리적 우주 관념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 그리고 마을의 이야기꾼은 [기억전달자]라는 영화에서 차용한 것 같기도 하고, 아프리카 부족들이 자기 부족의 역사를 기억해 전달하는 '그리오'에서 착안한 것 같기도 했다.
옛날 옛적 우리 인류에게 문자가 없었을 때는 세상일을 기억해서 전하는 역사가들이 있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의[역사]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헤로도토스가 발품을 팔아 잘 청취해서 기록한 책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리오''마나스치'등을 예로 들면서 미로의 호수 세계의 이야기 꾼이란 것이 그런 사람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2부에서 소개되는 호수 세계는 크고 작은 호수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마을에는 이야기를 전수 받고, 전수할 이야기를 모으는 이야기 꾼이 있다. 각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꾼들이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해서 물물 교환을 한다. 우리 마을에서는 생산 되지 않는 물건을 다른 마을에서 구입하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필요한 물건을 바꾼다. 이야기가 일종의 화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 마을의 이야기 꾼은 엄청 중요하다. 사람들은 딱 필요한 만큼만 바꾸고 생산하기 때문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늘 평화로운 일상이다. 욕심이 없으니 다툼도 없다. 물론 마을마다 사람들의 기질이 달라서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있고, 논쟁을 피하고 최소한의 언어로 살아가는 마을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평화롭다 작은 호수 마을에 사는 미로는 크나큰 슬픔을 간직한 아이이다. 미로와 이야기꾼 구루할아버지는 여행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세상의 이야기도 모으는 것이다. 호수세계에는 차가 없어서 오직 도보로만 여행한다. 여러 호수 마을을 여행하면서 많은 버섯과 나무들이 소개된다. 동물이라고는 염소나 양 정도이다. 다른 동물은 없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그 버섯과 나무들 이름이 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들이어서 우리나라의 숲 속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다른 세계라는 느낌도 없고, 어느새 신비로움 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작가가 나무이름이나 버섯이름을 알리려고 이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도 많이 아쉬웠다. 3부는 다시 현실의 세계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뭘까? 모든 사물에는 역사가 있다는 건가? 자연을 사랑하고 잘 지키자는 건가? 시인이 쓴 소설이라 참 아름답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