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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을 좋아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저술이나 불교 경전 중에서도 선종과 관계되는 책이라면 가능하면 찾아 읽으려 한다. 하나의 텍스트에 관해서도 여러 사람이 번역한 것을 읽다보면 각기 바라보는 관점이 미묘하게 차이를 보인다.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을 주지만, 나는 고전을 읽으면서 어떤 관점에서 읽는지 혹은 동양고전에서 무엇을 얻으려 읽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도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갑자기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하고 묻는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어떤 이유 때문에 지금 만나야 한다고 했을까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데, 현실은 이런 과제의 수행을 끊임없이 방해한다고 말한다. 이럴 때 일수록 한 걸음 물러나 쉼과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고전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전은 우리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데 좋은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 중에서도 순서와 친숙함에서 동양고전이 서양고전에 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양고전은 우리 삶의 뿌리가 되어 현재에도 작동하고 있는 전통의 지혜이거니와, 그 지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핵심개념과 인물로 만나는 동양철학’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동양철학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노자·석가·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중국과 한국의 유교사상가들, 한국의 불교사상가들을 통해 동양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그들의 핵심개념만을 살펴보고 있다. 수많은 동양의 사상가 가운데에서도 도가와 유가 그리고 불교의 사상가만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 동양문화가 고대부터 유불선 삼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먼저 ‘동양철학의 스승들’을 다루는 1부에서 저자들은 노자·장자·석가모니·공자의 핵심사상을 살펴본다. 노자의 도와 덕·무위자연·소국과민·상선약수 사상을 통해서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때 행복함을, 장자의 제물론·소요유·좌망과 심재를 통해서는 작은 지혜가 아닌 큰 지혜를 추구하는 법을 알려준다. 석가모니의 사상은 불교의 진리라 할 수 있는 사성제·중도·연기·삼법인을 소개하면서 우주만물의 작용과 움직임의 참모습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공자의 사상으로는 인·예·정명을 들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람을 사랑하고 표현할 줄 아는 것이 군자라고 강조한다. 도가의 철학자인 노자와 장자가 자기수양을 통해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삶을 권했다면, 유가의 공자는 자기수양과 함께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권했다. 이에 반해 석가는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수행을 강조했다. 이는 불교의 경우 시작부터 종교였지만, 도가나 유가는 그들이 활약했던 춘추전국시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2부 ‘중국의 유교사상가들’에서 저자들은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의 인의·왕도정치·항산과 항심을,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화성기위·천인분이를 핵심사상으로 소개한다. 이어서 맹자의 성선설을 근본으로 하고 유불선 삼교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을 완성시킨 주희와, 그런 주희를 비판하며 양명학을 일으킨 왕수인의 사상을 살펴본다. 이들의 핵심사상을 읽어가면서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맹자와 주희의 오독으로 이후 유가사상이 경전에 얽매이고 논쟁만을 우선시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볼 때 왕수인이 ‘인간의 본성이 곧 이치’라고 주장한 주희의 성즉리를 비판하고, ‘마음에 이치가 있다’는 심즉리를 내세우며 ‘앎은 행함의 시작이고 행함은 앎의 반성’이라는 지행합일을 주장한 것은 성리학의 모순에 대한 반성이었지 싶다.
3부 ‘한국의 유교사상가들’ 역시 중국 유교사상가들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이황·조식·이이·정제두·정약용의 핵심사상을 간추려 알려준다. 이황과 이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이기호발설과 이기일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조식은 학문을 하는 것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면의 성찰과 사회정의의 구현을 주문했다. 정제두는 주자학을 비판하고 양명학을 연구하면서 당시 학문하는 사람들이 글 배우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별개로 여기는 것을 비판하였다. 정약용 역시 실천을 가장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4부 ‘한국의 불교사상가들’에서는 원효·지눌·휴정을 다룬다. 원효의 일심과 화쟁사상, 지눌의 돈오점수와 정혜쌍수, 휴정의 마음과 본성, 배움과 수양을 핵심사상으로 소개하는 저자들은 이들 모두가 갈등을 통합하는데 중점을 두었음을 강조한다. 원효가 왕족과 백성,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통합을 위해 힘썼다면, 지눌은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휴정은 마음은 큰 환상을 만든다며 집착에서 벗어날 때 청정한 성품이 드러나고, 공부란 자신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고전 속 철학자들의 핵심사상을 읽으면서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남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공동체를 사욕의 발판으로 삼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행동보다는 말만을 앞세우며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따라 통합보다 갈등을 유발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지 싶다. 그래서 저자들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동양고전을 읽으라 했을 것이다. 고전은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된다. 바로 그 점이 오늘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고전에서 찾을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볼 때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더욱이 지금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유불선 삼교의 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관습이든, 인습이든지를 떠나 우리의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우리의 삶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사상가들을 책 한 권으로 만나고 있다. 저자들이 윤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인지라 약간은 도덕교과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사상가들의 핵심사상 만을 모아 놓았다. 동양의 사상가들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혹은 그들의 사상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 동양고전 원전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안내서 삼아 읽어볼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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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과 인물로 만나는 동양철학'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주요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제기한 사상의 핵심 개념을 위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실상 동양철학은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예로 들 수 있듯이, 그 시작은 대단히 다기한 분야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상가(제자)와 그들의 다양한 사상(백가)을 뜻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용어가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권력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되면서, 특정 이념 즉 주로 불교 혹은 유가의 이념이 주류 사상을 형성하는 모습이 발현되게 된다. 간혹 그러한 주류 사상에서 조금은 결이 다른 이론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주류 사상의 한 분파로서 비교의 대상으로 차이점과 동질성을 논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경향이 있다.
주요 인물을 통해 '동양철학'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의 목차에서도 그러한 문제가 그대로 노정되고 있다고 이해된다. 목차 가운데 '동양철학의 스승들'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동양 사상의 주류인 이른바 '유불도' 사상을 정립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가 사상의 대표 인물들인 노자와 장자,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그리고 유가의 비조라 일컫는 공자 등 모두 4명의 사상이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아울러 도가사상이라고 일컫고 있지만, 실제 그들이 펼쳐내는 내용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에 두 사람을 나란히 소개한 것이라 이해된다. 도가사상이 주류로 인정되지는 못했지만, 당대의 지식인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2부에서는 '중국의 유교사상가들'만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통일제국을 건설한 한나라 이래 유가 사상이 주류를 형성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즉 중국 사상사에서 불교와 도가 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주류인 유가 사상에 밀려 주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이해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성선설과 성악설을 제시했던 맹자와 순자, 유가 사상을 정리하여 성리학을 완성시킨 주희, 그리고 극단적인 유심주의라고 평가되는 양명학의 왕수인 등의 사상과 주요 개념들이 다뤄지고 있다. 다양한 세력들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제자백가’의 사상들이 저마다의 특징을 드러내면서 통용되었지만, 후대에는 역시 유가와 그에 영향을 받은 사상들만이 주류를 차지했음을 이러한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부와 4부는 모두 한국의 사상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제목은 각각 '한국의 유교사상가들'과 '한국의 불교사상가들'이다. 즉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고려 말 이전에는 불교 사상이 주류를 차지했고, 그 이후에 비로소 유가의 한 분파인 성리학이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여졌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 이해된다. 중국의 경우와 같이 한국에서도 도가사상의 흐름은 비주류의 차원에서 머물고 주류 사상에는 접근하지 못했기에 역시 주요 인물들 가운데 도가사상을 펼친 이들이 제외되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의 유교사상가들'에서는 당연히 조선시대의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이황과 조식을 비롯하여 이이와 정제두 그리고 정약용 등 5명의 사상과 핵심 개념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양명학을 받아들였던 정제두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조선시대 주류 사상이었던 유가의 성리학자들이다. 마지막 4부의 '한국의 불교사상가들'에서는 신라시대의 고승인 원효와 고려시대의 선사 지눌, 그리고 조선시대의 휴정 등 3인의 사상과 그 핵심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중국과 한국 철학에서 주요 인물들로 거론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상만으로 한국철학의 흐름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다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마도 저자들은 동양철학의 초심자들에게 이들의 사상과 핵심 개념들을 통해서, 그 대체적인 내용을 인지시킬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인물들의 사상과 핵심 개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지만, 동양철학의 흐름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에 소개된 사상가들의 진면모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주장한 핵심 개념을 통해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요구된다. 기본적으로 주요 사상가들의 사상을 요약적이고 개략적으로 접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하는 내용이 보완되었다면 더 좋은 기획이 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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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중에서도 철학과 사상, 문화를 담고 있는 고전을 접하는 일은 특히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우리 삶의 뿌리가 되어 현재에도 일정하게 작동하고 있는 전통의 지혜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전통의 지혜가 현재 우리 삶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사유와 성찰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p. 15 中에서 -
최근 회사의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두 아이를 둔 직원의 고민거리를 읽은 적이 있다. 고민의 주된 내용은 외벌이로 빠듯한 월급과 함께 몇 년 전에 산 아파트도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아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한 고민에 대한 조언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당신보다 더 힘든 처지의 사람들도 있다는 위로와 나도 당신과 비슷하다는 공감, 그리고 더 열심히 살라는 격려와 그러한 푸념을 할 시간에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은 이유를 분석해서 새롭게 투자하라는 따끔한 충고까지. 하나의 사연에 대하여 이렇게 다양한 의견과 조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은 그 문제를 바라보는 저마다의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인의 관점은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후천적인 것을 통하여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땅에서 이루어진 삶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동양고전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는 서양고전에 훨씬 친숙하고 개화기 이후 정착한 문화적 종속이 아직까지도 온전히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서 동양고전이 전해주는 지혜와 깨달음을 전하면서 그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동양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중국의 사상을 다루는데, 흥미롭게도 한국의 유학과 불교 사상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중국의 제자백가를 원류로 하는 중국의 사상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땅에서 이루어진'이라는 표현이라는 걸맞게 한국의 사상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으니 기존의 동양철학을 다룬 책들과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나의 삶을 돌아보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과거 국민윤리와 국사 교과서에서 짧막하게 접했던(대부분 시험을 위하여 암기로 지나쳤던) 동양철학에 대한 내용들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동양철학에서 유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중국은 물론 조선이 통치이념이자 학문으로 생각한 유교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에서 오히려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더욱 눈길이 갔다. 특히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장자의 사상은 최근 내가 갖고자 하는 삶의 방식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장자의 사상의 정수를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장자는 인간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삶에서 벗어나, 외부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경지를 추구하였다. 장자는 분별과 차별을 없앰으로써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소요유(逍遙遊)'라 정의하였다. 이는 자신만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생각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에 얽매여 살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타인을 비방하고 업신여기게 되지만 세상의 편견과 틀 속에서 벗어난 이는 분별하고 차별하지 않으므로 그 사고의 폭이 넓고도 자유롭다는 것과 통한다.
붕새는 큰 새이기 때문에 바람의 힘을 받기 위해서 구만리를 치솟아 올라가야 하는데, 말매미나 작은 비둘기는 그 특성을 모르고 비웃고 있다. 어리석고 좁은 자기들만의 소견으로 큰 뜻을 품은 자들을 비웃는 소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면 되는 것이지 자신의 가치관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p. 49 中에서 - 누구라도 인생에서 성공하길 원한다. 그것을 위하여 무한 경쟁은 물론 타인과의 비교는 필수적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나 또한 거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를 거쳐 직장에서까지 그러한 패턴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 깨달은 것은 과연 그 성공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성공에 다다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나는 내면적으로는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타인과 비교하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으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극복에 대한 의지와 노력보다는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상황을 비교 기준을 바꾸어 보면 꽤 나은 것처럼 보여질 때도 있었다. 현재 나의 삶은 분명 하나인데, 어떤 기준 또는 무엇과 비교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장자의 외부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소요유(逍遙遊)'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좌망(坐忘)은 조용히 앉아서 우리를 구속하는 일체의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심재(心齋)는 마음을 비어서 깨끗이 하는 것이다. 좌망(坐忘)과 심재(心齋)를 통해 수양하여 인위적인 것들이 사라지면 비워진 마음에 도(道)가 드러나게 된다. - p. 52 中에서 -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대하여 공감하더라도 이것을 삶의 지혜이자 철학으로 정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오늘도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들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따른 삶을 실패한 이들의 자기만족 또는 자기위안이라 폄하할 수 있다. 더이상 성공할 수 없으니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장자처럼 그들을 꼭 어리석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장자의 사상이 이 세상의 기준철학이 아니니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그러한 말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 만족한다면 그 경지야말로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의 경지에 조금은 다다른 것은 아닐까?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면 '좌망(坐忘)'과 '심재(心齋)'가 과거의 참선의 방식이 아니라 현재에도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일종의 자기관리 방식으로 느껴질 것이다.
한국의 유교사상에 관한 내용은 솔직히 말하면 조선의 유학이 너무나 현학적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에는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에 관한 부분을 그저 암기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이황과 이이의 사상으로 상세히 다룬다. 그런데, (나의 이해 정도가 얕아서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이황과 이이의 학문은 독자적이기보다는 주희의 성리학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다. 주희는 사물이 형성되는 이치 또는 원리를 '이(理)', 사물의 재료 또는 기운을 '기(氣)'라고 정의하며 이(理)와 기(氣)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며 이(理)가 있어야 기(氣)가 생겨날 수 있고, 기(氣)가 있어야 이(理)가 실제 현실로 구현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주자의 이러한 이(理)와 기(氣)에 대하여 이황과 이이는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였으니 그것이 바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이다.
이황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도덕적인 감정을 일컫는 '사단(四端)'과 기쁨, 분노, 사랑, 두려움, 슬픔, 싫어함, 욕구 등의 일반적인 감정을 의미하는 '칠정(七情)'의 관계를 면밀히 분석하였다. 그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라는 감정이 나오는 곳은 각각 다르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고 이이는 두 감정이 같은 곳에서 나온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하였다. 이는 이황이 주희의 이(理)와 기(氣)는 섞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 것에 반하여 율곡은 이(理)와 기(氣)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이다. 주자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주자학을 더욱 심층있게 분석한 이들의 성과는 학문적으로만 본다면 정말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성리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그 시기의 통치이념이자 사회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부분보다는 현학적으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에 반하는 다른 학문은 물론 같은 유학이지만, 조식과 같이 실천을 중시하자는 주장을 배척하는 움직임(훗날 사문난적으로 매도되는 성리학에 대한 다른 해석들을 포함) 등은 무언가 모르게 아쉽게 느껴진다.
도가의 철학자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자기 수양을 하며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삶을 권한다. 반면 유학자들은 자기 수양과 함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 p. 97 中에서 - 공자의 유가사상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조선의 사례를 보면 그다지 크게 공감되지 않는다. 도가의 철학이 자기 수양에 집중하였기에 통치이념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점은 납득이 된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를 보면 과연 유학자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쓴 것인지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학문적 깊이는 상당한 진척을 보여줬지만, 그것이 나은 사회를 위하여 실용적으로 쓰여진 것인지는 의문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조선의 유학은 유학을 신봉하는 그들만의 세계에만 몰두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례로 맹자는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먼저 백성들을 먹고 살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도덕성을 신뢰하면서 그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삶의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를 조선의 유학자들도 알고 있으면서도 과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는지는 의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한국의 불교의 사상을 원효와 지눌, 휴정과 같은 고승들로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휴정의 사상에 공감이 갔는데, 그는 부처가 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깨달라야 하며 깨닫게 되면 부처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주체성을 강조한다.(불교는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불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노력 없이는 '깨달은 자'가 될 수 없으며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깨끗한 세상에 이를 수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앞서 살펴본 장자의 사상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휴정의 사상은 그동안 종교로 생각했던 불교 역시 하나의 철학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는 그동안 읽었던 철학과 달리 배움을 넘어서 동양철학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예전에는 그저 뜬구름을 잡는 비현실적인 사상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인생의 중반에 다다른 상황에서 오히려 현실에 적용해 볼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충효로 대변되는 유교를 조선의 사상가들을 통하여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서 그것이 조선의 역사는 물론 현재까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동양철학의 핵심 개념을 각 인물의 삶과 함께 다루기 때문에 동양철학에 관심은 있으나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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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박병기, 강수정 인간사랑/2021. 6. 30
우리 문화는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어려서부터 대부분 서양 철학과 문화를 배우기 때문에 동양철학이 서양철학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에서는 동양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가들을 4부로 나누어 그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그들의 삶과 사상을 현재 우리의 일상과 연결해서 불러올 수 있으려면 좀 더 정확한 지식과 함께 그 개념이 형성되어 발전해온 배경, 현재의 의미와 한계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공부 과정이 꼭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의 깊은 사상을 이해하기는 만만하지 않기에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박병기는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 <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등이 있다. 공저자 강수정은 현재 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세종시 보람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20여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윤리 교과를 가르치고 있다.
1부 동양철학의 스승들 노자는 만물을 낳는 것은 도이고 만물을 길러주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도는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노자는 도를 이 세상의 어머니라고 한다. “물은 만물에 이로움을 주면서도 아래에 처하는 겸허의 덕과 싸우지 않는 부쟁의 덕을 지니고 있으므로 최고의 덕을 지녔다고 한다. 이를 상선약수라고 한다.(p.36)”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물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거의 없다. 물은 또한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준다. 그리고 흐르는 속성이 있어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순리대로 흘러가며 다투지 않는다.
장자는 인간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삶에서 벗어나, 외부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경지를 추구한다. 편협한 인간의 잣대를 벗어 던지면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부귀와 공명, 아름다움 등 인간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에게서 벗어나면 저 자신의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분별과 차별을 없앰으로써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소요유라고 한다.(p.48)”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만물의 가치를 평등하게 인정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절대 자유의 경지 즉 소요유의 경지인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석가족의 깨달은 성자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라고 부른다. “<서유기>의 저팔계, 사오정, 손오공은 마음의 3독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에 삼독을 치유하는 삼학의 가르침이 내포되어 있다.(p.72)” 저팔계는 계(戒), 사오정은 정(淨), 손오공은 혜(慧)를 각각 추구함으로써 3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계율을 지켜 탐욕을 소멸시키고, 선정을 통해 분노를 소멸시키고, 지혜를 통해 어리석음을 소멸시킬 때 우리는 모두 열반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는 “인이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방법이다.(p.87)”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공감의 마음이 있다. 슬픈 처지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슬퍼해 주는 마음,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서의 마음이다. 공자의 인은 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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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박병기, 강수정 인간사랑/2021. 6. 30 sanbaram
우리 문화는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어려서부터 대부분 서양 철학과 문화를 배우기 때문에 동양철학이 서양철학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에서는 동양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가들을 4부로 나누어 그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그들의 삶과 사상을 현재 우리의 일상과 연결해서 불러올 수 있으려면 좀 더 정확한 지식과 함께 그 개념이 형성되어 발전해온 배경, 현재의 의미와 한계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공부 과정이 꼭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의 깊은 사상을 이해하기는 만만하지 않기에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박병기는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 <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등이 있다. 공저자 강수정은 현재 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세종시 보람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20여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윤리 교과를 가르치고 있다.
1부 동양철학의 스승들 노자는 만물을 낳는 것은 도이고 만물을 길러주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도는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노자는 도를 이 세상의 어머니라고 한다. “물은 만물에 이로움을 주면서도 아래에 처하는 겸허의 덕과 싸우지 않는 부쟁의 덕을 지니고 있으므로 최고의 덕을 지녔다고 한다. 이를 상선약수라고 한다.(p.36)”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물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거의 없다. 물은 또한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준다. 그리고 흐르는 속성이 있어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순리대로 흘러가며 다투지 않는다.
장자는 인간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삶에서 벗어나, 외부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경지를 추구한다. 편협한 인간의 잣대를 벗어 던지면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부귀와 공명, 아름다움 등 인간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에게서 벗어나면 저 자신의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분별과 차별을 없앰으로써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소요유라고 한다.(p.48)”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만물의 가치를 평등하게 인정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절대 자유의 경지 즉 소요유의 경지인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석가족의 깨달은 성자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라고 부른다. “<서유기>의 저팔계, 사오정, 손오공은 마음의 3독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에 삼독을 치유하는 삼학의 가르침이 내포되어 있다.(p.72)” 저팔계는 계(戒), 사오정은 정(淨), 손오공은 혜(慧)를 각각 추구함으로써 3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계율을 지켜 탐욕을 소멸시키고, 선정을 통해 분노를 소멸시키고, 지혜를 통해 어리석음을 소멸시킬 때 우리는 모두 열반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는 “인이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방법이다.(p.87)”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공감의 마음이 있다. 슬픈 처지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슬퍼해 주는 마음,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서의 마음이다. 공자의 인은 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2부 중국의 유교사상가들 맹자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네 가지의 착한 마음의 씨앗이 있다. 그 마음을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인 측은지심, 내가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남이 잘못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미워할 줄 아는 마음인 수오지심, 다른 사람을 예의로서 공경하고 배려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자 하는 마음인 시비지심이 그것이다. 측은지심은 인, 수오지심은 의, 사양지심은 예,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가 되는 마음이다.(p.72)” 그래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사단, 인의예지는 사덕이라고 한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만 예를 통해 인위적으로 교화함으로써 선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화성기위(化性起僞)를 주장하였다.(p.122)” 인간은 악한 본성과 함께 어느 것이 자신에게 더 나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인 사려 또한 타고난다. 이 사려로 인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누구나 인의를 행할 수 있다. 타고난 본성이 외부의 사물을 보았을 때 감정이 생기고 감정이 생긴 후 마음이 분별하여 선택하는 것이 사려이다. 마음이 사려하여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인위라고 한다. 인위란 배워서 얻을 수 있고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인위를 통해 단련된 성품이 지속되어 다시 처음의 본성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교화가 된 것이다.
주희는 우주 만물은 이와 기가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이 만든 사물이든 인간이 만든 사물이든 모든 사물은 이와 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물이 형성되는 이치 또는 원리이다. 기는 사물의 재료 또는 기운이다.(p.132)” 이는 사물 속에 깃들어 있지만 그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형이며 형이상이라고 한다. 기는 사물을 형성하는 재로로 모습이 눈에 보이므로 유형이며 형이하라고 한다. 해마다 봄이 온다는 것은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고, 해마다 봄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기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기가 결합되어 한 해 한 해의 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왕수인은 ‘마음에 이치가 있다’고 했다. “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지만 내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직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다. 꽃을 비롯한 존재하는 것들은 사람이 마음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p.147)” 그러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사물이 아니라 내 마음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부 한국의 유교사상가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의 감정은 각각 나오는 곳이 다르다고 하였으며, 사단은 이가 발하는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율곡은 사단과 칠정은 나오는 곳이 같다고 말하며, 사단과 칠정 모두 기가 발하여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한다.(p.185)” 율곡은 사단 이라는 도덕적인 감정과 칠정이라는 일반적인 감정은 둘 다 감정으로 같은 곳에서 나온다고 본다. 사단이나 칠정 모두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라고 한다. 사단은 선한 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칠정을 말하면 사단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칠정이 이미 사단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면, 사단을 칠정이 아니라거나 칠정을 사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니, 두 측면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정제두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마음이요. 사물을 다스리는 것도 모두 마음이라고 한다.(p.195)” 그러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의 이치를 다스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젊어서 많은 불행을 겪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동물은 고정된 마음 즉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인간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존재라고 한다.(P.209)” 동물은 정해진 본성과 능력에 따라 살아가므로 선악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러나 하늘은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4부 한국의 불교사상가들 원효는 “‘일심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본다. 일심이란 중생의 마음에 청정한 본래의 마음인 진여와 선악이 섞여 있는 현실의 마음인 생멸의 두 측면이 있지만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P.221)” 하지만 사람들이 무지로 말미암아 자신 안의 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심의 바다에 뭇 파도가 일어나듯이 윤회의 삶을 떠돌게 된다. 비록 윤회의 삶이라는 파도가 일어나지만 일심의 바다와 별개의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눌은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려 했다. “교종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근본으로 하는 종파이다.(P.228)” 교종은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전의 해석, 계율의 실천을 중시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엄격한 성격으로 인해 널리 대중화되기가 쉽지 않았다. “선종에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부처처럼 본래 청정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 이를 불성이라고 한다.(P.228)” 불성은 부처에 이를 수 있는 근본 성품을 말하며 선종에서는 불성을 자성이라고도 한다. 선종은 우리가 본래 완성된 부처라는 것을 직관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불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선종은 직관적 종교 체험인 선의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을 깨닫고 해탈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휴정(서산대사)는 “부처가 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깨달으면 부처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번뇌에 얽매어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P.240)” 본성은 마음의 근본이며, 그 자체가 청정한 것이다. 그런데 ‘청정해야 한다’고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허망한 법에 집착해서 깨달음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 자신을 알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깨닫고, 마음의 환상을 지혜로 거두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 공부가 아닌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는 아무리 오래 해도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든 조사든 누구에게든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깨치지 않는다면 결국 깨달음에도 정토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p.248)” 동양철학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자기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대로 생각한다면 진정한 철학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철학을 이해하고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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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의 본류를 이루는 동양 사상가들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고찰을 간결하게 그리고 실용적으로 다룬 이 책을 다 읽은 후 계속 여운을 가지게 했던 것은 바로 한국의 유교사상이었다. 유교사상이라고 하면 요즘 20대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유교 걸', '유교 보이'의 뜻만 봐도 부정적인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저 단어들은 보수적인, 여기서 더 나아가 '젊은 꼰대'로 귀결되는 부정적이고 대상을 조롱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유교사상은 흔히 낡아 빠진 그리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황, 조식, 이이, 정제두, 정약용의 사상들을 짧게나마 접하면서 한국의 유교사상이 어떤 식으로 태동했는지 우리가 그 훌륭한 사상들을 통해 현재에 얼마나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한국 유교사상가들의 일대기는 위인전을 통해 다들 접했을 테니,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인 그들의 '사상'을 이 책을 통해 꼭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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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과 통찰의 시공간, 고전
세상사는 게 힘들면 인심이 사나워지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 또한 탁해진다. 즉, 인심이 야박해지고 제 살길 찾기 바쁘다. 이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각자도생’이라 하는 모양이다. 이 책은 핵심은 코로나 재난의 장기화, 대유행의 환경 속에서 지친 심신을 쉬고 여유로움을 되찾는 통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은이 박병기 선생은 진단한다. 우리는 기실 서양고전에 익숙하다.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팔레스타인 출신의 대학교수 연구자, 이 책은 박홍규 선생이 번역했다)은 이데올로기다. 서양과 구분짓기 위해 동양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사이드는 말한다. 아무튼 지은이는 동서양의 구분의미는 이제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우열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나, 습기(오랫동안 몸에 베어 온 기운이나 습성)탓도 있다. 개화기 이후 정착한 문화적 종속(?)이 아직까지 온전히 청산되지 못함이다. 고전은 우리 인류가 이 땅에서 무리를 이루고 살아 오면서 축적한 소중한 지혜의 창고다. 그 지혜는 우리 앞에 놓인 위기와 구비를 통찰하면서 넘어설 수 있는 실천적 지혜이기 때문이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하는가?
동양 고전 중 철학과 사상, 문화를 담고 있는 고전을 접하는 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의 삶의 뿌리가 되어 여전히 일정하게 작동하고 있는 전통의 지혜와 직접 만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그 전통의 지혜가 현재 우리 삶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게 하는 사유와 성찰의 시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전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는 동양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가들을 그 핵심 개념을 중시으로 살펴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 그러나 막상 제대로 아는 게 없기도 한 그런 사상들이기도 하다. 이들 사상들을 재음미, 새롭게 그리고 현대 사회와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사유케 하는 것도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다. 인류의 오래된 역사 가운데서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지혜의 보편성은 일관되게 전해져 왔는데, 이를 박제된 지식, 오래된 서물이요, 구시대의 낡은 사고라고 폄훼하기 보다는 그 속에 담겨진 보편적 진리를 찾아내는 것 또한 동양철학에 접근하는 태도일 것이다.
동양철학의 스승들
이 책은 4부로 나누어 그 1부에서 동양철학의 스승들인 노자, 장자와 석가, 공자를, 그리고 2부는 중국의 유교사상가들로 맹자, 순자, 주희, 왕수인을, 3부는 한국의 유교사상가들로 이황, 조식, 이이, 정제두, 정약용 등을 마지막 4부에서는 한국의 불교사상가들로 원효, 지눌, 휴정까지를 다룬다. 그리고 사상가들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면서 팁으로 어떤 문제를 고민하는 가에 따라 추천하는 철학자의 지혜를 적어두고 있다.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이에게는 장자를 더 볼 것을 권면하고 있다.
우선 1부 동양철학에서는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때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라 여겨진다. 그는 도가 덕을 낳고 덕이 기른다고 했다. 즉, 만물이 있게 하는 것은 ‘도’로 세상의 어머니라는 것이다(22쪽), 또 무위자연 즉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가라고 한다. 인위는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게 함으로써 온갖 병폐를 만들어 낸다고 봤다. 그래서 정치는 생선 굽듯이 하라고 주문한다. 국가 역시 작은 국가를 많은 백성 보다는 적은 백성이 있는 국가를 이상적으로 했다(소국과민), 중요한 개념으로는 상선약수(물과 같은 덕을 지닌 사람)는 최고의 덕이라 했다.
장자사상의 핵심개념을 보자. 우선 제물론은 만물 평등이다. 오리 다리가 짧다고 늘릴 수 없고, 학의 긴다리를 짧게 할 수 없 듯이(42쪽)말이다. 제 나름의 잇점이 있다. 그 다음으로 소요유, 즉 분별과 차별을 없앰으로써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절대 자유의 경지(소요유), 요즘 불평등, 불공정, 장애인문제 등은 분별과 차별에서 온다. 이렇듯 현대 사회문제, 즉 시대의 구분 없이 구분, 분별, 차별은 평등, 공정을 저해한다. 또, 호접지몽(55쪽),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라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 또한 핵심이다.
그 다음으로 석가족의 깨달은 성자라는 뜻의“모니”가 붙어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라 부른다.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나, 산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지혜로서 석가모니 말씀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사성제(네 가지의 원리)의 성스런 진리를 말했다(63쪽).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다. 우리가 아는 손오공의 이야기가 있다.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와 함께 길을 떠나는 서유기는 집착과 고집에서 생기는 집성제, 삼독(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각각 저팔계와 사오정, 손오공이라는 캐릭터로 나타낸 것이다. 그는 또 이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는 연기를 말했다. 즉 조건과 원인에 의한 발생한다는 인연생기의 준말이다.
공자는 논어로 유명하다. 익히 알려져 있다. 핵심개념 첫 번째 ‘인’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여기에는 충서가 있고, 서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다름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을 말한다(86쪽), 공자의 인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먹고 싶으면 남도 먹고 먹고 싶을 것이어서 우선 배려를 하라는 말이며 이것이 곧 실천이다. ‘예’는 진실된 마음을 담는 그릇이요. 정명은 이름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또한 군자란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말함이다.
성선설과 성악설, 성리학과 양명학의 대두
그 다음으로 2부 중국의 사상가들을 보면, 성선설과 성악설이 등장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착하다 그렇지 않다는 논쟁이 그것이다. 성악설은 법가로 이어진다.
우선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선함의 근거로 사단 사덕을 말한다. 측은지심(인), 수오지심(의), 사양지심(예), 시비지심(지), 인의예의 요즘말로 싸가지(싹아지 혹은 싹수가 노랗다로 인성이 좋지 못함을 비유할 때)싸가지 없는XX 라는 욕설이 바로 이 인의예지가 없음을 뜻한다. 또 하나의 핵심개념으로 왕도정치를, 그리고 항산과 항심을 말했다. 즉, 배가 불러야 예가 나온다고 할까, 먼저생계를, 그리고 도리를 물으라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핵심개념은 화성기위 즉 이기적인 인간, 교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예’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는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덕을 말한다. 그리고 공자, 맹자와 달리 하늘은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자연의 하늘이라는 천인분이를 주장했다.
성리학을 주창한 주희(주자)는 우주론(이기론)을 제시 만물은 이와 기로 이뤄졌다고 했다. 성즉리 인간의 본성이 곧 이치이며, 성인이 되는 수양론을 논하였다.
왕수인의 양명학, 양지심학의 핵심개념은 심즉리로 마음에 이치가 있어, 이미 존재하는 꽃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직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만물에이치가 있다는 주자의 생각을 비판함 인간의 마음이 곧 이치라 주장했다. 그리고 앎의 행함의 시작이요. 행함은 앎의 완성인 지행합일을 주장했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양대산맥 이황, 이이 그리고 영남의 양대산맥 조식, 양명학 정제두
조선 중기는 유학의 융성기이기도 하다. 핵심개념은 이황의 이기이원론(이기호발설), 감정이 나오는 곳이 각각 다르다는 주장과 이이의 이기일원론 주장의 사단칠정논쟁은 유명하다. 즉 인간의 감정은 어디서 나오는가를 달리 본 것이다(164쪽). 조식은 이황과 함께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이다. 실천을 중시한 그는 실천이 학문의 근원이요, 내면의 성찰과 사회 정의구현인 경과 의를 주장했다. 그리고 강화학파 정제두와 실학의 정약용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한국 불교철학, 원효, 지눌, 휴정
원효사상의 핵심개념은 일심 즉 마음이 모든 것이 근본이라 했다. 융화인 화쟁론은 더 높은 차원으로 갈등을 통합하는 것이다. 즉, 대립된 명제를 갈등과 투쟁보다는 근원에 따라 화해와 소통의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그 근원에 바로 일심이 자리한다. 지눌은 선종(부처의 마음, 선수양중심)과 교종(부처의 말씀, 경전공부중심)의 통합을 주장 선정(선종)과 지혜(교종)로 수행하라는 정혜쌍수, 돈오점수를 주장했다. 휴정은 자신의 마음이 보물이라 했다.
이렇게 동양철학의 둘러보기 여정을 거쳤다. 동양철학의 핵심개념은 인간이 본성, 마음을 어떻게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했다. 예부터 노장의 자유, 공맹자의 인과 예, 사단, 사덕(인의예지), 성선설과 성악설, 양명학 또한 마음이다. 불교에서도 원효의 일심, 지눌의 마음과 지혜, 휴정의 마음론 등,
오늘날 심신수련의 방법으로 명상이,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 명상이란 여러 가지 뜻과 효과 등이 있겠지만,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와의 대화를 하는 것이다. 즉, 자연스런 상태로 몸과 마음을 되돌리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 책은 명상만큼이나 효과적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고전 속에 담긴 보편적 진리를 오늘에 되살려, 재음미 해보는 것도 훌륭한 마음공부가 될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고 공부가 됐지만, 막상 리뷰로 정리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지은이 박병기 선생께서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셨지만, 따로 공부를 해야할 것들이 적지 않다. 서가에 묻어둔 책들을 책상으로 소환하여 조금씩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 기회에...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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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철학사상사를 이야기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의 시국과 21세기의 장기적인 경제침체의 국면과 맞물려 우리에게 필요한 사상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인류를 향한 만족할만하지 못함과 성공적이지 못한 정책들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사상이 절실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책은 이 "실존의 위기, 즉 오랜 시간 동안 '선진국'을 만들어 놓고 추종하며 살아왔던 삶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다가오는 위기와'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고 있다. 또한 이 고민을 통하여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복할 '실천적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이 지혜를 통하여 "코로나19 사태를 인류 차원에서 겪으면서 이 사태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함께, 단순한 이론적 차원의 인식이 아닌 체험적인 인식이 꼭 필요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몸으로 다가오는 바이러스의 위험과 그 바이러스가 가져온 소외계층 중심의 생존 위기 모두 절박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리의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기실 현재 전세계는 이 시국을 타개해나갈 사상의 부재와 적절한 사상이 절실해졌음을 알고는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에 아직은 해답이 없다. 저자들은 이러한 시기에 그 해답으로 동양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지는 아마도 책의 다양한 사상들이 제시하고 있는 '실천'이 답이 아닐까 한다. 동양철학들은 정신적 사유와 사고도 중요시하지만 실재적으로 실천을 강조하고 있기에 더욱 적절한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듯 하다. 책은 총 4부로 1부에서 동양철학의 스승들로 노자와 장자, 석가모니 그리고 공자를 들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들과 사상들이다. 2부에선 중국의 유교사상가들로 맹자 순자 그리고 주희와 왕수인을 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맹자의 사상이 가장 시국에 절실하지 않나 싶지만 개인적일 뿐이며 더 나은 사상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자학과 왕명학은 우리의 사고 속에 깊이 뿌리고 잇음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교적 사상이 몸에 밴 우리에게는 사고와 실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상들이다. 3부는 한국의 유교사상가들로 이황과 조식, 이이 그리고 정제두, 정약용이 거론되고 있다. 모두다 마음을 중시했고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의 사상은 우리에겐 절대적인 사고를 조종하고 잇다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종요의 자유로 다양한 종교가 들어와 성행하고 있지만 결국 그 종교의 밑뿌리에는 이들의 사고와 병합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교적 기독교사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4부에서는한국의 불교사상가들로 원효와 지눌 휴정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 역시 마음을 중시하고 있으며 또한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결국 '실천'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천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쉽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다시 말해 '실천'은 몹시도 여려운 일이기에 이렇게라도 강조하며 실천하자 말하는 게 아닐까? 기독교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며 결국 사랑을 실천하라는게 가장 중요한 율계가 아니가. 하지만 기독교인조차도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린아이들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사고로 높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선과 악의 논리가 정연하게 모든 일에 실천을 강조한다면 세상은 대부분의 불의와 모순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를 위해 함께 하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앞에서 제시한 동양 사상들은 깨닫고 실천하라 말한다. 서구에서도 요즘은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은 달라지는듯하다. 그리고 앞서 열거한 사상가들을 필요한 학문으로서 그들을 대하기도하고 연구하기도한다. 점차 동양사상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알기를 바라고 있다.
수년 전, 어떤 명망있는 인류학자가 유럽인들의 철학적 사고와 그들의 실천적 삶을 추앙하며 우리 대학생들의 현실을 폄하하던 그런 지식인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문화사대주의 같은 그러한 시선으로 그동안, 그 오랜세월을 우리 학생들을 가르쳤다는게 내심 분통이 터졌다. 그리고 그에게 변화되어져가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심하게 언쟁을 하고 인연을 끊은 적이 있다. 요즘 말하는 '국뽕'에 차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그리 생각한다. 이 어려운 시기를 전인류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다들 애를 쓰고 있다. 동양적 사상의 우수성이나 말하자는 것이 아니며 필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책은 그러한 면을 잘 보여주려 하고 있고, 나아가 그것들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실천하기를 바라고 있다.
서평을 쓰려다 독후감을 쓰고 말았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질문인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다. 물론 각자의 해답은 각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고 방향의 제시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다. 그 길이 올바로 나아가기를 돕기 위해서라도 그 길을 동양철학에서 찾을 수 있기를 저자들과 함께 바래본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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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을 알기전 동양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 물음에 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전체내용을 보시려면 ISO 국제인증전문기관 : 네이버 카페 사이트를 방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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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후반기를 지나며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는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격상한다는 발표를 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예전의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하지만, 당당히 선진국으로 편입됐다는 전향적이고 고무적인 국제적 이슈앞에 여러가지 측면에서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가 없음은 무엇때문인가. 이는 저자의 언급처럼 개선됐지만 후진적인 정치권, 정치적 소수와 재벌에 집중된 정치사회구조, 급격한 사회발전속에 소외된 일부 사회 비적응 정신자세, 어쩔수 없는 여전한 강대국적 국제 소중화의식의 부조리 등 엄연한 우리의 자화상과 마주해야하는 지속적인 사실앞에 노출돼 있는듯 하다. 이에 우린 좀 더 내실을 기하고 안밖으로 정치 사회와 제도,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다듬을 정신을 성찰할 깊이있는 자기점검의 필요가 있어야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사족이지만 사단칠정은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현실을 돌아볼 좋은 예일수도 있다. 사단같은 경우엔 인류앞에 영원한 핵심윤리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핵심가치다. 문제는 지금 전 세계는 우주로 우주로 나가고 있는 때 정신과 윤리적인 미세한 온도차이를 서로 틀리고 맏다는 논쟁이 당시 조선 전 후 논쟁이 현실적인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논쟁의 주요 이슈는 정리하면 사단과 칠정은 어떤 관계인가? 사단과 칠정이 발생하는 곳은 같은 곳일까 아니면 각각 다른가? 이와 기는 사단 칠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있는가? 등, 끝도 없는 이해와 세력 논쟁이 시작됐다.
#아다시피 정신과 윤리의식 등의 형이상의 논쟁은 산술적 계산으로 옮고 그름으로 맞다 그르다를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런 다툼은 말꼬리 잡는 주도권 다툼과 자존심 세력 싸움으로 밖에 번지지 않을 확률높은 견해차이일 뿐이다. 견해차는 어느정도 맞음을 인정하면 그뿐이다. 지금도 마찮가지지만 무자르듯 명확할 수 없는 윤리와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당시의 조선은 맨날 니가 옮으니 내가 틀리니하며 날밤을 셌다. 서민들은 죽어나가는데...
#아련히 예전 시험볼때도 나왔던 추억으로 교과서에 배운 기억들을 떠올리라고 한번 정리해본다. 사단칠정 논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정지운의 천명지혜다. 아다시피 천명지혜는 (단지) 가정에서 자신의 동생을 가르치기위해 성리학의 기본내용을 그림과 설명을 붙여 (이해하기 쉽게 사적으로) 만든것인데 세간에 유포되게 된 것이다. 이를 보게된 퇴계는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고 정지운을 만나 오류에대한 토론을 거쳐 수정본을 발간하게 된다. 그 이후 수정본을 보게 된 기대승이 이 수정본에대한 내용을 비판한 글을 보내오면서 그 유명한 (윤리도덕 논쟁인) 사단칠정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다시피 사람의 감정은 도덕적 감정인 사단과 일반적 감정인 칠정으로 구분된다. 기쁨/희[喜], 분노/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싫어함/오[惡], 욕구&욕심/욕[欲]이, 선할수도 악할수도 있는 칠정이다. *출판사의 제공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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