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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한국과 스페인이 수교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2019년 10월, 양국 정부는 2020년과 2021년을 한·스페인 상호 방문의 해로 지정하였고, 관광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투우, 토마토 축제, 라리가, 돈키호테, 가우디 등과 함께 정열과 낭만의 나라로 우리에게 익숙한 스페인은 현재 세계 최고의 관광국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스페인을 찾아오듯, 과거에도 이슬람, 카톨릭, 유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이러한 혼종성과 다양성은 오늘날 스페인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혼종성과 다양성은 건축, 영화, 미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이교도와 함께 살았던 스페인에는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는 민주화 시대 스페인의 지향점이 나타난다. 궁정화가 고야의 그림은 과거 융성과 몰락의 사이를 넘나들던 스페인 사회의 모순을 잘 반영하고 있다. 토마토 축제, 부뇰 축제 등은 예로부터 정신적 유산을 축적해왔고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해와 특색있는 문화를 꽃피웠다.
『스페인의 문화 순례』는 위와 같이 스페인이 이루어낸 문화적 풍성함에 대해서도 잘 안내하고 있지만, 스페인의 다양성과 혼종성이 단순히 그 가짓수나 섞임이 많다는 것 이상을 의미함을 보여준다. 어떠한 것을 바라볼 때 단면적인 이미지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겨난 원인과 이로 인한 결과를 탐색하게 하고 그것이 시대와 어떻게 상응하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일례로, 스페인의 17개 자치주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 문화적 풍부함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동시에 이는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레콩키스타를 기점으로 근대 국가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였으나, 이때 이룩한 카스티야와 아라곤 간의 불완전한 통합은 지역 갈등의 시작점이 되었다. 자치권(fuero), 민족적 정체성 등 여러 가지가 얽혀 바르셀로나, 바스크 등의 지역에서 지역 민족주의 운동이 꾸준히 존재해왔다. 최근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곪은 감정이 분출된 하나의 사례이다. 스페인의 축구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경기인 ‘엘 클라시코(El Clasico)’ 역시 스페인의 중앙정부와 지역 자치구 간의 대립을 담아내고 있다.
『스페인의 문화 순례』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단편적인 이미지에 가려진 흥미로운 진실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황금 세기에 스페인은 세계 제국으로서의 부와 영광을 누렸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무리한 제국정책, 전쟁, 역병 등으로 아메리카에서의 수입은 스페인의 발전과 영광으로 원활하게 연결되지 못했다. 스페인의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는 가톨릭 역시, 레콩키스타라는 위대한 업적을 가능하게 했지만 밀려오는 근대적 변화를 저지하려는 보수파를 지탱하는 하나의 구심력이기도 했다.
빛을 받은 물건에는 그림자가 진다. 그림자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그림자를 떼어놓고 물건을 생각할 수 없다. 『스페인의 문화 순례』는 우리가 그림자까지 보게 한다. 쉽게 보이지 않지만,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까지 속속들이 알려준다. 『스페인의 문화 순례』는 스페인의 문화와 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그림자를 책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훌륭하게 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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