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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탈출하려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비례할까?
"고향을 탈출하려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비례할까?" 내용보기
이 사람은 먼 곳에서 고향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하루종일 걸으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통영 곳곳에는 얼마나 많은 비린내 나는 기억이 담겨 있을까. 그곳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가서 정착한 작가의 아픔과 쓰라린 기억의 조각들이 읽기도 전에 가슴이 쓰리다.   반수연의 단편집 <통영>에는 '메모리얼 가든, 혜선의 집, 나이프 박스, 사슴이 숲으로, 통영, 국경의
"고향을 탈출하려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비례할까?" 내용보기

이 사람은 먼 곳에서 고향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하루종일 걸으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통영 곳곳에는 얼마나 많은 비린내 나는 기억이 담겨 있을까. 그곳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가서 정착한 작가의 아픔과 쓰라린 기억의 조각들이 읽기도 전에 가슴이 쓰리다.
 
반수연의 단편집 <통영>에는 '메모리얼 가든, 혜선의 집, 나이프 박스, 사슴이 숲으로, 통영, 국경의 숲, 자이브를 추는 밤' 총 7편이 실려 있다. 이상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슬픔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명치 끝이 아파와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이들은 왜 떠났을까. 왜 떠나야만 했을까. 이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의문이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런 만큼 반감(?)이 든다. '그래서 당신의 삶이 더 나아졌는가?'를 묻고 싶다. 순전히 내 기준이다. 나로서는 여행 외 일정 기간 외국에서 머문 적은 있으나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들도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돌아갈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가? 그러나 태어난 곳이라는 이유로 꼭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여간 심란한 마음이다.
 
밴쿠버는 캐나다의 남서부,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고 두 번이나 가 본 곳이라 등장인물들의 공간 이동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와 상상하기가 수월하였다. 특히 <국경의 숲>은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그 배경과 함께 더욱 스산하고 암담한 느낌이 들었다. 또 장례 코디네이터 겸 묘지 세일즈맨이 보여주는 죽어가는 노인들의 이야기 <메모리얼 가든>도 우울하고, 자식들 다 키워 멀리 보내 놓고 뒤늦게 아픈 몸이 되어 집안에서 시간을 죽여가는 <혜선의 집>도 허무하고, 요리사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끝내 미래가 안 보이는 길을 접고 원하던 작가의 길을 가겠다며 몸에 지니고 다니던 나이프 박스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나이프 박스>와 친구의 죽은 남편 집을 정리해 주는 동안 고인의 흔적을 보면서 점차 독립적인 삶의 의지가 살아나 숙원하던 그림을 그리겠다며 남편이 요구한 이혼에 허락 도장을 찍어 한국으로 보내는 <사슴이 숲으로>가 그나마 밝은 빛을 보여 준다. 
 
여섯 번째로 나오는 <통영>은 너무 아프고 슬퍼서 오래도록 뒤척이게 하였다. 이민 가서 십수년 만에 집을 마련하고 온전한 직장에 들어갔을 때 고향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국의 거대한 신축 공항에 도착하여 통영까지 30만 원을 주고 택시로 영안실에 도착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과거를 주렁주렁 불러와 현재와 합쳐진다. 서자로 태어나서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바라본 엄마의 남루하고 굴욕적인 삶, 그리고 성장기에 겪은 한 서린 회고와 함께 그가 움직이는 동선이 생생히 작품 속에 그려진다. 바다가 보이는 병원, 강구안, 해안도로, 해저터널, 미륵산, 새터시장, 여객선 터미널, 중앙시장, 언덕 위 좁은 미로의 골목길… 낯익은 이름들이다. 그는 아버지라는 이름에 대하여 '나에게 아버지는 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자리에 누워 며칠이고 끙끙 앓는 어머니의 신열과도 같은 존재였다'라고 표현하였다. 단지 엄마에게만 신열과도 같은 인간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인 존재가 아버지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떻게든 아들을 아버지의 호적에 올리게 하려고 전처로부터 무한 냉대와 폭력을 견디지만 아버지는 철저히 무책임하고 무심하였다. '나'는 그저 말 없는 아이로 변하여 끝내 고향을 탈출하여 타국으로 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어머니의 고달팠던 시신 앞에서 오열하지만 그러나 이제부터는 진짜로 고향이라는 이름 앞에서 더 이상 눈물짓지는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을 것 같다. 박경리 선생도 한 많은 젊은 시절에 고향 통영을 떠나 무려 40여 년만에 돌아왔다고 하였다. 하루만에 다 돌아볼 수 있는 조그만한 통영에서 소문이란 것은 금세 퍼지고 입에 씹혀서 도저히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없게 한다는 것은 박경리의 작품들 속에서도 숱하게 등장한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문체가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이 안팎으로 건강하고 밝은, 안정된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린 장편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반수연이라는 이름을 수첩에 저장해 둔다.

m****j 2021.08.0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