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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밤 미러볼 켜네, 서윤후

서로가 서로에게 난간이 되어주던
이 벼랑이 참 좋았습니다.
#시인의말
시집을 살 때 시인의 말을 보고 살 때가 많다. 물론 제목도 중요하고.시인을 잘 모를 경우에는 제목과 시인의 말, 시 몇 편을 보고 산다. 어떤 시집은 시인의 말만으로도 마음에 드는 시집이 되기도 한다. 시인의 말이 또 한 편의 시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은 시인의 말이 특히 좋았다.
삶이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둡고 슬프고 아픈 것도 삶이다. 늘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고 어둠 속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도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 어둠은 어둠에게만 친절한 법(p.21 신빙과 결속)이니까 당신이 아프고 우울할 때 내가 난간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다가도 추워죽겠네, 라며 옷을 껴입고 갑작스레 난폭운전을 하는 상대에게 욕을 날린다.(물론 마음속으로만)
목 조르고 싶은 마음 따위가
계속 살고 싶어 안달이 난 게 의아하다
그것이 난간을 계속 걷게 하고
나의 곡예가 누군가의 유머로 둔갑하는 게
식상하고 재미있었다(p.68, 정물원)
사는 건 식상하지만 재미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사는 게 지겹기도 하다. 어둠이 나를 찾아올 때,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나는 나의 어둠과 함께 지낸다. 곧 아침이 오니까.
너는 지금 너의 어둠이 마음에 드니(p.59 상아먹(象牙墨))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어둠이 이제는 마음에 든다. 떼어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좋아할 순 없지만 싫어하지도 않게 된다.
어디에도 기울지 못한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쫓아오는 것은 모두 파편이었으므로
그게 나의 어디를 찌르게 될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눈을 뜨면 처음 만지는 게
당신의 얼굴이었다
105쪽, 피오르드의 연인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고 물드는 게 재난임을 알았다면, 눈빛이 유령처럼 남아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당신이 보인다는 걸 알았다면, 기억나지 않는 꿈속에서 파편으로 날아온 게 당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흠씬 두들겨맞고도 계속해서 포옹을 여는 사람. 아름다운 퇴장을 해야할 때인가.
사랑에 흠씬 두들겨맞고도 계속해서
포옹을 여는 사람에게
(p.113 폐막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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