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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주요 외신들은 이를 부패한 권력에 촛불집회로 맞선 한국 시민들의 승리라고 전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신뢰 회복’이라는 제목의 12월 9일자 사설을 통해서, 한국의 시민들이 일군 탄핵안 가결을 자축하는 모습은 이해할만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 임기가 중단된 것은 사실 그리 축하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사설은 한국인들이 정치적 부패가 경제성장의 불가피한 대가라는 인식을 청산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며, 대통령 탄핵을 대통령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닌 한국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이 조언은 부패한 권력을 몰아냈다는 승리감에 묻혔다. 코로나 팬더믹 사태를 겪은지 곧 4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마주하며, 온 나라가 승리감에 차오르던 때에 뉴욕타임즈로부터 전해진 냉철한 조언을 떠올려보게 된다. 6년 전 우리는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각성한 시민사회에 내성을 갖춘 더욱 혹독해진 자본주의 시스템과 반복되듯 이어진 무능한 정치 시스템에 우리 사회는 오히려 더 깊이 종속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2년 전 우리는 전 세계로부터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로 손꼽혔지만, 그 때의 영광을 지금 곱씹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시민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역시스템을 갖추었다고 찬사를 받은 나라의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 이면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강제된 국가통제 안에서 소외된 가치와 소외당한 이들에게 마음을 두지 못했다. 자부심으로 가득한 시민들을 향해 던져지는 냉철한 목소리에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코로나 팬더믹 상황 안에서 작성한 글들을 모아 엮은 <얼굴 없는 인간>은 팬데믹의 상황을 깊은 차원으로 성찰하지 않는 게으른 우리의 사유를 질타한다. 마치 승리와 찬사에 도취되었던 우리 사회처럼. 특히 아감벤은 ‘인권이 먼저냐, 방역이 먼저냐’는 선택의 문제에서 인권의 가치가 속절없이 양보 당하는 것을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목도한다. 그는 모두가 방역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을 그 옛날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 사회에 도래했을 때와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보며 국가적 통제에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종속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아감벤은 하나의 신앙이 되어버린 의학을 향한 날선 시선을 보이며 의학과 건강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숭배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아감벤은 이전부터 인간의 삶을 ‘zoe’와 ‘bios’로 구분지어 왔는데 이는 각각 ‘생명 그 자체로서의 삶’과 ‘사회적인 주체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여기서 아감벤은 권력을 지닌 세력은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 zoe를 절대적인 차원으로 강조하고 bios를 쉽게 포기해버림으로서, 이를 정치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을 구분 짓고 그렇지 못한 집단을 배제하기 위한 법적인 수단으로 삼아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의학을 숭배하고 건강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세태가 집단적 구분지음과 배제를 부추긴다고 보며,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고 본다. 이처럼 권력과 권력에 종속된 집단은 zoe를 우선시하지 않는 세력에게 이단의 굴레를 씌워버린다. 여기에 더해 아감벤은 주류에 반하는 의견 및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쉽게 음모론으로 치부해버리는 세태를 비판한다. 정부의 방역지침과 그에 따르는 규제를 모든 시민들이 빠짐없이 따르는 모습보다,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틀린 목소리도 존중할 수 있는 태도가 민주적인 가치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감벤은 코로나 팬더믹 상황 속에서는 틀린 목소리는 물론 다른 목소리까지 쉽게 음모론 취급을 받음으로써 사회공동체 내 비판 정신을 무력화하는데 일조하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팬더믹 상황 속에서 아감벤의 주장은 대부분 부정당했으며 그를 음모론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유럽 사회 안에 팽배했다. 하지만 걸음마를 떼자마자 마스크를 써야 했던 아이들의 처지, 어린이 도서관은 폐쇄되었지만 유흥주점은 영업이 가능했던 상황, 집회의 자유가 당연하다는 듯이 뭉개졌던 이유, 변이 바이러스의 종류가 아닌 정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방역시스템 등에 관한 질문들을 다 지난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아감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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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의 『얼굴 없는 인간(L’uomo senza volto)』은 단순한 철학적 텍스트라기보다, 서구 정치철학의 심연을 파고드는 냉정하고도 시적인 진단서이다. 이 책에서 아감벤은 ‘얼굴(face)’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신체 부위로 보지 않는다. 그는 얼굴을 공적 주체로서 인간이 타자와 관계 맺는 윤리적·정치적 장소로 파악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이 얼굴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며, 인간은 점차 익명성과 노출성의 수용소 안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감시 사회나 디지털 얼굴 인식 기술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존재론적·형이상학적 붕괴의 징후로 분석된다. 아감벤에게 ‘얼굴 없는 인간’이란, 더 이상 어떤 진실이나 내면을 드러낼 수 없는 인간이며, 그 얼굴이 더 이상 타자와의 관계에서 책임의 장소가 되지 못한 상태다. 이 책은 『호모 사케르』 연작과 공명하면서도, 더 미세하고 예민한 미학적-존재론적 문제를 다룬다. 특히 그는 중세 신학자들과 단테, 레비나스, 데리다 등의 사유를 가로지르며, 얼굴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사라질 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소외되는가를 묻는다. 아감벤은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오는 것은 권력에 의해 구성된 이미지의 지배, 즉 인간이 스스로의 외양조차 타자의 스크린 위에서 소비되도록 방치되는 상태라고 지적한다. 현대의 얼굴은 더 이상 타인을 향한 열림이 아니라, 체제에 의해 ‘감식’되고 ‘기록’되는 객체가 되었으며,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얼굴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얼굴 없는 인간』은 철학자 아감벤의 전형적인 방식, 즉 신학과 철학, 정치와 미학의 경계에서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분석적 산문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얼굴을 잃어가는 세계에서, 여전히 얼굴을 가진 채 살아남기 위한 사유의 저항을 되새기는 일이며,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가장 취약한 장소 ― 타인의 시선 앞에 놓인 하나의 얼굴 ― 을 다시 떠올리는 행위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얼굴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윤리적 장소이며, 그 얼굴이 지워진 자리에 권력과 소외, 침묵과 탈정치화가 조용히 침투한다는 아감벤의 날카로운 경고를 듣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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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에 양보한 인간의 인권과 자유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 이탈리아의 철학지 아감벤이 말하는 주제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로나가 득세하던 시기에 국가와 시민 사이에 이미 많은 갈등과 충돌이 있어왔다. 상대적으로 동양에서는 정부의 명령에 잘 따른 국만들이 많았고. 아무도 답을 모르는 시급한 상황에서 사유 보다는 행동이 우선해야 했고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다. 하지만 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너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팬데믹에 대한 또 다른 시각에서 쓰여진 슬라보예 지젝의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도 꼭 읽어 봐야 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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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인간 팬데믹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아감벤 지음. 박문정 번역 우리 아이들이 얼굴없는 인간으로 살아갈까 걱정된다 펜데믹시대에 꼭읽어봐야할 책입니다. 다소 어려운내용도 있지만 다른 철학서에 비해 잘읽히는 책입니다 얼굴이 필요없는 세상 사람을 만나야 얼굴을 보이고 눈빛 , 감정 목소리톤등을 느끼고 그속에서 이런생각 저런생각을하면서 살며 사랑하고 다투고 하는것이인생인데.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인생이 어느날 사라진 느낌. 2년전에만 해도 전세계 온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살줄은 그 누가 알았는가 그후 장례식, 결혼식, 사랑 미움등 동물과 다른 사람만의 삶이 무너진느낌 지금 우리는 어디쯤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얼굴없는 인간을 읽고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