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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도서] 사람이 좋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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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가운데 굳건한 신앙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는 때에  신앙생활에 관한 조언과 지침을 주는 책을 추천받게 되었습니다.  ‘뒤통수를 빡 때리는 신앙 서적’이라고 하는 짧은 말로 이 책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사람이 좋아, 사람이』가 어째서 그러한 인상을 주는지,  어째서 신앙인을 깨우는 책인지 참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는 우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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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가운데 굳건한 신앙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는 때에 

신앙생활에 관한 조언과 지침을 주는 책을 추천받게 되었습니다.

 ‘뒤통수를 빡 때리는 신앙 서적’이라고 하는 짧은 말로 이 책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사람이 좋아, 사람이』가 어째서 그러한 인상을 주는지, 

어째서 신앙인을 깨우는 책인지 참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는 우리가 이미 배워 알고 있는 성경이나 교리에 관한 지식 

또한 뒤집어서 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에서는 이렇게 신앙을 새로운 관점으로 정의·정리하며, 

결국 성경과 교리서를 머리와 입으로 줄줄 외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내용을 삶과 생활 속에서 곰곰이 되짚어 보고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을 따라서 그동안 해 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신앙을 고찰하고, 

진정으로 그러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나면 자연스레 신앙인으로서 내가 무얼 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읽는 내내 웃는 얼굴로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말솜씨의 안쪽 깊은 곳에는 ‘땅에서의 하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한 사제가 사목 현장에서 30년 동안 거듭했던 고민과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 흘러가는 구름처럼 저 멀리 있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말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책에서 하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가볍게 넘어가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d*********n 2021.07.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이 좋아, 사람이
"사람이 좋아, 사람이" 내용보기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첫째, 정의를 실천하는 일, 둘째, 은덕에 보답하는 일, 셋째,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공동번역 성서 미카 6,8)   본문 후반부에도 언급되고, 도종환 시인의 추천사에도 언급된 문장이다. 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주님께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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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첫째, 정의를 실천하는 일, 둘째, 은덕에 보답하는 일, 셋째,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공동번역 성서 미카 6,8)

 

본문 후반부에도 언급되고, 도종환 시인의 추천사에도 언급된 문장이다.

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사람이 좋아, 사람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쉽게 지나치게 되거나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짚어준다. 성호경을 긋는 의미와 성체를 영하는 의미에 대한 부분은, ‘아차!’ 싶을 만큼 알면서 자주 잊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혼자 잘하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 문장의 셋째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일이 그렇다. 내가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으로 멈춰 서는 안 된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느님과의 동행이 완성된다. 단식이 단순히 굶는 데 그치면, 그건 단식을 한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참은 것에 불과하다. 단식을 통해 아낀 재화를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어야 단식이 완성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쉽지 않다. 하지만 주눅들 필요는 없다. 어떤 힘으로 이룰 수 있는지, <사람이 좋아, 사람이에서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길을 갈 때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가이드가 알려주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 책을 덮으면 내가 어떤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인생 여정에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 모든 어머니

 

구약의 첫 사람과 신약의 새 사람이 근본에서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진술은 굉장히 중요한 진실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오늘의 아담과 하와인 우리들이 오늘의 예수요 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자신을 아담과 하와의 계보를 잇는 죄의 사람으로 단정하고,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신성한 품위를 내다보지 못한다면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우리라면 예수 그리스도 역시 우리여야 합니다. 아담을 생각하면 우리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한없이 영광스럽습니다. p29

 

미사 중에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 하고 외치는 행위에도 인간을 위로하고 희망을 건네려는 교회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때 무엇을 두고 신앙의 신비라고 하는 걸까요? 우선 빵과 술의 거룩한 변화를 두고 그렇게 부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종착지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 술을 마시고 그 빵을 먹는 자가 썩지 않을 생명을 모시는 거룩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p34

 

 

 

사람이 좋아, 사람이

 

하느님은 사람을 상대로 건곤일척(乾坤一擲), 천하를 건 일생일대의 단판 승부를 벌이면서 사람에게 주사위를 맡기십니다. 그 깊은 뜻을 어림짐작해 봅니다.

생의 유일한 웃음이었던 이사악을 바치기로 하던 날,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인격이 되었습니다. 제물을 사를 장작만 싣고 산으로 올라갔던 아찔한 결단 덕분이었지만, 그전에 하느님께서 자유로운 응답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예 생겨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믿어서 복되신 분”(루카 1,45)이 된 사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또한 하느님께서 쥐어 주신 자유의 권한 덕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 3,20) 하와보다 더 큰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의 선처를 기다리며 그때마다 가슴 졸이는 하느님이 너무 불쌍하십니다. p53

 

신약 성경이 황제 숭배를 위해 만들어진 존칭들을 예수님께 적용했던 까닭은 황제의 다스림은 결코 의롭지 않으며 하느님의 다스림이 의롭다고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국이 자랑하는 태평성대는 거짓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 제국이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지금 벌써 하느님의 나라가 개시되었음을 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은 사람 가운데 어떤 자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뿐임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은 사람이 사람을 시켜 닦은 길이 아니라 하느님이 열어 주신 새로운 길 하나뿐임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p58

 

바오로 사도께서 믿는 이들의 몸을 그리스도의 몸’(1코린 12,27:6,15)이라고 불러 주지 않았던가요. 이 표현은 은유도 비유도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알아들어야 할 직설입니다. 우리 몸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한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동하셨던 하느님이 지금은 당신 아드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서 행동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우리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몹시 당황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경탄은 바로 이 깨달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 삶의 품위를 한껏 드높여 주는 복음이 바로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했던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너희도 나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초대였고, “너희도 나처럼 살 수 있다.”라는 확인이었습니다. 귀한 떡과 음료를 받아 모시는 우리를 통해서 실제로 하느님의 힘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p66

 

 

 

생각의 주인 되기

 

주님의 종이 건네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강함이 아니라 약함 가운데 살아야 하고, 영광이 아니라 고난을 견뎌야 하며, 승리자가 아니라 희생자가 되어야 하리라. 증오의 희생자가 됨으로써 세상의 증오심을 자비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하리라. 분노를 들이마시고 사랑을 내쉼으로써 이 땅에서 폭력이 사라지게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멸시받고 거절당하는 오늘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슬픔에 익숙한 고난의 겨레가 아니던가. 세상의 죄 때문에 피 흘리는 불쌍한 동포여, 우리가 당하는 매질로 세상이 성해지리니 오늘의 시련을 값지게 여기고 거뜬히 이겨 내자! p90

 

삶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부처님은 고, 공자님은 난이라고 대답하셨는데, 예수님은 말없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즐거움에는 맛이 있고, 괴로움에는 값이 있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그 맛을 음미하면 되고, 괴로운 나날에는 그 값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아 내야 합니다. 즐거움은 얼마든지 남과 나눌 수 있습니다만 괴로움은 홀로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십자가의 길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고난을 수락한 자는, 곧 수고受苦하기로 작정한 자는 반드시 고생苦生할 것입니다. 스스로 받아들인 운명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p92

 

어쨌거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해야 할 일이란 조건만 맞으면 누구라도 달려들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를 내놓지 않고서는, 자기를 바치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종이 짊어질 과업입니다. p93

 

사순 시기는 너희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내 어찌 십 리는 못 가 주랴. 하시던 분을 내팽개친 저마다의 비정과 비겁을 부끄러워하는 때입니다. 동시에 사순 시기는 잔뜩 겁먹은 형제 베드로의 어깨를 쓰다듬고 안아 주는 때입니다. 누군들 십자가 앞에서 오금이 저리지 않겠습니까. p116

 

끝난 자리에서 새것이 나온다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는 말씀도 남기셨는데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란 볼품없는 사람들입니다. 흔히 무시당하고 종종 서러운 사람들, 여기저기 상처와 흉터를 달고 사는 이들이 곧장 하느님께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오상뿐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포함해서 세상의 온갖 고통이 다 그리스도의 상처입니다. 상처를 어루만질 때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 모든 찔린 옆구리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동자와 마주하십시오. 봄이 와서 봄. p146

 

우리 마음은 사람 안에 하늘이 열려서 생긴 자리입니다. 몸속에 하늘과 통하는 자리가 열림으로써 신령한 바람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진흙덩어리는 비로소 숨 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살기에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그리워하지만, 자신이 하늘의 주인이요 하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자, 그가 바로 사람입니다.

...

천기지미天氣地味, 코로 마시는 천기와 입으로 모시는 지미가 사람 안에서 하나로 섞일 때 폭발적인 에너지가 만들어지는데 사람은 이 기운을 천지인天地人을 위해 씁니다. 하늘의 뜻을 땅에 펼치고, 땅의 염원을 하늘에 고함으로써 사람은 사람을 이롭게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남의 생명을 먹고 마신 큰 빚을 갚게 됩니다. p148-149

 

좁은 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좁은 문의 진짜 문제는 좁은 것, 험한 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꾸로 가는 길입니다. 종종 부모님과 사회가 가르쳐 준 것과는 반대로 거꾸로 그래서 외롭게 가는 길입니다. 물 흐르는 대로 둥둥 떠내려가도 된다면 사는 게 얼마나 쉬울까요. ‘여보게, 죽은 물고기가 그러는 거지 산 물고기가 어디 그러던다, 힘들어도 사람이 갈 길은 따로 있다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p153

 

즐거움과 기쁨, 이 둘은 엇비슷해 보여도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영성가들은 즐겁게 사는 것과 기쁘게 사는 것을 구분합니다.

어떻게요? 자기를 위하면 즐거운 것이고, 모두를 위하면 기쁜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즐거움을 주고,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은 기쁨을 줍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렇습니다. 즐거움이 오래가면 없던 병이 생겨나고, 기쁨이 오래가면 있던 병도 사라집니다. p155

 

 

먹어라, 나를 먹어라

 

아버지가 주실 가장 귀한 선물은 당신의 생명입니다. 아들이 이어받을 가장 값진 유산은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아들이 숨 쉬도록 해 주는 아버지의 들숨 날숨이 성령입니다. 아들이 아들 되게 하며 아들을 빛내고 아들을 힘차게 해 주는 아버지의 혼불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리하여 성호경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주고받은 선물이 성령이라는 사실과 그래서 아름다운 아버지와 아드님이 계신다는 태곳적 사연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 성호를 긋는 이유는 바로 이 소식을 잊지 않기 위해서지요. p186

 

사람이 하느님을 믿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을 믿으셨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고, 우리가 다가갈 생각을 하기도 전에 먼저 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먹일 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배고프다는 이유만으로 밥을 지어 주시는 분, 그분의 은총이 인간의 모든 것에 앞섭니다. 성체는 선물이지 보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아멘! p197

 

잊지 맙시다. 성체를 모시는 순간 우리는 에덴의 동쪽그 어둔 곳에서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 낼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고, 세상의 허기를 채울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귀하디 귀한 선물들입니다. p203

 

, , 얼을 잘 간수하는 일이 자식의 으뜸가는 도리요 효행의 전부입니다. , , 얼 세 가지가 바르고 굳세야 온전한 인격입니다. 그러려면 다음 세 가지를 익혀야 합니다.

...

체조를 하면 몸이 튼튼합니다. 정조를 하면 맘이 자유롭습니다. 지조를 제대로 하면 외로우ㅝ도 힘차고, 괴로워도 기쁠 수 있습니다. 체조로 몸을 다지고, 정조로 맘을 추스르고, 지조로 뜻을 세우면 일 년 내내 편안하고 평안합니다.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의 마음가짐이 조심操心이라면, 흐트러지고 헝클어진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입니다. 세 가지를 조심하면 살얼음판 걷는 아슬아슬한 처지에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꿋꿋하며 당당합니다. 이런 사람을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p204-205

 

주일 미사의 목표는 삶에 지친 개인이 교회에 와서 즐겁게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도록 하며 좋은 말씀으로 방전된 기력을 보충하고 회복시켜 주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그래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또다시 처절한 생존 투쟁의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회복되고 치유되려는 까닭은 궁극적으로 병든 세상을 돌보기 위함이요, 난파선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웃들을 건져 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마다 은총 보따리를 이고지고 돌아간다 하더라도 병든 세상을 살리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거룩한 빵과 술의 제사라는 것도 자기들만 몰래 먹고 치우는 양반집 헛제삿밥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가 성당에서 성경을 읽고, 성체를 모시고, 성령의 기운을 얻어 예수 성심으로, 성모 성심으로 살아가자는 것은 일신의 안일과 태평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목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p214

 

 

덕은 덕으로 온다

 

이만큼이라도 살고 보니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며, 인생도 내 인생이면서 내 인생이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도 내 돈이면서 내 돈이 아닙니다. 내 돈이니까 아껴야 하고 내 돈이 아니라서 소중히 여겨야 하듯 삶도 내 것이니까 살아야 하고, 내 것이 아니니 죽어야 합니다. 내 것이니 소중하게 아끼다가 내 것이 아니므로 임자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1,21) 하고 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엄숙해서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도리입니다. p230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각각 세 가지를 받습니다. 시간, 공간, 인간입니다. 첫째, 영원한 시의 어느 한 틈을 받습니다. 둘째, 가엾고 무한한 허공가운데에서 어느 한 틈을 받습니다. 그리고 셋째, 먼저 와 있던 사람들그 틈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강생도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틈새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아무도 이 세 선물을 스스로 정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시간, 무한의 공간, 그리고 무수한 인간 가운데 특정 사이가 무작위가 아닌 섭리에 따라 지정되었다면 지금과 여기,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모쪼록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p242

 

오늘 하루를 길게 다 살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을 흘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루, 평범하나 경이로운 말입니다. 하루라는 말, 흔하지만 무섭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오늘을 , 늘이여!”라며 자주 감탄하였습니다. ‘는 감탄사, ‘은 영원이란 뜻입니다. p245

 

박노해 시인이 잘 지적했듯이,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는 힘이 우리 삶에서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속으로 안으로 이 셋을 길러 하루하루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함으로써 주님의 때, 주님의 날,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 봅시다. 다른 것 말고 이 세 가지를 서로 빌어 주며 다 함께 새날을 맞이합시다. p248

 

 
2*****9 2021.07.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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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아, 사람이-보시기 참 좋았다...
"사람이 좋아, 사람이-보시기 참 좋았다..." 내용보기
표지가 너무 이쁘지 않나요? 보시기에 참 좋았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지만 어우러지면서 새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더운 여름에 한 줄기 바람같은 시원함과 여유를 주는 책입니다.적어도 제게는...                                     김인국 신부님은 전례력의 의미를  우
"사람이 좋아, 사람이-보시기 참 좋았다..." 내용보기

표지가 너무 이쁘지 않나요?

보시기에 참 좋았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지만 어우러지면서 새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더운 여름에 한 줄기 바람같은 시원함과 여유를 주는 책입니다.적어도 제게는...

                                   

김인국 신부님은 전례력의 의미를  우리와 가까운 시를 통해서도,그리고 우리 주변의 뉴스속 이야기를 통해서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치면서 아,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할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면 목숨 바쳐 우리의 밑소리에 헌실할 아기, 천직에 매달리다 순직하실 귀한 아기가 오심을 기념합니다.p55

 

죽어서 사는 생명의 신비를 이루기 위해 봄마다 그리스도인은 재를 뒤집어씁니다. 거듭 말하자면 다시 태어나기 위함입니다.p81

 

아버지를 몰라서 놀림을 받다가 아비를 찾아 길을 떠나는 유리왕의 이야기를 통해우리는 아버지를 찾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것이 아님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며 결국 아버지를 만나서 자녀가 되는 과정을 들려주시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쉽게 그러나 가슴을 때리는 명쾌함으로 설명해 주십니다.p160

 

성무일도의 아침기도와 저녁 기도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노래로 시작하고 어머니의 노래로 하루를 마감하는 귀한 기도를 너무 의미 없이 했다는 생각이 앞으로의 저의 모습을 바꾸어 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다 읽어 갈 무렵.가슴이 따듯해졌습니다.

 

성경은 통곡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카인의 절규.

눈물 닦아주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묵시록 21.3-4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저의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길을 가더라도 제 눈에서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가슴 뭉클 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도 그러한 경험을 나눌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글 마칩니다.

“우리는 서평으로도 주님께서 주신 선교사명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d******1 2021.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