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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청년의 죽음이 세상을 경악케 했다. 일명 '마포 오피스텔 감금사건'으로, 가해자는 죽은 청년의 오랜 친구들로 드러났다.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노예 부리듯 착취하고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천인공노할 이 뉴스는 매체에는 호재가 된 모양이다. 헤드라인만 보면 피해자는 '엽기'적으로 '학대'당하며 '영양실조'로 '34kg'의 몸무게인 채 죽었다. 즉, '자극적인 팩트'만 강한 워딩으로 송고해 독자의 이목을 끈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은 가해자들의 가스라이팅과 경찰의 허술한 대응이다. 피해자의 가족은 이미 여러 번 가출 신고를 했고, 피해자 명의로 휴대전화가 3회선이나 개통됐으며, 피해자가 가해자들을 상해 혐의로 고소한 바 있기 때문이다.
어느 매체라고 밝히진 않겠지만, 이 핵심을 제대로 짚어낸 곳도 있다. 부디 다른 매체도 이 사건의 '야마'를 잘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죽은 청년과 유족의 억울함도 덜고, 독자들에게 기레기 소리를 듣지 않고 훌륭한 기사를 쓸 수 있지 않겠나.
최근 출간된 줄리언 바지니의 책 <인생 사용자 사전>을 정독하면 야마를 잘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의 한 매체는 바지니를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회의 수호자"라고 평했단다. 우리나라에는 <진실사회>, <가짜 논리> 등의 책이 알려졌다.
<인생 사용자 사전>은 사전답게 목차가 색인(index)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정독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을 수 있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 (할당된 기사를 우라까이하며 쳐내느라 바쁜 기자들에게 제격이지 않나?)
먼저 '악(Evil)' 색인이 눈에 띈다. 우리는 마포 오피스텔 감금사건에서 보듯, 사악한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악은 별도의 범주가 아니라 ‘나쁘다’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바지니는 지적한다.
“일부 사이코패스와 사디스트는 보통 사람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거나 남의 고통을 즐긴다. 그런 악은 오늘날 일종의 정신병으로 여겨지고, 그들은 감옥이 아니라 치료 시설에 가둬진다.”
이어 바지니는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사악한 행위는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며, 이들이 평범한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심란한 결론을 내린다. 이를테면 누구든 잘못된 환경에서 악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오싹한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바지니의 주장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아이히만의 문제는 그와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들은 변태나 사디스트가 아니었으며,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무서울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아렌트의 말대로라면 어떻게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사람이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충격적이게도 아이히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건 순전히 ‘생각 없음’ 때문이었다. 그는 그냥 생각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어떻게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른단 말인가? 바지니는 이렇게 분석한다.
“그가 좀비처럼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전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의 진짜 의미와 파장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포 오피스텔 감금사건의 가해자들이 아렌트와 바지니가 분석한 대로 평범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친구를 괴롭히고 죽인 죗값을 달게 받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조회 수에 혈안이 돼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매체도 자성하길 바란다.
바지니는 악의 색인을 이렇게 끝맺는다.
“악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악을 타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악을 행할 능력이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타인의 사악한 행위에 동참하거나, 타인의 악행이 나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생 사용자 사전>은 줄리언 바지니가 실존주의 심리치료사이자 철학 상담사인 안토니아 마카로와 함께 썼다. 요즘 내가 강퍅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상담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들이 한국어판 서문에 밝힌 것처럼 ‘하나의 좋은 삶을 위한 뚜렷한 청사진이 아니라 일종의 도구 상자’라서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 읽기 좋은 철학적 원천의 모음집이다. 인생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각자에게 맞는 키워드를 먼저 읽고 ‘함께 보면 좋은 주제’나 ‘읽을 거리’로 파생해 나가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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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인생이 인간에게 주는 시련은 생각보다 과하다. 하이데거의 절묘한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아무런 사용설명서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 거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선풍기 한 대를 사도 매뉴얼이 따라오는데 말이다. 물론 학교에서 무언가를 잔뜩 배우긴 하지만,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학교 지식으론 풀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지난 부처님오신날 TV에서 보게 된 망측한 뉴스를 한번 보자.
“회개하십시오!”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세요!” 일부 개신교단체 회원들이 봉축법요식이 봉행된 서울 조계사 앞 도로에서 ‘서울예수전도축제’를 진행했다. 이날 전도축제에 참여한 10여 명은 조계사 인근을 돌며 확성기로 찬송가를 부르며 불자들의 참배를 방해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도대체 저 인간들은 어떤 뇌를 갖고 있기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행동 또는 의견은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자료 중 하나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대륙 북쪽의 돌에 새겨진 글이다. 아소카 칙령이라 불리는 이 글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모든 종파는 모든 곳에서 거주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통제와 마음의 순수를 원하므로”이다. 이런 핵심 가치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편협한 행동이 아니다. 진정한 관용을 위해 꼭 필요한 무엇을 고집하는 것이다. 결국 관용이란 것도 관용을 받을 수 있는 어느 정도 수준의 기본은 지켜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사건은 현재의 문제인데, 어떻게 과거의 지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는 공통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이든 코로나로 고통 받고 있는 현대이든,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 왔고 인류에 관한 보편적인 지식에 기대어 각자가 처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시에도 서울예수전도축제 비슷한 수준 이하의 행위를 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저 개신교도들은 분명 집회의 자유를 외쳐댈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눈이 아니라, 철학의 시선에서 그들에게도 집회의 자유는 허용될 수 있는가?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와 철학 상담사 안토니아 마카로가 공저한 <인생 사용자 사전>의 ‘시위(Protest)’를 펼쳐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아무리 곱게 봐도, 남의 잔칫날 깽판을 부리는 건 시민 불복종의 정당성을 단 한 가지도 못 얻는 행위이고, 실은 시위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옳다면 지나가는 시민들이 눈을 찌푸릴게 아니라, 그 시위에 동참하고 격려의 박수를 쳤을 것이다.
내친 김에 그들과 비슷한 보수 단체들의 시위를 떠올려보자.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핵심 개념이자, 핵심 구호인 ‘애국심(Patriotism)’은 어떤가? 같은 책 ‘애국심’ 항목을 들춰보자.
국정농단의 주범이었던 전직 대통령을 석방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리처드 로티의 주장이 과연 먹힐까 싶지만... 그리고 수치심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인생 사용자 사전>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용기를 내어 말을 해볼 수는 있겠다.
‘애국심’ 들먹이지 마시고, 당신들이 국가라고 생각했던 정부가 저지른 행동들에 '수치심' 먼저 느껴보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