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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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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열일곱 살, 열네 살인 소녀들이 미국이라는 넓은 땅을 보기 위해 단 둘이서 여행을 나섰다. 영어를 곧잘 한다고는 하지만 의사소통과는 별개로 너무나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범람한 그 나라에서 스스로를 잘 지켜내며 여행을 한다는 건 참으로 무모하지만 부러울 만큼 멋진 용기였다.     상 p.31 시각표가 맞는다면 이 버스는 오후 4시에 보스턴에 도착한다. 딱히 보스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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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열일곱 살, 열네 살인 소녀들이 미국이라는 넓은 땅을 보기 위해 단 둘이서 여행을 나섰다. 영어를 곧잘 한다고는 하지만 의사소통과는 별개로 너무나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범람한 그 나라에서 스스로를 잘 지켜내며 여행을 한다는 건 참으로 무모하지만 부러울 만큼 멋진 용기였다.

 

 

p.31

시각표가 맞는다면 이 버스는 오후 4시에 보스턴에 도착한다.

딱히 보스턴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가려면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 정해야 하고, 정하지 않고 찾아 나선다 해도 우선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정해야 한다.

... 어디든 언제 시작하든.. 시작점은 있다.

 

p.20

미국 유학은 고등학교를 중퇴해 버린 딸을 위해 부모님이 마련해 준 대안이었지 이츠카 스스로 원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일본에 있고 싶었던 건 아니고, 미국 외에 달리 가고 싶은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요컨대 이츠카에게는 '바람'이라는 것이 없었다. 바라지 않는 것만 잔뜩 있다.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건 몰라도 '싫은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그렇다보니 이츠카가 가장 자주 쓰는 영어 단어가 'NO(노)'다).

 

p.135

만약 레이나가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면 자기 혼자서 여행을 계속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뉴욕행 버스나 열차에 레이나만 태워 보내고, 고모한테 연락해서 마중 나오게 하려는 생각까지 해 두었다. 하지만 ─. 혼자보다는 둘이 단연코 좋다. 맨 처음 여행 계획을 세웠을 때에는 단지 혼자보다 덜 허전하고 속속들이 아는 사이라서 서로 편할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을, 이츠카는 레이나와 둘이서 보고 싶었다.

 

p.190

바깥은 살이 얼어붙을 것처럼 춥고, 내쉬는 입김이 하얗고,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을 만큼 수많은 별이 떠 있었다.

"예쁘다."

레이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넓네, 하늘."

그러자 갑자기 기쁨이 복받쳐 올랐다. 머나먼 장소에 있다는 것이, 불안함이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치 ─ 크!"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츠카짱의 뺨에 뺨을 맞댄다.
 

 

p.25

"루이빌은 켄터키주야."

레이나에게 말하며 도로와 차와 펜스와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주위를 둘러본다. 설령 다를 게 없는 풍경이라 해도, 모르는 장소에 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지나쳐 가는 주일지라도 이츠카는 몸에 새겨 두고 싶었다. 자신들이 확실히 지금 여기에 있다는, 그 실감 비슷한 것을.

 

p.68

파란 겨울 하늘이다. 계단을 내려와 언덕 기슭을 한 바퀴 도는 형태로 걸으면서 레이나는 생각한다. 이곳 하늘의 푸른빛은 뉴욕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뉴욕의 하늘은 좀 더 파란색이 짙고 선명하지만, 이곳은 흰색을 살짝 머금은 듯 부드럽다. 이 도시 사람들의 조금 촌스러운 복장이나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모습(특히 노인), 모음이 강조된 느긋한 발음에 어울리는 색깔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p.108

왜 이렇게 됐지?

의문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들 중에서도 답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의문─왜 이렇게 됐지? 어떻게 하면 좋지? 그 애들은 어쩔 작정인 거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되려나? 이런 꼴을 당하다니, 내가 대체 뭘 어쨌기에?─이 특히나 우루우를 괴롭히는데, 우루우로서는 아내가 어째서 그러한 의문을 갖지 않고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p.334

"… 여행하는 동안 있었던 일들은 영원히 둘만의 비밀로 한다는 약속이 있었잖아. … 그건, 뭐랄까, 쓸데없는 약속이었어. … 그렇잖아. … 예를 들어 이 아침이 얼마나 멋진지, 지금 여기에 없는 누군가에게 나중에 이야기해 봤자, 절대 모를 거란 생각 안 들어? … 다른 일들도 그렇잖아? 케니나 미시즈 키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가다 이따금 눈이 떠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나중에 이야기해 봤자 절대 알지 못해."

 

 

역시, 에쿠니다.. 특유의 필력으로 나를 또 끌어당긴다. 이츠카짱과 레이나짱의 여행길에 얼결에 동승한 나는 계속해서 이들을 관찰했다. 자매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촌지간인(이게 무슨 상관일까..싶지만..^;;) 두 사람은 제법 잘 맞아서 여행 내내 사이가 좋았다. 이렇게 여행했던 게 너무 오래되어서.. 부럽고 막연히 그립기까지했다. 게다가 이들의 여정은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관광지투어 같은 틀에 짜여진 여행이 아닌 한 도시라는 큰 틀 안에서 조금은 각도가 틀어져도 상관이 없는, 그 장소를 느끼고 즐기는 여행.. 고작 열일곱, 열네 살의 아이들이 그런 여행을 했다. 완전 여행자 체질이 아닌가..ㅎ

 

여전히 집은 안 떠났지만 여기도 맑음!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배낭을 매고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이츠카와 레이나의 여행. 소설이니까.., 하는 마음과 소설이어서.., 하는 마음이 읽는 내내 공존했다. 나중에야 어떻든 나는 그녀들과의 여행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래서 나도 이츠카와 레이나의 뺨에 뺨을 대고, "치 ─ 크!"ㅎ

 

 

k******1 2021.07.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