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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역사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기록을 남기고, 기록을 모아서 정리하고, 정리한 기록을 또 다른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가 보아온 역사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남자거나, 혹은 남자에게 유리한,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도 ‘History’, 즉 ‘그’의 이야기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가 남자의 이야기라는 전제는 어디까지나 여성과 아동이 사람이 아니었던, 부계중심사회가 시작되었던 고대부터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정립되기 직전인 근대까지다. 현대 사회, 즉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기록을 남기고, 향유하는 주체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 모두다.
조선에 살았던 여자들 기록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다. 여자들 스스로 직접 남긴 편지 같은 기록물도 꽤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역사를 향유하는 유학자였던 ‘남자’들이 직접 쓴 기록이었다. 그 기록들은 스스로를 돋보이기 위해, 여자를 매개체로 남긴 기록이 아니었다. 본인이 기록하지 않으면, 살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는 가족을 염려하여, 그녀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남긴 아버지·남동생·아들이 남긴 가족을 향한 마음이었다.
다만 좀 슬픈 사실은 이런 기록들을 읽다보면, 상류층 여성과 그 외 여성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예컨데 영응대군 부인 송씨는 왕실 가족이자 상류층 여성이었다. 물론 상류층이라 할지라도 여성이라는 한계점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씨 부인은 왕실과의 인연을 무기로 재산을 어마무시하게 늘려나갔다. 비슷한 사례로 봉보부인 백씨도 있다. 그녀는 노비였으나 왕실과 연을 맺어 상류층에 편입하게 되었고, 역시나 엄청난 재산과 지위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반대로 왕실여성임에도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된 여성들도 있다. 소현세자빈 강씨라던가, 성종비였던 폐비 윤씨 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을지언정, 그들은 상류사회 일원이었고 그에 따라 역사에 기록되거나 후손들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후손들 기억속에도 없으며, 분명 살아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았던 여성들에 대한 내용이 있다.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미가 측실이라는 이유로 없는 사람이 된 여자들이다. 아예 천민출신인 여성도 있지만, 일단 이 포스팅에선 ‘적서’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적서차별은 조선 신분제 사회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였다. 정실부인이 낳은 자녀는 적자/적녀가 되어 계속해서 정식적인 가족 구성원이되었지만, 측실부인(첩)이 낳은 서자/서녀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었다. 그래도 서자는 신분상승 기회가 왕왕 있었지만, 서녀는 그 조차도 없었다. 간혹 좋은 집안 측실로 들어가, 아들(역시나 서자)을 낳고, 그 아들이 역사를 빛낼 공을 세우면 죽어서나마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측실 출생이어도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서, 신분상승 기회조차 박탈되었던 것이다. 뭐, 여기에 더해 얼자도 있긴 한데 여기까지는 생략!
대표적인 사례가 신사임당의 두 손녀다.
신사임당은 본인부터 학문부터 예능까지 엄청난 재능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자녀들도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았다. 주기론을 주창하고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율곡 이이는 사임당의 학문적 재능을 물려받았고, 사절이라 불리던 옥산 이우는 사임당의 미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조모에 이어, 아비들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딸들 역시 여러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율곡의 딸과 옥산의 딸은 서녀였다. 그들의 어미는 측실이었던 것이다.
▶율곡 이이의 서녀 아무리 아비가 망명 높은 대가에다 힘 꽤나 쓰는 가문이라도, 측실 소생 서녀라면 혼처 자리 역시 측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친이 저명한 집안이었기에, 측실로 들어간 집안도 꽤나 저명한 집안이라는 점이다. 율곡의 서녀는 김장생의 며느리이자, 당대 최고 학자인 김집의 측실이 되었다. 그리고 와병중인 정실부인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했다.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이었던 김집은 조상에게 고하는 축문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칠십 노인이 되면 집안일을 자손에게 물려주곤 하지만 저는 후계자가 없고 또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하기도 어려워서 그저 슬퍼 탄식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집을 서술한 다른 자료에서조차도 “김집은 아들이 없다”라고 말한다. 아비가 율곡이고, 시아비가 김장생이고, 남편이 김집이었고, 아들마저 낳았지만, 그녀는 측실이었다. 측실은 없는 사람과 같았고, 측실이 낳은 아들도 없는 사람이었다.
▶옥산 이우의 서녀 옥산 이우의 서녀는 벽오 이시발의 측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사촌인 율곡의 서녀와는 조금 달랐다. 벽오는 그녀를 사랑하고 아꼈다. 심지어 벽오는 정실 부인이 죽었을 때는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은 반면, 측실인 옥산의 서녀가 죽었을 때는 제문을 남겼다.
“자네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잠 못 드는 날을 보내기를 반년, 결국 자네 부모의 허락을 얻어냈지. 혼인한 후에 자네의 지행을 보니 그 총명하고 명석한 재능과 단정하고 정숙한 자질이 과연 일반적인 규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자네 부모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생략). ”
심지어 벽오를 서술한 다른 자료에도 그녀에 대해 “반소처럼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가 낳고 가르친 아들들은 문, 무과에 급제하고 나라에 공까지 세웠다. 그로 인해 그녀의 아들들은 서자가 아닌, ‘적자’로 신분 상승했다. 이와 함께 그녀는 사후이긴 하나, 벽오 이시발의 정실부인으로써 ‘정경부인’에 제수되었다.
이 둘은 분명 신사임당의 손녀였고, 율곡 이이와 옥산 이우의 서녀였으며,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녀들이 물려받은 재능과 출신은 같았다. 하지만 그녀들을 측실로 맞이한 남편들은 행동은 너무나 달랐다. 김집은 측실과 측실의 자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반면, 이시발은 측실과 그 자녀를 사랑과 존중으로 대했다. 현대인 관점으로 보면 후자가 당연하고, 전자가 이상하게 보이지만, 당대 관점으로는 그 반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신사임당의 두 손녀 이야기는 여러모로 씁쓸한 사례다.
이번에는 다산 정약용 이야기다. 다산은 남겨진 기록만봐도 엄청난 애처가임을 알 수 있다. 다산이 남긴 수많은 저서에 아내 홍혜완에 대한 내용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아내와 수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고,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조차도 오로지 아내의 안위를 챙겼다.
▶다산 정약용의 정실 홍혜완 “우리 이별은 그렇다 치고 너희는 언제 어머니 모시고 고향 집에 돌아갈 것이냐. 되도록 빨리 돌아가도록 하라. 너희 어머니 안색이 위험하니 영양있는 음식으로 보하고 약을 써서 다스리도록 유의하여라.”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 그리하여 두 아들은 효자가 되고 두 며느리는 효부가 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그대로 늙는다고 해도 유감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힘쓰도록 하여라.”
다산과 홍혜완만큼 금슬이 좋은 부부가 조선에 얼마나 있었을까? 심지어 이정도로 남편의 존중을 받는 아내가 얼마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면 조선에선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다산은 조선 제일의 애처가였다. 하지만 다산의 그런 면모는 오로지 정실부인인 홍혜완에게서만 보일 뿐이다. 강진 유배시절 자신을 보필하고 딸 홍임까지 낳은, 홍임 어미에 대한 기록은 단 한줄도 남기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의 측실 홍임어미 그녀는 기나긴 강진 유배시절, 다산의 곁을 지키며 그를 보필하고 딸 홍임을 낳은 여자다. 하지만 홍임어미와 홍임의 존재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다산의 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실부인 홍혜완이 낳았지만 요절한 아이들에 대한 기록은 절절하게 남긴 다산이었지만, 홍임과 홍임어미는 예외였다. 그렇다고 아예 작정하고 홍임어미와 홍임을 숨겼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묵은 가지가 다 썩어가는 즈음에 갑자기 푸른가지가 나와 꽃을 피웠다”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더지만 꽃을 활짝 피웠구나.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의 어린 새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
다산은 시를 쓰며 은근하게 홍임어미와 홍임을 그려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해배된 이후 홍임 어미와 홍임은 다산의 본가로 찾아갔지만, 내쳐졌다. 아마도 다산의 정실부인인 홍혜완에 의해 내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다산이 남긴, 아내에 대한 기록으로 추정하면 말이다.
“내 아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만 속이 좁은 것이 문제다”
홍혜완 입장에서는 유배간 남편을 대신해 가문을 이끌고, 고생을 해왔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첩을 들였으니 좋게 보였을리 만무하다. 따지고 보면 홍혜완이나 홍임어미 두 여자는 그저 다산이라는 남편을 만난 것 뿐인데 말이다. 애초에 문제의 씨앗을 뿌린건 다산이었다. 다만 다산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홍혜완에게 떠넘겼을 뿐이다. 이렇게 내쳐진 홍임 어미와 홍임은 어떻게 살았을까? 남겨진 기록은 없으나 《남당사》라는 시로 추정컨데, 이들 모녀의 삶이, 그 끝이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편에게 사랑과 존중을 받았던 홍혜완, 반면 소용이 없어져 남편에게 버려진 홍임어미. 두 사람의 남편은 다산 정약용, 같은 인물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서자, 서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양반네들 본인들은 첩을 들였지만, 첩은 첩일뿐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첩이 낳은 자녀들도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적자에게는 없는 재능을 가진 서자, 서녀라면 더 심각했다. 간혹 아비, 남편이 누구냐에 따라 위에 나온 벽오처럼 측실과 서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한 사례도 있긴했지만 흔치 않았다. 그만큼 조선에서 서자, 서녀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조선 오백년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왜? 이런 사회문제와 구조를 만든 건 다름아닌, 권력을 지녔던 양반들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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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도미부인이야기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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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조선시대부터 남여에 대한 구별과 차별이 확연히 생기기 시작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이지만 역사 속에서 기록되지 않아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하고 역사 속에 자신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남아 있는 그녀들 52명이 남긴 기록의 역사를 저자는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 자신의 할머니 '하승방 씨' 를 떠올렸다고 한다. 지적 호기심이 강해 유교 경전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좋아하고, 손주들의 책상 위를 기웃거리며 '신학문' 교과서를 탐독했던 할머니. 저자가 곁에서 지켜 본 할머니는 시대적 한계에 부딪쳐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함이 힘들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모습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신분의 구분이 확실했던 조선시대 서녀, 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숨겨도 숨겨지지 않을 만큼 특출난 자들은 숨기려 해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서녀로 태어난 사임당의 두 손녀가 그런 경우였다고 한다. 두 손녀는 신사임당 못지않은 재능과 인품을 가진 여성들이었으나, 서녀들이었기에 혼인도 측실로만 가능하였다. 혼인하여 자식을 낳았으나 그녀들 본인은 물론 자녀들로 인정받지 못하며, 집안 문서에도 기록되지 못한다. 존재했으나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아 존재 받지 못한 사람들. 하지만 아름답고 명석하여 지아비 이시발의 측실로 들어간 사임당의 서녀는 기록으로 남겨진다. 일찍 세상을 뜬 그녀와의 이별을 슬퍼한 이시발이 제문을 쓰며 그녀를 기록한 것이다. 엄격한 신분 사회 속 낮은 신분의 여성들을 양반 사대부들이 어떻게 취급했을지 짐작이 간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악독함의 대명사 였던 장희빈에 대한 기록을 저자가 해석한 부분은 상당히 수긍이 간다. 왕비 생활 3년 6개월, 궁궐 별채에 유폐된 희빈 생활 7년, 이후 3백 년이 넘도록 악녀로 기억되어온 장희빈은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의 기억 속 선하고 자비로운 왕비의 모습인 인현왕후는 선한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 악인이었던, 선인이었던, 그녀들은 모두 사대부들의 권력 싸움에 이용된 여성들이다. 게다가 그들 싸움의 정당성과 합리화를 위해 조작된 기록으로 대대손손 기억되게 된 것이다. 장희빈은 조정의 기록에 의해 우리에게 기억된다. 그 기록이 과연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할지 알 수 없다. 여인네들의 삶은 기록되지도 않았지만,기록된 여인네들의 삶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시대가 여성을 억압했다하더라도 마냥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서글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성장한 여성도 있었다. <호동서낙기> 라는 기행문을 쓴 김금원이 그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의 서녀 출신인 그녀는 남달리 총명해 글공부에 능했다. 공부가 어느 정도 터를 잡기 시작하자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녀는 어차피 여성의 신분으로 골방에 처박혀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신분을 변장하고 팔도를 여행하며 선인들의 말씀을 되새기겠다 다짐한다. 그리곤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모든 여성이 환경 속에 파묻혀 살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환경과 세상을 탓하며 애닮아 하기 보단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모험을 강행하는 인물들도 있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그녀들이 있었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 평생을 살아내고 한 두 글자로 기억되었을 그녀들. 책에 등장하는 52명의 총명한 그녀들은 전면에서 기량을 내보이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여인,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 역사에서 다양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도 온전한 조선의 역사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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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2명의 여자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선] 총 4단락으로 되어 있는데요. 한 마디로 조선의 역사를 알면 책을 더 재미나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과 함께 그 시대에도 여자들의 인생을 누군가 기록으로 남겨놓았다는 사실이 아주 신기합니다. 거기에다가 왕녀나 왕비. 지체가 높으신 부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밑바닥 노비, 천민의 또 어린 여자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이 있었다는 것이 더 신기할 따름입니다. 1단락의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한다"에서는 어찌된 것이 지아비들은 한량처럼 지내면서 가정사나 집안의 살림등에 대해서는 조금한 관심도 없이 지내고, 아녀자들은 그런 남편을 모시고 거기에 시부모님들까지 봉양하면서 가정경제를 이끌었는지 모르겠어요. 진짜로 위대한 어머님들, 지혜로운 아낙네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또한 제가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역사적인 인물들 대거 나오는 통에 도통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워 많이 아쉽고 반성하는 계기였어요. 그러나, 두번째 단락에서는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서"라는 소제목에 알맞게 어찌보면 성녀요. 또 어찌보면 마녀에 가까운 인물들이 나오고 있었는데요. 즉 우리가 역사 드라마 등에서 자주 보았던 여성 인물들이 대거 출연한 것 같았어요. 조선의 뛰어난 의녀 대장금. 임진왜란때 적장을 끌어안고 물에 빠진 논개. 조선시대의 위대한 시인 허난실헌. 지조있는 여성 황진이. 거기다 정순왕후와 소현왕후 또 공녀로 착출되어 중국에 끌려간 소현왕후의 고모 한계란까지. 그리고 폐비윤씨와 장희빈까지. 이렇듯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일생을 재미나게 그러주고 있으니 그 무엇보다도 즐겁게 재미났어요. 또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 라는 단락과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라는 단락에서도 그 소제목과도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성들이 즐비하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지혜롭고 똑똑한 여자는 어디에 있던 어느 시대에 있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다만 시대가 지금과 많이 달라서 어떤 남편과 시댁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녀들의 운명이 달라진 듯 하고, 그 오래전부터 우리는 너무도 남자를 우월해 주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하면서, 억울한 여인들이 어찌 그리도 많았는지 가슴 아플 정도이니 말이에요. 그래도 위대한 여성들을 한번에 대거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행운이지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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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하면 남존여비, 칠거지악 등 여성보다는 남성 위주의 사회체제가 떠오른다. 사극 속 조선의 여성들은 장옷이라고 하는 긴 외투로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바깥출입을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런 조선시대에 자신의 모습을 남긴, 자신의 이름을 남긴 52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소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책 속에는 총 4개의 주제 안에서 조선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4개의 주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첫 번째 주제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우선 한 명도 익숙한 인물들이 없어서 신선했다. 둘째, 누군가(그중 여러 인물들이 이문건이라는 사람에 의해 남아 있다.)의 기록 때문에 남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긴 했지만 노비, 손녀, 아내, 무녀 등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여성들은 사극 등을 통해 한 번 이상은 접해본 익숙한 인물들이다. 허난설헌, 대장금, 논개, 장희빈 등이 바로 두 번째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세 번째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 모순과 맞서거나 희생당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성범죄나 환향녀로 낙인찍힌 인물들, 남편의 죽음 이후에 수절 혹은 열녀를 강요당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예술가였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여성이지만 이름 혹은 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남겼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기록 벽이 있었던 이문건이라는 양반에 의해 후세에 남겨지게 된 그와 관련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중 손녀 이숙희에 대한 기록은 놀라웠다. 보통 손녀보다는 손자를 중시하는 조선시대일 텐데, 맡손녀인 숙희의 육아일기 아닌 육아일기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손녀를 향한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에 비해 현재의 여성들은 많은 제약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는 여성들에게 일종의 프레임을 씌운다. 육아휴직이 있다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남자와 여자 중 직장을 그만두는 비율은 엄마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같은 업무를 하는 여성과 남성의 급여의 차이는 왜 나는 것일까? 세 번째 장에 드러난 여성에 대한 희생과 사회적 모순은 완전히 해결되거나, 이해되지 않았으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의 그 불합리를 계속 짊어지고 가는 것 같다. 우리 딸들이 내 나이가 되어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시대상이라고 놀라워하는 사회가 되면 참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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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여종에서 저 높은 왕비까지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평생을 살아내고 때로는 경이롭게 운명을 넘어선 여자들”
이 책소개를 문구를 보는 순간, 바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펼쳐 읽으며,
내가 쓴 그들이 후대에 어떻게 읽혀지고, 판단되어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내가 과연 죽고 없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들어날 일이 있을까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죽고 난 이후를 어떻게 알것인가 그러나.. 아주 옛날보다는 기술의 발전으로 나는 나의 죽음을 이후를 모르지만 나를 확인시켜줄, 인식시켜줄 방법은 아주 많아진 세상이다.
옛날에도 글로 인해서만 기록이 남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아주 쉽게, 인터넷 덕분에 쉽게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SNS, 블로그 심지어 책 또한 돈만 있으면 너무 쉽게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난 역사란 어디서 읽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과거 또한 나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포장되고, 왜곡될 수 있고, 지금의 나의 이야기도, 기록도 포장되고 왜곡될 수 있다. 것으로 나를 판단하고, 비평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과 말이 결국 그 사람임도 인정한다.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또 하나의 조선』을 읽으면서
그냥 새로운 사실을 알거나, 이 여성은 이랬구나, 아 이랬구나 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계속 느낀 한줄기는 기록에 의해 후대에 이렇게 존재를 들어낼 수 있구나, 그리고 그 기록에 의해서 판단되어 질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가장 큰 줄기였다.
역사 책을 읽을때는 야사가 궁금하거나, 그래 몰랐던 사실을 알고 싶거나, 그런 호기심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려고 한 것이고, 역시 내가 몰랐던 여러 여성들이 조명이 되고, 그들 또한 유명인들과 연계된 인물들 그 유명인들의 기록에서 엿볼 수 있는, 곁들어 있는 것들로 유추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연계된 유명인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치곤 했다.
500년 조선의 역사 속에서 ‘나’로 존재했던 여성이 52명 뿐이였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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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조선'은 남성들의 나라 조선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그 속에서 각자의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조선의 여자들을 소개한다. 굳이 인식하지 않았지만 안 그래도 옛날 문서에서는 남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 접할 수 있었고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창구는 거의 없었다. 옛날 여성들의 하루 일과는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들을 하고 살았을까 궁금하다.
책에서는 남편의 일기장에서 모습을 보인 김돈이, 인생역전 유모 봉보부인 백씨, 자산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부당한 이혼에 맞선 신태영 그리고 드라마나 책으로 익숙한 대장금이나 장희빈 이야기 등이 담겼다.
이렇듯 여자라는 공통점만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계층,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들을 들여다보는 게 쏠쏠한 재미가 있다. 특히 자산관리의 달인 화순 최 씨 이야기를 읽을 땐 작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기 같은 글들이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었고 조선이라는 시대의 한 모습을 본 것 같아 가까워진 기분이다.
책에 나온 조선시대 여자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레 여성인 나의 현제 삶과 반추해보았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따른 여성가족부 존치에 관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발표한 글이 회상되었다. 나의 성별도 여성이지만 지금 사는 세상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다는 눈빛으로 대충 읽어보고 말았는데, 어쩌면 여성가족부의 존치 여부가 내가 지금 성별에 대한 차별을 거의 못 느끼는 수준인 이유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 다시금 장관의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또 하나의 조선이라는 책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살기 어려웠던 여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글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더불어 여성가족부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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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의 사회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 이제서야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심 반가웠습니다.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평생을 살아내고 때로는 경이롭게 운명을 넘어선 여자들
성녀도 마녀도 아닌 '한 인간'의 자취, 그 다채롭고 도도한 힘을 만나다
『또 하나의 조선』
이 책에는 52명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신분상으로는 저 밑바닥 여종에서 저 높은 곳의 왕비에 이르고 지역으로는 저 남녘의 산골촌부에서 한양 마님에 이르며 나이로는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특별한 공통점은 없었습니다. 단, '조선시대'라는 역사 공간을 거쳤다는 사실.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결코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사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이 있었기에 하나의 나라가,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간과했다면 이제라도 바르게 바라보아야 하기에 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조선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이란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만든 삶이 있는가 하면 분노와 억울함을 안고 삶을 마친 사람이 있으며, 운명에 순응하며 버텨낸 삶이 있고 집안을 일궈냈거나 예술 또는 학술로 성취한 삶도 있다. 몇 가지 유형이나 몇 컷의 이미지로 담아내기에는 그녀들의 삶은 너무 역동적이고 오늘의 우리만큼 복잡다단한 내면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이 인과적 순서를 밟아 계획대로 펼쳐지지만은 않듯, 이들의 삶도 우연과 필연의 길항 속에서 어둠과 밝음이 교체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 page 5 ~ 6
친숙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이런 여성도 있었구나! 나는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며 반성하게 되고 좀더 그녀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였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대개 두드러진 업적이나 특별한 사건으로 위인이 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특별한 업적이나 사건과 무관하게 그저 평범하게 살다 간 여성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남편 이문건(1494~1567)이 30여 년간 쓴 일기의 여자주인공으로, 또 남편이 제공한 묘지명으로 그 삶이 알려진 '김돈이'.
젊을 적에는 집안의 제사보다 세상의 화려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 공부는 안 하고 노비들과 희희덕거리며 노는 아들을 잡아다가 몽둥이로 패는 남편에게 아들이 병이 난 것은 모두 당신 때문이라며 악을 쓰기도 했던 그녀. 그런 이들에게 남편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게 되자 누에치고 길쌈하여 돈을 만들고, 부실한 아버지를 둔 1남 2녀의 손주를 폐족의 자손으로 남지 않도록 돌보고 가르친 그녀. 위기의 가족 앞에서 괴력을 발휘한 그녀의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16세기 양반 여성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녀의 삶은 특별하진 않지만 늘 분주했다. 공공의 기억으로 남을 생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삶은 평범했고 치열했고 숭고했다. - page 33
무엇보다 15세기 지식과 권력 여성의 아이콘이었던 '소혜왕후'는 참 멋지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의 교훈'이라는 뜻을 가진 《내훈》은 전적으로 여성을 위한 책일 것으로 생각된다. 서문에서도 "나라와 집안의 흥망치란은 남자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그 부인의 덕성도 중요한 변수가 되기에 여자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내훈》 각 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남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언행·효친·화목·청렴 등의 주제도 남성의 덕목에 가깝게 서술되고 있다. 왕의 어머니이자 왕가의 어른으로서 그녀의 관심은 내조자로서의 여성에 국한될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을 하늘처럼 받드는 순종하는 아내를 요구한 것이나 나라의 재물을 소중히 관리하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요구한 대목들은 아들과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여성이지만 '여성'을 넘어서야 했던 소혜왕후는 시시각각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성을 계도하여 정사를 행한 역사 속 여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자신의 책이 "민간의 우매한 여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그 내용은 주로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서술은 학식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여성 앞에 펼쳐진 세계 자체가 하나의 역할만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 - page 149 ~ 150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아니 지금도 반복되는 이 역사적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으로 얻은 명예의 역설, 박씨 부인>. 1821년 영천 사람 박씨는 겨우 20세의 나이에 과부라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돈은 많으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김조술이라는 자가 집적대며 희롱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아버지가 김조술을 고소하지만 그는 돈으로 아전들을 매수하며 추잡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박씨는 원래 음란한 여자로 이미 여러 남자들과 간통하여 임신도 여러 번 했고 지금도 배가 불러 있다. 예전에 나와도 사통하는 사이라 그날 밤 다시 꾀어내려고 한 것이다. 음란한 여자와 좀 놀려고 한 게 무슨 죄가 되나? _<서영천박열부사>, 《연경재전집》17
이로 김조술은 바로 풀려나고 자신의 억울함을 수령 앞에 나가 외치지만 수령은 오히려 무례한 말로 박씨를 모욕하고 결국 박씨는 억울함을 안고 관아의 빈방을 찾아 들어가 스스로 목을 찔러 삶을 마감합니다.
며느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아버지는 다시 고소장을 내지만 또다시 수령의 작당으로, 뇌물을 받은 자들로 인해 김조술은 풀려나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박씨 집안의 노복이었던 '만석'. 그가 아내에게 통고하기를 "나는 내 주인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내가 어찌 원수 집 여비의 남편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왕이 거둥하는 길에 엎드려 이 원통함을 호소함으로써 박씨가 죽은 지 7개월 만에 재조사와 함께 박씨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습니다.
가련한 처지의 박씨를 희롱하고 능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김조술, '정의란 무엇인가'를 던져 놓고 간 그의 죽음도 전혀 의미가 없진 않았던 셈이다.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2백 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범죄 피해에서는 여전히 자기 파괴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누구의 몫인가. - page 238 ~ 239
이 책을 통해 여러 여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에 이제라도 알려질 수 있었지만 기록 하나 남지 않은 이들이 남길 의미들이 그저 묻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없이 의미 있었습니다.
역사적 삶의 공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가는 해석의 영역이다. 자료가 남아 있어도 주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소한 기록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책은 짧게나마 기록에 남은 자들을 통해, 소외되었던 여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다. - page 6 ~ 7
낯선 인물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익숙한 인물에 대한 재조명, 위인이라 불릴 만한 여성뿐 아니라 사사로운 욕심 가득한 여성의ㅣ 이야기까지 함께 들을 때, 좀 더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을 가진 또 하나의 조선이 그려진다. - page 7
앞선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야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기에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함을 다짐하며 책을 덮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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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상평과 느낀점 조선의 52명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배또롱 아래 선그믓>과 비슷한 결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 책과 여자의 차별, 남존여비에 관한 내용은 비슷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오늘날처럼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 종이지만 자신의 주장을 꿋꿋이 펼치는 여자들, 자신의 억울함을 끝까지 말하는 여자들도 그 시대에 살고 있었다.
황진이, 장희빈 등 우리가 역사 속에서 흔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다른 면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역사 드라마에서 본 내용 간택이나 환향녀 등 그냥 역사 속에 한 이야기라고 치부했던 내용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왕이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노력한 점에서 조선시대가 새롭게 보였다. 이처럼 이 책은 여자가 억울하게 당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여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조선시대의 이야기들 중 흥미로웠던 몇 가지가 있다. 그 시절에 이혼이 가능했던 것과 <태교신기>라는 육아서도 있었고, 여자가 가정을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육아, 의복, 음식 등 지은이의 경험과 독서로 얻은 정보로 이루어진 <규합총서>라는 책이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시대에도 여자들 중 글로서 경험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금처럼 조선 시대의 여자들도 여행을 갈망했고, 여자로서, 아내로서 사는 것이 힘듦을 글쓰기로 해소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에 ‘지금의 여자들의 삶이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건 기록의 힘인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도 기록으로 많이 남길 바란다.
2. 마음에 남는 글귀 59쪽 주인도 노예도 인간 근원의 고통과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형제와 자식의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 문건이 춘비의 고통에 실시간 반응한 것은 인간 의 동일성에 대한 무의식적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119쪽 한편 난설헌의 시를 읽다보면 당시 남자들이 말하는 여자와는 다른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시에는 며느리·아내·어머니 등의 역할로 호명될 뿐이었던 여자들이 마음의 주체, 자유를 추구하는 주체로 나온다.
140쪽 임금 자리를 노리던 수양대군은 아직 혼인의 뜻이 없었던 어린 조카 단종 (1441~1457, 재위 1452-1455)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처녀 간택에 나선다. 이 행사는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힌 임금의 눈을 피해 창덕궁 뜰에서 열렸는데 오늘날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였다. 중앙 무대 창덕궁에 선 처녀들은 서울을 비롯 경상·전라 충전 등에서 대선을 거친 자들이었다. 각계의 유명인사로 꾸려진 미인 선발 심사단처럼 왕비 간택에서도 효령대군을 비롯한 종실 어른과 그 배우자, 세종과 문종의 후궁들, 시집간 공주들, 그리고 재상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명단만 해도 20인이 넘었다.
211쪽 국왕 정조가 김은애의 행위에 주목한 것은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만연했던 시대에 용기와 기백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코자 했다는 데 있다. 김은애의 시대인 18세기는 성폭력은 물론 추문으로도 자결을 선택하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정조도 그런 사건들을 자주 접하고 있었다.
233쪽 상전에게 젖을 빼앗기고 매질을 당하는 비천한 여비의 신세지만 돌금 역시 때론 즐기고 때론 분노하는, 감정과 욕망의 주인이었다.
303쪽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총명의 무딘 글만 못하다”라는 옛말에 힘입어 나중을 생각하여 적어두었다고 한다. 틈틈이 읽고 정보와 생각을 정리해놓은 것인데, 그것이 저술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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