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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프랑스 국영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서 앙투안 콩파뇽이 진행한 <몽테뉴와 함께 하는 여름>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와 함께 하는 여름’은 프루스트, 보들레르, 파스칼, 위고, 마키아벨리, 호메로스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몽테뉴와 함께 하는 여름>은 우리나라에 <인생의 맛; http://blog.yes24.com/document/8096138>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프루스트와 함께 하는 여름; http://blog.yes24.com/document/9860550>도 읽었는데 역시 간략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몽테뉴와 프루스트에 관한 연작에서 받은 좋은 느낌이 <빅토르 위고와 함께 하는 여름>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외국 작가의 작품은 읽어볼 기회가 많지만 그 작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는 쉽게 접할 기회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소설의 경우는 작가의 삶이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알수록 작품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와 함께 하는 여름’ 연작이 그런 점에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빅토르 위고와 함께 하는 여름>은 로바 엘 마키와 기욤 갈리엔이 맡아 진행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와 함께 하는 여름>은 모두 43꼭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숭고한 아이’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초등학생 시절에 공책에 ‘나는 사토브리앙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거야’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사토브리앙 자작 프랑수아르네((Francois-Rene, vicomte de Chateaubriand)는 작가이자 정치가입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 가운데 한명으로 프랑스 문단에 위대한 작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고는 일찍 문재(文才)를 드러내 샤토브리앙의 눈에 띄었고, 그로부터 ‘숭고한 아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혁명’에서는 위고의 인생철학의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설명합니다. 젊어서는 왕정주의자였던 위고는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공화주의 이념에 동조하기 시작하여 제2제정 무렵에는 반체제인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말년에는 파리코뮌 가담자들을 옹호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우파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좌파로 변신한 것입니다. 이를 변덕이라거나 기회주의자로 폄훼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변하는 사회에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변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위고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공적 행위에 관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했다(17쪽)”
위고는 젊은 시절부터 밑바닥 생활을 하는 민중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작품에 녹여 민중의 고통에 관심을 표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입법의회의 우파진영의 의원으로 선출되었을 때의 연설입니다. “나병이 인간 신체의 질병이듯 가난은 사회 몸체의 질병입니다. 나병이 사라졌듯이 가난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입법자과 통치자들은 끊임없이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서 가능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34쪽)” 그의 연설은 우파 진영의 야유와 좌파진영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가난은 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금전을 주는 것보다 금전을 벌어 삶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이 해온 짓은 많은 사람들을 시혜의 노예로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이런 무거운 주제 이외에도 위고의 사랑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대가 누구든,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는 이라면 그대에게 내 작품을 헌정한다.’라고 했던 위고의 말을 새겨보는 기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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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레 미제라블』은 장 발장으로 더 익숙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배우고 빵을 훔친 장 발장 외에 팡틴과 코제트의 이야기 등 더 깊은 서사가 있었다는 걸. 그나마 근래에 영화 『레 미제라블』을 다시 보게 되면서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쓴 빅토르 위고는 어떤 인물인지 이 책에 자세히 나온다.
19세기 소설가이자 그 이전에 시인으로 알려졌고, 극작품을 쓰기도 했고, 연설문과 정차풍자문을 쓰기도 한 그는 정치가였다. 프랑스 역사와 문학의 역사를 함께 한 증인이었고, 소설과 시 속에 민중들을 위한 그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다.
책 속엔 43개의 소제목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왕당파였다가 공화파로 전향하고, 예지자이자 민중이 되는 빅토르 위고. 개인적으로 본 부인을 두고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기도 하고, 네 명의 자식들을 먼저 보낸 아픔을 가진 아버지였다. 남은 손주 둘에게 애정을 쏟기도 한 그의 이야기는 아이들을 통해 전해진다.
프랑스의 정치적 격변기에 그는 민중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통해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레 미제라블』, 『웃는 남자』, 『파리의 노트르담』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용기를 가진 주인공들이 있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그 자신도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깨어 있는 사상을 가진 이였다. 여성들에 대한 생각과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 흑인에 대한 생각, 교육에 대한 생각 등은 위고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형제도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위고는 어릴 때 처형대와 그것을 둘러싸고 포효하는 군중을 보며 그후 이어진 처형 장면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한다.
『레 미제라블』과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에는 사형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와 유럽의 사법제도에 맞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데, 마지막까지 논쟁의 중심을 범죄가 아니라 범죄의 근원에 두려 했다. 즉, 훔치고 살해하도록 인간을 내모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인데,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고 교육을 통해 인간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조금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 서울·경기권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칼로 찌르고 살해하는 가해자들은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었을까? 교육을 덜 받은걸까? 병을 그렇게 키운 가족의 책임일까? 사회는 어떻게 이들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분명 분노가 그렇게 폭발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의 산 역사와 문학을 대변하는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글을 쓰고 연설하고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좋아했던 담대하게 살았던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캐릭터로 살아난다. 10주년을 맞은 『레 미제라블』이 뮤지컬로 돌아온다. 이 책을 읽고 예매해본다. 살아있는 그들의 역사가 다시금 궁금해졌다.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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