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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위의 인생 - [나와 디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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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위의 인생 <나와 디탄>을 읽고     [디탄의 문턱을 넘으며]     중국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과 북경을 여행하면서 티엔탄(천단:天壇) 을 들렀던 적이 있다. 명나라 때부터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제단(祭壇)이라는 걸 책으로만 접하다가 직접 보고 나서 그 규모와 구경하러 모여든 인파에 거듭 놀랐던 기억이 난다. 준비한 일정에 쫓겨 공원은 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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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위의 인생

<나와 디탄>을 읽고

 

 

[디탄의 문턱을 넘으며]

 

  중국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과 북경을 여행하면서 티엔탄(천단:天壇) 을 들렀던 적이 있다. 명나라 때부터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제단(祭壇)이라는 걸 책으로만 접하다가 직접 보고 나서 그 규모와 구경하러 모여든 인파에 거듭 놀랐던 기억이 난다. 준비한 일정에 쫓겨 공원은 보지도 못한 채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던 아쉬움도 남아 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희미해진 티엔탄에 대한 기억이 최근 <나와 디탄>이라는 책과 함께 다시 깨어났다. 책제목에서 '나'는 책의 저자이자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스테셩(사철생:史鐵生)이다. '디탄(지단:地壇)'은 북경 시내를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의 티엔탄(천단), 동쪽의 르탄(일단:日壇), 서쪽의 위에탄(월단:月壇)과 함께 공원화된 제단들 중 하나다.
  공원에 가보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휴식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저자는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날마다 디탄공원을 찾았다고 술회한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디탄>에 기록되어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기 <나와 디탄> #3 : 현 위의 인생

 

[디탄을 거닐며]

 

영도(零度)에서 신(神)을 만나다

  스테셩은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 시절에 산촌 벽지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다가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처음 병원을 찾을 때만 하여도 곧 회복하여 두 발로 걸을 수 있을거라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스물한 살이 지났고, 그는 죽지 않았고,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신이 숨겨놓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며 희망을 보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을 지켜달라고 신을 향한 기도를 올리면서도 실의에 빠져 살던 어느 날, 한 신을 알게 되었다. 그 신의 이름을 듣고 나서 절망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았던 저자의 작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정신(精神)이다. 과학의 미망에 빠졌을 때, 삶이 혼돈에 빠졌을 때, 사람이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곳은 자신의 정신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모두 다 자신의 정신이 그려내고 이끄는 것이다.

(76쪽, 「스물한 살, 그해」중에서)

 

 

조금 더 들여다보기 <나와 디탄> #1 : 동화(童話)

 

휠체어에 오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전각과 오를 수 없는 제단 외에, 나는 디탄의 모든 나무 아래를 지나갔고, 거의 모든 잔디밭에 내 휠체어 바퀴자국을 남겼다. 어느 계절이든, 어떤 날씨든, 어느 시간이든 나는 그곳에 있었다. 가자마자 바로 돌아온 날도 있었고, 공원의 모든 곳이 달빛으로 빛날 때까지 머문 날도 있었다.

(11쪽, 「나와 디탄」중에서)

 

  디탄은 저자가 어려서부터 살던 집 근처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500년 전부터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발로 걷고 뛰던 어린 시절을 넘어 이제는 휠체어에 올라 찾은 디탄에서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과 마음을 일으켰던 말들을 옮겨본다.

 

"나가서 움직이고, 공원에 가서 책을 보는 건 참 좋은 일이지!"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에 찾아온 시련으로 인해 그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어머니에게 가시를 거두지 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말이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자 마음에 하는 기도였고, 저자에게 하는 부탁과 당부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좋아! 나는 필사적으로 달릴 테니, 너도 필사적으로 써!"

  처음부터 그가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디탄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하다가 불현듯 모두에게 존중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빛나 보이고 조금은 나아보이려고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세간의 평이 나쁘지 않자 자신감이 생긴 그는 공원에서 매일같이 노래하는 청년에게 자신의 경험담이 응원가가 되길 바란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의 얘기를 들은 달리기 선수인 친구가 저자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넌 죽으면 안 돼! 넌 글을 써야 하잖아.

여전히 아주 많은 작품들이 네가 써주길 기다리고 있어."

  그 뒤로 몇 편의 소설을 내고 약간의 명성도 얻게 되지만, 그에게 조금씩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왔고 다시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한참 후에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글을 써왔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를 격려하는 또 다른 친구의 말은 그가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 않도록 일으켜 세웠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이 넓은 공원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려고 이 숱한 길을 얼마나 초조하게 걸었을까? 그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공원 곳곳에는 나의 휠체어 바퀴 자국뿐 아니라, 휠체어가 지나간 자리마다 어머니의 발자취도 함께 남아 있음을.

(21쪽, 「나와 디탄」중에서)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을 여러 편의 글에 담아냈다. 디탄에 남긴 무수한 휠체어 바퀴 자국에는 자식을 걱정했던 어머니의 한결같은 사랑이 겹쳐져 있다는 저자의 표현에 가슴 한 편이 저려 왔다.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가 그에게 꽃구경을 가자고 말할때면, 두 다리가 마비된 후 화를 내며 모진 말로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얘기를 듣게 된 저자는 마침내 어머니와 꽃구경을 가기로 결심했다.

 

"국화 다 보고 나서, 상선식당에 가자. 네가 어릴 때 거기 완두콩 빵을 좋아했잖니? 너 예전에 그곳에 간 거 기억나니? 나무에 달린 꽃을 보고 송충이라고 하며 놀라서 달리고, 밟고."

(88쪽, 「가을날의 그리움」중에서)

 

  순간 말을 멈추고 조용히 밖으로 나간 어머니는 그뒤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어느 가을날, 어머니가 아닌 여동생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북해(北海)공원으로 국화를 보러 갔다. 가을바람에 찬란하게 핀 꽃들을 바라보던 저자에게 또다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해 저자의 가족은 어머니란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서로 침묵했다. 비통함이 조금 약해진 10년의 세월이 흐르고나서야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나섰다. 평범한 사람은 무덤을 가질 수 없는 시대에 눈을 감은 어머니가 묻힌 자리는 이미 묘비를 만드는 작은 공장과 집들이 들어선 이후였다. "이것도 나쁘지 않아요. 저곳을 어머니의 기념관이라 생각해요." 라고 말한 저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의 기억을 꺼내며 그는 죽은 이의 무덤을 크게 만드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어떤 방식이로든 고인을 기리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방식에는 복잡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음을 소중히 대하는 데 필요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음을 간단히 대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236쪽, 「복잡함이 필요한 이유」중에서)

 

  죽음을 기리는 방식에서 한 발 나아가 다른 영역에서도 복잡함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만일 문학이 간단해지면 모든 인생은 줄어들어 '먹고 놀고 마시고 싸고 잤다'라는 짧은 문장으로밖에 남지 않을 것이며, 소설도 역사도 마찬가지다. 복잡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고단한 상황 속에서 엄숙하고 장중한 아름다움을 누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축구가 단지 승부를 내기 위한 경기라면, 구태여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뛰어다닐 이유가 무엇에 있겠냐는 비유는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휠체어에 기대어 글을 쓰다

  저자는 말한다. 디탄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실 그 고요함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나무와 새, 벌레, 바람, 빗방울 등 사계절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게 들려오는 디탄의 고요함은 소리 없는 고요함이 아니며, 세상과 떨어져 담을 쌓는 것 역시 아니라고 말이다. 그 고요함은 그를 치유하고 그로 하여금 자신과 주위를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종이를 펼치고 무엇이든 무조건 쓰게 만드는 힘을 가져다 준 것이다.

 

어떤 길은 휠체어에 앉아서 걷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였다. 글쓰는 것이 정말 방법이 되었다. 그것은 막다른 길 뒤에 나타난 새로운 길이었다.

(243쪽, 「디탄을 그리워하다」)

 

  저자는 글쓰기에 관한 책 한 권을 넌지시 권한다. 바로 프랑스의 작가 롤랑 바르트가 쓴 <글쓰기의 영도(零度)>라는 책이다. 책제목 정도만 알고 있던 터라 그의 소개를 통해 일독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글쓰기의 영도는 바로 '삶의 시작점'이며, 글쓰기는 결국에는 찾아가는 과정이고, 영혼의 가장 처음을 바라보는 행위라고 저자는 해석한. 다시 말해 한 생명의 탄생은 세상에 한 번의 의미를 요구하는 것과 같고, 그 물음은 자신을 맨 처음으로 다시 데려다 놓는다는 것이다. 글쓰기가 영도(零度)로 영도(領導)한다는 의미로 읽혀졌지만, 두고두고 곱씹어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영도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은 내가 매번 디탄에 가고, 매번 그 고요함에 기대 삶의 시작점으로 돌아와 다시 새롭게 보는 것과 같다. 

(246쪽, 「디탄을 그리워하다」)

 

 

조금 더 들여다보기 <나와 디탄> #2 : 소무목양(蘇武牧羊)

 

[디탄을 나오며]

 

불교에 '법륜상전(法輪常轉)'에서 륜(輪)과 전(轉)은 분명 무한한 길을 가리킨다. 그 무한한 길은 무한한 슬픔과 정이고, 무한한 어리석음과 깨달음이다. 그리고 무한한 생각과 물음과 기도에 기대어 살고, 그 존재의 바퀴가 무한히 도는 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이다.

(266쪽, 「휠체어에 앉아 길을 묻다」중에서)

 

  휠체어에 기대어 글을 쓰던 저자는 어느 시점에 깨닫게 된 듯하다. 자신이 썼고 쓰고 쓸 글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묻고, 아울러 그 길의 길잡이가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계속되는 여정에서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말이다. 무한한 길을 가리키는 '륜(輪)'과 '전(轉)'에 주목해본다. 바퀴는 구르는 속성을 가진다. 바퀴 달린 의자인 휠체어도 굴러 길을 나아간다. 휠체어 위의 인생을 살아냈던 저자가 디탄으로 향했던 이유가 어쩌면 바퀴가 가진 숙명과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누구나 인생의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딱 한 번 가본 그곳을 평생토록 잊지 못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디탄과 같이 개인의 일상 속 깊숙이 자리한 공간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디탄은 세상의 풍파를 막아주는 보금자리이자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영혼의 안식처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길을 걷다보면 돌멩이에서부터 도저히 넘지 못할 것만 같은 커다란 벽까지, 참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있다. 그 길 위에서 넘어지거나 주저앉고 싶어지는 날이 올때면 앞으로 이 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디탄을 거닐던 스테셩이 두 손을 털고 일어나 다시 한 걸음씩 내딛어 보라고 다독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k*****o 2021.06.09. 신고 공감 15 댓글 20
리뷰 총점 종이책
살기 위해 글을 썼던 인생- 나와 디탄
"살기 위해 글을 썼던 인생- 나와 디탄" 내용보기
이 작품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함께 읽었던 ≪내게는 한쪽 다리가 있다≫(주대관, 송방기 공저)가 떠올랐다. 세상에... 한쪽 다리가 있다니,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마음이 내려앉았던 기억이다. 시, 글, 그림에 재능이 있던 대만 어린이 주대관이 소아암으로 겨우 아홉 살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이야기다. 다리 한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도 아직 한쪽
"살기 위해 글을 썼던 인생- 나와 디탄" 내용보기

 이 작품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함께 읽었던 내게는 한쪽 다리가 있다(주대관, 송방기 공저)가 떠올랐다. 세상에... 한쪽 다리가 있다니,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마음이 내려앉았던 기억이다. , , 그림에 재능이 있던 대만 어린이 주대관이 소아암으로 겨우 아홉 살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이야기다. 다리 한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도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며 오히려 부모님을 위로하는 씩씩한 아이였다. 그것이 더 마음 아프게 하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처음 만나는 이 작가 사철생은 20세에 하반신 마비로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던 중국의 국민작가라는 책 소개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창 앞날에 대한 꿈으로 부풀 나이에 닥친 불행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궁금한 마음에 만나게 되었다.

 

 

 책 표지는 따뜻한 동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휠체어를 탄 주인공의 모습은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현대 산문으로 꼽힌다는 나와 디탄을 비롯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후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대에서 7년 동안 가혹한 노동을 하다가 하반신 마비가 되기까지 이야기가 들어있는 스물한 살, 그해등 여러 편의 산문이 들어있다. 다리를 못 쓰게 된 초기에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돌아가신 후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몇 편의 이야기 조각이 맞춰지면서 그의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몇 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나와 디탄

 

 이 책을 다 읽고 밖에 나갔다. 땅을 딛고 걷고 뛰다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화자의 심정을 느껴보려고 했다. 그가 휠체어를 타게 된 날들이 길어지면서 다리의 감각을 떠올리려고 상상하는 부분이 있었다. 발을 땅에 딛는 느낌은 어떨까, 돌을 발로 차는 느낌은 어떨까, 등등... 그가 그랬듯이 땅을 딛고 뛰지 못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삶이란 옛날의 기억을 조금씩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이생에서는 불구로 살 테니까 다음 생애에는 칼 루이스처럼 튼튼한 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두 다리가 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그는 황량한 디탄 공원으로 찾아간다. 몇 년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왜 태어났을까 생각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된다. 한번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깨달음을 얻고 15년 동안 찾아갔던 디탄 공원은 그를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이었다. 거기서 만난 중년 부부, 아픈 어린아이, 노래 부르는 청년, 달리기 하는 친구 등 공원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늘 죽음을 생각하던 그가 비로소 살아보기로 마음먹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약간의 명성도 얻는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그가 죽지 않았던 건 살아갈 용기를 찾도록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덕분이었다고 한다. 따뜻한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픔만 함께 나누다가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 넓은 디탄 공원에서 행여 아들이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 찾아 헤매다가 불안하고 초조하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뒤늦게야 헤아린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지난날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산문이라고 해서 술술 읽히는 가벼운 문장들은 아니다. 한창 꿈과 열정으로 피어오를 시기인 스무 살에 닥친 불행으로 인해 일찍 철이 든 때문이었을까. 철학적인 사색이 담긴 물음은 묵직하게 다가오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는 왜 남의 불행한 모습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는 존재인지 참 아이러니할 때가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챙기고, ’지금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한때는 지나가면 그뿐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에게 디탄 공원은 무엇이었을까. 온통 죽음을 생각하러 갔다가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래서 살았고 15년 동안 찾았던 디탄 공원에 대한 헌사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때 디탄에서 보낸 시간에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디탄에 있었나? 아니면 디탄이 내 안에 있었나? 지금 나는 허공에 그어진 경계선을 본다. 그리움을 안고 그 선을 넘어 들어가면, 넘기만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이 훅하고 들어올 것 같다.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P249)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자신 안에서 강렬한 삶의 의욕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며 욕망을 갖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열정을 다해 살았던 그가 남긴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장 아래에서의 단상

 

 담장에 대한 사색은 어릴 때 놀았던 추억의 골목에 가서 돌아본 이야기. 국수 삶는 솥에 축구공을 떨어뜨린 이야기 등 어린 시절 유치원에 대한 추억과 마음속의 담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진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다가 맛있는 것에 넘어간 어린 화자를 데리고 멀리 돌아온 어머니의 작전을 늦게 눈치챈 어린 화자는 높고 높은 담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성통곡을 한다. 그랬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침마다 잠결에 유치원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장면에서 웃음이 났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미술학원에 학원에 안 가겠다고 엄청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피부과에 가려고 함께 나왔는데. 결국 학원에 가지 않았고... 나한테 혼나고 그 하루는 엉망이 되었다. 아이가 가고 싶지 않다면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걸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학원 하루 빠지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럼 우리 셋이서 맛있는 거 먹으며 재미있게 놀자, 했어도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인생의 어느 한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었다.

 

 

 담장에 대한 추억은 물리적인 모습에서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담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바다, , 사막까지 찾아 떠나지만 우리는 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담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그 속에서 두려움을 쌓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이다.

 

 

 

사실 비밀 자체가 이미 담이다. 뱃가죽과 눈꺼풀도 모두 담이고, 거짓 미소와 거짓 눈물도 담이다. 다만 이런 담은 너무 약하고 피곤한 게 맘에 들지 않아 좀 더 내구성을 더해 보완을 강화하려고 한다. 설령 이런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 수 있다고 해도, 산과 물 모두가 담이고, 하늘과 땅도 담이고, 시간과 공간도 모두 다 담이다. 시간과 공간도 담이고, 운명은 무한한 속박이고, 신의 비밀은 끝없이 이어지는 담이다. 정말로 이 비밀의 담까지 다 없애려 한다면, 어쩌면 오래 꿈꿨던 이상을 실현하게 된 것 같겠지만 기다려보라. 재미를 잃어버린 세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만 자고, 잠꼬대조차 할 말이 없는, 의욕이라고는 사라진 곳이 될지도 모른다.(P103)

 

 

 

 

 여기서 장벽이라는 의미도 된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벽이 있으며 인간관계, 세상일에 벽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 벽이 거침없이 허물어진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고 성취하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화자도 오랫동안 담을 바라보며 죽음을 주거나 아니면 걸을 수 있는 다리를 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어느 날 노인이 부는 피리 소리에 이끌렸다가 장애라는 벽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담과 나눈 대화는 글쓰기로 이어졌고 그를 살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말이다.

 

 

기억과 인상

 

 이 이야기는 유년 시절의 기억부터 둘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등 가족이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의 굴레에서 받은 고통을 그의 기억과 인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알고 싶어도 어머니의 침묵 때문에 명쾌하지 않았다. 때로는 궁금해도 당당하게 큰 소리로 물어볼 수 없는 아픔과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시대적 아픔에 맞물린 어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기구했던 삶을 반추한다. 그리고 그리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초등학교 시절 듣던 종소리, 어린 시절에 자주 찾았던 절 마당, 자주 꿈에 나타나는 어머니 모습,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자귀나무와 해당나무의 추억으로 이어진다. 그 그리움은 아픔과 후회가 뒤범벅된 채 오랫동안 괴롭혔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기억과 추억으로 앞날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을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휠체어에 앉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그럼에도 자신이 자비 속에 있음을 깨닫고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는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의 영도는 삶의 시작점이라고 하였다. 글쓰기는 결국 찾아가는 과정이고, 영혼의 가장 처음을 바라보는 행위라고. 최근 다른 책에서도 인용된 책이라 관심 목록에 올려 두었는데 또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누구나 자신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면서도 종종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에 부딪힐 때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도 선택의 자유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도 한다. 살아가면서 힘듦도 부침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바라지 않는가. 작가 사철생은 20세에 맞이한 시련을 처음에는 견딜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고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아픔도 있었고 후회도 했지만, 그때마다 이겨내며 살아냈다. 그는 이런 나도 살았는데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 듯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힘내라고 얘기해 주는 듯하다.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큰 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인생 앞에선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글을 썼고 그 결과 현 위의 인생이 영화화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진 작가가 되었고, 많은 작품이 교과서에 청소년 필독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많은 독자가 이 작품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7 2021.06.05. 신고 공감 1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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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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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사철생/박지민 율리시즈/2021.5.20.   그날은 마침 내 스물한 살 생일의 다음날이었다. 나는 의학과 운명에 대해서 아직 잘 몰랐고, 척수에 생긴 질환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생산대에서 일하던 나는 21살에 급성 신부전증이 생겨 두 다리가 마비되어 쓸 수 없게 되었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 디탄에 휠체어를 타도 출입하기 시작하여 15년 동안 계속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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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사철생/박지민

율리시즈/2021.5.20.

 

그날은 마침 내 스물한 살 생일의 다음날이었다. 나는 의학과 운명에 대해서 아직 잘 몰랐고, 척수에 생긴 질환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생산대에서 일하던 나는 21살에 급성 신부전증이 생겨 두 다리가 마비되어 쓸 수 없게 되었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 디탄에 휠체어를 타도 출입하기 시작하여 15년 동안 계속 했다. 그 동안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 했고, 마흔아홉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가 모감주나무 아래서 놀며 커나가는 것을 본 기억을 했다. 15년 동안 꾸준히 만난 사람은 이제 노인이 된 부부다. 그리고 당국에 잘못 보여 감옥을 다녀와 울분을 달리기로 달래던 사람, 노래를 부르던 사람 등등을 기억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시절, 그리고 글을 쓰느라 정신없이 산 세월도 상기해본다.

 

어머니가 살던 집에는 어머니가 심은 자귀나무가 꽃이 피었다고 한다. 보라고 권했지만 보기 싫었고, 두 번째는 보려고 했지만 통로가 좁아져서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국화가 만발하던 날 세상을 떠났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을 다시 찾으며, 긴 담장과 연관된 어렸을 때의 기억을 반추한다. 친한 친군와의 일 유치원 가기 싫었던 기억, 축구하던 골목 등을 생각한다. 어느 덧 나이를 먹고 작가가 되어 청년들과도 잘 지낸다. 어느 날 만난 21살의 청년 아버지가 생산대 1세라고 한다. 그리고 부모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아직까지 젊은이와 똑같다고 생각 했는데 벌써 2-3년 후에는 할아버지가 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17-18세에 시작한 생산대 시절의 여러 가지 추억을 떠올렸다. 나는 모든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가장 좋아하며 칼루이스가 나의 우상이다. 그러나 칼루이스가 벤 존슨에게 졌을 때 슬펐다.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칼 루이스 같은 몸을 갖고 태어나고 싶다는 것이 나의 몽상이다.

 

기억과 인상 : 할머니와 함께 성당에 갔던 추억과 유치원, 유치원 선생님에 대한 다니던 추억을 회상했다. 엄마를 따라가 만났던 둘째 외할머니, 항일운동을 하고 국민당원이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버지 형제들과 아버지 고향 쥐저우에 갔다. 아버지 형제들이 함께 살던 집이며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던 도시의 한 블럭 정도가 모두 추억의 고향집이었다. 도시 전체의 거리와 거리 건물과 건물마다 아버지 형제들의 추억이 간직된 곳이었다. 어머니와 결혼식을 치루던 집, 어머니가 살던 동네를 찾았다. 어머니의 옛집을 둘러보았다. 어머니가 책을 읽던 회화나무, 쥐마강변의 버드나무와 풍경도 보았다. 베이징에 있던 사찰에 대한 회상, 초등학교 때의 인민공사로 인해 갑작스런 이사, 이사한 짚 앞의 부서진 사찰에서 즐거운 전쟁놀이, 백림사 절이었던 곳을 개조한 초등학교 교정의 이야기, 문지기와 종을 치던 스님이었던 할아버지, 무신론 시대가 되면서 절의 너머지 부분은 베이징 도서관 서고로 변했다.

 

이달의 사락 k******4 2022.09.13.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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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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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사철생/박지민 율리시즈/2021.5.20. sanbaram   그날은 마침 내 스물한 살 생일의 다음날이었다. 나는 의학과 운명에 대해서 아직 잘 몰랐고, 척수에 생긴 질환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생산대에서 일하던 나는 21살에 급성 신부전증이 생겨 두 다리가 마비되어 쓸 수 없게 되었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 디탄에 휠체어를 타도 출입하기 시작하여 15년 동안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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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사철생/박지민

율리시즈/2021.5.20.

sanbaram

 

그날은 마침 내 스물한 살 생일의 다음날이었다. 나는 의학과 운명에 대해서 아직 잘 몰랐고, 척수에 생긴 질환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생산대에서 일하던 나는 21살에 급성 신부전증이 생겨 두 다리가 마비되어 쓸 수 없게 되었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 디탄에 휠체어를 타도 출입하기 시작하여 15년 동안 계속 했다. 그 동안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 했고, 마흔아홉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가 모감주나무 아래서 놀며 커나가는 것을 본 기억을 했다. 15년 동안 꾸준히 만난 사람은 이제 노인이 된 부부다. 그리고 당국에 잘못 보여 감옥을 다녀와 울분을 달리기로 달래던 사람, 노래를 부르던 사람 등등을 기억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시절, 그리고 글을 쓰느라 정신없이 산 세월도 상기해본다.

 

어머니가 살던 집에는 어머니가 심은 자귀나무가 꽃이 피었다고 한다. 보라고 권했지만 보기 싫었고, 두 번째는 보려고 했지만 통로가 좁아져서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국화가 만발하던 날 세상을 떠났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을 다시 찾으며, 긴 담장과 연관된 어렸을 때의 기억을 반추한다. 친한 친군와의 일 유치원 가기 싫었던 기억, 축구하던 골목 등을 생각한다. 어느 덧 나이를 먹고 작가가 되어 청년들과도 잘 지낸다. 어느 날 만난 21살의 청년 아버지가 생산대 1세라고 한다. 그리고 부모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아직까지 젊은이와 똑같다고 생각 했는데 벌써 2-3년 후에는 할아버지가 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17-18세에 시작한 생산대 시절의 여러 가지 추억을 떠올렸다. 나는 모든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가장 좋아하며 칼루이스가 나의 우상이다. 그러나 칼루이스가 벤 존슨에게 졌을 때 슬펐다.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칼 루이스 같은 몸을 갖고 태어나고 싶다는 것이 나의 몽상이다.

 

기억과 인상 : 할머니와 함께 성당에 갔던 추억과 유치원, 유치원 선생님에 대한 다니던 추억을 회상했다. 엄마를 따라가 만났던 둘째 외할머니, 항일운동을 하고 국민당원이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버지 형제들과 아버지 고향 쥐저우에 갔다. 아버지 형제들이 함께 살던 집이며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던 도시의 한 블럭 정도가 모두 추억의 고향집이었다. 도시 전체의 거리와 거리 건물과 건물마다 아버지 형제들의 추억이 간직된 곳이었다. 어머니와 결혼식을 치루던 집, 어머니가 살던 동네를 찾았다. 어머니의 옛집을 둘러보았다. 어머니가 책을 읽던 회화나무, 쥐마강변의 버드나무와 풍경도 보았다. 베이징에 있던 사찰에 대한 회상, 초등학교 때의 인민공사로 인해 갑작스런 이사, 이사한 짚 앞의 부서진 사찰에서 즐거운 전쟁놀이, 백림사 절이었던 곳을 개조한 초등학교 교정의 이야기, 문지기와 종을 치던 스님이었던 할아버지, 무신론 시대가 되면서 절의 너머지 부분은 베이징 도서관 서고로 변했다.

 

21살 생산대에서 돌아온 나는 작은 가내 공장에 들어가 고가구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7년간 했다. 20여 년이 흐른 후 아내와 서양에서 어렸을 때 들었던 교회 종소리를 들었다. 집안에 있던 해당나무의 추억과 지주였던 할머니가 늦게 글을 깨우치려 노력하던 것을 회상하며 잘못한 지난날의 언행을 반성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10년 뒤 청명절. 나와 아버지, 여동생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민간인들은 무덤을 만들 수 없었다. 화장을 해서 아버지 혼자서 어머니를 묻었다. 그런데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어렵사리 찾은 어머니를 화장 하여 깊이 묻었던 곳은 이미 어떤 사람의 집으로 변해 있었다. 그 뒤에는 비석을 깎는 공장으로 변해 있었다.

 

디탄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실 그 조용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 공원에 앉아 있으면, 공원 어느 구석 어떤 곳에 있어도 소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근처에는 넝쿨로 가득 뒤덮인 나이 든 나무, 새들만이 살고 있는 폐허가 된 전각과 무너진 처마, 잡초로 무성한 깨지고 부서진 담장뿐이었다.(p.240)” 디탄에 가보지만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그러면서 당신이 만난 운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미워할 것인가? 그 운명이 다른 이에게 간다면 당신 마음은 가벼워지고 행복해질까?’라고 독자에게 묻는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살았던 1950년대부터 2010년까지 시대의 변화와 중국의 인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일기처럼 가볍게 읽어 갈 수 있는 책이기에 발전하는 중국의 사회상을 부담없이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작가 사철생은 중국의 소설가이자 산문가 및 희곡작가다. 1951년에 북경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다니다 생산대에 근무하게 되었고, 21살에 두 다리가 마비되었다. 1979년에 첫 번째 소설 법학교수와 그 부인을 발표했고, 소설 현 위의 인생은 첸카이저 감독의 영화화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발표한 많은 작품은 중국의 유수 문학상을 수상했으나 2010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k******4 2021.06.06.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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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딘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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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딘다'는 말은 '살아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힘듦을 견딘다거나 오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이나 괴로움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결심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많지 않은 선택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삶은 단순히 살아내는 한 과정일 뿐 주어진 삶을 즐기는 살아가기의 연속은 아닌 게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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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딘다'는 말은 '살아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힘듦을 견딘다거나 오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이나 괴로움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결심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많지 않은 선택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삶은 단순히 살아내는 한 과정일 뿐 주어진 삶을 즐기는 살아가기의 연속은 아닌 게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은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찰나의 가벼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중국 작가 사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었을 때였다. 조승리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은사님이 추천한 사철생 작가의 산문집 <나와 디탄>의 한 대목을 인용했었는데 나는 그것이 꽤나 인상 깊었다. 시력을 잃은 조승리 작가도 그렇지만 사철생 작가 역시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우리도 삶을 살아내는 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닌데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더해진다는 것이기에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었던 나는 사철생 작가의 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 살에 나는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다른 일도 하고 싶었다. 몇 번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에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때의 어머니는 젊지 않은 데다 내 다리 때문에 흰머리가 생겼다. 병원에서는 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내 치료에 모든 것을 걸었다. 여기저기 용하다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좋은 비방을 찾아다녀 돈도 많이 썼다. 어디서 이상한 약을 구해 와서 먹고 마시게 하거나 씻고 붙이고 쐬고 맞도록 했다. "시간 낭비 하지 마! 다 소용없다고!" 나는 오직 소설만을 쓰고 싶었다. 소설만이 장애인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p.79 '자귀나무' 중에서)


우리는 종종 별 뜻도 없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처지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정작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빈말에 가까운 그 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인사치레에 가까운 그 말을.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건 내가 적어도 신분이나 여건상 그 사람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이해하니까 고맙게 생각해,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래 봬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선함과 너그러움이 있는 사람이야, 하는 정도의 우월의식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은 겉으로 드러난 여러 차이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그와 같은 계급과 차별의식에서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처음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을 때는 남은 평생 방에서 책만 읽고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몰래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나를 달래서 안아 마당으로 데려 나왔다.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 버드나무와 바람을 보니 그 결심은 바로 흔들렸다. 게다가 친구들이 자주 놀러와 바깥세상에서의 온갖 소식을 들려주니 점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이 넓은 세상에서 휠체어를 밀며 다니는 일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255 '휠체어에 앉아 길을 묻다' 중에서)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싱숭생숭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곤 한다. 하물며 내 몫으로 장애인 한 명을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삶도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전해질 테다.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은 삶의 동력을 잃게 하고 원망과 분노만 쌓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가정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긍정의 선순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과 무한 사랑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파탄과 공멸의 외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범위를 넓혀 보면 한 사회의 구성원 간에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앞으로 살아갈 작은 길조차 가늠하지 못했고, 여동생은 겨우 열세 살이어서 아버지 혼자 이 가정을 짊어져야 했다. 이 20여 년 동안 어머니는 하늘에서 다 지켜보셨을 것이다. 20년 후 모든 것이 안정된 어느 겨울밤, 아버지는 우리를 떠났다. 마치 어머니의 당부를 다 완성하고, 주어진 고통과 노력과 고단함과 외로움을 다 겪어내고 급하게 어머니를 찾으러 떠나신 듯했다. 이 세상에 무덤 하나 남겨두지 않은 어머니를 찾아 서둘러서."  (p.200~p.201 '기억과 인상' 중에서)


오늘도 날씨가 무덥다. 주말을 맞는 홀가분함이 없었더라면 날씨로 인해 마음은 더욱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장마철에 물난리를 걱정하기는커녕 비는 구경도 하기 어렵고 메마른 날씨에 기우제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이렇게 마른장마가 지속되다가 수확을 앞둔 어느 시점에 때 아닌 물난리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 큰 곤란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릴 비라면 푹푹 찌는 더위도 식힐 겸 이맘때 내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날씨가 덥다 보니 되지도 않을 바람이 점점 늘어만 간다. 돌이켜보면 또 이렇게 힘든 한 주를 살아낸 게 아닌가. 견딘다는 말은 살아낸다는 말의 동의어임을...

이달의 사락 s*****l 2025.07.04.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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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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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_나와 디탄   중국 문화혁명 초기 1966년~1967년까지 전국 중, 고등학교가 휴교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방운동(농민에게 혁명사상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도시 청년을 농촌이나 산촌 벽지로 보내 육체노동을 시킨 사회운동)의 이름으로 농촌생산대에서 일했다고 한다. 문화혁명시기(1966~1976년)에 도시의 학생들, 청년들이 농촌으로 가서 현지 생산대에서 노동한 것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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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_나와 디탄

 

중국 문화혁명 초기 1966~1967년까지 전국 중, 고등학교가 휴교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방운동(농민에게 혁명사상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도시 청년을 농촌이나 산촌 벽지로 보내 육체노동을 시킨 사회운동)의 이름으로 농촌생산대에서 일했다고 한다. 문화혁명시기(1966~1976)에 도시의 학생들, 청년들이 농촌으로 가서 현지 생산대에서 노동한 것을 말한다. 지은이 사철생은 중학교 졸업 후 생산대에서 일하다가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로 평생을 휄체어 생활을 한다. 그의 나이 20세 때 일어난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희노애락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가혹한 운명에 대처하기에는 많은 세월을 살았다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20세 나이에 느꼈을 그 절망과 참혹함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지은이는 디탄 공원(디탄은 명나라 시대인 1530년에 세워진 제단으로 명, 청시대 제왕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다. 현재는 이곳을 공원화했다.)에 매일 간다. 나는 디탄 공원을 우리나라의 종묘 정도로 이해했다. 중국은 어떠한지 잘 모르지만 종로에 있는 경복궁이나 덕수궁 그리고 종묘에 가면 견고하고 높은 촘촘한 담장을 따라 걷는 걸 좋아하는데 아마도 지은이는 휠체어을 타고 디탄 공원의 담장 앞에서 자신의 가혹한 운명과 세상의 커다란 벽을 맞닥뜨렸으리라 생각된다. 지은이는 디탄공원에 죽기 위해, 죽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 갔는데 죽음과 다르지 않는 매일의 삶에서 디탄 공원의 벽과 나무들을 통해 죽기로 결심한 마음은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죽음과 같은 일상은 사색과 독서와 글쓰기의 삶으로 연결하였다. 해결할 수 없는 장애와 청춘이라는 조합의 답은 불행이고 절망같다. 삶이 주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과제들을 앞에 두고 우리는 어떤 정답지를 내야만 할까? 가혹한 운명앞에 인간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또 한편으로 한없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20세 청춘의 불행앞에서

 

우선은 한번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가혹한 운명앞에서 엄청난 많은 말들이 오고간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말은 많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삶이란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더라도 살아가는 그 자체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삶의 마지막 정착역은 죽음이듯이 죽음앞에서도 또다른 삶을 써내려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질 순간에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은이가 오랜 세월 매일 공원 구석구석에 휠체어 바퀴자국을 남겼듯이 그 뒤를 따라 무수한 발자국을 남긴 어머니가 있다. 지은이가 죽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건 아마도 어머니 역할 아니었을까 확신한다. 어머니의 태을 통해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머니라는 의미는 생명과 삶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나와 디탄을 읽고 수필집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눈물 겨울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운명같은 불행앞에서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개나 될까? 불행은 극복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냥 자포자기하는 것도 아닌 또다른 차원의 삶으로 가는 환승같다는 생각을 했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쓰면 안 된다고 최근에 들었던 장애인 인식 개선 연수에서 들었다. 극복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진 장애가 노력해서 개선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하고 쓰이는 말이기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한 사고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가 의미를 두지 않고 쓰는 말들이 의미가 그 행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섬세한 관찰과 조용한 사색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나와 디탄을 읽으며 느꼈다. 나는 삶이 계단 오르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매일매일은 계단을 오르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고 성장하고 성취하고 이겨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계단을 오른 하루는 왕성하고 의미 있는 하루가 되고 오르지 못하고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면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하루가 되었던 거 같다. 그러한 하루들의 방향은 오로지 앞을 향해 있었고 당연히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던 거 같다. 문득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멈춰 섰을 때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만들어 놓은 삶의 계단이라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계단이고 그 계단의 어디쯤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와 디탄에서 지은이 공원의 산책을 통해 시작도 끝도 없이 끝없이 연결된 삶의 계단에서 죽을 때까지 오른다 해도 그 끝에 도착할 수 없는 유한한 인간에게 계단을 오른다는 개념이 참 의미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없는 계단에서 올라간들, 내려간다 한들, 계단에 멈춰 앉아 있던 별 차이가 없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무의미한 삶의 운명의 계단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나약하고 아무 존재가 없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각자의 몫이 아닐까? 나 자신이 삶의 계단 위에서 어떻게 할지는 개인의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 오랜 시간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하루에 일기 쓰듯이 야금야금 읽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점심시간 지나가는 동료가 고개를 숙여 자를 대고 줄을 긋는 나를 보고 막 웃는다. 이렇게 줄을 치며 책을 읽는 모습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고 신기하다고 말을 건넨다. 나는 그냥 웃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줄을 쳐! 그러고 보니 좀 웃긴 거 같아

 

다음은 내가 줄을 그은 부분들의 일부이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줄을 그은 부분을 읽으면 왜 내가 이곳에 줄을 쳤을까 싶지만 대부분은 내가 왜 그곳에 줄을 그었는지 나는 안다. 나의 마음을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의 고민에 작가가 대답하고 있을 때 줄을 긋는 것도 같다.

 


 

(p14)

그때 나는 엉망진찬으로 뒤틀려 있었다. 귀신에 들린 듯 미친 듯이 집을 뛰쳐나갔다가, 공원에서 돌아와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쉽게 물어볼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아는 어머니는 몇 번을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어쩌면 어머니 역시 해답을 모르셨으리라.

 

(p16)

한번은 어느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다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하시라고

 

(p17)

어머니가 돌아가신 계절이 되면 지난 일들이 선명해지고, 어머니의 아픔과 위대함도 내 마음속에 깊이 파고든다. 하느님의 배려는 아마도......맞았다.

어머니는 이제 없다

 

(p21)

공원 곳곳에는 나의 휠체어 바퀴 자국뿐 아니라, 휠체어가 지나간 자리마다 어머니의 발자취도 함께 남아 있음을.


 

(p50)

제아무리 오만한 사람이라도 병실 침대에 누우면 모두 겸손해진다.

병상에 눕게 되면 누구나 신을 찾게 된다.

(p71)

동화가 유감스러운 것은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보다 휠씬 더 복잡하고 휠씬 더 잔혹한 세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동화는 그저 너무 나약할 뿐이다.

 

(p104)

아무것도 대단할 게 없는날들도 결국엔 끝이 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단계에 이르면 아마도 시원하게담장으로 달려가 부딪히게 될 것이다. 담에 부딪쳐도 죽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는 고개를 들어본다. 그때 담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숨고 싶고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의미는 채권자처럼 당당하게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이 하루 뒤에 이어지는 많은 날에서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나 무수한 의미에서는 결국 벗어날 수 없다. 한 번의 여행은 피할 수 있어도, 삶이라는 긴 여행은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p106)

삶의 의미를 요구한다는 것은 바로 삶과 존재에게 무게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각종 무게는 담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제대로 측량된다. 하지만 많은 무게는 죽음의 신의 저울 위에서는 여전히 가볍다. 저울 눈금은 터무니없게도 평형에 가깝다. 때문에 무게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살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지치고, 삶을 갈망하고, 그 인력 아래서 기꺼이 생명을 다 소모하고자 할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깨어 있는 상황에서 따르는 것이다.

 

(p107)

담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담을 벗어나기 위해, 담 아래로 걸어간 적이 있다.

넋이 나갔던 그 세월동안 나는 휠체어를 밀고 거기로 가곤 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조용하고 적막했다. 조용한 나와 조용한 담벽 사이에는 야생화가 가득했고, 억울함이 가득했다. 나는 주먹을 쥐어 담을 쳤고, 돌로 내리찍었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욕을 해댔다. 하지만 담장은 약간의 흙먼지만 떨굴 뿐 전혀 미동도 없었다. 하늘이 변치 않는 한 도리 역시 변치 않는다.

늙은 측백나무는 천년을 하루같이 가지를 뻗었고, 구름은 하늘 위를 걷고, 새는 구름 위를 날고, 바람은 풀숨에 오르고, 야생풀은 대를 이어 뿌리를 내린다.

 

 
h*******0 2021.07.0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나와 디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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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야학의 투쟁을 알게되며 장애인들의 인권운동을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며 응원하던 중에 나의 디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참 좋았다. 책은 아래띠 부분을 다른 종이로 처리하지 않고 책에 아예 일체형으로 제작되어서 아래 짙은 녹색 부분만 재질이 더 맨질맨질하다.   일단 제목은 나는 작가 자신이며 디탄은 베이징에 있는 작가의 집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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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야학의 투쟁을 알게되며 장애인들의 인권운동을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며 응원하던 중에 나의 디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참 좋았다. 책은 아래띠 부분을 다른 종이로 처리하지 않고 책에 아예 일체형으로 제작되어서 아래 짙은 녹색 부분만 재질이 더 맨질맨질하다. 

 일단 제목은 나는 작가 자신이며 디탄은 베이징에 있는 작가의 집 근처 공원의 명칭이다. 한자로는 지탄으며 발음은 디탄으로 읽는다. 책의 전반부는 작가가 디탄근처에서 계속 몇 번 이사를 해도 오히려 더욱 디탄공원과 가깝게 되었으며 디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내용도 나오는 데 동양권이라 그런지 정서가 닮은 구석이 많아 책을 읽는 내내 익숙함과 편안함도 느껴졌다. 

 다만 이 책이 단순히 편안하지 많은 못한 이유는... 중국의 역사적 사건에 있다. 교과서를 통해서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알았었는데 '생산대'라고 후에 불리게 되는 무리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청소년~청년들을 시골로 보내서 농사를 짓는 등 육체노동을 시키는 국가가 지시한 일인데. 여기에 동원되었던 작가가 그곳에서 척추에 손상을 입어 결국 영구장애를 입게 된 것이였다. 십대 후반에 장애를 입게 된 그는 처음엔 상황을 부정하고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여 '이런 몸으로 살아 무엇하냐'는 생각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특히 어머니) 집기를 집어 던지기도 하고 했었지만 차츰 디탄에 가서 조용히 산책하며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으며 병원과 디탄공원에서 만난 사람들, 계절따라 바뀌는 모습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독서를 하다보면 마치 내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디탄공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작가의 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중국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그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한 사람의 생존기라고 봤을 때 이 책은 더욱 가치가 있었으며 그 형식이 때로는 시로, 때로는 산문으로 이어져서 지루할 틈이 없고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있는 나만의 디탄에 대한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광주에 살 때 집에서 10분 거리에 산책로가 있었는 데 그 푸르른 길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 곳을 걸으면 그 풀냄새, 꽃내음, 이름 모를 새소리가 늘 나를 반겼는데...지금은 낯선 곳에 와서 적응중이라 그 때가 더욱 그립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




이 책을 보내준 살아남아줘서 고마운 작가와 율리시즈 출판사와 예스24에게 무한 감사를 드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s*******g 2021.06.1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와 디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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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23.수요일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동안 일본 작가의 작품에만 빠져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이번엔 의도적으로(?) 중국 작가의 작품을 골라보았다. 저자인 사철생(스테셩)님은 중국의 국민작가라는데, 솔직히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인민, 혁명, 출신, 계급, 문화혁명, 생산대까지... 역시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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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23.수요일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동안 일본 작가의 작품에만 빠져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이번엔 의도적으로(?) 중국 작가의 작품을 골라보았다.

저자인 사철생(스테셩)님은 중국의 국민작가라는데,

솔직히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인민, 혁명, 출신, 계급, 문화혁명, 생산대까지...

역시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구나...라는 이질감이 먼저 들었다.

동시에 자연, 가족, 친구 이야기에서는 다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21세에 갑작스럽게 하반신 마비라는 진단을 받고, 평생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작가의 고뇌가 절절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또한, 그를 말없이 품어준 디탄 공원의 포근함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저자와 같은 입장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헤아릴 수 없을 막막함과 암담함.

그 또한 긴 세월 방황하고 좌절도 했지만, 

항상 곁을 지켜준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 속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였다.

깔끔하고 순수한 글에 마음이 정화되었고,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삽화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집,

한동안 잊고 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 친구들까지 모두 조우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s****0 2022.03.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