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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이 책은
이 책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인생 반세기>를 결산하는 책이다.
저자는 조주희, < 성신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일본 간사이(關西)대학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하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출강하였고,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의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의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의 내용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그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를 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미 영향력 있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런 무라카미 하루키이기에 그의 작품은 이미 많은 사람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의 삶과 함께 그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해서 이 책은 1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 전체에 대하여 살펴보고, 2부에서는 그의 작품 중 대표작 14편을 추려서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과 작품 전체에 대해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 : 아버지의 무게
그는 1949년 1월 12일 출생했다, 그러니 현재 72세. 그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였으며, 2009년 아흔 살의 나이에 타계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모로 하루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아버지가 2차대전 때 군대에 징집되어 중국으로 출병한 사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그러한 것 때문에, 그는 1990년 이후애 이어지고 있는 그의 작품 속에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243쪽)
일본의 역사 책임에 대하여
그러한 작품으로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들 수 있다. 제 2부에 멘시키(免色)라는 인물이 난징 대학살에 대하여 언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224쪽)
그래서 무라키미 하루키는 수시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 바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고향 상실,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발전소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하루키는 ‘반핵’운동에 목소리를 합한다.
그의 작품 세계
2부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14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줄거리 위주로 소개하고 있어, 각 작품에 대한 평가는 1부에서 오히려 찾아보아야 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다시, 이 책은? - 『1Q84』
『1Q84』에서, 그는 일본의 역사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쓰쿠르의 여자 친구 사라가 쓰쿠르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말을 한다.
그간 매스컴을 통하여, 하루키가 일본의 역사책임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성장배경과 일본 문단과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서,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니, 그런 정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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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살면서 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살던시절에 우연히 알게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앞으로의 진로와 내 꿈과 다른 대학생활의 암울했던 나에게 한줄기 나를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그의 글에 심취해서 도서관에 없던 그의 신작을 사들이면서 지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왜 나는 한 번도 그의 삶이 성공의 길만을 걸었다고 생각했을까? 그의 삶을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나? 이 책을 보면서 깊이 생각해 보면서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라는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이 책은 2편으로 나뉘어서 1편은 하루키7040은 하루키의 성장배경과 그의 인생관과 여정이 나열되어있다. 2편은 하루키의 매니아 팬이라면 누구나 읽고 싶어하는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14편의 작품들의 등장인물과 줄거리등을 나열하며, 그의 작품을 심충 분석하며, 왜 이런 글이 나오게 되어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루키의 7040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이건 뭘 뜻하게 될까?을 생각하면서 보았는데, 그건 하루키의 인생 70년과 데뷔 40년이라는 글을 보고, 정말 대단한 작가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는 외아들로 태어나서 국어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을 좋아하던 하루키는 당연히 성장하면서 작가로 자신의 길을 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이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하루키의 아버지가 승려인 할아버지로 인해 어린시절 동자승으로 버려졌다는 ‘버림받았다’는 불행한 경험이 평생 깊은 상처로 남아서 술을 먹으면 신경질적이고, 음울했다고 하는 문구에서 살아온 배경에서 그런 그의 성격의 한부분을 형성한게 아닌지 생각해 봤다. 독서광이었다는 하루키가 초등학생때 인간의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치고 조숙했구나를 생각해본다. 중학교때 교사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을 겪고, 재즈마니아, 이른 나이의 자신의 가정을 갖고 싶어하는 외동의 외로움들,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그의 내면세계로 인해 부인과 둘이서 이룬 가정등 이제까지 몰랐던 그의 삶을 조금 알게 되었다. 하루키는 자신의 정보를 언론이나 사람들에게 노출하지 않고, 문인이면서 문단과 거리를 두는 일본 언론에서도 우호적이지 않는 비평을 받는 작가한다. 이 책은 하루키가 직접 쓴 평전이 아니고, 조주희 작가가 그의 에세이나 인터뷰를 조사해서 쓴 책이다 보니 하루키의 자신이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쓰여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2편에서 작품들을 나열하며 분석하고 줄거리를 나열하는데, 내가 처음 읽게된 하루키 작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방황하던 나의 대학시절에 나를 매료시켜서 그의 작품을 찾아 탐독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홀수정)과 세계의 끝(짝수정)을 나눠서 쓰여진 이 소설을 나와 그림자로 내가 만들어 낸 세계와 그렇게 내가 만들어낸 세계를 떠나려는 그림자로 설명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하루키의 첫 리얼리즘 소설인 “노르웨이의 숲”의 작품 베이스가 된 “반딧불이”라는 단편이 있다는 사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 외에 1Q84, 해변의 카프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등 그의 작품을 요약해서 만날 수 있다. 그가 직접 쓴글이 아니라는 아쉬운 점만 빼면, 나에게 하루키의 7040이라는 그의 1편 인생기는 이제까지 그를 몰랐던 인생과 그의 글이 어떻게 세상에 그만의 작품세계를 굳히며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독서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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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일본을 벗어나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키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그의 작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이전에《하루키의 언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도 궁금했다. 더군다나 저자는 무라키미 하루키 1호 박사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인의 관점에서 하루키 작가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구했는지 궁금했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루키 작가의 작품과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 강요는 아니지만, 읽으면 좋다는 의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 뒤편에 대표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한 부분도 하루키 작가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요약하는데 도움이 된다. 뒤편도 좋지만, 앞 편에 작가의 인생을 돌아보는 내용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베일에 감춰져있는 개인적인 사생활, 즉 가족, 고향, 학창시절, 인간관계 등에 대한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다.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그가 두 살이나 세 살 쯤, 집 앞에 강에 빠져서 죽을 뻔 했던 점, 아버지가 일본군으로 중국 전선에 파병을 간 점, 할아버지가 교토의 안요지라는 유명한 절의 승려였다는 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하루키 작가의 어린 시절 사진도 인상적이다. 지금과 거의 똑같이 닮았는데, 무척 귀여운 얼굴이다.
먼저 그의 가족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다. 사실 그의 아버지와 하루키 작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똑똑한 수재로 교토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고 중국에 파병 갔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중국인 포로 처형 장면을 보고, 평생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이들을 위해서 매일 아침 불단을 향해 기도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이러한 경험담이 하루키 작가의 작품,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묘사되었다.
“아버지의 중국 경험담이 배경이 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에는 그의 작품《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등장하는 포로와 스파이의 처형 장면이 있다.” - p38
그보다 더 앞서 그의 소설에 영향을 준 이야기도 있다. 그가 어릴 적에 강에 빠져서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 ‘어둠’이 그의 최초의 기억이면서, 불쾌한 기억이었다고 한다. 고작 두 살, 세 살에 경험한 것을 기억할 정도라면 그때의 충격이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전쟁터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던 것처럼.
그뿐만 아니라 하루키 작가의 친구도, 여섯 살의 나이에 해안에서 익사했다. 이러한 사건은 그의 단편《5월의 해안선》이라는 작품에 반영되었다.
그의 작품 중 고양이, 양이 유독 많이 나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또한 그의 어릴 적 시절과 연관이 있다. 그는 당시 흔하지 않게 ‘외동’이었다. 한참 베이붐 세대들이 즐비할 때, 그의 부모는 하루키 한 명만 갖고, 더 이상 자식을 갖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루키 작가는 다소 유별난(지금 아니지만)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하루키 작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양’을 키웠다. 그의 학교가 분교가 되어서 분교식이 있었을 때도 양 두 마리가 같이 식에 참가했다고 했다. 아마 이러한 기억이 그에게 각인된 것 같다. 또한 어릴 적부터 고양이를 기르면서, 그에게 고양이는 아주 친숙한 가족과 같다. 지금도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의 초기 4부작에 ‘쥐’라는 친구가 등장하는 것도 왠지 고양이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선생님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하루키 작가의 글쓰기 실력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책도 외상으로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집은 아주 평범한 집이었는데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셔서 나는 근처 책방에서 외상으로 책을 살 수 있었다.” - p28
아버지와 코드가 비슷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않았다.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좀 더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수 후 와세대 영화연극과에 진학했다. 기본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뛰어난 머리, 그리고 엄청난 독서력과 외국어 실력 덕분인 것 같다.
하지만 부자지간에 거리는 점차 멀어져서, 거의 연락을 안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하루키 작가는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아버지가 중국인 학살에 가담한 부대가 아니란 점을 알게 되어서 안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중국인 병사의 처형을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하루키 작가가 ‘시스템’을 싫어하게 된 배경도 학창시절부터다. 그가 중학생일 때,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다. 오죽하면 한신 대지진이 발생할 때, 학교에 대한 걱정보다 먼저 그가 선생님한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내 머리에 우선 떠오른 것은 지진 희생자에 동정 어린 생각보다는 ‘아, 나는 여기에서 선생님한테 꽤나 맞았지’하는 숨 막히는 쓰라린 기억이었다. 물론 지진 희생자분들의 일은 마음속으로 안됐다고 생각한다.” - p41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공부보다는 스스로 자아를 찾기 위한 방황을 많이 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결혼을 하고, 재즈 카페도 차렸다. 힘겹게 생계활동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9살에《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통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일본 문단의 비평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작가가 작품 활동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기는커녕,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억지로 해야 하는 현실에 반감을 가졌다.
“편집자는 출판사 대표로 오는 건데 친구 같은 얼굴을 하고 온다. 부탁받은 걸 거절하면 그들은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하고는 기분 상해한다. 건방지고 둔감한 놈이라고 여겨져서 일본에서는 살기 어려워진다.” - p11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어릴 적부터 시스템에 대한 반항심이 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아내와 함께 일본을 떠났다. 물론 그전에 다른 작품들이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 여비를 마련했지만, 개인적으로 저금한 돈도 써야했다.
로마와 그리스의 섬에서 온갖 고생을 했지만,《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제목을 그의 아내, 요코가 지었다는 점이다(편집자의 이름도 요코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1965년에 발표한 비틀즈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심지어 그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원래 이 책의 첫 제목은 ‘빗속의 정원’이었다.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사상적 배경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 역시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이 작가의 작품세계에 반영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한 줄 요약 : 하루키 작가의 인생,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 생각과 실행 :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만의 인생관을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는 저마다 시스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편하고 익숙한 시스템에 의문을 던지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인간답게 살아야할지 고민해야겠다. 이러한 고독한 존재인 ‘약자’를 다루기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이 오랫동안 각광을 받는 것 같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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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였다. 그 이후 별 생각 없이 <태엽감는 새>나 <해변의 카프카> 따위를 읽었고,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소설 안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상징 등이 상당히 기묘하고 그 의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책 표지의 하루키 사진은 분명 그가 만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 또한 앞으로 소설을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종종 생각한다고 하지만, 하루키의 독자로서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재했으면 좋겠다. 그의 작품이 꼭 노벨상을 타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일본 문단에서 비판받는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하루키를 읽는 즐거움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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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인 스럽지 않은 소설('일본어로 소설을 쓰지만 일본인 스럽지 않은 글'..)을 쓰는 작가이고 번역을 하고, 해외에 거주하고,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었고, 작가보다는 작품에만 관심을 가지고 새로 출간되는 책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해변의 카프카, 1Q84'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의 출간을 접하면서 좋아하는 책들의 젊었던 저자가 어느덧 70살이 되었고 40년을 집필하였다는 하루키의 작품과 연관된 삶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다. 하루키는 어렸을때부터 조용하고 시적 감성이 풍부하고, 책을 좋아하는 조용한 소년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서 일본 책보다는 서양 소설 특히 미국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읽었고(이후 미국식의 작가로 성장하게 된 최고 요인) 이러한 생활 때문에 국어 교사인 고지식한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에는 돌아가실때까지 단절된 부자관계로 지냈다. 공부에도 관심이 없어 의무상 해야하는 정도만 유지했고, 아버지가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하고 부인 '요코'를 만나 22살에 결혼을 하고 재즈카페로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글을 조금씩 쓰다가 29살에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글을 쓰게 된다. '일본' 문학 스럽지 않아서 일본 문학상에 후보로 올라갔지만 상은 받지 못하고 비평가들로부터 부정적 비평만 받았지만, 다른 사람이나 일본 문학 세계와 상관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로 본격적 작가의 길어 들어서면서 유럽, 그리스등에서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되고 미국에서 출간도 하게 되지만, 이에 일본에서는심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95년즘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만 매진 하는 성격으로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자신의 국가 일본에 대해 깊이 생각('일본 작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절실하게 느끼고...')하게 되고 일본으로 돌아가 역사,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글을 쓰게 된다. 저자는 하루카의 작품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과 상황등에 대해 설명하고, 일본 문학 세계에서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비평의 내용을 첨부하여 일본에서의 하루키의 소설을 보는 시각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소심한듯 하지만 주관은 뚜렷하게 밀고 나가는 하루키가 소설 한편씩 써가면서 달라지는 시각과 생각으로 같이 변화,성장하는 모습이 볼수 있다. 1부는본국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과 태도, 본국에서 평가하는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살펴보고, 그렇게 탄생된 하루키의 작품 14편과 수상에 대한 상황과 비평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는 그 작품들을 간략한 내용으로 읽을수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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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생 반세기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평전이다. 한 사람의 삶이 그려내는 여정과 함께 그의 작품이 줄거리 요약 형식으로 실렸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라는 작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개인적인 관심사는 주로 외국 소설이 아닌 한국 문단에 속했던 작품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 시절 역시 하루키라는 작가가 유명세를 타고 있었을텐데, 나는 거의 이 사람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던 것같다. 내가 처음 접했던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소설 ‘상실의 시대’였다. 지금은 상실의 시대가 아닌 노르웨이 숲으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작품이다.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기억이 성실하지 못해서 잘 기억난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아련한 느낌이란 건 아직 남아 있다. 방황하는 청춘.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였을까. 혹자는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의 작품들이라면 빠지지 않고 다 읽고 챙겼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 나는 왠지 기가 죽을 것 같은 소심증이 도진다. 움츠러드는건 소심증에서 발현되는 자격지심인가.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의 평전이 읽고 싶었다. 작품을 먼저 읽고 분석하는 일이 먼저일지, 평전을 먼저 보는 게 먼저일지를 잠시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는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을 권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작품을 먼저 읽고 스스로 판단하고 분석해보는 일이 중요하지만 먼저 작가의 평전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는 어떤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평전 자체만으로 봤을 때 글이 풍기는 분위기는 무게감이나 건조함 없이 부드럽고 빠르게 잘 읽히는 장점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책의 분위기를 떠나 작가에게 초점을 맞춰볼 일이다. 작가는 백 년 전 이백 년 전 작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 존재한다. 뭐랄까. 일종의 개인적인 생각이긴한데, 하루키라는 작가와 개인인 내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느 소설가의 ‘여러분과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건 여러 가지로 매우 중요한 겁니다’ 고 했던 말이 주는 의미처럼 말이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꽤나 많은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말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개개인마다 생각하고 느끼고 감당해야 하는 경험치의 정도는 서로 다르고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여전히 묘한 연대감을 형성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그의 글쓰기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어쩌면 그만의 ‘독특함과 다름’이 시대를 뛰어넘기도 하고 딴은 다른 세계와 세대를 이어주기도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루키에게 처음 상을 안겨준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당시의 심사위원들의 선평에도 일정부분 작가만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한 호감도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호불호에 대한 정도는, 리얼리즘 문학이 자리를 잡고 있던 일본 문학의 만연한 풍토에 낯선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전에서는 그 낯선 바람의 인식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묶인 일종의 꼬리표로 자리하고 있음을 언급하는 듯했다.
작가 하루키는 1949 출생했다. 일본의 패망과 한국전쟁 발발하기 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그의 출생은 아니 출생시기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쟁과 그로 인한 피폐해진 인간 존재감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외면할 수 없었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작가 역시 그 점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있어 전쟁과 인간존재를 떠올리는 순간마다 연상되는 존재는 당연 그의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평전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전쟁 일화와 함께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작가로서 하루키가 풀어내야하는 스스로의 문학적 화두의 한 가지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사견이다) 그는 일본군으로 참전한 가해자의 모습인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태평양 전쟁에 대한 본국의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일본의 민낯에 대하여 그의 소설에서, 에세이를 통에서, 강연장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까지 노벨 문학상을 운운하며 언제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일본이, 하루키의 반일에 가까운 행보에 반감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시종 이중적인 인상으로 다가온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문학은 문학이 만들어놓은 세계와 틀을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 늘 불안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가 싶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책 앞부분에서는 주로 작가로서 살아온 이야기와 작품을 쓰게 된 동기 내지는 과정에 관련한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본국을 벗어나 멀리 이국으로 떠나며 자신의 존재감에 몰입하기를 원했던 그의 행적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한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글쎄다. 딴은 모든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어느길이든 떠나야 한다는 조건은 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때때로 떠나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주저함 없이 떠나야 하는 것도 좋아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하루키에게 있어 이국으로 출발했던 일과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은 작가에게 일종의 성장통과도 같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단하게 응집되어가는 작가로서의 고뇌가 성장통 안에 녹아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많은 부분을 차치하고 작품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다. 완벽하게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나면 조금씩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우선 빌려온 그의 단편집부터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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