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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님의 신간이다. 매화나무 아래, 오기, 가출, 미스 김은 알고 있다, 현남 오빠에게, 오로라의 밤, 여자아이는 자라서, 첫사랑 2020, 이렇게 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한 권의 통 소설이 아니다. 책 소개에서 처럼 가스라이팅, 불법촬영, 돌봄 노동, 가부장제, 여성 노년의 삶, 페미니즘 내 세대 갈등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유교주의적 교육, 즉 습득하고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온 방식이 깊숙히 뿌리박혀서 익숙한 나머지 창의력을 중시하는 비판적 사고와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능력은 다소 결여되어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또는 프로 불편러라는 말로 흑백논리적 이분법이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투쟁으로 지켜왔듯이 젠더문제 또한 공론의 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투쟁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문인으로서 조남주 작가는 자신의 의무를 잘 해내고 있다. 응원한다. 이 책 또한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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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조남주 작가의 책이라서 읽게 되었다. 8개의 단편 중 읽은 것도 있지만 읽지 않은 게 있어 더 반갑다.
‘매화나무 아래’는 다 늙어(?) 개명 신청한 여자의 이야기다. 말녀라는 이름은 가진 나는 큰 언니가 늘 자신에게 불러 준 이름 동주로 개명하고 치매 요양원에 있는 큰언니를 찾아간다. ‘오기’는 페미니즘 소설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소설가가 자신을 괴롭히는 악플러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병원 홍보대행사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미스김이다. 정규직도 아닌 미스 김은 어느 날 쫓겨나게 되고 미스김 대신 들어온 사람이 바로 나다. 이후 회사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업무상 차질을 빚게 되는데... ‘가출’은 72세 아버지가 어느 날 메모 한 장 놓고 가출하고, 시간이 흘러 모두에게 그 가출은 해방감을 안겨 준다. ‘현남 오빠에게’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소개 된 거니 패스하고 ‘오로라의 밤’은 시어머니의 아들 즉 남편이 죽은 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30년 전 지방 도시에서 가정폭력상담소를 열었던 엄마와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성폭력 동아리를 만든 나의 여성 문제에 대한 입장 차를 이야기한다. ‘첫사랑 2020’은 코로나19를 배경으로 초등학생의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8편의 단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가출’인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가출이 시간이 지나 다른 가족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는 거다. 가족이지만 가족 같지 않은, 때론 인자하지 않은 아버지들. 그러나 가정에서 대접을 받고 싶으신.. 가까이하기엔 조금은 먼.. 다행히 울 아빠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예전의 울 아빠였다면 피곤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 버린 울 아빠.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아빠도 점점 늙어가시는구나 싶어서 아쉽기도 한. 생활 속 우리 이웃 같은 이야기들이 단편이지만 편하게 읽었다. 이런 단편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읽을 수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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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바뀌었다.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 실린 소설 중 웃기고 기막히고 서글프게 다가온 소설은 「미스 김은 알고 있다」였다. 예전 같았으면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지 의심스러웠을 텐데.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소설 속 상황은 약하고 순화된 것임을 알아채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새삼 감탄했다. 어찌어찌 죽지 않고 버티며 살아나가는 나 자신과 모든 이들의 시간을.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현실을 조망하는 조남주의 소설을 누가 뭐라든 굽히지 않는 문학적 소신을 가진 자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따라 읽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는 말이 있고 나서야 나의 이야기는 부끄러운 게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조남주가 그리는 여성의 이야기는 과장 혹은 지나침이 아니라는 것 또한. 누굴 욕보이거나 추궁하거나 비난하는 의도에서 쓴 것이 아님에도 소설은 문제가 되었다. 문제가 아님에도 문제로 만들어 문제를 낳게 하는 악순환.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는 여성 화자가 중심이다.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을 읽는 누구라도 감정과 상황을 이입해서 읽을 수 있다. 누구라도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처지가 되어 볼 수 있다는 장점. 어찌어찌 한 달 업무를 마무리했다. 가장 중요한 급여 정산을 하고 명단을 이메일로 보냈다. 확인하시고 각각의 계좌로 급여를 보내달라고 하는.
바로 몇 초 만에 반송 메일이 왔다. 인수인계 자료에 적힌 메일 주소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확인도 안 하고 급하게 보낸 게 아닌데. 몇 번이고 숫자와 알파벳을 확인했는데. 왜 돌아온 건지. 이럴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메일을 보냈는데 반송이 됐다. 주소가 맞냐. 물었다. 적힌 게 틀렸다. 소문자 i이 아니라 숫자 1 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잘못 적어 줄 수도 있지. 그러나 메일 주소는 여러 곳에 틀리게 적혀 있었다. 거래처 목록과 인수인계 자료에도.
또 어떤 날에는 분명히 입력해 놓은 자료인데 전산에는 사라져 있었다. 내가 입력해 놓고 삭제를 눌렀을까. 그러기에 나는 끙끙대며 입력해 놓은 기억이 있는데. 알 수 없다고 넘어갔지만 찜찜했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를 읽고서야 그간의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일은 가장 많이 하는데 직급은 없고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회사 내의 전설 같은 인물 미스 김의 서사는 나에게 황당함이 아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속 시원한 납득을 선사했다.
병원 홍보대행사에서 온갖 일을 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잘리는 미스 김의 퇴사 이후 회사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공유 폴더에 있는 파일들의 상태가 이상해지고 국어사전이 사라지고 리모컨을 감싸고 있던 랩이 벗겨져 있고 음식점에서 받은 쿠폰도 사라져 있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애매한 분실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다. 모두들 미스 김이 CCTV를 피해 들어와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말하진 않는다.
이른바 미스터리 서스펜스 회사물인 것이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누구의 악의인지 알지만 함부로 악의에 접근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조남주는 이 소설을 수정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밝힌다. 매일 출퇴근하던 시절의 분노와 의문을 담았다고. 정신 건강에 안 좋은 거 알고 있지만 매일 나는 평일 9시에서 6시까지의 일을 떨치지 못하고 집까지 가져와 스스로를 괴롭힌다. 벗어나고 싶다. 『우리가 쓴 것』은 네가 느꼈던 감정은 망상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소설집에는 지금의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담아낸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까지 이어지는 생존에의 공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조남주는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간 지 이 년째.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마지막 단편 「첫사랑 2020」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지금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지금은 과거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땐 그랬지를 말하지 못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를 힘없이 말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그래도 살아간다. 아이들은 마스크 안에 감춰진 웃음을 찾아내고 헤어지는 마당에 그때 준 마스크를 돌려달라고 찡찡대고 그걸 본 담임 선생님은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나는 좀 무섭다. 아니 많이 무섭다. 내가 하는 일이 틀리고 실수가 되고 잘못으로 확인될까 봐.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질까 봐. 하루에도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열두 번도 넘게 든다. 이제는 안다. 포기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걸.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멈추는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일단은 계속한다. 내가 멈추지 않아도 상황이 강제 종료를 알릴 수도 있기에. 그때가 되면 멈춘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의 이야기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 포기와 계속 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되었다. 내 곁에 소설 속 인물들 같은(할머니, 엄마) 사람은 없지만 어찌어찌 자라서 살아가고 있다. 어찌어찌의 시간에는 소설이 존재한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카드 사용 내역이 간간이 날아오는 것으로 생사를 확인하며 서로의 안녕과 다정을 빌어주는 소설 속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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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화를 내서도 아니었다. 발음이 너무 좋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아버지가 의견을 내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오빠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여행지, 회식 메뉴, 텔레비전 채널 같은 사소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 (95~96페이지, 가출)
누군가의 간절한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데 동행한 이가 시어머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웠고, 그 불편한 동행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했다. 작가가 여성의 연대를 말하려는 건가 싶으면서도, 왜 하필 그 연대의 한편이 시어머니였던가 의아했다. 이 단편을 읽고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범한 오류를 찾아냈다. 나는 시어머니를 한 사람의 인간, 여성의 삶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껏 내가 생각한 ‘시어머니’로만 봤던 거였다. 생각의 시작이 틀렸던 거다. 시어머니가 시어머니 이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 그 사람 고유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했던 것을. 그래서 단편 「오로라의 밤」을 다시 읽고 다시 생각했다. 세 여성이 살아온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지켜봐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에야 ‘말녀’라는 이름을 ‘동주’로 개명한 여성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남편의 말처럼, 다 늙어서 이제 개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 단순한 이름 하나에 누구는 행복과 자신감을 얻는다. 언니 금주, 은주의 이름대로라면 셋째딸인 그녀의 이름은 동주여야 했다. 그런데 왜 말녀인가.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에 ‘딸은 이제 그만’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말녀. 남동생이 둘이나 태어났는데 왜 말녀냐고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매화나무 아래」의 동주는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금주 언니를 보러 다니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름만큼이나 차별받으며 살았던 시간과 싸우듯 그녀는 늦게라도 삶을 바꾸려 애쓴다. 그 증거가 개명이었고, 동주라는 이름이었다. 이어지는 시간은 단편 「오로라의 밤」으로 들려준다. 아들을 잃은 후 며느리와 같이 사는 시어머니가 되었고, 며느리와 오로라를 보겠다며 캐나다로 향한다. 말녀의 삶과 너무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동주의 오늘이 상상되는가? 읽으면서 너무 신났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지금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게 더 슬펐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후의 웃음이 그녀의 진짜 미소 같아서 말이다. 고부 사이가 아니라 룸메이트처럼 살아가는 이 고부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 조합을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여든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와 예순을 바라보는 며느리가 오로라를 보겠다며 그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이 늙은 여자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일일드라마나 볼 것이지 뭐 한다고 그 길을 나서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두 과부가 저지른 일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였다. 이것부터가 나의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 나이 든 여자가 뭐? 남편 없는 여자가 뭐? 이들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일을 하고, 자식을 키웠고,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간 것뿐이다. 노년의 삶을 손주를 보면서 보내는 게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이들의 행보는 낯설면서도 너무 늦게 찾은 당연함이었다. 자기 삶에서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했던 당연함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을 되찾은 기분. 딸이 엄마에게 아이를 봐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을 때, 내가 미처 놓치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던가?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왜 항상 엄마여야만 했던가 묻게 되었다. 그러다 그 물음은 꼬리를 물고 다시 묻게 된다. 한 여자의 인생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가.
『82년생 김지영』을 몰입해서 읽었는데도, 순간순간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에 숨을 죽이곤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김지영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 소설집은 그 김지영의 확장판이라고 말하는데, 나처럼 봐야 할 것을 놓친 독자들에게 던지는 김지영의 생애였다. 8편의 단편을 통해 10대부터 80대까지 여성이 겪는 삶의 다양한 면을 드러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 삼대의 모습은 페미니즘을 겪는 세대 차이를 그대로 보여줬다. 30여년 전 지방 소도시의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대학에서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나’. 이제 ‘나’의 중학생 딸은 그 아이만의 방식으로 성추행 남학생들을 응징한다.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왔어도, 살다 보니 변하는 세상에 흡수되느라 외면했던 것을 딸의 한마디로 소환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예쁘기는 해야 할 것 같잖아.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해 줄 순 없어?"(290페이지)
그 여자아이는 자라서 자기 의지대로 세상에 맞서며 살아가다가도 「현남 오빠에게」의 화자처럼 은근한 불빛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나를 위해서, 나를 편하게,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남성 보호자로 여겼던 대상이 어느 순간 들여다보니 나를 조종하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절망에서 벗어났고, 진짜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 깍듯하게 존칭하며 불렀던 그 이름은 끝은 ‘개자식’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여성에게 응원을 보내면서,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 마주친 성차별은 그 당당함에도 물리치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직급도 없는데 그 회사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미스 김. 그녀의 영역이 넓어지자 미스 김의 자리는 사라진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 능력에 의지하던 인간들의 연대로 밀려난 미스 김의 활약은 그 이후에 드러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력 갑이었던 그녀가 회사에 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유령처럼 그녀는 존재감을 뽐낸다. 학연과 혈연으로 뭉친 어느 중소기업에서 횡행한 성차별의 결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스 김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미스 김으로 존재하는 화자의 선택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런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는 매도당하기도 한다. 「오기」의 초아는 한 편의 소설로 악플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시도를 꺾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때야 비로소 꺼내지 못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상처 입고 고통받은 사람은 어느 한 명이 아니었다고. “나는 내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79페이지)다며, 작가가 여성의 삶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흐름으로 읽다가 분위기 전환하듯 양가감정을 느끼게 한 작품이 「가출」이었다. 어느 날 편지 한 통 써놓고 가출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두 아들, 화자인 막내딸이 자주 모인다. 처음에는 사라진 아버지를 걱정했지만, 이상하게 이 가족은 부재중인 아버지의 자리에 익숙해진다. 항상 중얼거리듯 말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린다.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난 엄마가 이제야 편안해진 모습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생애를 본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의무로 살아온 세월에 퇴직하고 이제는 좀 편안해진 아버지. 가출한다고 하고서 가족들을 놀라게 하지만, 정작 본인은 딸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을 알린다. 앞서 읽은 작품들이 억눌리고 차별받아왔던 여성의 삶을 보여줬다면, 「가출」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겪어온 세대의 흔적이고 살아가는 일의 고충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생각할 때 한 인간의 생을 보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자 남자,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 이런 구분 말고 그냥 인간, 사람, 인생을 보는 일에 먼저 시선을 던져야 한다고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잘살아 보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빛. 흐릿하지만 분명 빛이었다. 하얀 별들이 콕콕 찍혀있는 까만 하늘에 파란빛과 노란빛이 규칙 없이 섞인 한 줄기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그러다가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고 넓어지고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지난가을, 서울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빛. 하지만 더 크고 선명하고 역동적인 빛. 누군가 빛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우주의 창을 여는 것 같기도 했다. 살이 있는 무엇.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적인 영혼.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빛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가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얼어 버릴 틈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245~246페이지, 오로라의 밤)
다양한 여성의 삶을 보여 주면서도 다시 보고 새롭게 보기를 바라는, 함께 여행하는 고부가 수평적 관계가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페미니스트 삼대가 업뎃하고 균형을 이루는, 우리가 쓰고, 우리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첫사랑 2020」이 써 내려갈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어린 영혼들이 펼칠 내일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달라지고 있을 한 사람의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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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이야기가 모두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묘사하여 인물들의 감정에 폭 이입된다. ‘여자아이는 자라서’ 이러한 문제가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실은 비일비재하다. 그 형태와 정도만 다를뿐이다. 나조차도 이러한 문제에 멋지게 대응하는 법을 잘 모른다.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는 어른이고 싶다. 우리가 쓴 것, 그리고 우리가 쓰지 않은 것들.. 많이 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아득한 길 ...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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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조남주 작가님의 책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었다. 내가 여성서사 책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그 책이었으니, 내 인생에서 꽤 큰 변화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았나싶다. 한 사람의 인생을 시작부터 끝까지 그린 82년생 김지영과는 다르게 이 책은 여러 연령대의, 여러 명의 여성의 인생을 각각 다룬 단편집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도, 삶을 살아내는 방식도 제각각 다른 법이니, 이런 형식의 책이 더 와닿는다고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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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님을 처음 알게된 것은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였다. 이후로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완전하게 각인되었고, 더불어 <사하맨션>과 <그녀 이름은>이라는 작품까지 보면서 내가 맨 처음 접했던 책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저자가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앤솔로지 책인 <현남 오빠에게>에서 접했던 표제작이 정말 인상 깊었는데, 이번 신작 소설집에 그 작품이 수록되어 많이 반가웠다. 현남 오빠에게는 정말 공감하는 내용이 수두룩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되었다. 편지 마지막 부분에 반말과 함께 내지른 욕은 요즘 말로 정말 사이다였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오로라의 밤>이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누구의 어머니나 누구의 아내가 아닌 그냥 여자와 여자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오로라를 보러 떠난 여정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시어머니가 하는 말들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쩌면 이제야 그녀들이 비로소 온전한 그녀들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딸의 아이를 봐주기 싫다는 며느리의 솔직한 고백에 작년과 올해 고생하신 우리 엄마가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만날 수 있어서 뜻깊은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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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님의 <우리가 쓴 것>을 읽고 작성하는 독서 후기 입니다. 조남주 작가님의 새 작품이라 주저 없이 구매하였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만족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단편 하나하나가 너무 맘에 들어서 아껴 읽고 또 아껴 읽었네요.. 마음에 와닿는 단편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오래오래 글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램이고 다른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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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는 오래전 부터 동경해 오던 작가이다. 그녀의 소설 한권 한권이 출간과 함께 내 방, 내 집, 우리 집, 결혼 후 거실 내 책장에 순서대로 알알이 맺히고. 여름만 되면 자꾸 읽게 된다. 이번 우리가 쓴 것. 역시 여름을 맞아 책을 펼쳐봤다. 매화나무 아래. 를 읽으니 앞으로 나에게 닥칠 머잖은 미래가 쓰인 글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오랜 시간 투병 생활로 병원 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에 대한 시린 경험이 있기에 마치 실사를 보고 그대로 기록한 듯한 그녀의 담백하고 허세 없는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겨우 읽어 내려갔다. 아끼고 아껴서 올 여름 내내 아껴 읽을 테다. 앞으로의 그녀 소설을 읽기 위해 블루베리도 꾸준히 먹고 내 눈과 시력을 보호해야지.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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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글은 참 잘 읽힙니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려도 참 좋은데, 한편 한편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도 참 좋습니다. 저는 예전에 읽었다가 이번에 독서모임을 하며 다시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참 좋더라구요. 8편의 이야기가 모두 공감이 가서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함께 모임하는 사람들도 모두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해서 추천한 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