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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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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다닌 지난 기나긴(?) 몇 년의 시간. 우리 인생의 불과 몇 년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많은 것을 잃었고 또한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감히 모두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이 회복(?) 된 지금 과연 우리는 이전 그대로 다시 돌아 갈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난 후 느낌은 너무 어둡다. 회복이 가능하려면 지금까지 시도 해 보지 않았던 사고가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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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다닌 지난 기나긴(?) 몇 년의 시간. 우리 인생의 불과 몇 년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많은 것을 잃었고 또한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감히 모두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이 회복(?) 된 지금 과연 우리는 이전 그대로 다시 돌아 갈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난 후 느낌은 너무 어둡다. 회복이 가능하려면 지금까지 시도 해 보지 않았던 사고가 필요하며 또한 회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르조 아감벤의 얼굴없는 인간과 같이 읽기를 권해 드린다.

YES마니아 : 로얄 m**a 2023.06.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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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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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Pandemic 2 & chronicles of a time lost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면서 교수인 Slavoi zizeck 저자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속에서 ‘일상성’ 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에 대하여 새로운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일상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덕분에 대응피로나 우울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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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Pandemic 2 & chronicles of a time lost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면서 교수인 Slavoi zizeck 저자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속에서일상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대하여

새로운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일상성 유지하려는 노력 덕분에 대응피로나 우울증이 생기고

이제는 이런 것들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순응이라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팬데믹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확진자수, 백신접종, 집단감염, 변종바이러스,

돌파감염… ‘ 반복되면서 더욱 상태가 나빠져 가는 듯한 지루한 소식들 속에

벌써 2년이라는 답답하고 힘겨운 시간들이 흐르면서 장기간 신경쇠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가 가져다준 '가족과 이웃 간의 연대와 재결합' 같은 경이로운 반전

그리고 앞으로 가져다줄 '새로운 뉴노멀 시대'로의 대전환 대한 기대감도 같이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우리는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가?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가?

아니면 팬데믹을 우리가 새로운 포스트 휴먼시대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 속에서 우리는 포스트 휴먼 시대로의 진입의 도전을 받아 들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고,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 아니라, ‘새로운 일상 건설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나서야 하며

우리는 사회적 전체를 새로운 형대로 발명을 해야 한다 라고 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덕분에 우리는 돈이냐 목숨이냐? 라는 질문들을 일상 속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잃는 것은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사회적 문화적 불편함을 초래한다고 참지 못하는 일부 시민들의저항

남아프리카, 콜롬비아 같은 국가에서는 팬데믹으로 더욱 나빠진 가난 때문에

더는 견딜 없어서 목숨을 봉기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오랜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바이러스의 등장과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

경제적, 사회적인 불평등은 팬데믹으로 인한 산출물이 아니라

이제껏 우리에게 모른척하고 지내고 있는 익숙한 현상일 뿐이기도 합니다.

책의 내용은 2 이상은 읽어야 정도로 다소 딱딱하지만,

팬데믹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날 있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억할 만한 내용들을 옮겨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우리가 거의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듯, 진짜 문제는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삶이 그저 지루하게 이어지며 항구적인 우울증을 유발하고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백신에 거는 희망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뒤섞인 지금,

우리는 끝없이 늦춰지는 신경쇠약 속에 살아간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흔히 의미 없는 고통과 함께 뼈아프게 끝나는 비참함 자체이다.

국가주도의 봉쇄와 자가 격리는 우리 삶을 단순한 생존으로 축소시켜버리는 조처이고,

봉쇄 지침에 따르는 것은 단지 생존할 기회를 얻기 위해 삶다운 삶을 기꺼이 포기하라는 이야기 이다.

봉쇄와 격리를 없애는 일이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답은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감염을 무릅쓰고 안전하지 않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수십 만에 가장 임대료 파업을 하고 있고

최소 150 차례 이상의 파업과 작업 중단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코로나 봉쇄가 이루어진 동안 불과 23 만에 2890 이상의

달러를 벌어 들였다고 한다.

팬데믹에 대응하여 부과된 모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사람들이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의 진짜 문제는 사회적인 고립이 아니라 타인과의 사회적 연결 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에 의하여 운용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수천만 명의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 의해 지탱이 된다.

그들은 공장에서, 데이터 센터에서, 콘텐츠 조작 작업실에서, 전자기기 착취공장에서,

리튬 광산에서, 산업화된 농장에서, 그리고 교도소에 갇혀 질병과 과도한 착취로 부터

보호받지 못한 버려진다.

19세기 초반, 웨일즈의 수많은 광부들은 안전모와 다른 값비싼 보호장비를 갖추질 거부했다.

보호장비기 석탄광산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의 가능성을 엄청나게 줄였음에도

거부했던 것인데, 장비를 구매하는 비용이 들의 급료에서 공제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인 오늘날에는 노동자들이 이와 유사한 절망적인 계산을 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돈이냐 목숨이냐 가운데 어쩔 없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오래된 선택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돈보다 삶을 선택하고 집에서 자가격리를 한다면 당신은 살아남지를 못할 것이다.

격리대신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하여 위험한 일터로 돌아가야만 한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작업장에서 죽을 권리를 달라고 시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을 모욕하기 까지 했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백인 미국인보다 바이러스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리하여 팬데믹은 미국에서 계급차별이 만들어낸 아주 구체적 결과는 초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생태적 위기, 인종차별주의 3가지 영역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감염병은 우리가 자연환경과 맺고 있는 불균형한 관계가 원인이 되어 폭발한 것으로,

단순한 건강문제에 불과하지 않다.

우리는 팬데믹이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었고, 이제 어떤 것도 전과 같지 않다는 애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실제로 바뀌지 않았다.

팬데믹은 단지 이미 존재했던 것을 좀더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뿐이다.

우리는 일상습관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생기는 충격의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된다.

일과 후에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같은 평범한 일들이 불가능한 상황 말이다.

조지오웰은 하층계급의 사교생활에서 선술집이 핵심 요소라고 하였다.

인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가장 위협은 바이러스가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도력과 연대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바이러스는 분열에서 번창을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가난, 극단적인 불평등,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시가 판을 치는 세상, 그리고 법적이고

경제적인 정책들이 가난을 종결시키기 보다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부가 창출되고 유지가 있도록 설계된 세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도달하게 만들었다.

결론은 우리가 가난이라는 팬데믹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 팬데믹을 봉쇄할 없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행복해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돈을 쓴다.

우리가 새로운 사회적 삶의 방식을 창안하지 못하면,

우리의 상황은 그냥 조금 나빠지는 그치지 않고 훨씬 악화될 것이다.

이제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은 그저 우리가 바이러스에 항복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백신이라는 희망은 있지만, 우리는 다가올 다른 감염병과 생태적 재난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곤경들이 마술처럼 사라져서 과거의 일상성이 돌아 것이라고 기대를 해서는 된다.

 

백신의 분배는 가장 윤리적인 시험대가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궁극적인 선택은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팬데믹이 우리가 새로운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 중에 하나임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판단해야 한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건설하는 힘들고 고통스런 길로 나서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발명해야만 한다.

현실과 꿈의 대립관계에서 환상은 현실 쪽에 있고,

우리가 트라우마적인 실재와 마주치는 것은 꿈에서다.

따라서 현실을 견딜 없는 사람에게 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꿈을 견딜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팬데믹으로 인하여 공동체적인 삶에서 격리된 삶으로 이동한 아니라,

그보다는 친밀성과 거리두기가 하나의 양상에서 다른 양상으로 복잡하게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방역으로 인해 실질적이고 육체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여지는 감소했지만

사회적 의존과 통제에 관한 새로운 규범이 등장을 했다.

팬데믹은 우리의 몸에 일상성 우리의 삶을 정의하는

기초적인 습관들의 일부에 대한 감각을 약화시켰고,

우리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압박을 한다.

지구가 네트워크로 연결이 지금, 나라의 성공적인 방역이

모두의 삶의 안전으로 이어지니 않는다는 것이다.

백신에 대한 민족주의가 지금과 같이 횡행한다면 방역에 뒤쳐진 나라를 통해 바이러스는

새롭게 변이하여 코로나 21, 코로나 22 등으로 계속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j***6 2022.04.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