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오면 좋겠어요." "올. 겁니다."
비가 오면 좋겠다. 무섭게 치솟은 열기를 식혀줄 비가 잠깐씩 왔다 가니 아쉽다. 이런 비라면 우산을 쓰지 않고 실컷 맞아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학창 시절 친구와 함께 퍼붓던 비를 맞으며 하교하던 그때의 추억만큼 즐겁진 않겠지만.ㅎ
해주는 비를 좋아한다. 비의 낭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비는 구질구질함을 덮어주기 때문이다. 지금의 계절처럼 해주 역시 여름의 중심부를 견디고 있다. 해주는 자신의 인생이 사막 같다고 느낀다. 거기에 지표면을 데운 공기까지 해주의 청춘을 무자비하게 녹이고 있다. 밑바닥 가득 조여오는 숨통을 건물 맨 꼭대기 가장자리 작은 창에 꽂아두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다. 윗공기의 로망이 희망이든, 창이라는 형태에서 찾은 정서가 한 줄기 빛이 되었든 해주가 바라는 건 저 창의 안쪽에 놓여 보는 것이다.
가난은 인간을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가족의 뒤통수를 때리고 나가버린 엄마로 인해 남은 식구들의 삶엔 먹구름만 가득이다. 해주의 미래는 가난에 저당잡히고, 아빠는 과거에 발목 잡히고, 영주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편직기의 소음은 허름한 공간을 가득 채우며 텁텁한 열기를 만들어 내고 이십사 시간을 돌리고 돌려도 줄어들지 않는 부채에 인생이 공허하다.
이쯤 되니 아버지와 영주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은 안 하고 밥만 많이 처먹는 건 두 사람의 공통점이고 아버지는 잠을 많이 처자는 것으로, 영주는 되지도 않는 죽음의 곡조로 삶을 위안 삼는다는 것이 다르다.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은 사막 위를 떠다는 무능한 구름일 뿐이다.
돕고, 싶습니다. -p.102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쓴 남자가 주위를 얼쩡거린다면 지금 같은 세상에선 거리를 둬야만 하겠지만 해주는 저러고만 있는 우산씨의 처지를 헤아려 본다. 한결같이 펼쳐 든 우산 곁을 다가선 해주와 기꺼이 우산 속을 내어 주는 우산씨. 해주를 위해, 해주를 위한 우산씨의 말들은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하듯 따스하고 정이 넘친다. 우산씨의 도시락에서 엄마를 떠올리는 해주를 보며 혹시 우산씨네 도우미 아줌마의 정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해주의 대나무숲이 되어주고 해주의 창문의 정서를 공감하고 해주의 피로회복제를 자처한 진정 그는 누구일까. 정말 해주의 말대로 사는 게 고달픈 이들에게만 보이는 거라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텐데. 샤를리즈 테론 주연인 영화 <툴리>가 떠오른다. 못 보았다면 이 영화 강추! 우산씨가 명품으로 휘감은 것도 역시 해주의 바람이 형상화된것이고.ㅋㅋ 아무튼 우산씨가 기다리는 건 그런 고달픈 영혼이 아니었을까. 그는 돌보러 온 자다.
"접을 수, 없습니다"라며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던 우산씨는 시위대 틈에서 밟혀죽은 비둘기를 챙기려다 우산의 간극 따위 무시하고 밀쳐대던 사람들로 인해 우산도 망가지고 손도 다친다. 나갈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던 해주 역시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욕지기에 상처를 입는다. 완강함으로 버티기에 세상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게다가 해주의 사막은 넘치는 물로 인해 온통 망가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우산씨같은 이가 있다면 상처를 위로받으며 살아가게 되겠지.
엄마만 있었어도! 해주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영주는 희망을 노래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행과 절망론을 너무나 그럴듯하게 단정하는 영주에게 설득당하는 것보다 막연한 기대에 서슴없이 단정하는 우산씨에게 설득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비도, 긴 잠도, 파스 냄새가 사라질 날도, 집 나간 엄마도, 빚을 갚을 날도, 행복도 내일이면 올 거라는 느긋한 태도를 닮아가던 해주를 나도 닮아가보련다.
이쯤 되니 집을 나간 엄마도 이해가 되고 망가짐을 자초하던 영주도 이해가 된다. 꿈을 꿔보지도 못한 해주도, 꿈을 접어야만 했던 재하도 안쓰럽다. 그렇지만 추잡하고 무능력하고 찌질한 아빠는 참 이해가 안 된다. 아빠만 정신 차리면 내일이라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해주의 충고를 제발 실천하고 살기를.
어떤 화가는 우산을 비밀스러운 하늘이라고 했대요. -p.172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 보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산이 등장한다. 우산을 펼치면 오로라에 눈을 뗄 수 없다. 그런 예쁜 우산속이라면 비밀스런 하늘을 간직한듯한 기분이 들것만같다. |
|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행복해 질 겁니다 언제요 내일 (227쪽) 13살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평소와 다른 맛있는 반찬 다섯 가지를 해 놓고. 주인공 해주는 오빠와 함께 반찬 투정을 하며 그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이 때부터다. 가장 노릇을 한게. 아빠는 전국에서 엄마를 봤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곳으로 달려갔다. '집에 올 생각이 없으니까 데려와야지'라면서. 삶에 지친 해주에게 매일 우산을 쓰고 다니는 우산씨가 나타난다. 해주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순간에도, 식곤증으로 힘들어하는 해주를 도와주려고 장갑 공장일을 도와주는 순간에도 우산을 접지 않는다. 우산씨가 해주의 인생에 나타나는 순간, 어떤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다. 그저 해주가 만든 반찬보다 더 맛있는 반찬을 들고 나타나 같이 점심을 먹고, 해주가 쓰는 소설을 어디까지 썼는지 확인하며, 또 다른 기다림이 만들어졌다.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지친다. 해주는 우산씨를 '처음에는 분명 뭔가를 기다렸으나 시간이 오래돼서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175쪽)라며 우산씨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해주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 건 우산씨가 아닐 수도 있다. 정부에서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공장을 비워달라고 하는 정부 일수도, 자매를 두고 가출을 해 버린 엄마일 수도 있다. 해주는 기다림에 지쳤을 때,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우산씨를 만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우산씨는 해주에게 소설을 첫문장이 아니라 끝문장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면서. 해주의 기다림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행복은 오는 걸까? '내일'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르기도, 매일 우산을 들고 광장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좀머씨 이야기'가 연상될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아마도 끝은 '죽음'이 아니라 '시작'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기다림이 고통이 아니라 설렘이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우산을 든 당신이 어깨가 많이 아프지 않기를, 당신 인생은 기다림에 오래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내가기다리는 사람이니까. (230쪽,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