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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 다나카 야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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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의뢰한 메디치 가문의 기상에 감동한 젊은 예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을 참고하면서 독자적인 건축, 조각, 회화를 창조해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인 동시에 이탈리아가 흑사병의 폐허로부터 재생하는 것이었지요.   - p. 13 中에서 -  부활 또는 재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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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의뢰한 메디치 가문의 기상에 감동한 젊은 예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을 참고하면서 독자적인 건축, 조각, 회화를 창조해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인 동시에 이탈리아가 흑사병의 폐허로부터 재생하는 것이었지요. 

 - p. 13 中에서 -


 부활 또는 재생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과 예술에 대한 부흥 운동으로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왜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저자는 그러한 물음에 대하여 흑사병을 언급하고 있다. 14세기 중반의 흑사병은 유럽에서 무려 2천만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켰으며 수많은 도시를 몰락시켰다. 전례가 없던 이러한 피해를 유럽은 힘겹게 극복을 해야 했는데, 그 재건의 과정에서 예술은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도시 곳곳을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는 것이 그 과정의 하나였기에 예술에 대한 수요는 폭발하게 된다. 이는 메디치 가문과 같은 패트런(후원자)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니 경제와 예술의 관계가 상당히 밀접함을 보여준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예술이 경제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향이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다루면서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물론 메디치 가문이 언급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저자는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를 썼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이 책이 명화에 깃든 경제사적인 의미를 다루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오히려 경제사가 예술에 끼친 영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유명 작품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분명 기존의 미술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 로마 교황이나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의뢰 요청을 받아 제작된 것이었다. 크리스티나 대성당의 벽화에 대한 의뢰가 없었다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그의 역작 중 하나인 [다비드 상] 역시 원래는 피렌체 대성당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또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 식당 벽화였으니 이들의 천재적인 재능과 업적은 수요와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 p. 91. 렘브란트 판 레인의 [플로라의 모습을 한 사스키아] )
 

 렘브란트가 자신의 아내인 사스키아를 모델로 그린 그림에서 저자는 그녀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꽃 중 하나인 튤립에 주목한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대부분 렘브란트의 아내인 사스키아에 초점을 맞추거나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더 관심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렘브란트가 활동하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네덜란드가 신흥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쌓던 시기였음을 알게 된다면 왜 저자가 이 작품에서 튤립에 주목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네덜란드는 막대한 부를 주체하지 못하여 투기 열풍이 일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튤립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열풍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지만,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부유한 시민 출신의 후원자들로 인하여 그림 역시 엄청난 수요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렘브란트는 초반에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말년에는 파산하게 된다. 그의 그림 실력이 시대에 뒤쳐져서 그랬던 것일까? 렘브란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후원자의 주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네덜란드에서는 그림이 유통되며 사고 파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즉, 주문 생산이 아니라 고객들의 수요를 미리 예측하여 그림을 생산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던 방식에 익숙했던 렘브란트는 고객의 니즈를 미리 파악하여 거기에 맞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된 것이다. 렘브란트의 이러한 삶은 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이기도 하지만, 성공과 몰락을 오갔던 그 과정은 예술이 경제 원리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를 기점으로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나라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였다. 경제적인 지원 및 후원 또는 수요에 의하여 예술의 발달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후 프랑스가 이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프랑수아 1세는 레오느라도 다 빈치를 프랑스로 초빙할 정도로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후 절대주의를 추구하게 되는 프랑스는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유럽의 예술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에 프랑스는 체계적으로 자국의 예술을 관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구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1648년 왕립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였다. 이 기구를 통하여 프랑스의 예술가를 육성하고 배출하여 예술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고, 실제로 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은 아카데미에서 푸생식의 고전주의 회화 교육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 살롱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파의 선구자이며 생전에 유명 화가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판매한 것이 단 한 건이라면 클로드 모네는 생전에 수많은 작품을 비싼 값으로 팔아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클로드 모네 역시 초반에는 프랑스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살롱에 지속적으로 참여를 하였지만, 계속 낙선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무명의 모네 입장에서는 당연히 살롱에 입선하여 이름을 알리고자 하였지만, 그의 그림은 살롱이 요구하는 고전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당선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비록 체계적으로 프랑스의 예술 수준을 관리하고 향상시켰지만, 파격적인 양식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는 새로운 기법에 대해서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후원자의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물론 프랑스의 아카데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이 나중에 미국의 부유한 계층의 수요로 인하여 유명세를 탄 것 역시 그러한 또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 189. 윌리엄 호가스의 [진 거리] )
 

 윌리엄 호가스의 [진 거리]는 직관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걸맞는 작품인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충격적이다. 한 여자는 술에 취해 아기를 떨어뜨리고, 다리에는 매독으로 생긴 상처가 가득하다. 심지어 오른쪽 끝에는 한 여자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술을 먹이기까지 한다. 이런 빈민가의 상황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나타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어두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그림은 분명 누군가의 후원이나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을 위한 교훈적인 목적으로 이런 판화를 제작하였으니 부유한 계층의 후원을 받은 여타의 예술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경제에 예속되지 않은 그림이 오히려 그 당시의 경제를 잘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원들이 식당에서 연주를 하다가 강마에에게 들켜서 욕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또는 순수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과연 현실적인 부분과 완전히 별개로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라는 제목을 내걸고 있지만, 예술가들이 애써 부정하는 돈과 예술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예술적인 해석보다는 경매에서 값이 얼마로 책정되었느냐로 그 가치를 짐작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g*******7 2021.09.14. 신고 공감 15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명화를 보면서 세계 경제사를 알아가는 즐거움
"명화를 보면서 세계 경제사를 알아가는 즐거움" 내용보기
그림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화, 역사, 문학도 그림을 통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나로서는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사회상, 사람들의 사고 방식, 당연히 화가가 세계를 바라보던 방향등 그림 한 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세계 경제사를 명화로 배우자고 이야기했다. 경제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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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화, 역사, 문학도 그림을 통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나로서는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사회상, 사람들의 사고 방식, 당연히 화가가 세계를 바라보던 방향등 그림 한 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세계 경제사를 명화로 배우자고 이야기했다. 경제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왠지 복잡하게 느껴져 한쪽으로 밀어두었는데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명화를 통해 경제를?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소영 작가의 <그림 속 경제학>이라는 책을 통해 그림과 경제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난 적이 있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는 공인회계사무소를 운영하는 회계사로 비지니스 스쿨과 기업 등에서 회계, 경영 컨설턴트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한편, 만담가와 함께 하는 이벤트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회계사이기에 명화에서 경제가 보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높임말로 조근 조근 강연하듯 쓰여진 글은 읽기에 편했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라별로 나눠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구성했다.

 

1. 이탈리아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교역과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교회에 대한 불신도 깊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교회와 손잡고 도시 재건을 꾀하며 젊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건축물을 장식할 작품들을 의뢰했다, 예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을 모방하고 , 독창성도 발휘하며 흑사병의 폐허로부터 재생을 꿈꾸었고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3차원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원근법을 고집했던 이유가 원근법에는 인간중심의 자세가 있기 따문이라고 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를 이야기했다. 단지 종교화로만 보았던 이 그림에서 저자는 인간중심의 르네상스를 말했다.

 


 

2.플랑드르

 

 14세기가 되면서 육로보다는 해로를 통한 교역이 늘어났는데 유통되는 다양한 상품들 중에는 대형 그림들도 있었고, 이렇게 남북 문화교류가 시작되면서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플랑드르에서도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플랑드르의 얀 반 에이크에 의해 만들어진 유화물감, 조선업이 성행하던 베네치아에서 돛을 만드는 천을 이용해 만들어진 캔버스는 회화계의 혁명을 일으켰다. 피터르 브뤼헐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에는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에서 세금을 걷으러 온 세금 징수원에게 사람들이 인두세를 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빈곤, 기근, 무거운 세금으로 피폐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면죄부 판매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신교도가 탄생하면서 종교 갈등은 커졌고, 플랑드르는 신교 국가 네덜란드와 가톨릭 국가 벨기에로 나뉘었다. 네덜란드는 교회라는 후원자가 사라지면서 부유한 시민들이 화가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종교화가 사라지고 집단 초상화와 집안을 장식할 수 있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로 회화의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면서 증권거래소도 생겨났고 다양한 상품거래도 하게되면서 튤립도 들어오게되는데, 튤립은 세계 최초의 거품경제를 일으켰다. 렘브란트의 <플로라의 모습을 한 사스키아>에서 가장 비싼 것은 머리에 장식한 튤립이었다 한다.  


 

3. 프랑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앙리 2세와 결혼한 카테리나에 의해 이탈리아의 예술, 음식이 프랑스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에 비해 예술적으로 하위에 있던 프랑스는 1648년, 왕립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이탈리아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은 회화 교육을 받고,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 살롱에 작품을 발표했는데, 살롱에서 입선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처럼 우아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로코코 회화가 탄생했다. 귀족들은 로코코 그림으로 장식하고, 호화로운 요리를 즐기며 국가재정을 탕진했고,그 부채 해결을 위해 세금을 만들어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로코코 회화는 시들해지고 신고전주의 회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혁명후 혼란을 해결한 나폴레옹은 전쟁중에 많은 예술품들을 약탈했다. 그 미술품들을 루브르 궁전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공개했는데, 이때부터 회화는 사적 소유물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게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농민에게 토지를 불하했는데 그러한 농지를 사서 경작하는 소농이 밀레가 그린 사람들이었다.  


 

 살롱 시스템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인상파가 등장했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르누아르의 그림 <사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보고 저자는 부르주아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정신만 있을뿐이라고 해서 낯설었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르누아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던 르누아르가 자신의 영혼을 팔지않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서 저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돈때문에 일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위해 일하는가. 어느 시대의 예술가도 이 같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에 대해 고민하지요. 르누아르가 이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준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릴까, 그것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헤. 이렇게 생각하면 돈 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양립할 수 있지요. 돈과 보람의 양립을 몸소 보여준 르누아르, 역시 위대한 사람은 다르네요. 돈과 보람을 나누어 생각하는 우리는 아직 멀었나봅니다. -p 166

이처럼 저자는 그림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는듯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잠깐씩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저자의 이력이 책에서도 나타나는 것 아닌가싶었다.

 

 

4. 영국

 

 영국은 산업 혁명을 통해 부자가 되었지만 문화 수준에서는 이탈리아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는 유학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베니치아의 화가 카날레토의 그림을 좋아했던 영국인들은 부지런히 구입해서 영국으로 가져갔다. 이후에도 유럽 대륙의 혁명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많은 미술품들이 유입되었고, 미술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윌리엄 터너는 이탈리아 여행후 빛과 공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추상적으로 되어갔다. 터너는 산업혁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증기 기관차를 그렸는데, <비, 증기, 그리고 속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가 대표적이었다.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자주 만났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증기기관차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산토끼가 있는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 시간과 효율에 쫓겨 불행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을 담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정확히 터너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대 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 않았을까? 100년 정도 앞선 1751년 윌리엄 호가스의 <진 거리>라는 작품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이는 빈민가를 그렸다. 이들의 그림을 통해 우린 당시의 영국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영국 금융시장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금융맨들이 모여들어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해 고객에게 구입을 권유하거나 자신들이 직접 사들였다. 소유재에서 거래재로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미술품이 사유재에서 공공재로, 19세기 영국에서는 소유재에서 거래재로. 이렇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술품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영국에 살던 터너, 그의 시대에는 여기저기서 신기술, 신제품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차, 카메라의 사진, 튜브 물감등. 거기에 더해 미술시장의 변화도 있었죠.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목격한 인간은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내 시대는 끝났다고 단념하는 사람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 터너는 분명히 후자 쪽이었어요.-P 201

이 문장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문장이 아닐까? 현대는 더 심각한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따라가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멈춰있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5. 미국

 

 규율 바른 생활과 근면한 태도 덕분에 노동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영국에서 건너온 신교도들이 모여 살던 지역은 보스턴이었다. 보스턴 사람들은 농민화가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다. 보스턴 정착민들은 밀레의 농민화에서 근면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위작이 적다는 이유로 인상파 그림을 매력적으로 생각했는데, 내용면에서도  종교적인 그림보다는 풍경화나 인물화를 선호했기때문이었다.  인상파 회화가 미국에 퍼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미술상 뒤랑 뤼엘이었다. 화가가 꿈을 좇는 이라면, 그것을 상업적으로 지탱하는 것이 미술상인데 미술상의 본보기로 뒤랑뤼엘을 꼽았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림 자체로서의 경제적인 가치에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마네의 그림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인상파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림인데, 이 책에서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들었다. 카운터에 있는 술병중에는 영국의 유명 브랜드 '바스'맥주병이 있는데, 거기에 붙어있는 라벨은 1876년 1월 1일 영국 최초로 등록된 제1호 상표라고 한다. 그림 속에서 영국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법제화를 실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19세기 영국, 미국, 아프리카 사이에 삼각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한다. 영국의 자금과 노하우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 양국의 거대한 '글로벌 돈벌이 프로젝트'.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와 면화 농장에서 일하게 하고, 그들이 생산한 면화를 가공함으로써 많은 수익을 거뒀다. 이 삼각무역 시대를 볼 수 있는 그림이 있었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 <뉴올리언스 의 면화 거래소>에서 당시 재배한 면화를 거래하는 사무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미술에 대해서 특별하게 느낀 점은  미술관이 시민들의 미술품 기증으로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컬렉션을 '공공재'로서 미술관에 기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단기간에 경제대국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문득 멈추게 된 순간, 죄책감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하는 마음은 높이 사야할것같다.

 

 '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에 어서 오세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미술을 경제의 흐름으로 보자는 취지의 책이었다. 흑사병이 시작되었던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커다란 흐름을 보여주었는데 그 방대한 양을 담기에는 부족한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한 점의 작품을 두고 그 그림이 그려졌던 시대의 경제적인 상황을 하나 하나 짚어주는 것이어서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각 나라간의 교류, 종교 갈등,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변화등 커다란 흐름을 그림과 함께 볼 수 있기때문에  미술에 대해서, 세계 경제사에 대해서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좋을 것같다. 코로나로 인해 행동반경도 줄어든 이 시기에 이런 그림책 한 권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YES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j*****3 2021.08.13. 신고 공감 12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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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최인영 휴머니스트/2021.7.12. sanbaram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명화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명화의 의미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만큼 명화 속에는 그 시대의 경제상태와 사회질서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경제인이 본 명화의 세계를 통해 세계경제의 흐름을 파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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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최인영

휴머니스트/2021.7.12.

sanbaram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명화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명화의 의미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만큼 명화 속에는 그 시대의 경제상태와 사회질서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경제인이 본 명화의 세계를 통해 세계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는 와세다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후 외국계 컨설팅 회사 등을 거쳐 현재 다나카공인회계사사무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2시간 만에 감잡는 왕초보 회계사>, <숫자 1도 모르는 당신이 마케팅 천재가 되는 법> 등이 있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7개의 주제를 미술관에서 각 실을 돌면서 미술품을 감상하듯 설명한다. 1 .흑사병과 불황을 극복한 이탈리아, 2. 가난을 완강히 거부한 플랑드르, 3 증오를 금융 파워로 바꾼 네덜란드, 4. 혼란 속에서 브랜드를 만들어낸 프랑스, 5. 반항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프랑스, 6. 기술 혁신의 불안을 극복한 영국, 7. 금욕과 탐욕에서 이익을 낳은 미국 등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탄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화 미술의 변화가 생기게 된 원인과 그 변화 과정을 경제문제와 연관시켜 하나씩 설명한다. 따라서 그림을 보는 재미와 그 시대 경제의 흐름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중세의 하와이, 시칠리아섬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 어디든 갈 수 있었어요. 또 기후가 좋아서 농산물이나 과일이 풍부하고 신선한 해산물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었겠지요?(p.19)” 이런 좋은 조건을 갖춘 섬이기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려는 나라들은 시칠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툴 수밖에 없었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 있는 말라티나 예배당은 노르만 궁전 안에 위치한 왕실 예배당인데, 아찔할 정도로 훌륭하여 찾는 사람마다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며 감동을 했다고 한다. 예배당 곳곳에는 가톨릭 종교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주변의 벽과 기둥, 바닥에서 이슬람의 기하학적 무늬를 볼 수 있다. 시칠리아가 문명의 십자로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종교화가 그려지게 된 이유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 가톨릭교의 가르침은 성직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설명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성직자들은 ‘그림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당시 성직자들은 종교화로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p.24)” 이탈리아 에서는 특이하게 3월 24일에 결산을 한다. 흔히 결산일은 월말이나 연말인데, 그 이유는 3월 25일에 수태고지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날을 한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이후 13-14세기에 수태고지 그림이 많이 그려진다. 중세 고딕 시대에 교회가 많이 세워지면서 그림 주문도 늘었기 때문이다.

 

북쪽의 유화물감과 남쪽의 캔버스가 만나다

“그들은 아마씨유에 안료를 배합해 물감을 만들었습니다. 그 끈적끈적한 물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유화입니다. 유화의 발명으로 덧칠이나 그러데이션 표현이 가능해졌고, 얀 반 에이크를 비롯한 플랑드르 화가들은 섬세하고 수준 높은 묘사 능력을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p.56)” 유화는 남쪽의 아탈리아 화가들에게도 전해졌다. 다빈치 등 많은 화가가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발명된 유화 기법이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회화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또한 조선업이 성행했던 베네치아에서는 돛을 만드는 천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천은 목판처럼 그림이 상하지 않았고, 둥글게 말아 쉽게 휴대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베네치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캔버스는 북쪽 화가들에게도 전해졌고, 그곳에서도 캔버스가 목판을 대체해갔다. 북쪽에서 발명한 유화기법과 남쪽에서 발명한 캔버스의 만남이 바로 그 유명한 ‘캔버스에 유채’라고 한다. 이 형식은 이후 회화계의 ‘표준’이 되었다.

 

가톨릭교의 성화와 신교도들의 일반화 후원

플랑드르와 브라반트에 퍼진 신교 세력에 화가 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국은 북부 신교세력과 전쟁을 하게 된다. 신교도들은 오랜 전쟁 끝에 독립을 이루어 네덜란드를 건국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부유한 시민들이 화가들을 지원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종교화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야경>은 렘브란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민병대원들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이지요. 그런데 이 그림의 배경은 밤이 아니라 낮이고, 제목도 렘브란트가 지은 게 아닙니다. 그림에 칠한 니스가 후일 검게 변해서 밤을 그린 거라 착각한 사람들이 멋대로 ‘야경’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지요.(p.86)” 주목할 것은 이전의 그림처럼 종교화 같은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성경>이나 신화에 관련된 어떤 요소도 없이 그냥 인간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이것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집단 초상화다. 집단 초상화에 나타나는 비종교적 경향은 네덜란드에서 또 다른 장르들을 낳았다. 이제 풍경화와 정물화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 등이 많이 그려졌다. 그림의 크기도 점점 작아졌다. 후원자가 부유한 시민들로 바뀌면서 집단 초상화가 등장했고, 일반 시민들까지 그림으로 집 안을 장식하게 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의 작은 그림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그림이 주문생산에서 시장 유통 상품으로 변화 하면서 화가들도 시장의 수요를 예측할 수 있어야 했다.

 

프랑스의 예술가 육성 아카데미

“우선 목표는 문화, 그러는 김에 경제까지 ‘이탈리아를 따라 잡고 추월’하기 위해 설립된 프랑스의 예술가 육성 아카데미, 이 아카데미는 실제로 훌륭한 화가와 조각가를 배출해 프랑스 예술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p.115)” 이렇게 도제제도 대신 만들어진 아카데미가 일종의 귀족이 되었다.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은 푸생식의 고전주의 회화 교육을 받고,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 살롱에 작품을 발표했다. 돈을 벌려면 이 살롱에서 입선해 이름을 알려야 했다. 나중에 살롱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지만, 아카데미의 보수적 경향은 계속 남아 있었다.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다비드가 나폴레옹의 주문을 받아 그렸다. 실제 나폴레옹은 나귀를 타고 알프스산맥을 넘었는데 다비드가 일부러 백마로 바꾸어 웅장하고 다이내믹한 그림에 이른 것이다.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이 그림을 여러 점 그리게 해서 여기저기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교묘한 이미지 전략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과 루브르미술관

“마침내 점령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네덜란드 등 예술품들이 지천으로 널린 나라들,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가 보고만 있을 리 없었겠지요. 프랑스군은 값진 회화와 조각 등을 부지런히 파리로 가져갑니다. 이렇게 약탈해온 다른 나라의 미술품을 아직 궁전으로 사용 중이던 루브르에 보관했습니다.(p.130)” 이렇게 전쟁의 혼잡 속에서 유럽 각지의 내노라하는 미술품이 프랑스로 유입되었다. 그 후 나폴레옹이 이 미술품들을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다비드가 주도해 루브르 궁전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이때부터 회화는 사적 소유물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미술사에서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프랑스 혁명과 인상파 화가들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아카데미와 살롱의 보수체제는 계속 유지되었고, 청년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리고 루브르 미술관 일반 공개까지 더해져 프랑스 회화의 새로운 흐름인 인상파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예술 후원자들도 변화하죠. 드디어 미술은 종교로부터 멀어져갑니다.(p.139)” 마네, 모네, 루느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은 놀랍게도 거의 비슷한 세대다. 이들은 서로 어울리면서도 경쟁심을 불태웠다. 그 경쟁심이 인상파 회화를 발전시켰다. 인상파 반항아들 가운데 가장 빨리 출세한 이가 르누아르였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던 그는 일부러 동료들과 거리를 두고 살롱에서 인기 있는 인물화를 그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의 초상>에서는 그림을 주문한 샤르팡티에 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완견과 이국적인 인테리어, 보석 등을 그려 넣었다. 이 초상화에는 이제 종교성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창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그림이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다. 그림 제목이기도 한 ‘올랭피아’는 당시 창부들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다. 당시 여성 누드는 신화나 종교에 관한 주제를 그릴 때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올랭피아>는 사회에 대한 명백한 ‘반항’이었다. 예상대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혹평을 받았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낭만파 화가 터너

“낭만파는 ‘나에게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점에서 터너는 확실한 낭만파입니다. 이탈리아 여행 후 빛과 공기를 그리기 시작한 그의 그림은 점점 추상적으로 되어갑니다. 산업혁명은 단기간에 분명한 결과를 요구했는데, 어쩌면 테너는 이런 풍조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p.184)” 터너는 <비, 증기, 그리고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에 새롭게 등장한 증기기관차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도 함께 그렸다. 이 그림의 왼쪽 아래 강에 희미하게 떠 있는 배가 보인다. 그림 속에 오래된 탈것과 새로운 탈것이 대비되어 있다. 이렇듯 슬쩍 역사를 그려 넣는 것이 터너 그림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의 미술관과 영국의 삼각무역

“이 삼각무역 시대에 번성한 무역항 뉴올리언스에는 많은 상인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면화 상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에드가 드가의 <뉴올리언스의 면화거래소>는 재배한 면화를 거래하는 사무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p.220)” <뉴올리언스의 면화거래소>를 그린 드가는 실제로 뉴올리언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의 집안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배경인 면화거래소도 삼촌이 경영하던 곳이었다. 드가의 제자가 된 메리는 인상파 화가로 활약한다. 뒤랑뤼엘과도 친분을 쌓은 메리는 귀국 후에 부호인 지인들에게 인상파 그림을 사라고 권유했다. 메리의 권유에 많은 사람이 인상파 그림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림들이 기증되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미국 미술관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 미국의 미술관은 이렇게 시민들의 미술품 기증으로 세워졌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멕시코 벽화와 디에고리베라

“멕시코 정부는 이즈덱 문명과 긴 침략의 여가를 국민에게 올바르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현재를 넘어 더 넓은 시야로 우리의 긍지와 역사를 보자!’ 그들은 굴욕의 역사를 덮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역사를 옛 영광과 함께 드러내기로 한 것이지요.(p.235)”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 벽화였다. 소수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벽화는 시청과 학교, 도서관 등 공공시설의 벽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를 그리는 데는 파리에 살며 피카소의 그림을 배우고 프랑스인을 주먹으로 날려버린 사나이 디에고 리베라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이렇게 그는 멕시코인의 정체성을 부활시키기 위해 많은 벽에 역사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k******4 2021.08.04. 신고 공감 1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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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최인영 휴머니스트/2021.7.12.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명화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명화의 의미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만큼 명화 속에는 그 시대의 경제상태와 사회질서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경제인이 본 명화의 세계를 통해 세계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내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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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최인영

휴머니스트/2021.7.12.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명화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명화의 의미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만큼 명화 속에는 그 시대의 경제상태와 사회질서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경제인이 본 명화의 세계를 통해 세계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는 와세다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후 외국계 컨설팅 회사 등을 거쳐 현재 다나카공인회계사사무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2시간 만에 감잡는 왕초보 회계사>, <숫자 1도 모르는 당신이 마케팅 천재가 되는 법> 등이 있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7개의 주제를 미술관에서 각 실을 돌면서 미술품을 감상하듯 설명한다. 1 .흑사병과 불황을 극복한 이탈리아, 2. 가난을 완강히 거부한 플랑드르, 3 증오를 금융 파워로 바꾼 네덜란드, 4. 혼란 속에서 브랜드를 만들어낸 프랑스, 5. 반항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프랑스, 6. 기술 혁신의 불안을 극복한 영국, 7. 금욕과 탐욕에서 이익을 낳은 미국 등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탄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화 미술의 변화가 생기게 된 원인과 그 변화 과정을 경제문제와 연관시켜 하나씩 설명한다. 따라서 그림을 보는 재미와 그 시대 경제의 흐름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중세의 하와이, 시칠리아섬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 어디든 갈 수 있었어요. 또 기후가 좋아서 농산물이나 과일이 풍부하고 신선한 해산물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었겠지요?(p.19)” 이런 좋은 조건을 갖춘 섬이기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려는 나라들은 시칠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툴 수밖에 없었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 있는 말라티나 예배당은 노르만 궁전 안에 위치한 왕실 예배당인데, 아찔할 정도로 훌륭하여 찾는 사람마다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며 감동을 했다고 한다. 예배당 곳곳에는 가톨릭 종교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주변의 벽과 기둥, 바닥에서 이슬람의 기하학적 무늬를 볼 수 있다. 시칠리아가 문명의 십자로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종교화가 그려지게 된 이유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 가톨릭교의 가르침은 성직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설명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성직자들은 ‘그림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당시 성직자들은 종교화로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p.24)” 이탈리아 에서는 특이하게 3월 24일에 결산을 한다. 흔히 결산일은 월말이나 연말인데, 그 이유는 3월 25일에 수태고지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날을 한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이후 13-14세기에 수태고지 그림이 많이 그려진다. 중세 고딕 시대에 교회가 많이 세워지면서 그림 주문도 늘었기 때문이다.

 

북쪽의 유화물감과 남쪽의 캔버스가 만나다

“그들은 아마씨유에 안료를 배합해 물감을 만들었습니다. 그 끈적끈적한 물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유화입니다. 유화의 발명으로 덧칠이나 그러데이션 표현이 가능해졌고, 얀 반 에이크를 비롯한 플랑드르 화가들은 섬세하고 수준 높은 묘사 능력을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p.56)” 유화는 남쪽의 아탈리아 화가들에게도 전해졌다. 다빈치 등 많은 화가가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발명된 유화 기법이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회화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또한 조선업이 성행했던 베네치아에서는 돛을 만드는 천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천은 목판처럼 그림이 상하지 않았고, 둥글게 말아 쉽게 휴대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베네치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캔버스는 북쪽 화가들에게도 전해졌고, 그곳에서도 캔버스가 목판을 대체해갔다. 북쪽에서 발명한 유화기법과 남쪽에서 발명한 캔버스의 만남이 바로 그 유명한 ‘캔버스에 유채’라고 한다. 이 형식은 이후 회화계의 ‘표준’이 되었다.

 

k******4 2022.10.08. 신고 공감 1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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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 :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   이 책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당대의 사회상뿐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과 행복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사람들을 어떤 시대에 무엇을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어떻게 극복해왔을까에 대해 그림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1. 흑사병과 불황을 극복한 이탈리아 십자군 전쟁부터 르네상스까지 11~15세기 이탈리아 회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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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 :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

 

이 책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당대의 사회상뿐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과 행복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사람들을 어떤 시대에 무엇을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어떻게 극복해왔을까에 대해 그림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1. 흑사병과 불황을 극복한 이탈리아

십자군 전쟁부터 르네상스까지 11~15세기 이탈리아 회화를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회화는 가톨릭교화 함께 발전해왔다.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이탈리아 회화의 역사는 가톨릭교와 함께한 종교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르네상스는 그리스, 로마 예술의 재생이자 흑사병으로부터의 부활이기도 했다. 또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작품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가난을 완강히 거부한 플랑드르

플랑드르는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북부 일대로, 흔히 저지대 국가라 말하는 나라들이 포함된다. 플랑드르에는 안트베르펜과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여러 항구 도시가 있다. 플랑드르에서는 '북방 르네상스'라고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바닷길을 통해 그림을 비롯한 여러 물자가 오갔다. 뛰어난 창의성으로 르네상스의 본고장 이탈리아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회화의 표준 형식도 크게 바꾼 플랑드르 화가들이 등장한다

 

3. 증오를 금융 파워로 바꾼 네덜란드

플랑드르와 브라반트에 퍼진 신교 세력에 화가 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국. 이는 곧 북부 신교 세력과 남부 가톨릭 세력의 전쟁으로 확대된다. 처음에는 스페인의 압정과 종교탄압에 대한 신교도들의 반발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독립전쟁으로 변해갔다. 신교도들은 오랜 전쟁 끝에 독립을 이루어 네덜란드를 건국한다. 반가톨릭의 신교 국가가 탄생한 것은 미술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부유한 시민들이 화가들을 지원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종교화는 다른 지역과 다른 방향으로 진화된다


 

4. 혼란 속에서 브랜드를 만들어낸 프랑스

예술의 대국 프랑스. 프랑스를 빼놓고 미술사를 말할 수 없다. 명화를 비롯한 예술품이 가득한 루브르 미술관은 프랑스인들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 설립 이래 계속해서 명화를 기증하고 있다

프랑스 회화의 역사를 돌아볼 때 가장 중요한 시기 구분의 기준은 프랑스 혁명이다.  미술사에서는 보통 혁명 이전을 로코코, 혁명 이후를 신고전파로 나눈다. 혁명 이후 루브르 미술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일은 의의가 크다. 이를 계기로 공공재로서의 미술, 미술관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5. 반항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 이후의 프랑스는 인상파 화가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은 놀랍게도 거의 비슷한 세대이다. 이들은 서로 어울리면서도 경쟁심을 불태웠다. 인상파 화가들의 활동을 이해하려면 프랑스 미술계의 아카데미와 살롱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체제는 계속 유지되었고, 청년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동 세대 화가들 간의 절차탁마, 기존 귄위에 대한 반발, 그리고 루브르 미술관 일반 공개까지 더해져 프랑스 회화의 새로운 흐름인 인상파가 탄생한 것이다

 

6. 기술혁신의 불안을 극복한 영국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은 특히 만년에 그린 그림일수록 매우 어렴풋해진다. 나폴레옹 전쟁 때부터 유럽 곳곳에서 미술품들이 런던으로 몰여들었고, 이곳에 새로운 미술시장이 생겨났다

 

7. 금욕과 탐욕에서 이익을 낳은 미국

미국에서 시작된 인상파의 유행! 미국인은 종교색이 강한 그림보다 상쾌하고 빛이 가득한 풍경화나 부드러운 터치의 인물화를 선호했다. 미국 부자들이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 베푸는 저녁 만찬에 어울리는 것은 인상파 그림이었던 것이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는 그림을 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그 시대에 있었던 인물이나 그들의 삶, 경제부분까지 폭넓게 할 수 있는 책인거 같다. 명화와 접목해서 그 시대를 설명해 놓아 서로 다른 부분이라 생각했던것들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어 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를 한 것 같다 

 

전쟁, 침략, 가난, 질병 등 수만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불행있었을까?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눈물과 고뇌속에서도  헤쳐나갈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기회인거 같다. 예술작품 속에 한 사람 한사람의 인생이 있고 그 시대의 상황을 보면서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p*****1 2021.07.3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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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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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책 서평을 하게 되었다. 깔끔하게 일러스트와 사진 그림 자료들, 이해하기 쉬운 정보들을 잘 나열하기까지 한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지인에게 선물로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라서 생생하게 가이드의 이야기를 전달 듣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할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시대. 유럽여행이나 미국여행을 하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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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책 서평을 하게 되었다.

깔끔하게 일러스트와 사진 그림 자료들, 이해하기 쉬운 정보들을 잘 나열하기까지 한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지인에게 선물로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라서 생생하게 가이드의 이야기를 전달 듣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할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시대. 유럽여행이나 미국여행을 하던 20대 시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각종 미술작품이나 여행투어를 하는 동안 얼마나 설레었던가?

지금 이 책이 나에게 딱 그런 기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마치, 그 공기 속에 있는 듯한.

 

종교화는 중세의 파워포인트!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표현들로 설명해주는지, 이 가이드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같은 수태고지도, 해석하는 화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표현된 것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해주고 유럽 흑사병의 창궐과 유행을 통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심각하게 퍼져있는 코로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도 해주었다.

예술과 문화 사이에 존재했던 세력싸움. 국가적 관계의 부딪힘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다양한 예술 문화를 꽃피우고. 세계사를 알면서 미술과 경제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야말로 유익 그 자체인 책!

 

한참 세계사와 경제를 공부하고 있는 문과생들과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사실 세계여행을 다니다보면 정말로 아는 것이 힘이라고, 아는 만큼 보게 되고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 깊이는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에서부터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양하게 이해를 돕고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은 누구에게도 유익할거라고 확언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이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발전시킬 것인가? 이 책을 읽어보면서 이러한 질문도 역시 고민해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여행에 관심을 갖던 사람들이 재테크와 자아개발, 공부, 인테리어, 생활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또 어떤 세계의 문화적 교류와 발전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n*********n 2021.08.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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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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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를 해 보자  당신의 교양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할 경제사의 흐름이 보이는 유럽 미술 투어    1347년 가을, 배 한 척이 시칠리아 항구에 도착 배에서 내린 선원들의 몸 여기저기에 종기가 생기고 피부가 검붉게 짓물려 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입을 열 때마다 기침하며 피를 토했다  그들을 간호한 항구 사람들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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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를 해 보자 

당신의 교양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할 경제사의 흐름이 보이는 유럽 미술 투어 

 

1347년 가을, 배 한 척이 시칠리아 항구에 도착

배에서 내린 선원들의 몸 여기저기에 종기가 생기고 피부가 검붉게 짓물려 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입을 열 때마다 기침하며 피를 토했다 

그들을 간호한 항구 사람들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

그것은 후일 흑사병(페스트)이라 불리게 되는 공포의 병이었다 

가까운 베네치아에서는 전염을 우려해 외부에서 오는 배를 40일간 항구에 정박해 둔 채 

상이 없다고 판단될때까지 아무도 배에서 내리 룻 없도록 했고 이 40일을 가르키는 이탈리아어로 "콰란티나"가 이후 격리를 뜻하는 영어 "쿼런틴"이 되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이런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흑사병은 이탈리아를 뒤덮은 데 이어 유럽전역으로 펴져 갔고 많은 사람이 죽어 인구가 줄자 도시의 경제활동이 정체 되고 어쩔 수 없이 집과 가게를 파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시칠리아에 공포의 선탁이 도착한 이후 흑사병뿐 아니라 온갖 전염병이 반복해 유럽을 덮쳤다 

인구 감소와 경제위기도 그에 동반해서 반복되었고 

게다가 기상악화로 인한 흉작과 기근,종교대립,전쟁,정치적 혼란등으로 유럽은 몇법이고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당대의 사회상뿐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과 행복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시대에 무엇을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어떻게 극복해왔을까

그림들을 통해 그들이 용기와 재생의 역사를 살펴보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져본다 


중세의 하와이,시칠리아섬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서아시아,아프리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기후가 좋아서 농산물이나 과일이 풍부하고 신선한 해산물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는 곳이다 

고대부터 시칠리아 주변의 여러 민족은 이 섬을 두고 쟁탈전을 벌였고 

저멀리 추운 발트 3국 사람들도 따뜻하고 행복해 보이는 시칠리아를 동경해 찾아오곤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시칠리아에는 예부터 민족과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고 

덕분에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섞이고 발전했고 문명의 십자로 였던 셈이다 

시칠리아의 평화가 무너진 것은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면서 가톨릭과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두고 200여년간 전쟁을 벌인다 

십자군 전쟁후에 교회가 도시에 생기기 시작

늘어나는 도시 사람들에게 기도할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파리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첨탑과 지붕의 3분의2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파리에 갔다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스치고 다음날 가야지 하다가 

또 다른 곳 여행하다가 그만 놓치고 다음에 갈까 했는데 화재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던 

노트르담 대성당이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탈리아의 회계연도는 3월 25일부터 다음해 3월 24일까지

수태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유럽의 흑사병 확산의 큰 원인은 상인들의 이동이었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예술가의 상인들의 승부욕에서 꽃을 피웠고 

승부욕은 시대와 장소가 아무리 바뀌어도 끝없이 반복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k*****6 2021.08.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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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그 예술을 향유하는 자. 미술사를 보면서 소유하는 주체의 커다란 흐름을 함께 읽어 가는 것도 미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누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누가 즐기기를 원하는 예술이었나의 주체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술의 역할과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예술이 교회의 소유물처럼 이용되다가 르네상스에 이르러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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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그 예술을 향유하는 자. 미술사를 보면서 소유하는 주체의 커다란 흐름을 함께 읽어 가는 것도 미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누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누가 즐기기를 원하는 예술이었나의 주체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술의 역할과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예술이 교회의 소유물처럼 이용되다가 르네상스에 이르러 비로소 온전히 꽃피우는 시대를 맞았고, 근대와 현대의 사조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으로 감상을 위한 기능을 쟁취하게 된다. 

 


 

여기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라는 책도 바로 그러한 미술사적인 커다란 흐름을 짚어가며 시대별 경제의 흐름까지 파악해서 알려준다는 점이 흥미로웠으며, 특이한 관점이었다고 생각 되었다.

예술의 영역에 경제의 개념을 논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돈의 흐름이 없는 곳에 결코 윤택한 예술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을 보면 경제의 흐름을 알 수 있고, 역으로도 관계가 성립된다는 사실은 거의 명백하다.

공인회계사 사무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비지니스 스쿨과 기업 등에서 회계, 경영 컨설턴트 전문 강사로 활동하거나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의 이력을 보면 이런 관점으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 된다. 

 

저자가 언급하는 주요한 미술사적 시대는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사이의 시대에 유럽에서 참담한 전염병이었던 흑사병이 발병하여 모든 상황과 판도가 달라진다. 비슷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를 겪고 있는 요즘의 시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절망적인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를, 이 책을 통해 희망의 답을 알 수 있기를 조금은 기대했던 것도 같다. 

 

시칠리아에 공포의 선박이 도착한 이후 흑사병뿐 아니라 온갖 전염병이 반복해서 유럽을 덮쳤습니다. 인구 감소와 경제 위기도 그에 동반해서 반복되었지요. 게다가 기상 악화로 인한 흉작과 기근, 종교, 대립, 전쟁, 정치적 혼란 등으로 유럽은 몇 번이고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p13

이 책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당대의 사회상뿐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과 행복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시대에 무엇을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요. 이제 그림들을 통해 그들의 용기와 재생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오랫동안 화가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미래를 향한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p13-14

 


 


 

 

 

ROOM 1. 흑사병과 불황을 극복한 이탈리아 

십자군 전쟁부터 르네상스까지 11-15세기 이탈리아 회화를 만난다. 농업을 뒤로하고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주로 상인이 되었고, 상업 활동의 발달로 도시가 함께 발전하게 되었다. 교역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대에 이탈리아에 상륙한 흑사병은 유럽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게 한 페스트의 주요 원인은 상인들의 이동 때문이었다고 한다. 

 

역사에서는 급격한 세계화의 움직임 뒤에 불행이 따라오곤 합니다. 여러 차례 유럽을 강타한  역병은 항상 인간의 세계적 이동 뒤에 존재했습니다. 이익을 늘리려는 교역,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과 식민지화, 궤도에 오른 세계화의 확산은 어떤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제동이 걸렸습니다. p32

 

저자는 21세기 금융의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때에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고 현대에 적용된 사례를 언급한다. 과연 듣고 보니 그렇다.

중세의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흑사병이 지나가기만을 가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질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전체 인구의 30%가 줄어들고, 심한 곳은 50-70%까지도 인구가 감소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도시는 '피렌체'였는데,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의 도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역병까지 더해져 이곳은 대혼란에 빠진다. 이러한 피렌체를 기적적으로 부활시킨 일등 공신은 도시의 상인들과 이들을 후원한 젊은 예술가들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세력, '메디치 가문'이 등장하여 피렌체의 비지니스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실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재정적 뒷받침을 한 메디치 가문과 같은 상인과 권위 회복을 위한 교회, 혁신적인 창작을 시도한 예술가들, 이 삼위 일체가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것이다.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 예술의 재생이자 흑사병으로부터의 부활이기도 했다. 

 

'교회에 억압되어 앞이 보이지는 않는 막막하고 답답한 사회, 게다가 흑사병에 두려워하고 가난에 떨며 살아야 하는 우리, 이래서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지금에 비하면 그리스, 로마 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인간답게' 살았던가! 우리도 그때로 돌아가자!'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정신입니다. p37

 


 

 

ROOM 2. 가난을 완강히 거부한 플랑드르

플랑드르에서는 '북방 르네상스'라고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뛰어난 창의성으로 남쪽의 이탈리아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회화의 표준 형식도 크게 바꾼 플랑드르 화가들을 살펴본다. 

유럽의 북쪽과 남쪽은 알프스 산맥으로 가로 막혀 있어 교류에 한계가 있었는데, 그 한계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바닷길을 통해 무역의 번성이었다. 해상 교역이 육로를 대신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동 거리가 더 멀더라도 배를 이용하여 많은 짐을 한번에 실어 나를 수 있었고, 돌아올 때 새로운 물건을 채워 다양한 상품이 유통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반이 뒷받침되어 남북의 문화 교류도 가능해졌다. 

 

플랑드르의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을 보면 남쪽 이탈리아와는 달리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씨유를 이용하여 만들게 된 유화 물감의 발명에 있다.

여기서 북부 플랑드르의 유화가 남쪽에 전해지고, 남쪽에서는 캔버스가 북쪽에 전해져 교류 안에서 발전을 이룬 긍정적인 예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발명 또한 남, 북의 교류로 이루어진 발명품으로 꼽을 수 있다. 북쪽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과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남쪽의 종이의 결합이 그것이다. 

16세기 중반에 일어난 신교(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로 등장하게 되었다. 신교는 북부 유럽을 중심으로 서서히 확산되어 나갔는데 독일의 마틴루터,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칼뱅 등이 가세하면서 가톨릭에 대한 항거는 신교의 탄생으로 이루어진다. 신교의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바로 성경책의 보급을 꼽을 수 있고 덕분에 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 

 

 

 

 

ROOM 3. 증오를 금융파워로 바꾼 네델란드

북부 신교 세력과 남부 카톨릭 세력의 전쟁은 신교도들의 독립전쟁으로 바뀐다. 신교도들은 오랜 전쟁 끝에 독립을 이루어 네델란드를 건국한다. 유럽의 종교 갈등으로 인하여 상인의 나라 네델란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반카톨릭 신교국가의 탄생이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네델란드의 부유한 시민들이 화가를 지원하여 미술이 발전되는 것이다.  

 

네델란드를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로는 '렘브란트'가 있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의 회화에서 보여지는 종교화적인 특징이 없고 인간의 모습만을 그린 집단 초상화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술 후원자의 주체가 교회에서 부루주아 시민으로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풍경화와 정물화, 일상 생활을 담은 풍속화가 유행하게 되고 그림의 크기도 작아진다. 

 

그 즈음 활발히 이루어졌던 동인도 무역의 자본을 마련하기 위한 최초의 '주식회사의 설립'과 주주가 동인도회사 주식을 되팔 수 있는 '증권거래소'가 생겼다. 이것은 편견과 배척없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그 중에서도 돈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던 유대인들의 영향으로 이룰 수 있었던 네델란드의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업적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 그림은 일반인들도 시장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되어, 집안을 장식 할 수 있도록 크기가 작아졌고 '주문 제작' 방식 대신 미리 그려진 작품이 거래되는 방식으로 변화 되었다. 예술 후원자들의 변화가 네델란드 회화의 주제와 크기, 유통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이다. 

 


 

 

 

ROOM 4. 혼란 속에서 브랜드를 만들어낸 프랑스 

메디치가의 딸 카테리나가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결혼하게 되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문화인 '음식'과 '예술'이 프랑스에 전해지게 되었다. 프랑스와 왕과 귀족들은 이탈리아 회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그림들을 사들이기 위해 많은 국고가 이탈리아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당시 성행했던 도제제도를 통해 예술가를 육성하는 방식 대신, 일류 예술가를 교육하는 기관으로써 '왕립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의 설립하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앞선 예술을 따라잡기 위한 것이었다.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은 고전주의 회화 교육을 받았고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 살롱에 작품을 발표했다. 왕과 귀족의 지배를 받았기에 귀족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출신의 대표 화가로는 '프랑수아 부셰'를 꼽을 수 있다. 부셰는 이탈리아에서 기초를 공부하고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솜씨를 갈고 닦은 후 자신만의 개성있는 화풍을 창조하게 되는데, 여기서 '로코코 회화'가 탄생한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귀족들과 가난한 시민 간의 갈등이 점점더 심해졌다. 다수의 시민이 소수의 특권층에 시민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시민혁명. 이 혁명은 유럽 최초로 시민에 의해 왕과 왕비가 처형당하는 일로 이어진다. 

프랑스 시민 혁명 후의 혼란을 해결하고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나폴레옹. 그가 점령한 나라들,  이탈리아와 스페인, 네델란드 등에서 대량의 예술품들이 프랑스로 옮겨오게 된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궁에 이 예술품들을 보관하였고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루브루 미술관의 시초가 되었다. 이것은 미술 작품들이 더 이상 개인적 소유물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게된 중요한 전환점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예술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가난과 혼란으로 지쳤던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보여진다. 

 


 

 

 

ROOM 5. 반항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 이후의 프랑스에서는 드디어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이 등장한다. 

인상파 화가들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미술계의 아카데미와 살롱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시스템에 대한 반발과 반항으로 인상파가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보수적인 아케데미 살롱전에 출품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는 그의 노골적인 반항을ㅜ대담하게 담아, 보는 이에게 엄청난 당혹감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마네의 이러한 행동은 당대 젊은 화가 그룹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들은 아카데미와 살롱전에 저항한 전시회를 열게 된다.

제1회 그룹 전시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무명 미술가 단체에서 개최한 것이었다. 그들의 그림을 본  한 평론가가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을 보고 대충 그린 '인상 impression'에 가까우며 낙서가 더 낫다고 비판했던 말에서 '인상파'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ROOM 6. 기술혁신의 불안을 극복한 영국

나폴레옹 전쟁 때부터 유럽 곳곳에서 미술품들이 런던으로 몰려들게 되어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왜 하필 런던이었고, 런던 미술 시장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18세기 중반, 영국의 귀족자제들의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의 로마, 피렌체, 로마를 거쳐 베네치아까지 가는 여정에 이르는 유학 여행을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고 하며 당시 유행하였다. 여행을 갔던 영국인들은 유럽의 미술품들을 직접 사들여 돌아왔다.

19세기에 들어서 프랑스의 혁명과 나폴레옹의 전쟁으로 '그랜드 투어'도 한풀 꺽일 무렵, 유럽 각국의 귀족과 부자들은 그들이 소장한 미술 작품들을 팔기 시작하였고 대량의 작품들이 영국의 런던 미술상들에 의해 옮겨졌다. 많은 명화 작품들이 모인 런던은 순식간에 유럽 미술 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원래 그림은 소유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금융자산'으로서 거래재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이 점은 특히 중요한데 이 때부터 그림의 유통 시장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생전에는 인기가 없이 가난한 화가로 살다가 사후에 작품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거나 거래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 것이 바로 이 시스템 때문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유행한 사조는 '낭만주의'이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진지하고 합리적이었던 신고전주의에 반발해 낭만주의는 감수성이나 주관을 중시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가 바로 '윌리엄 터너'이다. '나에게 보이는 대로' 자신의 감수성 위주로 그림을 그렸던 터너는 점점 추상적인 회화의 양상을 띄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신기술과 신제품의 등장이 속출하는데 증기기관차, 카메라와 사진, 튜브 물감, 미술 시장의 변화 등 당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급격한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편리함과 발전을 주는 동시에 불안을 안겨주었던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당당히 맞서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적 화풍을 이룩해낸 것이 터너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 한다.  

 


 

 

 

ROOM 7. 금욕과 탐욕에서 이익을 낳은 미국

이 장에서는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흐름을 다루기 위해 미국에서의 인상파 유행과 멕시코 미술을 살펴본다. 

이 시기에는 돈에 대한 경제 감각이 뛰어났던 영국의 자금과 노하우가 미국으로 유입되어 경제적인 큰 부가 축적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와 미국의 농장에서 일하게 하고, 생산된 면화를 영국에서 가공하는 삼각무역의 도입도 한 예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철도, 철강, 건설 등의 분야에서 막대한 부가 창출되었지만, 미국은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이 있었다. 이러한 심리 때문에 뒤랑뤼엘이 가져온 프랑스의 인상파 그림들은 미국인들에게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결국 프랑스의 미술상 뒤랑뤼엘의 덕분으로 인상파 회화가 미국에 퍼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탁월한 비지니스적인 마인드로 마케팅이나 파트너쉽 등의 선구적인 방법을 제시하여 이 모든것들을 성공시켰다.

 

뒤랑뤼엘의 공적은 단순히 그림을 많이 파는 상업적 성공에 그치지 않고, 화가를 지원하는 미술상으로서의 바람직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화가가 꿈을 좇는 이라면, 그것을 상업적으로 지탱하는 것이 미술상입니다. 꿈과 현실을 양립시키는 뒤랑뤼엘의 피트너쉽은 후일 미술상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p215

 

그림을 보는 의미를 '시야를 넓히는 것'에 있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어떤 그림이든 그 그림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림 감상의 이해와 즐거움이 커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회계사였던 저자가 미술품 거래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이야기를 전한다. 예술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에 대한 가치를 뒤로하고, 미술품 거래에 관련된 충격적인 뒷 이야기라든가, 경제나 역사로 관련된 분야를 넓혔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미술에 대한 다른 시각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스페인과 미국으로부터 빼앗긴 아즈텍 문명과 긴 침략의 굴욕적인 멕시코 역사가 있다. 멕시코 정부는 어두운 역사를 감추기보다는 옛 영광과 함께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벽화의 방식을 이용한다. 멕시코인의 정체성을 부활시키기 위해 '디에고 리베라'는 시청과 학교 도서관 등 공공시설의 많은 벽에 역사화를 그리게 되었다. 이것은 주류였던 유럽과 미국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미술이 아닌, 멕시코의 시선에서 이루어진 '멕시코 미술'이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지루한 줄 모르고 투어를 따라가다 보니 '7전시실'을 모두 돌았다. 무엇보다 무겁지 않고 쉽게, 조목조목 핵심을 짚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저자의 탁월한 말솜씨를 바탕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서양 미술사와 명화에 대한 풀이를 곁들여 설명해주는 방식을 접하면서 한 권을 읽고 나면 경제에 의해 형성된 주요한 세계사적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오면서, 삶과 함께 만들어낸 예술을 통해 전쟁, 가난, 질병 등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과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어 왔다. 이런 점이 어쩌면 예술의 가장 큰 역할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인 불안, 그리고 영혼의 고독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자신도 모르게 위안 받게 되는 힘.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음 세대에게 어떠한 예술적 유산을 넘겨 주게 될까?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w*********u 2021.08.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재밌게 경제사를 배울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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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명화로 배우는 *** 이런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림과 함께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시각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어 재밌는 것 같다.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 저/최인영 역 휴머니스트       주제가 7가지로 되어있는데, 7개의 미술관 방을 탐험하며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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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명화로 배우는 *** 이런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림과 함께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시각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어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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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 저/최인영 역
휴머니스트

 



 

 

주제가 7가지로 되어있는데, 7개의 미술관 방을 탐험하며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1번방에서는 '흑사병 불황을 극복한 이탈리아'를 배우게 된다.

 

P.33

흑사병이 유행하기전 은행업자인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이 도산하였습니다. 

경제위기에 역병까지 더해져 피렌체는 대혼란에 빠집니다. 피렌체의 인구는 10만명에서 3만명으로 즐어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강해지려 했습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신흥 세력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미술사를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을 지원한 사람들로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경제를 일으켰는지, 또 화가들은 어떻게 경제를 부활시켰는지 이 책에서는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나오므로 여러 사람들도 친밀한 그림과 함께 경제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를 잘 아는 사람에게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경제사라는 분야를 따로 배워보지도, 책을 찾아읽어보지도 않았었는데 매우 신선한 책인 것 같다. 그림과 함께 연결지어 스토리 텔링으로 경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일석이조인 것 같다. 그리고 이책은 미술사랑 경제사를 억지로 연결지으려는 부자연 스러움이 하나도 안보여서 좋았다. 이렇게 미술사랑 다른 분야를 엮은 다른 책들을 보면 살짝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았는데 이 책은 정말 관련있는 내용만 나와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도슨트 역할을 해주는 귀여운 그림이 삽입되어 있는데, 미술관투어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추천해줘야겠다.

 

YES24 리뷰어 클럽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y*******6 2021.08.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흑사병 비하인드, 다나카 야스히로, 휴머니스트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흑사병 비하인드, 다나카 야스히로, 휴머니스트" 내용보기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단순한 세계사가 아닌 진짜 경제사! 안녕, 부끼(Bookki)에요. 요즘 여러 책을 읽고 있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덕에 좋은 지식들이 쏙쏙 박히고 있죠. 최근 재미있는 책들을 여럿 읽었는데 그 중에서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 있어요. 바로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에요. 세계경제사 알차게 배워보자. 학생 때 배운 세계사는 항상 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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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단순한 세계사가 아닌 진짜 경제사!

안녕, 부끼(Bookki)에요. 요즘 여러 책을 읽고 있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덕에 좋은 지식들이 쏙쏙 박히고 있죠.

최근 재미있는 책들을 여럿 읽었는데 그 중에서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 있어요. 바로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에요.


세계경제사 알차게 배워보자.

학생 때 배운 세계사는 항상 틀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흑사병이야기는 어딜 가나 단골소재였고 실제로 어떤 역사 순으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맞추는 시험문제도 있었어요. 그때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세계경제사
절대로 어렵지 않아요.

이렇게 멋진 안내자가 나타나서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할지 간단하게 소개를 해줘요. 그리고 세계사 하면 다들 바로 떠올린다는 흑사병! 심지어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이야기까지 해주더라고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흑사병 발병 이후, 유럽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죽고 경제난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이 책엔 나와있더라고요.


에필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그 전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었던 건데 에필로그가 있어야 책을 더 깊게 읽는 느낌이 나더라고요.


명화로 배우는 세계사니까 그림 필수!

유명작가의 그림부터 유명 건축가의 건물까지! 세계테마여행을 떠나야 만나는 것들을 이 책은 역사 이야기 중간중간에 알려주고 있어요.

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속에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작품활동을 했는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더라고요.


7전시실을 돌아보며 느꼈던 것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간다는게 이 책의 읽은 저의 생각이에요. 흑사병처럼 지금의 우리는 코로나 19시대에 살고 있죠.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죽었으며 또 집단 면역이 일어나 살아남기도 했어요. 또는 백신을 맞으며 전염과 사망위험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죠.

이렇게 위기를 겪으면서도 수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갖고 또 다른 작품을 만들고 그 안에서 위태한 경제를 지켜내며 살아간다는게 몇번의 세월이 반복되도 비슷한 것 같아요.


부끼의 감상문,
역사는 반복된다.

그림책 보듯
재미있게 읽은 세계경제사

우리는 어떠한 용기를 갖고 후손들에게 역사적 바통을 넘겨줘야 할까요? 우리가 과거의 선조들에게 전달받았던 것들을 알차게 사용하고 새것처럼 만들어서 후손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네요.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경제는 계속 흐를거고 각국이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자신들만의 세계사를 만들어 내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명화 공부도 할겸 경제사도 읽고 싶던 찰나에 이렇게 좋은 책을 받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이 책은 컬처블룸으로 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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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 2021.08.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