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100년의 시간에 걸친 4대 모녀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의 엄마, 기억이 나지 않는 외할머니를 떠올려봤다.
소설의 배경인 희령을 검색해보니 강원도 회양지역의 옛 지명이라고 나온다. 주인공 서른두 살의 지연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이사왔다.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본 건,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남편의 배신에 힘들어하는 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지 아빠와 엄마는 혼자 남을 사위가 불쌍하다고 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이곳으로 왔을 수도 있었다. 지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친구 지우 뿐이었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희령은 엄마의 친정이기도 하고 열 살때 열흘 정도 지내는 동안 할머니는 이곳 저곳을 구경시켜주었던 추억이 있는 곳,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할머니와 함께 본 희령의 밤하늘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해져 이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와 재회한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두 여인이 찍은 사진을 보며 한 사람은 할머니의 엄마라고 했다. 지연이와 많이 닮은 증조할머니다. 할머니는 지명으로 증조모는 ‘삼천’ ‘새비’아주머니로 불리며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 증조모가 어떻게 희령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핍박받으며 살다 열일곱 살에 증조부를 만나 개성으로 떠났다. 증조모가 떠나올 때 아픈 어머니를 두고 나왔다. 증조부 친구인 새비 아저씨가 돌봐주었지만 열흘이 지나 돌아가셨다. 증조부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새비 아저씨가 땅을 빼앗기고 개성으로 오면서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모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새비 아주머니는 아저씨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갔고, 친정 오빠가 사상범으로 죽음을 당하자 시댁에서 쫓겨났다. 개성에 잠시 머물다 새비 아주머니는 고모가 사는 대구에서 머물게 된다. 훗날 증조모 식구들도 대구 명숙 할머니 집에서 머물며 할머니는 바느질을 배우게 된다. 증조부가 군대에서 고향 동무를 만났고, 부모님과 형님을 만났는데 피난길에 오르셨는데 황해도 사람들이 희령이라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대구를 떠나 희령으로 왔지만 증조부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정착한 곳에서 할머니는 같은 고향 출신인 길남선과 결혼을 하게 된다. 지연의 엄마 미선을 낳고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p14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지연의 재구성을 통해 되살아난다. 증조모는 할머니를 중혼 시킨 것에 증조부를 원망하고, 할머니는 우리 눈에 띄지 말고 죽어버리라고 했다. 지연이 희령으로 온 건 분명 이혼 후에 상처를 줬던 엄마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것이었다. 지연은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연은 엄마와 앨범을 정리하며 엄마가 얼마나 증조할머니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상처 받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새비 아주머니는 딸 희자에게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라고 했다. 작가의 할머니도 손녀에게 앞으로 멀리 다니라고 지구본을 사줬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 소설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얼마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미싱 타는 여자들]에서 처럼 우리 세대는 여자가 공부해서 뭐하나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만 잘 가면 되지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밝은 밤]을 읽으며 삼천과 새비의 우정이 너무 따뜻해서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 되었다. |
|
소설의 배경은 강원도 희령이다. 이혼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지친 지연은 도망치듯 바닷가가 보이는 마을 희령으로 이사를 한 참이다. 최은영 작가는 소설의 주요 배경인 개성과 대구 대전은 실제 지명을 썼지만, 강원도의 한 도시로 상정한 희령은 새로 만들었다. 지연이 과거를 지워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까. 그건 마치 마르케스의 마콘도나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처럼 작가가 뜻을 펼치기 좋은 너른 운동장 같다. 한적하지만 뭐든 꾸며낼 수 있는 장소다. 난 최은영의 첫 장편 소설인 <밝은 밤>을 다 읽고 다시 책의 표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저기가 희령이란 말이지.'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본 것과 달리 희령의 밤은 분홍빛보다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더 느껴졌다. 밝은 달이 떠 있는 희령의 바닷가는 안온한 느낌보다는 깊은 잠에서 깬 개운함처럼 차오르는 열기에 가까웠다. 밤임에도 희한하게 밝아 보이는 그곳은 소설에만 있는 곳이지만, 오직 다정한 이들만 사는 세계라는 점에서 최은영 유니버스의 운신의 폭을 넓혀준 도시다. 지연은 비릿한 열패감과 누구나 예측할만한 비참함에 젖어있다. 자신의 고통이 그저 그렇게 평가받는데 익숙해질 즈음 직장을 옮긴다는 구실로 살던 도시를 떠난다. 새로운 직장에서 쥐 죽은 듯 지내며 나아지기를 바란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고 아무도 자신을 궁금해하지 않는 곳이 필요했다. 낯선 이의 동정과 연민을 힘겨워하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신경증이다. 그렇게 앓는 지연은 희령에서 비로소 휴식을 취하게 된다. 우울과 냉담함이 가시지 않는 시간이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바다가 보인다는 위안이 그녀의 몸을 어딘가에 기댈 수 있게 해 줬다. 최소한의 사람만 만나면서 홀로 식사하고 느슨한 산책을 즐기던 지연은 어느 날 어릴 적에 뵌 후로 연락이 끊겼던 외할머니와 조우하면서 이야기는 본류에 합류한다. 소설에서 지연과 이혼한 남편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삶은 꽁꽁 언 강물과 같다." 그러니까 삶은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식의 운명론이다. 가정을 팽개치고 사랑을 볼모로 떠난 자 답다. 결국 이렇게 되려고 모든 일이 벌어졌구나 손을 놓는 식이다. 당위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우선시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맥락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세계관은 그렇게 지연을 옥죄어 왔다. 지연에게 꽁꽁 언 강물은 한 인간을 괴물로 만든 구렁텅이다. 그 괴물의 포효에 주눅 들어 내 처진 존재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모든 걸 기질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면 따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와 지연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대화를 시작한다. 엄마의 얘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전혀 모르고 살았던 모계의 역사에 빠져든다. 제 처지는 잠시 잊고 고조모와 증조모의 기구한 삶을 들으며 과거로부터 이어진 끈을 더듬어간다. 지연에게 전쟁과 피난 생계와 고통으로 점철한 사정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내 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는 나의 역사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족보에도 없는 이름을 들추고, 바깥 외자를 쓰는 조상을 안으로 들이는 과정이다. 여성의 미시사를 되짚으며 지연은 탁한 삶을 환기한다. 지연은 이혼한 남편과 식구들을 보고 싶지 않아 희령에 왔다. 지연의 외할머니도 남편과 헤어지고 쭉 희령에 살아왔다. 증조할머니의 오랜 친구인 새비 아주머니도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딸 희자와 함께 희령을 찾는다. 최은영은 여성의 땅을 만들고 거기서 역사가 지운 여성의 삶을 돌아본다. 작가를 비롯한 지연의 삶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모태를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남자들은 비겁하거나 기껏해야 대의를 위해 죽거나 생계를 위한답시고 위험을 무릅쓴다. 광포한 시대에 더 큰 자취를 남기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여성들을 남긴 채 사라진다. 의도가 어찌했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오갈 데 없이 몰린 여성들은 서로 의지하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 최은영이 집중하는 가치는 탈 남성의 세계이고, 그곳에는 예민한 윤리적 감수성, 약한 비위, 중요하고 숭고한 가치에 대한 헌신이 자리한다. 지연은 희령으로 와서도 그간 남편이 한 말을 되새기고 곱씹는다. 내 불행의 발원인 그의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필사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꿔내어 뻔한 비극 속에 머물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남편의 외도까지 참으라고 닦달하는 엄마의 방식을 부정하며 뒤늦게나마 독자적인 삶을 이룩하기 위해 자구한다. 지연과 외할머니의 대화는 그런 의미에서 지연에게는 치료의 한 형태로 느껴진다. 자신의 역사를 되짚으며 속 시끄러운 소리를 잠시나마 밀어내는 과정이다. 소설은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을 불러냈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 피난길을 소설에 그리면서 남성을 배제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성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늘 조연이었고 누군가를 빛내주는 헌신 그 자체였다. <밝은 밤>은 아무도 마이크를 주지 않았던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도 있는 힘을 다해서 모욕적인 시대를 이겨내 왔음을 알린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뒷바라지나 하고 누군가의 엄마로서 기능적으로 쓰이는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불을 밝힌다. 소설은 여성들의 처지를 그저 동정하거나 연민하거나 고작 남성들의 장대한 삶을 극적으로 장식하는 꽤 비중 있는 조연 정도로 치부하지 않는다. 지연은 소설 말미에 할머니의 오랜 인연이었지만 격랑의 현대사를 거치며 만날 수 없었던 희자를 불러들인다. 그들을 연결함으로써 아직 끊어지지 않은 모계의 서사를 이어나간다. 이제 지연이 희령에서 할 일은 다 끝이 났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주에게 모계의 서사를 전수했고, 그걸 들은 손주는 이제 다른 도시에서 희령의 기억으로 살아갈 것이다. 펜대를 쥔 자는 선별하여 기억한다. 남기고 기억해야만 하는 위대한 서사를 재단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다. 이제 더는 무도하게 잊히지 않는다. 대전에 새롭게 정착한 지연은 반려묘가 생겼고, 소도시가 아닌 대도시의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난 소설 속의 인물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핵심이다. 그 변화에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난 추락과 상승의 움직임을 유심히 본다. 괴물이 되어가면서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간절히 구원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있다. 구원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숭고하다. <밝은 밤>의 지연은 자신의 추락을 의식하고, 자신의 전락을 구원의 재료로 사용했다. 자신의 실패한 이야기가 다시 상승하기 위해서 곡절 많은 모계를 이야기로 되살려냈고, 끝내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의 곡선에 올라탔다. 지연은 모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어갔을까. 제 삶에 없었던 증조 고조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어머니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하면서 뭐가 나아졌을까. 고작 모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지연이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요건이 될까. 이건 모호한 위안이다. 지연은 정말 잘해나갈 수 있을까. 난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나 역사에서 지워진 존재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에서 어떤 이어짐의 안도를 느꼈다. 마치 씻김굿처럼 저 먼 곳에서 떠도는 망령을 저승으로 보내주는 과정을 거친 셈이다. 지워진 존재를 불러내는 것.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하다. |
|
지하철로 이동 중에 책 읽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어서 "밝은 밤"을 읽을 때에도 다른 책들처럼 지하철에서 읽었다가 하마터면 사연 있는 사람처럼 비추어질 뻔했다. 책 속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화가 나 얼굴이 시뻘게지기도, 어떨 때는 울컥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하였으니 아마 왜 저러나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만 가득 담긴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4대에 걸친 가족 내 여자들의 이야기가 고통에 버무려져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빛 같은 순간들이 있었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왜 책 제목을 "밝은 밤"이라고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1대인 증조할머니는 백정의 신분으로 일제 때 태어나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했고, 2대인 할머니는 사랑도 없는 사기결혼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3대인 엄마는 첫째 딸을 일찍이 세상에서 떠나보내야 했으며, 4대인 주인공 지연은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이혼하고 그 이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모를 마주해야 했다. 말 그대로 네 명 모두 어두컴컴한 밤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 제목이 "밤"이 아니라, "밝은 밤"이었을 수 있던 이유는 그래도 그들의 삶에 빛 같은 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데 증조모의 경우, 신분이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심지어 가장 가까워야 하는 증조부까지 증조모에게 살갑지 않았으니, 증조모의 삶은 한동안 달조차 떠있지 않은 시커먼 밤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자 중, '해리 할로'라는 사람이 사랑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 '원숭이 애착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은 갓 태어난 원숭이를 엄마 원숭이로부터 분리한 뒤, 우유병이 있는 철사 모형의 엄마 원숭이 모형과 우유병은 없지만 따뜻한 천으로 만들어진 엄마 원숭이 모형이 있는 우리에 넣은 후 태어난 원숭이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원숭이가 배가 고플 테니 우유병이 있는 철사 모형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과는 달랐다. 새끼 원숭이는 우유병이 없음에도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 모형에 집착하였다. 아기 원숭이는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만을 계속 만지고, 그 모형에만 매달렸다. 이때 심리학자들이 깨달은 것은 사랑은 단지 배고픔을 해소해준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따뜻한 손길에서 생긴다는 것이었다. 증조부는 양민인 자신이 백정인 증조모와 결혼하여 증조모를 일본군인들로부터 구해낸 것이 증조모에게 세상에 없을 아주 대단한 자비와 사랑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양민인 증조부가 백정인 증조모와 결혼했다고 해서, 증조부가 증조모에게 같이 살집 마련했다고 해서, 돈을 벌어다 줬다고 해서, 그것들이 증조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포근한 눈빛이 된 것은 아니었으니 증조모의 삶은 절대로 밝은 밤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속에서 자신을 아껴주는 새비아주머니를 만난 뒤 증조모의 삶은 "밝은 밤"이 될 수 있었다. 새비아주머니는 증조모가 백정이던 아니던 신경 쓰지 않았다. 증조모라는 사람 자체를 아껴주었고, 사랑해주었다. 새비아주머니가 뭔가 엄청난 일을 해서 증조모에게 빛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증조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증조모가 한 밥을 맛있다고 해주고, 증조모를 보며 웃어주는 그런 행동, 즉,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새비아주머니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증조모의 삶을 밝은 밤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꼭 반딧불이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 여러 마리가 되면 깜깜한 밤에도 밝은 빛을 내듯이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해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의 20대 후반이 되어서 대학에 다시 입학하였다. 뭘 하고 싶은지 오랫동안 확신이 서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데 남들보다 늦게 걸렸다. 대학에 다시 들어갔을 때는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다는 것을 찾았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여덟 살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다행히 대학생활을 즐겁게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중 나와 항상 수업을 같이 듣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도 이런저런 상황으로 인해 대학에 약간 늦게 들어와서 남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나보다는 아직 훨씬 적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던 밝은 아이였다. 소설 속에 나오는 새비아주머니처럼 말이다. 이 아이는 나와 함께 밥도 같이 먹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같이 해주곤 하였다. 만약 대학에 들어갔는데 이 아이가 없었더라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아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고 해도 대학 생활하는 내내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생활이 어두운 밤 같았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 아이 덕분에 나이를 먹어서도 나름 즐거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생각보다 삶에 이렇게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이처럼 새비아주머니의 행동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증조모에게는 꽤나 큰 빛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힘든 밤이 증조모 대에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이어서 2대인 할머니와, 3대인 엄마, 그리고 4대인 지연의 삶까지 어두움은 이어져갔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움은 충분히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증조부가 자신의 가족에게 약간의 빛을 비쳐주었다면 말이다. 만약 증조부가 새비아주머니의 반딧불이 같은 행동을 하려고 마음먹었더라면, 그저 약간의 배려라도 했었더라면, 그저 자신의 부인과 딸을 조금이라도 귀히 여겼더라면, 적어도 어둠이 4대에 걸쳐 드리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증조모가 백정의 신분이었기에, 주위 사람들은 할머니를 보며 '백정의 딸'이라는 상처되는 말을 하였지만, 증조부는 '자신이 양민이니 너도 양민이다'라는 무심한 말만 할 뿐이었다. 무심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증조부는 할머니가 아들이 아니라 그런지 할머니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증조부의 사랑을 항상 갈구하였다. 다행히도 모든 사람이 할머니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비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새비아주머니 딸인 희자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이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사랑 표현에는 서툴긴 하지만 그래도 명숙 할머니의 서툰 사랑까지 받으며 삶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새비아주머니와 희자를 떠나 온 가족이 희령에 가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증조부의 중매로 떠밀리듯 남선과 결혼하게 되며, 할머니의 삶은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편인 남선은 증조부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꼭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정작 할머니에게 사랑을 주는 사내는 아니었다.
"그즈음 남선은 자주 친구들을 끌고 집에 들어와서 다 같이 담배를 피우며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정당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곤 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덜 고통받고 더 잘 사는 세상을 꿈꾼다는 말을 하면서도 할머니의 발이 얼마나 부어 있는지, 가끔씩 배가 뭉칠 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하면서 할머니가 벌어온 돈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갔다. " -본문 중에서...
남선은 그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목소리만 쩌렁쩌렁 큰사람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인 남선은 이미 결혼한 적이 있었으나, 그걸 속인 채 할머니와 결혼하였고, 남선이 남선의 원래 가족을 다시 만나자, 할머니에게는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할머니를 떠나버렸다. 심지어 증조부는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남선에게 시집보낸 것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자신의 자식을 아비 없이 키울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랑과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일인데 할머니는 남편 없이 그 일을 해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결국 길남선도 나쁜 남자이지만 이 또한 증조부의 무심함으로 일어난 것이다. 만약 증조부가 할머니에게 약간의 애정이라도 있었으면, 할머니를 절대 길남선 같은 사람에게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삶이 그렇게까지 비참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증조부는 할머니에게 그만한 애정이 없었고, 결국 자식에 대한 충분한 애정 없는 증조부의 결정은 할머니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어둠 속에 갇히게 했다. 증조부의 생각 없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엄청난 어둠을 몰고 오는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이 어둠에 덮여있는 와중에도 할머니는 자신의 딸 미선이가 아버지인 남선을 미워하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할머니는 딸에게 거짓말을 했다.
"너희 아버지는 자기 가족이 전쟁통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나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으니 나와의 결혼은 중혼이 아니라 재혼이었다.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가족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희 아버지는 우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너를 데려가길 원했지만 내가 요구해서 너는 나와 함께 살게 됐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부탁한 것도 나였다. 네가 혹여 아버지를 만나서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할머니의 말에 엄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기에 종종 선의의 거짓말을 하곤 한다. 나 자신조차도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도 결국엔 거짓말일 뿐이다. 자신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그 선의의 거짓말이 더 큰 비수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꽂혀버릴 때가 있다. 꼭 부메랑이 바람을 타고 돌아와 더 세게 강타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할머니는 자신의 딸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할머니가 증조부에게 충분한 사랑받지 못한 것이 자신에게는 큰 상처였기에, 적어도 자기 딸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느꼈던 그 얼음장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러한 거짓말은 오해와 오해를 낳고, 결국 엄마 미선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더 큰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거짓말 때문에 엄마 미선은 "행복하고 평범한" 가족을 만드는 것에 압박감을 느꼈고, 그 때문에 엄마는 할머니에게 결혼식 전에 모진 말을 했다. 자신을 그냥 아버지에게 보내지 그랬냐고. 그랬으면 다들 편했을 것이라고. 다행히 결혼식날 미선은 울면서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고, 할머니는 그 말 한마디에 미선을 용서했다. 자식을 너무 사랑했던 부모이기에 가능한 용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결혼식을 끝낸 후, 엄마 미선은 잘 사는 듯했지만, 이들의 삶에 불행이 닥쳐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미선의 첫째 딸인 정연이가 죽었다. 딸의 죽음에 미선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어쩔 줄 모르며 미선을 위로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다.
“사람 명이 하늘에 달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고 했어. 미선이가 자꾸 자기 탓을 하니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그 말을 듣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딸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리란 걸, 그 순간 자신을 향해 내밀고 있던 딸의 손을 자신이 내쳐버렸다는 것을. -본문 중에서...
할머니는 자신의 딸인 미선을 너무 아꼈기 때문에, 미선을 위해 한말이었지만, 미선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를 용서 못한 것이다. 여기서 부모와 자식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앞서 미선은 할머니에게 상처가 되는 말인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여 할머니 마음에 상처를 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할머니는 미선을 용서하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한 말은 미선에게 어떻게 해서든 위로가 되려고 했던 말인데 미선은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를 용서하지 않았고, 할머니에게 찾아가지 조차 않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할머니와 미선을 보며 많이 느낀 것 같다. 부모인 할머니는 미선을 너무 사랑하기에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지만, 자식인 미선이 부모인 할머니를 쉽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꼭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다행히도 지연으로 인해 할머니와 미선의 갈등, 그리고 지연과 엄마 미선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가 희령에 내려온 지연에게 담담하게 증조모와 본인 그리고 지연의 엄마의 얘기를 하자, 지연은 엄마가 지금까지 어떤 기분으로 살아왔는지 완벽히는 아니지만 적어도 전보다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지연은 자신이 이혼한 것에 대해 엄마가 자신의 편을 안 들어주는 것이 속상하고 마음 아팠지만, 결국 엄마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언니의 죽음에 대해 왜 자꾸 말하지 않으려 했는지, 왜 그렇게 행복하고 평범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엄마 미선과 딸 지연이 한바탕 싸움을 하고 모진 말로 칼 같은 말로 서로를 겨누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봇물같이 터져 나온 그들의 진실된 속마음은 오랫동안 묵혀왔던 그들의 오해와 갈등을 풀기에 충분했고, 다시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4대에 걸친 그들의 어두웠던 밤은 이제는 더 이상 어두운 밤이 아닌 "밝은 밤"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당연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서로를 사랑하려면, 서로에게 빛이 되려면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을 꺼내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기에. 그렇기에 지금까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서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시간은 잊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은 아쉽지 않게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솔직하면 될 테니. 그러면 어두운 밤에 여러 반딧불이가 빛을 내어 밝은 밤을 만드는 것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 포근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그들의 삶에도 환한 빛이 깃들어질 테니.
이 소설에서 나온 4대에 걸친 가족 내 여자들을 보며 우리도 이렇게 서로에게 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되면 조금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에 접하는 정치뉴스던 연예뉴스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관대하지 못하다. 자신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댓글에 할 말 못 할 말을 적어놓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보이면 추악한 질투를 보이며 찍어내리기 바쁘고,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은 고고한 척 온갖 욕설을 다 적어놓는다. 그렇게 흉악한 말들은 결국 어떤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어떤 사람들의 마지막 잎새처럼 남아 있는 작은 희망까지 빼앗아가 버리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들 싸움닭이라도 된 것 서로에게 대립하기 바쁘다. 여자와 남자가 싸우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싸우고,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싸우고, 우파와 좌파가 싸우고,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에 바쁘다. 그런 대립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그저 불특정 다수를 더 고통 속으로 몰아낼 뿐이다. 소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건 뭔가 엄청나게 힘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별것 아닌 것 같은 소소한 행동과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분란을 없앤다. 그래서 나는 다짐해본다. 별것 아닌 것 같은 행동을 해보기로. 그리고 부디 그 별것 아닌 것 같은 행동이 누군가의 밤에 빛이 되기를 바라본다. |
|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찾은 사랑과 삶의 기록” 최은영의 <밝은 밤>을 읽고
과거의 무수한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듯, 나의 존재는 이미 나의 엄마, 할머니, 증조할머니 4대를 거쳐서 만들어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여성들의 삶의 서사와 기록 속에 나의 삶도 이미 기록되어 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녀들의 삶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에게도 닿고 나의 시간 속으로 소환된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이 되어 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결고리에서 이 소설 『밝은 밤』은 시작한다. 증조할머니-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백 년의 시간을 감싸 안으며 그녀들의 사랑과 삶의 기록을 추적해나간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매개체가 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증조모와 증손녀 지연이 서로 연결이 된다. 이렇게 자유롭게 100년 전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 구성과 할머니의 입과 기억을 통해 증조모의 이야기는 현재로 소환된다. 증조모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와 '나' 지연으로부터 시작해서 증조모에게 닿는 이야기들이 마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100년이라는 시간과 세대 간격을 메우고 있다.
전작 『쇼코의 미소』에서는 작가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에 대한 고찰을 다루었다. 그 타인에 대한 탐구를 다음 작품인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작가는 미숙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그 속에서 거세게 일어난 마음의 흔들림을 포착하여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그렇게 인간의 내면과 타인과의 관계에 애정을 갖고 글을 써오던 작가는 이제 4대의 삶을 통해 나타난 인간의 내면과 가족관계, 여성 서사에 주목한 것이다. 이 책 『밝은 밤』은 최은영 작가가 지금까지 해온 인간과 관계에 대한 논의를 종합하고 가족관계로 더 확장하고 구체화한 것이다.
『밝은 밤』은 ‘밤’ 같은 시절을 견뎌낸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이유로 공격과 비난, 따돌림을 받았던 삼천, 삼천과 끈끈하고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새비, 그리고 그녀들의 딸들, 또 딸들의 딸들. 이렇게 4대에 걸친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인간관계 단절과 소외에 힘들어한다. 작품 속 '나'로 지칭되는 지연, 지연의 엄마 미선, 미선의 엄마 영옥, 영옥의 엄마 삼천이는 인간관계 단절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며 관계맺기에서 실패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경멸과 멸시에는 익숙하고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사랑은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라는 말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자신을 믿어야만 버틸 수 있었던, 힘든 가운데에도 피어난 우정들을 생각하면 ‘밝은 밤’ 같았어요.” 라고 말했던 작가의 말처럼 희망도 없고 밝은 미래도 보이지 않는 밤 같은 인생이었지만, 그 속에서 삼천이는 새비와의 우정, 자매애, 사랑을 통해 ‘밤’같은 힘든 현실을 이겨내고 삶을 계속해간다. 그 우정과 사랑은 그녀들의 딸들인 영옥과 희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들은 '지연의 죽은 언니인 정연' 이 꿈 속에서 나타나 정연에게 '네 곁엔 내가 있어' 라고 말했듯,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고 의지하는 존재이며 그들간의 사랑과 연대를 통해 그 힘든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녀들 모두가 만나고 조우하는 공간인 바로 '희령'이라는 공간이다. 어렸을 때, 지연이가 할머니 영옥을 만나고 20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된 공간이며 엄마 미선과 할머니 영옥, 증조모 삼천이의 행복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과거는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재조명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지금의 나는 또한 과거의 무수한 나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갇혀 있는 공간에서 느끼는 마음의 상처와 혼돈, 환멸과 슬픔을 100년 간의 시간의 기록과 그 사랑 때문에 이제는 자신감있게 내 마음 속에 기록할 수 있고 혼란스러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녀들의 삶을 통해서 나의 상처와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열쇠는 인간관계 속 사랑과 연대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기쁨
|
|
<밝은 밤>. 역설적으로 들리는 두 개의 단어가 얽혀 하나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듯한 제목이다. 마치 차가운 불꽃처럼. 그래서일까? 이 소설은 이지연의 현재와 1930년대 이정선의 과거가 교차하듯이 얽히면서 전개된다. 현재는 서른 두 살의 이지연이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회령에서 새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는 백정의 딸로 태어난 그녀의 증조할머니 이정선이 나고 자란 황해도 삼천을 떠나 회령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1930년대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가 누군가의 입을 빌어 얘기되는 것이 아니라 화자에 해당하는 이지연에 의해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료들이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되어 역사로 남겨지는 것처럼.
지연의 증조모 이정선은 정신대에 끌려갈 뻔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처라고 거짓말을 한 남자 박희수와 결혼하여 개성으로 떠난다. 병든 어머니를 두고 자기 혼자 살길을 찾아 떠났다는 원죄(原罪)에, 백정의 자식이라는 핸디캡까지 있었지만, 남편이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 삶은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저 만민이 평등하다는 기독교 교리를 실천했다는 허영심으로 그녀와 결혼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의 조상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사람’의 범주에는 백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박희수의 부모가 그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이로 인해 박희수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백정의 딸과 결혼했다는 죄책감까지 있었으니 그들의 결혼이 힘겨울 수 밖에. 단지 ‘삼천’이라고도 불린 지연의 증조모가 모든 것을 참고 견딞으로써 그들의 결혼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지연의 할머니 박영옥의 삶도 힘겨웠다. 증조부가 1.4 후퇴 때 단신으로 회령으로 내려온 길남선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그와 결혼했다. 길남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남들 보기에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그와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북에 부인과 아들이 있는 상태에서 결혼한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할머니를 속였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 하나 없이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변명할 뿐이었다. 사실 할머니나 증조모도 그녀의 결혼이 파국을 맞이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단지 그 예감이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되었을 뿐.
- 남선인 너이 아바이랑 비슷한 사람이야. 나두 영옥이 너이 어마이가 아니었으면 남선이레 공손하구 괜찮은 사내라구 생각했을지도 모르갔어. 기런데…… 아니야. 너를 귀하게 대할 사람이 아니다 - 기걸 어마이가 어떻게 알아 - 같이 밥 먹을 때 보라. 생선이든 고기든 가장 큰 살코기를 제일 먼저 집어가는 기를. 영옥이 너가 귀하면 기렇게 하갔어? 말은 재미나게 하디. 기건 나두 알갔어. 기런데 영옥이 네 말 들어주는 모습을 내레 본 적이 없다. - 남자들은 다 기렇디 않아. - 영옥아, 내는 다른 거는 몰라두 너레 너를 속이디 않았으면 한다. [pp. 216~217]
지연의 어머니 길미선도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로망으로 자신의 엄마가 꺼려하는 결혼을 선택한다. 지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저 참고 견디기만 했다. 그나마 지연의 조모가 중혼(重婚)을 한 남편에게 매달리지 않고, 지연이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을 하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묘하게도 그녀들에게는 모두 힘든 순간 버팀목이 되어 준 벗이 있었다. 지연의 증조모 이정선에게는 새비 아주머니가, 지연의 조모 박영옥은 새비 아주머니의 딸 김희자가, 지연의 어머니인 길미선은 멕시코에 사는 명희 언니가, 지연에게는 지우가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고 속에 담아둔 말을 들어줄 수가 있는 상대방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이 존재하는 것, 혹은 버틸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기억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굳이 다른 이를 기억하기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p. 82] |
|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후,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에 반했다. 단편도 좋지만, 장편이 더 좋은 나는 작가들의 장편을 기다린다. 그것도 자주. 목마른 사람처럼 자꾸자꾸 기다린다. 최은영의 소설이 그랬다. 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도 좋았다.
여성 서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부터 우리 엄마,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할머니의 엄마까지. 대부분 엄마의 엄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설은 많은데 할머니의 엄마까지는 그 대상에 든 적이 드물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할머니도 한때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였고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존재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지연은 이혼 후, 열 살 무렵 할머니의 집에 갔었던 기억을 가지고 희령으로 향한다. 마침 희령에 소재한 천문대 연구원을 구하고 있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잘못한 건 남편이었는데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고 남편을 두둔하는 아빠와 엄마를 피해 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경우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14페이지)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하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미소 짓던 분이었다. 자신의 손녀딸과 닮았다며 딸의 딸 이름이 이지연이라는 것과 딸 이름은 길미선이라고 했다. 자신과 엄마의 이름이었다. 열 살 때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지연이 무슨 이유로 20년이 넘도록 왕래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장면이었다.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면 딸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는 건데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약속을 정하여 할머니 집에 갔다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미소 짓는 두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지연은 할머니의 엄마, 즉 증조모와 얼굴이 닮아 있었다. 그때부터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광복이 되기 전, 결혼하지 않는 처녀를 구하러 다니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증조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증조부는 양인 신분으로 할머니의 당찬 모습이 좋아 보였고, 백정의 딸이라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옛날 여성들은 옳지 않아도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격이라는 건 은연중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고 여기는 순간 발현되는 것이다.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다정하게 대해주던 이웃 사람들도 증조모를 수군대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비 아주머니 덕분이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증조모에게 삼천이라고 불렀고 서로 다정하게 대했다. 가족 때문에, 한국전쟁으로, 원하지 않는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되며 서로 더 애틋해졌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함께해 온 여성들의 이야기다. 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을 이어오며, 새비의 딸과 삼천이의 딸인 할머니, 그리고 그 딸들과, 딸들의 딸 이야기다. 4대의 여성을 통해 질곡의 역사를 건넌다.
상처를 치유하려고 향했던 희령에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했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부분 타자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화자를 달리하여 말한다면 이 소설은 지연이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독자에게 들려주는 식이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를 부를 때는 우리 엄마고, 새비는 새비 아주머니, 삼천이는 증조모로 칭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 때 자식에게 그것을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들어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참고 인내한다. 옳지 않은데도 그것을 자식에게까지 바란다는 것이 문제다. 바람피운 지연의 남편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 지연을 질책하는 것처럼. 자신도 버거운 경험을 했음에도 딸에게도 같은 걸 바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82페이지)
첫 문장부터 이 책에 빠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 할머니에게로 이어진 여성들의 삶이 슬펐다. 이들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바람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무엇보다 그 시간을 함께 건너온 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이 애틋했다. 안녕을 바라면서도 처지가 달라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도 마음이 아팠다.
살아가면서 새비와 삼천이 같은 친구가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친구 지우에게는 할 수 있었듯 단 한 사람의 친구면 충분했다. 새비와 삼천이처럼. 그들 혹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밝은밤 #최은영 #문학동네 #책 #책추천 #책리뷰 #소설리뷰 #한국소설 #한국문학 #여성서사 #엄마와딸 #소설 #소설추천 |
|
<밝은 밤>은 주인공 지연이의 증조할머니부터 현재 지연이까지 4대에 걸친 여성 들의 이야기이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그리고 주인공 지연.
이 책은 4대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와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여주며, 그 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 사랑과 소통에 대해 다룹니다. 문학 평론가들은 최은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사회의 복잡한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자아의 혼란과 갈등을 다루는 데 있어서 탁월하고,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제공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며 자신의 할머니를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갔던 할머니. 앞으로 멀리 다니라고 지구본을 사줬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 소설 세계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라는 첫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지연은 열 살 때 처음으로 희령에 내려가 할머니 집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 추억을 회상하며 서른두 살의 나이로 다시 희령에 내려가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로부터 증조할머니, 할머니 자신, 지연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일제 강점기 시대 증조할아버지가 증조할머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개성으로 도망 온 이야기, 개성에서 다시 만난 새비 아저씨와 새비 아주머니와 보냈던 시절, 새비 아저씨가 일본으로 돈 벌러 갔다가 원폭 피해를 당한 일, 6.25 전쟁이 나서 대구로 피난 가서 살았던 일, 증조할아버지가 전쟁이 끝난 후 부모를 찾기 위해 희령으로 와서 정착한 일, 할머니의 결혼 스토리 등 할머니의 부모님 이야기로부터 주인공 지연의 어린 시절까지 할머니는 지연에게 들려준다.
지연은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후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할머니와의 만남과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회복해 나간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일제 강점기 시대, 6.25 전쟁 속, 전쟁 이후 힘든 시절. 그 시절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가 선택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지연은 생각한다. 나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선택을. 그 질문에 답을 못한다.
저자는 이 질문을 지연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던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부모와 그 위 세대들의 선택이 있었다.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의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 잠시나마 엄마의 입장에서 당신의 삶을 조망하길 바라는 것 같다. 당신들의 삶을 이해와 위로해 달라고 아니면 너는 나와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4대 모녀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면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과정을 보여준다. 증조할머니, 할머니의 삶과 새니 아주머니와 희자의 삶은 사뭇 다르다. 그 속에서 할머니와 희자의 우정을 매우 특별하고 따뜻하게 그린다.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를 지탱하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 지연의 현재 이야기와 할머니에게 전해 듣는 과거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전개 방식으로 이야기가 복잡하다고 느껴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했다.
따뜻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싶은 사람,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
내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인가? 처음으로 최은영 소설을 읽다가 접었다. 왜 그만두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3대를 아우르는, 그것도 이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정통으로 뚫는 여성들을 그리면서, 결과적으로는 여성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지 않았나 싶다. 댓가 없는 선의 그리고 연대로 점철된, 한 마디로 전쟁통 중에서도 군더더기 없고 정갈한, "모범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의도적으로 배치된 부분이 잘 설득이 안된 것 같다. 굳이 성별 프레임으로 보아야 하냐는 물음에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읽다보니 너무나 여성서사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성별 관점에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읽은 지 좀 되어서 상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례로,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사고를 낸 사람은 도망가고, 목수가 주인공을 병원에 데려가는 부분이 있다. 그 다음 문장이 갑자기 "그녀"라고 지칭되어 독자들은 목수가 여자임을 알게 되는데, 1) 목수가 남자일 것이라는 독자들의 편견을 깨고, 2) 비겁하게 도망간 음주 운전자 대신 친절을 베푸는 여자를 조명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짜임새가 상당히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도 좋고 연대도 좋고 여성서사도 다 좋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이 나온 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제는 조금 더 세련된, 업그레이드 된 최은영의 여성서사를 읽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
|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p. 337
몇 년 전에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읽었는데 크게 감흥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술술 읽히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배경이나 사건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문체나 분위기는 작가 고유의 특성이 있으므로 주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지만 술술 읽히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간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술술 읽는 것으로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간 것도 모자라 내 인생 다섯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 정도의 최고의 소설이 되었다. 소설을 읽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마음 하나하나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깊이 공감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연이처럼 영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미선이가 되어 있었고, 영옥이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새비 아주머니와 희자가 되기도 했고, 삼천이가 되기도 했었다. 장면마다 나는 누군가가 되어서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일제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경험할 일은 없었는데 영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자신이 그 시절로 돌아가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역사 공부와 다르게 그들이 겪었던 근현대사의 상황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연이가 왜 스스로를 몰아붙였는지, 미선이가 왜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는지, 영옥이가 왜 지연이를 이해하는지, 새비 아주머니와 희자의 생각 등 등장인물의 감정선과 상황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소설이 되었다.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은 밝기보다는 어둡다. 백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던 삼천이, 중혼을 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영옥이, 무엇보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미선이, 이혼이 흠이 되어 가족에게 상처를 받는 지연이까지 개개인의 사건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다. 그러나 읽는 나에게는 이상하게 빛이 하나 보였다. 증조할머니부터, 할머니, 어머니, 딸에게까지 내려오는 핏줄의 끈이었을까, 아니면 새비 아주머니와 희자, 지우, 멕시코 아주머니와 같이 어려울 때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주는 인연의 끈이었을까. 암흑과 같은 상황들 속에서 제목처럼 '밝은 밤'이 느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제목처럼 밝은 위로를 해 주었던 책을 만난 것은 틀림없다. |
|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다. 침묵은 나의 무기였고 솔직할 자신이 없으면 피했다. 재빠르게 얼굴을 숨기는 거북이처럼 내 감정을 숨겼다. 고로 난 감정싸움을 극도로 싫어한다. <밝은 밤>에서 유독 신경이 거슬린 건 지연과 엄마,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였다. 반투명 막을 쓴 사연들은 그저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그녀들.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꼬일대로 꼬여버린 그 풀리지 않는 관계가 내내 명치를 건드렸다. 그들은 현재의 감정에만 집착하거나 포기하거나 잠복한 상태로 상대를 위한답시고 거리를 이~~따만치 벌려둔다. 끝내 할머니가 들려준 과거사가 그녀들의 거리를 좁히고 그 사이에 기름칠을 할것이라는 믿음이 어느 정도 통하긴 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피로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의 안타까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별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반짝이는 걸까. 어린 지연은 눈부신 희령의 밤하늘을 품었었다. 다시 희령을 찾았을 땐 엄마와 할머니가 벌려놓은 거리만큼 건너뛴 뒤였고 지연은 분풀이를 하듯 다시 엄마와의 거리도 벌려놓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 이혼 후 망가져버린 회로를 겨우 이끌고 내려온 이곳에서 지연은 할머니를 만났다. 어린 지연이 그랬듯 서른두 살의 지연도 할머니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지연은 당장 내 편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지연에게 최대한 예를 갖춘다. 쓸데없이 묻지도, 아픈 곳을 찔러보지도 않는다.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오히려 묻는 쪽은 지연이다. 할머니는 지연에게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다. 사진속에서 자신과 닮은 여인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던 지연은 처음으로 할머니의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증조모(삼천)와 그런 백정의 딸을 거둔 증조부. 백 년 전 시간을 거슬러 온 문턱에서 나는 한 남자의 순정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으나 그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증조모의 삶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정의 딸이라는 굴레와 아픈 어미를 버렸다는 죄책감과 남편의 무심함까지 견뎌야 했다. 그 외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건 서로의 처지를 헤아려 준 새비 아주머니였다는 걸 알게 된다.
지연은 그렇듯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다. 지연은 마음을 꺼내 씻어서 널어 두었다 다시 넣고 싶을 만큼 마음을 덜어내고 싶어 한다. 오랜 시간의 상처가 딱딱한 퇴적층이 된 지연은 과거에서 이유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의 삶을 이해하면 자신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이들의 뻔뻔함을 납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다시 혼자가 된 지연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자신이 개새끼 같다고 느낀다. 삼천과 새비 아주머니의 사연을 듣다 보니 감정 분출이란 걸 제대로 해 본 적 없던 지연은 그녀들과 어딘가 닮아 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삼천에게 외로움과 체념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가세가 기울때마다 시댁 사람들의 타깃이 되고 원폭 피해자가 되어 돌아온 남편이 죽자 쫓겨나게 된다. 곪아 있는 건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 있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 반기의 시작은 새비 아주머니였고 자연을 포함한 통쾌함의 삼종세트가 반가웠다. 당신이 기러고도 인간이냐며 속시원히 시모에게 쏘아부치던 새비 아주머니, 한번만 더 그런말 했다간 당신 내손에 죽는다며 남편에게 날을 세운 삼천의 분노, 늘상 엄마를 무시하던 삼촌에게 지연이 쏘아올린 마지막 한방까지.
모든 관계가 한결같을 순 없다. 삼천과 새비아줌마, 희자와 할머니와의 관계 역시 전쟁의 굴곡에 휘둘린다. 그럼에도 그들의 관계는 어려울수록 빛을 발했다. 살뜰했던 편지와 애틋한 몇 장의 사진을 뒤로하고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은 안타깝지만 서로를 웃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사람들과 죽음의 그림자를 달아나게 한 따스한 손길들은 그녀들을 어디에서나 지탱해 주었다. 그러한 우정이 없었다면 그녀들의 과거는 온통 암흑이었으리라.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p.258
만남과 헤어짐 그 연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연은 헤어짐을 견디지 못한다. 그녀에게 이별은 늘 갑작스럽게 왔다. 언니의 죽음과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헤어짐, 그리고 남편과의 이혼. 자신의 감정은 늘 배제된 채 이루어진 이별 때문에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 늘 혼자였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는 지연에게 고백한다. "내 얘기 들어줘서,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p 251 할머니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준 지연이 고마웠겠지만 오히려 지연은 마음의 동토층이 녹았음을 체감한다.
왜 우리는 그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주변과의 관계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찰나 같고 그 먼지 같은 시간들을 외롭게 버티도록 방치하는 것일까.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비 없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혼녀라는 이유만으로 침묵하고 감내해야 했던 여인들은 그들끼리 소통의 다리가 되어 그 험난한 시간을 지났고 지나가고 있다.
엄마와 지연의 대화는 매번 서로를 후벼파는 것으로 끝난다. 꼬여버린 관계 뒤틀리고 비꼬인 대화. 지연은 이해받지 못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엄마의 치부를 건드리는 방식을 택한다. 정작 자식에게 쓴소릴 들어야 하는 건 아빠 같은데 말이다. 딸 앞에선 욕설을 남발하는 아빠라니. 지연은 그 사이 길강아지 한 마리를 떠나보냈고 위험천만했던 사고도 당한다. 그녀들의 선택과 후회를 떠올리다 문득 이 지겨운 감정싸움의 끝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깨닫는다.
암호학자가 된 희자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을 잘 견뎌내기 위한 암호는 '내게 누군가가 있다'라는 믿음이 아닐까. 그러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의 밤은 점차 밝아질 것이다. 지금 내게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