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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들은 대부분 밝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산문집은 표지에서, 제목에서 부터 약간 어두운, 무거운 느낌을 준다. 저자역시 적막을 찬양한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런 느낌이 더하는것 같다. 저자가 시간의 무서움을 실감한다고 했다. 시간의 빠름에 대해서말이다. 꽃이 피고 지는 기간도 매우 짧다. 이 시간에 시간의 빠름을 표현했다. 너무 와닿는 표현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따라 간다고 들었다. 20대에 들어서 인지 그런가보다 했다. 30대에 조금 빨리 10년이 지난것 같고 40대가 되니 그 말이 더욱, 절실히 실감난다. 남은 인생이 너무 빨리, 바쁘게 지나가게 될까봐 겁도나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게는 사랑하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어야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는 그런 공간이 없다. 만들어야 삶에 힐링이 되고 활력소가 될것같은데 조만간 만들어야겠다는다짐도 덕분에 했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쓴 산문집들은 용어가 쉽고 빨리 읽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연령이거나 그 이상인 작가들의 산문집을 조금 늦게 읽어진다. 그 연령대에 갖는 문장표현들과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가끔 같은 연령대가 가져야할 것들은 안가지고 있는것을 느낄때 좀 뒤쳐진 느낌이 든다. 더 책을 읽고 문학적 표현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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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글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차분해지고 사색의 늪에 빠지게 되는 그런 글! 시인 장석남의 에세이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가 바로 그런 책이다. 책 제목부터 벌써 쓸쓸함이 전해져오는 에세이, 사랑하는데 왜 멀리 있다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멀리로 떠난걸까? 아니면 사랑하는데 사랑할 수 없어 멀리 있다는걸까? 사랑의 대상이 사람인걸까 사물인걸까? 혹은 우주 저 너머의 어떤것일까? 문득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빨리 펼쳐보게 된다. 좋은 시가 왜 좋으냐고 하면 어떠한 답이 나와도 그 시가 가지고 있는 함량에 미달인 채로 구차하다. 좋은 시는 막 달려 들어오는 것이다. 사랑이 그러하듯이. 시인의 문장은 역시 남다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시 한구절을 떠올려 옮겨 적으면서도 그 시가 좋은 이유를 구차하게 떠들어대지 않는다. 좋은건 그저 좋은 것일뿐! 시가 달려온다는 표현도 사랑이 그렇듯 달려온다는 표현도 시인이 아니면 하지 못할 은유가 아닐까? 시를 읽는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에 빠지들게 되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로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함락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시도 사랑도 내게 막 달려 들어오는 것이 맞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시인의 문장에 공감하게 된다. 아니 고독을 즐기지 않더라도 시인의 문장을 읽으며 나 또한 그런 때가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인공 연못에 돌을 던지며 홀로 쓸쓸하고 적막한 시간을 즐기는 시인, 어느순간 돌맹이가 좋아져서 그 돌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일에 몰두하게 된 시인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나 적막하고 쓸쓸하게 가슴을 파고 드는것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내면의 어떤 것에 파문을 일으키듯 문장을 던지는 글들!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밤이 되면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맞이하며 시인의 쓸쓸한 문장과 더불어 내 마음 한구석에 사색의 자리를 마련해 보는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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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장석남
저자의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러나 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좋은 시라는 것만 깨닫는다. 이어서 저자의 수필을 읽어보았다. 시인답게 군더더기 없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깊은 통찰이 있는 책이다. 저자는 사람이 있는 도시보다는 사람이 없는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그곳에서 돌과 새와 이야기를 한다. 그는 적막을 예찬한다.
진정 세속이 끊어진 자연속에서 깊은 통찰이 이루어진다. 그는 음악에 대한 소회도 많이 기록하고 있다. 시와 음악은 서로 통한다. 장석남이라는 시인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나도 시인과 가까이 하면 시적인 세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 깃마다 묻는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입춘 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김소월,〈산유화〉중에서
형용 불가능한 감정이 문장의 그늘에 모여들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과 눈을 맞춘다. 세상에 답이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한번 물을 손으로 떠서 던진다. 겨울이 되면 여지 없이 물은 얼어붙어 버릴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어리둥절해진다. 나도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그것을 생각해도 어리둥절해진다. 하여튼 평반 정도의 연못가에 앉아서 물을 움켜 건너편 소나무 아래의 돌멩이에 뿌려보는 것이다. 돌멩이는 젖어서 이번에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멀리 있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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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시의 세계를 누비며 장석남이 발견한 지혜의 문장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시와 자연을 너무나도 이야기하는 시인 장석남. 세월이 흘러가는것이 아닌 차곡차곡 쌓인듯한 시인의 시선은 참으로 무르익어음을 느끼게한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의 시선, 익을수록 더 발갛게 영롱해지는 홍시같은 그것들과 그는 닮은것 같다. 자연을 닮아가는 자세,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스치며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그를 발견할 수 록 더욱 글에서 느껴진다. 사랑하는 것들과 거리를 눈 그의 노래가 꼭 저만치에서 흐르듯 들리는듯 하다. 적막을 예찬하는 시인. 그것 외로움과 고독함과 친구되어 그것을 온전히 앎이 아닐까? 나는 이 에세이를 읽으며 엄마와 남편에 대한 다른 시선의 생각들로 깊이 사유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나를 투영하여 그것쯤은 괜찮다는 자연스러움도 배웠던듯 하다. '사랑하는 것은 멀리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막 예찬_ 사랑과 인생에 눈을 맞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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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지음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서정파 시인. 1965년 인천 덕적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방송대,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는 장석남 시인의 산문집으로 그가 생각하는 인생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여름 저녁 마당에 자리를 편다. 새우젓에 호박국을 끓여놓고 잠시 밥상에 없는 식구들을 생각할 때 조용히 젖어드는 저녁별을 보게 될 것이다. 여름 한철 무성한 자연의 질서 속에도 이미 이별이 있고 울음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도 있다. 인간은 그것을 너무 일찌감치 깨닫는 짐승이라 서글픈 거다. 그래서 한 숟가락의 밥을 떠먹고 한 번 겸손해지고, 한 숟가락의 국을 떠먹고 또 한 번 겸손해지는 거다." p.17, '눈의 식량, 귀의 식량' 중에서
따갑게 내리쬐던 햇빛이 무색하리만큼 차분한 밤이다. 창 너머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잔잔한 풀벌레 소리와 함께 책을 읽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책은 저자가 일상적 소재로부터 깨닫게 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돌멩이를 좋아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물긷는 소리, 사랑하는 장소, 음악, 달 등 생활 속에서 그저 지나쳐갈만한 대상으로부터 가지게 된 찰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하는 감동이랄까?
"적적해지는 것은 내 오랜 취미다. 그 취미가 나를 이끌어 간다. 적적함이 직업이라도 좋겠다. 적적하지 않고서야 이 세상을 어디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 적적함은 맑은 거울이자 명쾌한 저울이요, 사랑의 반석이다. 적적한 곳에 이르지 않는 이를 나는 사랑할 수 없고 적적함을 모르는 이를 나는 친하다고 할 수 없으리라. 나는 끊임없이 적적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 헤매는 신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견디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적적은 그래서 지극히 상류층의 취미임에 틀림없다. 나는 자꾸 상류층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p.36-27, '취미는 적적해지는 것' 중에서.
'적적하지 않고서야 이 세상을 어디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라는 구절이 머릿 속을 계속해서 맴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공감가서... 언젠가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차마 글로 옮겨내지 못하고, 생각에 그치기만 했는데, 그것들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음에 놀랍다. (작가의 필력이 조금 많이 부럽다)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살면서 적적함 한번 느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적적해지는 것은 분명 외로운 일이지만 또 온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적적한 것'이 싫어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전화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그 시간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글에 자꾸만 내 생각이 더해지는 매력적인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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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서평 경력이 짧기 때문에 문학작품(시, 소설, 에세이 등)이든 논저든 자기계발 책이든 서평이 쉽지 않다. 특히 문학 작품 서평은 어렵다. 시나 소설, 에세이는 글쓰기라면 '도사'들인데 그들이 써놓은 작품을 평가한다 해도 동어반복이나 함량 미달의 서평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설픈 속에서도 나름의 성실한 평가를 하면 고맙다는 답례도 받은 적이 있다. 서평의 매력인 것 같다. 졸렬하기 짝이 없는 서평에 '잘 봤다, 좋은 평을 써 주어서 감사하다'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보내온 경우 반어법처럼 들리는 것은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저자가 직접 보내온 경우엔 적잖이 당혹스럽다. 굳이 아무 말 없이 지나가도 될 터인데 애써 서평자에게 댓글을 단다는 것 자체가 독자들의 관심에 유의하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글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의 서평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의 부제가 「적막 예찬」이어서다. '적막'이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독자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쓸쓸한 듯 고요하고, 외로운 듯 유유한 상태의 매력 때문이다.
이 책 저자이자 시인인 장석남은 유년 시절부터 시와 자연에 조숙(?)했다고 한다. 등단 35년 차를 맞은 지금도 그는 세상의 구부러진 지점에 주목하고 노래하는 시인의 의무에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13년 만에 새 옷을 입은 그의 두 번째 산문집을 들춰본다. 에세이나 시는 주장을 펴는 글이 아님은 누구나 잘 아는 바다. 그러나 주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논저나 사회 비평서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고 할 뿐 어떤 글이 자신의 주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겠는가. 이 산문집은 부제에서 암시하듯 '적막함'을 노래하는 것이다. 산문집이라고 해서 내키는 대로 적어 내린 비체계적인 글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 산문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 오히려 뼈대가 있고, 건질 만한 단어나 귀절이 많다. 이 산문집은 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시론(詩論), 인생론을 풍부하게 풀어냈다. 사유라고 할 만한 치밀한 생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건성으로 읽다가는 중요 지점을 발견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
저자에게 사랑은 어린 시절 자연학습 시간, 말굽자석에 뿌려진 추상적인 문양의 쇳가루들처럼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 문양을 탄생시킨 근본적인 이유가 여전히 생생하게 궁금한 것이다. 향수, 추억, 자연들이 생각나게 한다. 저자는 이런 정지 작업 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이어붙인다. "이해라는 것이 사랑마저도 해결하려고 할 때 모든 것은 헝클어진다." 웬만큼 흡족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사랑 타령이다. 나이라는 돌덩이를 하나둘 쌓아오며 시인의 시선은 어떻게 무르익어 왔을까.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의 시선을 닮을까, 한겨울의 찬바람에도 꼿꼿하게 서는 대의 청정을 닮을까. 산책하듯 흘러가는 문장 속에서 자연을 닮아가는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하는 것들과 거리를 두며 적막을 예찬하는 시인은 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외로움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애인의 발자국을 따라 밟는 마음으로 찬찬히 응시해본다. 시인의 마음에 공감이 가고 동화되기도 한다. 유유자적 도인인 척 눈에 팍 띄는 대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그만 집 짓기' '비유, 카메라' 같은 글은 놓치기 아까운 글이다. 삶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가 어렴풋이 구분되는 순간이다.
같은 피사체를 촬영하는 여러 가지의 구도와 초점이 있고 이에 따라 사진의 결과물이 천차만별 달라지듯이, 어떤 분야에서건 뭇사람과 다르게 해석하는 관점이 개인에게는 필요하다.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흔히 접하지 못하는 색다른 시각은 개인의 중심을 지키며 사소한 사건을 바꿔놓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밈(Meme, 비유전적 문화 요소)이 되기도 한다.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는 다양한 사람이라기보다 다양한 관점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런 차원에서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다는 것은 자아를, 혹은 대상을 해석하는 최첨단의 시각을 접한다는 것 아닐까. 가장 새롭다는 의미보다 가장 날카롭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예리한 칼 같은 시선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는 대상의 내면을 해체하고 틈을 파헤치는 시인의 시도는, 감정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낯선 대상과 감정을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다.
돌 파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 꽃도 파봤고 산도 내 나이에 맞게 봉우리를 만들어 파봤다. 새는 돌 속으로 날아갔고 물은 돌 밖으로 흘렀다. 달은 돌 뒤로 졌으며 눈보라는 세찼다. 돌의 까칠한 표면에 드러난 형상들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모던한 것이었다, (중략) 미켈란젤로가 ‘단지 바위 속의 무엇을 풀어주었을 뿐’이라 했던가? 그 안에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하고 싶다. 아마도 종국엔 나를 닮은 무엇이 되려나? 그건 내 가슴을 새기는 심정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꿈일지도. - pp. 22~23 「돌과 사귀기」 중에서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문학의 사용가치를 주창하며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오늘날 그가 강조한 문학적 요소는 대개 축소되거나, 남아 있다고 할 만한 일부의 목소리들은 산문으로 옮겨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 대중들에게 있어 문학, 특히 시는 지적 계몽과 유희라는 두 기능 사이에서 설 곳을 잃은 ‘무용한 것’에 불과하다. 수 세기간 이어져 온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그 어느 때보다 자조적으로 들리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굳건해 보였던 문학의 가치는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문학의 쓸모를 믿는 존재가 있다. 설령 그 쓸모가 없더라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시인이다. ‘내 글품은 구투를 벗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게 녹은 더디 앉을 것’이라고 믿는 시인은 자신은 물론,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 닮은 문학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여전히 문학은 삶의 지혜를 담은 보물창고였다. 시인은 단지 지금까지 지켜온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변치 않는 가치를 알아보는 것뿐이다.
역시 글이라는 것은 맨땅에서 파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요즘에 와서 더더욱 절감한다. 묻은 게 없으면 나오는 게 없다는 것은 만고진리지만 그 토양마저도 굳고 거칠면 도통 좋은 씨앗도 배겨나질 못한다. 아무리 깊이 파서 땅을 뒤집어놓아도 비 한 번 오고 나면 굳어져서 호미조차 들어가질 않는다. 돌덩이처럼 굳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중략) 그나마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은 옛 책들일 수밖에 없다. - pp. 30~31 「밤에 물소리를 듣고 초서가 아름다워졌다」 중에서
옛 책에 담긴 문학적 향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전 묶었던 원고에 새 옷을 입히는 시인의 의도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문학은 상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세상의 천태만상과 우여곡절을 보고 겪으며 다져진, 무수한 상흔이 비치는 시인의 문장을 곱씹는 일도 하나의 공부일 것이다.
모과라는 열매는 아주 매혹적이다. 저 빛깔을 보라. 저 빛깔이야말로 늦은 가을 저녁을 닮은 빛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 상처가 나 있다. 상처는 짙은 자주색이다. 길가에 뒹굴던 것을 주워왔던 것이다. 상처 때문에 버림받은 놈일 게 뻔하다. 그런데 온 방을 물들이는 이 향기는 상처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것이리라. 상처가 향기를 짙게 만들어낸다. - p. 111 「모과 향기 속」 중에서
스스로 음악 마니아의 지경은 아니지만 ‘어지간히 음악을 좋아한다’고 여기는 시인은 음악을 듣는 가운데 적막을 붙들어 맨다. 맞닿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쌍곡선, 음악과 적막이 시인의 세계 안에서는 교차점을 지닌다. 오랜 적막이 곧 음악이 되고, 흐르는 선율에서 적막을 발견하는 그의 사유는 유쾌하면서 동시에 침착하다.
인간은 그래도 그러한 자연의 순환을 여러 번 경험할 수 있어서 삶과 죽음의 원리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신이 준 기회다. 우리는 늦은 가을 저녁나절이면 숲길을 걸으면서 ‘자연이 저러하거늘…….’ 하고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걷다가 다시 오래 침묵한다. 침묵이 바로 깊은 생각의 대지이고 지혜의 대지이다. 음악도 침묵을 대지로 삼지 아니한가. - pp. 218~219 「풍죽의 브람스」 중에서
슬픔, 고요 같은 낱말들은 그렇게 자연스레 시인과 어울린다. 그가 보여주는 슬픔과 고요는 어딘지 다른 구석이 있을 것만 같다. 산문 속에서 빛나는 이 남다른 시선은 감각의 새로운 경지를 제시한다. 쉬지 않고 수런거리는 듯한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고요와 인간의 감정에 국한되었던 슬픔은 시인이 응시하는 대상 곳곳에 스며든다. 물 긷는 소리부터 날아가는 새의 깃털까지, 서정에 닿아 있는 객관적 상관물을 기꺼이 삶에 품은 시인이 써 내려간 문장들은 소낙비처럼 느닷없이 쏟아지며 독자의 ‘왼쪽 가슴 아래께’를 적시고 만다. 시인은 자신의 일부를 이루는 음악 속에 들어앉아 고요를 오래도록 추상한다. ‘몇 겹의 자연 속에’ 파고들었을 그 역사 깊은 적막의 본질을 알아본다. 멀리 있지만, 다행히도 감각할 수 있다. 마침내 독자는 우연히 접한 음악이 귀에 맞는 기쁨을, 한 편의 연주 같은 산문 속에서 발견한다. 그 발견은 적막을 닮았다. 어쩌면 인생일지도.
저자 : 장석남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서정파 시인. 1965년 인천 덕적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방송대,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91년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마당에 배를 매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등의 시집과『물의 정거장』, 『물 긷는 소리』등의 산문집이 있다. 장석남 시인의 시에는 그리움이 있다. 시간과 내력을 꿰뚫는 그의 시선 앞에서 사물들은 그 내면에 숨긴 고독을 드러내고 돌아갈 고향을 반추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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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는 제목에 이끌렸습니다. 장석남 시인의 시적 함축미가 돋보이는 산문집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1. 자연의 속도를 알아차리는 여유로움
저는 세상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살아갑니다. 제 일정에는 하루에도 서너 개의 일정이 있으며 일주일 중 하루 겨우 숨 돌리는 틈을 둡니다. 그런 제가 유난스럽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나이 대부분 사람들은 바쁘게 삽니다. 하루가 숨 가쁘고, 시간이 빠르게 달리고, 씻고 침대에 누워 내 시간이 다 어디로 갔나 아쉬워하며 잠을 애써 미루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장석남 시인은 눈의 식량, 귀의 식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아파트라면 그릇에 흙을 좀 담아다가 씨앗을 묻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여름 내내 눈目의 식량이 된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 그 위에 쏟아지는 여름 빗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소리를 귀의 식량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의 목소리이자 이 세상에서 사라져간 조상들의 목소리이며 미래의 자손들이 낼 목소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조용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여름 한철 무성한 자연의 질서 속에도 이미 이별이 있고 울음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도 있다. 인간은 그것을 너무 일찌감치 깨닫는 짐승이라 서글픈 거다. pp.15-17,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장석남
여름 한철 무성한 자연의 질서 속에도 이미 이별이 있고 울음이 있다는 시인의 말에 제 마음이 서늘한 건 이별이 있고 울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여름 한철이 무성한 줄도 모르고 사는 제 삶이 서글프다고 생각했습니다. 꽃의 속도를 자연의 속도를 알고 일찌감치 깨닫고 서글퍼지는 순간이 올까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자연의 속도에 자연스럽게 맞추게 된다고들 합니다. 아직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의 차이로 각자의 서글픔만 느낍니다.
2. 사랑을 하늘과 구름이나 보고 숨어 기뻐할 것
떡갈나무 숲 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라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아무도 모르라고, 김동환
사랑이란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속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끼고 아껴서, 숨기고 숨겨서 사람에게가 아닌, 혼자 하늘이나 보고 구름이나 보고 하느님이나 보고 웃으며 기쁘게 자랑하는 것이다. p. 47, 같은 책
참 재밌는 문장입니다. 저는 이 문장이 전통적인 사랑과 겸손의 가치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공유하는 세상입니다.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한 것을 기성세대의 표현에 따르면 자랑하는 세상입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김동환 시인의 구절처럼 도로 덮고 내려와야 하는 걸까요. 오래된 생각이라 덮어두고 따르지 않기에는 어쩌면 그게 사람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 역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끼는 건 도로 덮고 내려올 겁니다. 행여나 빼앗길까, 다칠까, 다른 이가 해코지할까 두려워 정말로 하늘이나 보고 구름이나 보고 하느님이나 보고 웃으며 사람 아닌 모든 것에 기쁘게 자랑할 것 같습니다.
3.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현실감 있는 주제
- 불화를 형성하는 소재는 다양했지만 모두 가난 플러스 알파였다. 가난하면 가난에 어울려야지 가난보다 똑똑해선 안 된다. - 샘물을 들여다보며 울음을 터뜨릴 나이가 지난 내가 하는 일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고 되뇌는 일과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적의나 무력감 같은 것들을 삭이는 것이었다. - 그 막막하고도 막막한 슬픔의 체험은 누에와 다를 바 없던 그 소년에게 모두 뽕잎들이었는지 모른다. p.153, 같은 책
이 책을 읽으며 주제 대부분이 자연과 사색, 그리고 실제 삶과는 어딘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이 부분에서 강하게 현실감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연결될 수 있는 감정과 표현 그리고 경험이었습니다.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력과 표현력이 현실감 있는 주제와 맞물려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제 마음에 깊이 들어온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총평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고, 멀리 있는 것을 향하기에 생명이라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기억이 납니다. 시인이기에 그의 언어는 시적 함축이 곳곳에 있어 쉽게 읽히지 않고 오래 씹어야 합니다. 어딘가 마음의 적막과 거울 같은 잔잔함을 원하신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모두 자연의 속도에 맞춰 여유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안앙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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