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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건망증, 그 깊이
3개의 단편과 1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옮긴 이의 말을 제외하면 채 100쪽이 안 되는 글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소설 또는 에세이류의 책 중에서 가장 얇은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분량은 그렇다 치고 내용은 어떨까 무겁다. 아니 깊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책의 제목과 어쩌면 이리도 잘 어울릴까 싶을 정도로 책에 실린 3편의 단편과 1편의 에세이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는 젊은 화가가 비평가로부터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평을 받고 난 후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다 결국 끔찍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다. 젊은 화가가 죽고 난 후 그 평론가는 ‘거듭’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깊이가 있다는 내용이다.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깊이가 없었던 화가의 작품이 죽고 난 후에는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평론가의 일관성 없는 논평 한마디로 인해 재능있는 한 예술가의 삶은 뒤 바뀌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오늘날 SNS에서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승부다. 체스판을 두고 벌어지는 동네 고수와 젊은 도전자의 이야기다. 체스를 두는 내내 동네 고수는 젊은 도전자의 거침없는 한 수에 의아해하면서도 신중을 기한다. 어쩌면 이번에는 이 젊은 도전자에게 승리를 내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때문인지 동네 고수 장은 마음속 패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동네 고수 장이 이긴다. 그런데 이긴 게 이긴 게 아니다. 그것은 동네 고수 장이 하수인 젊은이를 상대한 가장 끔찍한 패배로 남는다. 그는 다시 승리했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체스를 두는 동안 내내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풋내기 앞에서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44쪽) 마지막에 실린 한 편의 에세이는 문학의 건망증에 관한 이야기다.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직접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 병은 축복, 거의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 꼼짝 못 하게 불어넣는 경외심 앞에서 그를 지켜주고, 표절의 문제도 복잡하지 않게 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독창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93쪽) 문학의 건망증이라 ! 딱 내가 그렇다. 분명 읽은 책인데,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이렇게 기억이 나지 않는 거라면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작가는 명쾌한 해답이라도 주듯, 아주 능청스럽게 별거 아니다, 당연하다는 투로 희망을 준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축복을 받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