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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창작물과 예술성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예술가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매우 분분하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아닌 예술가 개인의 가십으로 팸플릿을 채우는 전시/공연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유독 생의 궤적이 그의 창조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일관된 삶의 실천을 통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이로 기억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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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는 19세기 말 카탈루냐에서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그의 많은 정체성이 설명된다. 카탈루냐 지방은 역사적으로 주권과 문화적 정체성을 억압당해왔고, 특히 에스파냐 내전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능과 음악을 속에 가지고 태어났'다고 스스로 표현할만큼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연주가였다.
바흐 첼로 독주곡를 최초로 '전곡 연주'한 첼리스트인 카잘스는 자신이 첼로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첼로는 첫눈에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전에는 한번도 첼로를 본 적이 없었어요. 첫 음절을 듣는 순간부터 압도됐습니다.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 소리를 들으니 무언가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답고 인간적인 빛이 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운명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과 다름없는 경험이었을 터. 그의 나이 열한 살의 일이었고, 어머니의 정서적 지지와 조력자, 동료가 선사하는 영감과 함께 그는 바르셀로나, 파리 등 유수의 기관을 거치며 교육 받았다. 특히 바흐를 사랑한 그는 바흐의 음악을 바다에 비유하기도 했다. 파도의 높이와 소리, 빛이 부서지는 모양은 절대 같을 수 없듯이 그의 음악 또한 '매일매일 무언가 더 새롭고 멋지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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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수련 과정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부모는 가난했고 후원자와 왕실의 지원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끊겼을 때엔 그의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잘라 생활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카잘스 본인부터 가난이 무엇인지, 체제에 의한 시련이 인간을 얼마나 괴롭게 만드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대의 힘을 알고, 도시 속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즉 자신의 성취가 오롯이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라 행운과 우연의 결과라고 믿었고, '모든 예술과 참된 악기'는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파괴적 본성과 자비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자살까지 고민하던 사춘기 시기를 거쳐, 카잘스는 파리에서 첼로 독주자로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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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에포크 파리를 누비며 베르그송, 드가, 라벨 등 예술가들과 인연을 쌓고, 셀수없는 순회공연을 다니고, 벨기에, 포르투갈, 영국의 왕실 그리고 백악관의 초청까지 받은 카잘스는 단연 최고의 첼리스트였다. 그렇게 세계를 첼로 선율로 사로잡은 그는 음악이 부르주아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연주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자신의 건강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해 고향인 카탈루냐에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고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열고 그들의 음악적 소양을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장려했다. 모두 카잘스 본인이 음악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벌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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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인임을 자랑스러워 한 카잘스에게, 공화국 정부가 자리잡는 듯 하다가 함락되고 마침내 독재자에게 통치권이 넘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에스파냐 내전은 추축국 연맹의 결성 계기가 되었고 '콘도르 부대의 실험대'라고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이 전쟁은 카잘스를 정신적으로 파괴했다. 물론 카잘스의 당시 위상으로 그가 안전하게 대피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타국에서 새로운 터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국과 가까운 땅에 남아, '첼로와 지휘봉' 그리고 신념으로 에스파냐 국민의 생존을 돕는 편을 택했다. 그의 신념은 무형의 다짐으로만 남지 않았다. 수용소에 직접 물품을 조달하고, 후원금을 위해 연주회를 열었다.
그는 시대의 대표적인 반 파시스트로 손꼽힐만큼 적극적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치는 실제로 카잘스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여겼으며, 하루는 나치의 장군이 직접 그의 집으로 찾아와 독일에서 연주하기를 청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카잘스가 '에스파냐에 가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가 독일에도 있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인 의견 표출에 망설임이 없었고 평화와 자유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딴청 피우는 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코 정권을 인정한 나라에서는 절대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바흐 서거 200주년 행사 전까지 그 약속을 철썩같이 지켰다. 그토록 사랑하던 카탈라냐에 독재가 내려앉자 그는 망명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언젠가 자유를 되찾는다면 바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으며 후계자로 지목한 후안 카를로스가 민주주의를 선언하기 2년 전, 카잘스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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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는 에세이에서 개인이 지니는 '서사성'과 '일화성'을 들어, '서사주의자는 일정한 연관성과 지속적인 자아를 느끼고 그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자신의 자아와 연관성을 구축하는 도구로서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서사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실패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카잘스가 그의 예술적 성취와 삶의 태도는 절대 분리될 수 없으며, 한결같은 행보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 인물임은 감히 확신할 수 있을 듯 하다. 파블로 카잘스는 시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기꺼이 그 시간을 관통한 예술가였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음악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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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건축물을 좋아하는 나는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여 가우디 투어에 참여했었는데, 당시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양식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카탈루냐의 독립 투쟁이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멀리서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즉, 하나의 나라가 나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소리가 들린다. 아주 간절하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출처: 카탈루냐 독립운동_나무위키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은 지금도 스페인에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자신만의 문화를 유지해나가려 한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로 스페인 내부에서는 꽤 큰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 역시 카탈루냐의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그의 삶 속에는 카탈루냐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전 유럽, 나아가 미국에까지 미치는 영향력 있는 첼리스트로서의 삶 속에서도 카탈루냐는 늘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정신이 그의 삶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었던 것 같다.
예술가이지만, 예술가이기 전에 사람이 되고자 했던 카잘스. 그의 삶은 인류애로 점철되어 있었다. 예술이 삶과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번뇌했던 그는 단지 예술가라 칭하기엔 철학자적인 면모가 두드러져 보였다. 그런 사려깊음과 섬세함이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든 거대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글에서 자주 자신에게 긍정적인 배움을 선사한 사람들을 자주 언급했는데, 첼리스트로서 자신이 명성을 얻기까지 그의 곁에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안고 살아간 듯 했다. 관계의 소중함,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분명 좋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에는 그를 지지하는 좋은 동료들이 늘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이타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는 카잘스의 의외의 면모를 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연주 투어 중 투어 매니저가 계약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쭐내준 사건이나, 유료 리허설 관습을 타파하겠다는 마음으로 리허설 현장에서 연주를 거부하고 이미 관객이 가득 들어찬 연주회장에서 지휘자가 음악을 폄하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연주회장을 뛰쳐나가는 등 카잘스는 자신이 고귀하게 여기는 음악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은 정의의 사도였던 것이다! 이는 카잘스의 음악을 향한 진심을 잘 드러내는 행위였다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평생의 동반자 음악이 자본의 놀이에 전락되는 것을 지켜만볼 수 없는 마음,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관객들에 대한 존중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우연히 만나게 된 첼로에 마음이 뺏겨, 평생을 첼로와 함께 살아갔던 파블로 카잘스. 사실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책을 읽으며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자신도 궁극적으로는 한 명의 육체노동자였다 말하는 그를 보며, 예술인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하겠노라 다짐하는 그를 보며 예술가는 뭔가 일반인과는 다를 것 같다 여겼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딘가 모르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동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예술가를 직업을 기여이 현실 안에 끌어들인 그의 삶의 태도는 나를 퍽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삶. 음악에 푹 빠졌던 삶이자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의미를 알았던 삶으로서 파블로 카잘스의 인생은 참 아름다웠다. 책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아름다웠던 그의 삶을, 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감사했다.
본 서평은 한길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