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소설 하나를 짓는다면 책제목을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 하고 싶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강렬하면서도 연인의 속삭이는 귓속말처럼 유혹적인 문구다. 말그대로 역사적인 고대 그리스의 철학 유파인 에피쿠로스의 정원학파를 지시하면서도, 동시에 왠지 모르게 모든 금지된 것들에 강렬하게 저항하는 반항아적 아우라를 띤다. 뭐랄까,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이고, 현학적이면서 동시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적인 설렘을 약속하는 주문처럼 들린다.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도 이 제목이 가진 마법효과를 잘 알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잡문집에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란 유혹하는 간판을 달았으니 말이다. 몇몇 인용구를 제외하곤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에 대한 소개도 없고, 대단한 인생론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잘 모르는 예술가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투의 글이나 고전문학에 대한 감상, 그리고 종교와 여성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위주로 하고 있다. 두서없는 잡문집인데, 자세히 읽지 않으면 왠지 권위적이면서 금욕적인 모든 것에 저항하는 비판적인 생각들을 수록하고 있을 거라는 환상 혹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펼친 독자는 아나톨 프랑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에피쿠로스주의에 기반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에피쿠로스보다는 짙은 지적 회의주의를 맛보게 된다. 나는 에피쿠로스주의가 쾌락과 고통의 이분법에 기댄 고대 그리스식 공리주의 철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가 책에서 펼치는 단상들은 일체개고를 강조한 소승불교적 색채도 보인다. 솔까말, 에피쿠로스는 정신적 쾌락을 예찬했지 정신적 고통을 예찬한 적은 없다. 그런데 아나톨 프랑스는 고통을 예찬한다.
"고통과 사랑, 이 둘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이 샘솟는 한 쌍의 원천이다. 아파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비롭고 신성한가!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함,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고통이 있기에 자비의 마음이 있고 용기가 존재하며 모든 미덕이 있을 수 있다."(47쪽)
'정원'이란 말이 상기하듯 에피쿠로스 학파는 사회참여나 정치적인 삶과 거리를 두는 쪽이었다. 그런데 아나톨 프랑스는 사회참여에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다. 어찌보면 저자가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역사적인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된 자유와 평등의 오랜 기원을 엿본 것일 수도 있고, 에피쿠로스의 계몽된 쾌락주의에서 예술가 특유의 예리한 눈으로 뭔가 새로운 심미적인 요소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이 책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
|
책 제목은 어쩌면 낭만적이고 귀족적(?)으로도 느껴진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서 만난 첫 줄은 확증편향(!)을 주기도 한다.
향긋한 숨을 내쉬는 그리스 정원은 꽃피우는 지혜의 초록빛 그늘로 나를 감싸네. -<베르길리우스 별록>중 '시리스' 제3구와 제4구
한가롭게, 꽃과 향기로운 풀이 가득한 정원을 거닐면서 땀내나고 때가 끼는 현실과는 사뭇 떨어진 관념과 철학을 얘기하는 고상함이 가득하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의 저자 아나톨 프랑스에 대해 잘 몰랐다. 띠지에 있는 '신의 반열에 오르기보다 인간으로 남고자 한'라는 표현에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고, 역시 띠지에 있는 -이쯤되면 나에게 이 띠지는 책의 바이럴/역선동 마케팅이었던가 싶다;;- "아파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비롭고 신성한가!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함,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의 문구에서 중2병인가, 하는 선입견도 생겼다.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펭귄의 섬>을 읽어보지 못한 형이상학적, 관념적이며 다소 허세가 묻어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으며 왕정을 끝낸 민중의 힘, 프랑스 대혁명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프랑스의 정부, 지식인, 시민들이 여전히,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일을 인정하고 바로잡지 못하며 국익을 위해서, 혹은 다수의 생각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의견이나 진실은 묻어버리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기꺼이 뭉개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게 만든 사건이 드레퓌스 사건*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대인 사관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아나톨 프랑스는 드레퓌스를 옹호한 에밀 졸라가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하자 그의 장례식에서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글을 통해 드레퓌스 사건을 조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제정, 왕정복고, 공화국 그리고 식민제국으로서의 프랑스를 겪고 프랑스의 정치와 종교 분리 원칙이 확립되어가는 시기에 활동한 아나톨 프랑스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철학자, 소설가, 비평가로서 또한 그리스 로마 고전 및 프랑스 문학, 철학의 고전에 정통한 고전주의자로서 가치와 체제, 관념과 시대관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새로운 형태를 자리잡기까지 인간의 욕망, 감정, 사유, 도덕, 이상의 추구가 날것으로 꿈틀대는 시기를 살아간 사람이다.
이 책의 목록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종교와 철학, 문학과 정치, 야만과 문명, 기적, 종말론-어느 시대나 있구나, 종말론은...- 여성의 지위, 삶과 죽음, 미학과 문자, 현실 등 방대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에 대해 어렵게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사유를 정원을 거닐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듯이 친절하고 나긋나긋하게 풀어서 써내려간 점이 과연, '명상록'이라는 분류를 가능하게 한다.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기어이 성공한 혁명가들이 후대가 혁명에 나서고 싶어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기득권자가 되어 구체제의 모순을 반복하는 일들이 낯설지가 않다.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들을 미사여구와 궤변으로 반대하며 어느새 변화하는 세계를 온몸으로 막으며 거부하는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니다.
왜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했는지 이해가 간다. 나부터도, 정원을 가꾸듯 매일 보살피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새 잔뜩 낀 이끼에 안락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년 전, 유럽 땅의 사유가 오늘날 한국에 번역되어 널리 읽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에피쿠로스의정원 #아나톨프랑스 #B612북스 #명상록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이벤트
|
|
아나톨 프랑스(프랑스, 1844~1924) 자크 아나톨 프랑수아 티보의 필명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그리스·라틴·프랑스의 고전을 읽고 철저한 고전주의자가 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 《황금 시집》을 발표하였다. 그 후에는 소설과 비평을 썼으며, 아카데미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죄》, 《타이스》, 《붉은 백합》 등으로 명성을 떨쳤다. 5년 동안 정기적으로 문예 시평을 썼으며, 극평에도 뛰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평화주의를 주장하였으며, 192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아나톨 프랑스는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을 책과 더불어 보냈다. 프랑스는 인간에 대한 경멸과 풍자를 중심으로 한 지적회의주의자로서 인상비평가, 자전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풍자적이고 회의적이며 세련된 비평으로 당대 프랑스의 이상적인 문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가족과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습니다. 많은 작가가 오로지 자신의 상상력만이 아닌, 시대상과 그리고 가족을 배경으로 글이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이다. 300권이 넘는 저술 활동을 했는데, 전해지는 것은 몇 권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 대부분은 후대 추종자들의 해설에 유래한다고 한다. 학파의 철학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 평정, 평화, 자유, 무통 등의 행복의 조건에 들어간다고 한다. 쾌락과 고통은 선과 악의 척도가 되며,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신은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으며,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 중에 세상의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빈 곳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기원전의 철학자가 세상을 미시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아나톨 프랑스가 제1차 세계대전을 지켜보며 인간들의 행복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들을 보면서 크게 낙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동경하며, 이야기하며 평화를 말했을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자신의 철학을 논하던 장소가 정원이었다. 아나톨 프랑스는 기원전의 철학가에게 깊은 존경과 그의 행복에 대한 이해를 깊게 따르고 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저 아름다운 정원을 사들여 직접 그 땅을 일구었다. 그는 거기에서 자신의 학파를 이루었고, 제자들과 함께 온화하고 마뜩한 삶을 살았다. 그는 정원을 걸으며 또 정원을 일구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온화했고, 누구에게나 정감 있게 대했다. 그는 철학에 몰두하는 것보다 고상한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책의 인용구를 통해서 저자의 시대를 바라보는 생각을 나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 지구를 여덟 바퀴 돌아서 시간을 되돌리는 것 같은 일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사람이 수억 명을 살리는 천재적인 발상도 가능하지 않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고, 선한 영향력을 이웃과 나누는 그것이야말로 평화로운 세상이다. 책을 덮으면서 거대한 인생의 여로가 아닌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
아나톨 프랑스라는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지 100년을 기념한 출간작이라고 하여, 기대감으로 읽어보았다. 이 책은 하나의 내용으로 이어져있다기 보다는, 제목처럼 정원에서 짧은 생각들을 모아놓은 단편 에세이집이라고 볼 수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그의 생각 중 재미있는 내용과 상상들이 많아 그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는 에세이였다. 어떻게 19세기에 이렇게 재미있고 깊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자연과 우리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었던 부분을 에피쿠로스의 정원에 나온 방식대로 한번 나열해볼까 한다. *** 무지는 행복하기 위해서, 또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조건이라는 말. 너무 공감이 된다. *** 도박은 신도가 있고, 무언가를 약속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 자체를 사랑하며, 모진 운으로 전재산을 잃어도 사람들은 자신을 탓한다는 면에서 신과 같다고 표현한 내용이 참 재치있기도 했다. 이 파트에서 시간을 당기는 실타래를 주었더니 4개월만에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내용의 <인간과 운명의 정령>이라는 우화가 나오는데 , 내가 인상깊게 봤던 영화 <클릭!>과 같은 내용이라 '아, 이 우화에서 나온 내용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역시 신선한 소재들은 늘 고전에 있었다.ㅎㅎ *** 고전을 똑같이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당대의 사람들의 모습과 문화를 담아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부분. 어느정도 공감은 된다. 고전을 똑같이 재현을 하려면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늘 같은 작품을 보게 될테니까.. 그렇지만 재료의 발전이나 기법들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같은 내용이나 같은 표현을 하여도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을 보는 재미도 있지 않나? 생각해보긴 했다. *** 전 세계를 벗어나, 저 우주, 혹은 그 이상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는 티끌이다. 인간 외 다른 생명체의 모습과 영혼은 어떤 것일까? 사실 이런 생각은 나도 가끔 해보기는 하는데, 내가 하는 선택이나 혹은 내 삶이 정말 긴 시간과 큰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뭔가 즐겁게 살고자하는 생각과 망설이던 결정들에 대한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질투, 고통, 사랑, 여성, 신에 대한 맹신, 도박 등 정말 다양한 삶 속의 요소에 대해서 고찰하였는데, 명상 중 생각한 자신의 철학이 잘 드러나있다. 200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혹은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꼭, 그의 대표작인 <펭귄의 섬>도 읽어보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피쿠로스의정원 #B612북스 #아나톨프랑스 #이민주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
안녕하세요~~! 오늘은 b612북스의 신간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읽고 리뷰해보려고 합니다. 작가인 아나톨 프랑스는 19세기 프랑스에서 태어나 '펭귄의 섬'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책 표지 뒷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아나톨 프랑스는 드레퓌스 사건을 조사해서 글을 쓴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인데 드레퓌스 사건을 오랜만에 들으니까 너무 반갑네요! 하여튼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재미있게 배웠던 내용이기도 하고,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부분도 끌려서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읽어봤어요~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작가의 일기 같은 느낌인데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에세이가 아니라 여러 주제에 대한 아나톨 프랑스의 생각을 엮어서 낸 것이랍니다~ 첫 100페이지 정도는 아나톨 프랑스의 생각이 한 문단 ~ 한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로 들어가있어요. 여기서 전 번뜩이는 생각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답니다! 예를 들어 '무지는 행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도 필요조건이다' 라는 이야기나 '악이 없으면 선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악이 세상의 절반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라는 말을 하는데요,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통념을 깨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생각해볼 점들이 많았답니다. 전 만약 독서토론 주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사용해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머지 100페이지 정도는 한 주제를 가지고 적게는 5페이지~ 길게는 10페이지 이상 이야기 하는 짧은 에세이들이었습니다. 알파벳의 기원에 대해 유령과 대화하는 상상의 이야기도 있고, 특정한 사람에게 아마도 편지로 부친 것 같은 내용들도 있었어요!
저는 아나톨 프랑스의 이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참 열정적이고 순박한 작가였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답니다. 19세기는 과학을 아주 중시했는데, 아나톨 프랑스는 과학만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현실을 경계했던 것 같아요! 미학 같은 논리적 비평도 완벽한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미학은 명확한 기준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미학적 비평 속의 예술(인간의 감정이 더 중시되는?)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적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지적하죠. 여기서 말하는 기적은 아마도 예수님이 아픈 자들을 권능에 의해 고쳤다..라는 전설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사실 이런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도 없고 믿기 어려운 일들이라 비웃음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특히 증명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에게는요! 아나톨 프랑스는 너무 합리만을 중요시해서 낭만을 잃어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람의 가치관이란 건 항상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이고 우리사회는 생각보다 더 복잡해요 불쌍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주입식 교육의 문제인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지배적이고, 그 누구도 동의할 수 없지만 이성과 합리라는 명목 하에 여러 차별이 정당화되곤 한답니다. 아나톨 프랑스의 생각은 우리나라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나톨 프랑스는 반 이성주의가 아니라 인간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는 결국 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볼 점이 많은 책이었구요, 특히 아나톨 프랑스의 말도 좋지만 문장이 아름답기 때문에 감상하는 재미가 있답니다. 여러분께도 추천드려요~~~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감상글입니다.] |
|
에피쿠로스의 정원
이 책은 아나톨 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 100주년 기념 출간으로 아나톨 프랑스의 세계관이 집약된 명상록이 국내번역으로 나온 귀한 도서이다. 아나톨 프랑스 작가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로서 1873년 고답파의 영향을 받은 황금 시집을 써서 문단에 등장한 후 1896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1921년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이 책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 영향을 받아 쓴 명상록이라고 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라는 말을 많이 들었봤을 것인데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학교를 세우고, 이것을 '정원학교'라 불렀는데 이것이 에피쿠로스학파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아나톨 프랑스는 소설가인지만 이 명상록이 유일하다고 하니 이 책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에 적절한 명상록으로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도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나톨 프랑스 또한 자신이 살던 시대에 프랑스의 어려움속에서 살면서 그의 글귀들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삶의 가치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성숙한 시각으로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 보자인간들은 철학의 영향을 받은 존재들이다. 그리스 시대를 거쳐 간 종교의 시대는 신의 계시적인 시대였다. 인간의 이성보다 종교를 의지하고 강조하는 시대였지만 점차 정교분리를 하게 되었고 인간의 고뇌의 철학들이 발전하였다.
아나톨 프랑스 또한 인간에 대한 고찰들과 고민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정신들과 철학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해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종을 울리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신이 지배하던 세상도 인간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로 많은 오류와 어리석음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 라는 말은 이 시대에도 유유히 흘러 우리 가슴속에 전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
p.54.그곳이 우리의 정원이기에 우리는 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일구어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명상집을 만나보았다. 『펭귄의 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의 장례식이 프랑스 국장이었다는 것이 더 대단하듯 하다. 프랑스 국민이 존경했던 작가 겸 비평가는 그의 유일한 명상집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생각과의 만남도 좋았지만 제목에 담긴 에피쿠로스 학파를 알아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고통'을 대하는 저자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는 저자의 생각과 고통의 부재 즉 쾌락을 이야기했던 에피쿠로스의 생각은 다른 듯 닮았다.
p.47. 고통과 사랑, 이 둘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이 샘솟는 한 쌍의 원천이다.…(중략)…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함,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p.53. 아! 이미 행복한데 어찌 사랑을 알까! 사랑은 오직 고통 안에서만 만개한다. 연인들의 고백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울부짖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에피쿠로스가 자신과 생각을 같이했던 이들과 '정원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에서 착안한 것 같다. 정원에서 생각을 나누던 이들의 모습을 아나톨 프랑스가 재현한 것이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깊이 있는 철학으로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준다. 고대 철학부터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생각까지 깊고 넓은 생각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가의 명상록을 만나는 듯하다.
짧은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 저자가 인간을 만든다면 '곤충'의 형태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깊은 의미를 만나보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저자가 철학가인지 소설가인지 경계가 흐릿해질 때쯤 저자는 자신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자신이 소설가라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듯이 재미난 상상을 들려준다.
「그날 밤 알파벳의 기원에 관해 어느 유령과 나눈 이야기」에서 저자는 제목처럼 어느 유령과 알파벳에 대해, 문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카드모스'라는 유령과의 만남을 신비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카드모스는 누구일까?「엘리시온 평원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그리고 그 토론에는 헤겔에 데카르트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의 자신들의 의견을 더한다. 정말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깊은 철학적 사유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재미난 소설을 원한다면, 감동적인 에세이를 원한다면 이 책은 패스하길 바란다. 알아가는 것의 기쁨을, 철학의 즐거움을, 또 깊은 생각의 힘을 만나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어린 왕자의 고향 별인 소행성(B612 북스)에 연락해 보길 바란다. 무척이나 소중한 만남을 갖게 해 줄 것이다.
"B612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서평] 에피쿠로스의 정원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아나톨 프랑스......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레임으로 다가올 것이다. 1921년 소설 [펭귄의 섬]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2021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으로 명상록이 출간되었다. 이번 출간된 명상록은 아나톨 프랑스의 세계관이 집약된 명상록으로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다소 사색의 깊이를 품은 매력으로 다가왔다. 좋은 원작은 누가 번역하였는가에 따라서 다름이 느껴지기에 옮긴이도 살펴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는 프랑스에서 20세기 인도주의 구호 NGO들의 활동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민주 번역가가 옮겼다. B612 북스에서 출판하였다. 우울한 늦여름 설레임으로 다가온 아나톨 프랑스의 글들은 나의 생각과 다른 특별한 세련됨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원서가 아닌 번역서를 읽고 있음에도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민주 번역가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전해본다. 100년이 훌쩍 지난 오래 전의 그의 글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현실의 내가 편지를 전달 받은 특별한 울림의 느낌처럼 때로는 자기개발서를 읽는 듯한 내 마음에 던지는 느낌 으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너무 설레여서 였는지......뭐지? 하는 어려움의 낯가림이었는데 두번째 잡은 느낌은...... 같은 책인가? 싶은 기쁨이었다. 내가 왜 이걸 못 봤지? 내가 왜 어렵게 느낀거지?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편하게 나에게 마음을 전하는데...... 였다.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가깝게 다가오는 기쁨이기에 ...... 아마도 이 책을 세번, 네번...... 두고두고 읽게 될 것 같다. 저자의 글들은 때로는 현재의 시대에 쓰여진 성공학? 개발서? 와 비교해도 더욱 명료하고 에너지가 있었으며 진심이 담겨져있었고 때로는 새로운 관점으로 나의 세계관을 확장 시켜주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여성의 커리어>는 짧지만 오늘날의 그녀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100년 전의 그 이기에 오늘날을 살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음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펭귄의 섬>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나톨 프랑스의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출간 한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읽게 되었다. 사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 가벼움으로 접근하였지만 아나톨 프랑스에 대해서도 에피쿠로스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배경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의 깊이를 읽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배경지식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무작정 읽어보자 마음 먹었다. 생각보다 주석이 잘 되어 있어 내용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란 제목은 에피쿠로스가 자신의 철학을 논하던 곳이 정원이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직접적으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명상록을 통해 그의 철학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적인 쾌락주의를 말했던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비해 프랑스는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과 도박, 예술에 관련된 접근이 무척 신선하여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다. 혹시 말장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는데 프랑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본연의 의미를 파악해 보니 정말 흥미로운 접근이란 생각이 들었다. 뤼시앙 뮐펠드 등 중간중간 친구에게 편지를 쓴 글들이 있어 형식적인 구성의 변화도 좋았다.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도 소개된 책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된 용어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다. 평소에 가장 큰 잘못은 무지한 것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무지는 행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도 필요조건이다란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장 자체의 속뜻에 놀란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나도모르게 절대적인 가치라 만들어 놓고 편협적인 생각에 갇혀 살고 있었다는 상황을 깨닫게 되니 평소 다름의 가치를 안다고 말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프랑스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생각의 크기를 넓혀주었다. 아파하는 것은 신비로운 것, 악은 필요한 것, 걱정은 매력적인 요소라 표현한 부분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부정적이라 생각하여 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와 닿았다. 에피쿠로스의 행복의 조건인 쾌락의 바탕에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다. 사람이 곤충이었다면이란 독특한 발상이 그럴 듯 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노인들에 관련된 내용에서는 예라는 기본 도리에 걸려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서양 철학을 접하면서 신과 영혼의 영역을 기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엘리시온 평원에서 부분에서 여러 철학자들의 대화처럼 구성된 부분도 흥미로웠다. 그 철학자들이 어떤 철학 사상을 품고 있는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면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더욱 컸을 텐데 나는 이런말을 진짜 했을까 아니면 작가의 상상일까를 구분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230쪽의 그리 두껍지 않은 책 속에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책이었다.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읽어낼 수 밖에 없었지만 연계독서로 그 속의 내용을 하나씩 파헤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로 에피쿠로스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고, 그 후 아나톨 프랑스를 이해하기 위해 <펭귄의 섬>을 읽어 보아야겠다. 책을 덮으면서 문득 세상에는 쓸모없는 가치란 없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쓸모 같아 슬펐던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어 줄 책이란 생각이 든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
|
프랑스의 혁명부터 프랑스의 격변기를 살아낸 아나톨 프랑스는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싸운 소설가다. 그의 19세기 프랑스 사회상이 녹아있는 작품 <펭귄의 섬>의 노벨문학상 수상 100주년을 기념하며 아나톨 프랑스의 명상록 <에피쿠로스 정원> 국내 최초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향긋한 숨을 내쉬는 그리스 정원은 꽃피우는 지혜의 초록빛 그늘로 나를 감싸네." -베르길리우스 별록 중 『시리스』 제3구와 제4구
베르길리우스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그리스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철학을 논하며 지혜의 향연을 펼치던 에피쿠로스 정원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저자 아나톨 프랑스가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많이 얻는 삶을 추구했던 금욕하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의 소박하면서 우정을 나누는 철학 공동체를 흠모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 소설가답게 정치, 사회, 과학, 종교, 철학, 여성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플라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헤겔 등 수많은 철학자들을 소환하여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재현해냈다.
"예술가는 삶을 사랑해야 하고, 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틀림없이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p.33
여성이 세상의 주권자이며 여성은 남성에게 위대한 교육자와 같다고 말하는 저자는 당시 남성 우월주의의 시대상과는 다른 여성관, 우리는 책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읽고, 책은 모든 것을 상상에 맡기기 때문에 세련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은 독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지만, 연극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여지를 남기지 않기에 많은 이가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책이란, 작은 기호들이 늘어서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형태와 색채,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영감이 충만한 예술가의 손길에서 지혜를 담아낸다 할지라도 영혼의 음은 독자의 내면의 악기에 달렸다는 그의 해석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과학은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쾌락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한다.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부딪히게 해서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며, 도무지 만족이 불가능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절망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아파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비롭고 신성한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고통이 있기에 자비의 마음이 있고 용기가 존재하며 모든 미덕이 있을 수 있다." p.47
저자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라는 볼테르의 명문장을 인용하면서도 기저에 깔린 인간의 본능적인 필요를 채우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다소 모순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우리가 사랑할 수 있고 가슴 아파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저자의 인생관이 녹아있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아나톨 프랑스는 어느 정도의 무지가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