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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제1회 황금가지 출판사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수상작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맨 나날들」로 소설가 데뷔. 데이터 과학자, 번역가로도 일하고 있다.
저자에 대한 소개 글이다. 신인 작가라고 해야 할까? 날것같은 신선함에 호기심이 발동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최재원 작가의 8편의 단편집이다.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 은하철도 999의 철이와 메텔의 이별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악한 본성이나 나쁜 버릇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변하지 않는 것이 취향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결국 철수는 M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속은 것이라는 메시지에 공감이 간다.
노인-88012346 소설 속의 미래 사회는 기계인간으로 변환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으로 양분된다. 마치 지금의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어떤 기준을 상장하고 그 기준을 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은 평가의 대상인가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88012346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궁금하다.
대한 UFO교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특징을 실체가 없는 것을 믿는 유일한 종이라고 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종교다. 우리는 사이비 종교에 관련된 뉴스를 종종 접한다. 누가 저런 데 빠지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작품을 읽다보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할 만하다. "유사종교에 주의하세요"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 삶은 점진적으로 발전하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 것 같다. 올라갈 때는 올라갈 일만, 내려갈 때는 내려갈 일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미물이었던 개체에서 전서구인 비둘기에서 개에서 인간까지, 죽음에 대해 가볍게(다시 환생하니까) 터치했다. 그러고보면 죽음 또한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지 저자가 바르셀로나 출장길에 만났던, 광장에서 동냥하던 늙은 여인의 눈빛을 보고 이 소설의 결말이 생각났다고 한다. 늙은 여인은 허벅지 밑으로 두 다리가 없었다. 슬픔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느낌조차도 없을 만큼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던 표정... 여행과 삶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닮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개새끼를 다루는 법 주변에 개새끼들 참 많죠? 이 작품에서는 직장 상사가 개새끼다. 사사껀껀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 엄청 받게 하는 개새끼들... ㅎㅎ 그런데 지금 내 곁엔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한, 존재가 곧 기쁨인 개새끼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악당 엑스트라는 주인공의 총질이나 칼질에 대사 한마디 없이 죽는다. 하지만 TV로 봐도 충분할 만큼 시시한 영화는 있어도 하찮은 인생은 없다. 보통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는 끝난다. 존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던 주인공이 어머니의 부적과 같은 머독이라는 이름으로 갈아타고 나선 허무하게 죽는 반전이 일어난다. 마치 엑스트라처럼...
다리 위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작품은 무엇이 사람의 정신을 멈추게 할까 생각하며 쓴 소설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갈망하던 꿈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을 때 느끼는 무섭고 허탈한 감정을 고아 출신이라는 설정을 활용했는데 다소 편한 길을 선택했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남는다고도 했다. 이 이야기는 고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요즘 공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8편의 단편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모처럼 단편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전개도 빠르고 호흡도 빨라 결말이 다소 급하게 마무리 되는 느낌이라 여운이 아쉽지만 과유불급을 떠올리면 낫다 싶다. 최재원 작가의 차기작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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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로 떠나는 기차와 객실 분위기는 항상 비슷했다.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연인들이나,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나 ,핫바와 삶은 계람을 잘근잘근 씹어 먹고 있는 뽀글이 파마를 한 아줌마나 창밖의 경치 따윈 상관하지 않고 핸드폰 액정 화면에만 열중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10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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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모두 아재가 된다 될 것이다 되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행지는 아재가 되어서야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이제는 그 어떤 것을 보아도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시시한 나이. 여전히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허세와 가벼움이 한 단락 넘어갈 때마다 나를 웃게 했다. 이 작품은 진지한 듯 가벼운 코미디물이라 할 수 있다. 진지한사람은 아재뿐이다. 아재는 점점 초라해지고 독자는 마구 웃게 된다. 근데 끝에 가서 느껴지는 비애감 섞인 감동은 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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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체가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여러번의 인생을 사는 이야기. 한번은 물고기로 태어나 무리의 꼬리가 되어 사는데 싫증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는 우리가 이렇게 죽지 않고 사는게 대장의 현명한 인도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진실을 알게된 개체는 원하는 길로 헤엄쳐 가는데 그는 운이 좋았을까. 마지막 환생은 전혀 예즉할 수 없었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최재원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이야기가 내 삶의 은유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백조#에라모르겠다또죽자#단편소설#아무도모르는악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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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잃고 백수가 되자 아내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주인공은 우연히 UFO를 발견. 대한 UFO 교주가 되는 행운을 얻는데. 이런 줄거리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인간은 왜 속게 되는가,가 아닐까. 논리정연하게 반전을 향해 헤엄치는 이 단편은 작품 속을 헤엄치는 동안 내게 아무런 낌새를 주지않고 팽팽한 긴장감만 느끼게 한다. 똑똑한 그는, 아내까지 비웃던 그는 왜 속았을까. 상황만 주어지면 우리는 기꺼이 속고 싶어한다. 이 짧은 소설은 속는 자를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적 교본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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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을 읽었을 뿐인데 놀라움에 먼저 글을 쓴다.
내가 읽은 것은,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과 '노인-88012346'이다.
삼척으로 여자를 죽이러 가는 남자가 기차에서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속고 마는 이야기가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의 주요 줄거리다.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된다. 머릿속에서 인물들이 왜 이런 대사와 행동을 하는지 추리해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철수'라는 단어와 '혹성'이라는 단어, 은하철도 999를 연상 시키는 장면 때문에 레트로 느낌이 난다. 하지만 단점이 아니다. 잔나비의 음악을 들을 때 느낄 수 있었던 친근한 레트로 감성이다.
'감상'을 사람들은 느낌으로만 받아들인다. 감상의 '감'은 비추어본다. 거울이라는 뜻도 있다. 소설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 감상이다. 작품 속 어딘가에 내가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철수는 본인이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저지르게 됨으로써 또 한 번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를 통해 자기를 고쳐나가는 것이 인간인 줄 착각하지만 인간이란 과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함으로써 인간임을 증명한다. 결국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나를 고쳐쓸 수 없다. 예전에 틀렸던 문제를 다시 풀어볼 기회가 생겼을 때 과거의 방식으로 풀어보려다 다시 틀렸던 적이 있다. 내가 숨겨두었던 부끄러움을 정확히 이 소설은 반영하고 있었다.
'노인'은 늙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노인 로봇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찍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영원히 젊은 채 살아갈 수 있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유한한 생명을 살다가 죽거나, 늙어서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늙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노인에 대해 혐오의 시선도 있지만 그런 노인을 두고 치정극을 벌이는 유한한 생명들이 있다.
"아까 늙은 여자들이 싸울 때 이 건물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경멸하지 않았나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겠죠. 늙은 것들이 웬 치정극이냐고,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사랑싸움이 아니에요. 그 여자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에요. 그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 늙어갑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병을 달고 살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 심해지겠죠. 그들이 나 같은 기계 인간과 사귀는 것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돌봐줄 보호자를 만드는 일이죠. 그 여자들은 화해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생존을 위해 서로 타협한 것입니다."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가, 사랑의 진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왜 영원히 살려고 하나.
소설에서 작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날카로운 답을 소개하고 있다.
뭐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짜여진 구조 속에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오고 간다. 잘 썼고 재밌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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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악당’은 흥미로운 상상력을 담아낸 단편들을 엮은 소설집이다. 소설집에 수록한 여덟개의 단편들은 모두 작은 반전을 담고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중에는 끝까지 읽고나면 뒷통수를 가볍게 얻어맞은 듯 신선함을 느끼거나 웃음이 나는 것도 있고, 개중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그다지 반전처럼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중요한 건 반전이 크든 작든, 또 그게 이야기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든, 꽤나 흥미롭다는 거다. 단편은 짧은 이야기다. 그래서 상세한 묘사는 생략하고 주요 줄거리 위주로만 얘기하기도 하고, 전체 이야기 중 핵심부만 살려서 그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자칫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다행히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대체로 완결성을 잘 갖춘 편이다. 어찌보면 각 단편의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는 사실 작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또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이런 건?’하고 스치듯 떠올릴법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저자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로 잘 살렸다. 단편이라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다 봐야 전체가 보이도록 한 것도 좋았다. 개중에는 꽤나 진지한 물음, 그것도 나름 한번은 생각해볼만한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것도 있는데, 이야기를 통해 그런 주제나 생각거리가 잘 드러나게 그린 솜씨도 꽤 좋다. 소설 출간은 처음이라고 하지만 이미 전문 분야에서 책을 여러권 낸 바 있는데 그러면서 아마도 문장을 짜내고 글을 구성하는 솜씨가 나름 다듬어진게 아닌가 싶다. 다음 소설도 기대한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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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악당_최재원 소설/백조> - White wave 1
"이제 당신은 미래를 아는 선택받은 인간입니다."
최재원 소설가의 8개의 단편이 수록 돼 있는 <아무도 모르는 악당>. 때론 당신이, 때론 나도 어느 누군가에게 악당이일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세상사’가 담겨있다.
인간로봇, 사채업자, 이단, 개새끼 등 주제의 스펙트럼이 대단하다. 그러나 하나의 키워드 ‘악당’으로 매듭지어진다. 참신한 서사의 흐름 속에 우리가 사는 일상에 ‘악당’이 너무나 잘 녹여져 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의 프레임 속 악당은 터무니없지 않다.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고 미래에 등장할 것 만 같다.
의도적인 악당이 아닌 갈등 상황에 놓여 진 인간의 본능적인 태도로 보인다. 작가의 상상력과 반전 있는 서사가 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저자는 알고 보니 데이터 과학자와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참신함에는이유가있었다
#북큐레이터강민정 #한국북큐레이터협회
[ #MJBOOK큐레이터_PICK ] <백조출판사> White wave 시리즈 White wave 시리즈는 순문학에만 집중하지 않고 장르 소설, SF, 라이트노벨 등 장르를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원고를 발굴 기획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위 책은 ‘백조 출판사’로 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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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8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점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해서 재미있게 풀어낼 줄 아는 작가구나"라는 것이다. 식상할 수 있는 소재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이나 상상, 신선한 반전을 통해 재미있게 끌어나간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느껴지니 장편에 대한 기대감도 올라간다.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 "은하철도 999"에서 모티프를 얻은게 재미있었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의 본성 또한 바뀌지 않는다. 아니, 갈수록 진화한다. 그래서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
<노인-88012346>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생각한다면 기계인간, 안드로이드 인간은 생각만큼 아주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발전된 미래 사회에서조차 "노인"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는 변함없다는 설정은 서글프다.
<대한UFO교> 사람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되면 합리적인 이성따윈 날아가버리고 달콤한 유혹과 거짓말에 쉽게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헛된 믿음, 그릇된 믿음이 곧 잘못된 신앙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 UFO 신봉자나 사이비 신봉자나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나는 UFO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종교도 있다. 하지만 사이비는 지양한다.)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 계속되는 윤회와 환생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한 생이 지옥이었다고 해서 다음 생이 천국이되지는 않는다. 그저 특별히 좋은 삶도 나쁜 삶도 아니고 그냥 흘러가는 삶일 뿐이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지> 요즘 같은 시기에 해외 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 왠지모르게 반가웠다.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어서 그냥 흔하디 흔한 여행 에세이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반전이 나름 충격이었다.
<개새끼를 다루는 법> 현실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아니 어쩌면 벌써 일어났을지도... 그래서인지 더 재미있고, 더 공감된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한것 같기도 하면서 찜찜한 것도 같다.
<아무도 모르는 악당> 우리는 늘 주인공의 이야기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데 관점을 바꾸어 일반적인 주인공이 아닌 악당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라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영화 "람보"를 차용했기에 그 느낌이 더 강렬히 와닿았다.
<다리 위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큰 굴곡없이 그냥 순탄하게, 평범하게, 그리고 작은 것들에 행복해하며 지금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지옥인 삶도 있을 수 있겠지만 행복이나 만족의 정도는 상대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작은 위로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날도 곧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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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의 단편소설은 아메리카노를 마신 후 입안에 쓴 침이 고이고 혀끝으로 텁텁함을 만지작댈 때쯤, 시원하고 달콤한 자두에이드를 쭉 들이켰을때의 청량감으로 읽혔다. 한 모금, 한 모금 개운한 음료를 마시듯 한 편, 한 편 흥미진진한 목마름으로 소설을 읽었다. "개새끼!" 김 대리의 뻔뻔하고 야비한 변명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드디어 '개새끼'가 튀어나와 버렸다. (161p) [개새끼를 다루는 법]은 개 같은 새끼에게 '개새끼'라고 질러버리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김 대리에게 맞았던 기억때문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주인공은 늘 속으로만 되뇌었던 "개새끼"를 아주 중요한 회의시간에 그만 입밖으로 내뱉어버렸다. 통쾌한 시간!!! 심장 졸이는 시간도 잠시, 부드러워진 태도의 김 대리를 보고 주인공은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후련함에서 오는 너그러움이다. 그의 표정에는 증오와 허탈감, 고통, 그리고 간절함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절대 존을 혼자 보내지 않을 것처럼 결사적이었다. 존의 눈동자는 한순간 번민으로 흔들렸지만 이내 매섭게 변했다. 존은 철모를 벗어 들어 눈을 질끈 감고 조원의 머리를 내리쳤다. (184p) 숲속의 반짝거림은 조금씩 강도와 밀도가 세졌다. 번쩍거리는 빛 하나가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머독(존)에게 달려왔다. 빛은 머독의 복부를 관통했다. 머독은 끽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전망대에서 떨어져, 죽었다. (192p) [아무도 모르는 악당]은 '존'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이지만 영화라는 전체 내용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소설의 처음, 존의 역할은 전쟁 영웅이며 가장이며 남편, 아빠의 역할로 전형적인 주인공의 역할이지만, 한순간 누구에 의해 무엇때문에 죽는지도 모르는 엑스트라로 전락하면서 끽소리도 내지 못한 체 죽어버린다. 존의 삶이 화면 바깥으로 너무 사소하게 사라져버린다. 반전이다. 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에서 철수가 속아넘어간 상황에서는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가 대한UFO교에 나오는 부부처럼 허탈함을 잊고 부부가 다정하게 장난치는 모습에서 안정감도 받는다.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에서는 윤회의 틀을 마음대로 깨버리는 자유로움에 인생의 무게감에서 조금 해방된다. 여덟 편의 소설 모두 우리 인생의 허를 찔린듯 당황스러우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찌질하고 억울하며 허탈하고 반전이 있는 삶이 들어있다. 어찌보면 꼬질꼬질한 인생처럼 생각되는 허무주의가 발견되었다가도 반전이 거듭될때마다 희망이 보인다. 소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리얼리티에 논픽션 같은 섬뜩한 솔직함이 있어서 짧지만 굵게 울림을 준 책이다. 최재원의 소설을 읽고 다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우리네 모든 인생은 각자의 내러티브로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라는 거대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진실이다. 용기를 내서 서로 도우며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내자. * 백조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읽고 제 주관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