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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진화론이 왜 옳다는 것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을 해석하는 데 진화적 접근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끈질기게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사실 그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진화론은 동물과 식물이, 미생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강력하고도 가장 설득력이 있는 과학적 사고다. 이를테면, ‘송장벌레는 어떻게 개체 수를 조절하는가?’, ‘왜 미친 원숭이 유전자는 도태되지 않는가?’, ‘개의 꼬리가 말려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 (즉, 여우는 어떻게 개로 진화하였는가?)’, ‘왜 입덧을 하는가?’ 등등의 질문에 대해서 진화론은 그냥 그렇게 되었다, 식이 아니라 다양한 관찰과 반복적인 실험 자료, 그리고 기존의 이론을 점검하면서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고, 그것에 대해 검증한다. 바로 진화론은 아주 강력한 과학적 설명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그저 과거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는 진화론에 대한 오해 중 하나다. 진화론은 현재에 대한 설명이며, 현재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따라서 진화론에 기댄 사고 방식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이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다른 학문과의 융합을 끊임 없이 추구하면서 현재를 이해함으로써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진화론의 쓰임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진화의 메커니즘 같은 것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사고 방식, 반드시 진화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더라도 가질 수 있는 진화론에 기초한 사고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많은 업적들을 이야기한다.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등등. 진화론은 모든 학문에 도움을 줄 수 있다(이는 나 스스로도 절감한다. 진화적 해석이 들어간 논문은 그냥 현상을 밝힌 논문보다 한두 등급은 높은 과학저널에 실릴 수 있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나아가 종교에까지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설명을 시도한다. 그는 이 책 이전에 이미 『종교는 진화한다』라는 책을 통해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 혹은 종교와 진화론의 화해를 시도한 바 있다. 그 책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종교를 접근하고, 어떻게 화해하려는 지는 이 책을 통해서 거의 알 수 있다. 그는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리처드 도킨스와 아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는데, 종교에서의 신(神)의 존재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 신의 유용성을 인정한다. 여기서 그는 매우 타협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사실적 현실주의’와 ‘실용적 현실주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실적 현실주의에서 벗어나 실용적 현실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바로 이게 종교라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여러 예(대표적으로 종교개혁 당시 칼뱅의 제네바)를 들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서는 다소 어거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용어는 매우 학문적으로 들리지만, 실용적 현실주의라는 것은 그야말로 타협이다. 현실주의라는 공통의 것을 빼면, 사실에 반대된다는 의미이며, 사실이 아닌 것을 현실에 맞추어 받아들이고 설득한다는 것이다. 종교란 것은. 실용적 현실주의로서 현실에서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인간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아주 빈번한 발생하는 다양한 종교적 발상과 의식 중에서도 현실에 적응하는 일부만이 살아남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럴 듯하면서도, 그렇다면 종교의 이야기는 사실이냐는 근본적인 질문(리처드 도킨스의 질문이기도 하다)에는 답을 주지 못한다. 미룰 뿐. 유용하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학문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종교에 관한 얘기를 좀 길게 했지만, 이 책은 드물게 진화론 자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진화론의 쓸모를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쓸모가 있는 책이다. 끝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다학제적 차원에서 진화를 공부하는 강의를 만들고, 이를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다. 또한 진화론적 접근을 통해 도시를 파악하고 이해함으로써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가 그 내용이다. 진화론이 그저 과거에 대한 가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그렇지 않음을 데이비드 슬론 윌슨을 통해서 깨우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