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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확인되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도 화성과 수원일대에서 10차례 발생한 성폭행 살인사건은 지금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10여명에 이르는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의 잔혹성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몸서리치게 만들고 있기에 지금이나마 범인이 밝혀진다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에는 어린아이를 친부와 계모가 번갈아 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시체를 유기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산적도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에서는 잔혹한 사건들이 끊이질 않고 일어난다. 이런 잔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 [잔혹성 연대기]는 1950년대 이후 최근까지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범죄 중에서 가장 잔혹한 사건들을 연대기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우리사회의 치안수준이 높아지면서 강력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잔혹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며, 지금까지 일어난 잔혹한 살인사건을 살펴보면서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10년 단위로 연대를 구분하고 해당연대에 발생한 대표적인 살인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일어난 사건들은 재물을 노리고 강탈하려다가 살인으로 이어진 강도 살인사건이다. 총기를 사용하여 사람을 살해한 이 사건들에는 당시의 어려운 경제형편과 혼란스러운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총기살인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남에 따라 1962년 ‘총포화약류 단속법’이 제정되어 총포류의 제조와 거래, 소지 등을 규제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잔혹한 사건에 대한 예방법으로 시행된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사회에 총기류의 소지가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를 생각해보면, 당시의 범죄 예방대책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에는 개인과 개인사이의 갈등, 개인과 사회사이의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로, 살인을 저지른 후 시체를 훼손하는 잔혹성과 연쇄살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연쇄살인이란 3곳 이상의 장소에서 3명 이상의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말하는데, 1975년 10월에 일어난 김대두 연쇄살인 사건은 순천, 서울, 양주, 시흥, 수원 등지에서 모두 17명을 살해한 대표적인 연쇄살인 사건이었다. 1980년대에는 연쇄살인에 이어 어린이를 유괴하여 살해하는 유괴살인,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여러 명을 죽이는 대량살인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2년 의령군 궁류 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의 총기난사로 62명의 주민이 사망한 것은 대량살인의 대표적인 범죄이며,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인간 갈등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더 많이 발생하고, 유괴살인, 보복살인, 연쇄살인의 형태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잔혹한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 범인은 검거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은 정황상 증거나 범인의 자백에만 의존하다 물증이 없어 무죄로 판결이 나곤 한다. 이는 모두가 초등수사 소홀이 부른 참사였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럼에도 만약 범죄가 발생한다면 범인을 검거하여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지 싶다. 1991년에는 대구에서 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나섰다가 행방불명이 되고, 11년 후 그들이 행방불명 된 곳에서 유골이 발견된 개구리소년 사건, 한국판 O.J.심슨 사건으로 불리는 1995년 불광동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가해자가 뒤바뀐 끝에 진범을 잡은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 등은 초등수사의 부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범죄, 묻지마 범죄, 혐오범죄 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심신미약자에 대한 형 감면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대표적인 사건을 보면 2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08년 논현동 고시원 살해사건, 2015년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 2017년 고준희 사망사건 등을 들 수 있다.
흔히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분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가해자의 육체적, 경제적 개인요소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다음에 부모와 친척, 이웃 등 가해자의 대인관계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사회 환경 및 시대상황 등을 살펴본다고 한다. 그렇게 분석해 보면 모든 살인사건이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건들의 이면을 살펴본다면 사건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역사산책’이라는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되었다. 보통사람들의 일상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라는 거울에 비춰본다는 취지에 반해 시리즈가 시작되면서부터 읽어온지라, 이 책 역시 별 망설임 없이 읽었다. 헌데 우리 현대사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것은 의외였다. 저자는 살인사건이 세태를 반영하며, 그러기에 점차 개인 간 갈등으로 인한 것이 많아지고 세분화되어 왔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결론이라면 아쉽기만 하다. 그저 연대별로 일어난 살인사건 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 씩 나열한 것에 그쳤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오히려 사건 중심의 나열이 아니라 심신미약자의 형 감경에 대한 논란이나 각 연도별로 범죄유형에 대한 분석, 대표범죄에 나타난 사회현상 등 심층적인 분석 위주로 사건을 살펴보았다면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건을 살펴봄에 있어 가해자 중심이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법제도의 문제점 등을 살펴보았다면 범죄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에 대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느낌은 ‘역사산책’이라는 시리즈의 취지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