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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질주 하는가 ? 과연 세계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단지 경제적, 정치적, 기술적 그리고 문화적인 것의 통합이 전부인가 ? 그 속에는 과연 휴매니티가 숨을 쉬고 있을까 ? 책을 읽기전에 책 제목을 두고 잠시 생각을 해봤다. 세계화를 지극히 긍정적으로 한 편으론 적극적으로 펼쳐가는 저자의 논리는 대영제국의 후손 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에 의해 '질주하는 세계' 로 되어 가고 있는가 ? 잠시 눈을 들어 나의 위치, 우리 나라의 위치, 아시아..아니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서 부딪고 지내는 이 흐름이 과연 어찌 되어 가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 전통이나 자연의 경험에서 오는 외부적 리스크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발전하는 지식의 충격으로 인해 창출되는 리스크. 후자의 경우는 제조된 리스크라 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떤 수준의 리스크가 존재하는지 짐작도 못하고 대비해야 할 시기 또한 놓치고 마는 문제점이 있다. 전통에 대해 - 저자는 전통적이라 함이 까마득한 과거가 아닌 기껏 지난 수세기의 산물이라 한다. 세계화 과정은 학자와 사상가들이 전통과 관습에 기울이는 관심보다 근대화 또는 근대적인 것에 대해 몰두하는사실에서도 나타나는데..전통을 가볍게 처리해서 안되지만,공교롭게 전통이라는 생각 그 자체가 근대성의 창조물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 할 수가 없다. 전통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전통은 시간에 따라 진화되거나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화라는 논리. 가족에 대해 - 세계화란 흐름앞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슈. 아니 어쩌면 제일 먼저 다뤄야할 화두이다.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견지에서라도 세계화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앞서야 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하나의 경제 단위이자 남녀 불평등이 강하게 내재 되어 있었다. 점차적으로 양성 평등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자 행복이란 이름으로 자리잡는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영양의 무리 중 하나가 무엇에 놀라 뒤를 돌아 볼 틈이 없이 냅다 뛰자 얼결에 같이 뛰는 다른 무리처럼 무조건 뛰고 보자가 아닌 '보고 뛰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접해 볼 만한 책이다. 방송용 원고를 텍스트로 삼아서 그런가 내용의 흐름이 부드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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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설명하기는 무척이나 지난한 일인 것 같다. 그 이유로는 2000년를 맞이한 지금의 시기가, 가속도 경쟁의 절정이기 때문이거니와 우리가 시대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동시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내한과 함께 우리에게 더욱더 친숙해진 기든스의 새로운 책 ‘질주하는 세계’는 변화의 가속만큼이나 복잡하게 전개되어지는 세계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과학철학,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등 전문적 분야의 최첨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시대를 설명하는데 추상적 개념과 새로운 조어들의 난무로 일관해온 요즘의 학적 유행과는 다르게, 기든스의 책은 사회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객관의 견지에서 세계에 대한 입문서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어려운 대상에 대한 쉬운 설명의 근본이 작가의 개괄적 지식의 나열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각 분야에 대한 성실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기에 독자에게로의 소통이 더 원활한 것 같다.
강의 내용을 출판한 것이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제 3의 길로부터 이어지는 결론들의 확인 작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데올로기적 극단과, 사회민주주의(제1의 길)와 신자유주의(제 2의 길)라는 경제적 틀의 대립을, 중도적 입장에서 풀어나가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다원주의 또는 중도주의의 무책임한 결론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도적이며 회색적 입장이 그 대안의 구체성과 학자적 순결성을 담보로 한다면 쉽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실존적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기든스가 현 시대에 가장 주목받고 인정받는 학자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기든스가 열거하는 시민운동을 통한 비정부 기구등의 활동이 한국의 선거 현장에서, 미국에서 있었던 IMF회담 현장에 현실로서 나타났기에 그 설득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든스의 이론이 책 제목과 같이 질주하는 세계 즉 진행형의 이론이며, 궁극의 세계에 대한 명확한 제시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비정부 기구들이 결국 어떤 식의 정치 세력화가 이루어질 것인지, 정부, 자본가, 시민기구 등 이들 다자간의 조화를 위한 조건의 충족과 유지발전, 그리고 영원한 조화란 존재치 않았다는 역사적 교훈으로 볼 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언급은, 내가 기든스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한것인지 몰라도,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기든스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당한 책이 질주하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몇몇 적당치 않은 기든스의 멘트만을 접한 사람들은 기든스를 자칫 세계화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오해할 여지가 많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광고 카피의 무책임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한데 세계화라는 유행어의 수혜를 보고자 기든스와 세계화를 등식 관계로 올리는 오류를 많이 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든스의 이전 책들이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 쉽게만은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기든스의 질주하는 세계는 새로운 이론에 대한 욕구 충족보다는 시대를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매우 유익했으며, 현 시대에 대한 안테나를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킬트 스커트는 산업 혁명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겨냥한 바는유서 깊은 관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 곧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들을 히스 수풀에서 끌어내 공장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